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사랑

 

굶주린 사랑



윤동수




봉숙에게 떠밀려 들어간 사진관에서 공달은 아기를 보았다. 털북숭이 사진사의 팔에 안긴 아기는 잠들어 있었다. 사내애였다. 저 아기가 아우의 핏줄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조카가 될 터인데, 아우가 세상에 자식을 남겼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그저 무덤덤했다. 곁에서 아기와 사진사를 힐끔대던 준배가 붕어빵이 따로 없다고, 사진사를 아기 아빠로 넘겨짚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양반이 생사람 잡는다고! 펄쩍 뛰는 사진사가 친부면 어떠랴 싶었다. 커다란 덩치에다 부숭부숭한 털, 새우 눈, 벌렁 뒤집힌 콧구멍까지, 사진사는 영락없이 고릴라를 떠올리게 했다. 차라리 욕을 하라고 사진사에게서 아기를 냉큼 빼앗은 봉숙이 준배에게 눈을 흘겼다. 애 봐주고 뺨맞는 격이라고 투덜대는 사진사에게 준배는 여전히 무지하게 닮았다고 중얼거렸다.

 

 

“아빠가 오셨으니 슬슬 시작해볼까요?”

사진사가 공달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아빠라니? 공달은 사진사와 봉숙을 번갈아 쳐다봤다. “애를 낳았으니 가족사진을 찍어야지”라고 톡 쏘아붙인 봉숙은 사진사가 가리킨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푸른 들판과 하늘이 시원스런 그림을 배경삼아 그니는 정면에 서 있는 사진기에 눈길을 멈추었다. 공달에게 어서 와서 앉지 뭐하냐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셈이었다.

“아하, 그러니까 저 분이 형님의 다섯째 마나님이시로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준배가 공달의 어깨를 툭 쳤다. 어서 가서 옆구리에 착 달라붙지 뭐하는 거요? 그는 누구는 좋겠다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 봉숙은 공달에게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사진을 안 찍고는 못 배길 거라고, 앙다문 입이 사뭇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은 무슨…… 일없어.”

공달은 시큰둥하니 내뱉고 돌아섰다. 그리고 하릴없이 진열장 사진에 한눈을 팔았다. 너무도 짧은 공달의 거절선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뜻밖에도 사진사였다. 사진기를 매만지던 그는 오랜만에 작품을 뽑는다 했더니 초장부터 왜 이러냐고 맥 풀린 소리를 해댔다. 가족사진이 싫으시면 먼저 독사진이라도 찍으면서 몸을 푸는 게 어떠냐고 색다른 제안을 했다. 아기를 안고 입술을 씰룩이던 봉숙이 발딱 일어선 건 그때였다.

“독사진이라니?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 사진 찍으면 죽기라도 한대? 애를 봐서라도 가족사진을 찍는 건 아빠의 도리야.”

비로소 공달은 봉숙이 사진관으로 끌고 온 까닭을 알 만했다. 마누라로 삼으라고 앙탈을 해대더니 내친김에 확약을 받자는 거였다. 아기를 빌미삼아 사진을 찍음으로써, 남편과 아내임을 증명해보이자는 꿍꿍이속을 드러낸 셈이었다. 봉숙이 안달한다고 해서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그니가 작심하고 나올수록 심드렁해진 그는, 진열장에 걸린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이런 거 해서 뭐하냐?”고 남의 일처럼 말했다.

“뭐 하다뇨? 무슨 섭섭한 말씀을!”

정작 흥분한 건 사진사였다. 이제야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겠다는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공달이 물건임을 알아봤다고 했다. 물건이란, 사진작가들끼리 쓰는 말이라고, 오해 없기를 바란다면서, 오랜만에 작품사진을 찍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나도 못 알아먹겠네.”

준배가 툭 끼어들었다. 잠깐 인상을 구겼던 사진사는 그러니까 아기 아빠의 얼굴이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기막힌 물건이라고 공달의 뺨과 눈썹을 더듬었다. 오! 오톨도톨한 주름살 고랑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스며 있고, 까만 눈동자, 수심 깊은 연못이랄까, 사람을 확 빨아들이잖아. 솔잎 닮은 눈썹을 봐, 쏴하는 솔바람에 휘날리는 느낌이 확 들잖아. 여자를 위해 태어난 저 입술, 요기에 물들었다가는 여자란 여자는 깡그리 까무러치는 거야. 헝클어진 저 머리칼, 뭐랄까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 분위기가 확 풍기잖아. 그리고 눈을 부릅뜬 사진사는 심봤다! 란 말을 아냐고 물었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봤을 때 내지르는 소리라고, 지금 자신이 그 심정이라고, 인간 산삼을 만났는데, 어찌 가만 있을 수 있냐고,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도록 소원을 들어 달라고 했다.

“그딴 건 나중에 하고 가족사진은 무조건 찍어야 돼.”

사진사를 밀친 봉숙은 아기를 공달에게 내밀었다. 애 얼굴을 똑바로 봐. 완전히 판박이잖아. 아빠를 쏙 빼닮았잖아. 그런데도 사진을 안 찍어? 아빠 노릇을 못하겠다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공달은 손사래를 치며 꿈쩍도 안 했다. 사진관에 아기를 맡겨놨다고 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꾸역꾸역 따라 들어온 게 잘못이었다. 사는 형편이라도 들여다보려고 했던 게 어쩐지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애를 들이밀고 남편 노릇 해라, 마누라로 삼으라고 억지를 부릴 줄은 몰랐다. 아우가 세상에 떨구고 간 것은 전적으로 아우의 몫이었다. 그걸 떠안아서는 안 되었다. 누구보다 아우가 원치 않을 터였다.

“애기 이름이 뭐예요?”

사진사가 뜬금없이 물었다. 그놈 참, 절묘하게도 빼다 박았다고 그는 아기가 공달의 자식임을 인정했다. 누구보다 반색한 건 봉숙이였다. 그렇죠, 그렇다니까요를 연발한 그니는 아빠라는 사람이 여태껏 자식 이름도 안 지어줬다고, 잽싸게 공달에게 말화살을 쏘았다.

“그럼, 안 되지.”

얼른 준배가 말꼬리를 잡아챘다. 사진 안 찍겠다고 빼는 꼴이 아까부터 배알이 뒤틀렸던 터였다. 마누라가 열 명이 넘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자식이 있는 줄은 몰랐다. 덩실덩실 춤을 춰도 시원찮을 판에 사진 가지고 밀고 당기고 하는 게 영 아니꼬웠다. 누구는 여자가 씨가 말라서 죽을 맛이고, 누구는 여자가 넘쳐서 골머리를 앓다니, 세상 참 불공평했다.

“아빠가 그렇게 무책임해서는 안 되지.”

준배는 공달을 몰아세웠다. 속으로 부러워 미칠 뻔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 씨만 뿌리면 제일이냐고! 뒷감당을 해야 할 거 아냐. 사람 탈을 썼으면 자식새끼 이름은 지어줘야지.”

봉숙은 모처럼 입바른 소리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럴 양반이 아닌데. 이상하네.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사진사는 공달에 대한 믿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는 공달의 눈을 가리키며 나 몰라라 할 눈빛이 아니라고, 자기 눈은 틀림없다고, 작가로서의 명예를 걸고 아기 아빠의 우직함을 보장하겠노라고, 그러니 제발 모델이 되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졸지에 무책임한 인간으로 전락한 공달은 뭔가 어긋난다 싶었다. 이러자고 봉숙을 만난 게 아니었다. 사진관에 아기를 숨겨뒀을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아우의 아이일 줄은 더더욱 상상조차 못했다. 봉숙이 아기가 있다고 했지만 그냥 흘려들었다. 이리저리 살다가 어쩌다 낳은 그니의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아우의 자식이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우에게 자식이라니,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았다. 트럼펫 연주자인 아우는 그럴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트럼펫만 끼고 살았지 세상일에는 서툴렀다. 한밤중에 저수지에서 밤새 트럼펫을 부는 사내가 아우였다. 자식을 낳고 여자와 살림을 차린다는 건 아무리 곱씹어 봐도 그림이 안 그려졌다. 그러니 아기를 들이미는 봉숙이 딱할 수밖에. 아우의 자식임을 내세워서 남편을 얻고 마누라가 되겠다니, 무슨 배짱인지 몰랐다.

공달의 숨통을 터준 건 준배였다. 그는 이러지 말고 다 함께 왕창 찍어버리자고, 자기를 끼워주기를 바랐다. 돌아가는 판세가 각자 입에 맞는 사진을 찍기란 진작에 글렀고, 이런 기회에 사진이나 한번 찍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독사진은커녕 사진관에 와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한 그로서는 기념사진을 한방 박아두는 것도 나쁠 게 없었다. 이름하여, 여자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도는 사나이! 라고 부르고 싶지만, 독기를 품고 악착같이 떠도는 사나이라고 해야 옳았다. 나중에 여자에게 사진을 척 보여주면서, 내가 당신을 만나려고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냐고, 자랑스럽게 증명해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사진관에 들어와 무엇보다 눈에 거슬린 게 부부끼리 연인끼리 찍은 사진이었다. 짝없는 신세라고 사진 찍지 말란 법은 없었다. 나중에 여자와 단둘이 사진을 찍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연습을 해두는 게 마땅했다.

“당신, 왜 자꾸 꼽사리 끼는 거야?”

봉숙이 신경질을 부렸다. 공달을 손짓한 그니는, 당신이 저이의 핏줄이라도 되냐, 부부가 가족사진 찍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준배의 말문을 막았다. 형제도 아니면서 낄 때 안 낄 때를 못 가린다고 핀잔을 준 봉숙보다 더 한 건 사진사였다.

“작품 버려서 안 돼요.”

사진사는 사람의 얼굴은 아무 데나 내미는 게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함부로 굴렸다가는 만인을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고, 그건 죄악이라고, 특히 당신은 숨어 있는 게 여러 사람을 돕는 길이라고, 준배의 얼굴을 가리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내 얼굴이 어때서, 라고 항변한 준배를 묵살한 사진사가 꺼내놓은 건 낡은 사진첩이었다.

“오랜 세월을 바친 거요.”

거기에는 숱한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 중에서 한 여자를 짚으며 준배에게 “당신은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해본 적이 없어. 얼굴에 그렇게 써 있거든”하고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보자보자하니까 사람을 뭘로 보고 말을 막 하네”하고 불끈 성을 낸 준배를 공달이, “사실이 그렇잖아”하고 가로막았다. 금세 주먹이라도 내칠 듯하던 준배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진사는 여전히 여자의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여잡니다.”

안타깝게도 그 여자는 오래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뒤로 인물사진에만 매달렸다는 사진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공달에게 모델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액자도 금박을 입혀 근사하게 만들겠습니다. 진열장에 전시해두면 오가는 사람들이 행복할 겁니다.”

“그거 괜찮은데, 내 얼굴도 팔릴 거고, 그렇게 합시다.”

준배가 사진사를 편들었다. 그는 사진사를 용서하기로 했다. 얼굴사진이 진열장에 걸리면 언젠가는 여자의 눈에 띄리라는 한가닥 기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진사는 준배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먼저 가족사진을 찍죠.”

그는 이 사태의 열쇠를 쥔 봉숙을 자기편으로 만들기를 잊지 않았다.

결국, 사람 문제였다. 사진 찍기에서 비롯됐다지만 다들 사람에게 목을 매고 있는 셈이었다. 사진사는 교통사고로 죽은 옛 여인을 잊지 못해서, 준배는 자기를 떠난 여자를 붙들겠다고, 아우의 자리에 자신을 앉히려는 봉숙이도 마찬가지였다. 공달은 그들의 몸부림이 낯설었다. 물고물리는 그 소용돌이에 발을 담근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래야 수월하게 길을 떠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사진사에게 말했다.

“뭔가 착각했네요. 저 여자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아우는 저 여자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을까.

생선대가리를 우적우적 씹어대면서 지껄이는 봉숙을 보며 떠오른 의문이었다. 그니는 식당에 들어와서도 쉬지 않고 공달을 쪼아댔다. 남편 노릇 하는 게 끔찍하게 싫더냐, 남들 앞에서 마누라 망신시키니까 기분이 좋더냐. 심지어 이름도 없는 불쌍한 새끼라고 아기를 부름으로써 단골식당 노파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내가 그래서야 쓰나. 노파의 한마디는 곧장 그니에게 구원의 밧줄이 되었다. 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라고 노파를 아예 엄마라고 부르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 엄마 소리한다고 혀를 차면서도 노파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노파를 응원군으로 삼은 그니는 잇달아 엄마, 엄마 소리를 해가며, “멀쩡한 마누라를 남이라고 하지 않나, 자식새끼는 출생신고는커녕 이름도 안 지어주는 못 된 아빠”라고 공달의 인간됨됨이를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래도 공달은 불쾌하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내 복도 지지리 없는 년이라고 한탄하면서도 봉숙은 맛나게 밥을 먹었고, 아비 없이 커갈 아기가 불쌍하다고 노파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도 잔을 홀짝거렸다. 신세타령 하는 입 따로 먹는 입 따로 장단이 척척 들어맞았는데, 희한하게 볼썽사납거나 짜증스럽지가 않았다. 징징대는 꼴 더는 못 봐주겠다고 한 건 준배였다. 술맛 떨어진다고 잔을 거칠게 놓자마자 봉숙은 옳다, 너 잘 걸렸다는 눈빛이었다. 그니는 득달같이 퍼부어댔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

봉숙은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은 닥치고 있으라고 단호하게 내뱉었다. 가만 있을 준배가 아니었다. 여자가 오죽 못났으면 남자한테 애걸복걸하냐고, 봉숙의 속을 긁었는데, 그건 준배의 실수였음이 이내 드러났다.

“당신은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했잖아!”

뜻밖에 봉숙의 입에서 사랑이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랑도 모르는 인간은 입 닥쳐!”

거듭되는 봉숙의 경고를 준배는 새겨들었어야 옳았다.

“얼어죽을! 사랑 좋아하네!”

준배가 콧방귀를 뀌기 무섭게 봉숙이 되받아쳤다.

“그러니까 당신 같은 사내는 여자를 돈 주고 사는 거야.”

그 순간 오묘하게 변하는 준배의 얼굴이라니!

과연 사랑은 위대했다!

욱하는 성질머리가 터질 만도 한데 준배는 얼이 빠진 듯 한참이나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끓는 속을 다스리기라도 하는지, 허참 허참을 혼잣말로 내뱉더니, 연거푸 잔만 들이켰다. 뭔가 대꾸할 말을 못 찾고 떨떠름한 표정인 그에게 봉숙은, 당신 어제 볼 만했다고, 기어코 여관사건을 들추어냈다.

“아가씨를 그냥 보내려니까 그렇게 아까웠어?”

봉숙은 사랑을 우습게 아는 사내놈들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고, 팔을 걷어붙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니는 아예 아기를 노파에게 맡겼다. 노파가 아기를 받아 안자 난감해한 건 준배였다. 주먹질도 안 되고, 입씨름은 더더욱 상대가 안 될 게 뻔했다. 괜한 소리를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건 아닐까 하고 후회했을 때는 한발 늦은 뒤였다.

“당신은 사랑을 돈 주고 사?”

봉숙은 따지듯 물었다. 우물쭈물하는 준배에게 틈도 주지 않고 술 취한 핑계대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현장을 봉숙에게 들킨 탓인지 준배는 평소답지 않게 그게 아니란 소리만 중얼대며 갑갑해했다.

준배가 다방 아가씨를 데려온 건 밤 10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여관에서 혼자 자던 공달은 방문 여는 소리에 깼는데, 거기 준배가 아가씨 손을 붙들고 비틀거렸다. 다짜고짜 여자와 잠을 자야겠으니 밖으로 나가라는 거였다. 하필 여관방은 다 찼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 들어간다고 발버둥치는 아가씨를 보아하니 준배가 억지로 끌고 온 게 분명했다. 준배는 아가씨 몸값을 다 지불했다면서 악착같이 잠을 자야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자다 깬 공달로서도 난감했다. 자리를 피해줄 수도 있지만 갈 곳도 마땅치가 않았다. 술 취한 준배를 타일러봤지만 소용없었다. 마누라 없는 놈은 사랑도 못하냐고, 대뜸 시비조로 나왔다. 형님은 여자가 많아서 물리는지 몰라도 굶고 사는 놈은 눈에 뵈는 게 없다고 막말을 해댔다. 봉숙이 공달을 데리러 여관을 찾아온 게 그때였다. 차라리 돈을 토해내겠다는 아가씨 손목을 붙든 채 준배는 죽어도 자고 말겠다고 악을 써댔다. 투숙객들의 불만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관주인의 연락을 받은 청년들이 들이닥친 건 실갱이를 한 지 20분이 지나서였다. 아가씨를 구출하러 온 청년들은 다짜고짜 준배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당신 여자 찾으러 나선 길이라며?”

봉숙이 물었다. 준배는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이 여자가 눈에 뵈는 게 없나 하고 불뚝성을 터뜨리거나 손부터 나갔을 터였다. 다방 아가씨하고 씨름하는 광경을 보여준 것도 찜찜한데, 봉숙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뭔가 못 볼 것을 들킨 것 같아 낯이 화끈거렸고, 까닭모를 부아가 치밀었다. 봉숙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망간 여자를 찾으려고 공달을 따라나선 길이었다.

“근데, 왜 다방 아가씨하고 자려고 했어?”

봉숙이 물었다.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 어디 한번 속시원히 털어놔 보라는 말투였다. 준배는 할 말이 없었다. 여태껏 누가 물어본 적도 없지만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애인이나 마누라도 없는데 욕구를 해결할 데가 거기밖에 더 있나 말이다. 돈 안 받고 해주는 여자가 있으면 모를까.

“그리고 일곱째 마누라라고 했지?”

준배를 잠재운 봉숙이 그쯤에서 공달에게 눈을 돌렸다. 얼마나 잘난 사내면 마누라를 열 명씩이나 줄줄이 달고 살까. 우리 서방님은 능력도 좋으셔. 차고 넘쳐서 없이 사는 사람한테 꿔주기까지 하신다고? 봉숙은 그 말을 하며 준배에게 비웃음을 던졌다.

“꿔주다니?”

대뜸 반문했지만 준배는 그게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똑 부러지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공달이 여자를 소개시켜준 건 사실이었다. 그 여자는 여섯 달 살다 도망쳤다. 헌데, 공달의 마누라가 되겠다고 해서 사는 내내 사람 속을 뒤집어놓기 일쑤였다. 셋째도 좋고 일곱째도 좋다며 공달이 만한 사내는 없다고. 준배는 여자가 공달과 전부터 수작이 있었음을 알았다. 공달이 일곱째 마누라로 점찍어놓은 여자였다. 그래도 좋다고, 형님은 여자 복이 터졌으니 적선하는 셈 치고, 없는 놈 살려 달라고 사정해서 만난 여자였다. 사정이 그러니 봉숙의 말이 아예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꿔준 건 결코 아니었다. 여자와 한평생 살 작정을 했고, 그랬기에 눈이 뒤집혀 찾으러 다니지 않나 말이다. 그리고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여자들이 공달에게 어째서 마음을 바치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기왕 나선 김에 열 명이 넘는다는 마누라를 눈으로 확인할 참이었다.

“일곱째라고? 얼굴 한번 보고 싶다. 같은 마누라 처지로 무지하게 화난다. 만나기만 하면 확 일러바칠 거다. 그 여자가 다른 남자하고 자면 좋아? 아기를 봐? 그 여자가 어떤 애 낳을지 생각해봤어?”

봉숙은 두 사내를 싸잡아 공격했다.

“나, 인간 추준배, 그 여자 무지하게 사랑한다!”

“어떻게 사랑하는데? 근데 왜 떠났어?”

“어이구, 속 터져. 형님, 떠납시다!

잔을 털어 넣은 준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기찻길에 나앉은 동안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준배였다.

“형님, 그러니까 시방 저 여자가 죽은 동생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거 아뇨.”

그는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봉숙을 힐끔대며 물었다.

“그런가 봐.”

공달은 남의 말 하듯 시큰둥했다.

“그런가 봐라니? 도대체 진짜로 동생이 있기는 있었던 거요?”

준배가 따지듯 물었다. 밀실주점 빨간 입술에서 나온 뒤로 알쏭달쏭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동생의 빚을 갚으러 간 그곳에서 정작 동생의 인생은 뒷전이었다. 공달의 동생에게 돈을 꿔준 밀실주점 부부는 공달의 고향사람들이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컸다는 그들은 정작 돈을 꿔간 동생은 쏙 빼놓았다. 기껏 한다는 얘기가 개구리 잡아먹다가 손가락을 데었다는 둥, 개울에 빠진 여자를 공달이 구해줬다는 둥, 초등학교 때부터 붙어 다니다가 이날 이때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신들은 천생연분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공달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을 때 자기가 주로 성냥을 몰래 가져왔노라고, 어마어마한 비밀을 털어놓듯 장단을 맞추었다. 서른세 살이면 한창 땐데, 아깝게 세상을 떴노라고 빈말이라도 보탤 줄 알았다. 아무리 빚 갚는 자리라지만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말 한마디는 나올 줄 알았다. 봉숙이도 마찬가지였다. 고인의 고물 트럼펫을 담보물로 안 챙기길 잘했노라고, 밀실주점 부부에게 찬사를 늘어놓았다. 빚 때문에 그들에게 시달렸노라고 넌덜머리를 내던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고인을 입에 올리지 않던 그들이 돈 계산만은 확실히 했다. 보다 못한 준배가, 고향 친구라면서 이자까지 챙겨서야 너무 야박하지 않냐고 어깃장을 놓았다. 밀실주점 여자는, 못마땅해 하기는커녕, 어렸을 때 공달의 아버지가 학비를 꿔주고 이자까지 받았던 아픈 추억을 떠올렸다고 오히려 고마워했다. 공달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니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공달의 아버지를 돈벌레라고 욕하는 걸 봤다고, 자신의 비상한 기억력을 뽐냈다. 여자가 고인을 추모한 말이라곤, 동생이 우리를 만나게 하려고 빚을 졌다는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곳에서 준배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밀실주점 부부의 사랑법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이들이 그 긴 세월을 버티며 부부로 살고 있음은 그로서는 상상이 안 갔다. 게다가 생업이 아가씨를 둔 술집이라니!

아우는 어디로 갔나.

아우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은 탓일까. 공달은 아우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군악대를 제대하고 밤무대 밴드활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줄로만 알았다. 무엇이 아우를 심장마비로 몰아갔을까. 약물, 알코올, 여자…… 하여간 무언가에 늘 찌들어 살았다는 소문은 들었다. 밀실주점에서도 아우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더냐고 하마터면 물어볼 뻔했다. 개구리 뒷다리를 구운 성냥을 주머니에 숨긴 것은 퍼뜩 떠올랐는데, 아우가 수염을 길렀는지, 장발을 했는지 살아생전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화장하던 날 들른 봉숙의 방에서도 아우의 사진은 한 장도 안 보였다. 살림을 차린 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도 없었다. 어느 해였나, 겨울인 것만은 분명한데, 아우가 일한다는 고고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귀청을 찢는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 위의 5인조 밴드를 아무리 훑어봐도 트럼펫 연주자는 아우를 닮지 않았다. 자욱한 담배연기 탓만은 아니었다. 한참을 뚫어지게 보다 밖에서 만난 아우는 몹시 낯설었다. 어깨를 덮는 가발에다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그는 예전의 아우가 아니었다. 검은 안경을 벗고 수염을 연신 문지르는 그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숨이 가쁜지 가슴을 문지르기도 하고 버릇처럼 다리를 심하게 떨었다. 피로감이 물씬했던 충혈된 눈동자, 마른 입술, 줄담배에서 뿜어나오는 연기…… 그것만 흐릿하게 남았다. 그날, 30분쯤 마주앉았건만 얼굴 생김새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아우의 트럼펫 연주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던가.

기찻길에서 연주하기를 즐겼다고 한 건 봉숙이었다. 해가 저물도록 지나가지 않는 기차처럼 철길 어디에서도 아우의 연주는 들리지 않았다.

“뭐 하나 물어봅시다. 저 애기가 동생의 자식이라는 증거라도 있는 거요?”

준배의 물음을 공달보다 먼저 낚아챈 건 봉숙이였다. 젖을 물리던 가슴을 추스른 그니는 “당신 여자가 왜 도망갔는지 이제야 알 만하네”하고 맞받아쳤다.

“사랑하고 낳은 애기 앞에서 증거를 대라구? 당신 참 불쌍한 인간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여자가 떠난 이유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거야.”

준배는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같은 여자로서 봉숙은 해답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답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봉숙의 물음에 답이 궁한 만큼 그로서는 여자가 왜 집을 나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궁지에 빠진 준배가 빠져나갈 길은 속을 알 수 없는 공달을 물고 늘어지는 거였다.

“나는 그렇다 칩시다. 형님은 정말로 저 여자를 마누라 삼을 거요?”

밀실주점에서부터 참았던 물음이었다. 여태껏 드러난 대로라면 봉숙은 죽은 동생의 여자가 분명했다. 그런 여자를 마누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준배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사랑을 모르는 한심한 놈이라고 깔아뭉개도 어쩔 수 없었다. 준배가 도망간 여자를 찾아내라고 수선을 피울라치면, 공달은 여자들하고 죽자 살자 붙어살아서 뭐하냐고, 심드렁하게 넘기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속이 뒤집혔던 준배였다. 배부른 자의 헛소리로 넘기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봉숙을 마누라로 삼을 거냐고 묻고 있으니 처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여자에 관한 한 공달의 생각은 종잡을 수 없었다. 여느 때는 말만 번드르르했지, 마누라들 근처에 얼씬하지 않고 홀로 다녔다. 그러다 셋째 마누라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곤 했다. 그런 공달에게 신세를 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울화가 치밀었다.

“왜 나 대신 자네가 하고 싶어?”

공달이 되묻기 무섭게 준배는 농담도 가려서 하라고 기겁을 했다. 버스터미널 사건이라면 준배가 손사래를 칠 만도 했다. 봉숙이 어떤 여자인지 조금은 알았을 테니 말이다. 사건이 벌어진 건 행선지를 확인하고 버스표를 사려고 막 줄을 섰을 즈음이었다. 아기를 안고 들어선 봉숙이 다짜고짜 준배를 향해 애아빠가 어디로 내빼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워낙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준배로서는 얼이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졸지에 준배는 아내와 아기를 남겨놓고 줄행랑치는 파렴치한 사내로 낙인찍혔고, 여행객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봉숙이 남편들을 쏟아냈다. 당신 남편이 틀림없냐는 여행객들의 질문에 봉숙은 거침없이 답했다. 키는 185센티에 뽀글뽀글한 곱슬머리구. 특히 구레나룻이 턱밑까지 길쯤하게 뻗은 데다 가슴에는 부숭부숭한 털이 수북해서 여자들이 사족을 못쓰지. 장단지가 쇠막대기처럼 굵고 단단하단 말이야. 비오는 날은 돼지털 같이 뻣뻣한 머리칼이 젖을까봐 모자를 쓰고 다니지를 않나, 날렵한 허리는 아무 옷이나 걸쳐도 멋쟁이지. 워낙 땅딸막한데 배는 불룩 나왔지. 그러니 숨이 가빠서 굴러다니기 일쑤라구. 몸무게가 47킬로밖에 안 나가다 보니 완전히 뼈가 우툴두툴해서 깜깜한 데서만 옷을 벗는 게 버릇이야. 대머리 때문에 나이가 열 살은 더 먹어 보인다고 가발을 쓰고 다닌다구요. 그쯤에서 말리지 않았으면 봉숙은 20, 30명이라도 얼씨구나 하고 남편들을 줄줄이 엮어놓았을 터였다. 봉숙을 내버려두고 떠나자던 준배가 보기 좋게 당한 셈이었다. 그 소동은 지난번에 공달 자신이 겪은 풍경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줄줄이 토해놓은 그 긴 대사도 똑같았다. 그러니 봉숙이 쳐놓은 그물에서 빠져나갈 사내란 애초에 없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내라면 누구라도 봉숙이 지껄인 남편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꿈에 나타날까 겁납니다.”

준배는 봉숙을 등지며 말했다. 찰거머리 같은 봉숙을 떼어내고 한시라도 떠났으면 싶었다. 헌데, 이상했다. 겉으로는 지긋지긋하다고 대꾸하면서도 곰곰 생각해보면 봉숙의 행동이 밉지만은 않았다. 언제 한번 여자한테 그런 대접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지 싶었다. 도망간 여자한테도 봉숙이 같은 면이 숨어 있다면? 나쁠 것도 없었다.

“당신은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봉숙은 가짜는 자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건 여관에서 준배가 뱉어낸 말을 가리키는 거였다. 청년들이 돌아간 뒤, 준배는 도망간 여자가 임신했다, 애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난리를 피웠다. 여자를 찾고 싶은 마음이 지나친 게 탈이었다. 고아 출신이다, 그래서 아기를 더 갖고 싶다, 급기야 김씨 성도 가짜라고 실토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자신의 처지를 과장되게 호소한 셈인데,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준배의 고백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봉숙이 손가락으로 가위표를 그리며 말했다.

“당신은 열 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런 대접을 못 받아. 왜냐하면 가짜인생은 평생 가짜로 살아가거든.”


사람 구실할 기회를 달라구?

준배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그건 봉숙의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마누라가 되고 싶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음이었다. 아우의 빚을 갚은 공달의 행위를 봉숙이 짐스러워한다는 것도 우스웠다. 그니는 그 짐을 덜어줘야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노라고 떼를 썼다. 아무도 부담을 준 적이 없음에도 스스로 짐이랍시고 떠맡은 꼴이어서 듣고 있기가 낯간지러웠다. 그리고 자신은 공달의 행위를 빚으로 여기지 않노라고 딴에는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니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내세운 것은 트럼펫이었다. 밀실주점 부부에게 그것을 빼앗기지 않고 지킨 것만으로도 자신의 몫을 다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오늘은 하늘이 두 쪽 나도 결판을 내고 말겠어.”

봉숙이 잔을 들며 각오를 다졌다. 공달과 준배는 술상을 거들떠도 안 봤다. 그러니까 자기 손으로 부리나케 차린 술상을 혼자 떠안은 꼴이었다. 아기를 봐서라도 참으라고, 공달이 끼어들었다가 봉숙의 기만 살려주고 말았다. 아기 걱정을 한 인간이 이름도 나 몰라라 하냐고, 불한당으로 내몰렸고, 그따위하고 묻어다니는 인간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준배도 도매금에 넘어갔다.

빌어먹을, 내가 무슨 죄냐구! 준배는 한마디 내지르려다가 참았다. 봉숙의 방에까지 들어온 게 잘못이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냉정하게 떠났어야 옳았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 사이에 찡겨 있자니 갑갑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애초에 공달의 마누라를 두루 구경해볼 참으로 곁다리를 붙었던 터였다. 서방 노릇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건 둘째 치고 망나니 취급을 받고 있으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들이 공달에게 엉겨 붙는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고, 그럴수록 그 까닭이 궁금해졌다. 공달에게 뭔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당신이 심판을 봐.”

봉숙이 말했다. 난데없이 심판이라니? 이 상황이 권투시합이라도 된단 말인가. 준배는 어이가 없었다.

“놀랄 건 없고. 우리 둘 중에 사랑 앞에서 누가 더 용감한지 판단을 내려 봐.”

“가짜가 엄숙한 사랑 놀음에 나설 자격이 있어야 말이지.”

“단단히 삐치셨구만. 한 가지 물어볼까? 내가 트럼펫 사내를 잊어버리고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봉숙이 공달을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 눈에는 나와 이 사람이 부부가 되는 게 이상하게 보여? 똑똑히 봐, 같은 핏줄에 아기도 닮았잖아. 내가 어제는 트럼펫 마누라 했다가 오늘 이 사람 마누라 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게 뭐 있어? 당신 인생에 금이라도 가?”

“내 인생이 금가냐구?”

거기서 준배가 입을 열었다. 계속해서 꼭두각시놀음으로 휘둘렸다간 술상을 뒤집어엎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슨 조화속인지 몰라도, 갑자기 도망간 여자가 미치게 보고 싶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를 꽉 붙들고 말리라 이를 악물었다.

“당신, 계속해서 가짜로 살 거야? 벗어나고 싶지 않아?”

봉숙이 준배에게 잔을 건넸다. 그리고 트럼펫을 집어들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아무것도 아냐. 불어줄 사람이 없는 트럼펫은 그냥 고철덩어리야. 오늘 이거 버리고 내일부터 후련하게 살아갈 거야.”

 트럼펫을 끌어안고 흐느적대는 그니를 붙든 건 공달이었다.

“좋다. 준배를 내가 구원하지. 지금부터 나, 당신 남편이야. 받아주겠어?”

급작스런 제안에 쓰러질 듯하던 봉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그니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연거푸 물으며 공달의 목에 매달렸다.

“그럼 남편 도장 찍는 거지?”

“그럼, 당장 찍어야지!”

남편 선언을 한 공달은 시원시원했다. 허리띠를 급하게 풀며 그는 발로 준배의 등을 떠밀었다.

“뭐하고 있어. 자네는 밖에 나가서 애 이름이나 지어 봐.”

마당에 쪼그려 앉은 준배는 속이 복잡했다. 쫓아내지 않더라도 어련히 알아서 나갈 터였다. 첫날밤을 치르는 신혼부부 곁에서 죽칠 만큼 자신의 낯짝은 두껍지 않았다. 머리털 나고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 기분은 지랄 같은데, 이상하게 나쁘지는 않았다.

“내 피를 받았건 안 받았건 그게 뭐 대순가!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름은 지어줘야지!”

남편, 공달의 목소리에 모처럼 힘이 넘쳤다. 준배는 소주병을 뺨에 댔다. 그나마 봉숙이 쥐어준 소주와 오징어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린 준배는 밤하늘의 별빛을 우러르며 소주를 홀짝거렸다.

단칸방의 문이 열린 건 소주 한 병이 동이 날쯤이었다. 방문을 타고 나오는 여자의 신음이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수록, 준배는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어댔고, 잔을 비우는 그의 손이 빨라졌음은 물론이다. 《문장 웹진/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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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깔

우리는모두 사랑받고싶어하고,사랑하고싶어하고….그 갈망이 언제나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남녀간의 사랑이 뜨거울땐 그 어떤행위도 아름다워 보이지만…헤어지고난후..시간이 흘러되돌아보면,..참 유치하고,,,때론 추해보이는 기억들조차도..있더라지요..우리는…그사이…..또성숙해지고.. 어느새…새로운 사랑이 오지않을까요?506호남자와의 새로운 형태의사랑이…시작하려하듯이..오늘도 꿈꿉니다.내일은 더 미친 사랑이 오기를..이 소설로 다시금..설레이고 싶습니다.미친사랑의회오리가…팡팡 불어오기를…..사랑하는그때만큼은 아름다운 일상아닐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