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화분



장주경


*


가장 높이 나는 흙이 가장 멀리 들어간다.

그 얘긴가?

창이 있는 쪽 장판 모서리를 따라 꺼멓게 먼지가 쌓인다. 벌써 사흘째다. 이중창을 꼭꼭 여며 닫고 잠금장치까지 걸어두었는데도 이상했다. 밤새 바람이 창문을 들썩이던 것을 잠결에 듣고 몇 번 깨어난 것이나 누군가 귓가에 알 수 없는 소리를 속삭이던 흉흉한 꿈을 꾸었던 기억은 있다. 아무리 바람이 거셌다고 해도 그렇다. 어떻게 틈 없이 꽉 맞물린 창을 그것도 이중의 새시를 비집고 이렇게 많은 흙먼지를 방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단 말인가. 희미한 모래흙 냄새가 난다. 단순한 먼지의 냄새가 아닌, 아주 먼데서 온 바람의 냄새는 마른, 옅은 흙의 냄새다.

이건 아무래도 사막의 음모라고 유민은 생각한다.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돌고 있다는 영구불변의 법칙을 이용한 사막의 음모가 틀림없다. 사막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도 무사히 모래를 날려 보낸다고 한다. 바람은 끊임없이 동쪽으로 불어오고 사막은 그 바람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전세계에 분유시키려는 것이다.

유민은 오른쪽 검지로 방바닥을 훑어 눈앞에 가져다 댄다. 성기게 뭉쳐진 섬유덩이 사이로 허연 각질과 미세하게 반짝이는 잿빛의 흙먼지가 보인다. 왼손 엄지와 검지로 섬유질 먼지를 떼어내고 창문 쪽으로 손가락을 올린 다음 이리저리 돌려본다. 방금 떨어낸 섬유질 먼지는 그가 깔고 덮고 자는 요와 이불, 아니면 벽걸이에 걸린 옷가지에서 나온 것이리라. 각질은 그의 피부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일 테고. 흙먼지 중에서도 일부는 밤새 고요해진 허공에서 중력에 의해 천천히 가라앉은 것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나머지다.

개중 입자가 큰 모래먼지는 아무래도 원래부터 창틈에 쌓여 있던 것일 확률이 높다. 골목을 지나는 트럭이 불러일으키고 겨울철의 삭풍이 몰아온 가까운 곳의 모래먼지 말이다. 도돌도돌한 입자가 보이는 이런 굵은 모래 말고 그 모래들의 배경에 엷게 깔린 흑갈색의 고운 입자들, 바로 이게 문제다. 언뜻 흑갈색으로 보이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금빛으로 빛나는 것도 있고, 날선 검은 조각들도 있다. 그렇다. 이것들은 근방에서 온 것이 아니고 아주 먼 곳에서 이 방안까지 들어온 것이다.


*


“화분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 직원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마침 자기 뒤를 지나가던 동료 직원을 돌아본다.

“뭐예요, 플라스틱인가요?”

뒤를 지나가는 길이긴 했지만 아까부터 유민과 직원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그 직원은 역시 묘하게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플라스틱이란 말에 희망을 건다는 듯한 어투로 되묻는다.

“아, 아뇨. 거의가, 헴, 흙으로 빚은…….”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걸려들어 유민은 말을 더듬는다. 가슴을 부풀려 깊이 심호흡을 한다. 목보다 아직은 아무런 통증이 없는 가슴이 더 불안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흙의 양은 생으로 사람을 매장할 만큼 많든가, 폐 속 깊이 침투하는 미세먼지처럼 극미량이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 질그릇 같은 거군요.”

실망의 빛을 감추지 않으면서, 그러나 역시 웃음을 띤 얼굴로 뒤에 선 직원이 말한다. 아까부터 유민이 이상하게 여기는 바지만 동사무소 직원들은 초지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웃음을 투과막으로 해서, 그러나 조금의 숨김없이 본래의 감정이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담당 직원은 종일 하릴없이 심심했는데 건수를 만나 반갑다는 표정을 처음부터 숨기지 않았다.

“네, 그런 종류들인데…….”

유민은 이사할 때 배출된 덩치 큰 쓰레기들에 딱지를 붙이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았다. 전화를 놓던 선반과 오디오 컴포넌트, 사무용 의자 두 개, 원목 책상 하나, 3인용 소파, 쌀통과 전자레인지 선반을 겸한 키 큰 수납장 하나. 아파트 내 재활용센터에서 받아가지 않는 큰 물건들에는 모조리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배출해야 했던 것이다. 누군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져가려니 생각하고 한 곳에 모아 놓았던 것인데 그건 유민의 오판이었다.

“요즘 누가 그런 물건을 가져가요? 중고 장사한테 거저 가져가라 해도 안 가져가는데. 운임 들여서 가져가봤자 사는 사람도 없대요.”

며칠 전까지 살던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서 연일 연락이 왔다. 예전에 이사 다닐 때는 묵인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안 그런 모양이었다. 직원은 일일이 대장을 확인해 유민에게 보여주며 친절하게 딱지를 발행해 주었다.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가 씌어진, 꼭 부적 같이 생긴 딱지였다. 모두 4만원 가량 계산을 하고 딱지를 받아 돌아 나오다 유민은 화분 생각이 났다. 스무 개가 넘는 그 화분들은 다 어쩔 것인가.

날씨 탓인지 동사무소 안은 괴괴할 정도로 조용하다. 으으으이이으으으이이. 전선에 바람 우는 소리가 들린다. 동사무소의 삼면을 둘러친 납빛의 창이 들썩거린다. 그 창 너머로 전깃줄이 보인다. 밤새 유민의 귓가를 어지럽히던 소리도 저 소리를 닮아 있다. 결국 바람이 전선을 울리는 단순한 물리적 소리였을 뿐이었나.

전깃줄은 바람의 통역사처럼 끊임없이 바람의 소리를 풀어내고 있다. 때로는 후휘휙, 때로는 우우우우, 으으으이이……. 그러나 전깃줄이 풀어낸 바람의 소리 역시 인간에게는 또 다른 외국어일 뿐,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밤새 귓가에 들리던 소리는 지금 듣고 있는 바람 소리는 아니었다. 그건 분명 인간의 언어로 된 소리였다. 유민의 무의식이, 전선이 풀어준 바람 소리를 다시 한번 인간의 언어로 통역해 준 소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였더라. 유민에게는 늘 그랬듯 꿈을 꾸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 그 내용은 떠오르지 않는다.

“기본이 삼천오백 원이거든요. 규정상 묶어서 한꺼번에는 붙일 수 없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스무 개나 되는 화분에 일일이 삼천오백 원짜리를 붙일 수도 없잖아요.”

“그럼. 돈이 얼마야?”

“화분이 대형 폐기물도 아니고 말예요.”

“그렇죠. 그렇다고 소형도 아니고 말이죠.”

무척 흥미롭다는 듯, 그리고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두 직원은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별 수 없어요!” 마침내 뒤에 서 있던 직원이 단언했다.

“어떻게?” 

유민보다 더 깊은 관심을 나타내며 앞에 앉은 동료가 물었다.

“제 말대로 하세요. 흙은 부숴서 전부 잔디밭에 버리는 겁니다. 죽은 거죠?”

“네.” 

유민은 대답했다.

“그럼 됐네 뭐. 화분은 화단에서 굵은 돌을 하나 구해서 깨부수세요. 너무 크게 깨면 부피가 커지니까 잘게 부수는 거예요. 어때요?”

“아하, 그 다음에 종량제 봉투를 하나 사다가 거기 담아서 배출하면 되겠네요.”

두 직원은 서로를 돌아보며 만족한 미소를 교환했다.


*


유민이 처음으로 화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년 전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유민은 난생 처음으로 5개나 되는 화분을 한꺼번에 선물로 받았다.

“야, 이건 선물이 아니라 짐이다, 짐.”

주로 여자 동창들이 집들이 선물로 사 가지고 온 화분을 받아든 유민의 입에서는 신음처럼 이 말이 새어나왔다. 집들이 선물로 무조건 세제 아니면 휴지, 화분을 떠올리는 것은 상상력의 부족이었다. 액자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만 그조차 취향이 다를 땐 뒷날 처치 곤란이 되는 법. 별나게 선물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열댓 명의 동창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그 중 삼분의 일은 빈손으로, 삼분의 일은 세제와 휴지 종류를, 나머지 삼분의 일은 화분을 들고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유민은 왠지 맥이 빠졌다. 난생 처음으로 생긴 ‘내 집’에, 그것도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버젓이 등기권리증을 갖게 된 신축 아파트에 친구들이 고작 그런 것들을 가져오다니.

“너는 운이 좋은 놈이니까, 평생 집구석에 앉아서 코나 풀고 똥이나 닦으면서 살 수 있을 거야.”

훗날 유민과 동업을 하게 될, 24평이니까 24롤짜리 휴지를 사 왔다는 한 녀석이 말했다. 그는 유민보다 더 운이 좋아서 그때 벌써 개인 사업을 크게 시작하고 있었다. 농조로 흘리는 친구의 악담이 그다지 듣기 싫지 않았다. 세제와 휴지는 그런 대로 봐줄 만한데 화분이 문제였다. 약속 시간에 맞춰 속속 도착하는 동창들이 유민에게 화분을 하나씩 안길 때마다 어깨에 돌덩이가 하나씩 매달리는 기분이었다.

“야, 선물 받고 나서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이건 어째 부담스럽다. 뭐 꽃이야 나쁘진 않지만 집안에 흙이 들어오는 것도 싫고, 하하.”

동창들이 거실 곳곳에 아무렇게나 배치해 놓은 화분들을 보면서 유민은 말했다. 근처 중국집에서 시킨 요리 몇 접시와 미리 사 둔 맥주 박스를 풀어 거나한 술판을 벌였다. 술자리는 유쾌했고 유민은 많이 취했다.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상을 당해 상속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유민은 아버지로부터 훗날 받게 될 자기 몫의 재산을 분할 받았다. 부모가 살아온 것처럼 절약과 저축으로 이 생애를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유민의 것이 될 거라면 미리 배분을 받아 마라톤의 출발선상에서 한 발 앞서 달리고 싶었다. 절약과 저축의 화신이던 모친이 병을 얻어 죽고 난 스무 살 무렵부터 유민은 부친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유민은 취업과 동시에 독립을 선언했고 그때 부친은 동생 몫으로 얼마를 남기고 나머지를 유민에게 떼어주었다.

“꽃은 보지만 흙은 싫다? 무슨 그런 궤변이 다 있어? 암말 말고 내가 준 건 잘 키워야 돼.”

씨를 받아서 키운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 씨를 자기 엄마가 받은 것이라 그게 귤이 될지 오렌지가 될지 낑깡이 될지는 모른다면서, 하지만 그 셋 중에 하나는 확실하다고 주장하면서 여자 동창 하나가 말했다. 유민은 건성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두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작은 화분에 반 뼘밖에 되지 않는 작은 키, 짙은 초록의 잎이 반짝이는 식물이었다. 귤? 오렌지? 낑깡? 아무 느낌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가져온 화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꽃 종류였는데, 저마다 화원에서 들은 대로 키우는 방법에 대해 한 마디씩 했지만 유민은 듣고 이내 잊어버렸다. 그때 유민은 거실만큼은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일박이일의 거창한 집들이가 끝나고 다음날 아침까지 남아 있던 친구들도 모두 돌아가고 난 일요일 오후, 유민은 화분들을 들어내어 모조리 베란다 한 구석으로 몰아놓았다.


*


유민에게는 병아리를 키워 본 것이 살아 있는 것을 키워 본 유일한 기억이었다. 우연이었겠지만 그때 키우던 병아리는 여름이 다 되도록 죽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키우던 병아리들처럼 며칠 혹은 몇 주 내로 죽어주질 않은 것이다. 일찍 죽어서 집 근처 화단에 묻어주고 일기장에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서 슬펐다, 라고 써야 했는데 말이다. 병아리는 중닭이 되었고 더 이상 라면박스 안에다 놓고 키울 수가 없었다. 중닭은 고약한 냄새를 풍겼고 수탉임에 분명한 징그러운 볏이 나온 데다 꼬꼬댁거리며 종일 이상한 소리를 냈으며 툭하면 활개를 쳐서 라면박스를 뛰어넘었다. 초복이 가까울 무렵 유민의 가족은 생전 안 하던 가족회의를 열었다. 결국 그 중닭은 잡아먹기로 결정되었다. 동생은 울었지만 유민은 울지 않았다. 유민의 부친이 화장실에서 닭을 잡고 모친이 백숙을 끓여냈다. 유민은 라면 박스 안에 담겨 있던 중닭을 떠올리며 노란 국물 속에서 건져낸 연한 닭다리를 뜯었다.

시장에서 사온 닭은 그렇지 않았는데 키워서 잡아먹은 닭은 먹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이 났다. 그래서 유민은 다시는 동물을 사오지 마라고 동생을 협박했다. 하지만 이듬해, 동생은 어디서 났는지 개구리 알을 가지고 들어왔다. 동생이 없을 때 유민은 유리컵에 담긴 개구리 알을 변기에 부어 물을 내렸다. 까만 씨 박힌 포도 봉봉처럼 생긴 개구리 알들은 전에 잡아먹은 닭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지도 않은 채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친구가 준 거라며 동생이 햄스터 한 마리를 가지고 왔을 때는 솔직히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눈을 꼭 감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햄스터를 보고 있노라니 전에 키우던 병아리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키워봤자. 유민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유민의 부친이 그들 형제들에게 입버릇처럼 내뱉곤 하던 말이었다. 아직 어려서 ‘어차피 키워봤자’라는 게 뭔지를 모르는 동생에게 화가 치밀었다. 동생이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동물을 처치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 되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없을 때 유민은 몰래 햄스터를 가져다가 하수구에 빠뜨렸다. 햄스터도 일종의 쥐니까 그곳에 놓아주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억지로 믿으면서. 몇 번 더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동생도 더 이상 생물을 사오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을 키워본 기억은 병아리로 끝이 나지만 사실 유민의 집에는 키우지 않아도 잘 자라나 유민과 함께 살아왔던 생물들이 많았다. 서민 아파트와 연립 반지하를 전전하던 성장기 내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바퀴벌레와 장판을 들추면 구들 속에 커다란 성을 짓고 살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믿게 한 붉은개미 떼,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화장실 타일 틈을 따라 피어나던 곰팡이, 쥐며느리와 노래기는 물론이고, 장롱과 서랍장까지 들어와 옷감을 갉아먹고 하얗게 죽어 있던 쥐새끼들까지. ‘키워 봤자’인 생물들과는 달리 그놈들은 아무리 때려잡고 약을 뿌려도 줄어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유민의 가족들은 아예 신경을 끊었다. ‘잡아 봤자’인 그놈들은 모든 식구들의 의도적인 외면 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언젠가, 애완용 강아지를 풀어놓고 관상용 식물도 심어놓을 수 있는 아담한 정원과 수족관을 들이고 고급 난(蘭) 화분으로 장식할 거실 딸린 큰 집을 갖기 위해 유민의 가족들은 근 이십 년을 그렇게 원치 않는 미물들과 함께, 그들에 의해 식량과 가재도구들을 조금씩 갉아 먹혀 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로부터 불과 몇 년 사이, 유민은 그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가.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이라고나 할까. 완전한 이식이라고나 할까. 유민은 이제 그 이전의 척박한 토양으로부터 스스로 뿌리를 뽑아 평안하고 풍요로운 대지에 새로 뿌리를 내린 것만 같았다.

‘그래, 동물을 사오지 않은 게 어디야. 내가 돈이 많아서 단독주택이라도 한 채 샀더라면 걔들은 분명 애완용 악어를 사들고 왔을 걸.’

종종 베란다를 나갈 때, 한쪽 구석에 몰려 있는 다섯 개의 화분을 보면서 유민은 혼자 웃곤 했다. 화분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소한 쟤들은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잖아.’


*


우연이었겠지만 유민이 받은 화분 다섯 개는 한 계절을 넘기고도 모두 멀쩡했다. 이상했다. 한두 달 물을 주는 척하다 말라 죽으면 그걸 선물한 동창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야, 화분이 죽어서 나 되게 슬펐다, 낄낄.”

유민에게 최초의 놀라움을 선사한 것은 재스민이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당기던 유민은 문을 닫지 못한 채로 우뚝 제자리에 섰다. 낌새가 수상했다. 누군가 집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유민의 피부에 뭔가 전과 다른 기운이 감겨들었다. 그 다음이 냄새였다. 유민 외에는 거의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다. 따라서 그가 현관문에서 맡게 되는 냄새는 실내 공기 속에 갇힌 자기 자신의 냄새 외에는 없어야 옳았다. 여자가 다녀간 다음에도 반드시 하루를 넘기기 전에 집 안을 청소하던 유민이었다. 물론 헤어진 후에야 발견하는 사실이지만 그는 체취가 강한 여자와는 오래 사귀지 못했다. 마약을 발견한 마약견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현관을 들어섰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유민의 이성은 이미 집 안에는 아무도 없으며 누군가 다녀간 흔적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도둑이 아니라면 누군가 다녀갈 수도 없음을 그에게 인지시켰다.

거실에 불을 켜자 말끔히 정돈된 실내가 보였다. 유민은 베란다로 통하는 통유리 문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거실 불빛에 비춰 희미하게 내다보이는 베란다, 왼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화분들이 보였다. 유리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먼지가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늘 닫아 놓던 유리문이었다. 진한 냄새가 확 밀려들어왔다. 텁텁한 듯하면서도 청량하고 청량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지린 냄새였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유민은 베란다로 나갔다. 지난 번 물을 줄 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연보라 꽃 서너 개가 보였다. 재스민이라고 했나. 연두색 작은 꽃망울이 맺힌 싱싱한 화분을 전해주던 동창의 얼굴이 퍼뜩 떠올랐다.

“이거 재밌는걸.”

자신이 어떤 향기에 매력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유민은 재스민 앞에 오래도록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유민은 퇴근을 할 때면 주인 없는 집을 가득 메우고 있을 재스민 향에 대해 생각했다. 재스민은 보라색으로 피었다가 하얗게 변해 떨어졌다. 재스민은 한 달이 넘도록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향을 뿜었다. 이제 유민은 출근할 때,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어 놓았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사이 청색 유기 화분에 담겨 있던 영산홍은 꽃이 지고 잎들이 무성해졌다. 향기는 없으면서 진보라 꽃잎이 되바라져, 곱게 화장한 채 관 속에 누운 서양 여자의 성기 같다고 생각했던 양란은, 꽃이 시들자 두터운 이파리에 윤기가 흘렀다. 잔디인형 같던 아이비는 이제 치렁치렁 넝쿨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낑깡인지 오렌지인지 귤인지는 금속성에 가까운 광택을 뽐내며 처음보다 두 배나 커져 있었다. 화분은 자라면 자랄수록 처치 곤란인 병아리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 설사 죽는다고 하더라도 화분의 경우라면 뭐가 그리 처치 곤란이겠는가.

재스민이 다 떨어지고 나자 집안에서 감돌던 향기도 사라졌다. 초여름. 유민은 난생 처음으로 화분을 하나 샀다. 이제 꽃이 한창 피고 있는 치자 화분이었다. 재스민과는 향이 완전히 다른, 전혀 반대된다고 해야 할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꽃이었다. 여자에게도 이런 냄새가 난다면 오래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하며 웃었다. 초가을에는 국화 화분도 하나 샀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유민의 베란다에는 흰색의 삼단 선반 위로 열 개나 되는 화분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


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발견하는 데 일년이 걸린 셈이었다. 물만 주었을 뿐인데도 화분이 죽지 않고 번성한 이유나, 이제 일년이 지난 마당에 화분들이 하나같이 말라 가는 이유, 그 모두가 흙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스민은 겨우내 잎을 다 떨어뜨리더니 급기야는 가지가 노랗게 말라서 똑똑 부러졌다. 치자 역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완전히 말라서 죽어버렸다. 양란은 딱 두 장의 이파리만 남기고 시들었는데 그나마 얼었다 녹은 생선처럼 흐느적거렸다. 치렁치렁하게 늘어지던 아이비는 가장자리에 있는 잎들부터 마르기 시작해서 중앙 쪽을 압박하고 있었고, 봄이 되자 새순이 올라온 국화는 맥없이 옆으로 픽픽 스러졌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은 오렌지인지 뭔지 하는 화분 하나뿐이었는데 그나마 키만 삐죽이 컸지 옆으로 퍼지지를 않았다. 다른 화분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분갈이를 해줘야지. 부식토도 좀 주고. 저쪽 동산에 좋은 흙 많아요. 퍼다가 옮겨 심으면 되잖우. 우리 집에서 파는 부식토도 적당히 섞고.”

아파트 뒤편에 꾸며진 화단은 꽤나 널찍한 동산을 이루며 야산과 이어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앞 화원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메타세콰이어와 철쭉, 자작나무 등이 심겨진 그 동산 응달진 곳에는 흙이 축축하고 나뭇잎이 많이 썩어 있어 거름흙으로 좋다는 것이었다. 모종삽으로 땅을 파자 축축하고 검붉은 흙이 나왔다. 황토에 나뭇잎이 썩어서 이루어진 부식토였다. 유민은 가급적 흙에 손을 대지 않고 비닐 봉투 가득 흙을 퍼 담았다. 흙 없이 식물을 키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로 유민은 매년 봄, 야산의 흙을 퍼 와서 분갈이를 했다. 유민의 베란다에는 화분이 스무 개 가량으로 늘어났고 화분 선반도 긴 것으로 바뀌어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그때는 유민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4롤짜리 두루마리 휴지를 선물했던 동창과 동업을 시작하려던 무렵이었다. 이제 유민은 긴 화분 선반을 놓아버리자 빨래 건조대 하나 놓을 곳 없는 좁은 베란다, 아니 그렇게 작은 베란다가 딸린 ‘서민 아파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아침.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화분이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세수를 마치고 얼굴을 닦으며 거실로 나온 유민은 습관적으로 베란다 창을 내다보았다. 바깥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분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차가우리만치 깔끔한 거실과 베란다의 넘칠 듯한 초록이 대조를 이루는 이 풍경을 유민은 얼마나 좋아했던가. 크림색 소파 뒷벽에 걸린 액자는 모서리가 날카로운 은색 알루미늄 틀에 끼운 고흐의 「측백나무」였다. 측백나무 두 그루가 말 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이 모조화는 유민의 옛날 여자 친구 중 하나가 선물한 것이다. 선물로 받은 액자들은 대부분 버렸지만 유민은 이것만큼은 아꼈다. 은색의 날카로운 알루미늄 틀은 이 그림 속, 동물 같은 욕정을 품은 듯한 나무들이 액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듯했다. 거실 새시문의 흰색 틀 속으로 보이는 화분들의 풍경 같기도 하고, 화분 속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 아니 식물이 자라고 있는 화분 그 자체 같기도 했다.

수건은 어깨에 걸친 채로 유민은 베란다로 통하는 통유리 문을 열었다. 늘 그랬듯 유민의 어깨를 확 밀어내는 듯한 냄새. 스무 개의 식물들이 각기 내뿜은 냄새들이 합쳐진 그 냄새는 시큼하면서 저릿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여자의 냄새를 닮았다. 베란다로 나가기 위해 슬리퍼를 신으려는 순간, 유민은 자기도 모르게 거실 안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마치 자신의 몸에 붙은 것을 떨어내기라도 하듯 진저리를 치면서.

동향의 베란다는 그 시각, 쏟아 붓는 듯한 햇살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화분의 실루엣은 과장된 제스처로 유민에게 다가왔다. 유민의 시력은 안경을 끼기에는 너무 좋고 안 끼기에는 조금 나빴다. 화분들의 침입을 눈을 부릅뜸으로써 막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유민은 꼼짝없이 제자리에 서서 화분을 노려보았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기실 그렇게 눈을 크게 떠서는 작은 사물들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법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아주 가늘게 눈을 뜨고 화분들을 노려보았다. 조리개를 잘못 맞춘 카메라처럼 화분들의 윤곽은 선명해지려다 말고, 선명해지려다 말고, 했다.

비 온 다음날 흙을 퍼서 분갈이를 해준 일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화분의 몸통과 화분 선반, 그리고 베란다의 타일 바닥, 위층과 이어진 회색 플라스틱 물통 아래, 수챗구멍 부근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분갈이 하던 날 아스팔트에 죽어 있던 지렁이를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화분 주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들은 지렁이였다. 평생을 흙 속에서 흙을 파먹고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어쩜 흙 그 자체로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지렁이들 말이다.

어떻게 한두 마리도 아니고 어림잡아 열댓 마리는 될 법한 지렁이들이 한꺼번에 화분을 기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비로소 유민은 베란다 유리문을 닫고 부엌 싱크대로 걸어갔다. 거기서 나무젓가락과 비닐 봉투를 꺼내 들고는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유민은 기어 나온 지렁이를 젓가락으로 잡아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분갈이를 해준 화분을 모조리 내려놓고 젓가락으로 흙을 파서 지렁이를 잡았다. 출근 시간은 조금 늦어졌고 유민은 아침을 걸렀다. 유민은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 잠금 장치를 걸고 지렁이를 담은 검은 비닐봉투를 든 채 현관을 나섰다.


*


사막이 주는 모래 세례를 맞으며 유민은 걸어간다. 죽기 전까지는 철저히, 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안된 인체 속으로, 그것을 고안해낸 조물주를 비웃듯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을 흙먼지라니……. 내 몸은 영원한 죽음이니 내 몸을 먹는 자마다 영원히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라. 사흘 내내 전선을 울리며 바람이 하고 있는 소리는 어쩌면 그 소리인지도 몰랐다.

유민은 관리사무소를 지나 놀이터를 끼고 완만한 경사의 보도를 따라 올라간다. 며칠 전까지 유민이 살았던 아파트지만 난생 처음으로 와보는 곳 같다. 이제 막 싹이 돋기 시작한 가로수 잎들이 누리끼리하다. 하늘은 노랗고 태양은 잿빛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얼마 전 푸른 태양이 떴다고 한다. 그날 아침 그곳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아이들은 학교에서 노란 하늘에 푸른 태양이 떠 있는 풍경화를 그리고, 노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난생 처음 본 풍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테지.

짐들은 이사를 하던 날 내려놓은 그대로 화단의 잔디밭에 놓여 있다. 유민은 잔디밭에 가방을 내려놓고 동사무소에서 받아온 딱지를 꺼낸 후 짐 앞에 선다.

전화를 놓던 작은 선반, 흰색과 갈색의 엠디에프로 된 그것은 작지만 흠 하나 없이 정갈하던 비싼 물건이었다. 연번 제 23-09, 황사 먼지를 맞아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는 작은 선반, 폐기물관리조례에 의거 너에게 3,500원짜리 딱지를 하나 주노라. 백화점 세일 기간에 12개월 할부로 샀던 오디오 컴포넌트, 그것은 단지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버려졌는데, 설마하니 이런 물건을 안 집어갈까, 하고 유민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는 유행이 지나버린, 두 개의 카세트 플레이어 한쪽만 망가지고 나머지는 멀쩡한 커다란 오디오 컴포넌트, 너에게는 1만 2,000원짜리 딱지를 주노라. 가로 1미터 80, 폭이 1미터인 커다란 원목 책상, 컴퓨터와 프린터를 올리고 책꽂이 작은 것과 스탠드, 서류박스 서너 개를 올리고도 공간이 남던 원목 책상, 유민이 가진 물건 중 유일하게 원목 제품이던 그 책상, 너에게는 1만 원짜리 딱지를 주노라. 그리고 이 커다란 책상에 딸려 있던 사무용 의자 두 개에도 각각 3,500원짜리 딱지를 주노라. 크림색 가죽 소파, 밤색의 흔한 물소 가죽보다 월등히 비쌌지만 서슴없이 현금을 주고 골랐던, 그러나 지금 본래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백발의 노인처럼 버려진 소파, 너에게는 오디오와 같은 1만 2,000원짜리 딱지를 주노라.

쌀통과 전자레인지 선반을 겸한 키 큰 수납장 앞에서 유민은 잠시 동작을 멈춘다. 집을 샀을 때 가구점에서 직접 짜 맞춘 수납장이다. 지난 일년 간 이 쌀통에는 쌀이 그득했지만 유민은 매일 굶었다. 장마철에 쌀벌레가 슬어서 부엌 벽과 천장을 기어 다녀도 그대로 두었다. 유민은 늘 배가 고팠다. 어쩌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냉장고를 가득 채울 만큼의 먹을거리를 사들고 들어왔지만 냉장고에 들어간 것은 유통기한을 넘긴 채 쉬어갔고 들어가지 않은 것들은 포장이 뜯긴 채 그대로 썩어갔다. 그는 굶었고, 굶었기 때문에 쓰레기는 더욱 넘쳐났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보다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음식이 더 많았다. 그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고 설사 밖을 나간다 하더라도 너무 많아진 쓰레기를 들고 나가기가 싫었다. 어쩌면 집이 팔리고 반지하 월세 원룸으로 내몰린 것이 쓰레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행한 일인지도 몰랐다. 적어도 좁은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이었으니까. 아무튼, 유민은 한숨을 깊이 쉰다. 자신 역시 이제, 얼마든지 먹을 만하지만 버려져 썩고 있는 음식쓰레기, 아직 멀쩡하지만 아무도 써주지 않기 때문에 버려진 대형 폐기물, 버리기 위해서라도 돈을 들여 부적 같은 딱지를 붙여야 하는 덩치 큰 쓰레기에 불과한 게 아닌가.

며칠 전까지 살았던 이 아파트로 처음 이사를 왔을 그 때는 자신의 삶이 영원히 이식되었다고 믿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이식이 아니라 단지 조금 더 넒은 화분으로의 분갈이였을 뿐이다. 이년 전 동창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온몸에 스멀스멀 쾌감이 기어오르며 마침내 어깻죽지에 날개가 돋아 좁은 땅을 박차고 수직으로 날아오르는 희열을 느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직장으로부터 독립하여 ‘내 사업체’를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었던가. 하지만 그것은 단지 다른 화분, 그것도 더 작은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기 위한 한시적인 뿌리 뽑힘에 지나지 않았다. 대출을 위해 담보로 잡혀 있던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고, 이년 동안 동업하던 동창과는 결국 절교를 했다.

그래, 아무튼, 나를 닮은 키 큰 수납장, 너에게는 7,000원짜리 딱지를 주노라.


*


화분들은 방금 전 딱지를 붙인 짐들 옆에 소복이 몰려 있다. 여름 휴가철에 버려진 프랑스 애완견들처럼. 유민은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꺼내 날아가지 않도록 가방으로 눌러놓고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는다. 바짝 엎드린 누런 잔디 사이로 뾰족한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유민은 먼저 화초는 없고 흙만 담긴 화분부터 분리하기 시작한다. 화분을 거꾸로 뒤집어 땅에 엎은 뒤 바닥을 툭툭 치자 속에 있던 흙이 쏟아져 나온다. 화분과 꼭 같은 모양의 흙덩어리가 쏙 빠져나오는 것도 있고 여러 덩이로 깨져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민은 쏟아져 나온 흙덩이를 발로 밟아 부순다. 허연 흙먼지를 날리며 덩어리들은 쉽게 부서진다. 땅에 부서진 흙 위로 하늘에서 내려온 흙먼지가 휘날린다. 한반도 전역에 깔린 고운 황토층도 본래는 저 하늘에서 내려온 흙이 수만 년 간 쌓여서 된 것이라고 한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온 흙과 화분에 담겨 잠시 땅을 떠났던 흙, 그리고 원래 먼 곳에서 와서 오랫동안 쌓인 흙이 여기서 다시 한 몸이 되고 있다.

열 개 정도의 화분을 흙과 화분으로 분리한 유민은 이제 죽은 식물이 담긴 화분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바짝 말라 밑동만 남은 식물도 있고, 아직 작은 가지들까지 온전한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들도 있다. 우선 밑동만 남은 식물들을 흙에서 뽑아 잘게 분질러 잔디밭에 뿌린다. 뿌리는 완전히 삭아서 아주 쉽게 뽑힌다. 그리고 화분을 엎어 흙을 떨어내어 발로 부수고 화분은 옆에 따로 둔다. 부서져 흙 위로 떨어진 나뭇가지들도 이제 얼마 후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처음으로 황사를 날려 보낸 곳, 황사의 어머니 땅은 본래 낙엽송과 자작나무,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썩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 유민이 분질러 땅에 뿌린 나무들의 잔해들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아주 먼 어머니 땅에서 온 흙, 아니 어머니 식물로부터 온 흙을, 곧 식물인 자기 자신을 먹고 살았던 것이며, 이제 죽은 후 그들은 어머니 땅에서 온 흙, 아니 어머니 땅의 식물 그 자체의 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화분 속의 식물들은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며, 모든 것은 흙의 승리, 결국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렌지인지 낑깡인지 귤인지, 결국 그 열매를 보지 못한 채 말라죽은 커다란 식물과 재작년에 새로,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샀던 치자 분재와, 가장 오랫동안 살아 있던 재스민, 이렇게 세 개뿐이다. 가슴이 따끔거리면서 기침이 나온다. 밤낮 없이 계속된 황사가 유민의 폐 속에 미량의 흙을 집어넣기 시작한 지 사흘째. 오는 길에 택시 안에서 들었던 뉴스가 귓속을 맴돈다. 전세계의 사막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침을 삼켜 기침을 눌러 참으며 유민은 오렌지인지 뭔지를 뽑아낸다. 문득 라디오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밤새 귓가에서 속삭이던 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소식을 알리는 듯한 다급하고 달뜬 남자 앵커의 목소리. 그러나 그게 다다. 대체 그 목소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결국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까지 가지에 매달려 있던 무수한 마른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부피가 큰 식물이었으므로 잔해도 많다. 유민은 천천히 가지를 분질러 이리저리 흩어놓고 마른 잎들은 꼭꼭 밟아 짓이긴다.

아무래도 재스민에는 미련이 남기 때문에 치자 분재부터 처리하기로 한다. 향기 때문에, 죽으면 반드시 다시 사오곤 하던 치자였다. 철사를 감아 모양을 낸 분재를 샀던 것은, 보통의 치자 화분은 향은 좋지만 나뭇잎과 가지가 이루는 형상이 너무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단 하나의 가지도 남기지 않고 은색의 철사 줄에 철저하게 감긴 치자 분재는, 스스로를 죽이고 싶은 욕망으로 발목부터 쇠줄을 칭칭 감아 올린 인간을 연상시킨다. 다이어트 하다 말라죽은 인간 같기도 하고 성형 수술 후유증으로 죽은 인간 같기도 하다. 지나친 절약과 절제로 너무 일찍 병을 얻어 죽어간 모친 같기도 하다. 비싼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을 하다 죽었건 너무 싸구려로 살다 죽었건 그 두 죽음은 비슷해 보인다. 스스로를 칭칭 감아 올려 비썩 말라 죽었다는 그 점에서 말이다. 손만 대도 부스스 부서지는 가지와 힘을 주어 풀어내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 철사를 유민은 모조리 분리해낸다. 꼬불꼬불 라면처럼 풀어진 철사는 재활용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아파트 내의 재활용 센터 박스 안에 넣어 놓으면 될 것이다. 흙보다도 가벼운, 재활용을 할 수 없는 속 빈 치자 가지는 벌써 바람에 뒹굴며 잔디밭 위로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다.

지난 이년 사이 유민이 가진 화분의 대부분이 죽었지만 재스민만은 여름까지 꽃을 피우고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재스민이 아니었다면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은 진작 그만두었을 것이다. 지난 늦가을, 재스민마저 잎을 떨어뜨리고 나자 유민은 베란다 유리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화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확인사살을 하는 심정으로 유민은 이 겨울이 다 지나면 마지막까지 생명이 붙어 있던 것들도 모조리, 완전히, 죽어주기를 바랐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것이어서인지 재스민은 쉽게 뽑혀 올라오지 않았다. 지난 넉 달 동안 물을 주지 않았고 이년 동안은 분갈이도 해주지 않았던 화분. 재스민은 그 이년 동안 희박한 물과 좁은 공간, 그리고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로 여러 번 죽음의 위협을 당했고, 이제는 완전히 죽은 모습으로 유민의 손에 들려 있다. 오렌지인지 뭔지처럼 무겁지가 않았기 때문에 유민은 왼손에는 화분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재스민을 잡고 힘을 주어 뽑아낸다. 몇 번 해보다 안 되자 화분을 땅에 툭툭 쳐서 속에 든 흙을 헐겁게 만들어서 다시 뽑는다. 마침내 재스민이 쑥 뽑혀 나온다.

진저리를 치며 유민은 뽑혀진 재스민을 힘껏 멀리 던진다. 뭔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지렁이는 아니었다. 첫 느낌은 오히려 구더기 떼에 가까웠다. 아니 구더기보다 더 가늘고 기다란 유충의 덩어리였다. 찰나였지만, 언젠가 TV에서 본 간흡충, 유구낭미충, 스파르가눔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이나 간 속에 산다는 가느다란 기생충의 덩어리 같기도 했다. 아니었다. 유민은 비로소 그것이 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재스민을 뽑아내자 화분 속에서 나온 것은 ‘재스민의 뿌리와 흙덩어리’가 아니라, 오직 재스민의 뿌리로만 된 덩어리였다. 유민은 그 덩어리로 다가간다. 화분의 모양과 똑같이, 위로 넓어지는 원기둥 모양의 뿌리 덩어리다. 그런데 어째 그 덩어리는 살아 있는 것 같다. 유민은 손으로 그것을 만져본다. 물을 준 지 넉 달이 넘은 화분. 촉촉하다. 보드라우면서도 단단하다. 차갑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따스하다. 자세히 보니 흙도 조금은 붙어 있다. 허파꽈리에 붙은 미세먼지처럼, 하얗고 가느다란 뿌리의 덩어리에 먼지처럼 드물게 끼얹어져 있다.

아, 뿌리가 흙을, 먹어버린 것이다. 사막의 음모를 먹어버린 것이다.

유민은 화분이, 처음으로 진짜,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문장 웹진/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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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바람

오랜만에 치밀한 소설 한편을 읽었습니다. 작중 인물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작가의 내공이 대단합니다. 변두리 삶의 비애를 이토록 침착하게 따라붙는 소설을 읽은 게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 소설이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이 아니라는 생각. 파편화된 삶의 무늬를 더 끈질기게 추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최근 장편소설 [농담이 사는 집]의 감동이 우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