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윤이형


1


말 한 마리가 지나갔다. 갈색 말이었다.

인천에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 후배를 근무 예정지인 M사에 태워다주는 길이었다. 박촌역 근처에 접어들면서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인천 가구마트 앞 삼거리에서 신호등에 걸렸다. 벌써 9월 중순이었지만 오후 두시 반의 공기는 여전히 텁텁하고 끈적끈적했다. 말은 우리 차 바로 곁을 스쳐, 중앙선을 밟으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안장도 얹히지 않고 기수도 타고 있지 않았다. 사차선 도로에 열을 지어 선 차들의 창문이 하나둘씩 열리고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도심 한복판에 난데없이 나타나 걸어가는 말을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한두 마디씩 내뱉었다. 의아함과 즐거움이 뒤범벅된 탄성들이었다. 하지만 말은 뭔가 바쁜 일이 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그냥 뒤쪽으로 사라졌다.

“선배, 봤어요? 봤죠? 뭐지? 시내 한복판에 웬, 말?”

“이 근처에 승마장이 있다더라. 아마 도망쳐 나온 모양이지.”

M사에는 전에도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인천 시내 지리는 어느 정도 꿰고 있었다. 하지만 후배는 내 그런 설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을 꾹 다물고 졸다 깨다 하던 녀석은, 조수석에서 몸을 비틀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연신 감탄어린 문장을 쏟아냈다. 아아, 그렇구나. 어떻게 안 잡히고 여기까지 용케 나왔네. 승마장이면 산 근처에 있는 거 아니에요? 쟤는 왜 산으로 안 들어가고 시내로 나왔을까? 그나저나 아무도 붙잡지 않네. 저런 건 어떻게 하면 좋죠? 말이 중앙선 위를 걸어가면 그건 불법인가? 누군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차에 치이면 어쩌려고. ……선배, 근데 봤어요? 태어나서 말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인데 눈이 너무 예쁘네. 희미하게 눈물이 그렁그렁하던데. 갈기도 찰랑거리고 온몸의 털도 촉촉한 게, 그렇게 예쁜지 처음 알았어요. 

나는 에어컨 버튼으로 손을 뻗어 바람의 방향을 바꿨다. 후배는 말을 멈추더니 백미러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선배, 전에 저런 거 본 적 있나 봐요?”

“아니,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해요? 아무 감흥도 없는 것 같아.”

“운전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지.”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핸들을 괜히 꽉 잡았다. 하지만 길은 벌써 십 분째 막혀 있었다.

“난 지금, 누가 머리 뚜껑을 열고 차가운 바람을 확 불어넣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아찔한데. 뇌주름 하나하나가 막 깨어나는 느낌이라고요.”

그러니, 하고 나는 생각했다. 뇌주름이 깨어난다고?

후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았을 때, 나는 머릿속에서 방금 지나간 말의 털 빛깔을 ‘갈색’이 아닌 다른 단어로 바꿔보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갈색이었다. 핸들을 꽉 잡으면서 나는 무릎께를 내려다보았다. 스커트 아래로 스타킹이 보였다. 그냥 맨다리에 샌들을 신을 것을. 스타킹을 꺼내 신기에는 아직 너무 더웠다. 

스타킹처럼 커피색인 말…….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도시 한가운데에서 말을 보다니.”

“여기서 일하는 동안 잘 연구해봐. 어쩌면 또 지나갈지도 모르잖아.”

나는 별 생각 없이 대꾸했지만 후배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거의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건 말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눈은 어떤 모양이었지? 몸집은 컸던가 작았던가? 말발굽 소리는 어땠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몇 분이 더 지났을까. 신호등이 바뀌었다. 길이 뚫렸고, 나는 길이 뚫려서 좋았다. 서울 사무실로 돌아가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A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그날 밤이었다.  



2


……뇌경색이 젊은 사람한테도 올 수 있다는 거 아세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아주 젊은데…… 저랑 동갑이고, 서른한 살밖에 안 됐는데 온 거 있죠. 어느 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수도꼭지를 잘못 틀어서 찬물 대신 뜨거운 물이 쏟아졌대요. 물이 튄 왼손이 뜨거워서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는데, 가만 보니 물줄기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오른손에는 아무 감각이 없더래요. 너무 이상해서 왜 이러지? 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이번엔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뻣뻣이 굳어오기 시작하더래요.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자리에 누워 남편을 부르려는데, 입술 반쪽이 움직이질 않았다죠. 남편이 깜짝 놀라 병원에 데려가 보니 졸지에 그런 병명이 떨어진 거예요. 몇 번의 뇌출혈을 모르고 지나가는 동안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서 반신마비까지 온 거죠.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언어장애였죠. 그 사람, 젊은 나이에 꽤 촉망받는 시인이었거든요. 시집도 몇 권 냈는데, 속 빈 강정이라는 악평이 없진 않았지만 요즘 세상치고는 꽤 많이 팔렸어요. 결혼한 지도 얼마 안 됐고요. 그런데 갑자기 언어장애가 온 거예요. 좌뇌가 손상되면서 머릿속에 든 말들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대요. 물리치료를 받아서 몸은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는데 언어는 조금도 돌아오지 않아서 엄마, 밥, 이런 한두 마디밖에는 못한다지 뭐예요. 수술을 할지 약물만 쓸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정말 까맣게 말을 다 잊어버린 거죠. 참,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건가 봐요. 그렇게 젊고 잘 나가던 사람이, 언어로 먹고살던 사람이 그렇게 되다니. 그러면 기분이 어떨까? 답답하고 억울하겠죠? 세상은 공평하니까, 조금은 재능이 있었으니까, 자기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건, 역시 못하겠죠?

팀장은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문득 주위가 조용한 듯싶어 돌아보니, 폭탄주를 돌리던 사무실 사람들이 동작을 멈춘 채 모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자기 술잔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의 입이 다시 열리고 그 입에서 말들이 주룩주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끄러웠다. 회식은 이래서 싫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은 쓸데없이 시끄러워진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예전에는 확신했다.

“그거 알아?”

“뭐요?”

“자기 지금, 입사하고 나서 최고로 말 많이 했어. 뭐야, 자폐증 아니잖아?”

“…….” 

“그거 기억나? 기주 씨 입사하고 얼마 안 돼서였지. 오늘처럼 회식을 하고, 방향이 같아서 나랑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자기 30분 동안 한 마디도 안 한 거? 억지로 말이라도 시켜볼까 했는데 싫어하는 것 같아서 참았지. 이 얘기 누구한테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 그땐 나랑 말하는 게 그렇게 싫은가 싶어 맘이 좀 상하더라고.”

팀장은 나를 ‘자기’로 불렀다. 사무실 사람들을 대할 때면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아무도 내게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일찍 빠져나와도 아무도 붙잡지 않는다. 아무도 나와 사생활을 조곤조곤 나누려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건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남자들의 세계인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내가 유일한 여직원, 그것도 사무나 경리직 사원이 아닌 엔지니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딱히 사무실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과 말을 섞는 일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 가운데 예외가 있다면 팀장이었다. 내가 그와 친해지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그가 놀라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서 그 일을 가능하게 했다. 올해 서른일곱,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팀원 모두와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는 걸 신조로 여기는 사람이다. 팀원 중 누군가가 외떨어져서 겉도는 걸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미다. 점심 먹을 땐 막내 직원까지 꼼꼼히 챙기고, 김치와 국물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며, 프로젝트가 없는 기간엔 여섯 시 땡 치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이나 달콤한 도넛을 사들고 집으로 달려가는 남자. 높은 건물을 보면 우선 층수를 센 다음, 한 층의 높이에 층수를 곱해 건물의 전체 높이를 계산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는 비슷한 방법으로 건물 전체의 인구를 파악한다. 그런 일을 즐거워한다. 한마디로 평화롭고 무해한 사람이다.

“저 원래 그렇잖아요.”

“그래, 조금 지나니까 원래 그런 걸 알겠더라. 근데 그땐 참 이상한 여자도 다 있구나 했지. 이런 애가 우리 팀에 섞여들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 사실 자기가 좀 이상하긴 하잖아? 아무리 봐도 공대 출신으론 안 보이니. 자기가 컴퓨터 엔지니어란 걸 누가 믿겠어? 학교 다닐 때 공업수학도 지지리 못했을 거 같은 분위긴데. 근데, 요즘 사람들도 시 같은 거 읽나? 자긴 읽어?”

“안 읽어요.”

“왠지 집에 숨겨놓고 읽을 것 같은데? 뭐 어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언어’라는 말을 들으면 나처럼 자바(Java)나 C++ 떠올리는 지극히 평범한 엔지니어도 있고, 시를 떠올리는 좀 요상한 엔지니어도 있는 거지. 그냥 장르가 다른 것뿐이라고. 우리도 장르만 다르지 언어로 먹고사는 거잖아? 근데 기주 씨, 그 시인이랑 친한가 봐?”

“아닌데요.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 가까운 사람 같은 얼굴이어서.”



3

 

나는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한 번도 쓰리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글이라는 연약한 형태를 빌어 종이 위에 풀어놓는 이것들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여자들이 구두를 탐내고 남자들이 전자제품을 탐내듯 나는 말[言]을 탐했지만, 그뿐이었다. 정말로 이런 언어들을 가져 본 적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분명한 건 희주가 쓰러진 날부터 내 머릿속으로 낯선 말들이, 내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말들이, 미친 듯 걸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뿐이다. 이 말들이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내게 머무를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노트북을 여는 것뿐이었다.



4


희주는 어려서부터 툭하면 잔병치레를 했고 몇 번은 입원까지 했다. 여덟 살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독감으로 39도 5분까지 열이 올라 얼굴이 자줏빛이 된 희주가 병원 침대에 묶여 있었다. 주사를 안 맞겠다고 울면서 하도 길길이 날뛰어서, 간호사들이 할 수 없이 두 팔과 다리를 밴드로 침대에 고정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엄마 뒤에 숨어서 보고 있었다. 의사가 다가오는 걸 본 희주는 작은 입을 새빨갛게 벌리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주사 맞으면 나한테 뭐 해줄 거야? 내가 이 주사 맞는 대가로 나한테 뭐 사줄 거냐고? 삼성당 세계명작동화전집은 벌써 다 읽었어. 재믹스 게임기가 갖고 싶어. 아니면 자전거, 아니면 요즘에 새로 나온 백한 가지 인형 옷 갈아입히기 세트도 괜찮아. 알았지? 사주는 거다? 안 사주면 나 이 주사 안 맞을 거야. 나 몸도 약한데 아파서 죽어버릴 거야.”

순간 나는 기가 질렸다. 나로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도 없는 일을 희주는 했다. 엄마를 협박한 것이었다. 내겐 희주가 엄마를 협박했다는 사실과 그 협박의 내용 둘 다 충격이었다. 말들을 침대 위에 마구 뱉어내면서, 희주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무기로 그것을 당당하게 이용했다. 파란 카디건을 걸쳐 입은 간호사가 반짝이는 주사접시를 내려놓더니 짜증스러운 표정을 했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고 희주의 악다구니를 끝까지 들었다. 아파서 죽어버릴 거야. 희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그 마지막 말이 내겐 그야말로, 참신했다.

엄마가 퇴원한 희주에게 무엇을 사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희주가 입원해 있는 동안 의사와 간호사들이 한결같이 하던 말은 기억난다. 아, 그 시끄러운 애. 그 건방지고 버르장머리 없는 애. 그런 애는 처음 봤다니까. 

서른한 살 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자 고개를 조금 비틀고, 입을 약간 씰룩였을 뿐이다. 입술 왼쪽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얼굴 왼쪽은 바르르 떨리는데, 오른쪽은 붓으로 접착제를 한 겹 발라놓은 듯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대.”

A가 조금도 작지 않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하는 말, 못 알아들어.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고. 아마 너도 못 알아볼걸. 글씨도 못 읽어. 언어에 대한 기억이 아예 사라져버렸나 봐. 기주야, 나 미쳐버릴 지경이다.”

파란 줄무늬가 들어간 환자복을 입은 희주는 턱을 꼿꼿이 당기고 등을 세워 침대 위에 앉은 채 A와 나 사이의 허공 어디쯤을 보고 있었지만 표정이 없었다. 정말 못 알아듣는 것일까? 그러니까 언어기능에만 장애가 생긴 게 아니라 뇌가 아주 치명적으로 망가져버린 걸까?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서는 다섯 살 아이의 지능으로 돌아가 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처럼? A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침대 옆 간이의자에 걸터앉았다. 규칙 같은 건 사양한다는 듯 들쭉날쭉하게 자란 얇은 수염이 코와 입 주위를 뒤덮어, A는 다섯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여러 날 병원에서 지낸 피로를 보상받고 싶다고 소리라도 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희주와 닮은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왔지만 그게 어딘지는 몰랐는데, 그 순간 알아차렸다. 희주가 B나 C가 아닌 A와 결혼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A가 내가 아닌 희주와 결혼한 데에도. 근본적으로 이 두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속에만 담아두는 법을 모른다.

“뇌경색이 생긴 근본 원인이 뇌혈관기형이래. 머리가 너무 좋아서 요절하거나 미쳐버리는 사람들 있지? 얘 머릿속이 그 사람들 머리처럼 생겼대. 일찍 안 죽은 게 이상한 일이라나.”

“…….”

“안 올 줄 알았어. ……그런데, 왔네. 말은 못해도, 누가 오길 희주가 간절히 기다리는 것 같았어. 그게 너일 것 같아서.”

  


5


희주의 시가 실린 문학잡지 몇 권을 뒤적이다가 나는 검은 볼펜을 집어들었다.


뇌경색 

젊은 시인 윤희주의 언어는 쫄깃하고 참신하다. 세계를 읽어내는 그의 언어는 결코 마르거나 굳지 않는 샘 같아서 퍼내도 퍼내도 새로움으로 촉촉하게 차오른다. 새로움도 계속되면 이내 빳빳하게 굳고 식상해지게 마련인데 데뷔 삼 년이 지나도록 그는 아직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있다. -《OO문학》, 2006년 봄호 


뇌출혈 

윤희주의 시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직유와 은유, 순도 높은 상징들로 가득하다. 그는 세상에 흘러다니는 단조로운 상투어들, 감흥 없는 말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분노하는 시인이다. 때로 그 분노는 너무 깊고 커서 시행을 조각내며 피를 철철 흘리고 말 것 같다. 그는 하나의 사물이 품고 있는 수백 가지 이미지 중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입체적으로, 전방위에서 사물을 관찰한 다음, 압축한 행 안에 그것을 모두 담아낸다. 자신을 파괴할 것처럼 팽팽하게 행간을 채우고 있는 이미지들은, 그 아찔한 긴장 때문에 더욱 높은 차원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문학△△》, 2005년 가을호   


뇌혈관기형 

윤희주는 세계의 동시통역사이다. 시가 세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라면, 윤희주의 욕망은 번역에 그치지 않고 동시통역에까지 도달한다. 때때로 그의 시에서는 남들이 전혀 듣지 못하는 세계의 소리, 그 음습하고 기이한 외국어를 계속해서 듣는 자의 견딜 수 없는 고독이 느껴진다. 범인(凡人)들보다 훨씬 많은 언어와 이미지와 감성이 낳는 고통을, 그는 세계를 쉴 새 없이 동시통역하는 행위로 풀고 있는 게 아닐까. -《문학과 □□》, 2005년 겨울호 


희주의 상태와 관련 있는 병명들을 여기저기 소제목처럼 달아놓고 밑줄도 긋고 나니 평론가들의 말은 더욱 설득력 있게 들렸다. 모두들 무언가를 예감하고 있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결국 뇌경색, 뇌출혈, 뇌혈관기형일 뿐이었다. 나는 특히 ‘기형’이라는 두 음절을 여러 번 입속에서 굴려보았다. 그러니까 정상이 아닌 건 희주였다, 내가 아니라. 

희주는 말이 많은 데다 말을 잘하는 아이였고, 나는 조용함이 지나쳐 고요하기까지 한 아이였다. 희주는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아이였고, 나는 존재감을 얻으려면 결석 정도는 해야 하는 아이였다. 아무도 윤기주와 윤희주가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에 윤씨 성을 가진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도. 둘 다 달릴 주(走)라는 한자를 썼는데도.

희주는 내가 태어나고 9분 후에 세상에 나왔다. 엄마는 그 9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뭔가 계획이라도 세운 것일까.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를 그토록 조금도 닮지 않게 키울 수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마치 우연히 한 집에 들어온 아무 상관없는 두 아이처럼 우리 둘을 대했다. 희주에겐 무채색 계열의 단아한 원피스를 입히고 찰랑찰랑 길러 허리까지 닿는 생머리를 커다란 리본으로 묶어주었다. 내겐 언제나 한 치수나 두 치수 정도는 큰 데님 셔츠와 청바지를 척척 걷어 입히고 운동화를 신겼다. 엄마는 커트머리가 내게 잘 어울린다면서 나더러 새끼사자 같다고 했다. 내 머리는 결코 귀밑까지 내려온 적이 없었다. 엄마는 희주에게 여러 가지 책을 사 주었고 시험에서 한 문제만 틀려도 화를 냈다. 내가 TV 앞에만 앉아 있을 땐 그냥 내버려두었다. 졸업하기 직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심지어 우리가 같은 반에 배정되지 않게 해달라고 초등학교 6년 내내 학교에 찾아가 부탁까지 했다. 키가 자라고 가슴이 조금씩 나오면서 나는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무한한 애정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영원히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냈다. 의심이라는 해결책이었다.

아무리 이란성이라고는 하나, 희주는 결코 내 쌍둥이 동생이 될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애를 나와 한 핏줄로 인정하는 일은 내가 ‘쌍둥이’라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경건한 믿음을 배반하는 일이었다. 무언가가 조작되거나 비약되거나 생략된 게 분명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산부인과에서 찍은 우리의 출생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엄마는 의아해하면서 벽장에서 낡고 두터운 앨범을 꺼내왔다. 앨범 속에는 빨갛고 흉하게 생긴 두 명의 신생아가 눈을 감은 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 한 명은 나이고 다른 한 명은 희주라고 사진 속 이름표가 말해주었다. 밤고구마처럼 무럭무럭 살이 오르고 덩치가 큰 쪽이 나라는 건 대충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조금 작을 뿐 비슷하게 추한 몸을 한 그 옆의 아이가 희주라는 건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물었다. 엄마, 얘가 희주 맞아?

엄마는 부엌 식탁에 앉아 파인지 양파인지를 다듬으면서 당연하지, 하고 나른하게 대답했다. 어떤 말들은 입 밖으로 내뱉는 대신 혀 밑으로 밀어 넣는 게 낫다는 사실을 그때 이미 터득한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우리 둘은 아버지가 다르거나 엄마가 다르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엄마의 친딸일 것이다. 하지만 희주는 아마도 아닐 거다. 부적절한 관계로 아이를 만든 쪽이 엄마인지,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아버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어른들의 복잡한 음모와 사정이 개입해서 함께 살고 있을 뿐, 희주의 운명은 나보다는 훨씬 어두울 거다. 산부인과 사진 같은 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가짜로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 엄마는 희주가 불쌍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데려와 같이 살고 있는 거다. 불쌍하니까, 엄마로서도 나한테 해주는 것보다는 훨씬 잘해줄 수밖에 없는 거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야 이치가 맞고 균형이 잡혔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친딸이 아닌 게 내 쪽이라고 한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했다. 아직 어려서 구체적인 개념은 없었지만, 나는 세계가 어느 정도 선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깨치고 있었다. 아무리 신이라도 그런 악의어린 불균형을 일부러 저지르는 건 너무 성가신 일이 아닐까? 

하지만 키도 가슴도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됐을 때, 산부인과 사진이 조작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게 됐을 때, 세상에는 해명되는 것보다 해명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나는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나름대로 나를 최대한 배려한 셈이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어쩌면 두 개의 전혀 닮지 않은 정자가 아버지 몸을 빠져나와 엄마의 난자를 향해 동시에 전력질주를 시작했을 때부터 엄마는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발악하고 울고 달려본들 결코 희주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아이라는 것을.



6

                                      

“그래서 계속 저렇게 있는 건가?”

“가능성이 있을지도 현재로선 모르겠다던데. 우리 얼굴도 못 알아보잖아. 완전히 맛이 간 게지.”

“어떻게 하루아침에 저렇게……. 저 친구 생각이 많겠어…….”

“그러게. 시인이 언어장애가 됐으니.”

“솔직히 저 여자가 시를 잘 써서 떴나? 얼굴로 떴지.”

“그렇긴 했지……. 그게 시였냐. 애들 말장난이었지. 아픈 사람 병문안 와서 이런 말 하긴 참 그렇지만.”

“그래도 반반하긴 했는데. 참 안 됐어.”

A가 화장실에 가면서 밀고 나간 병실 문은 느슨하게 조금 열려 있었다. B와 C는 복도에서 하는 말이 병실 안쪽까지 들린다는 걸 알지 못했다. 갑자기 지독하게 목이 말라, 병실 한 쪽에 놓인 작은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 캔 하나를 꺼내 땄다. 희주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걸 왼쪽 눈으로 가만히 보고 있었다. 시큼하고 복잡한 감정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우선 ‘애들 말장난’이라는 말에 내 안의 어떤 부분이 기쁨으로 희미하게 요동쳤다. 그러니까 내가 그토록 열등감을 가졌던 희주의 시는 별로 대단한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B와 C는 둘 다 시인이면서 문학평론가였다. 두 사람의 말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부여하는 어떤 권위 같은 게 있었다. 

그러나 곧 알 수 없는 역한 맛이 목구멍에 걸렸다. 희주의 첫 번째 시가 신문에 실렸을 때부터 B와 C는 주기적으로 화두를 바꾸어 가며 새로운 윤희주론(論)을 번갈아 발표했다. 나는 두 사람이 희주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거라고 생각했다. 감정에 눈이 멀어 자신들이 평생 견고하게 쌓아온 문학적 이론과 가치 기준을 모두 잊어버리고, 희주의 시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이라는 잘못된, 그러나 낭만적인 생각을 갖게 된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들이 도발적인 새내기 시인의 유명세를 그저 이용해왔을 뿐이라는 사실이 이제 증명된 셈이었다. 희주가 B나 C가 아니라 A와 결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휴대폰에 032로 시작하는 번호가 떴다. M사에 파견 나간 후배였다.

“선배, 헬프! 나 지금 너무 급한데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이인 용 병실의 건너편 침대에는 루푸스병 환자라는 아주머니가 아까부터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도 침대 끝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 파우치를 집어 들고 복도로 나왔다. B와 C는 창가 쪽에 붙어 계속 뭔가 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창턱에 노트북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어깨와 목 사이에 끼웠다. 예상대로 후배는 제지공장 스케줄 모델링 작업을 처리하는 데 약간의 문제를 겪고 있었다. M사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이 있어서 내 노트북에는 예전의 모델 몇 개가 저장돼 있었다. 파견 근무가 잦은 엔지니어들은 서로 급하게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 항상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 쪽이 편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후배에게 작업의 개념을 설명했다. 후배가 쉽게 알아듣지 못해서 설명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노을이 붉게 창가를 적셨다. 10분쯤 걸렸을까. 고개를 돌려 보니 B와 C는 여전히 거기 서서 내 쪽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떨궜다.

최적화,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 솔루션, 퍼포먼스, 통합관리, 튜닝, 애플리케이션, 유닉스 서버, 다운사이징, 체인지 매니저. 나는 거의 노래하듯 그 말들을 발음했다. 선입선출(first come, first served; FCFS), 후입선출(last come, first served; LCFS), 최소처리시간(shortest processing time; SPT), 납기일우선(earliest due date; EDD). 이런 말들의 목록을 나는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었다. 그들에겐 내 입에서 장황하게 쏟아져 나온 단어들이 낯선 외국어로 들렸을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좋으나 싫으나 내가 입에 달고 다녀야 하는 언어들을 한 번도 자랑스럽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이상하게 뿌듯했다. 나는 B와 C가 나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종류의 언어를 들었기를, 들었으나 이해하지 못했기를 바랐다.

“고마워요, 선배. 나의 수호천사, 구세주, 완전소중! 선배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지? 아, 여기 너무 빡세요. 내가 나중에 밥 쏠게요!”

“……너, 말은 봤니?”

“말? 무슨 말?”

“전에 길에서 봤잖아. 갈색 말.”

“……언제요?” 

“아냐. 힘내, 임마.”

등뒤로 병실 문을 닫았을 때, 희주는 잠들어 있었다.



7

 

희주는 말이 많았다.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속살거리고 혼잣말을 했다. 끝없이 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죽고 말 것이라는 예언이라도 들은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말들도 내가 듣기엔 하나같이 희한했다. 이를테면 여섯 살 때 그 애는 밥을 먹다가 식탁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간장, 간장.”

우리는 비빔밥을 먹고 있었는데, 엄마는 희주가 비빔밥이 싱겁다고 하는 줄 알고 놀라서 싱겁니? 하고 물었다. 희주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밥 말고 저기, 간장 말이야. 저기 간장이 엎질러졌잖아.”

희주는 손을 쭉 뻗어 방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엄마도 나도 눈으로 희주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다. 창밖에는 어두운 밤이 펼쳐져 있었다. 희주는 검은 밤이 세상을 삼켜버린 걸 보고 간장이 엎어졌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 일화는 엄마가 하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것들 중 하나다. 난 그때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냥 숟가락 위의 밥을 씹어 삼켰던 것 같다. 얼마나 싱거운 맛이었을까.

희주는 말이 많을뿐더러, 생각한 것은 뭐든 그대로 말해버리는 아이였다. 상대방의 나이나 성별이나 지위나 권력, 때와 장소와 상황 같은 규범적 변수는 희주의 언어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예의나 죄책감이나 본능적인 두려움 같은 최소한의 거름종이조차 없었다. 4학년 때 나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희주가 칠판을 지우면서 자기 담임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선생님, 또 제가 백일장에 나가요? 대회만 있으면 저를 내보내시네요. 다른 사람이 나가면 안 될까요? 제가 선생님들의 희생양도 아닌데.”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국어사전에서 ‘희생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어휘력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나의 사전 찾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겼다. 희주가 나간 그 많은 대회들 가운데 단 하나에도 참가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희주처럼 선생님에게 ‘희생양’ 같은 말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희주의 말버릇이 늘 부럽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한번은 희주가 일하는 언니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 엄마에게 따귀를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80년대 한국 중산층 가정의 대부분이 그랬듯 당시 우리 집에도 일하는 언니가 있었다. 눈이 기름하고 몸매가 풍만한 언니였다. 언니는 몸이 약한 우리 엄마를 도와 희주와 나의 도시락을 싸주었고, 우리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희주는 어느 날 그 언니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식모지? 가정부나 파출부는 아니잖아.”

그 말을 모두 들었다.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날처럼 엄마가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희주의 따귀를 때렸어도 엄마에겐 희주가 쏟아내는 말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희주의 언어가 아이들 사이에서 말다툼이나 드잡이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그 애의 말이 품고 있는 독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자아가 모호했다. 하지만 어른들 사이에서 희주의 언어는 언제나 조그만 파문을 일으켰다. 희주는 모든 과목을 잘했지만, 특히 국어와 글짓기에 뛰어났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상장을 집에 들고 왔다. 6학년 때는 무슨 상장인가를 엄마 앞에 던져놓으며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수업시간에 모두 돌아가면서 아버지 직업을 얘기했는데 내 차례가 돼서 난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셔서 전 아버지가 뭘 하시는지 몰라요, 하고 얘기했어. 그랬더니 선생님이 엄마를 학교에 모셔 오라잖아. 그래서 내가 그랬지. 선생님, 우리 엄마는 바쁘시니까 안 오시면 안 될까요? 우리 부모님은 이혼했지만 저는 아무런 상실감도 느끼지 않아요. 아버지는 이제 타인이고 우리는 아버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잘 살고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 희주가 백일장에 나가서 무슨 글을 쓰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희주의 말버릇을 아는 나로서는 그 숱한 어른들이 그 애가 종이 위에 풀어놓은 말들에 감탄하고 상까지 준다는 사실이 미스터리였고 커다란 치욕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머리가 주먹만한 초등학생이 종이 위에 상실감, 독립적, 타인 같은 단어들을 늘어놓으면 단순한 어른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들은 죄다 뱀이었다. 뱀이었고 개구리였고 그 둘이 사랑을 나눠 만든 징그러운 초록색 액체가 가득 든 알이었다. 희주의 입에서는 계속 그런 말들이 튀어나왔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선생님들은 그 애가 사용하는 파충류의 언어에 새롭게 매혹되었다. 어쩌다 글짓기 수업이 있을 때면 선생님은 아이들이 제출한 작문을 한번 쓱 훑어본 뒤에 언제나 이렇게 말문을 떼었다. 옆반에 윤희주라는 애가 있는데……. 희주는 완전히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같은 존재였다. 희주의 스타일을 격찬하는 선생님들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출한 작문 숙제를 부끄러워해야 했다. 글짓기의 세계에는 윤희주라는 이름만 존재했고,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윤희주가 쓰는 글과 비슷한 스타일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었다. 선생님들뿐 아니라 몇몇 조숙한 아이들도 야, 말 좀 해,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 하고 나를 툭툭 치는 일이 늘어갔다. 그냥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였을까? 5학년 국어시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지난번 수업시간에 낸 작문 숙제에 대해 평가할 차례였다. 웬일인지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 선생님은 그 전까지 내가 낸 숙제에 대해 간단한 언급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금세 평정심을 회복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때까지 반 아이들에게 나는 덩치가 크고 졸린 얼굴을 한, 맨 뒷줄에 앉는, 한마디로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여자애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침내 모든 게 달라질 시간이 온 것이었다. 최대한 겸손하게 행동해야지,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네가 윤희주 언니라면서?”

“……네.”

“그래, 앉아라. 이제야 알았다. 윤희주는 글을 참 잘 쓰더라. 동생이 쓴 글도 집에서 좀 읽어보고 그러니? 그러면 좋겠어.”

희주가 공기 중에, 종이 위에 토해내는 뱀과 개구리 같은 말들이 나는 부러웠다. 징그러운 초록색 액체가 든 알이라도 좋았다. 그러나 가진 게 평범한 달걀노른자나 메추리알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점점 더 과묵한 아이가 되어갔다.


                                            

8


복숭아를 입으로 가져가는 A의 손가락은 하얗고 길다. 막 부르트기 시작한 아랫입술은 좁은 데다 너무 선명하게 붉어서 흰 얼굴을 더 창백히 보이게 한다.

희주는 휠체어를 타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휠체어를 타고 돌아왔다. 물리치료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그 애는 공중에 매달린 운동기구 같기도 하고 교수대 밧줄 같기도 한 벨트를 힘겹게 오른손으로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했다. 신종 고문기구 같았다. 의사가 희주의 오른발을 쉴 새 없이 주물렀다. 환자복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희주의 오른쪽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 도로 올라간 희주에게 문학잡지를 내밀었다. 가장 최근의 윤희주론(論)이 실린 페이지를 펼쳐서 보여주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희주의 시선은 하얀 종이와 검은 글씨 사이에서 잠시 당혹스럽게 머물다가 이내 초점을 잃어버렸다.

“소용없어.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거라고 의사가 그러더라니까. 바둑아, 놀자, 하는 거 말이야. 기가 막혀서 원.”

A가 복숭아 통조림 깡통을 따며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깡통 뚜껑을 너무나 세게 잡아당겨서 나는 그가 손을 벨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가장 힘겨운 사람은 명백히 A였다. 그는 꽤 이름 있는 시인이었고, 희주를 맨 처음 문예지에 소개시켜준 사람이었으며, 생각해보니 지금은 그의 남편이었다. 어떤 부분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희주를 따라다녔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희주가 들어간 문예창작과에 강사로 강의를 나갈 때부터 그 애와 함께 있었다. 거품경제가 무너지면서 엄마가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기 시작했을 때도, 꽤 잘 살던 우리 식구가 졸지에 단칸방에 들어앉았을 때도, 나와 희주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도, 희주가 시인으로 데뷔하고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때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A는 언제나 희주를 찾아왔다. 어쨌거나 그는 A였다. B나 C, 혹은 희주의 주위를 간헐적으로 맴돌다 사라진 D, E, F, G, H, I, J, K 같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지속적으로 희주 곁에 머물렀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를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A는 피곤해 보인다. 병수발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인상이 왜소한 사람이 며칠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제대로 초췌하다. 힘든 일이라곤 해본 적 없는 책상물림답게 옹이 하나 박히지 않은 손바닥부터,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는지 불안하게 계속 휴대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양까지 어느 하나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모든 것은 내게 하나의 대화를 떠오르게 한다. 그와 나의 대화다.


-이제 그만둬요. 나랑 같이 있어요. 희주는 가짜예요. 그 애가 하는 말, 써내는 글, 예쁘게 포장한 그 잘난 시 같은 것들. 그런 것보다 더 좋은 게 그 애 안에는 없어요. 알잖아요.

-기주야, 설령 가짜라도 없으면 살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야. 나도 그 정도는 알아. 희주가 실체가 없는 여자라는 것 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가짜인 걸 뻔히 알면서도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잖아. 그리고 눈물까지 흘리잖아.

-그래서, 그런 걸 알면서도 결혼하겠다는 건가요. 그런 그 애랑. 

-그래.

-……그래요. 그렇군요.


희주의 결혼식 전날 A와 나눈 이 대화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는 대화여서 더 잊히지가 않았다.

희주가 TV에 나오고, 인터뷰를 하고, 두 사람이 청첩장을 찍어 돌리고, 결혼을 할 때까지 내가 A와 실제로 주고받은 말들은 아무리 변형해 봤자 다음과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희주 있나요?

-희주요? 나갔는데요.

-그래요. 아, 기주 씨라고 했나요? 아직 학교 다니죠?

-네. 졸업반이에요.

-무슨 과라고 그랬죠?

-시스템구축공학과요. 

-시스템구축…… 그런 과도 있구나. 공대? 희주는 수학을 지독하게 못해서 문과에 갈 수밖에 없었다던데, 기주 씨는 수학을 잘했나 봐요.

-아뇨. 전…….

-희주 언제 들어와요?

-잘 모르겠는데요. 희주한테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괜찮아요. 다시 전화하죠 뭐.

-네…….


-여보세요? 기주?

-네. 

-희주가 아무 말 안 했니?

-네. 아무 말 안 하던데요.

-그래…… 그렇구나. 참, 잘 지내? 회사 다닌다고 했지?

-네. 

-무슨 회사라고 그랬지?

-IT 계열이에요. 공장 스케줄링 같은 거 하는.

-아……. 아이티……. 그렇구나. 부탁이 있는데, 희주 들어오면 나한테 꼭 좀 전화하라고 전해줄래? 늦게라도 좋다고. 밤새 기다리겠다고. 무슨 말을 해도 좋으니까, 내가 다 설명할 테니까, 제발 나한테 전화 한번만 해달라고 해줘. 안 그러면 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부탁해.

-……네. 그럴게요. 


단순히 말이 많고 건방지며 말버릇이 나쁜 어린아이가 말을 잘하는 아이로, 다시 글을 잘 쓰는 아이로 변해가는 건 흔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희주가 변해간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을 것이고, 그 가운데 핵심은 흐르는 시간, 그리고 그에 맞춰 자라나기 시작한 희주의 사회적 자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서로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고 공부방을 따로 쓰면서부터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예전만큼 깊이 들여다보지 않게 됐다. 고등학교로 넘어가면서 희주는 원래 없던 친구가 더 없어진 것 같았고, 가끔 부은 눈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같은 방에 있어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애와 나는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분명 희주에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학교에서 집단따돌림 같은 걸 당했는지도 모른다. 기억나는 건 말수가 조금씩 줄어든 대신 희주가 더 많은 시간을 종이에 무언가를 적으며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 애의 시대가 끝나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성급하게 예상했다. 우리 앞엔 대학 입시가 놓여 있었고, 아무리 글을 잘 써봤자 곧 어른이었다. 글이란 건 어릴 때 누구나 그냥 한 번씩 써보는 것 아닌가? 그래야 했다. 어른의 세계는 글 같은 연약한 게 아니라 말이 지배한다. 목소리가 큰 어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희주가 과거를 청산하고 나처럼 그냥 과묵하기만 한 아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의향이 아주 없진 않았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A를 만나면서 희주는 말의 정치학, 자신의 오만을 상처나지 않게 숨기면서 언어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새롭게 깨친 것 같았다. 그 전까지 그 애는 말을 하는 행위로써 타인을 정복하고 복속시키고 파괴했다. 하지만 A를 만난 다음부터는 말을 아끼는 일,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말을 하는 행위만큼이나 큰 파괴력을 갖는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제 희주의 말들은 공기 중에 풀려나지 않고 곧바로 종이 위에 옮겨졌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자 그것들은 시집으로 묶여 나왔다. 글의 형태로 종이 위에 옮겨진 희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세계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A에겐 별로 특권이 없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세계와 똑같은 절차를 밟아야 연인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을 그는 생각보다 잘 견뎌내지 못했고, 몇 번이나 내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물었다. 희주가 아무 말도 안 해? 정말 아무 말도 안 했니? 함께 있을 때 거의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희주는 A를 지배했다. 그들 사이에서 겉도는 말을 분주하게 배달한 건 나였다. 그러므로 단순히 말수가 적은 아이에서 말을 잘 못하는 아이로, 거기서 다시 글 쓰는 건 물론이고 타인과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아이로 내가 변해간 데에도 A는 일정 부분 책임이 있었다.

희주가, 희주는, 희주한테, 희주를. A는 그 말들을 하는 내 표정을 단 한 번도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몇 번인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에 빠뜨린 희주의 그 많은 언어들, 들리면서 들리지 않던 그 목소리들은 이제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포크를 들고 와서 A가 딴 복숭아 통조림을 먹기 시작했다. 한 조각을 찍어 희주 입에도 넣어주었다. 희주는 오물오물 잘 깨물어먹었다. 희주가 잘 먹는 걸 보자 갑갑하게 굳은 A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얼굴 반쪽에 접착제를 바른 듯 뻣뻣한 희주의 얼굴을 보며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 입에서 말들이 스륵,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희주야, 이거 뭐지?”

“…….”

“이 과일 이름이 뭐지? 요거 요거, 노랗고 달고 매끄러운 이 과일 말이야. 너도 좋아하는 거잖아.”

“……어…….”

“황도잖아, 황도.”

“…….”

“희주야, 저기 창밖에 하늘이 무슨 색이지?”

“……?”

“왜, 네가 좋아하는 색이잖아. 너무 어려운가? 그럼 힌트를 줄까?”

“기주야.”

A가 끼어들었다.

“가만 있어 봐요. 자꾸 말을 시켜야 기억이 떠오를 거 아니에요. 희주야, 힌트를 줄게. 저 색깔은 네가 아주 다양하게 변형해 자주 묘사한 색깔이야. 푸르뎅뎅하다고도 하고, 푸르스름하다고도 하고, 시퍼렇다고도 하고, 싸늘한 냉소의 빛깔,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키는 서른 살 직전의 마지막 가을 하늘 빛깔, 잔인한 목신의 눈동자 빛깔이라고도 네가 분명히 썼고, 공허밖에 가진 게 없어서 더욱 조용히 이글거리는 빛깔이라고도 네가 썼잖아. 자, 이 빛깔들을 한 단어로 뭐라고 부르지? 이걸 다 통틀어서 무슨 색이라고 하느냔 말이야?”

“야 윤기주, 너 왜 이래? 그만 못 둬?”

A가 내 손목을 붙들며 소리치는 바람에 포크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어……!”

희주의 왼쪽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시뻘게졌다. 왼쪽 눈썹이 부르르 떨리고 입술에서 침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데 말로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희주의 눈이 말의 눈처럼 커다래지는 걸 보고야 입을 다물었다. 푸른색이잖아. 희주, 넌 그렇게 쉬운 단어를 왜 모르는 거니?

 

                                            

9


이란성 쌍둥이 동생과는 달리 나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차함수를 미분하는 것도 그럭저럭 할 만했고 방정식은 약간 좋아하기까지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악명 높은 공업수학에서 평점 B를 받았다. F를 받는 아이들이 수두룩한 과목이었다. 한정된 시간에 최소의 자원을 투입하여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게 시스템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짜고 코딩을 하는 일이 내 직업이다. 나는 낭비 없이 꽉 짜인 일상, 최적화한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일이 괴롭지 않다. 높은 건물을 보면 나도 가끔 팀장처럼 머릿속으로 높이를 계산해보고, 내 후배처럼 작은 일에 뇌주름이 펴지는 것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가 일주일 후면 깡그리 잊어버리기도 한다. 화재나 방화사건 뉴스를 보면 나는 끔찍하다거나 세상이 흉흉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불을 일으킨 물질이 무엇인지, 그게 정말로 발화물질이 맞는지를 따져보았다. 나는 감정보다는 논리에, 공감보다는 이해에, 감상보다는 분석에 언제나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그 반대의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게 문제였다. 엔지니어가 되고, 발등에 떨어진 프로젝트의 불길이 활활 타고 있을 때조차 나는 관련 서적보다 소설을 더 많이 읽었고, 근무시간에도 업무와 관계없는 말들을 찾아 가끔 사전을 뒤졌다. 희주는 내가 속해 있는 세계를 아주 간단하게 가짜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느껴야 마땅했던 자부심, 내가 만끽해야 옳았던 소박한 즐거움, 내가 가져야 했던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조리 내게서 박탈해버렸다. 그것도 목신이라느니 공허라느니 권태라느니 하는 속이 텅 빈 말들, 뜬구름 같은 말들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 나는 희주 같은 몽상가들보다는 내가 하루를 몇 배는 더 생산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몇몇 프로젝트를 실패 직전에 구했고 선배들과 후배에게 가끔 도움도 주고 있으니 나는 조금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해야 옳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내가 엔지니어인 게 싫었다. 시인이 아닌 게 부끄러웠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보다 희주가 그 경험을 시에 어떻게 녹여냈는지가 내겐 더 생생하게 남아 있다. 무서운 일이다. 모두 희주가 저지른 짓이었다.

시인학교라는 게 있어. 시인이 되겠다는 사람들 모아 놓고 하는 거지. 바닷가에서 일 년에 두 번씩 열리는 건데 이번 토요일부터야. OOO문학포럼이라고 알지? 거기서 주최하는 거야. 귀찮지만 가 봐야지 어쩌겠어. 휴가라고 했지? 정말 미안하지만 일주일만 희주, 잘 부탁해. 이제 몸은 웬만큼 움직일 수 있으니까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A가 그렇게 제멋대로인 전화를 걸어온 건 희주가 퇴원하고 2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병원에서는 일단 퇴원을 권유했다. 뇌혈관기형은 기형 부위를 완전히 제거해야 완치가 가능한데, 희주의 기형은 뇌조직의 꽤 깊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섣불리 칼을 댔다간 후유증이 심할 거라고 했다. 약물을 계속 쓰면서 지켜보는 보존적 요법을 택하자는 게 병원 측의 소견이었다. 다행히 굳었던 희주의 몸 오른쪽 절반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긴 했지만 희주는 일상적인 행동 대부분을 혼자 할 수 있을 정도가 됐고, 통원하면서 물리치료와 심리치료, 약물치료를 같이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말은 엄마, 밥, 물, 쉬 정도가 전부였다. 보호해 달라고 요구하고 먹고 마시고 싼다. 몇 년 전 문단에서 가장 도발적인 시인으로 손꼽힌 윤희주가 언어로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였다.

모질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희주와 함께 일주일이나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정 내키지 않으면 간병인을 부를 수도 있었다. 십수 년간 데면데면하게 살아온 마당에 그렇게 못할 것도 없었다. 내게도 사정이 있긴 했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오랜만에 얻은 휴가라서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올 요량이었으니까. 하지만 전화 속 A의 목소리에 박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러지 못하게 막았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처음 가 보는 희주의 신혼집은 가구가 별로 없어서인지 꽤 넓게 느껴졌다. 보일러를 틀었는데도 마룻바닥에서 스멀스멀 냉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반찬 몇 가지에 간이 진하지 않은 국을 끓여 단출하게 저녁밥을 지어 먹고 희주에게 약을 챙겨 먹였다. 곤봉처럼 생긴 물리치료 기구로 하는 운동을 도와주고 집안을 한 바퀴 돌다가, 다용도실에서 책무더기를 발견했다.

저자에게 주는 증정본인 걸까. 희주가 낸 세 권의 시집이 각각 오십여 권씩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먼지를 삼키고 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종이가 벌써 누렇게 바래, 금방이라도 헌책방에 넘길 책들처럼 보였다. 한 권에 4,500원씩 백오십 권이면 675,000원. 머릿속엔 언제나 계산기가 들어 있지만 그 순간 나는 왜 그런 계산을 하고 있었을까. 어쩐지 가슴께가 답답해 얼른 밖으로 나왔다.

나란히 꾸며진 A와 희주의 서재에는 똑같이 생긴 책상과 의자와 책장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틀린 그림 찾기를 할 때처럼 두 방의 차이가 한 점 두 점씩 눈에 들어왔다. 희주의 서재에는 A가 발표한 시집 여덟 권이 연도순으로 차곡차곡 꽂혀 있었지만, A의 서재에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 희주의 시집 한 권이 없었다. 희주는 자기 서재에도 자기 책을 놓아두지 않았다. 책상 위 책꽂이도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도 없었다. 컴퓨터가 없으면 작업을 하지 못할 텐데, 누가 치운 걸까. 희주의 책상 위에는 오른손 마사지에 쓰는 듯한 커다란 호두알 두 개와 약봉지, 약간의 필기도구와 찜질 팩 따위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기묘한 예감에 사로잡혀 노트북을 열었다. A는 내가 사물의 이면을 뒤집어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OOO문학포럼이라는 유명한 이름을 내가 들어보지 못했을 거라고, 혹은 들어봤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A의 말대로 OOO문학포럼은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바닷가에서 시인학교를 열었다. 하지만 날짜가 달랐다. 올해 겨울 시즌 시인학교는 일주일 전에 모든 일정을 끝내고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고 홈페이지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참석자 명단 중에 A의 이름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 비슷한 이름의 다른 포럼들도 검색해봤다. 그날부터 열리는 시인학교 같은 것은 없었다. 희주를 부탁한다고 말하던 A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려봤다. 나는 직감이 뛰어난 사람이 전혀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미세한 즐거움이 먼지처럼 풀풀 날리는 것도 모른 채 거짓말을 하고, 아픈 아내를 집에 버려둔 채 A는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거실에 놓인 TV의 홈쇼핑 채널에서는 정확히 무엇에 쓰는 건지 알 수 없는 제품의 CF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무거웠다. 창밖에는 어느새 간장이 엎질러진 것처럼 검은 밤이 깔려 있었다. 소파에 앉은 채 끄덕끄덕 졸기 시작한 희주를 나는 흔들어 깨웠다. 부부 침실 침대를 치우고 놓은 전기요 위에 이불을 펴고 나란히 누웠다. 불을 끄고 얼마나 그렇게 누워 있었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나는 문득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희주야, 자니?”

“어어…….” 

형체를 갖추지 못한 외마디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희주 쪽으로 돌아누운 다음, 잠에 반쯤 취한 그 애의 두 손을 끌어 내 얼굴에 가져다 댔다. 희주의 오른손은 왼손보다 차가웠다. 나는 그 애의 이마를 짚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울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다.

“자, 이제부터 퀴즈를 할 거야. 난 네 손을 내 몸 어딘가로 가져갈 거야. 그럼 너는 그 부분의 이름을 말해야 해. 잘 생각나지 않겠지만 내가 도와줄게. 말하지 못하면 너랑 나는 먼지로 변해서 사막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준비 됐지?”

나는 희주의 양손 끝을 내 양쪽 눈두덩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뭐지?”

“어…….” 

“힌트! 하늘에서 내리는 거랑 이름이 똑같아. 자, 뭐지? 3초 내에 대답해 봐.”

“어어…….” 

“3, 2, 1, 제로. 에이, 눈이잖아, 눈. 너무 어려워? 그럼 이번엔 쉬운 걸로 할게.”

희주는 손가락 끝으로 내 몸을 느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지만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손끝을 차례대로 코, 입, 귀, 턱, 어깨, 목, 쇄골로 가져가봤지만 말을 잃어버린 동생은 단 한 문제도 맞추지 못했다. 그러다 내 가슴께에 오른손이 가 닿았을 때, 희주가 갑자기 말을 했다.

“어……엄마.”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나풀거리며 공주님처럼 우아하게 걸어가는 희주를 보면서 저 아이의 몸은 절대로 만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한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었다. 예쁘장한 팔과 다리였지만 내 몸에 닿는 건 싫었다. 희주는 어른들이 저지른 용서받을 수 없는 비밀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불경스러운 죄를 저질렀다. 불쌍한 아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 오지 마. 네 몸이 나한테 닿는 건 싫어.

희주의 두 손은 약간 솟아오른 내 가슴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틀렸어.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잖아. 희주야, 내가 누구지?”

“엄……마. 엄마.”

“아니라니까. 힌트를 줄게. 내 이름은 윤기주. 네 이름은 윤희주. 너는 나를 하나도 닮지 않은 이란성 쌍둥이 동생. 그럼 나는 너를 하나도 닮지 않은 이란성 쌍둥이…… 그 다음에 뭐지?”

“……어.”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지만, 희주는 끝내 옳은 답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어느새 고요해진 희주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둠 속으로 희부옇게 보이는 천장의 벽지 무늬를 헤아렸다. 면적 당 무늬수를 센 다음 방안에 있는 모든 벽지 무늬의 개수를 어림해봤다. 그러다 스르르 잠들어 몸을 뒤척이며 돌아누웠을 때, 잠결에 희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언니. 

 


10


오래 전에 간절하게 기도를 한 적이 있어. 내가 속으로만 품고 있던 말들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너는 알지 못했겠지. 너는 절벽 한가운데 맺힌 광물 결정처럼 언제나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빛나는 아이였어. 그런 네가 항복한 듯, 포기한 듯 내게 살갑게 군 적이 딱 한 번 있었어. 우리 둘 다 어른이 되기 직전이었지.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던 내게 네가 쪼르르 달려왔어. 네 얼굴은 창백했고 두려움에 잔뜩 눌려 있었지. 네가 내게 먼저 말을 꺼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언니, 나 무서워. 그때 나 좋아한다던 남자애 있지. 걔가 지금 집 앞에 찾아왔어. 몇 번 만나서 같이 영화도 봤는데 얼마 전부터 걔가 내 몸을 만지려고 들잖아. 내게 키스하려고 했는데 내가 입을 꽉 다물고 있으니까 화를 냈어.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해? 나 어떻게 하면 좋아?

드러내진 않았지만 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날 오후 네가 내게 토해낸 말들은 단 하나의 수식어도 없이 빈약한 날것이었어. 넌 언어로 세계를 쥐고 흔드는 권력자이자 지배자였지만 그런 너도 그 순간만큼은 현실 세계의 두려움, 바로 눈앞에 달려드는 실체의 무서움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거지. 나는 두려움으로 떨리는 너의 어깨를 두 손으로 꼭 잡았어. 그리고 부드럽게 속삭였지. 희주야, 키스는 그렇게 무서운 게 아니야. 어른들은 누구나 하는 거라고. 나랑 연습해볼래?

너는 어미사자에게 목덜미를 맡기는 새끼사자처럼 나른한 태도로 눈을 감았지. 그 짧은 순간 나는 네가 이 우주에서 무한하게 신뢰하는 유일한 피붙이, 너의 쌍둥이 언니이자 조언자였던 거야. 우연히 너와 손이 부딪치는 것도 싫어하는 나는 네 입술에 입을 대기가 죽기보다 싫었지. 하지만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너는 입을 열었어. 그리고 말 대신 다른 것을 꺼내 내게 맡겼지. 그 신비한 말들을 품고 있던 네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혀가 마침내 입속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앞니로 그걸 살짝 깨물었어. 피가 나서 네가 울지 않게, 엄마를 부르지 않게, 아주 살짝. 그러면서 간절하게 기도했지. 이 아이에게서 말들을 빼앗아주세요. 그 말들이 모두 내 것이 되게 해주세요. 


잠에서 깨었을 때 희주는 화장실에 갔는지 곁에 없었다. 부스스한 이부자리가 아무렇게나 뭉쳐 있을 뿐이었다. 건조하고 나른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꿈에서 무언가 말 비슷한 걸 본 것 같았다. 여러 마리였다. 갈색과 검은색, 흰색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아니면 그 비슷한 한 무리의 다른 동물들이었나?

그것들은 차들이 늘어선 사차선 도로 한가운데 중앙선을 밟으며 똑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마치 겸허히 무릎을 굽히며 내게 충성을 맹세하고, 영원히 내 곁에 머무를 것처럼. 그러나 내가 차에서 내려 차문을 닫았을 때, 그것들은 나를 지나쳐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내 뒤로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가는 거니, 그렇게 묻기 전에 꿈은 끝났다. 그것들의 눈이나 갈기, 털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려 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문장 웹진/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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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냥

작가의 목소리에서 "가가"를 향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시장 모퉁이에서, 버스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수많은 가가들이 살아낸 시간들을 새삼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