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와 말미잘

 

집게와 말미잘



이나미



1.


여자가 사라졌다. 감쪽같이. 한 남자의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인 그녀가 흔적조차 없다. 남편은 경찰과 함께 아내가 실종되던 날 행적부터 도돌이표 찍듯이 샅샅이 되짚었으나 허사였다. 타고 나간 자동차도 땅으로 꺼졌는지 공중분해 됐는지 종적이 묘연하다. 유일한 단서라곤 실종 당일 집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하느라 CC카메라에 잡힌 마지막 모습.


여자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위치 추적도 불가능했다. 경찰은 다각도로 수사를 펼쳤다. 처음엔 바람난 주부의 단순 가출로 초점을 맞췄다가 주변 인물 탐문과 유선 전화 통화기록, 신용카드, 통장 입출금 거래 내역, 집 컴퓨터까지 뒤지고 나서야 단순 가출이 아닌 사고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녀는 컴맹이었다. 게다가 면허 딴 지 겨우 6개월 된 초보라 당시 전후로 인근 지역의 교통사고를 전면 재조사했지만 단서는 포착되지 않았다. 남편은 수도권 외곽의 산을 밀어내고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라 외져서 가까운 소도시의 수영장도 다니고 대형 마트 다닐 때 편하라고 승용차를 사줬다고 했다. 납치라면 차라도 발견돼야 마땅했다.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신고 접수된 무연고 시신들을 검시했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사진이 실린 전단지를 뿌리고 차량 번호를 수배해 놓았지만 진척이 없다. 목격자도 없다. 오리무중이다.   

벚꽃이 분분히 나리는 아름다운 봄날에 홀연히 자취를 감춘 여자는 17년의 결혼생활 동안 살림밖에 모르는 순종적인 아내였다. 병석에 누워 있는 시어머니에겐 다소곳하고 희생적인 며느리였고 아이들에겐 수더분하고 다정한 엄마였다. 직업 상 몇날 며칠 출장 때문에 외지로 돌아야 하는 남편에겐 붙박이장처럼 항상 집에 있는 아내가 믿음직스러웠다. 가족들은 수십 가지 가설을 세우고 미친 듯 찾아 헤맸다.


2.


‘내용증명’을 부치러 우체국에 다녀왔다. 고작 이틀 내린 폭우로 곳곳에 곰팡이가 피었다. 군데군데 물이 고였고 건물 전체가 눅눅하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이다. 쉰내 나는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털고 방에 들어가 노트북 전원부터 켠다. 지난 석 달 동안 인터넷마저 안 됐더라면 참 무료했을 것이다. 휴대용 레인지에 커피 물을 얹는다. 커피믹스가 달랑 한 봉 남았다. 새로 사온단 걸 깜박 잊었다.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먹는다. 환풍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교활한 주인 할마씨가 도시가스를 끊은데 이어 전기도 끊겠다고 협박 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기를 끊는 것은 막아야 한다. 만약 전기가 끊긴다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파질 것이다. 흘깃 대형 냉동고를 쳐다본다. 끊기 전에 네 년 모가지부터 따줄 테니까 기다려라. 명 재촉하지 말고! 창문은커녕 불을 켜지 않으면 한밤중으로 착각할 만큼 빛 한 점 들지 않는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늙은 년! 다 살았다 이거지? 주방 서랍엔 칼이 용도대로 골고루 비치되어 있다. 석 달째 안 써서 무뎌지긴 했지만. 퇴촌 집 헛간엔 예초기와 전기톱도 있다. 주먹만한 돌멩이 한 개에도 날선 반응을 보이는 그것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옆 식당들은 죽을 동 살 동 죽는 소리 하면서도 여전히 문을 연다. 그들은 내가 나타나면 하던 말을 딱 끊고 딴청을 핀다. 그리고 총알처럼 제 가게로 흩어져 흘금흘금 유리창으로 내 동향을 살핀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유리벽에 코를 납작 붙이고 들여다보기 전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볼 수 없게 테이블을 쌓아놓고 홀의 천장 불을 끈 채 지낸다.

우체국 다녀오는 동안 잠깐 맞은 비에 옷이 다 젖었다. 팬티만 입고 커피 잔을 든 채 방으로 들어간다. 손님용 탁자를 한 쪽으로 몰아놓고 그 중 한 개를 책상 삼아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홀은 이제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수챗구멍을 타고 올라온 쥐새끼들이 또다시 제 세상을 만났다. 가끔 한밤중에 불심검문하듯 불을 켜면 녀석들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꼼짝도 않고 날 쳐다봤다. 겁대가리 없이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제 풀에 꼬리를 내리고 몸을 움찔움찔 오락가락했다. 그 꼴이 우습기도 하고 괘씸해서 몇 놈 잡아 얄쌍한 회칼로 껍질을 벗겨 옆 가게 두어 군데 문손잡이에 걸쳐 놓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여자들의 비명에 잠이 깬 나는 씨익 웃으며 더 깊고 푸근한 잠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시 들락거린다. 지하 식당가 통틀어 여기가 집합 장소인 모양이다. 그 동안 얼마나 잘 처먹고 다녔는지 몸집이 크고 털도 윤기가 자르르하다. 새벽녘까지 잠 못 들고 뒤척일 때 냄비가 구르고 그릇이 깨지는 소리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 녀석들이 벌이는 축제 같다. 오피스텔이라 유동 인구가 많은 이 낡은 고층건물 지하에서 한밤중에 살아 숨쉬는 존재가 나 말고 또 있다는 사실이 때론 위안이 됐다. 녀석들이 벌이는 난장판이 나를 위한 축제 한마당 같아 가만히 귀 기울이다 잠들곤 했다. 나 역시 거대한 지하 동굴에 사는 털 빠진 늙은 쥐다. 그래서 이젠 친구이자 동료들을 위해 일부러 빵 부스러기나 음식 쓰레기를 흘려놓는다.

M사이트에 접속하자 예상대로 새 편지가 한 통 와 있다. 오늘 새벽에 내가 보낸 편지의 답장이다. 상대는 하루에 한 번 착실하게 답장을 보내온다. 유일하게 새날이 밝고 저물었음을 알려주는 건 여자의 편지뿐이다.

투쟁과 칩거 두 달째로 접어들면서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비틀던 무렵, 귀국하기 직전 짐이 귀띔해줬던 M사이트가 생각났고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짐의 말대로 세계 여러 나라 남녀가 회원으로 가입해 자유롭게 채팅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었다. 영어가 안 되는 한국인들은 한글을 쓴다. 자신의 프로필과 이상형, 국적, 언어, 거주지, 학력, 신체 조건을 상세히 올린 다음, 조건에 맞는 상대의 프로필과 사진을 훑어보고 짧은 메시지나 윙크를 보내 피차 호감을 느끼면 이메일을 교환했다. 짐은 따로 링크된 성인 사이트를 들어가면 각 나라 별로 포르노 동영상도 뜨니까 밤이 두렵지 않을 거라며 사람 좋게 웃었었다. 먼저 짐의 아이디를 검색하자 반가운 얼굴이 화면에 떴다. 포틀랜드 해안을 배경으로 배 위에서 찍은 낯익은 사진이었다. 자신의 직업을 선장이라고 써놓았다. 버젓이 아내와 두 아들이 있으면서 미혼이라고 기입한 것을 보고 풋, 코웃음을 쳤다. 짜아식! 녀석도 지금 아내의 눈을 피해 짐 빔을 홀짝이며 자신의 젖가슴을 움켜쥔 반라의 외국 여성들의 뇌쇄적인 눈빛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겠지. 제이슨, 너도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결혼해야지. 그 사이트엔 한국 여성들도 많아. 나야 재미로 들어가지만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노총각 노처녀들이 많아! 한사코 소개해주는 외국 여자들을 마다하자 그는 내가 굳이 한국 여성을 고집하는 줄 알았다.

그동안 서너 명과 이메일을 주고받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 끊어지고, 최근 새로 연결된 여자다. 국적 한국, 거주지 서울, 언어 한국어, 사진은 안 올렸고, 나머지 항목은 거의 다 ‘대답 안 함’을 선택해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냈다. 두어 줄 써놓은 주관식 프로필과 이상형 글귀에 끌려 메시지를 보내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는 자주 들어오지 않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답장을 쓰는 게 기특하다. 답장은 항상 아쉬움을 남길 만큼 짧게 끝나고, 여전히 자신의 신상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사실 나도 사이버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저편에 앉아 있을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자신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취미 없다. 무슨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두서없고 막막한 게 영 어색하다. 퇴색해버린 꿈, 지난날의 회한, 바람직한 이상형, 직업, 노후 대책, 건강…… 뭘 쓰나. 상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20대 청춘도 아니고 생의 반환점을 꺾어 돈 마당에. 짐의 바람대로 뭘 기대하는 건 없고 다만 심심하고 무료해서 들어갈 뿐이다. 지금 나는 할 일이 없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오늘 보낸 내용증명의 효력에 따라 새로운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투쟁이 끝나는 날 내 인생은 새로 시작된다. 지금은 그저 포복한 채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내 평생 가장 한가한 시기다. 타의에 의해 주어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반년의 세월을 독한 담배에 의지해 살았다. 끝까지 갈 것이다. 나를 잘못 건드렸다는 후회가 창자 속을 후빌 때까지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석 달째 놀고먹었더니 배만 불룩 나왔다. 술을 먹을 줄 알았다면, 아니 체질이 술을 받았더라면 아마 진작 알코올 중독자가 됐을 것이다. 여자의 편지를 연다.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아침부터 줄곧 차분하게 비가 와요. 전 이런 날을 무척 좋아합니다. 강의도 없고, 예약 환자도 잠시 뜸한 틈을 타 고즈넉이 연구실 창가에 서서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즐기죠. 예약 환자가 있을 경우나 급한 호출이 있을 때 빼곤 주로 연구실에서 학생들에게 강의와 실습을 해요. 그동안 제 직업 무척 궁금해 하셨죠? ㅎㅎ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님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계시다니 바빠서 한국엔 자주 못 오시겠군요? 지금 어디 계세요? 한국? 미국? 무역업을 하신다니 외국을 마니 다니셨을 텐데 잼있는 에피소드 있으면 들려주세요. 서울에서 사업을 벌이셨다니 잘 되시길 빌구여. 참, 저도 음식을 안 가려서 외국 나가면 모든 음식이 다 입에 맞아요. 근데 어쩌나, 파티의 안주인 노릇 할 만큼 사교적이진 않은데…… 항상 공부만 하고 살아서 어디 파티를 해봤어야죠. 아, 지금 막 호출이 와서 길게 쓸 수가 없군요^^〉


오호, 의대 교수? 그럼 의사? 오늘은 제법 길게 썼다. 사진을 보내라, 전화번호 교환하면 어떠냐 떠봐도 다 씹더니. 새벽 편지에 최근 서울에 해산물 전문 프렌차이즈 식당과 미국 수산물 수입 업체를 열어 바쁘다는 말이 먹혀든 것 같다. 하여간 여자들 여우같은 속셈이라니.

사실 해산물 프렌차이즈 식당이 괜한 소리는 아니다. 20년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기로 맘먹은 첫째 이유가 바로 창업이었다. 미 서부에 몰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게 요리 전문점’이 성업이라는 점에 착안한 짐이 한국에 가서 던지니스 크랩을 수입하는 사업을 해보라고 권했고 나도 솔깃했다. 귀국하자마자 조그만 사무실 하나 임대해 인터넷 주문 시스템으로 미국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던지니스 크랩과 수산물 최고의 품목 중 하나인 은대구, 통조림과 횟감용 참치, 연어, 가자미류 등을 취급하는 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주문 24시간 이내 택배를 완료한다는 기업 이념은 형편없는 수요로 보기 좋게 좌절됐다. 미국 현지에 확보해놓은 물량을 처리하느라 이중고였다. 눈 빠지게 모니터의 주문량 숫자만 들여다보며 개점휴업 상태로 일년을 끌다가 손 털었다. 규모나 홍보 등 여러 가지로 한국 상황에 어두웠던 나로선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 새로 횟집을 개업했다. 크랩, 랍스터, 대하, 활어를 골고루 취급하고, 내가 개발한 음식 가짓수도 꽤 돼 시작할 때만 해도 전망이 밝았다. 주방 아줌마만 해도 열 명이 넘었으니까. 

암튼 머릿속에 먹물이 들었든 아니든 돈 밝히는 것들은…… 세상에서 못 믿을 종자가 바로 여자들이다. 수고도 안 하고 몸뚱이 하나로 날로 처먹으려 한다니까. 사실 나 혼자 고생해가면서 돈 벌어 여자 거저 먹여 살리고 경제적 부담까지 지고 싶진 않다. 그게 내가 여태 장가를 가지 않은 이유다. 근데 의대 교수 정도면 아무리 노처녀라도 혼처가 줄을 이을 텐데 왜 굳이 여길 기웃거리나? 말씨나 편지를 보면 채팅에 미쳐 날뛰는 주부 여편네들과는 다른 것 같은데. 내심 마음이 동한 나는 시큰둥했던 그간 편지와 달리 정중하게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저도 지금 사무실에서 비오는 창 밖으로 도심의 빌딩 숲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 하고 있음니다. 오전 내내 외국 거래처와 전화로 실랑이를 벌였더니 지치는군요. 그래도 이렇게 님과 대화할 수 있어 참으로 영광임니다. 근데 세헤라자데님은 의사 선생님이군요. 교수님이라 부르는 게 나을까요? 하하하 참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심니다 그려. 더구나 여자분이. 앞으로 좀 더 자주 연락을 주고받길 고대함니다.

전 지금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는데 말씀드린 대로 새로 벌인 사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당분간 미국과 서울을 오가야 할 거 같군요. 근데 님은 커피를 즐기시나 봅니다. 주로 어떤 향의 커피를 즐겨 드시나요. 전 그린 빈을 직접 사다 집에서 볶고 갈아서 내려먹읍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오랜 습관이지요. 그린 빈을 볶을 때는 온도와 시간이 매우 중요해요. 너무 센 불로 오래 볶으면 향이 제 맛이 안 나거든요. 아주 까다롭지만 그런 만큼 저만의 커피를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지요. 몸이 피곤할 때는 아이리시 커피를 만들어 먹는데 먼저 글라스 테두리에 Brown Suger를 묻히고 아이리시 위스키를 부은 다음 글라스를 알코올램프에 데워 불이 붙으면 커피를 부어서 생크림을 씌운 후 계피가루를 약간 뿌려줌니다. 베이스가 브랜디면 로얄 커피고, 아이리시 대신 베일리스를 쓰면 베일리스 커피가 되죠.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저절로 커피 마니아가 됐답니다. 요즘 한국에 머무는 동안엔 별다방에서 파는 원두를 사다 갈아서 마시고 있어요. 스타벅스 말임니다. 하하하. 바이어들 오면 다른 건 몰라도 커피만큼은 직접 제가 만들어 대접해요. 세헤라자데님께도 제가 만든 커피를 대접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음니다. 참 제가 한국말이 서툴러도 양해하시길. 평생을 외국으로만 떠돌아서 우리말을 다 잊어먹었어요. 하하하

오늘은 저의 회사 본사가 있는 포틀랜드 오리건 주에 대해 말씀드릴까 함니다.〉


여자들은 사업 얘기를 자세히 하면 골치 아파 흘려듣는다. 경제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수준을 짐작할 정도만 슬쩍 흘려주고 여행이나 커피, 와인, 아름다운 경치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쓰는 게 훨씬 낫다. 커피 잔이 비었다. 믹스를 사러 나가자니 귀찮다. 오늘은 그냥 참아야겠다. 편지 창을 잠깐 내려놓고 인터넷 백과사전의 내용을 대충 말을 바꿔 편지에 옮겨 적는다.  

 

〈오리건 주는 산과 바다로 둘러싸였으며 인구 300만에 크기는 남북한 합한 것의 4배로 땅덩이가 넓고 인구 밀도가 적어 참 좋습니다. 더구나 태고의 신비가 그대로 보존되어 울창한 전나무 숲과 사슴, 곰 같은 동물들이 살고, 바다에는 고래와 대게, 온갖 물고기, 물개들이 삼니다. 무척 아름답고 평화롭지요. 남부 오리건에는 Great lake가 있는데 한국의 백두산 분지처럼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산정상의 호수로 증기기선이 자동차를 실어 나를 정도로 크고 물이 참 맑아요. 올라가보지 않고 산꼭대기에 이런 호수가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할 검니다. 또 그 물이 산 아래로 빠져나가면서 만들어진 폭포가 장관이구요.

아, 저도 오후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관계로 오늘은 이만 줄일까 합니다. 다음에는 아름다운 뉴포트 비치에 대해 말씀드릴께요. 늘 외로움에 목을 빼고 기다리는 제게 틈 나는 대로 긴긴 편지 써주시길…… 낭만 고양이 제이슨 드림.〉

   

여행기를 올려놓은 블로그는 무궁무진해서 얼마든지 입맛대로 골라서 올릴 수 있다. 단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얘길 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오늘은 이쯤 하고, 센드 버튼을 누른 다음 다시 한번 그녀의 프로필을 검색해본다. 미혼에 영어, 불어,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며, 전문직, 나머지 신체 조건이나 다른 항목은 거의 다 ‘대답 안 함’이다. 막연히 그녀의 체형을 상상하려니 어느새 아랫도리가 묵직해진다. 팬티 속에 손을 넣어 동생을 쓰다듬는다. 녀석의 반응은 늘 한 박자 처진다. 별로 쓸 일이 없다 보니 시큰둥하다. 파이프 관을 타고 어디선가 아득히 빗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온다.

이렇게 비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포틀랜드 항구가 눈에 삼삼하다. 내 젊음을 송두리째 바쳤던 제2의 고향 태평양 연안 바닷가. 여름엔 38도까지 올라가지만 나머진 내내 비가 질금대는 변덕스럽고 우울한 날씨. 온통 젖었던 기억밖에 없건만 막상 떠나오자 기억 속에 뽀송하게 떠오르는 건 왠가. 우산 대신 레인 재킷을 입고 유유자적하는 사람들 틈에서 일년 365일 발목까지 오는 방수 앞치마에 장화를 신고 온몸에 생선 비린내를 묻힌 채 뒹굴었다. 평생 맞을 비를 그때 다 맞아선지 지금은 정수리는 물론 앞이마도 휑하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갑작스레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대학 갈 형편도 안 되고 해서 군복무 마치자마자 쫓기듯 날아간 미국. 그때만 해도 꿈과 패기가 있는 젊은 놈은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어 안달이 났던 기회의 땅은 막상 말도 안 통하고 아무 연고나 기술 없이 몸뚱이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 척박하고 낯설었다. 영주권은커녕 노동허가증이 없어 시간당 2불도 안 되는 돈으로 일당 벌이 허드렛일을 하며 부두 노동자로 전전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뻐근해진다. 몸뚱이 하나 아무데나 굴러도 그만이지만 취업 이민 신청이 자꾸 캔슬 당하고,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데 수중에 돈은 없고 당장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캄캄한 새벽에 찬비를 맞으며 고깃배를 탔다. 태평양 바닷바람은 왜 그리 모질던지. 겨울이면 얼굴이 트고 습진으로 손등이 갈라지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에 온 삭신이 쑤셨다. 쉴 새 없이 그물을 내리고 거두고, 생선 분류하고, 창자 따내고, 소금 뿌리고……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던 그때 최대 목표는 그린카드였다. 그것만 손에 쥐면 내 인생 피는 거라고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강제추방이라도 당하면 다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나날이 느는 건 독기뿐이었다.

‘두고 봐라, 반드시 보란 듯이 내가 설 땅을 찾는다. 내 자리를 찾을 테다.’

일부러 한적한 시골 마을만 골라 묵묵히 고깃배 타면서 현실에 대한 오기와 증오는 철저히 감추고 살았다. 그리고 그때 정말 생선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 한국에선 없어서 못 먹는 귀한 생선이 쓰레기통에 처박힌 걸 주워다 죽을 끓여 먹고, 구워 먹고, 찜해 먹으면서 이걸 가공하면 얼마든지 상품이 될 텐데…… 지금도 누가 자본만 대준다면 상품 개발 노하우는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지금 주방에서 내가 만드는 음식의 레시피는 거의 다 그때 개발한 것들이다. 제일 자신 있는 음식이 꽃게 양념무침과 간장게장이다. 신선도가 최우선인 양념 무침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주문제로 바꿔 명맥을 유지하지만 근방에선 맛있기로 소문났다. 또 자신 있는 게 홍합 요리다. 워낙 싸서 요리 재료라기보다 포장마차에서 국물 내는 데나 쓰던 홍합을 소스를 개발해 가게를 대표하는 주 메뉴로 각광받았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이리 저리 떠돌다 연줄 연줄로 삼 대째 게잡이로 살아온 톰슨 씨와 짐 부자(父子)와 연결되면서 내 인생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유독 인종차별이 심했던 그 지역에서 아무 편견 없이 나를 받아주었고 한 가족처럼 대해줬으며 그린카드를 손에 쥐게 된 것도 그들 덕이다. 그들과 함께 한 10여 년의 세월동안 나도 어느새 게잡이의 명수가 됐고 게에 대해서라면 속속들이 알게 됐다. 

석 달째 펴놓은 이부자리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어느새 녀석은 죽은 듯이 누워 꿈쩍도 안 한다. 

‘미더덕만한 게 딱하기도 하지. 언제 한번 사내구실 하도록 키워주길 했나. 힘쓸 기회를 줬나. 너나 나나 불쌍한 인생이다. 쯥.’

털고 일어나 다시 노트북 탁자를 끌어당긴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게 최고다.

주로 희귀한 여행지를 다녀와 글을 올린 블로그를 한 군데씩 클릭한다. 미 서부 지역은 구석구석 참 많이도 떠돌아다녔다. 티벳…… 조장(鳥葬)의 장례 풍습이라……? 흥미가 동해 얼른 클릭 한다. 생생한 컬러 사진과 함께 직접 조장을 보고 온 사람이 쓴 여행기를 잡지에서 퍼다 올린 블로그다. 죽은 사람의 몸을 새의 먹이로 준다는 얘길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 광경을 찍은 사진은 처음 본다. 온통 뻘겋게 피칠갑을 한 사진이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침을 꿀꺽 삼키고 글을 읽어 내려간다. 천장사(天葬師)인 늙은 라마승이 옷을 다 벗긴 시체에서 귀를 베어 유족들에게 기념으로 주고 나서 칼로 가로 세로 독수리들이 뜯어먹기 좋게 칼집을 내는 동안 옆에서 유족들이 향을 피우고 경을 읽는다. 온통 피가 낭자한 시체에서 천장사가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독수리들이 밥상머리에 나란히 앉은 흥부네 자식들처럼 부리를 처박은 채 인육을 뜯어먹기 시작한다.

‘전혀 서두는 기색이 없군 그래.’

아주 오랫동안 길들여진 듯 산 자에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기색이다. 또 다른 사진을 보니 아귀아귀 시체에 들러붙은 놈들의 털도 뻘겋게 물들었다. 놈들의 덩치가 장난이 아니다. 긴 창자를 꺼내 꾸역꾸역 처먹는 놈, 살점을 물고 체머리를 흔드는 놈, 부리를 아예 살 속에 처박고 꽁지를 하늘로 쳐든 놈.

‘한낱 독수리란 것이 죽은 자의 영혼을 극락정토로 데려다준다고 믿는 그들의 무지가 가소롭군. 하긴 인간만사 죽으면 끝인데 영혼이 떠난 몸뚱이, 아무렴 어떤가.’

숨통 끊어진 순간 이미 육신은 신선도도 떨어져 급속도로 썩기 시작하는 생선과 다를 바 없다. 뭍으로 끌어올려지는 순간 성질 급해 펄떡이다 제 풀에 죽어 자빠진 물고기나 심장 박동이 멈춘 사람이나 다를 바 무언가. 맨 마지막 사진을 보니 두개골과 허여스름한 뼈가 고스란히 돌무더기에 놓여 있다. 사진들을 더욱 꼼꼼히 들여다본다. 어느새 아랫도리가 묵지근하다. 녀석이 꾸물꾸물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 느낌이 낯설지 않다.

‘몇 달 전…… 그래, 그날의 느낌도 이랬지. 녀석이 어찌나 미친 듯 몸부림치던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녀석을 달래듯 어루만지며 탐욕스럽게 사진을 들여다본다. 긴 머리채로 봐서 여자다. 긴 원통형의 허벅지뼈와 정강이뼈가 놈들의 날개에 쓸려 이만치 나동그라졌다. 앞치마를 두른 늙은 중이 뼈를 주워 모으고 있다.

‘채 한 시간도 안 돼 한 풍만하였던 여인의 몸이 뼈만 남은 상태가 되자 이번에는 천장사가 해골에 매어있는 끈을 잡아끌어 반석에 올려놓고 망치로 해골과 뼈를 잘게 부순다. 그리고 티벳인들의 주식인 볶은 밀보리 가루인 짬바를 뿌려 뼛가루와 함께 버무려놓자 물러나 있던 독수리들이 다시 덤벼들어 그것마저 깨끗이 먹어 치운다. 월요일에 태어나 다와[月]라는 이름으로 아들 딸 4남매를 낳고 40대 중반까지 살았던 여인은 머리카락만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 여인은 지수화풍 4대(四大)로 모였다가 풍대(風大)로 변해 독수리를 타고 고향인 중음계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1) 게걸스레 다섯 장의 사진을 번갈아 들여다보는 동안 팬티 속의 손놀림도 점점 속도가 붙는다. 못된 놈의 시체는 독수리들도 먹지 않는데, 아버지 시체가 군데군데 남아서 속상해요. 아들이 울먹였다는 대목에서 나는 정점을 향해 허억 허억, 기어오른다. 배가 부른 놈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 만족스럽게 날개를 털거나, 제 날개 속에 고개를 처박고 피 묻은 부리를 닦았다. 무리에서 빠져나온 한 놈의 눈이 나를 겨냥한다. 오목눈을 사납게 치뜨고 날개를 당당히 펼친 채 잔뜩 경계 태세를 취했다. 오종종한 낯바닥에 사납게 치뜬 눈이 낯익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어디서 봤지……’

눈빛에 찔려 잠시 허둥대는 순간 녀석이 맥없이 픽 고꾸라진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런 제길! 아 씨발……’

  

3.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매장이 어수선하다. 토요일 밤은 특히 채소와 과일 매장의 물건이 싹 빠진다. 오늘은 특히 더 하다. 일주일 넘게 계속된 폭우로 채소와 과일값이 폭등해서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물건을 적게 떼어 온 데다 그나마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 가서 허섭쓰레기조차 안 남았다. 자꾸만 시선이 야채 매대에 가 머문다. 주말 밤이면 팔고 남은 시든 채소를 직원들에게 헐값으로 넘기는데 오늘은 그것도 틀렸다. 일부러 토요일 밤 근무를 자청했는데.

이 시간쯤 되면 몸이 물 먹은 솜뭉치처럼 퉁퉁 붓고, 팔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약을 끊고 난 뒤로 더욱 불안하고 무기력하다. 집중이 안 되다 보니 계산이 자꾸 틀린다. 옆의 박 언니는 벌써 다 끝나 동전을 세고 있다. 셔터 내리기 직전에 뛰어든 손님이 소주와 우유, 라면 2개를 던지듯 내 앞에 밀어놓고 지갑을 연다. 지폐를 세다 또 놓쳤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매장 매니저의 뱀처럼 차가운 눈초리가 느껴진다. 땀으로 유니폼이 착 달라붙었다. 머리맡에 달린 폐쇄회로 TV 렌즈에서 잠시도 놓여날 수 없다.

“아직 멀었어?”

박 언니가 다가와 나를 슬그머니 밀어내고 빠른 손놀림으로 정산을 한다.

“고마워요.”

매장 직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내게 관심을 보여주고, 난처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도 오늘은 계산이 딱 맞아 떨어졌는지 별 말없이 언니의 손놀림이 재다. 포스의 전원을 끌 때까지 나는 죄인처럼 옆에서 옹송그린 채 꼼짝 못하고 지켜본다. 종종 착오가 생기면 돈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딱해 죽겠다는 표시로 언니가 내 등짝을 찰싹 때리곤 했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해! 돈 몇 푼이나 받는다고, 여기다 다 쓸어 넣을 셈이야?

김 구이 코너가 제일 먼저 시마이를 했고, 정육과 생닭 코너 사람들도 다 불을 껐다.

“가자! 피곤해 죽겠다! 빨리 가자아~~!”

그제야 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 뒷문을 나선다. 

“잘 가! 내일 봐!”

하루의 피곤을 털어버리듯 뒷문을 나서자마자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 그들은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좋겠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숨 가쁘게 늘어놓고, 찬물로 솨아 샤워를 하고, 탈탈거리는 선풍기에 타이머를 맞춘 채 한데 엉켜 고단한 몸을 누일 식구들이 있으니.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우산 속에 상반신을 감추고 바삐 걷는다.

‘다행히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났어!’

집으로 숨어든 나는 혼자가 될 때만 자유로워진다. 살아난다. 춤이라도 한바탕 출 것 같다. 병원에서의 입원 생활 내내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러웠던 것도 그런 이유다. 독방은 더더욱 입에 재갈을 물린 듯 못 견뎌했다. 사방에 숨겨진 감시 카메라 렌즈 속에서 나는 한 마리 나방에 불과하다. 핀에 고정된 채 날개만 파닥이는. 그러나 이 지하 월세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화려하게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도도한 팔색조가 된다. 핸드폰에 부재중으로 찍힌 엄마의 전화를 다 지운다. 통화해 봐야 뻔하다.

끈적이는 몸을 찬물로 대충 씻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바탕 화면이 뜰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다. 지구본을 클릭하고 인터넷의 세계로 빠져들면 나는 내가 아니다. 또 다른 내가 되어 자유롭게 유영한다. 더 이상 빨리! 빨리! 재촉하고 다그치는 손님도, 그때마다 쩔쩔매는 나를 차갑게 지켜보는 매니저의 눈길도 없다. 비로소 세상의 감시에서 벗어난 기쁨을 만끽하며 부활하는 것이다.

M사이트에 접속하자 예상대로 편지가 와 있다. 요즘 남자는 하루에 두 통씩도 보낸다. 그런 정성과 관심이 내심 기쁘다. 난 한 번도 주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남자들에겐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근사하고 잘난 남자가 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끊임없이 원하지 않는가. 나도 함께 응하면서 사랑 비슷한 흉내라도 내고 싶다. 남자의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 읽는다. 아주 신사적이고 부드럽고 여유가 넘친다. 그는 많이 배웠는지 매번 화젯거리가 다르다. 편지 내용이 재미있으면서도 정중하고, 나를 무척 배려해준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그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보냈다. 밤, 낮 언제라도 상관없으니 통화하고 싶단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그동안 틈틈이 의학 상식이 올라 있는 사이트를 여기저기 검색해 그럴 듯한 것들로만 모아놓은 내 블로그를 열어서 쭈욱 한번 훑는다. 그리고 최근 한 달 넘게 끊었던 약을 꺼내 두 봉 연거푸 입에 털어 넣는다.

‘어떻게든 안 먹고 버텨보려고 했는데……’

천장 불을 끈 후 열어놓은 블로그에 시선을 박은 채 전화를 건다.

“아, 정말 반갑습니다. 세헤라자데님!”

세헤라자데임을 확인한 그의 목소리가 유쾌하고 밝자 적이 안도한다. 그는 진심으로 내 전화를 기다렸고 반가워하고 있다.

“역시 목소리도 매력 있고 지적이시군요! 엄, 언제 전화 주시려나 내심 초조했는데, 엄, 오늘은 정말 유쾌한 밤이 될 거 같군요.”   

그는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고, 얼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듯 중간 중간 숨을 고르면서 엄, 엄 뜸을 들인다.

‘외국에서만 20년을 살았으니 당연하지.’

그의 더듬는 말버릇까지 매력적이다. 재빨리 M사이트에 접속해 그의 프로필 보기를 누른다. ‘태평양 연안 뉴포트 롱비치에서 함께 푸른 대양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를 찾습니다. 파티를 주도할 수 있는 상냥한 성격에 세련된 외모와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한국 여성이면 OK. 무역업을 하느라 세계 각지를 떠돌아 다녔는데 이제 한군데 정착하고 싶네요. 한국과 미국, 어디라도 괜찮습니다.’

“저도 내일은 강의가 없고, 오후에 예약 환자가 한 명 있어 잠깐 병원에 나가면 돼요. 그래서 오늘 밤 아주 느긋해요.”

“거, 아주 잘됐군요. 엄, 저야 뭐 늘 시차 때문에 외국 거래처와 통화할 때 주로 밤에 하느라 늦게 자거든요. 그래서 엄, 아침에 느지막이 출근하면 직원들 보기에 민망할 때가 많죠. 하하하 그나저나 엄, 세헤라자데님은 전공이 뭔가요?”

“제 전공이요. 알아맞혀 보세요. 호호호. 제이슨님은 건강하세요? 어디 특별히 아픈 데 없으시고요?”

“저, 저요? 아주 건강합니다. 다만 엄, 신경 많이 쓰고, 피곤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혈압이, 혈압이 좀 오르는 거 같아요.”

“아, 혈압이요……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계속되면 반드시 미리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아요. 사실 고혈압 그 자체로 인한 증상은 없지만 가끔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지럽다 이런 호소를 많이 하거든요. 그리고 혈압으로 인한 합병증도 위험하니까요. 특별한 증상이 없다 해서 방치하다 합병증이 발병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는 환자들도 많아요. 주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시구요. 정 심하면 나중에 우리 병원에 한번 나오세요. 호호호.”

졸지에 내과 전문의가 되어 인터넷 검색 창에 뜬 질문의 대답을 주절거렸다.

“아, 그럼 혈압 전문의 선생이시군요?”

‘혈압 전문의? 그런 전공도 있나? 에라 모르겠다.’

“아이, 전 이렇게 사적인 전화에서까지 병원 얘긴 하고 싶지 않아요. 워낙 저도 스트레스 많이 받고 골 아픈 일이라서요.”

“암요, 암요. 사람 대하는 게 엄,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일인데요. 알겠습니다. 제가 잠시 실수를 했군요. 엄, 이젠 가능하면 세헤라자데님 마음 편안하고 휴식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얘기만 나누도록 하죠.”

“근데 님 프로필을 보니까 뉴포트 롱비치가 나오던데 거긴 어떤 곳이에요?”

“엄, 아마 님이 한번 가보시면 너무 아름다워서 한국에 다신 안 오신다고 할걸요? 하하하 뉴포트에 있는 제 집 이층 테라스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엔 고래와 물개가 넘실거리고, 통발을 내리면 한가득 꽃게와 은빛 멸치들이 올라오는데 태양빛을 받아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엄, 게다가 바다 빛은 옛날 우리 어머니 치마저고리처럼 옥색이라 엄, 마당의 아름드리나무에 매달아놓은 해먹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처, 천국이 따로 없죠.”

“어머나…… 세상에?”

“저희 집 뒤뜰엔 사슴도 자주 내려옵니다. 어쩌다 저랑 딱 마주치면 엄, 한참 빤히 쳐다보다가 서로 해칠 마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각자 제 할 일을 하죠. 하하하. 그러다 보니 엄, 이젠 사슴들이 제 친구까지 데리고 와요. 사슴 눈이 얼마나 예쁜지 아십니까?”

“어머나…… 뒷마당이 얼마나 넓기에 사슴이……요?”

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무릎을 꿇고 귀를 쫑긋 세운다. 하마터면 우리 병원 뒤뜰에도 동물원이 있다는 얘길 할 뻔했다. 경기도 야산 기슭에 세워진 병원에선 환자들의 정서에 도움을 준다고 철망 안에 토끼며 오리, 금계, 꿩 따위를 한데 풀어놓고 상태가 양호한 환자들에게 당번을 정해 풀을 뜯어 먹이고 청소를 하도록 했다.     

요즘은 매일 밤마다 통화를 한다.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이어지는 긴 통화에서 그는 늘 새로운 얘깃거리를 찾아내 나를 웃게 만들고,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함께 태평양 연안의 뉴포트 비치를 거닐곤 했다. 다정하고, 자상하고, 세심하게 이 말 저 말 늘어놓는 그가 싫어하는 게 한 가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질문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조금이라도 꼬치꼬치 캐묻는다 싶으면 금세 화제를 바꾼다. 그럴 때면 비록 전화선이지만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뚝 끼친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잡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선뜩하게 끼치는 차가움 앞에서 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움츠러들곤 했다. 무얼까, 차가움이 뚝뚝 묻어나는 이 느낌은……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누워 곰곰이 그가 한 말을 곱씹어보면 정작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자꾸 딴 이야기로 새거나 침묵에 빠져들 때가 많아졌다. 그런 밤이면 나는 더욱 자기혐오증에 빠진다.

‘내 어떤 말이 그를 마음 상하게 했지? 뭔가 내 말에 기분이 상했던 거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자상하고 친절하던 사람이…… 나한테 실망한 걸까. 아, 난 정말 왜 이렇지? 아무리 관계를 잘 이끌어보려 해도 자꾸 틀어지기만 해. 어떡한담? 그를 잃고 싶지 않은데.’

전화를 끊은 밤이면 나는 더욱 머리가 아프고 불안해져 약을 먹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그가 연락을 끊는다면 살아갈 자신이 없다. 상상도 하기 싫다. 특별히 바라는 건 없다. 뉴포트 비치,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근사한 커피, 화려한 파티, 외국 여행…… 다 내겐 그림의 떡이다. 다만 이렇게 계속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와 문자로 사랑을 속삭이고 관심을 보여주면 그걸로 족하다. 또다시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무관심 속에 패대기쳐지는 건 싫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 더 싫고.  

  

4.

 

장마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옆 식당들도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석 달 전 근처에 있던 신문사가 새 사옥을 지어 이사하고 지역 민영 방송국은 문을 닫았으며 일대에 재개발이 시작되자 인근 상가들이 폭탄을 맞았다. 특히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루던 손님들이 뚝 끊어져 울상이고, 그나마 남은 손님들 갖고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 그 중 제일 피를 본 건 나다. 20년 만에 귀국해 한국 물정에 어두웠던 내가 여우같은 주인 할망구 입심에 속아 전 재산 털어 계약할 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여기 목이 좀 좋아야지. 방송국이랑 신문사 사람들 입이 몇이야? 점심장사에 저녁 술손님까지 합하면 앉아서 돈 긁어모으는 거야. 이 근처에 그럴싸한 횟집이 없으니 김 사장이 들어오면 땅 짚고 헤엄치는 거지. 뭘 망설여? 내가 그동안 밥장사하면서 끌어놓은 단골 많겠다, 목 좋겠다, 권리금 싸겠다, 수지맞았지. 그래도 지하라 어쩐지 말이죠. 엄, 횟집은 입구에 대형 수족관도 놓아야 하고. 실내가 환해야 하는데 어두컴컴하고 엄…… 너무 구석지잖아요. 전기는 뒀다 어디 쓰나? 전깃불 훤히 밝히면 지하나 일층이나 그게 그거지. 내가 뭐 여기 내놓고 싶어서 내놓는 줄 알아? 평생 밥장사로 돈도 모을 만큼 모았고, 이젠 관절염까지 도져서 서 있기도 힘들다 보니 자식들이 그만 쉬라고 오죽 성화를 부려야지. 아, 싫음 관둬요. 참 내! 한참 장사가 잘 됐는데 건물이 워낙 낡아 인테리어 리모델링하던 중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당분간 자신이 계속 하는 것처럼 나와 앉아서 단골 안 떨어지게 해주겠다고 자청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전적으로 할머니의 말만 믿고 계약했다.

그러나 막상 개업하고 옆 가게 상인들을 통해 들은 말은 사실과 너무 달랐다. 장사가 안 돼 진작 문을 걸어 놓았던 빈 상가였고, 이미 방송국 사정이며 신문사 이사 간다는 소문이 돌아 지역 상가들이 온통 술렁이던 터라고 했다. 설마, 설마 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주인 할머니를 찾아가 따지고 가게를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씨도 안 먹혔다. 기한이 남았는데 한두 푼도 아니고 그 큰 돈을 당장 어디서 구하겠냐며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앞뒤 꽉 막혔냐, 스스로 살 방도를 찾아야지. 그럴 시간에 가게 살릴 궁리를 해라. 오히려 훈계를 했다. 나중에는 아예 만나주지도 않으며 법대로 하든 맘대로 하라고 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울화통만 터졌다. 

게다가 한파가 몰아닥쳤던 연초에 할망구와 오랜 분쟁으로 앙심을 품고 있던 관리소가 영업을 안 하는 일요일 하루, 나한테 한 마디도 통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는 바람에 대형 수족관에 있던 값비싼 활어들이 모조리 폐사해버렸다. 킹크랩과 랍스터, 대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관리소 측은 주인 할머니와 해결하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화내고, 겁주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주먹다짐도 벌였고, 화해의 제스처도 썼다.

주방 아줌마들 다 내보내고 홀에 여종업원 하나만 둔 채 근근이 이어가다 생각해낸 궁여지책이 점심 손님 끌어모으기였다. 국과 찌개는 물론 고급스런 반찬을 7가지나 올린 백반을 3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플래카드를 내걸고 전단지를 돌리자 하루 점심에 300명까지 몰려들었다. 이번엔 인근 식당은 물론 이 건물 지하 식당 주인들이 떼로 몰려와 항의를 했다. 똘똘 뭉쳐 한 목소리로 격렬하게 비난했다.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면전에서 따지고 뒤에서 수군거리던 여자들의 입, 입, 입. 적자를 면해보려던 자구책도 벽에 부딪혔다.

결국 주인 할멈과 관리소를 상대로 각각 소송을 걸고 무기한 휴업에 돌입했다. 식당에 쏟아 부은 공력은 고사하고 본전은커녕 원금 까먹은 거 생각하면 이대로 털고 나갈 수가 없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이가 갈리고 분통 터지지만 좀 더 치밀하고 용의주도하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확보해놓은 증거 자료도 한 박스가 넘는다. 모두들 내 발밑에 엎드려 애걸복걸할 날이 올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무시하고, 괄시하면 열 배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다 타버린 담배를 필터까지 쭈욱 빤다. 진즉에 할멈의 하루 일과와 동선도 다 파악해 놓았다.

‘곱게 늙을 것이지. 교활한 할망구 같으니라구.’

낮잠을 오래 잔 탓인지 밤이 깊었는데도 말똥말똥하다. 아까 여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편지를 안 썼더니 다소 투정과 조바심이 비치는 내용을 계속 보내온다. 관계가 피곤해지는 건 용납 못한다. 벌써 마누라라도 된 양 사사건건 알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한다. 조금이라도 소홀하다 싶으면 대번에 서운한 기색이다. 게다가 무슨 말을 하면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시시콜콜 캐묻는다. 며칠 뜸했더니 오늘은 문자로 칭얼대기까지 한다. 그 나이 먹고도 그런 정열이 남았다는 게 놀랍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나……’

담배를 피워 물고 어슬렁어슬렁 홀로 나간다. 서랍에 가지런히 넣어둔 칼을 죄 꺼낸다. 조리사에게 칼은 병사의 총과 같다. 복도에서 희미하게 비쳐드는 비상구 표시등 불빛에 날을 비쳐본다.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뜩인다. 너무 오래 손에서 멀리했더니 무뎌진 것 같다. 잠 안 오는 밤이면 종종 칼을 간다. 숫돌을 꺼내고 칼을 쭈욱 늘어놓은 채 차례대로 하나씩 집어 든다. 경건한 자세로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오로지 칼날에 몰입할 때 칼과 나는 하나가 된다. 슥 슥 슥 슥 칼 가는 소리는 항상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사악 사악 사악 사사악 삭.

오늘따라 영 집중이 안 되고 자꾸 흐트러진다. 숫돌과 날이 자꾸만 겉돈다. 밀어내고 미끄러진다. 대형 냉동고와 냉장고의 모터음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그것들이 엇박자로 윙윙거리는 통에 칼날이 숫돌에 미끄러지는 소리를 자꾸 놓친다. 칼은 가는 방향도 중요하지만 숫돌과 마찰해 미끄러질 때의 느낌과 소리가 중요하다. 다시 정신을 한데 모으려는데 천둥치듯 갑자기 냉동고가 두웅~하는 바람에 새끼손가락을 움찔, 오므렸다. 입에 물자 왈캉왈캉 배어나는 짭조름한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오래 맛보지 못한 비릿함이다. 날로 먹는 인육이 이런 맛일까. 사진 속의 독수리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코드를 빼버릴 양으로 냉장고를 열어본다. 식자재가 꽉 들어찼다. 냉동고를 연다. 얼린 대구탕 들통과 생선들 그리고 또……

지난 봄, 가게 문을 닫고 퇴촌 집에서 며칠 머리 식히고 오던 길이었다. 앞에서 성가시게 알짱거리는 차가 한 대 있었다. 1차선에서 시종일관 규정 속도를 고집하며 아무리 헤드라이트를 번쩍여도 꿈쩍도 안 했다. 운전을 못하면 2차선에서 다소곳이 갈 것이지, 1차선에서 고집부리는 자식을 혼내줄 양으로 추월하며 힐끗 보니까 여자였다. 태연하게 앞만 바라보고 여전히 1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바쁠 것 없는 나는 그 차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적한 1차선으로 접어들었다.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신호 대기 상태에서 일부러 들이받았다. 아이구, 많이 다치시지 않았어요? 일단 차를 좀 뺍시다. 옆자리로 가시죠. 여자는 철저히 무표정했다. 그게 나를 더 화나게 했다. 두 대를 한갓진 공터로 옮겼다. 목뼈가 짓눌린 여자가 오목눈을 치떴다. 버둥거리던 두 손이 맥없이 축 늘어졌다. 동시에 묵지근해진 아랫도리를 벌어진 여자의 입 속에 처박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문득 차창을 바라보니 함박눈처럼 꽃잎이 점점이 날리고 있었다. 마침 퇴촌 집에서 들고 나온 전기톱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번호판 떼어낸 차는 인터넷을 통해 동남아에 중고차를 수출하는 밀수출 업자에게 넘겼다.

유리벽에 기대어 어둠침침한 복도를 바라보던 내 시선이 출입구 옆에 놓인 대형 수조에 머문다.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 있다. 돌리다 만 전단지, 플래카드, 쓸데없는 우편물, 손님들이 놓고 간 우산, 여과기, 에어펌프…… 주방 바닥엔 갈다 만 칼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다. 홈통을 타고 내려온 친구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갑자기 할일이 생각난 듯 여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내일 저녁 우리 식당에서 님을 위해 은대구 찜과 향기로운 와인을 준비해놓겠습니다. 어디든 모시러 갈게요. 오실 거죠?’ 

  

우리의 공생 관계는 끝났다. 홈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 소리가 더욱 거세다. 이 밤을 집어 삼킬 듯. 내일 여자는 반드시 올 것이다. 《문장 웹진/ 2006년 11월》


 

1) 월간 《월광》 2000년 7월호 ‘티벳의 조장’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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