달을 향하여

 

달을 향하여



김재영



하나, 희망은 죽음의 어둠 속에서도

       별을 보고 사랑의 날개 짓을 듣는다

                         -로버트 잉거솔 Robert ingersoll*

            


회현동 길로 접어들자 なべもの(나베모노), すき?き(스끼야끼), 南京飯店(난징환디엔) 같은 외국어 간판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때 대연각 연회에 나가는 양동 아가씨들이 살던, 다다미방 달린 집들도 아직 더러 남아 있었다. 관광호텔은 아직도 일본인들을 상대하는지 パチンコ(빠친코) 글자가 크게 쓰인 입간판을 길가에 세워놓았다.

 

 

어딘가 부도덕한 기운이 감도는 골목이 내게 어린 날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 길 끝에는 어머니가 시립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가기 전까지 살았던 우리 집이 있다. 내가 일곱 살 되던 해였던가. 부모님은 덕호네 마당에 있던, 다 쓰러져가는 똥두깐을 샀다. 어머니는 돈이 생길 때마다 시멘트를 한 포씩 사다 나르고,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틈만 나면 한강에 가서 모래를 사 왔다. 시멘트와 모래와 물은 한데 뒤섞여 곧 벽돌로 찍혀 굳어갔고, 부모님의 내 집 장만이란 꿈도 점점 더 단단하게 여물어 갔다. 대지 열 평짜리 똥두깐 자리에 작고 작은 이층집이 세워졌다. 아래층엔 방 하나에 좁은 부엌이 딸려 있고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작은 계단이 부엌 뒤쪽으로 나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 방 하나가 더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의 집보다 조금 더 큰 집이었다. 예쁘고 근사하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는 구조였다. 나와 장가 안 간 삼촌이 윗방을 썼고, 어머니와 아버지, 어린 여동생들은 아랫방을 썼다. 동네 아이들은 나를 놀릴 때마다 우리집을 똥두깐집이라 불렀다. 사실 우리집엔 똥두깐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똥두깐을 팔아먹은 덕호네와 우리 식구는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이용하는 공동뒷간을 썼다. 아침이면 산 쪽으로 난 좁은 골목을 걸어가 뒷일을 보고 내려와야 했다. 그 때문에 작은 성냥곽 같은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늘어선 골목을 덕호와 나는 모르는 곳이 없을 만큼 누비고 다녔다. 지금도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듯 절망감이 들 때면, 나는 때때로 수십 년 전에 떠났던 도심 속의 고향, 회현동 골목을 떠올리곤 한다. 조악한 슬레이트집과 루핑집, 허름한 일본식 집들이 얼기설기 이어진 사이로 좁고 구불구불하게 나 있던, 어머니 주머니를 뒤져 알사탕이라도 사 먹은 날 회초리를 피해 도망치다 보면 뜻밖에도 눈앞에 새롭게 나타나던, 그 숨어버리기 좋았던 샛길들을.

‘회현큐큐’ 라고 쓴 간판이 걸린 허름한 상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우리 식구가 살던 꼬마 이층집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낯선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회현큐큐 유리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반투명의 내 몸 속으로 단추구멍, 니나인치, 간도매 등의 글씨가 색색으로 씌어졌고, 이어 낯선 실내의 정경이 비집고 들어왔다. 벽면에 매달린 수십 개의 색색가지 실타래, 쌓인 옷가지, 드륵드륵 소리를 내는 두 대의 재봉틀, 그 북새통 속에서 쉼 없이 손을 놀리며 일하는 남녀……. 그 중 사내는 반백의 머리칼로 보아 중년으로 보이는데 소매 아래 드러난 팔뚝은 꽤나 탄탄해 보였다. 무심결에 내 팔뚝을 두 손으로 잡아보았다. 물컹한 살이 맥없이 잡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새로 이사 온 옆집 남자가 나보다 늙어 보이면 안도하게 되고, 오랜만에 산 책의 저자가 나와 동년배면 아니꼬워지고, ‘성공시대’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벤처기업 사장이 나보다도 한참 어리면 심한 열패감에 빠져들게 된다. 악동시절, 낡아빠진 딱지나 구슬의 수에 빠져들던, 아침마다 친구들과 키 재기를 해보던 그 하릴없는 짓거리를 지금껏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옷은 단추 구멍이 열네 개씩이거든. 빼먹지 않도록 조심해.”

아내인 듯 보이는 중년 부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웬 놈의 구멍이 그리 많대?”

어눌하면서도 볼멘 사내 목소리를 듣자 실없는 웃음이 솟았다. 구멍이란 단어가 엉뚱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작년 송년모임에 참석했던 날이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두 달째다. 아내는 꼬박꼬박 가계부를 적는다. 신혼 초엔 별 거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심지어는 애들이 감기에 걸려 며칠씩 밤잠을 설친 날에도, 아니면 오랜만의 나들이로 조금은 들뜨고 피곤한 날에도 가계부를 펼치는 아내를 보면서 내심 놀라곤 했다. 아내의 가계부는 빈틈이 없다. 수입 지출의 정확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지면의 활용을 말하는 거다. 아내는 가끔 한밤중이나 혹은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 가계부 하단의 빈 칸에 무언가를 쓴다. 그럴 때의 아내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아침 출근을 재촉할 때의 냉혹함이나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때의 다감함과는 전혀 다른, 이지적인 느낌이다. 그런 모습을 접할 때면 과거의, 처녀적의 아내란 여자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진지하면서도 도전적이던 여자. 어깨가 넓은 펑크스타일의 옷으로 남성적 권위에 도전하고 싶어 하던, 청바지 차림에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영화를 본 뒤 몰래 눈물을 감추던, 골목길 모퉁이에서 진하게 키스해오던……. 어떤 내용일까, 하는 호기심이 가끔씩 일었다.

호기심은 가끔 아내의 육체에 대한 갈망으로 뒤바뀌곤 했다. 지난 해 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진탕 술을 퍼마셨던 날도 그런 경우였다. K기업 과장에서 물러난 지 일 년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허물없는 대화와 객기로 가득 찼다. 게다가 마침 중국으로 출장 다녀왔다는 친구가 독한 중국술을 들고 나와 술판은 초장부터 들썩였다. 다음날 출근할 걱정이 없는 나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독한 술을 마셔댔기에 일찌감치 취했던가 보다. 갑작스런 요의에 떠밀려 일어나 보니 내 집이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밀려드는 갈증 때문에 부엌으로 들어서니, 식탁에 앉아 일기를 쓰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매우 진지하면서도 조금은 회한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취기가 어릿어릿한 가운데도 뜬금없는 정욕이 일었다. 나는 억지로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역시 술기운 탓인지 일은 그다지 썩 잘 되지 않았다. 아내의 반응 역시 밋밋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는가 보다. 나른한 오후였다. 도통 겨울 같지도 않은 날씨였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점심을 챙겨주고 나자마자 외출을 했다. 아는 선배한테 일자리를 소개받기로 했다고 했던가. 어쨌든 엄마 없는 집에 남은 아이들은 살판났다는 듯이 집안을 어지럽히고 다녔다. 나 역시 신문에 혹시 괜찮은 구인광고라도 있나 세세히 살피느라 아이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어린놈이 종이를 한 장 가지고 와서는 비행기를 접어 달라고 졸라댔다. 무심히 집어든 직사각형의 종이를 대각선으로 접으려는데, 종이에 깨알같이 적힌 글이 눈에 띄었다. 아내의 글씨체였다. 작은아이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아내의 가계부를 찢어 온 거였다. 늦둥이 아들의 못된 버릇을 혼낸 뒤, 제자리에 올려두려고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활자만 보면 저절로 읽고 마는 문명인의 습관이 내 눈길을 이끌었다. 서너 개의 문장이 한꺼번에 눈 속으로 빨려들어 왔다. ‘욕실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도꼭지를 바짝 조여주고 돌아서는데, 세면대 옆에 놓인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뚜껑이 열린 채 내용물이 반쯤 삐져나와 있는 콘돔 상자.’

첫 문장은 어느새 둘째, 셋째 문장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새벽녘의 정사가, 헛된 욕망으로 허우적대던 형상이 떠올랐다. 쓰고 난 휴지조각처럼 아무렇게나 뒹구는 콘돔이란 물체가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환멸과 거부감이 치솟았다. 애정 없는 섹스에 길들어 가는 내 나이가 두렵고 추잡스럽다.’

나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깜깜한 게 전혀 생각나질 않았다. 그랬던가. 애들이랑 함께 쓰는 욕실에다 그런 걸 버려둘 만큼 취해 있었던 걸까.

‘오늘은 행위 뒤의 포옹조차 없이 아침을 준비했다.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늦잠 끝에 허둥대며 각각 피아노학원으로, 태권도학원으로 달려갈 때까지는 물론, 오전 내내 우리는 거의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신문을 뒤적였고, 나는 생선가시와 김칫국물로 어지럽혀진 식탁을 치웠다. 바스락 바스락―, 달그락 달그락― 두 소리는 서로의 존재를 묵인했다. 침묵이 천장으로부터 서서히 내려와 거실을 빼곡하게 채웠다. 온몸이 짓눌리는 듯했다. 아앗, 그 순간에 접시 하나가 수도꼭지에 부딪혀 깨져버렸다. 남편이 신경에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한번 눈길을 보내왔다. 나는 허둥지둥 깨진 사기 조각을 치우다가 왼쪽 검지를 베었다. 선홍색 피가 솟아났다. 그러자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자꾸 이러지? 생선구이를 담을 만한 타원형의 큰 접시는 이제 하나도 남지 않았다.’

글은 그렇게 맥없이 끝나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뒷면으로 넘기니, 역시 깨알 같은 글씨가 빈칸 밖의 공간에까지 넘쳐 있었다.

‘외출하기 전에 낮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밤마다 술을 마셔댄 탓인지 핏기 하나 없이 부석부석해 보였다. 현관문을 잠그고 돌아서자마자 뛰었다. 엘리베이터 옆, 음울한 어둠에 싸인 비상계단으로 운동을 위해 그러는 사람처럼 결사적으로 뛰었다. 집을 나와 뒤돌아보니, 방금 빠져 나온 아파트 건물이 거대한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 하늘과 땅을 쪼개어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육면체의 공간. 내 영역임을 표시하는 숫자 9, 0, 5. 그곳은 지금 수컷 한 마리에 의해 점령당해 있다. 무질서……. 마치 해와 달이 일몰과 일출을 경계로 세상을 지배하듯이, 내게 아파트의 주인은 낮과 밤이 바뀌어야 하는 거였다. 그것이 오래된 생활습관이고 무의식적 믿음이었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오롯이 나의 것으로 되어 있던 오전의 시간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침범해왔다. 오래 가진 않을 거야. 함께 일해 보기로 한 사람들이 몇 있거든. 그러나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처음 얼마 동안은 나 역시 전과 다름없이, 아니 전보다 더 규칙적으로 아침식사 시간을 지켰고 음식에도 신경을 썼다. 심지어는 남편의 기분을 살리려고 애교를 부렸으며, 그의 말에 고분고분했다. 처음 얼마 동안만큼은. 정확히는 남편의 폭음과 돌발적인 역정이 빈번해지기 전까지. 요즈음 나는 수시로 베란다 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힌다.  아, 왜 이렇게 숨이 막히지?’   

내심 뜨끔했다. 나의 존재가 아내에게 짐이 되어 있었다거나, 무단 점령한 수컷 따위로 비유되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단지 줄어든 생활비 때문이 아니라, 아내의 일상을 흐트러뜨리는 나로 인해 아내가 더욱 힘들 거란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의 무신경이 오히려 의아했다. 배려 때문이었을까. 세 끼 식사에 세심히 신경을 쓰고 온화한 낯을 유지하고자 애썼다는 아내의 고백처럼. 아니면, 길들여진 나의 이기성 때문일까.

어쨌거나 의당 받아야 할 대우쯤으로 여겼던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내나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여유가 내겐 없었다. 경영합리화라는 명목 하에 사라진 내 책상, 그 텅 빈 공간의 충격에서 헤어나기만도 벅찼다. 나는 K기업의 과장이라는, 그토록 지긋지긋해하며 하찮게 여겨왔던 자리에 얼마나 많은 내가 녹아 있었던가를 깨달았다. 스테인리스, 철근, 수주…… 거래처 S사, H사, K사……. 그런 단어들. 익숙하기만 한 그것들은 이제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돌변해 있었다. 절친하다고 여겼던 동료들로부터는 전화조차 없었다. 언제든 남의 것이 될 수 있는 자리. 어째서 나는 그런 따위에 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던가. 몸 한가운데로 폭풍이 뚫고 지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래도 나는 나은 축에 속했다. 빈손으로 떨려나온 사람들이 태반인 판에 퇴직금까지 받고 나왔으니 그게 어디냐. 혼신을 다해 키워온 회사마저 부도나고,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동반자살을 하는 판국인데, 내 집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11평짜리 회현동 아파트에서는 매달 몇 십만 원씩의 월세도 나오고 있지 않느냐. 엄살 부리지 말자. 이 정도면 행운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한낮의 아파트 단지를 걸어 다닐 수 없었다. 실업은 이미 만연한 사회 현상인데도, 어쩐지 떳떳치 못했다. 어색하고 죄스러웠다. 혼인한 뒤로 죽어라고 벌어 장만한 스물다섯 평 아파트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만 거다.

나는 읽고 난 종이를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저녁에 돌아온 아내에게는 둘째 놈이 실수로 찢어버렸다고 말했다. 그 뒤로 두 달여 동안 나는 아내를 안을 수 없었고, 생활은 더욱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나는 철저히 밤낮을 바꾸어 살았다. 낮에는 하루 종일 잤다. 아침이면 눈을 뜨게 하던 오랜 출근의 습관조차 사라져 버렸다. 얕고 잔망스런 꿈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줄기차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끔 딸아이의 피아노 두드리는 소리에 방해받아 눈을 뜨곤 했다. 딸아이는 아내 말에 의하면 아니, 정확히는 교습소 선생 말에 의한 거라 상술이 섞여 있을 법하지만, 어쨌든 꽤나 소질이 있다고 추켜세워지고 있다. 딸아이의 피아노 치는 소리와 아들놈의 짓궂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스름해질 녘에야 겨우 눈이 떠졌다. 지지부진한 낮잠의 끝이라 몸이 무겁긴 했어도, 그럭저럭 기분은 좋았다. 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퇴근길의 사람들과 뒤섞일 수 있는 밤. 친구들과 만나 술이라도 한 잔 걸칠 수 있는 밤. 술기운을 빌어 세상을 욕하고, 벤처기업의 꿈을 들먹일 수 있어 다행스런 밤. 그런 밤으로 나는 도주했다. 힘세고 사나운 파충류를 피해, 야행성으로 돌아섰던 초기의 포유동물처럼.

어젯밤에도 나는 소주 한 병을 놓고 두 편의 비디오를 연속으로 본 뒤, 새벽쯤에야 잠들었다. 아침나절 잠결에 전화기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수차례 반복되는 신호음을 듣다가 나는 아내가 집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내는 오늘부터 집 근처 쇼핑센터에서 시간제로 일하기로 했던 것이다. ‘여기 시범아파트 관리실인데……’ 자동응답기가 작동되었을 때에 전화를 받았다. 어젯저녁 아내의 말이 비로소 생각났다. 오늘 중에 회현동 아파트 재계약 건으로 연락이 올 거라며, 월 십만 원 이상 꼭 올려 받으라고 당부하던 안타까운 조바심이.


드륵, 드륵……. 짧고 빠르게 반복되는 재봉틀 소리가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굴참나무 숲 너머 철근 콘크리트의 서울타워가 보였다. 해발 237미터. 저 산자락에서 유년을 보냈기에 잘 알고 있는 숫자가 자동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때 동양에서 첫 번째로 높았던 탑은 서울 어디서나 잘 보이지만, 그래서 여전히 거기 솟아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쩐지 전만큼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문득 낯익은 광고문구가 떠오른다. ‘최고가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이제 동양 최고가 아니라서……. 갑자기 최고라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뒷목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그러자 바바리코트의 어깨가 중심을 잃고 뒤로 젖혀지고 말았다. 너무 일찍 집에서 나선 걸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 버스가 예상만큼 밀리지 않았다. 약속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어 천천히 걸었다. 밀집한 골목엔 남경상사, 가람자수, 상해반점 등의 간판이 늘어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거리는 숫제 중국인 거리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진 흔적이다. 낯설다. 하지만 이 낯설음이 무엇보다 익숙하게 느껴진다. 해방 후 가난뱅이들이 몰려 살던 일본식 적산가옥 백수관과 유엔센터 근처의 양키 택시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던 낯선 풍경이야말로 전쟁 뒤 회현동의 일상이 아니었던가. 70년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일본인 관광업체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인 상대 입간판은 이곳이 이방인들의 거리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상가 끝으로는 일본식 이층 건물들이 몇 채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낮은 슬레이트 지붕들, 다시 빨간 벽돌의 이층 양옥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을 마구잡이로 겹쳐 놓은 이미지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오후 빛이 길고 지루한 동네였지. 남산의 서면, 뜨는 해보다 지는 해에 익숙했던, 그래서 서향으로 난 창마다 빛바랜 커튼이 줄줄이 쳐져 있던, 남대문 새벽시장을 여는 상인들이나 유엔센터에 드나드는 양색시들이 일몰 때가 되어서야 커튼을 들쳐 고개를 쑥 내밀며 하품해대던 곳. 그랬다. 회현동 아이들은 어느 촌뜨기들 못지않게 후줄근했고, 새참거리가 궁해 늘 헛헛해 했으며, 무엇보다 집요하게 내리쬐는 오후 빛을 견뎌내야 했다. 시내 건물의 청소부나 수위, 남대문 시장 잡상인들, 아니면 기껏해야 말단공무원이나 교사인 그들의 가난한 부모들이 돌아올 때까지.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가자 ㄷ자형의 거대한 아파트가 나왔다. 이제는 낡고 초라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내 생의 단면이 다양한 지층처럼 눈앞에 펼쳐졌다가 사라졌다. 그래, 박병찬이 돌아왔다. 성공의 나팔소리도 없이, 총과 철모조차 잃어버린 패잔병의 모습으로.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문제냐. 패기 있게 떠났던 많은 젊은이들이 다 그렇거늘. 나는 호기롭게 가슴 속으로 외쳤지만 발길은 여전히 무거웠다. 건물 입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으로 복덕방을 겸한 관리실이 있었다. 아파트는 낡고 거대한 여인숙 같았다. 더러운 벽과 복도 양편에 줄줄이 늘어선 나무문짝 탓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침침한 복도에선 미미한 지린내마저 났다. ‘월 십만 원은 꼭 올려 받아야 해요.’ 아내의 강압적이면서도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살아났다. 나는 주먹을 굳게 쥐어본 뒤 미닫이문을 열었다. 검은 인조가죽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족히 육십은 넘어 보이는 관리인이 화들짝 놀라며 깼다.  

“저…… 아까 통화했던 사람입니다. 계약을 치르기로 한…….”

늙은 관리인은 졸음 끝이라 충혈된 눈을 비벼댔다.

“통화했다고? 언제지?”

“아침나절에 전화하셔서 오후 다섯 시경에 오라고 하셨잖습니까.”

“아침나절이라…… 그렇담 서 영감이 사무실 지킬 때였구먼. 서 영감 지금 없는데.”

“어디 멀리 가셨나요?”

“멀리 간 게 아니고 교대근무요. 시간이 되면 올 테지. 앉으슈.”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쌓인 신문과 장기판을 치우며 늙은 관리인은 자리를 내주었다. 관리실 벽면의 시계는 네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댁이 몇 호더라?”

“사백 이십 칠 홉니다.”

관리인은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듯 자꾸만 호수를 반복해 중얼댔다.

“그 집이라면 박 선생님 소유일 텐데…….”

“맞습니다. 제 부친이 박자 순자 영자를 쓰십니다.”

“그랬구먼. 박 선생님 근력은 여전하시지?”

“제 아버님을 잘 아시나요?”

“알다 뿐인가. 우리 애들 둘 다 그 선생님한테 한문공부 시켰는걸. 그 중에 둘째 놈은 좀 늦게 머리가 트였는데 박 선생님이 수개월을 매일 붙잡고 가르쳐 주셨다네. 덕분에 그 놈이 지금은 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지.”

그제야 나는 아버님께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고생하다가 작년에 작고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관리인은 몹시 놀라더니 괜한 걸 물어서 맘이 상했겠어, 하며 설 끓은 보리차를 내밀었다.

나는 정말로 조금 우울해졌다. 아버지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길 겨를도 없이 보냈던 지난 해였다. 초상 치른 직후에 회사를 그만 두었기에, 오히려 흉한 꼴 보이지 않게 된 게 어찌 보면 다행이라 여기던 참이었다. 남산은 무슨 남산, 목멱산이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산의 옛 이름을 고집하시던 아버지는 목멱산 딸깍발이 샌님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한문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으신 분이다. 회현동에서 장충동, 서대문으로 전근 다니면서 끝내 목멱산을 가까이 두고 사셨던 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노년의 불면이 고통스러운 날이면 때때로 회현동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매연 투성이인 도심이 무에 그리 좋을까마는 아버지에게도 고향은 역시 그리움이었던 게다. 하지만 난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작은 소망조차 들어주지 못했다. 어째서 그토록 매정하게 굴었던 걸까. 아버지에 대한 반감 탓일까. 한학 따위에나 열중하던 아버지의 고루함, 양가집 규수로 자란 어머니가 남몰래 산부인과에 다니며 피 빨래를 하도록 만든 아버지의 무능. 동료교사들은 촌지다, 개인과외다, 교장 승진이다 해서 하루가 다르게 재산을 불려 나가는데 기껏 꼬맹이들에게 한자나 가르치던 아버지의 고집. 그 덕에 학교를 두 번이나 휴학해야 했던 서러움, 뭐 그런 것들 때문에?

“서 영감이니 받아 보슈.”

관리인은 어느새 서 영감 집으로 전화를 걸어놓고 수화기를 건넸다.

“아, 이거 미안하게 됐수. 계약하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직장 일이 밀려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구먼. 일곱 시는 돼야 온다고 그럽디다. 선생네로 곧바로 전화했더니 벌써 떠났더라고. 어쩌려우. 좀 기다리려우?”

서 영감의 미안해하면서도 어딘가 사람을 구슬리려는 듯한 말투였다.

“일곱 시요? 너무 늦군요. 조금 앞당길 수는 없을까요?”

“글쎄…… 저쪽 사정이 워낙 힘든가 보던데.”

직장 일 때문이라는 말에 꼼짝없이 말려들었다. 요즘 같은 시절엔 목숨처럼 귀한 게 직장이니 막무가내로 우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저편에서는 이번 주 내로 이사할 수만 있다면 십오만 원까지 더 낼 태세라면서 서 영감은 은근히 배짱을 튀겼다. 다시 한번 아내의 다짐이 떠올랐다. ‘아무리 못 받아도 십만 원은 더 받아야 해요.’ 

꼬박꼬박 들어오던 수입이 가뭄에 샘물 고갈되듯 끊긴 지가 어느새 수개월이었다. 곶감처럼 빼먹는 퇴직금도 이제는 제법 자리 티가 나기 시작했고, 경제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나는 물론 이런 저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지만, 어디 한군데 마땅한 자리를 얻을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같은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일 외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아내는 집세를 올려 받기로 했다.

십만 원이면 얼마냐. 딸아이 피아노 교습비 정도는 보탤 수 있지 않은가. 어디서 시간을 때울지 고민하면서 관리실을 빠져 나왔다.

차고 메마른 바람이 훅 달려들었다. 기침이 나왔다. 세 번 네 번 연거푸 튀어나왔다. 약을 먹고 있는데도 벌써 여러 날 째 낫질 않았다. 그것조차 스스로의 모자람이라 여겨져 못마땅했다. 어디에서 기다려야 하나. 발길을 떼지 못하고 서성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리실 옆에 있는 정체불명의 분양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 유리문에 붙어 있는 고흐의 그림 인쇄물 ‘별 헤는 밤’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분양 상담― 언제든 문의 하세요’ 라고 쓴 작은 안내문도 그림 옆에 붙어 있었다. 딱히 갈 데도 없고 해서 문을 열었다. 문 위쪽에 걸린 쇠종이 쨍그렁, 울렸다. 회전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오락물을 보며 킬킬거리던 남자는 어서 오세요, 라고 건성으로 인사했다. 

“여기는 뭘 분양하는 곳인가요?”

“달이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사내의 무성의가 순간 기분을 상하게 했다. 게다가 달을 분양하다니, 지금 농담하자는 건가. 기분이 나빠 돌아서려다 눈 흘김으로 사내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덕호 아버지였다.

어릴 적 내 친구 덕호는 얼굴에 늘 상처가 있었고, 마른 입술에 연신 침을 묻혀 토인처럼 입가가 허옇게 튼 개구쟁이였다. 덕호 아버지는 구멍가게를 운영했는데, 한쪽 눈이 초점이 없고 흐릿한 개눈박이였다. 마침 막내 동생을 임신해 입덧을 하시던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껌 심부름을 시켰는데, 나는 덕호 어머니가 물건을 파는 밤에만 그 가겟집으로 갔다. 동네 아이들은 덕호 아버지가 보름달이 뜰 때면 뒷산에서 개를 잡아 눈깔을 빼서 새로 박는다고 했다. 또 어떤 애들은 개눈깔은 귀신을 알아본다면서, 밤마다 귀신이랑 이야기를 나눈다고도 했다. 심지어 언젠가 사람 눈을 빼 갈 거란 소문까지 돌았다. 그 소문을 들은 뒤로 덕호 아버지를 마주치면 난 부르르 몸을 떨다가 오줌을 지리기까지 했다. 이제야 생각하면 모두 터무니없는 거짓말일 따름이지만, 그 땐 정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젠 다들 알겠지. 개눈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더 사납고 냉정한 눈초리가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걸. 사내 옆얼굴은, 그러니까 온전한 눈이 붙은 쪽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개눈깔이 아니었다.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두어 번 눈을 껌뻑인 뒤 입을 열었다.

“혹시…… 박병찬?”

사내는 덕호 아빠가 아닌 덕호였다. 참으로 누추하고 싱거운 해후였다. 


아파트 뒤쪽으로 나 있는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면 곧바로 순환도로가 나오고 길 건너편에 김구 선생 동상이 세워진 공원이 있었다. 우리는 광장 입구의 매점에서 캔맥주 하나씩을 사들고 천천히 걸었다. 공원 끝에 다다를 즈음해서 내가 덕호에게 물었다. 

“너 생각나니? 저 끝에 있던 야외음악당.”

“그럼, 나고말고. 비오는 날이면 그 속에 들어가서 비석치기를 하며 놀았잖아. 넌 혹시 생각나냐? 저 음악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던 거. 아폴로호가 달나라에 갔을 때 말이야.”

“맞아, 그랬어. 서울 시민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 적이 있었어.”

갑자기 그때 풍경이 어제 일처럼 선명히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텔레비전이 퍽이나 귀한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서울시 특별행사로 ‘아폴로 11호 달 탐사’ 공개 상영이 있었다. 토끼가 방아 찧는다고 믿는 신비의 달, 그 달에 이국의 사내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보려고 서울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유모차에 나를 태운 어머니도 그 대열에 끼어 비탈길을 올랐다. 내리쬐는 햇볕으로 이마가 따가웠다. 차양이 떨어져나간 유모차에 앉아, 나는 실눈을 뜨고 바퀴가 깨진 시멘트 덩어리 위를 지날 때마다 흔들리는 구름과 엉킨 전깃줄,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지붕들을 보았다. 내가 탄 유모차는 유엔센터 주방에서 일하는 옆집 아주머니를 통해 산 미제였다. 미군 중사의 아내가 쌍둥이를 키우기 위해 특수 제작했던 대형 유모차였는데 아이들이 다 커서 버리려고 내놓은 걸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여덟 살이나 되었지만 한 쪽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였다. 당시 내 또래들은 유엔센터 캬바레로 춤추러 오는 외국인이나 양공주들한테 택시를 잡아 주는 대가로 10센트씩 받곤 했는데, 나도 아버지 몰래 돈 벌러 나갔다가 하필 달려오는 택시에 부딪힌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유모차에 태워 날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했다. 친구들은 나를 이번엔 뻑큐 베베라 불렀다.  

아무튼 그날, 등에 여동생을 업고 유모차엔 다 큰 사내놈을 태운 데다 배까지 부른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마구 욕을 해대면서 힘겹게 비탈길을 올랐다. 내 덩치가 또래보다 작은 게 그 순간만은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어머니는 몹시 화나 있었다. 일요일인데도 아버지는 당직이라며 일찌감치 출근했고, 여동생은 미열이 나는지 하루 종일 어머니 빈 젖에 매달려 칭얼댔으며, 나는 빨리 광장에 데려가 달라고 악을 썼다. 웬만해서는 애들 놀림감이 되기 싫어 집에 처박혀 있었지만 그날만은 그럴 수 없었다.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광장으로 가는 길은 평소에 비해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길가 구멍가게는 발 디딜 틈도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전날 가게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던 과자며 빵, 사이다, 막걸리 등은 어느새 다 팔려나가고 없었고, 하물며 싸구려 뻥튀기조차 웃돈 주고도 사기 힘든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후 빛이 더욱 뜨겁게 마을을 달구었다. 광장에는 벌써 엄청난 수의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노란 어깨띠를 두른 질서요원들은 사람들에게 줄맞춰 앉으라고 연신 확성기로 떠들어댔다. 냉차 장수에 김밥 장수, 뽑기 장수들까지 고래고래 소리 질러 손님들을 불러댔으며, 광장 여기저기서 솜사탕과 색색가지 풍선을 파는 장수들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서울 시내 장사꾼이란 장사꾼은 다 모인 것 같았다. 광장은 온통 기대와 흥분, 뜻 모를 열정으로 가득 찬 거대한 소음덩어리였다. 마침 기계충을 앓고 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덕호가 솜사탕을 뜯어 먹으며 내 앞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덕호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냉차값 10원에 나를 떠넘기고는 아픈 동생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버렸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한 쌍이 되어 광장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거대한 소라 모양의 야외음악당엔 큰 광목천이 걸렸다. 오후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천은 바람에 육중하게 나부꼈다. 전기기사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워커발로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마이크와 영사기를 설치했다. 한순간 나는 이 다음에 크면 전기기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해질녘이 되자 광장은 사람들로 터져나갈 것 같았다. 우리는 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덕호가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군중 사이를 뚫고 행렬 바깥으로 나가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광장의 마른땅에선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사람들에게선 땀 냄새가 났다. 오줌을 누고 난 우리는 인파에 막혀 본래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해는 지고 야외음악당에 설치된 광목천 위로 어둠이 내렸다. 전기기사들이 낮동안 설치해놓은 영사기가 드르륵드르륵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미친 나비 같은 호기심이 퍼덕거렸다. 덕호와 나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안절부절못했지만 소용없었다. 덕호는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도저히 앞을 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덕호가 내 유모차 위로 올라와 나를 부축하고 섰다. 그러자 아무 장애물 없는 대형 화면이 온전히 보였다. 어디선가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십초 전이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입안이 다 바짝 말라왔다. 이윽고 눈앞에 황홀하고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우주선이 거대한 연기와 불기둥을 폭발적으로 내뿜은 뒤, 푸른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이어 잠시 뒤엔 우주복 차림의 암스테롱이 ‘고요의 바다’라 이름 붙인 달의 표면에 첫발을 내딛었다. 사막 같은 달 표면에 인류의 첫발자국이 도장처럼 선명히 새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우주인들은 풍선인형마냥 통, 통 튀어 올랐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광장을 채우던 모든 웅성거림은 물론 숨소리조차 사라졌다. 고요의 바다……. 달뿐 아니라 광장 역시 고요의 바다였다. 내 머릿속에서 발광하던 나비떼조차 날개를 접고 조용히 내려앉았다. 누군가 손뼉을 치기 시작했고, 이윽고 광장이 떠나가라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때, 유모차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내 몸뚱이 위로 덕호와 유모차, 그리고 낯모를 얼굴들이 덮쳤다. 의식이 들었을 땐, 병원이었다.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다. 눈썹 뼈 부위가 찢어져 일곱 바늘이나 꿰맸고, 금가 있던 다리뼈는 완전히 부러졌다고 했다. 그 일로 덕호는 내가 다 나을 때까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벌을 받아야 했다. 덕호와 나는 입만 열었다 하면 우주인 이야기를 했다. 장래 희망은 물론 우주인이었다. 미술시간이 되자 반 애들이 너나없이 우주선 타고 달나라에 가는 걸 그렸다. 덕호는 난생 처음 교내 과학상상 그리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는데, 담임선생님은 그 그림이 최우수상을 받지 못한 이유가 최첨단 우주선과 하늘을 나는 기차가 다니는 미래 도시에 헬리콥터가 끼어 있어서였다며 아쉬워했다. 그러자 덕호가 큰소리로 항의했다. “그건…… 골동품인데요.” 선생님도 아이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 당시 아이들은 누구나 다가올 이천년 대를 꿈꿨다. 어른들은 과학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미래를 살아갈 우리 세대의 삶을 축복해 주었다. 축복받은 세대……. 

“누가 알았겠어, 오늘날 우리가 이 꼴이 될 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맥주를 훌쩍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제 막 야간 조명을 켠 서울타워가 요염한 여배우 같은 자태로 밤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오래되어 식상하게 여겨지는 달도, 여전히 우리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서울타워 옆구리에 떠 있었다. 한때 어머니 뱃속에서 살았다는 증거물인 배꼽이 그렇듯이, 무익한 존재인양 여겨지는 달은 값싼 구리동전처럼 작고 희미했다.

“달 대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면서 살아왔나봐. 결국 이렇게 길을 잃고 말았어.”

힘없이 중얼대는 나를 지켜보던 덕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야야, 힘내, 임마. 혹시 너 저 달 갖고 싶냐?”

“무슨 소리야”

“그냥……, 내가 저 달을 따주려고 그러지, 킬킬.”

덕호는 무슨 말인가 꺼내려다 말고 허풍스레 웃었다.

   

관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참 떠들썩하던 사람들 시선이 일시에 나에게 쏠렸다. 몇 가닥의 귀밑머리로 겨우 대머리를 덮은 영감님이 금세 눈치를 채고 내게 다가왔다.

“내가 서가요. 이쪽은 새로 계약키로 한 사람이고.”

서 영감이 긴 코트 차림의 젊은 사내를 가리키며 인사시켰다. 젊은 사내와 내가 서로 통성명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애기 업은 여자가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서 영감에게 대들었다.

“우린 절대 안 나갈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여자가 바로 427호 세입자였다.

“제 안사람한테 듣기로는 계약이 만료된 지 꽤 됐다던데…….”

나는 좀 어리벙벙하게 행동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틈을 보여서야 어느 누가, 그것도 절박한 처지의 세입자라면 쉽게 포기하겠는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나는 점점 아기엄마의 하소연에 휘말려 들었다. 애들 아빠 장사도 잘 안 되고 물가가 올라서 그러잖아도 죽을 지경인데 이러기냐, 남의 사정도 봐가면서 살아야지, 하며 비난하다가 그래도 배우고 교양 있는 분이니 잘 이해하실 거라고 믿는다, 제발 봐 달라, 하고 애원하기도 했다. 젊은 여자가 생각보다 언변과 배짱이 있었다. 대책 없이 서 있는 내게 이번에는 새로 계약하려는 사내가 짜증스레 물었다.

“계약을 할 거요, 말 거요. 나도 바쁜 사람입니다.”

“글쎄, 애기엄마, 이제 와서 이러면 어떻게 해.”

서 영감은 가뜩이나 붉은 코를 심하게 실룩거렸다. 아기엄마 악쓰는 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자 등에 매달린 아기가 겁에 질려 삐죽삐죽 울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십만 원은커녕 오만 원도 올려 받기 힘들게 생겼으니, 딸 수진이 피아노 교습은 포기해야 할 거다. 나는 몹시 난감했다. 그때, 서 영감과 언성을 높이던 아기엄마가 멋모르고 뛰어노는 서너 살배기 큰 놈을 끌어당겨 내 앞에 들이댔다.

“이 애들 데리고 어쩌란 거예요,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나앉으란 거예요?”

여자가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눈을 내리깐 채 주먹을 풀지 않았다.

밤이 되자 탑은 더욱 현란한 빛으로 번뜩였다. 부질없는 높이에의 열망……. 이제는 동양에서 네 번째로 뒤쳐졌다는 서울타워를 뒤로 하고, 덕호와 함께 언덕길을 내려갔다. 끝내 더 받아낸 집세 십만 원이 머릿속에 돌처럼 자릴 잡고 짓눌러왔다. 맥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회현큐큐 간판 앞이었다. 푸르스름한 형광불빛이 새어나오는 유리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중년사내는 여전히 드륵, 드륵,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팔뚝은 아까보다도 더 단단하게 부풀어 보였다.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게 어떤 일이든지.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을 위해 따듯한 밥상을 마련하고 싶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회초리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던 샛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골목 입구에 있는 순대국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식당 구석에 켜진 텔레비전에선 중국인들이 만든 우주선 선저우 5호가 발사되는 장면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우주선은 엄청난 불기둥과 연기를 내뿜으며 마치 거대한 한 마리의 용처럼 푸른 하늘로 치솟았다. 중국인들은 미합중국의 암스트롱과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가가린을 대신해서 새로운 우주 영웅이 탄생했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하지만 내 심장은 점점 공포감으로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선저우 5호가 미사일이 되어 곧장 내 머리 위로 쿵,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한동안 숨을 죽였다.

그 옛날, 우리가 광장에서 본 아폴로 11호의 위업은 지구인 전체의 것이었다. 단지 미국인들만의 영광이 아닌, 인류 전체의 감격이자 환희였고, 축제였다. 하지만 이제 우주선 발사 장면은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지구 대기권 밖은 이미 강대국들이 쓰고 버린 인공위성들로 쓰레기장이 되어버렸고, 언제 그것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릴지 모르며, 미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우주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어서였다. 순대국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덕호가 말했다.

“제길, 이 땅 위에도 좁아터진 집 한 칸 없는데, 저 하늘마저 다 남의 거가 되어가는구나. 이러다 하늘 한번 볼 때마다 요금이 착착 올라가는 거 아냐?”

우리는 라이브 카페로 들어가 좀 더 술을 마시기로 했다. 나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무리였지만 어쩐지 독한 술이 먹고 싶었다. 위스키를 다섯 잔쯤 먹을 때까지 밴드는 노래를 쉬지 않고 불렀다. 긴 생머리에 반짝이는 보랏빛 눈화장을 한 여자는 드럼을 두들겨댔고, 작달막한 키에다 배까지 좀 나온 남자는 베이스기타를 가슴에 바짝 끌어안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연주했다. 리드기타를 어깨에 메고 시종일관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불러대는 털보는 아마추어 가수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사랑과 청춘, 낭만과 고독, 바다와 안개, 그리고 달과 별을 노래했다. 벽면에 걸린 대형 브로마이드 속에선 파도가, 잔잔한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와 모래사장 위로 엎어졌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만이 늙은이처럼 침묵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모든 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와이키키 해변에 있어야 할 가짜 야자나무가 그 바다 앞에 세워져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장식용 꼬마전구가 십초에 한 번씩 파랗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자 갑자기 야자나무가 날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을 야자나무에게 던졌다. 하지만 야자나무는 흠칫 놀랄 뿐 여전히 무슨 암시라도 내리듯이 깜빡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 때 덕호가 큰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야, 너 달세 타령 그만하고 달장사로 큰돈 한번 벌어볼래? 내 말 들어. 그깟 푼돈 가지고 이게 뭐냐? 큰돈 쥐게 해줄게.”

덕호는 입술에 침을 묻히고 나서 눈을 빛냈다.

“너 이거 아냐? 불가리아에선 지금 달 토지 1에이커에 40레바 받고 분양하고 있대. 우리 돈으로 치자면 그러니까, 이만 원 조금 넘지. 웃기냐? 웃기겠지. 너 같은 촌뜨기로선 당연하지. 헌데 부자들은 벌써부터 달나라 분양을 서두르고 있단 말이야. 깜짝 생일선물로 구입하기도 하지. 어쨌든 사는 순간부터 값이 뛴다고 보면 돼.”

놈이 취하긴 취했나 보다, 생각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웃기냐? 웃기겠지. 그러니까 너 같은 놈은 부자가 못 되는 거야. 발 빠른 대처, 이게 중요하다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리처드 닉슨 전(前) 미 대통령, 팝가수 마돈나, 미항공우주국의 간부들도 모두 달나라 토지 소유주야.”

참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싶어 껄껄 웃어댔지만 은근히 호기심이 일었다.

“아직도 웃기냐? 웃지 말고 들어, 임마. 혹시 너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1967년 유엔이 제정한 우주조약에, 모든 우주 자산은 국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라고 명시했지만, 특정인이나 회사에 대한 언급이 없어. 그래서 개인 소유권이 인정되는 거야.”

“그래서?”

난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은하계 정부의 최고경영자인 미국의 데니스 호프가 승인한 달 대사관이 전 세계에 수십 개가 있거든, 나중에 사무실에 가서 보여줄게. 근데, 우리 사무실 관장님이 다음 달에 국내 처음으로 달 대사관을 연다, 이거야. 그렇게만 되면 대박이 난다, 이거야. 사는 그 순간부터 돈이 굴러 들어오는 거지. 땅의 좌표와 달 대사관의 서명이 들어 있는 토지양도증서를 받게 되니까 염려 말아. 난 워낙 가진 게 없는 놈이라 조금밖에 투자를 못했지만, 넌 다르잖아. 퇴직금도 좀 있다면서?”

실내에 흐르던 음악이 일순 멈추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푸른 조명을 받은 덕호 얼굴이 낯설었다. 그의 얼굴은 파충류처럼 파랬고, 연신 입술을 핥아댔다. 얼마쯤 지나자 음악이 다시 연주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시끄러운 펑크 락이었다. 진한 청록색 액체가 덕호 입에서 흘러나와 턱을 적시고 흰 와이셔츠를 더럽히고, 양복바지 위에서 커다랗고 둥근 원을 그리다가 자줏빛 카펫 위로 떨어져 스며들었다. 뱀눈깔처럼 초록빛을 띤 그의 망막 속으로 유성 하나가 꼬리를 길게 흔들며 죽어갔다.《문장 웹진/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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