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발 e메일

 

홍콩발 e메일



최대환




-홍콩에 와서 놓쳐서는 안 될 세 가지의 보물이 있습니다. 첫째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백만 불짜리 야경, 둘째는 평생 먹어도 다 맛보지 못한다는 다양한 요리, 셋째는 전세계 명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관광객을 유혹하는 쇼핑이에요.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를 지녔다. 직업이 직업인 탓에 연일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이곳이 좋고 저곳이 아름답고 하다 보니 약간의 쉰 소리가 섞여 있는 듯도 했지만, 그런 후천적인 목의 상태가 그녀의 선천적인 목소리의 경쾌함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계 비즈니스의 교차로라는 홍콩에 지사를 만드는 일이 그리 만만치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해외출장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시간보다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이 족히 다섯 배는 되는 법이다.

더욱이 내가 지사 설립을 직접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파견돼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진척상황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인베스티게이터의 자격으로 온 바에야,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무엇인가를 해야 할 임무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 먼저 와 일을 진행해오던 사람들은 홍콩에 도착한 내게 본사로 보낼 첫 보고서를 위해 만들어 놓은 두툼한 자료와 함께, 우선 일주일가량 홍콩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도록 관광청에 의뢰해 작성한 투어 일정을 건네줬다.

나만을 위한 투어 하나를 따로 만들 수는 없는 까닭에 나는 매일 오후 두세 시께 한국에서 온 이런저런 관광객들 틈에 끼어 함께 돌아다니게 되어 있었다. 홍콩 관광청에서 가이드로 일한다는 서른 살 가량의 그녀는 날렵한 까만색 아르마니 정장에 잠자리 날개 모양의 선글라스를 끼고 어제 처음 내 앞에 나타났고, 오늘은 한국에서 온 아주머니들과 그 속에 덜렁 하나 끼어 있는 남자인 나를 인솔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탄 버스가 들어서는 곳이 홍콩섬과 구룡반도 동부를 연결해주는 이스턴 하버 터널입니다. 1986년에 착공해 89년에 준공한 2.2km 길이의 해저터널이지요. 하루에 약 6만7000대의 차량이 지나다니는 바다 속의 터널, 놀랍지 않으세요?

그녀는 자주 놀란다. 솔직히 매일 홍콩을 소개하는 그녀에게 뭐가 그리 놀라운 것이 있으랴 만은 마치 잘 짜여진 대본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처럼 그녀는 매번 스스로도 놀라는 듯한 말투와 몸짓을 훌륭하게 연기해가며 아주머니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도로 한가득 차가 밀리기는 홍콩도 매한가지였다. 파도에 떠밀리듯 조금씩 밀려가다 상어의 아가리처럼 생긴 터널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스르르 졸음이 밀려왔다. 운전석 옆에 서서 읊조리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터널 안을 울리듯 웅웅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저, 선생님.

눈을 뜨자 어찌 된 일인지 버스 안에는 그녀와 나, 그리고 운전기사밖에 없었고, 창 밖으로는 내가 묵는 호텔이 보였다. 한참을 잔 모양이다.

-내가 몇 시간을 잔 거죠?

-터널 이후 한번도 안 깨어난 셈이에요.

어리둥절해 하는 날 보며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왜 깨워주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그러자 그녀는 터널 이후 첫 도착지에서 깨워보려 했지만 잠깐 눈을 뜬 내가 손사래를 치더니 이내 다시 잠들어버려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대뜸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무엇이 그렇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날 위한 수고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하고 내가 말해주자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시면 내일 일정 끝나고 시원한 맥주 한잔 사세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게 그녀가 말했고,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준 뒤 버스를 내려 호텔로 들어섰다.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지만, 나는 어쩌면 그녀가 대단히 외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그곳엔 별 일 없는지.

오전에 잠시 사람들과 회의를 진행한 뒤, 어제에 이어 구룡반도에서 홍콩섬으로 건너갔어.

한데 뭘 봤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 홍콩섬으로 건너가는 해저터널을 들어설 즈음 버스 안에서 깊이 잠들어버렸지 뭐야. 몇 시간을 잤는지, 깨어보니 투어가 모두 끝나버렸더군.

덕분에 오늘은 당신에게 들려줄 얘기가 하나도 없네.

참, 관광청에 소속된 가이드가 내게 내일 맥주를 한잔 하자고 하네. 서른다섯 정도 돼 보이니 당신 나이와 비슷할 것 같아.

물론 여자지만, 걱정 안 해도 돼. 여러 사람들 틈에 섞여 다니는 것이 너무 피곤하게 느껴져서, 가이드에게 홍콩에 관해 한꺼번에 자세히 안내받고 모레부턴 나 혼자 다녀보려는 거니까.

버스 안에서 한참을 잤더니 잠이 안 오네. 내가 묵은 호텔이 괜찮은 축에 끼는 곳이어서 창밖으로 검은 물을 건너 저 멀리 홍콩섬의 야경이 다 보여.

간간이 창 밖을 봐가며 보고서를 써보려 해. 그럼, 당신 먼저 자.


*


-정말로 맥주를 사 달라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그녀는 두 번째로 그렇게 말했다. 한 번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난 뒤 호텔에 도착한 버스 안에서 내가 어제의 약속을 상기시켰을 때 그 말을 했고, 또 한 번은 지금 막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뒤에 그랬다. 나는 두 번 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듯싶어 그냥 조금 웃어주기만 했다.

내가 묵는 호텔 건물의 외부, 바다 쪽으로 마련된 오픈바에 그녀와 앉아 홍콩의 날씨, 음식, 물가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문득 나는 오늘 오후에 생겼던 의문 하나가 다시금 떠올랐다. 오후 늦게 한 무리의 관광객 틈에 끼어 간 곳은 홍콩섬의 해양공원이었는데, 다섯 자리가 마련된 홍등처럼 둥글고 조그만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낀 산을 한참 돌아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한데 해양공원에 만들어져 있는 수족관을 설명하면서 그녀는 분명 ‘동양에서 제일 큰 규모’라고 말했다. 물론 가오리, 상어, 거북이를 포함한 각종 해양생물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그 수족관의 규모가 그리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봐도 동양에서 제일 클 리는 없는데 말이다.

-아까 그 수족관 말인데요. 동양에서 제일 큰 것이 사실인가요?

-…….

-분명 거기보다 큰 곳이 많을 텐데.

-아, 네.

-…….

-아까 제가 ‘수족관’이 동양에서 제일 크다고 했었나요?

-네.

-제 얘기는 수족관이 제일 큰 것이 아니라, 해양공원 전체의 크기가 단일 테마공원으로는 동양 최대라는 얘기였는데…….

-그랬군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분명 ‘수족관’이라고 지칭했었다는 얘기를 다시 꺼내자니 꼭 말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느껴져 그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잠시 후 약간 어색한 생각이 든 나는 그녀에게 건배를 한번 제의한 뒤 혼자서 홍콩을 돌아보고 싶은데 가볼 만한 곳을 좀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곧 구룡반도와 홍콩섬, 그리고 신계로 나누어진 홍콩의 모양새를 탁자 위에 손으로 그려가면서 이곳저곳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홍콩 최고의 재벌이 연인들을 위해 만들어줬다는 바다를 낀 산책로서부터 밤새 불야성을 이루는 천막가게의 천국, 홍콩 야시장까지. 그녀는 어느 부분에서는 대단히 빠른 말투로, 또 어느 부분에서는 시를 읊듯 천천히, 하지만 전체적으로 친절함과 자상함을 잃지 않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행여 놓칠세라 조그만 노트에 그녀의 말을 받아 적어가며 얘기를 들었다.

잠시 후 새로운 맥주가 나왔다. 그녀는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마른 듯 반 병 가량을 시원하게 비웠고, 나도 말을 많이 듣는 동안 목이 마른 상태가 되어 역시 반 병 가량을 한번에 비웠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검은 바다 저 멀리로 선실에 불을 켠 거대한 선박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네?

갑작스런 내 말에 그녀는 놀라는 눈치였다.

-설명 중간 중간에 누군가와의 추억이 떠오르는 듯 보이더군요.

-…….

-내가 잘못 본 거라면 오히려 다행이구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이곳에서의 기억이 아니거든요.

-…….

-괜찮아요. 오래 전 일인데요, 뭘.

그녀와 나는 빈부의 격차가 극히 심한 축에 속하는 홍콩 사람들의 생활에 관해 얘기하며 몇 병의 맥주를 더 비웠다. 밤이 깊어지자 열 개 남짓 야외에 차려진 테이블들은 두세 곳을 빼고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헤어지면서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한 달 가량 체류하는 기간 동안 간간이 혼자서 돌아다니다 보면 마주칠 수도 있을 테니 반갑게 인사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홍콩은 너무 작은 데다 가볼 만한 곳도 한정돼 있어 아마도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


선상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야경은 마치 전세계 대기업들이 벌이는 전광판의 향연장과도 같았다. 내가 묵는 호텔이 있는 침사추이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선착장에서 관광용 유람선을 타면 이른바 백만 불짜리 야경으로 불리는 홍콩섬의 야경을 물위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사 설립에 관한 지루한 회의를 끝내고 난 뒤 그들과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갔다가, 이내 답답해진 나는 혼자서 선착장으로 나가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구룡반도와 홍콩섬을 사이에 두고 물 위에 떠서 바라본 빅토리아 항구는 풍요롭고 현란했다. 거대한 컨테이너선에서부터 레저용 요트, 정크선 등이 제각기 검은 바다 위를 돌아다니며 야경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난간을 붙잡고 뱃머리에 서 있는 내 얼굴을 바닷바람이 마치 누군가의 손길인 양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문득,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내 세차게 바뀐 변덕스런 바람에 그 생각마저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유람선은 그리 큰 편이 아니어서 너울너울 흔들림이 심했다. 그렇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난간을 붙잡고 눈앞에 펼쳐진 고층빌딩들의 현란한 불빛을 올려다보니 어질어질 멀미가 느껴졌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을 찰칵거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새를 헤치고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는 유람선 실내로 들어와 앉았다.

우두커니 앉아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고 있는 사이, 나와 같은 말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옆 테이블에서 들려왔다. 20대 후반 가량 돼 보이는 남자와 서너 살 아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음료수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언제 다시 오게 될까?

여자가 엷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물었다.

-여기? 

-응, 홍콩에 말야.

-오고 싶으면 또 오면 되지 뭐.

-다음번에도 둘이 함께 오는 거지?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일? 무슨 일?

-아니, 그냥.

-당연하지. 왜 그런 소릴 해.

-맞아. 혼자서 오면 좀 쓸쓸할 거야.

-그렇고 말고.

-아, 돌아가기 참 싫다. 우리 그냥 여기서 살아버릴까?

거기까지 얘기하고 나서 두 사람은 까르르 한번 웃음을 터뜨린 뒤 유리창 밖을 내다봤다. 고층빌딩의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휘황한 야경 사이로 레이저빔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가이드가 내게 홍콩의 야경을 설명할 때 얘기해준 적이 있는 레이저쇼인 듯했다. 선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옆 테이블의 두 사람은 난간으로 달려 나가 빛으로 가득 찬 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잠시 후 길게 입을 맞췄다.

 

 

 


*


이곳의 일은 그럭저럭 진척되고 있어. 해외 출장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여기도 낯선 느낌이 어느 정도 가실 때쯤이면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다시금 트렁크에 짐을 챙기게 되겠지.

홍콩이라는 곳, 꼭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낮에는 도시 어느 곳을 둘러봐도 별반 특별한 매력을 찾을 수가 없다가, 밤이 되면 전혀 다른 도시에 온 것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하거든.

만약 불빛으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도시에 어느 날 심각한 정전사태라도 빚어져 온통 암흑 속에 잠겨 버린다면 이곳을 찾은 모든 관광객들이 시 당국이나 여행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을까. 쳇, 나도 참 분위기 없는 사람이야. 환상적인 야경 앞에서 기껏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언젠가 홍콩의 야경을 사진으로 본 당신이 꼭 한번 함께 와 보자고 했었는데, 나 혼자 오게 돼서 미안해.

잘 자고. 또 메일 보낼게.


*


홍콩에선 회의를 할 때도 바다를 보며 한다. 물론 이곳에 먼저 와 있었던 회사 사람들이야 이제 습관이 돼서 그런 사실을 의식조차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나로선 까만 밤바다가 빌딩들의 알록달록한 불빛으로 번뜩이는 침사추이의 산책로 까페에서 진행되는 회의가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문서들을 넘겨가며 얘기를 진행하다 잠시 휴지기가 찾아와 고개를 돌리면 밤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찼고, 그럴 땐 이상하게도 마치 영화를 보거나 꿈을 꾸고 있는 듯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곤 하는 것이었다.

일정에 맞춰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명목상 회의의 목적이었지만, 실상 그들은 시원한 맥주가, 나는 이국적인 밤바다가 내심 그곳에 앉아 있는 감춰진 목적인 듯했다. 두 시간쯤 흐른 뒤 회의를 끝내고 까페를 나왔다. 그들은 내게 어딘가로 가서 한잔 더 하자고 권유했지만, 난 문득 마냥 혼자서 걷고 싶은 생각이 들기에 몸이 좀 피곤해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그들과 헤어졌다.

한밤, 바다를 끼고 길게 뻗은 영화의 거리에는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머리색과 피부색, 또 눈동자의 색깔이 제각각인 젊은 남녀들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영화 속 조형물들 옆에 서서 사진을 찍는 남녀, 거리 바닥에 새겨진 배우들의 손도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춰보는 남녀……. 그렇게 웃음소리와 카메라 플래시가 넘쳐나는 사람들의 사이를 나는 특별히 응시하는 곳도 없이, 특별히 생각하는 것도 없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잠시 아내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몹시도 그립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아내가 함께 왔다면 이곳 바다를 낀 거리에서 대략 스무 번쯤은 까르르 하고 경쾌한 웃음소리를 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발길을 돌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을 봤다. 길가로 테이블들을 내어놓고 불을 밝히고 있는 한 까페에 그녀가 어떤 남자와 함께 마주앉아 있었다. 이미 투어는 끝났을 시간, 그녀는 말쑥한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와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남편인지 남자친구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기 싫어 얼른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거리 쪽을 향해 돌아본 그녀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여기예요.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나갈게요.

순간 그녀는 나를 향해 그렇게 외쳤고, 내가 무슨 소린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녀는 마주앉아 있던 남자에게 다소 미안하다는 듯 양해를 구하는 표정이 되어 몇 마디 말을 건네고는 서둘러 일어서 내게로 다가왔다.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해줘요. 미안해요.

-…….

뭐라고 이유를 물을 사이도 없이 그녀는 내 팔짱을 끼고 걸음을 재촉했고, 그렇게 몇 십 미터를 걸어 그 카페와 얼마간 멀어진 후에야 머쓱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아요.

-…….

-여행객 중의 한 명인데, 당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군요.

-…….

-그럴 법도 해요. 당신은 낯선 남자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큼 매력적이니까.

-아니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평소에는 없던 과도한 용기를 북돋아주곤 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고, 그러자 그녀도 따라서 한번 웃어주었다.

-그래서, 그 남자에겐 나를 누구라고 했어요?

-남편이 데리러 왔다고 했죠, 뭐.

-…….

그녀가 왜 대답이 없느냐는 표정이 되어 나를 쳐다봤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뜬금없이 남의 남편으로 불리게 된 것이 기분 나빠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많이 힘들죠, 혼자 사는 게.

-…….

-아, 그냥. 남편이 있다면 그런 순간에 진짜 남편을 부르지 않았을까 해서요.

-떠났어요, 그 사람. 아니, 내가 떠나보냈어요.

-그랬군요.

나는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후회를 하며 혹시 그녀가 시나브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곤 했지만, 그녀는 차분한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얘기를 나누며 영화의 거리를 천천히 걸어온 그녀와 내 앞에 어느새 선착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이드들의 모임이 있어 배를 타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 사이 조금 장난스러운 얼굴이 되어, 아까 그 남자가 술에 취해 자기에게 많은 돈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확 그 남자랑 자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은 아무리 봐도 그럴 수 없는 사람인 걸요, 하고 말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한번 웃음을 지은 뒤, 자기를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며 언제든 다시 한번 만나게 되면 자기가 직접 저녁을 만들어 대접하고 싶다고 말한 뒤 선착장 안으로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


어젯밤엔 메일도 못 쓰고 그냥 잠들었네. 조금 피곤했나 봐, 호텔로 들어오자마자 샤워도 못하고 잠들어버렸지 뭐야.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아침에 일찍 눈을 떴고, 커튼을 활짝 열어놓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어. 누군가 들어와서 날 본다면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홍콩의 아침은 바다에서부터 시작돼. 육지도 바다도 모두 잠에서 깨어나기 전, 희뿌옇게 동이 트기 시작할 기미가 보일라치면 맨 먼저 깨어나 조용히 물위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걷어내는 정크선이 홍콩에 아침이 왔다는 걸 알리지.

그렇게 정크선들의 아침 청소가 끝날 때쯤이면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천천히 팔다리를 움직이며 기체조를 시작해. 바다와 면해 있는 이곳 호텔의 야외공간에도 아침마다 족히 삼사십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똑같은 동작으로 기체조를 하곤 하거든.

오늘 아침엔 12층에 있는 내 방에서 창을 통해 내려다보다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내려가서 한번 따라해 봤지 뭐야. 생각보다 쉽진 않다는 걸 깨달았지만, 바로 옆바다에서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팔다리를 움직이고 나니 날아갈 듯이 몸이 가벼워지더라구.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곳에서 한번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실은 어제 본사와 통화를 하다가 새로운 소식 하나를 들었어. 이곳에 지사가 설립되고 나면 한 명을 파견해 상주하게끔 할 계획인데, 내 경우에는 지원만 하면 충분히 선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구. 우선은 좀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얘기해 놓았어.

당신 생각은 어떤지. 낯선 사람들과 낯선 거리, 낯선 바다내음 속에서 살아보는 것 말이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뭐가 다를까 싶으면서도, 사실 자꾸만 걱정이 돼. 그렇게 새롭고 낯선 것들이 많아지면 그것들에 떠밀려서 잊으면 안 되는 것들까지 잊혀져 버리지 않을까. 그렇진 않을까…….


*


홍콩의 아파트들은 정말이지 너무 작다. 창문들 밖으로 주렁주렁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을 밖에서 올려다볼 때까지만 해도 그저 실내보다는 잘 마르니까 그럴 테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그것이 오로지 집이 너무 좁아서 빨래를 널어 말릴 장소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가족 단위로 서너 명, 많게는 다섯 명까지도 사는 아파트가 분명하지만 혼자서 살기에 그럭저럭 들어맞을 열 평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극빈층이 사는 지역도 아닌 걸 보면 아마도 홍콩 사람들은 좁은 땅덩어리를 효과적으로 나누어 사는 것에 진작부터 익숙해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 테라스가 없어 창을 열자 곧바로 바다냄새가 섞인 바깥바람이 실내로 들어온다.

-배고프죠? 조금만 기다려요. 이제 다 돼 가요.

집 한 켠에 마련된 주방에 서서 저녁을 만드느라 부산하게 손을 놀리면서 그녀가 소리쳤다. 괜찮으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말해주고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담배연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듯싶더니 다시금 바람을 타고 안으로 들어와 사르르 흩어졌다. 그렇게 실내를 휘돌며 흩어지는 담배연기 사이로 조그마한 액자에 넣어진 사진들이 보였다. 그녀와 한 남자, 그리고 사내아이 하나가 사진들 속의 주인공이었다. 때론 셋이서 함께, 때론 그녀와 아이가, 때론 아이 혼자서 밝게 웃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칼로 써는 소리,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 지글지글 볶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가 몇 차례 반복된 뒤 그녀와 나는 주방 바로 옆 작은 식탁에 마주앉았다. 다리가 없는 식탁은 한쪽 면이 벽과 연결돼 있어서, 식사를 하지 않을 때는 위로 접어 올려서 벽에 붙여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맛있네요.

그녀가 만들어온 베트남식 국수를 한 젓가락 먹고 난 뒤 그렇게 말해주자 그녀는 상당히 쑥스러운 듯한 얼굴이 되어 많이 먹으라고 답했다. 실상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으로부터 음식이 맛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의례적인 일에 속하는 것인데,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만든 음식을 누군가와 함께 먹어본 것이 매우 오래된 일인 듯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녀와 나는 홍콩의 야시장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오후에 나는 사람들과 몇 가지 법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에 대해 상의를 한 뒤 해질 무렵 홍콩의 가장 유명한 노천시장이라는 야시장을 구경하기 위해 혼자서 템플 스트리트로 향했는데, 그곳 큰 길 가에서 어디로 갈지를 몰라 헤매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도착한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내가 여러 번 마주칠 거라고 했죠?

그녀는 내가 야시장 얘기를 꺼내자 자신의 말대로 된 것이 자랑스럽기라도 하다는 듯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얼굴이 되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과 내가 마주친 곳, 그러니까 의류, 전자제품, 시계 등으로 유명한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뿐만 아니라 몽콕의 통초이 스트리트에 있는 레이디스 마켓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레이디스 마켓은 저렴한 의류, 액세서리와 가정용품 등 주로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물건들이 즐비한 곳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관광객들이 초고층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야경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헐값의 노천시장 중 어느 곳을 더 좋아하는지 물었고, 그러자 그녀는 ‘보러’온 사람인지 ‘사러’온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

식사를 마친 뒤 그녀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고, 그녀와 나는 가끔 담배를 피워가며 맥주를 마셨다. 나는 그녀에게 언제나 냉장고에 맥주를 채워놓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은 두 사람이 충분히 마실 만큼은 들어있다고 했다. 별다른 얘기 없이 그녀가 몇 차례 냉장고와 식탁을 오갔고, 식탁 위엔 마치 야시장 진열대마냥 빈 맥주캔 너댓  개가 늘어섰다.

-혼자 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죠?

누군가 둘 사이의 침묵을 깨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녀가 물었다. 그리곤 내가 특별한 답을 하지 않자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인데요 뭘.

-아이가 있었나 봐요.

-…….

-…….

-남편과 아들이에요. 죽었어요, 우리 아이. 내 잘못이에요. 그 때 어서 오라고 손짓하지만 않았어도, 달려오는 차를 보기만 했어도…….

순식간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마도 자동차 사고인 듯했지만, 그녀는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때로 되돌아간 듯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그녀의 눈물이 그치길 기다렸다. 얼마간 계속되던 흐느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그녀는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고, 나도 그녀를 따라 담배를 피웠다.

-큰일이에요. 아직도 이러니.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이가 죽고 나서 일 년쯤 뒤에 남편도 떠났어요. 아이가 없어지고 난 뒤 난 말을 할 수가 없게 돼 버렸어요. 어찌 해볼 도리도 없이 그렇게 돼 버렸어요.

-그랬군요.

나는 다시금 그녀의 감정이 복받칠 것 같아 그만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을 끊을 수는 없었다.

-말하고 싶었어요. 내 잘못이니 용서해 달라고. 이제 내게 남은 건 당신뿐이라고. 하지만 목에 커다란 돌멩이가 걸린 것처럼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일 년이 지나버렸어요. 참 괜찮은 사람이죠. 남편은 말 한마디 않는 나에게, 꼭 식물인간이 된 아내가 정신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옆에 앉아 얘기를 나눠주는 사람처럼, 그렇게 일년을 살았어요. 한데 그러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며칠 동안을, 몇 달 동안을 기다려봤지만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얘기를 멈추고 맥주를 몇 모금 마신 뒤, 남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다시금 말을 하기 시작했고 불현듯 낯선 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년 전에 혼자서 홍콩으로 떠나왔다고 말했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잊기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는 사람이 무엇인가가 잊혀질까봐 낯선 곳으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더 용기 있잖아요.

그녀는 나의 말이 갑작스러웠는지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낯설던 이곳이 이제 손바닥 보듯 훤하고 익숙해졌는데도 아직 이 모양인 걸요, 뭐. 어떨 땐 홍콩은 꼭 거대한 주유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유소…… 라구요?

-사람들을 태운 차들이 끊임없이 주유소로 밀려들어와 주유를 하고 떠나가듯, 이곳에 붙박여 살기보다는 낯설고 새로운 기억들로 무엇인가를 잊으려 애쓰다 다시 떠나가곤 하거든요.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일년이든. 하기야 어차피 주유소는 길 위에 있으니, 영원히 목적지가 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언젠가 홍콩을 떠날 건가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언제 주유가 끝날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그러자 그녀도 가볍게 따라 웃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와 나의 맥주캔이 다시 빈 것이 되었고, 그녀는 냉장고에서 맥주캔 두 개를 더 가져오며 이제 마지막이니 아껴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이제 당신이 혼자 사는 이유, 말해 줄래요?

-…….

-한 달이나 머무는 일정인데 챙겨온 옷들이 몇 벌 되지도 않아 보이고, 넥타이나 커프스 버튼도 여자가 골라준 것 같진 않고. 무엇보다 오늘처럼 야시장을 들렀을 때도 아내가 있는 남자들은 레이디스 마켓으로 가서 여자물건들을 사게 돼 있거든요.

-날카로운 추리이긴 한데, 잘못 짚은 걸요.

-…….

-괜찮아요. 나같이 무심한 남자, 혼자 사는 사람인 줄 아는 것이 당연하죠, 뭐.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샐쭉한 웃음을 지어보였는데,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남은 맥주를 다 마신 뒤 나에게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고, 나는 그녀에게 이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고에 대해 자책하는 일은 그만두라고 말해줬다.

창밖으로 후둑후둑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비도 오는 데다 호텔까지 거리가 머니 자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잠시 후 접이식 문으로 된 작은 욕실로 들어간 그녀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나는 소파를 잠자리 삼아 누워 있었고, 그녀는 내 쪽을 향해 무언가 얘기를 시작하려는 듯하다가 그냥 잘 자라고만 말하고는 침대로 갔다.

새벽녘 빗소리에 눈을 떴다. 그녀가 내 옆으로 와 있었다. 그녀는 내가 누운 소파에 나란히 누워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그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싶더니 내게 입을 맞췄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그건 그녀가 몹시도 긴장한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때 그녀가 울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 다시금 그녀의 아이 같은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좁은 소파 밖으로 그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리 빨리 가지도, 더디 가지도 않았다. 내가 홍콩의 간판들과 음식들, 그리고 버스 노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소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홍콩에서 내가 완수해야 할 업무 또한 별다른 문제없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홍콩을 떠나기 하루 전날 사람들은 내게 환송회를 열어준다며 늦게까지 술자리를 함께 했고, 다음날 공항에서 보자는 인사를 건넨 뒤 밤늦게 헤어졌다. 검은 바다, 빌딩의 야경, 그리고 야시장의 밤풍경……. 호텔로 들어간 나는 노트북을 켜고 얼마간 자판을 두드려 메일을 한통 보낸 뒤 테라스로 나가, 아침마다 사람들이 기체조를 하는 널찍한 야외 산책로를 내려다보며 이곳에 와서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렇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 있던 나는 이내 전화기를 붙잡고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


*


잘 있는지. 술이 좀 취했나봐, 자꾸 자판을 잘못 눌러 오타가 생기네.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눴어. 솔직히 자기들 일 잘 하나 감시하러 온 내가 뭐 그리 떠나보내기 아쉬운 사람일까 만은, 그래도 이렇게 송별회 자리까지 만들어주는 걸 보면 내가 그 동안 그리 밉게 굴지는 않았나 봐.

당신이 내게 그랬지. 난 순해빠진 데다 겁도 많아서 낯선 곳에 혼자 떨어뜨려 놓으면 며칠을 못 갈 거라고. 그런데 이곳에서 지낸 것이 벌써 한 달이나 됐네.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 그래 봐야 당신은 없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당신에게 매일 저녁 이렇게 메일을 보낸 것도 일 년이 다 돼가네. 힘들었지, 당신은 답장도 할 수 없는데 하루도 안 빠지고 내 편지 읽느라고.

이제 하늘로 메일 보내는 일 그만하려구. 그렇게 허망하게 먼저 갔어도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편지 안 해도 날 미워하진 마. 내가 당신을 천천히 잊어간다 해도 날 미워하진 마.


*


-미안해요, 거짓말해서.

-아니에요. 느낌으로 알고 있었어요. 당신도 혼자라는 거.

-…….

-내일 돌아간다구요?

-다시 오려구요.

-…….

-주유소 말인데요.

-…….

-어차피 목적지가 어딘지 모른다면, 길 위에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거기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길 위의 주유소가 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문장 웹진/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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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 읽는내내 흥미진진. 문장도 너무 매끄럽고 좋아요.^^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