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도 늙은 팥죽집 여자

 

늙고도 늙은 팥죽집 여자


서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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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가 언제부터 그곳에서 팥죽을 팔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노파의 팥죽을 사먹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더러 눈과 귀가 어두운 이들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늙고도 늙은 노파의 맛난 팥죽집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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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을 새로 단장한 고층 아파트와 빌라들이 웅기웅기 모여 있는 빌라촌은 차도를 사이에 두고 편을 가르듯 위쪽 아래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차도를 따라가다 보면 아담한 운동장을 끼고 있는 초등학교가 있고 아파트 초입에서부터 학교로 이어지는 도로변을 따라 상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도로변에 있는 상가 건물 출입구로 들어가면 지하에 있는 가게는 찾을 수 없었다. 건물 지하의 출입구가 도로 반대편, 빌라 쪽을 향해 나 있기 때문이었다. 도로 쪽에 있는 출입구 안에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만들지 않고 건물 뒤쪽에 따로 입구를 만든 까닭은, 도로 쪽에서 바라보면 지하가 분명했지만 지대가 낮은 빌라 쪽에서 보면 딱히 지하라고 할 수 없는 비스듬하고 어정쩡한 위치 탓이었다.

건물 벽에 나붙은 주소 없이 도저히 집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모양새가 비슷비슷한 빌라 쪽으로 출구가 난 가게들 속에 팥죽집은 눈엣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주변의 아파트며 빌라가 들어선 지 오륙 년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이 많은 데다 팥죽집 바로 옆에만 해도 상가 한 채가 들어서고도 남을 만큼의 땅이 빈 채로 잡초며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십수 년 동안이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을 것 같은 팥죽집 유리창 너머로 나무 탁자 몇 개가 보이고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면 헐거워진 나사가 빠져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허름한 간판이 출입문 위쪽에 기우듬하게 걸려 있었다. 변변한 상호도 없이 ‘팥죽’이라고만 적힌 조잡한 간판이 나붙은 팥죽집은 외관이 말끔한 상가 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주변의 아파트며 빌라며 상가들이 들어서기 전부터 내내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우중충한 게 볼썽사나웠다.

팥죽집은 언제나 오전 아홉시쯤 문을 열었지만 문 닫는 시간은 들쭉날쭉 제멋대로였다. 팥죽집 주인이자 주방장이고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노파는 아침에 쑤어놓은 팥죽이 해 떨어지기 전에 다 팔리고 나면 미련 없이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초저녁 무렵 팥죽을 먹으러 왔다가 솥이 비었다는 말을 듣고 맥없이 돌아가는 손님에게, 노파는 조금도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내일 일찍 와서 먹으라는 말을 할 뿐 아침마다 무쇠솥에 안치는 팥의 양을 늘리지는 않았다.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서 짐꾼들을 상대로 국밥을 파는 가게처럼 허름하고 구질구질해 보이는 팥죽집이었지만, 오전부터 드문드문 손님이 들기 시작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으레 그렇다는 듯이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키가 작고 깡마른 노파는 오후 무렵이 되면 허리가 구부러져서 고개를 들기도 어려워 보였는데, 손님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느릿느릿 주방과 홀을 오가며 팥죽을 날랐다. 가는귀가 먹었는지, 손님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노파는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는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을 했는데, 차도를 지나가는 자동차가 내지르는 경적소리에도 눈살을 찌푸렸고 이따금 굴착기가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몸을 부르르 떨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팥죽집 노파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노파에게 단골손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온 손님도, 두 번째 찾아온 손님도 날마다 팥죽을 먹으러 오는 손님도 노파에게는 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가게 겉모습만 보고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번 노파의 팥죽을 먹어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그것은 분식집에서 파는 라면 한 그릇에도 미치지 못하는 싼 가격 때문만도, 큼직한 질그릇 가득 담겨 나오는 넉넉한 양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 맛이 있었다. 팥죽과 함께 나오는 김치 또한 별미였다. 한겨울에는 김장김치와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동치미가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열무물김치와 배추김치가 보시기 가득 담겨 나왔다.

팥죽집에서 여러 번 팥죽을 먹은 사람들은 노파가 손님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불친절하기 때문에 데면데면하게 대해도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과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특별한 맛 때문에 팥죽집은 주말이 아니더라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모들을 따라 팥죽을 먹으러 온 아이들은 유난히 팥죽집 노파를 무서워하고 겁을 먹었다. 주방에 걸린 무쇠 가위로 되는 대로 자른 것 같은 짧은 백발과 작고 마른 몸에 늙고도 늙은 얼굴은 온통 자글자글 주름투성인 노파가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볼 때 아이들은 혹시 동화책에서 보았던 마녀 할멈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친절은커녕 최소한의 손님에 대한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는 노파가 어린아이라고 해서 특별히 붙임성 있게 대할 리 없었다.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팥죽집과 노파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노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파는 팥죽을 먹으러 오는 손님은 물론이고 팥이며 밀가루며 채소를 가져오는 상인들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파에게 그들은 그저 팥이나 밀가루나 채소를 가져다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노파가 여든이나 아흔 혹은 백 살은 훨씬 넘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아무도 정확한 나이를 알지는 못했다. 평생 팥죽을 쑤어 번 돈으로 학비가 없어서 진학을 못하는 학생들을 돕고 있다거나 날마다 벌어들이는 현금을 곰팡이가 슨 장판 밑에 모아 놓는다거나, 변변한 직업도 없이 놀고먹는 아들이 전부 가지고 간다는, 확인할 길 없는 소문만 난무했다.

노파는 사람들이 뒤에서 무슨 말을 하든 아랑곳 하지 않고 갈퀴 같은 손으로 아침마다 팥을 삶고 밀가루 반죽을 하고 김치를 담그고 밥을 지었다. 노파는 늘 쌀과 현미를 반씩 섞은 밥과 김치 두 가지를 놓고 주방에 서서 밥을 먹었다.

아침 일찍 무쇠솥에 안친 팥이 손가락만 대도 제 풀에 터져버릴 만큼 질퍽하게 익으면 노파는 굵은 체를 가져다가 김이 빠진 팥을 손으로 주물러가면서 팥물을 받았다. 커다란 함지에 받아놓은 팥물을 윗물과 가라앉은 앙금으로 나눠 먼저 윗물을 솥에 붓고 끓이다가 걸쭉한 앙금을 넣고 한소끔 끓였다. 갈아놓은 시금치를 섞어 밀가루 반죽을 하고 열무를 버무리고 나면 얼추 가게 문을 열 시간이 되었다.

노파가 주방 조리대 앞에 서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슬그머니 출입문이 열리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출입문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 탁자로 가서 다리 쪽에 벌겋게 녹이 슨 의자를 빼고 거기에 앉았다. 남자가 설탕과 소금 단지가 놓인 탁자에 팔을 괴고 앉아, 얼룩으로 더러운 벽에 나붙은 차림표를 보고 있을 때 반대편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가 천천히, 크게 아홉 번 종을 쳤다.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자는 그곳에서 산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노파의 팥죽을 먹어 보지 않았고 팥죽집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가 우연히 팥죽집을 발견한 남자는 한밤중에 인적이 없는 산길에서 외딴집을 보기라도 한 듯 깜짝 놀랐다.

밥을 먹고 있던 노파는 음식이 담긴 쟁반 하나가 들락거릴 수 있게, 반달 모양으로 좁게 뚫려 있는 구멍으로 손님의 행색을 살핀 뒤 주방에서 나왔다.

“뭘 드릴까?”

탁자 위에 물이 담긴 컵을 내려놓으면서 노파가 물었다.

팥죽집을 발견했을 때, 오래 전부터 꼭 한번 먹고 싶었던 음식이 바로 팥죽이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남자의 머릿속으로 날아와 박혔다. 귀신에게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왔지만 남자는 팥죽이 아침 식사 메뉴로 썩 적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혹 다른 음식이 있을까 하고 둘러보았지만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곳곳에 균열이 있는 더러운 벽에 나붙은 종이에는 두 개의 메뉴 외에 다른 것은 적혀 있지 않았다.

“딴것 읎고 팥죽하고 팥칼국수 둘 뿐이여.”

머뭇거리는 남자에게 노파가 오금을 박듯 말했다.

“팥칼국수 한 그릇 주십쇼.”

남자는 아침 한 끼 때운다는 심정으로 노파에게 팥칼국수를 주문했다.

팥칼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남자는 팔꿈치를 탁자에 괴고 앉아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아침인데도 실내는 그늘이 진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반쯤은 지하에 있고 반쯤은 지상으로 나와 있는 위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출입구와 주방 입구를 뺀 벽에는 가게에서는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이 잔뜩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두서없이 쌓여 있고 여느 음식점에서는 볼 수 없는, 거칠고 투박한 나무 탁자 위에는 작은 단지 두 개와 연필꽂이처럼 생긴 분홍색 플라스틱 수저통이 놓여 있었다.

주방에 창처럼 뚫려 있는 반달 모양의 구멍으로 언뜻언뜻 노파의 모습이 보였는데 갑자기 그 곳으로 노파의 강파른 손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칼국수 그릇이 튀어나왔다. 팥칼국수가 담긴 그릇을 구멍 밖에 있는 나무 선반에 밀어놓고 노파는 주방에서 나왔다.

알루미늄 쟁반 위에 뜨거운 팥칼국수 그릇과 김치보시기를 담아 들고 노파는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로 왔다.

노파가 탁자 위에 김이 펄펄 나는 팥칼국수와 열무김치를 놓고 가자 남자는 느리게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설탕과 소금 단지 뚜껑을 열어놓고 간을 보듯 팥칼국수 한 숟가락을 떠먹어 본 남자는 도로 뚜껑을 차례로 닫고 뜨거운 팥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저 아침 한 끼를 때우겠다는 심정으로, 마땅한 메뉴가 없었지만 도로 나가기도 귀찮아서 에멜무지로 주문했던 팥칼국수가 남자의 오감을 떨게 만들었다. 그는 노파가 가져다 준 빈 접시에 연둣빛을 띤 칼국수를 덜어서 후루룩 소리나게 먹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한결같이 무기력했던 남자의 몸과 마음이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심하게 요동을 쳤다.

칼국수를 모조리 건져 먹고 그릇을 핥듯이 팥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먹어치웠지만 남자는 선뜻 숟가락을 놓지 못했다.

“더 줄까?”

괘종시계가 걸린 벽 쪽에 붙어 있는 탁자에 팔을 괴고 앉아 있던 노파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노파가 그곳에 앉아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했던 남자는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는 숟가락을 딱 소리 나게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일어났다. 바지 주머니 안에서 천 원짜리 석장을 꺼내 내밀자 노파는 앞치마처럼 차고 있던, 때에 절고 구깃구깃한 전대 속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주었다.

남자는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급히 몸을 돌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노파는 잘 가라거나 또 오라는 인사도 없이 빈 그릇을 주섬주섬 쟁반에 담았다.

평소라면 아침을 사먹고 곧장 집으로 갔을 남자는 웬일인지 집과는 반대쪽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남자는 무작정 걸었고 집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나온 게 신경이 쓰였지만 거리에는 생각 외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평일 오전에 하릴없이 길을 걷는 일에 남자는 익숙하지 않았다. 열에 아홉은 자신의 나이보다 예닐곱 살쯤 적게 보는 겉모습이 오히려 성가실 때가 많았는데 남들보다 젊게 보이는 외모가 남자의 퇴직 시기를 늦추어 주지는 못했다.

회사로부터 이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남자는 주인에게 버림 받은 망아지가 된 심정이었다. 자식들은 이미 제 앞가림 정도는 할 나이였지만 앞으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남자는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고 숨길 이유도 없었다. 퇴직금이며 약간의 저축이 있었기 때문에 밥을 굶을 걱정은 없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돈도 아닐 뿐더러 당장 하루하루를 때워나갈 일이 난감했다.

남자의 아내는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렸다. 보험 상품 판매며 화장품 외판을 하느라 평소 발이 넓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인 여자인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제 그만 떨어져 살자는 아내의 말이 이혼을 뜻하는 것인지 별거를 말하는 것인지 남자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헤어져 살겠다는 이유가 기껏 더는 밥을 짓고 싶지 않다는 데에는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퇴직금에서 정확히 절반의 돈을 떼어가지고 나갔다. 혹시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이들 집에 얹혀 지내는 게 아닐까 해서 알아보았지만 자식들은 엄마가 집을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언제고 닥칠 일이었지만 남자가 한사코 퇴직의 시기를 늦추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아내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벼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거리 건널목에서 남자는 잠시 망설였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내처 걷고 싶은 마음이 서로 줄다리기를 했다. 큰 길로 나오자 사람들 숫자도 눈에 띄게 늘었고 무엇보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등줄기에서 끈적끈적 땀이 흘렀다. 집에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이 없는 남자는 슬리퍼를 끌고 헐렁헐렁 건널목을 건넜다. 하루 세 끼를 혼자 해결하는 일이 이토록 고역스러울 거라고 남자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남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고통을 주기 위해 떠난 거라면 아내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남자는 버스 정류장에 있는 가판대에서 스포츠신문 한 부를 샀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친구도 없는 남자에게 신문의 활자는 유일한 낙이고 벗이었다. 직장에 매여 있을 때는 등산이나 낚시 따위에 취미가 없었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고 날마다 보는 회사 직원들 외에 친구가 없어도 불편하거나 아쉽지 않았었다.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서 선 채로 스포츠신문을 펼치고 기사를 읽던 남자는 문득 자신의 일탈이 팥칼국수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할멈의 팥칼국수는 단순히 맛있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래 전에 잃어버린 미각을 일깨워주는 깊고 오묘한 맛이었다. 외관으로 보아 팥죽집은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을 게 분명했고 일부러 피해 다니지 않았는데 그동안 눈에 띄지 않다가 땅에서 솟기라도 한 듯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이 남자는 아무래도 이상했다.

진작 미각을 잃었을 것 같은 늙고도 늙은 할멈이 뜨거운 팥칼국수를 가져 왔을 때도 남자는 그저 하루 세 끼를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고 답답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른 아침 혼자 밥을 사먹으러 온 남자의 처지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처진 눈꺼풀 아래로 가늘게 찢어진 노파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진땀이 흘렀다. 딱히 무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남자는 아침에 눈 뜨면 매번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이 반쯤은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파의 팥죽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기쁨과 잃어버린 맛을 찾아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남자는 팥칼국수 한 그릇이 잠자고 있던 미각은 물론이고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까지 차근차근 불러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튿날 남자는 전날과 같은 시각에,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팥죽집으로 갔다. 밤사이 팥죽집이 사라졌을 리 없는데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때문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남자는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서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앉았다.

“무얼 드릴까?”

노파가 주방에서 나오면서 물었고 남자는 꾸물대지 않고 팥죽을 달라고 말했다.

노파가 주방으로 가자 남자는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뽑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팥죽집은 어둡고 눅눅했다. 더러운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천천히, 크게 아홉 번 종을 쳤다. 팥죽집에는 남자와 노파 둘뿐이었다.

한동안 새알심이 들어 있는 뜨거운 팥죽을 정신없이 먹던 남자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노파가 탁자에 두 팔을 괴고 앉아 쳐다보고 있었지만 남자는 어제처럼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릇에 남아 있는 팥죽을 싹싹 긁어 먹은 뒤 남자는 천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내밀었고 노파는 때에 절어 있는 전대 속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주었다. 남자는 곧장 나가지 않고 뼈마디가 앙상한 노파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노파는 잘 가라거나 또 오라는 인사 한마디 없이 주섬주섬 빈 그릇을 치우고 있었다.

오늘은 남자의 스물여덟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죽은 사람의 생일에 나이를 헤아리는 게 부질없는 것처럼 이제 남자에게 결혼기념일은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 되었다. 아내와 살았던 스물여덟 해 동안 남자는 단 한 번도 밥을 짓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아내가 차려놓은 밥을 먹는 건 숨을 쉴 때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때때로 아내가 남자보다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음식을 시켜 먹거나 외식을 했다. 주방은 아내의 영역이었다. 남자는 아내에게 특별한 음식을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식당에 가서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은 뒤라도 정해진 가격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처럼, 남자는 날마다 직장에 나가 일을 했고 꼬박꼬박 월급이며 상여금을 아내에게 가져다주었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된장을 푼 뚝배기에 야채며 두부를 넣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식사를 끝낸 뒤 그릇을 씻어 제자리에 넣어두는 일은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쉰다섯 해를 살아온 동안 남자는 오로지 완성된 밥을 먹는 역할에 충실했고 자신의 처지가 변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남자는 날마다 오전 아홉 시에 팥죽집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서 팥죽이나 팥칼국수를 먹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팥죽을 먹으러 오는 남자에게 노파는 매번 똑같이 무얼 먹을 거냐고 물었고, 땀을 뚝뚝 흘리며 팥죽이나 팥칼국수를 먹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자는 언제나 첫 손님이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의 종이 아홉 번 울리기 전에 팥죽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남자는 노파가 이른 아침에 삶아서 체에 걸렀다가 끓인 팥죽을 가장 먼저 먹는 첫 손님이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팥죽을 먹으러 오는 걸 노파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번번이 처음 오는 손님인 것이었다.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었다. 남자는 여름 내내 입었던 반바지를 벗고 긴 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면서 팥죽집으로 갔다. 남자는 아침에 현관문을 열면 늘 똑같은 자리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주워 들 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아무 의심 없이 팥죽집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황한 남자는 시계를 팔목에 차고 있지도 않으면서 순간적으로 자신의 빈 팔목을 들여다보았다. 시계는 없었지만 남자는 이제 몇 초 뒤에 아홉 시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잠시 뒤, 팥죽집 지저분한 유리문 안쪽에서 괘종시계가 정확히 아홉 번 종을 쳤다.

남자는 다시 한번 문을 밀어보고 주먹 쥔 손으로 두드려도 보았다. 더러운 유리창 너머로 나무 탁자들과 두서없이 쌓여 있는 물건들이 보였지만 노파는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굳은 듯 그 자리에 선 채로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던 마음은 의심으로 변했고 혹 노파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번졌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팥죽집 출입문에 기대 서 있는 남자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결국 그곳에 계속 서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해장국집이든 설렁탕집이든 분식집이든 어디든 가서 아침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튿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팥죽집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던 남자는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전혀 배가 고픈 줄 몰랐다. 남자가 매식을 하는 단골 식당은 열 곳도 넘었고 전화를 걸면 집에서 편안히 앉아서 자장면이며 냉면이며 아귀찜이며 족발이며 피자와 통닭에 생맥주까지 먹을 수 있었다. 거실 탁자 위에는 인근에 있는 음식점들의 각종 메뉴가 적힌 두툼한 홍보 책자와 전단지가 쌓여 있었다.

팥죽을 먹을 수 없게 되자 남자는 식욕을 잃어버렸다. 식욕이 사라지자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남자는 아침밥도 굶은 채 한낮이 되도록 이불 속에 누워 있었고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초저녁에 잠들기도 했다.

한밤중에 잠을 깬 남자는 손을 뻗어 탁자 위를 더듬다가 담배가 없다는 걸 알았다. 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바지를 꿰어 입고 집을 나왔다.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아파트 정문 앞에 있는 슈퍼마켓을 지나쳐 도로를 건넜다.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생맥줏집만 어둠 속에 외딴 섬의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남자는 공터 쪽으로 돌아서 팥죽집 출입문 앞에 섰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이 허기가 밀려왔다. 팥죽집 옆에 있는 돈가스 가게도 미용실도 모두 깜깜했다. 남자는 무심코 팥죽집 출입문을 밀어보았다. 당연히 잠겼을 거라고 생각했던 문은 뜻밖에도 맥없이 열렸다. 남자는 손잡이를 쥔 채로 주춤거리다가 이내 빨려들 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본 것과 달리 가게 안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주방에 뚫려 있는 구멍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주방 쪽을 향해 걸어갔고 망설이지 않고 주방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을 열자 남자의 전신으로 뜨거운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장작불 때문에 얼굴이 홧홧했다. 까맣게 그을려 있는 벽 아래 아궁이 두 개가 보였다. 커다란 무쇠솥이 걸린 아궁이 속 장작불은 차츰 사위어가고 있었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솥 가장자리로 쉴 새 없이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문을 등지고 서서 주방 안을 둘러보았다. 벽을 따라 높이 매달려 있는 시렁 위에 흰 사발과 주발들이 차곡차곡 엎어져 있었다. 낡은 찬장과 물이 든 항아리와 고무함지 따위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굵기가 제각각인 나뭇가지들이 끈으로 묶여 있고 바닥에도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솥뚜껑 가운데 달린 꼭지를 마른 행주로 감싸 쥐었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남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뜨겁게 달궈진 뚜껑을 열고 길쭉한 나무 주걱으로 자글자글 끓고 있는 솥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남자는 작은 키와 깡마른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크고 투박해 보이는 손의 임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늙지도 젊지도 곱지도 밉지도 않은 아낙은 무쇠솥 밖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팥죽 같은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낙은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벗어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았다. 아낙은 남자가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뻬 바지 위에 입고 있던 저고리를 벗어부치고 얼굴의 땀을 닦던 수건으로 가슴과 겨드랑이에 흐르는 땀을 훔쳐냈다.

“뜨거울 때 한 그릇 먹을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팥죽이 담긴 사발을 아낙이 불쑥 남자에게 내밀었다. 어느 틈엔가 저고리를 다시 입은 아낙은 남자가 옆에 있다는 걸 알고도 놀라기는커녕 무람없이 얼른 팥죽을 먹으라고 재촉했다.

얼떨결에 팥죽이 든 뜨거운 그릇을 받아든 남자는 선 채로 사발에 꽂혀 있는 숟가락으로 뜨거운 팥죽을 퍼서 입에 넣었다. 팥죽은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웠지만 눈물이 날만큼 맛이 있었다.

아낙은 들통을 가져다 팥죽을 퍼 담고 물이 가득 담긴 함지 안에 들통을 담갔다.

“다 먹었으면 어여 가자.”

열두어 살쯤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짚으로 만든 똬리를 얹은 아낙의 머리 위에 팥죽이 담긴 들통을 올려주었다.

아낙은 두 손으로 들통 가장자리를 쥔 채 천천히 일어섰다. 무거운 들통에 눌려 아낙의 작은 키는 더 작아 보였다.

아이는 바람결에 덜렁거리는 문짝을 활짝 열어젖혀 놓고 아낙이 밖으로 나가길 기다렸다가 도로 안으로 들어와 사발이며 국자며 숟가락 등속이 담긴 고무 함지를 가슴에 안고 뒤따라갔다.

남자는 열린 문 밖으로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마당을 지나 사립문을 나간 두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 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죽사발을 부뚜막 위에 올려놓았다.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깨달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사발과 숟가락이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함지를 들고 아이가 아낙을 따라 어디로 가는지 남자는 알고 있었다. 아이의 어미는 새벽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팥을 삶았다. 일찍 집을 나서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팥죽은 늘 장이 파하기 전에 모두 팔렸다. 장날이 아닐 때는 읍내 차부에서 버스 기사와 승객들에게 팥죽을 팔았다. 읍내에 가게를 내기 위해 어미는 하루도 쉬지 않고 팥죽을 팔았고 번 돈은 모두 신문지에 싸고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이불장 속에 감춰 놓았다.

가게를 얻게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고 어미는 팥죽이 담긴 무거운 들통을 이고 먼 길을 오갈 필요도, 팥죽이 모자라서 팔지 못하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가지고 간 팥죽이 일찌감치 동이 나면 어미는 미련 없이 빈 들통이며 사발을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부엌 솥에 남아 있는 팥죽은 아이의 몫이었다. 팥죽이 조금 모자라다 싶으면 어미는 솥에 밀가루 반죽을 촘촘히 썰어 넣고 팥칼국수를 만들어 주었다. 1년 365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팥죽을 먹어도 조금도 질리지 않는 아이와 달리 어미는 늘 꽁보리밥에 열무김치로 밥을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 때문인지, 모자라서 팔지 못할 정도로 동이 나버리는 까닭에서인지 아이의 어미가 만든 팥죽에 대한 괴이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누구의 입에서 나와서 떠돌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한번 입에 댄 사람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아편처럼 중독성이 있는 물질을 팥죽에 넣어 판다는 소문은 아이와 아이의 어미 귀에도 들렸다. 어미가 팥죽에 소금이나 설탕조차 넣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종종 아이는 정말 어미가 팥죽 속에 무언가를 몰래 넣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아이는 어미가 쑤어준 팥죽을 먹었고 팥죽장사를 나가는 어미를 따라 다녔지만 정작 어미가 팥죽을 먹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날 기억에도 없는 아비라는 남자가 아이와 아이의 어미 앞에 나타났다. 느닷없는 아비의 출현으로 아이와 아이의 어미의 조용하다 못해 지루했던 일상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웬 낯선 남자가 팥죽이 든 들통을 머리에 이고 사발과 숟가락 등속이 담긴 함지를 안은 어미와 아이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의 입성은 말할 수 없이 남루했고 얼굴은 병색이 완연했다.

“팥죽 한 그릇 주소.”

아이는 더럽고 구질구질한 남자가 배가 고파 팥죽 동냥을 온 줄 알았다.

“지금 바쁘니까 다른 곳으로 가보시오.”

어미는 아침부터 비렁뱅이를 만난 것이 몹시 성가시다는 얼굴로 매몰차게 거절했다.

“니가 성규냐? 많이 컸네?”

남자가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알은 체를 했다.

아이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게 이상했지만 아무런 동요 없이 사립문을 나서는 어미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십년 만에 집에 돌아온 사람한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거 아닌감?”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풀기 없는 목소리를 듣고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핏기 없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사립문에 기대 서 있는 남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날 어미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차부에서 팥죽을 팔았다. 아침에 보았던 비렁뱅이 남자가 신경 쓰이는 아이와 달리 어미 마음은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아이는 어미에게 비렁뱅이 남자가 어떻게 자기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날 오후 아이는 동네 저수지에 빠져 죽은 남자의 시신을 보았다.

동네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낙들이 어미에게 호도깝스럽게 달려들었다. 아이와 아이의 어미는 아낙들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갔다. 누군가 가마니를 들쳤다. 저수지에서 건져 올렸다는 남자의 시신은 아침에 팥죽을 달라고 했던 남자가 분명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살았을 아낙들과 남정네들은 슬금슬금 어미의 눈치를 살폈다. 누군가 길게 혀를 찼고 또 누군가는 아이를 향해 동정의 눈빛을 보냈고 나머지 사람들은 참을성 있게 어미의 반응을 기다렸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어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시신을 바라보던 눈길도 이내 거뒀다. 물에 빠져 객사한 남자의 시신을 보는 어미의 눈빛 속에는 약간의 동정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지만 슬픔이나 애통함 따위의 감정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미를 부축이라도 할 듯이 곁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낙들의 표정이 단박에 굳어졌다. 인정머리 없는 여편네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왔고, 아무리 야속해도 하나뿐인 서방을, 그것도 객지를 떠돌다가 병들어 집으로 돌아온 서방을 쫓아내 죽게 한 독한 여자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폭죽처럼 사방에서 쏟아졌다.

어미는 동정이 이내 비난과 질타와 분노로 바뀐 사람들을 뒤로 하고 아이를 앞세워 집으로 돌아갔다. 죽은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의혹이 마음을 뒤흔들었지만 아이는 묵묵히 어미를 따라갔다.

아이에게 식은 팥죽을 주고 자신은 꽁보리밥에 열무김치를 먹으면서 어미는 머리를 내저었다. 아이가 묻지 않았는데도 어미는, 나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라고, 팥죽을 달라고 할 때 그냥 내쫓은 게 마음에 걸리지만 처음 본 사람이 분명하다고, 그 사람은 네 아비가 아니라고, 사진 한 장 찍어 놓은 게 없지만 아비의 얼굴을 잊었을 리 없다고, 결국에는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콩콩 내려치며 목을 놓아 울었다.

어미는 날이 환하게 밝았는데도 팥을 삶지 않았다. 이제 팥죽을 팔러 나가지 않는 어미는 읍내에 팥죽 가게를 내겠다는 희망도 의지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십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서방을 죽게 만들고 시신조차 거두지 않은 모질고 독한 여자라는 소문은 발이라도 달린 듯 퍼져나갔고 몰래 양귀비를 재배해서 팥죽 속에 넣어 판다는 소문이 떠돌 때와 달리 어미는 초연하지 못했다.

밤마다 어미 곁에 누워서 아이는 달아날 궁리를 했다. 비렁뱅이 행색을 하고 나타났다가 저수지에 빠져 죽은 남자가 자신의 아비이든 아니든, 어미가 정말 아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인지 일부러 모른 체 한 것이든 아니든 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는 더 이상 팥죽을 쑤지 않는 어미를 견딜 수 없었다. 아비가 홀연히 집을 떠난 뒤, 하루라도 팥죽을 먹지 못하면 혀에 바늘이 돋는다는 아비가 멀리서라도 팥죽 냄새를 맡고 돌아올까 날마다 팥죽을 쑤다 결국 팥죽 장사로 나섰던 어미는 이제 집 나간 아이를 위해 다시 아궁이에 불을 지필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미가 잠들자 아이는 소리를 죽이며 일어나서 살금살금 이불장을 열고 돈이 든 비닐봉지를 꺼냈다. 어둠 속에서 문지방을 넘고 더듬더듬 신을 찾아 발에 꿴 아이는 발소리를 죽여 마당을 지나고 사립문을 넘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둥글게 휘어진, 가느다란 그믐달이 보일 듯 말 듯 하늘에 걸려 있었다.

 

*


주방은 정갈했다. 선반에는 그릇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고 금방 설거지를 마친 듯 물기가 마르지 않은 개수대 속은 음식찌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키 작은 노파가 일하기 편리하게 만든, 높이가 낮은 조리대 위에 도마와 식칼이 놓여 있고 연둣빛 밀가루 반죽이 투명한 비닐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주방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냉장고며 주둥이를 막아 놓은 밀가루 포대며 팥을 담아 놓은 자루며 열무가 담긴 주황색 함지 따위를 눈으로 쫓던 남자의 시선이 가스대 위에 있는 큼지막한 솥단지에 머물렀다. 남자는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솥뚜껑을 만져 보았다. 미지근한 열기가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솥뚜껑을 열었다.

남자가 큼직한 솥단지 가득 담겨 있는 팥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주방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사내아이가 출입문을 활짝 열어 놓고 둘레둘레 가게 안을 살피고 있었다. 아이가 열어 놓은 문 밖으로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남자는 놀라서 허둥지둥 주방을 나왔다.

아이는 어느 틈에 출입문을 등지고, 남자가 늘 앉아서 팥죽을 먹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얼 줄까?”

남자가 묻자 한쪽 팔을 탁자 위에 괴고 앉아 있던 아이는 팥죽-2500원, 팥칼국수-2500원이라고 검은색 매직펜으로 써서 벽에 붙여 놓은 종이를 쳐다보았다.

“팥죽하고 팥칼국수뿐이야. 다른 건 없어.”

남자도 아이의 시선을 좇아 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팥죽 주세요.”

남자는 천천히 주방으로 들어가서 질그릇 하나를 꺼내 넘칠 만큼 가득 팥죽을 퍼 담았고 노파의 손이 들락거리던 구멍으로 팥죽 그릇을 밀어놓았다.

“거기 단지에 소금이랑 설탕 있으니까 필요하면 넣어 먹어.”

아이는 수저통에서 숟가락을 뽑아들고 단지의 뚜껑을 열었다. 맛을 보기 위해 팥죽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은 아이는 몹시 배가 고픈 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노파가 늘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남자는 정신없이 팥죽을 먹고 있는 아이의 행색을 유심히 살폈다. 아이는 오랫동안 배를 곯았던 모양이었다.

“더 줄까?”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아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때 벽에 걸린 괘종시계의 종이 뎅뎅뎅 울리기 시작했다.

종이 아홉 번 모두 울리기도 전에 아이는 열어 놓은 문 밖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문장 웹진/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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