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 김소희전

 

유인 김소희전孺人 金昭憘傳



                                                                           김이정




간다간다 나는간다

이세상을 하직하고

좋은시절 흐르는세월

나쁜액을 다걷어가지고

후손들은 잘살라고

남은복록 다주고간다


요령잡이의 선소리가 시작되는 걸 보니 이제야 떠나는구나. 빼어난 목청은 아니지만 소리가 제법 구성지고 가락을 탈 줄 아는 사람이다. 어허 어어어 어리넘자 어허어. 상두꾼들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겠구나. 노랫가락 따라 발길 내딛다 보면 어깨에 진 관의 무게도 잊는 법 아니겠느냐. 작고 물마른 노인네 무게야 얼마 나가겠냐만 부질없이 무거운 관이 못내 미안하구나. 길 떠나는 데는 몸 가벼운 게 제일인데 무거운 관이 내 마음까지 무겁게 만드는구나.

이제 와 얘기지만 나는 소리 잘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내가 한번도 제대로 소리 내 불러보지 못한 탓인지 나는 소리 잘하는 남자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만약 내생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다음 생에는 소리꾼으로 태어나고 싶다. 상여소리든 판소리든 그냥 노랫가락이든 내 맘껏 노래 부르며 한세상 살고 싶구나.

상두꾼들의 후렴소리와 발길 따라 흔들리는 상여가 마치 춤이라는 추는 것 같구나. 너울대며 흔들리는 꽃상여에 누워 춤추듯 작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병원에서 영구차에 실려 화장터나 공원묘지로 직행하는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작별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낫지 않느냐. 비록 종이꽃이지만 함박꽃을 잔뜩 매단 꽃상여를 타고 저 세상으로 가니 갑자기 내가 복 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고 구십 평생이 하룻밤 꿈처럼 아득해지는구나. 저 노랫말처럼 어제 이승 오늘 저승이라니 누가 지었는지 옳고도 옳은 말이다. 그토록 이 날을 기다려왔건만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은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오는구나. 하지만 그게 언제든 내 몸은 저 민들레 씨앗처럼 가볍게 길 떠날 준비가 돼 있으니 머뭇거리지 말고 나를 보내 주려무나.


울지 마라, 아가. 네 울음소리가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내 몸을 자꾸만 잡는구나. 넌 누구보다 내가 이 길을 얼마나 가고 싶어 했는지 잘 알면서 그렇게 서글피 울면 어쩌느냐. 그래, 너도 네 설움에 우는 거겠지. 누구나 자기 설움에 울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애달파 우는 건 아니란 걸 지금쯤은 눈치 챘겠지. 나이 오십에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막내인 네가 벌써 오십이나 되었구나. 이게 어쩌자고 애들 놔두고 남편 그늘 벗어나 혼자 살겠다고 돌아온 것인지, 기가 막히고 막막하기만 하던 때가 벌써 십년이 넘었구나. 고맙다, 그동안 내 곁에서 누구보다 좋은 보호자가 돼주었던 너. 네가 없었으면 내 마지막 생은 외롭고 초라하기 그지없었을 터인데. 내 곁에서 떠나지 못해 네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한 건 아닌가, 내 욕심이 너를 이 집에 붙들어놨던 건 아닌가,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구나.

어린 계집아이가 조신하지 못하고 당돌하게도 말끝마다 되받아친다고 어려서 네 조모에게 미움깨나 받더니 어느새 쉰 줄의 여자가 돼버렸단 말이냐. 해질녘만 되면 울어대는 너를 업고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생솔가지 태우며 저녁밥 하던 게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한데. 뼈에 가죽만 겨우 붙은 몰골로 허리마저 기역자로 굽은 이 노파가 정녕 나란 말이냐. 이 집에서 평생 몸 바쳐 살고 남은 게 뭐야. 엄마 허리 그렇게 낫자루처럼 구부러진 것밖에 더 있냐며 결코 시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노라던 네 말, 사실 그때 난 네가 기특하고 부러웠다. 적어도 너는 나처럼 살지는 않겠구나 안심이 되고. 나마저 가고 나면 혼자 남을 네가 얼마나 외로울까 맘 아프지만 그리 큰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넌 어려서부터 뭐든지 혼자 잘 해왔으니까.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어릴 적 내 동무 정애가 자꾸 떠오르곤 했다. 너도 아는, 저 옆동네 바우할매 말이다. 정애는 우리 집을 드나들며 허드렛일을 해주던 늪실댁의 딸이었다. 늪실댁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따라오던 정애는 나와 동갑내기여서 자연스레 내 동무가 되었다. 나와 함께 윷놀이도 하고 나와 함께 봉숭아물도 들이고 나와 함께 수도 놓던 아이. 우리 어머니 눈치를 보며 늪실댁은 나에게 애기씨, 라고 부르라며 정애에게 눈치를 줬지만 그 애는 단 한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고 꼬박꼬박 소희라고 불렀다. 난 그런 정애가 좋았다. 남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고집도 굽히지 않는 그 아이가 참 부러웠다. 열여섯이 되자 난 집안 간의 계약처럼 낯선 이곳으로 시집을 오고 정애는 그 이태 뒤 이 옆동네 청년과 눈이 맞아 시집을 왔다. 삼촌집에 놀러온 청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서로의 눈에 들어 정애 어머니가 먼저 나서서 혼례를 서둘렀나 보더라. 참 당찬 아이였다. 제 맘에 든다고 기어코 제 어머닐 졸라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생각을 하다니. 난 그때 정애의 거칠 것 없는 가난과 남 눈치 볼 것 없는 족보가 한없이 부러웠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건 그 애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니라 그만큼 당찼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더구나.

시집을 와서도 나는 오로지 웃어른들 잘 섬기고 남편 공경하고 조상 제사 잘 지내는 게 최고의 덕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정애는 그러지 않았다. 비록 소작인 집안이어서 봄이면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기는 했지만 가끔씩 놀러와 잠깐 내 일을 거들어주기도 하던 정애의 얼굴에는 늘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봄이 되면 쌀이 떨어져 쌀은 몇 톨 들어가지 않고 쑥이 대부분인 멀건 죽을 쒀먹고 지내도 이상하게도 정애는 모자란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비결을 한참 후에야 난 알았구나. 한번은 읍내에 나갈 일이 있었다. 동네 앞 들길을 가는데 정애가 제 남편과 함께 논을 매다가 밥을 먹으러 나오고 있더구나. 우리 집안 논 서마지기를 정애네가 부치고 있었는데 논둑에 나온 정애 신랑이 목에 두르고 있던 베수건으로 무논에서 나온 정애의 종아리를 일일이 닦아주고 있지 뭐냐. 곧 다시 논으로 들어갈 다리인데 그 잠깐 사이라도 편히 쉬라고 여자다리를 닦고 있는 그 남자와 그걸 또 천연덕스럽게 맡기고 있는 정애를 훔쳐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버리더구나. 저런 게 사는 거 아닌가 싶고…… 순간 제 남자에게 태연히 종아리를 맡기고 있는 정애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더구나.

내 자식들은 그 정애처럼 살길 바랐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훌훌 날듯이 살아가길…… 나처럼 어른들 앞에서 제 자식 아끼는 걸 무슨 큰 죄로 여기지 않고 예쁜 사람은 예뻐하고 미운 사람은 미워하고, 그렇게 살길 바랐다. 그런데 3남 2녀의 자식들 중 나를 닮지 않은 건 너 하나밖에 없었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모두 나처럼 기질이 약해 어른들 말씀이라면 한번도 거역할 줄 몰랐고 그 어른들이 정해주는 대로 살아들 가더구나. 엄하기만 한 네 할머니와 아버지 틈에 나는 낄 자리도 없이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이 되어 그분들이 정해주는 길로 다들 가버리고 결국 나는 애들 인생에 한 자락도 못 끼어든 채 늙어버린 것 같았다.

다만 막내 너만이 모난 돌처럼 튀어나와 네 아버지가 정해준 혼처도 마다하고 한 직장에 다니던 남자와 결혼을 했구나. 사람을 데려오면 당장 성이 뭐냐고 묻는 이 집안사람들 앞에서 넌 참 거침없게도 대장장이였다는 그 집안 조상들 내력을 풀어내 네 아버지를 아연케 했지. 난 그때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더구나. 끝내 네가 그 남자와 살림을 차려버리자 네 아버지도 하는 수 없이 혼례식을 올려줬지만 네 아버진 죽는 날까지 네 신랑을 무시하더구나. 단 한번도 천 서방이라고 부르지 않다가 아이가 생기자 석이아범이라고 불렀지. 그것도 어쩌다 한번 부르긴 했지만 말이다.

네가 그 사람과 끝내 잘 살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딴 여자 보고 있어도 참고 살았다면 내 마음이 덜 아렸을까. 아니다. 어느 날, 더 이상은 그 사람하고 같이 못 살겠다고 네가 가방 두 개 달랑 들고 이 집 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네 큰오라빈 그 길로 당장 되돌려 보낼 기세였지만 너를 이 집에 눌러 앉힌 건 바로 나였잖느냐. 네가 들고 있는 가방 두 개가 내겐 태산보다 높아 보였다.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지. 저렇게 집을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왜 한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난 무엇에 한방 얻어맞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건 나도 안다. 너 역시 그러고 나와서 십년이 되도록 밤마다 술 한잔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는 거 내 모르지 않는다. 아침이면 베갯잇에 얼룩이 더께지고 눈이 부은 채 늘 뒷산 서실까지 혼자 걷다오는 널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생간에 소금이라도 뿌린 듯 쓰렸다. 그래도 난 그런 네가 부럽더구나. 나중에 네 살아온 길 생각하면 적어도 네가 원하는 대로는 살아봤으니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을 거 같으니. 적어도 너 자신만 원망하고 후회하면 되지 않겠느냐.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 잎진다 설워마라 너는 명년 춘삼월이 되면 봄을 찾아 오건만은 한번 가는 우리 인생 다시 오지 못하리라.

흔들리는 상여 속에 누워 있으니 마치 맨몸으로 물결을 타고 있는 것 같구나. 망망대해라도 건너가는 것 같고, 어릴 적 누워 있던 요람 같기도 하고. 이토록 편안한 휴식을 왜 내게는 그토록 늦게야 허락한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이미 삼십년 전부터 죽음을 기다려온 내게…… 뭐든지 간절히 기다리면 이렇게 하늘이 심술을 부리는 법인지. 아니면 내가 더 보고 깨쳐야 할 것들이 있었던 건지.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구나. 내 몸의 핏줄 하나, 물기 한 방울, 살점 하나까지 다 소진시키고서야 이렇게 나를 데려가는 건 내가 여전히 어리석었기 때문일 게다.


내 한눈파는 사이 상여가 어느새 집 앞에 와 멈췄구나. 병원에서 그냥 곧바로 산으로 가면 될 것을 남부끄럽게 노제는 무슨 노제를 지내느냐. 저 늙은이 그리도 오래 버티더니 드디어 갔구나, 동네 사람들 마루에서 내다보며 한마디씩 하고 있겠다. 소리 없이 떠나고 싶었는데 괜한 짓들을 하는구나.

저 솟을대문을 이렇게 밖에서 보니 참 눈 설기만 하다. 늘 안에서 밖을 쳐다보기만 했지 이렇게 밖에서 안을 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선뜻 기억나지 않는구나. 그나마도 늙어 허리가 구부러진 후에야 어쩌다 네 오라비들이 사는 서울에 다니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흘깃 쳐다본 게 다인 것 같구나. 이 집에서 산 세월, 그러니까 열여섯에 시집와서 올해 아흔넷이니, 자그마치 일흔여덟 해를 살아오면서…… 참 오래도 버텨냈구나. 내가 시집왔을 때 니 아버지는 열두 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오학년이 되겠구나. 그 어린아일 남편이라고 받들고 살아갈 일이 참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리 정승판서가 수두룩했다는 선비 집안에서 엄한 가정교육 받고 자랐기로서니 열두 살 사내아이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장난기와 철부지 응석, 그리고 타고난 이기심을 감당하기에는 나 역시 너무 어린 나이였다. 우리 부모는 어쩌자고 이런 자리에 나를 혼자 보냈을꼬. 처음엔 부모 원망밖엔 없었다. 집이 어려워서 한 입이라도 덜려고 그랬다기엔 우리 집은 너무 부자였다. 만석꾼의 집 외동딸로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나를 대대로 족보 하나만 자랑거리인 집에 덜컥 보낸 우리 아버지는 도대체 장차 딸이 살아갈 날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을까 싶더구나.

대문 안으로 들어오니 비로소 몸에 익은 익숙한 그 집 같구나. 이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저 모과나무. 십년 전 죽은 오른쪽 가지를 아직도 쳐내지 않았구나. 잎도 나지 않는 가지를 차마 못 자른 내가 어리석었다. 저걸 잘라내야 했는데, 그래야 다른 살아 있는 가지들이 더 실한 열매를 맺었을 텐데. 저것도 결국 내 욕심이었던 것 같구나. 죽은 가지를 잘라내는 게 애처롭다는 핑계로 난 반쯤은 죽음에 이른 내 삶을 차마 버리지 못한 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두려웠겠지. 또다시 낯선 곳으로 홀로 떠나야 한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왜 없었겠느냐.

열여섯 살 나던 그 가을도 그랬다. 복사꽃 피던 음력 삼월에 초행을 치르고 그해 가을 신행을 오던 날이었다. 이 집 대문 안에 처음 들어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저 모과나무였다. 잎은 모두 떨어진 나뭇가지에 모과가 주렁주렁 노랗게 매달려 있었다. 나무가 참 못생겼다는 생각을 무심코 했던 것 같구나. 그건 얼핏 보면 여유만만 한눈팔이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낯선 곳에 갑자기 던져졌을 때 어둠처럼 확 달라붙는 불안감을 피해보려는 내 나름의 본능이었을 게다. 무심코 쳐다본 모과나무가 못생겨서 어쩌면 나는 인상마저 약간 찌푸렸던 것 같구나. 찌푸린 얼굴로 모과나무에서 눈길을 돌리던 순간, 하필이면 그 순간에 시어머니와 눈길이 딱 마주쳐버리고 말았구나. 시어머니의 눈빛은 화살촉 같았다. 그대로 내 연한 살에 날아와 박히는 것만 같았지. 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어린 며느리가 곱게 보일 리 없었겠지. 게다가 만석꾼의 집에서 오는 며느리라니 혹시라도 돈 있는 유세를 할까봐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확실히 기를 꺾어놔야겠다고 맘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의 그 화살촉 같은 눈빛이 아니어도 난 이미 무서워지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아는 사람이라곤 신행을 따라 온 친정아버지와 삼촌밖에 없는 낯선 집에서 다음날 그 두 분마저 친정으로 돌아가시고 나자 난 정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절해고도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열두 살짜리 신랑은 동갑내기 내 남동생보다 더 철없어 보였으니 그 사람을 의지할 엄두조차 나지 않더구나. 참 무자비한 일이었다, 그때 혼인이라는 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한집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게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아무리 그게 당연한 일로 교육을 받았기로서니 아직 초경도 치르지 않은 내가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신행 오고 일주일도 안 돼 초경이 터지는데 이 집에서 나는 시작부터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된 셈이지. 시집올 때 가져온 서답을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겨우 해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진할 듯 긴장이 되고 미친 듯이 집이 그리웠다.  


높은 기단 위에 얹힌 저 날아갈 듯한 사랑채 난간이 오늘은 몹시도 초라해 보이는구나. 내려앉은 내 몸처럼 이젠 낡고 낡았구나.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위엄과 범접할 수 없는 오만으로만 보이던 저 사랑채 난간조각들과 해마다 황토 먹이고 깻묵으로 닦아대 윤기 반지르르하던 마룻바닥들이 팔십여 년 세월 동안 정말이지 몰라보게도 낡아버렸구나. 검게 변해 부석거리는 저 나무들처럼 내 살아온 날들도 닳고 닳아 이젠 기억조차 까마득하구나. 

내가 시집올 때 나이 겨우 서른셋이던 시어머니는 내게 어른 노릇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나이였다. 당신 속에 있는 심사도 채 못 다스릴 나이에 아랫사람들을 품어내야 하는 그 자리에 올라가버리다니. 생각해보니 그 분도 못할 노릇이었구나. 저 동구 밖으로 출타하셨던 아버님의 그림자만 보여도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벗고 있던 버선을 신고 옷매무새 고치기에 여념 없던 시어머니는 어린 며느리가 고분고분해 보이자 곧 그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안방마님으로 들어앉은 시어머님 덕에 모든 집안일은 내 차지였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디딜방아 찧는 일부터 어머님 잠자리 시중까지 모두 내 일이었고, 그 많은 제사까지 고스란히 내 차지였다. 나는 늘 잠이 부족했고 그 귀한 내 새끼들 품에 제대로 안아볼 새도 없이 젊은 날들을 보내고 말았다.

내가 오기 전부터 기울기 시작한 집안은 한 해 한 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집 앞 너머 들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토지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기 시작하더구나. 당연히 소작인들이 들여오던 벼 가마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가 차려내야 하는 제사상과 손님상은 전혀 줄지 않았고 나는 상 차리라는 그분들의 명령 한마디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변함없는 제상을 차려야 했고 흠 잡힐 데 없는 손님상을 차려야 했다. 결국 나도 빚을 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더구나. 가을 추수철이면 진풍경이 벌어졌다. 도지로 거둬들인 벼 가마들은 이 집 창고에서 며칠을 가지 못했다. 벼 가마가 들어오면 이 집 사람들은 서로 누가 먼저 그 벼 가마들을 내가느냐에 신경이 곤두섰다. 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친정동생에게 해준 돈을 갚기 위해 벼 가마를 몰래 빼냈고, 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남의 말만 듣고 금광에 투자했던 돈을 다 잃고 그 이자를 갚기 위해 벼 가마를 논에서 곧바로 내갔으며, 나 역시 제상 차리느라 봄부터 진 빚을 갚기 위해 새벽이면 몰래 나와 창고의 벼 가마를 담 너머로 던지느라 진땀을 뺐다. 너도 알다시피 음력 구월은 절사까지 합치면 제사가 열 번도 넘지 않느냐. 어른들은 상 내와라, 한마디면 끝이었지 그 상을 무슨 수로 차리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내 몫이었다. 그 사정을 시어머님이나 네 아버지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서로 눈감은 채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지. 집은 눈에 보이는 기둥과 지붕 따위들만 멀쩡했지 안 보이는 곳에서는 서까래가 내려앉고 대들보가 썩어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그것들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지켜오던 것들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네 아버지는 숨이 차 보였다. 집이 점점 무너져 내릴수록 네 아버지의 고집은 더 완고해져만 가더구나. 지금도 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 네 큰오라비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였다. 집안 형편이 한참 어려울 때였는데 네 할머니는 뒤늦게 난 당신의 막내아들과 동갑인 맏손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당신이 낳은 아들만 대학에 보내라고 했다. 맏손자는 그냥 고등학교로 됐다면서 당신 아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네 아버지에게 수십 번도 더 되뇌고 다짐받고 했다.

결국 네 큰오라빈 고등학교만 졸업한 채 집에 들어앉아 버렸고 동갑내기 삼촌은 대처의 대학에 방까지 얻어 진학했다. 그전까지는 부모 말이라면 부처님 말씀보다 더 지엄하게 받들던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지만 그때만은 난 네 아버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명분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제일 먼저 자식을 희생시키는 네 아버지가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네 아버지나 할머니마저도 그 시대의 희생자였는지 모른다. 돌아가던 날까지 탕건을 벗지 않았던 네 아버지가 끝내 지켜내려 안간힘 썼던 게 무언지 난 아직도 모르겠구나. 네 아버지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속이 텅텅 빈 이 집에서 자신의 속도 텅 비우고 나서야 돌아가더구나. 난 네 아버지가 돌아가면 이 집이 그대로 폭삭 내려앉을 줄 알았는데 이 집도 모질기가 내 목숨 같은지 아직도 이렇게 버텨내고 있구나.

 

저 담 지나면 안채구나.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해주는 저 흙담에 난 구멍, 오는 사람들마다 신기하게 바라보던 저 구멍. 이렇게 마당에서 저 구멍을 보니 책 한 권만한 네모일 뿐인데 내겐 그 어떤 것보다 큰 숨구멍이었다. 사랑채 입구로 들어오는 사람을 안채에서 볼 수 있도록 나 있는 저 구멍을 누가 처음 만들 생각을 했던 건지 참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그 구멍 하나를 뚫는 데도 몇 백 년의 시간이 흘렀을 게다. 우선은 안채의 여자들을 사랑채 손님들이 함부로 볼 수 없도록 하고, 사랑채로 오는 손님을 안채에서도 확인하고 손님상 준비를 좀더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게 분명한 저 구멍의 용도가 내겐 세상을 내다보는 숨구멍이 돼 주었다. 공책보다 작은 저 구멍으로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갓 쓴 선비와 독립운동 하다가 일본경찰한테 고문당해 한쪽 다리를 못 쓰시던 재종어른, 일본순사, 면서기, 밥 얻으러 온 상이군인까지, 내가 본 세상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나는 저 구멍을 통해서 봤다.

그리고 저 구멍으로 한 사람을 만났구나. 그래, 그냥 본 게 아니라 그 사람은 저 구멍을 통해서 유일하게 내가 만난 사람이다. 아마 내가 셋째를 낳고 몸이 거의 돌아온 때니 서른셋쯤 됐을 땐가 보구나. 늦은 봄날이니 아마도 이때쯤일 것 같구나. 인기척이 나 구멍 사이로 내다보니 어느새 피었는지 흰 불두화송이들이 먼저 보였다. 고봉으로 담은 흰쌀밥마냥 탐스러운 꽃송이들 사이로 한 남자가 보이더구나. 얼굴이 불두화처럼 깨끗하고 단아한 사람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어딘지 낯익은 사람이었다. 사랑채에서 네 아버지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가이 맞더구나. 도대체 누군데 저리도 반가울까. 그 장면을 봤다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의문이었을 게다. 좀처럼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네 아버지의 얼굴이 저리도 환히 밝아질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했으니까. 마치 잃어버린 형제를 만나기라도 한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네 아버지의 친구였다.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귀국한 사람인데 그동안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났다더구나. 일본 유학을 갔다가 고학하느라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공부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돌아왔다고 나중에 니 할머니가 얘기해줘서 알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구멍을 통해 그 사람을 처음 보는데 왜 그렇게 몸이 떨리던지…… 아니 떨린 건 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텅 빈 내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불두화 때문이었는지 잠깐 머리가 어질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제일 확실한 건 그 사람을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거였다. 분명히 그전에 내가 봤을 리 없는 사람인데 아는 사람만 같더란 말이다. 그 사람의 얼굴과 표정, 심지어는 네 아버지 손을 덥석 잡는 그 희고 가지런한 손가락까지 낯설지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알던 사람처럼 느껴지더란 말이다. 얼마나 지났는지 멍하니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내 자신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자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외간남자를, 그것도 남편의 친구를 그렇게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게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나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허둥대며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찬거리도 남은 게 없더구나. 나는 뒷문을 통해 작은집으로 달려가 그 집에 남아 있던 계란 하나와 장조림 한 종지와 조기 두 마리까지 얻어왔다. 도대체 누가 왔기에 이러냐는 작은어머님의 의아한 눈초리를 뒤로 하고 와서 새로 불을 떼 흰쌀밥을 해 고봉으로 담았다. 꼭 불두화송이 같더구나. 차마 내가 상을 들고 가지는 못하고 부엌일 돕는 아이 편에 들려 보냈더니 네 아버지가 몹시도 흡족해 했다더구나. 그런데 그날 마음이 흡족한 것은 네 아버지보다 내가 훨씬 더 했느니라. 가끔씩 네 아버지나 할머니의 명령으로 온 신경 다 써서 차려내는 교자상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그래도 정성이라면 한 치도 모자라지 않는 그 상을 들여보내고 나니 내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나중에 깨끗이 비워진 상을 보니 그런 내 마음을 그 사람도 알아준 것만 같고…… 그날부터였다. 내 맘이 흰 목화솜이라도 덮인 것처럼 포근해지기 시작한 것이.


내게 그런 날들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한번도 그런 마음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그날 이후 나는 내 마음속에 아주 낯선 누군가가 들어선 것만 같았다. 으레 집안에서 정해주는 남자와 혼례를 올리는 거라 믿었고, 혼례를 올리고 나면 시댁의 법도에 따라 시어른 잘 모시고 남편 공경하면서 자식 위해 내 몸 다 바치고 사는 게 내 할일 하고 사는 거라 배웠고,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지만 그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나는 몰랐다. 결혼할 때는 아이 같던 남편이 몇 년 지나자 갑자기 어른이 돼서 내게 깍듯이 상전노릇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 양반은 그저 내 상전이려니, 그 양반의 말은 곧 내게 명령으로만 들렸고 난 그 명령에 복종할 의무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일년에 서너 번 무슨 철마다 옷 바꿔 입듯 합방을 하긴 했지만 나는 도통 그 일이 무섭기만 했지 좋은 줄을 몰랐다. 내가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허겁지겁 내 몸속으로 들어와서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가버리는 그 양반 밑에 누워서 나는 어서 이 아픔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만 빌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정말이지 단 한번도 합방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사람의 몸이란 게 이상해서 그렇게 나무토막끼리 서로 부딪치고 마는데도 아이들은 생겨나니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놈들끼리 교미를 하고 또 곧바로 남남으로 돌아서 새끼를 낳는 동물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더구나. 난 정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동물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이 잠시 붙어 애 낳고 그러는 줄 알았지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마음이라는 게 생겨나 제 멋대로 살아 숨쉬는 건지 미처 몰랐다.

내 속에서 자꾸 무언가 허전한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셋째를 낳고 나서부터였다. 그전에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하나 둘씩 생겨나더란 말이다. 나를 보는 네 아버지의 눈길에 온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난 아이를 셋이나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저 집안 구석에 세워둔 문갑이라도 대하듯 무심한 그 눈길이 자꾸 맘에 걸리기 시작하더구나. 저 사람 눈에는 내가 그냥 아랫사람 중 하나거나 물건으로만 보이는 건 아닐까, 자꾸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그럴수록 내 속은 없는 집 곳간처럼 텅텅 빈 것 같기만 하더구나. 참 허전하고도 허전했다. 좋은 것도 하나 없고 싫은 것도 하나 없는 그 무덤덤한 인생이 참 쓸데없다는 생각만 들고,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억울하고 원통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는 게 이렇게 해야 할 일들과 지켜야 할 것들로만 이어진 것이라면 이건 꼭 내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유모나 부엌어멈만 있으면 충분할 일을 굳이 내가 꼭 하고 있을까 싶고……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수세미타래 같았다. 가끔은 그냥 이 집에서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한번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몸에 새겨진 어른들 말씀이 아니어도 난 우선 용기가 없었다. 도망칠 용기가 없으니 난 더더욱 이 집의 며느리, 아내, 어머니 역할에 내 온몸을 바쳐 충실히 해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내 자신에 대한 비웃음을 그렇게 견뎌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어쩌다 짬이 나 텅 빈 방에서 잠시 등이라도 기대고 앉아 있으면 그냥 모든 게 허전하고도 허무했다. 밖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조차 나하곤 무관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른 명태만 같던 내 몸에 갑자기 물줄기가 생긴 것 같더구나. 몸 구석구석으로 물길이 생겨서 어디든 촉촉해지는 기분 말이다. 누가 잠시 건드리기만 해도 물줄기가 툭 터져버릴 것처럼 찰랑찰랑해지고 아슬아슬해지는데…… 어느새 내 몸은 오월 산천의 나뭇잎들처럼 싱싱하고 파들파들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속에 그 사람을 품고 살기 시작했다.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네 오라비를 가슴에 품고 앉아 젖을 먹이면서도 나는 그 속 안 보이는 곳에 그 사람을 더 깊이 품고 있었고, 철마다 치르는 네 아버지와의 합방 때도 나는 그 사람과 만나는 거라고 혼자서 몰래 딴마음을 품었다. 그러고 나니 내 사는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젖먹이고 있을 때는 마치 그 사람이 내 젖무덤을 쓰다듬어주는 것만 같고 네 아버지와 합방할 때는 그 사람의 온기가 내 몸속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더구나. 한번은 네 아버지가 스치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을 뻔한 적도 있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 신음을 참기는 했지만 내 몸이 벌어지고 떨리고 경련을 일으키다가 마침내 어딘가 둑이 터지듯, 꽃봉오리가 벌어지듯, 터져나오는 그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보다 더 당황한 것은 네 아버지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으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여자의 몸에 당황한 네 아버지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뜻밖의 요부를 만났다는 듯 아주 복잡한 얼굴이더구나. 나는 시침을 딱 뗐다. 마치 내가 아니었던 듯, 전혀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네 아버지를 빤히 마주 봤다. 벽에 걸린 도포자락을 쳐다보듯 아주 무심하게. 그제야 네 아버지는 자기가 뭘 잘못 보기라도 한 듯 얼른 얼굴을 바꾸더구나. 나는 그 후로 내 몸을 들키지 않기 위해 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마다 더 무심해지는 연습을 무던히도 했다. 내 몸에 흐르는 물줄기를, 내 마음에 이는 이 아지랑이 같은 온기를, 내 혼 속에 깊이 새겨진 그 사람의 그림자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더 정숙하고 현명한 아내의 얼굴을 변함없이 유지했고 자애 넘치는 어미의 손길로 너희를 안곤 했다.

그 사람은 그 후로도 가끔 우리 집에 들르곤 했다. 비록 하루는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에 떨어져 살았지만 그 사람은 지나는 길이 있을 때마다 들러 하루나 이틀을 묵어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안채 저 구멍을 통해 그 사람을 재빨리 훔쳐보면서 당사자조차도 모르게 그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까지 만나곤 했다.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이 닫는 조심스러운 문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 사람이 함부로 남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알았고 그 사람이 남긴 정갈하고도 흐트러짐 없는 밥상을 보며 헛된 길을 가지 않을 사람이란 걸 알았으며 네 오라비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결 고운 마음씨를 보았다. 굳이 그 사람에 대해서 누구에게 들을 것도 없이 나는 단숨에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그 사람은 끝내 이런 내 맘을 알지 못했을 게다. 아마도 짐작조차 못했겠지. 그건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것이었으니까. 난 그걸 아무하고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아마 내 뱃속을 제일 아프게 하고 나온 막내 네가 달라고 했더라도 나는 두말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그것만이 온전히 내 것 같았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눠가질 수 없는 나만의 것. 심지어는 그 사람하고조차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게 이 세상에, 그것도 내 속에 있으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느냐.


안채로구나. 내가 일흔여덟 해나 살았던, 내 몸과 다름없는 대청마루와 부엌 그리고 방들, 아마도 저 기둥과 마룻장의 검은 땟자국 절반쯤은 내 지문이 쌓인 흔적일지도 모른다. 내 허리가 구부러지기 시작한 게 언제쯤이었더라? 정확치는 않지만 한 쉰 중반쯤 됐을 때부터인 것 같구나. 난 살림을 큰며느리에게 물려주었다. 한사코 안 받겠다는 며느리에게 남은 것 없는 빈한한 살림을 물려준 후부터 나는 저 문간방에 틀어박혀 새로운 일 하나를 시작했다. 바로 수의를 짓는 일이었다. 너도 봤지? 구년 전 네 아버지 장례 때 펼쳐놨던 그 수의들 말이다.

나는 아주 천천히 수의를 짓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내가 고운 옷감을 유난히 좋아하는 걸 아는 친정 올케가 구하기 힘든 옷감만 생기면 인편에 보내준 것들이 반다지에 차곡차곡 쟁여져 있었다. 시집올 때 가져온 명주 옷감들도 칠칠하게 남아 있었고.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옷감만 골라서 나는 향물도 들이고 쪽물도 들이고 쑥물도 들였다. 손으로 짠 명주 옷감이 참 곱기도 하더구나. 그 옷감들로 네 아버지 수의를 짓기 시작했다. 재주 없는 내가 그중 나은 게 바느질이 아니더냐. 재봉틀 하나 쓰지 않고 천천히 명주실로 바늘을 한 땀 한 땀 떠가는데, 이상하게도 바느질하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내 일생이 고스란히 그 옷들에 새겨지는 기분이 들더구나.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시집와서 아이들 낳고 살아온 그 세월들 말이다. 그 세월들 하나하나가 바늘 끝에서 되살아나는 그 기분을 뭐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구나. 수의를 지으며 어느 때부터인가 난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사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사람 생각하며 보냈던 시간들도 남김없이 그 옷가지들의 솔기와 깃, 배래, 심지어는 버선볼에까지 찬찬히 새겨 넣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구나. 한 이십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수의를 지었지만 기분으로는 내 살아온 만큼이나 걸린 것 같더구나. 수의는 속적삼부터 바지, 저고리 모두 다 세 벌씩 한다는 거 너도 알지? 나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수의에 갖춰야 할 것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만들었다. 수십 벌의 옷과 이불, 버선, 신발에 손톱 깎아 담는 오낭까지, 정말 가짓수도 많더구나. 수의는 어쩌면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입었던 옷들을 한번에 고스란히 다 입고 가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참 많기도 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못 입고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사실 아니더냐. 그렇게 수의를 다 만들고 나니 이상하게도 나는 그제야 네 아버지에게 미안해지더구나. 돌이켜보니 그 옷들 만드는 내내 난 네 아버지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더란 말이다. 네 아버지 수의 만들면서도 나는 벌써 이십년 전에 죽은 그 사람 생각만 하고 있더구나. 그래, 그랬다. 그 사람 죽었단 소리 듣고부터 난 네 아버지 수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 수의 한 벌 지어주고 싶은 맘으로 네 아버지 옷 수십 벌을 지었고 그 사람 이불 한 채 덮어주고 싶은 맘으로 네 아버지 이불을 열 채도 넘게 지었다. 네 아버지 관에 들어간 그 많은 옷과 이불, 손싸개, 발싸개, 저승사자에게 정성으로 가져간 그 명주수건들 모두가 실은 그 사람을 위해 지은 거더란 말이다.

그래서 니 아버지 돌아갔을 때 난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나이 들어 가뭄 든 논바닥처럼 말라붙은 눈이지만 혹시라도 눈물 한 방울이라도 빠져나올까봐 난 늙은 육신의 마지막 힘을 다 모아 울지 않고 버텨냈다. 나처럼 눈물 많은 인간이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가 끓는 내 자식들 곡소리만으로도 울 이유는 충분했으니까. 그래도 난 참아냈다. 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내 눈물이야말로 네 아버지를 가장 욕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것만은 할 수 없지 않았겠느냐. 그것만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침내 이 집을 떠나는구나. 오랜 세월 내 혼을 담았던 육신처럼 닳고 닳아 이젠 벽지 사이로 마른 흙 흘러내리고 마룻장에 구멍 숭숭 뚫려 휘청거리는 집. 나 떠나도 넌 남아 누군가에게 또다시 한 세상이 되어주려나. 한 사람 인생이 이 낡은 집 하나만 못하구나. 나 누구에게도 저렇게 따뜻한 바람막이 돼준 적 없고, 허리 눕혀 쉬게 해준 적 없으며, 홀로 앉아 속울음 울 수 있게 가만히 문 닫아준 적도 없구나. 나 내 안의 설움에만 갇혀 네 고마움을 몰랐구나. 집도 목숨 있는 것인 줄 진정 몰랐구나.


흰 찔레꽃 향이 어지러운지 이 꽃가마도 휘청이는구나. 이 산 저 산 피는 꽃은 봄이 오면 싹이 트나 이 골 저 골 장유수는 한번 가면 다시 볼까. 노랫말처럼 이 눈부신 산천 다시는 볼 수 없으려나. 저 비단치마 겹겹이 껴입은 붉은 모란꽃 속 노란 꽃술 다시 보기 어려울까. 잔별들처럼 떠있는 저 샛노란 애기똥풀들 내게 마지막이라고 몸 흔들어 인사하는구나. 저 청보라빛 붓꽃들 몸 활짝 벌려 누굴 유혹하는 게냐. 햇빛보다 더 반짝이는 감나무 잎들은 어느새 청년의 몸처럼 늠름하게도 버티고 있구나. 저 두견이와 뻐꾸기는 어쩌자고 이리 울어댄단 말이냐. 온통 되살아나고 피어나고 뻗어나가는 소리로 소란스러운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나 홀로 가는 길, 외롭지 않구나. 서럽지 않구나. 무섭지 않구나. 아가, 그리 서러워마라. 나는 네 에미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거란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전의 내 본디 자리, 태초의 한 씨앗으로 돌아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르지. 먼저 간 네 조부모님도, 아버지도, 또 그 사람도, 아무도 없을지 몰라. 저 아지랑이 같은 흔적조차 없는…… 누가 알겠느냐. 무엇이 있는지 또 무엇이 없는지. 아니 그곳이 어딘지조차……

저 푸른 청솔밭, 휘어진 소나무 숲이 내 새 거처로구나. 마음에 드는구나. 위로 조상들이 층층이 모셔져 있기는 하다만, 내 옆에 먼저 와 누운 네 아버지 방도 보이긴 한다만 이제 다른 세상인데 그게 무슨 대수겠느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 모든 건 이제 남은 너희들의 셈일 뿐이지, 난 내 새로운 거처에서 편히 쉬마.

결국 저 좁고 길쭉한 나무관 하나 속에 들어갈 몸이 무얼 그리 애쓰고 살았는지. 참 이상도 하지, 결코 펴지지 않을 것처럼 직각으로 굽은 등이 목숨 다 하니 스르르 쭉 펴지는 거 너도 봤지? 무엇이 내 허리를 그렇게 구부려 놓았던 건지. 펴진 허리로 누워 있으니 편안하구나. 우리 엄마, 죽어서 얼굴도 희고 더 이뻐졌네. 마지막 내 얼굴 쓰다듬으며 네가 중얼거렸지. 그래, 내 마지막 외출에 나는 온 정성을 다해 곱게 단장을 했더란다. 

네 아버지 수의를 만들고 난 후 나는 또 한 벌의 수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내 수의였다. 쉬 죽음이 허락되지 않다 보니 남은 시간이 하도 길어 내 수의까지 직접 만들어 입고 떠날 수 있더구나. 네 아버지 수의처럼 격식 다 갖춰 만들지는 않았다. 치마저고리 한 벌, 딱 그것만 했다. 무거운 옷 치렁치렁 걸치고 가고 싶지도 않더구나. 내 맘에 드는 옷 단 한 벌만 하는데, 이제 와 얘기다만 난 그 어느 때보다 맘이 좋았다. 나를 위해 옷을 짓는 게 그렇게 흐뭇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제일 고운 옷감을 골라 옷 한 벌을 정성껏 꿰맸다. 너도 봤지? 참꽃빛 고운 명주 치마저고리 말이다. 참 곱기도 하지. 우리 어머니 이렇게 고운 옷 입고 싶으셨는데 내 손으로 한 벌도 못 해드렸네. 맏며느리가 그 수의 끌어안고 울 적에 난 꼭꼭 숨겨두었던 뭔가를 들켜버린 것 같았다. 아마도 내 얼굴이 참꽃보다 더 붉어졌을 게다.


이렇게 곱게 차려입고 그 사람 만나러 가고 싶었다. 내가 더 이상 네 아버지 아내도 아니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네 아버지 친구도 아닌 다른 세상에서 그 사람 만나러 가는 길, 난 그 어느 때보다 곱게 차려입고 싶었다. 그 사람에게 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게, 내가 그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몸의 물기, 기름기 다 마르고 검은 머리 한 가닥도 남지 않은 백발에 이 고운 옷 한 벌 간절히 입고 싶은 이 마음을…… 너는 용서할 수 있겠느냐? 《문장 웹진/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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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여기서 만나니 감사할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