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속에는 인어가

 

연못 속에는 인어가



오현종




1


어부의 두 번째 아내마저 집을 나가자 동네 사람들은 어부를 가엾게 여겼습니다. 어부의 첫 번째 아내는 딱 일년을 살다 바다 건너 친정으로 돌아갔고, 두 번째 아내는 반년도 못 살고 짐을 싸서 도망쳤습니다. 어부의 두 번째 아내가 달아난 날은 바로 어부 아버지의 기일(忌日)이었다지요? 구멍가게 김씨는 어부의 두 번째 아내에게서 다리 모델 오디션을 보러 서울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동네방네 떠들어댔습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어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묻고 다녔답니다.

동네 사람들은 어깨에 그물을 메고 맥없이 부둣가를 오가는 어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이고 어부가 아내를 잡으러 기차역으로 쫓아가지 않을까 주의 깊게 지켜보던 이들도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흥미를 잃어버렸겠지요. 어부는 기차역에 가지 않았고, 어부의 아내 또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통통하던 어부의 뺨이 수척해졌습니다. 나이 서른도 되지 않아 입가에 팔(八)자 주름이 생겼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혼자 부둣가 대폿집에 앉아 산낙지와 소주를 마시는 어부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옛날옛날 중국에선 바다에 나가 인어를 낚아 왔다지

인어를 연못에 넣고 아내로 삼아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았다지


어부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인어는 집을 나가지 못하나요?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지요.


물이 없으면 인어는 살 수가 없다네

인어는 연못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살아

눈물은 방울방울 진주가 되어 떨어지지


어부는 아직 입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낙지다리를 떼어냈습니다. 정신차리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려고요. 어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소주를 권했지요. 그들은 돌려가며 소주 한잔씩 받아 마신 뒤 바다 속 인어에 대해 소상히 일러주었습니다. 누군가는 대폿집 여주인을 불러 막걸리 한바가지를 주문했지요. 누군가는 가리비와 초고추장을 찾았습니다. 누군가는 인어는 됐으니 북어나 달라고 했습니다. 순식간에 대폿집 안은 시끌벅적해졌지요. 그 언젠가 어부의 혼례날 앞마당처럼요.

동네 사람 1은 인어가 아주 깊은 바다 속에 살고 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동네 사람 2는 인어의 살결이 백옥같이 희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동네 사람 3은 인어가 베틀 앞에 앉아 고운 비단을 짠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부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인어는 꼬리가 달렸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색시로 삼죠?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대화에 끼어든 건 동네 사람 4입니다.

-이 사람 성질도 급하긴. 걱정 마, 비단 짜는 인어는 다리 두 개가 온전히 달렸으니. 밤일일랑 문제없어.

-그러면 사람 말도 할 줄 아나요?

-말은 해 뭐에 써. 마누라는 벙어리가 최고야.

동네 사람 4는 소주와 막걸리 말고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맥주병을 들고 온 여주인은 동네 제일가는 미남이 홀아비로 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장단맞춰주었지요. 동네 제일가는 미남인지는 몰라도 동네 제일가는 구두쇠가 틀림없는 어부는, 그 와중에도 사람들이 술을 몇 병이나 시키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먼저 집에 가서 어머니께 여쭤봐야겠어요.

어부는 바삐 술값을 셈하고 대폿집 문을 나서려 했습니다.

-이봐, 소라 한점 시켜주고 가지?

어부는 마지못해 소라 한 접시 값을 더 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더 시킬까봐 무서워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야 했습니다. 어부가 부슬비를 맞으며 어머니에게 뛰어간 뒤로도 대폿집 안은 농지거리와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지요.


2


-어머니, 어머니, 바다에 나가 인어를 잡아올게요. 인어가 색시로는 안성맞춤이라네요.

어부는 대문 앞에 이르자마자 처마 밑에서 쿵쿵쿵 절구질하고 있는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인어를 데려다 뭣에 쓰게? 인어도 밥 할 줄을 안다냐?

어부 어머니는 말끝에 입을 한번 비죽였지요. 며느리들이 도망친 뒤로 울화가 쌓일 대로 쌓여 절구질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밥이요? 밥은 모르고, 비단은 짠대요. 하루 종일 베틀 앞에 앉아 비단을 짠대요.

-오라, 그러면 비단을 팔아 쌀을 사면 되겠어. 네 두 번째 색시처럼 입만 살아선 안 되지.

어부 어머니는 그제야 절굿공이를 내려놓고 아들 말에 귀기울였습니다.

-게다가 눈물을 흘리면 몽땅 진주가 된다네요.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 네 색시 둘 다 눈물이 헤펐잖냐. 장마 전 개구리처럼. 그렇게 울어댄다면 진주가 매일 몇 되는 나올 거야. 그야말로 알짜배기 색시로군. 그나저나 데려오는 데 돈들 일은 없다냐?

-돈들 일이 뭐 있겠어요? 바다에서 건져오면 될 일인데.

-그것 참 마음에 드네. 하긴 초혼도 아니고 세 번째 혼인이니 식이고 뭐고 없이 그냥 데려다 살아보렴.

어부와 어부 어머니는 기쁜 마음에 저녁 먹고 마주앉아 화투를 쳤습니다. 화투를 치면서 도란도란 인절미와 모과주도 나눠 마셨지요. 안방 한구석에서는 어부의 첫 번째 아내가 혼수로 장만해왔던 텔레비전이 수목드라마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부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을 때도 노상 틀어놓고 귀로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부는 첫 번째 아내가 달아났을 때도 안방에 텔레비전을 틀어놓았고, 두 번째 아내가 달아났을 때도 볼륨을 높여 텔레비전을 틀어놓았지요. 방안에 두 사람이 있든 세 사람이 있든 드라마는 시작되고, 텔레비전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화투장을 든 채로 날이 밝으면 곧장 바다에 나가 인어를 잡아오라고 되풀이했습니다. 어부는 걱정 마시라고, 잡아오는 거라면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잘난 우리 아들. 우리 아들 덕에 인어 며느리도 보는구나.

어부 어머니는 어부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토닥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조청은 없나요?

어부는 똥쌍피를 던지며 인절미를 씹었습니다. 조청 타령이라니, 갑자기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게지요.

-조청은 무슨, 설탕이면 족하지.

어부 어머니는 새침한 미모처럼 말도 새침하게 합니다. 그 옛날 어부 아버지는 그래서 어부 어머니에게 장가를 들었다지요. 생선가시가 목구멍에 박혀 세상을 떠났다는 어부 아버지, 설마 바가지를 하도 긁혀 일찍 죽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어머니, 먼저 앞마당에 연못을 파야죠. 하마터면 제일 중요한 걸 깜박할 뻔했네요.

-걱정마라. 네가 인어 색시를 데려온다는데, 연못쯤이야. 연못일랑 이웃집 송 영감한테 부탁하면 문제없다. 소싯적에 송 영감 하던 짓이 묘파는 일이잖니. 약주 한 병이랑 돼지고기 삶아주고 부탁을 넣어보마.

-그래요, 같은 값이면 깊이 파세요. 어머니, 어머니, 그런데 인어에게 제가 두 번이나 장가갔었다는 걸 알려줘야 할까요?

-뭐하러 미리 그런 말을 한다냐? 우리집에 데려오고 나서 해도 늦을 게 하나 없어.

어부 어머니는 자신이 청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말하지 않았지요. 잘하면 고도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요.

그날 밤, 어부는 술을 알맞게 마시고 너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자신의 세 번째 색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빨리 자고 싶었으니까요. 어부는 이왕이면 인어가 어머니처럼 예쁘고 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어가 앞마당 연못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어부는 그만 잠이 들었지요.


3


어부는 동네 사람들이 알려준 대로 먼 바다까지 인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똑딱선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부지런히 달렸으나 인어는 보이지 않았지요. 어부는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비단 짜는 인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어부가 지치지 않도록 매일 아침 전복죽을 쑤어주었습니다. 남자가 밖에 나가 힘을 쓰려면 꼭 뜨끈한 걸 먹고 나가야 한다는 게 어부 어머니의 신조였거든요.

일곱째 날 오후, 어부는 졸음을 삼키느라 날고구마를 씹으며 뱃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파도에 출렁이는 수면 밑으로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지 않겠어요. 어부는 깜짝 놀라 바다에 대고 소리쳤겠지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인어가 아니신가요?

하늘빛 물속에서 냅다 튀어나온 것은 한 마리의 커다란 거북이었습니다. 어부는 신경질이 나서 거북이 헤엄치는 쪽으로 고구마 토막을 집어던졌습니다. 그 다음엔 바다에 대고 한바탕 오나니를 해댔지요.

어부는 해가 질 무렵까지 바다를 쑤시고 다니다가 결국 뱃머리를 육지 쪽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그는 고물 쪽에 걸터앉아 다음날도 인어를 찾으러 나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지요. 인어를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중매쟁이에게 돈을 주고 가난한 이웃 나라 색시를 데려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이웃 나라 색시 중에는 첫 번째 아내보다 곰살갑고 두 번째 아내보다 가슴이 큰 아가씨가 분명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똑딱선이 파랑(波浪)을 헤치며 몸을 비틀 때였습니다. 배가 나아가는 앞쪽으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부는 배를 멈춰 세우고 수박덩이같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을 살펴보았지요. 이번에도 거북이라면 그물로 건져 올려 등에 매달고 있는 등딱지를 잘근잘근 밟아줄 작정으로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인어가 아니신가요?

배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것은 수면 위로 목을 내밀고 있는 사람인 듯 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비단 짜는 인어가 아니신가요?

어부는 손을 소라고둥 모양으로 만들어 외쳤습니다.

-당신은 비단 사러 온 장사꾼인가요?

저편에서 되묻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어부는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를 듣고 인어가 틀림없다고 믿었습니다. 인어는 사람 말을 할 줄 몰랐는데, 저처럼 고운 음성을 갖고 있다니 무척 잘된 일이라 여겼습니다. 어부는 자신도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꾸를 했지요. 비단장수 최 서방이라고요. 그러자 인어가 뭘 가지고 왔느냐 묻지 않겠어요? 글쎄, 뭘 가져왔다고 해야 할까……. 어부는 얼결에 청어를 가지고 왔다고 하려다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바다에서 먹고 자는 인어에게 청어가 대체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 금이요. 금을 가져왔어요.

사실 금은 어부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답니다. 때문에 얼결에도 금이란 말이 튀어나왔겠지요.

-금이요? 그게 어디 있는데요?

어부는 배 안에서 재빨리 놋쇠주전자를 집어 올렸습니다.

-여기 안 보이세요? 금주전자를 가져왔잖아요. 이쪽으로 다가와 보세요.

인어는 어부의 재촉에 천천히 배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어가 가까이 오자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물풀같이 파도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인어의 머리카락이 제 키만큼 길다는 말이 짜장 틀리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물을 던져 인어를 잡아 올렸지요. 그물 속의 인어는 몸부림쳤지만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데 어부를 당할 자는 없었습니다.

어부는 끌어올린 인어를 커다란 들통에 넣어 집으로 데려왔지요. 토끼 간처럼 붉은 해가 저물어가는 서쪽을 등지고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지요. 인어가 하도 울어서 들통 속에 뽀얀 진주알이 가득 차 있었다는 건 어부와 어부 어머니만이 아는 일이랍니다.


4

 


연못 속의 인어는 베틀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비단을 짰습니다. 절구소리는 집안에서 사라지고 찰칵찰칵 베틀소리만 요란했지요. 한동안은 동네 사람들이 비단 짜는 인어를 구경하러 왔으나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인어가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에 실망한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발길을 돌렸습니다. 시장의 비단장수만 열흘에 한번씩 인어가 짜놓은 비단을 실어가려 왔지요. 어부 어머니는 담 너머에서 용달차 소리만 들려도 신바람이 나서 마루에서 마당으로 굴러 내려왔지요.

붕어대가리처럼 생긴 연못 안에 인어가 살게 된 이후로 어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부둣가를 오갔습니다. 물고기는 전보다 더 많이 잡혔고, 새록새록 돋아나던 새치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으니까요. 동네 사람들이 일러준 대로, 인어는 희디흰 살결에 도톰한 살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흡사 시베리아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지치다 온 처녀 같았지요. 물론 어부가 러시아 처녀를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요.

어부는 인어를 안을 때 감촉이 첫 번째, 두 번째 아내를 안을 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뭐랄까, 뜨거운 고래 뱃속에 발을 들이미는 느낌이랄까요? 인어는 평소 사람 같다가 어부의 품에 안길 때만 물고기 같았습니다. 인어가 어부의 품에서 퍼덕일 때면 살갗이 물고기의 것같이 매끄러워서 하마터면 놓쳐버릴 것 같았지요. 반면, 인어의 허벅지가 어부의 허리에 착착 감겨올 때면 흡반 달린 문어와 씨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인어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등허리 아래쪽에 조그만 지느러미 한 개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었지요. 그 작고 붉은 지느러미는 별 쓸 데도 없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습니다. 똑딱선 깃대에 달려 해풍에 흔들리는 삼각형 깃발처럼요. 인어는 어부가 지느러미를 세게 잡아당겨도 아무 느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어는 어부의 성기도 똑같이 잡아당겼지요. 어부는 아약약,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인어의 배 위로 올라갔습니다.

만리장성을 쌓고 오작교를 놓는 밤, 어부는 인어를 실컷 안았다 놓고 나면 연못에 인어를 내버려두고 건넌방으로 건너갔습니다. 인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언제나 어부는 시간은 내일도 있다고 말했지요. 어부는 하루 종일 물고기를 잡고 돌아와 고단하기 때문에 잠자리를 깔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방 밖으로는 어부의 코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지요. 어부 어머니는 코를 우렁차게 골아야 제대로 된 남자라 믿었으므로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붕어대가리처럼 생긴 연못 한가운데 붕어 눈알처럼 남은 인어는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인어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노래를 자정이 넘을 때까지 부르고 나서야 간신히 잠이 들곤 했습니다. 인어의 노래는 민요도 아니고 트로트도 아니고 베틀가도 아닌, 하여튼 귀에 설고도 구슬픈 가락이었습니다. 집 앞을 걸어가던 사람이 듣고 흥얼거릴 만큼 잘 부르는 노래도 아니었으나, 인어는 베보자기로 즙을 짜내듯 목이 메도록 간절하게 불러댔습니다. 잠귀가 밝은 어부 어머니가 노랫소리 탓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도 인어는 노래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야밤에 잠 안 자고 무슨 노래를 씨부려?

안방에 누워 소리를 지르다 지친 어부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뛰어나오곤 했지요. 그때마다 기다란 작대기로 연못을 한바탕 휘저어야 직성이 풀렸지요. 작대기가 연못 이곳저곳을 쑤시노라면 인어도 별 수 없이 구슬픈 노래를 멈추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부 어머니가 밤낮으로 뜨끈한 방구들에 배를 깔고 궁리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어를 울릴 방법이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인어를 바다에서 잡아오던 날 들통 안에 들어있던 진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내 만지작거렸지요. 어떻게 하면 진주를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어를 실컷 울릴 수 있을까? 인어의 살결같이 흰 진주를 알알이 꿰어 목에 친친 걸면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것 같았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왕년의 미모가 아직 남아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어부의 첫 번째 아내는 구박 몇 마디에도 눈물을 찔끔거렸으나 인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부의 두 번째 아내는 집안 일이 너무 많아 눈물을 흘리곤 했으나 인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어는 동틀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조그만 연못 한가운데 앉아 베틀을 돌리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부 어머니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신파조의 멜로영화를 보고도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어부가 바다속 인어들이 사는 고향에 대해 이야기해도 소매를 적시지 않았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인어의 눈물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분통이 터져서 인어의 머리를 쥐어박으려다, 그 대신 절구통 앞에 섰습니다. 인어가 명색이 며느리라는데 대놓고 혼내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며느리의 머리를 두드리는 대신 절구질이나 하려는 생각이었지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마른 절구 안을 쿵쿵쿵 짓찧어대던 어부 어머니는 별안간 절굿공이를 집어던지고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묘안이 떠오른 모양이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부엌 한구석에 걸어두었던 양파 주머니에서 양파 몇 개를 꺼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인어 앞에 놓고 썰었지요. 껍질이 말갛게 벗겨진 양파를 잘게 다지자 인어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 눈물은 진주알이 되어 한 주먹 쌓였지요.

-오호라, 제법이야.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군.

어부 어머니는 하루에 한 번씩 양파를 다졌고, 그때마다 인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발 양파만은 치워주세요.

인어가 아무리 간청해도 어부 어머니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나도 왕년엔 바다에 나가 진주를 캐왔지. 이 나이에 또 바다에 나가리? 이젠 며느리가 대신 해야지.

-눈이 너무 아파요.

-너는 친정에서 참는 법도 안 배웠냐? 울어서 눈알 빠졌다는 소리는 내 평생 못 들어봤다.

식칼은 소나무 도마 위에서 소리도 요란하게 달렸습니다. 다다다다다 칼질 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인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인어가 눈물을 그치고 나자 어부 어머니는 인어의 등을 두드려주었지요. 찬장에서 오레오 쿠키 한 봉지를 꺼내 인어의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요. 인어가 바다를 떠나온 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오레오 쿠키였답니다.

인어는 눈이 매울 때마다 눈동자가 쓰라려 견딜 수가 없었으나, 아이고, 내 며느리, 하는 말에 꾹 참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하루에 한 번만 양파를 다지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어부 어머니는 이웃 사람이 집에 놀러올 때면 인어에게 들으라는 양 큰소리로 며느리 자랑을 했습니다. 인물 좋고, 솜씨 좋고, 세상에 인어만한 며느리가 없지, 라고요. 인어는 그 소리를 들으며 연못 안에 앉아 오레오 쿠키를 씹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잘게 다진 양파를 감자 간 것과 한데 버무려 부쳐 먹기도 하고, 찌개에 넣어 끓이기도 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그야말로 알뜰살뜰한 주부였거든요. 저녁에 바다에서 돌아온 어부는 다진 양파가 듬뿍 들어간 고추장찌개를 먹고, 수고했다고 인어에게 뽀뽀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5


어부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바빠졌습니다. 인어의 눈에서 떨어진 진주를 팔러 버스를 타고 이웃 마을로 나가야 했으니까요. 어부 어머니는 의심도 많았기에 비단이라면 몰라도 진주는 남에게 맡길 수 없었던 거지요.

알이 굵은 진주가 가득 든 플라스틱 반찬통을 들고 이웃 마을에 다녀올 때마다 어부 어머니의 옷차림은 달라졌습니다. 하루는 노란색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돌아왔고, 하루는 금색 브로치가 달린 빨간 재킷을 입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새 옷들과 장신구가 어부 어머니의 미모를 한결 빛내준 것도 사실입니다. 어부 어머니는 쇼핑을 하고 남은 돈을 금으로 바꾸어 새로 장만한 금고에 쌓아두기 시작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이제 하루 세 끼를 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말했지요. 아니, 어쩌면 체중 감량을 위해 밥을 거르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진주를 팔러 나가지 않는 날도 어부 어머니는 바빴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어디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인어는 알 수 있었습니다. 야쿠르트를 팔러 온 아줌마가 연못 속에 앉아 있는 인어에게 들려주었거든요. 어부 어머니가 저녁마다 부리나케 가는 곳은 해변가에 새로 생긴 ‘홍콩 캬바레’라고요.

-홍콩 캬바레요?

인어는 캬바레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콩 몰라? 홍콩. 홍콩 보내주는 데가 홍콩 캬바레야. 인어댁은 밤에 홍콩 가는 일이 없나 보지?

야쿠르트 아줌마는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인어에게 야쿠르트 한 병을 따 주었습니다. 캬바레에서 풀어 놓은, 도시에서는 몇 물 간 제비들이 동네 여편네들 혼을 쏙 빼놓고 있다는 말도 해주었고요.

-인어댁, 맛있어? 맛있으면 대놓고 먹어. 이 댁엔 돈이 넘쳐난다며. 돈뒀다 뭐에 써? 알았지?

인어 입맛에는 야쿠르트가 별로 맛있지 않았으나 매우 달고 시원하다고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매일 야쿠르트를 먹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인어는 야쿠르트가 아니라 야쿠르트 아줌마가 필요했거든요. 벙어리처럼 살고 있는 인어는 연못가에 서서 말 걸어줄 사람이 그리웠던 겁니다.

-그래? 정말 맛있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러고 보니 인어댁 피부가 참 좋네. 들기름이라도 바른 것 마냥 아주 반들반들해. 인어 신랑은 참 좋겠어.

야쿠르트 아줌마도 어부가 그랬던 것처럼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인어는 다음날부터 매일 야쿠르트 아줌마가 올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오늘처럼 홍콩 얘기도 들려줄 거고,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떨어져 농약을 먹은 쌍과부집 외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려줄 테니까요. 인어는 온종일 입을 다물고 지내다 밤을 맞이하면 혓바닥이 간지러워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양파에 눈이 매워서 울고 난 뒤라 눈알이 씀벅거렸으나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잠이라도 들면 눈이 아픈 것도 잊고, 귓가에서 환청같이 울려대는 다다다다 도마질 소리도 잊을 수 있으련만 잠은 쉬 오지 않았습니다. 베틀질에 몸은 고되어도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혓바닥이 근질거렸습니다. 인어는 어쩔 수 없이 자정까지 노래를 부르다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지요. 안방에서 어부 어머니가 잠이나 자라고 악다구니를 써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어의 남편인 어부는 물고기 잡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이라 새벽에 바다로 나갔다가 해질 무렵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부는 바닷바람에 너무 지쳐서 인어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인어를 안을 시간은 있어도 인어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은 없었습니다. 인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어부는 언제나 시간은 내일도 있다고 말했겠지요.

야쿠르트 아줌마는 다음날부터 야쿠르트를 배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배달만 해주고 인어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붕어대가리 연못에서 비단을 짜던 인어가 반색을 하고 무슨 말을 할라치면 부리나케 손수레를 밀고 사라졌습니다. 야쿠르트 아줌마도 어부만큼 시간이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하긴 야쿠르트 아줌마도 내일 또다시 올 거니까요.

야쿠르트 아줌마가 마루 위에 놓고 간 야쿠르트를 꼬박꼬박 먹는 사람은 인어가 아니라 어부 어머니였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매일 야쿠르트 두 개를 먹고 한 개로는 얼굴에 팩을 했습니다. 야쿠르트로는 모자란 듯해서 건강원에서 달여 준 흑염소 진액도 사다 먹었습니다. 누구나 사랑을 시작하면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지는 법이겠지요.


6


홍콩 캬바레의 한물 간 제비인지, 이웃 마을 홀아비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어부 어머니의 정신을 빼놓은 남자가 누구인지 그건 인어에게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인어에게 중요한 건 어부 어머니가 사랑을 시작했고, 그래서 더 아름답고 활기차게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입니다.

야쿠르트와 흑염소에 질린 어부 어머니는 알칼리수 정수기를 사왔고, 개고기를 사다 냉동실에 재놓고 먹었습니다. 무엇이든 몸에 좋다는 말을 들으면 동식물, 벌레, 흙, 가리지 않고 구해 먹었습니다. 오징어 뼈, 붉은 달팽이, 수선화 구근, 암당나귀 젖을 재료로 삼았다는 특수 크림과 사람 태반으로 만들었다는 값비싼 화장품도 얼굴에 발랐지요. 한 달 치 야쿠르트 값을 받으러 온 야쿠르트 아줌마는 어부 어머니가 집에 없어서 돈을 못 받아가며 이런 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흥, 그 나이에 예쁜이 수술하면 뭐에 쓴대? 늦바람 난 여편네 속옷 마를 새 없다더니.

인어가 예쁜이 수술이 뭐냐고 묻자 야쿠르트 아줌마는 대답해주었지요.

-응, 예뻐지는 수술 있어.

-왜요? 저희 어머니 인물이 이 동네에서 제일이었다면서요? 그런데 왜 어머니가 수술을 하세요?

-응, 그런 게 있어. 그럼 나 갈 테니, 야쿠르트 값 꼭 받아 놔. 알았지? 꼭 받아 놔.

인어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시킨 대로 어부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면 야쿠르트 값을 달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부 어머니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연못으로 다가와 인어를 베틀 앞에서 일으켰지요. 무슨 일이냐고 인어가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다짜고짜 인어의 치마를 잡아당겼지요.

-너, 등 밑에 뭐 달린 거 있지?

어부 어머니는 인어의 치마를 더 세게 당겼습니다. 인어는 어부 어머니가 왜 묻는지 모르지만, 지느러미니까 지느러미라고 대답했지요. 지느러미를 꼬리뼈라고 속일 수는 없지 않겠어요.

-옳거니, 지느러미. 이거 빨간 거 맞지?

인어는 흘러내린 치마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너 그거 뭐에 쓸 데 있냐?

-아니오. 그냥 태어날 때부터 달려 있던 건데요.

인어는 어부 어머니의 은근한 말투에 더 겁이 났습니다.

-됐다. 그럼 그거 나 다오.

-예? 왜요?

-왜요? 왜요는 일본 노래가 왜요다. 귀찮은 거 달고 있어 뭐하냐. 내가 안 아프게 떼줄 테니 걱정 마라.

어부 어머니는 인어의 말도 듣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왔습니다. 양파를 다질 때 쓰던 소나무 도마도 같이 들고서요. 그 모습을 본 인어는 베틀 뒤에 숨어 몸을 달달 떨고만 있었지요. 귓속에서는 다다다다 도마질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칼질 소리는 여간 빠르지 않았습니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어머니, 어머니, 왜 그러세요?

마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부가 끼어들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어부를 흘끔 쳐다본 다음 붕어대가리 연못으로 달려갔지요.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 얘가 왜 이래? 어부 너는 방에 들어가 빨간약이랑 약솜 가져와라, 빨랑.

하여튼 어부 어머니는 윽박지르기의 명수입니다. 베틀 뒤의 인어는 어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부 어머니가 자신의 지느러미를 떼어가려 한다고요. 어부가 어부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어부 어머니는 말을 막았습니다.

-어부야, 내가 암이란다.

-암요? 어머니가 암이요?

어부 어머니의 말에 어부가 자지러질 듯 놀란 것은 물론이지요. 어부는 어머니에게 대체 무슨 암이냐고, 대체 어느 병원에서 그러더냐고 물었습니다. 어부의 오목한 눈에서 당장이라도 눈물방울이 떨어질 듯했습니다.

-암이래. 이대로는 두 달도, 아니 한 달도 못 산대. 음…… 병원은 아니고 서울서 내려온 박사가 그랬어. 그러니까 박사 말이 말이지…… 저 지느러미를 먹어야 낫는단다. 다른 수는 없어.

어부는 정말이냐고, 그럼 낫는 거냐고 물었겠지요.

-그렇다니까. 저것만 먹으면 씻은 듯이 낫는단다. 다른 건 백약이 말짱 무효래.

어부 어머니는 속이 타기라도 하는 양 불룩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말했습니다. 어부는 지느러미만 있으면 어머니가 살 수 있다는 말에 한결 화색이 돌았고요.

-여봐, 어머니가 암이시래. 당신 지느러미 드셔야 낫는대. 당신 그거 없어도 살잖아. 그거 어머니 드리자고.

어부는 연못가로 가서 인어에게 말했습니다.

-안 돼요.

인어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왜 안 돼? 그게 심장이야, 허파야. 신장도 나눠주는 판에 그까짓 못 쓰는 지느러미 같고 왜 그래?

어부의 말에 어부 어머니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저한테 간이라도 좀 떼어 달라 했으면 아주 사람을 때려죽였겠구나.

어부와 어부 어머니는 마당이 어두워질 때까지 인어를 어르고, 또 화도 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인어는 죽어도 지느러미를 자를 수는 없다고 우겼으니까요. 조르다 조르다 지친 어부와 어부 어머니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뒤 인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노랫소리는 여느 때보다 더 가련하게 들렸다지요. 그 소리를 듣다 못한 어부 어머니가 변기 닦는 솔을 연못에 집어던진 것은 자정이 넘어갈 무렵이었답니다.


7


붕어대가리 연못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한 건 어부 어머니가 변기 닦는 솔을 집어던진 다음날부터였습니다. 반년 가까이 연못의 물을 갈아주지 않았으니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인어는 바다에 나가는 어부에게 물을 갈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어부는 나중에, 라고 할 뿐이었지요. 어부는 안방에 자리보전하고 있는 어머니와, 지느러미는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인어 사이에서 피곤했습니다.

어부는 인어가 지느러미를 떼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깃대에 매달려 흔들리는 조각깃발 같은 것을 인어는 왜 줄 수 없다는 걸까요? 그건 분명 인어가 어부와 어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부는 생각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연못으로 꼬박꼬박 밥을 갖다 주었는데,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그 정도도 해줄 수 없는 걸까요? 어부는 인어가 첫 번째, 두 번째 아내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부는 인어의 연못이 썩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라 믿고 부지런히 바다로 나갔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연못에서 나는 썩는 냄새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인어는 어부 어머니가 밥을 갖다 주지 않아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지요. 오레오 쿠키마저 바닥나버리자 인어는 악취와 배고픔에 지쳐 베틀을 놓아버렸습니다. 인어의 귓속에서는 다다다다다 도마질소리와 끼룩거리는 갈매기소리가 번갈아가며 들려왔습니다.

인어가 배영을 하듯 연못 물위에 둥둥 떠있는 모습을 발견한 건 어부 어머니였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안방 창문 틈으로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던 거죠. 어부 어머니는 옳다구나 부엌에 들어가서 소나무 도마와 식칼을 들고 나왔고요. 어부 어머니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도대체 포기할 줄을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인어는 제 키만 한 긴 머리채가 낚아 채이는 순간 정신을 퍼뜩 차렸습니다. 어부 어머니가 들고 있는 식칼이 눈에 띈 건 그 다음이었고요. 그때부터 어부 어머니와 인어의 실랑이는 시작되었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치켜 올라간 눈을 번뜩이며 인어의 지느러미를 잡으려 애썼고, 인어는 어떻게든 어부 어머니를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지요. 연하의 애인을 자기보다 스무 살 어린 추녀에게 빼앗긴 어부 어머니는 악이 받칠 대로 받쳤기에 인어의 머리카락을 몇 주먹은 뽑아냈습니다. 그 와중에 연못 안에 고여 있던 썩은 물이 밖으로 튀고, 베틀의 용두머리는 부러졌습니다.

-어머니, 살려주세요.

-무슨 소리, 네가 나 좀 살려다오. 그걸 삶아서 호박잎에 싸 먹으면 이십 년은 젊어질 수 있다잖냐. 너 혼자 예쁘면 제 맛이냐?

인어와 어부 어머니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때, 어부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때맞춰 돌아온 아군에 힘을 얻은 어부 어머니는 좀더 힘껏 인어의 머리칼을 잡아당겼지요.

-아약!

어부 어머니는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어부가 달려가서 보자 어부 어머니의 손에서 피가 샘솟고 있었지요. 어부는 피가 솟구치는 어부 어머니의 왼손과 인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아이고, 내 손이야. 내 손! 내 손!

어부 어머니는 세번째 손가락 한 토막이 달아난 제 손을 보고 악을 썼습니다.

-어머니, 손가락 어딨어요? 손가락이요.

어부는 머리를 숙이고 찾았지만, 어부 어머니의 손가락 한 마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 봐, 어머니 손, 손가락 어딨어?

어부는 너무 놀라서 어금니가 딱딱 부딪쳤습니다. 더듬거리는 어부의 말에 인어는 대답을 했지요.

-내가 먹었어요.

인어는 눈도 입도 빨갰습니다.

-뭐야, 이 년이!

어부가 어머니의 허리를 잡았으나 어부 어머니는 어부를 뿌리치고 부엌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어부 어머니는 부엌에서 행주를 찢어 손가락을 싸매고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나왔지요.

-내 오늘 이 연못을 아주 바닥내고 말 거다.

어부 어머니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연못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부가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손가락을 처맨 행주가 피로 물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굽혀 연못물을 퍼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어부네 집 마당에도 어둠이 내려올 즈음, 마침내 연못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요. 눈도 입도 빨간 인어는 그 광경을 보면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어도 어부 어머니도 입을 다물고, 배고픈 바둑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떠들어대는 사람은 어부뿐이었습니다.

-어머니, 제발 그만 하세요. 여봐, 그러지 말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까짓 지느러미가 대수야? 어머니, 빨리 병원부터 가요.

어부 어머니는 귀까지 먼 듯 줄기차게 물만 퍼낼 따름이었습니다. 어부네 앞마당은 연못에서 퍼낸 물로 흥건했습니다. 그리고 집집이 불을 밝힐 무렵 연못은 바닥을 드러냈지요. 붕어대가리 연못의 물이 마르자 인어의 귓속에서는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와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한결 크게 울려왔습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어부 어머니는 물이 없어서 기운을 잃어버린 인어를 연못에서 끌어냈습니다. 인어의 몸은 맥이 풀려 어부 어머니가 쥐고 흔드는 대로 건들거렸지요. 어부 어머니는 눈도 입도 빨간 인어를 맨바닥에 넘어뜨린 채 발로 차고 밟았습니다. 보다 못한 어부가 어부 어머니를 밀쳐낼 때까지요.

어부는 인어를 등에 업고 밤길을 내달렸습니다. 물기가 쪽 빠진 인어의 몸은 미역줄기처럼 가벼웠지요. 무작정 어두운 길을 달리던 어부는 인어의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고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바다라면 인어가 도로 살아날 것 같았으니까요.

어부는 인어를 똑딱선에 싣고 밤바다를 가로질렀습니다. 뱃전에 눕혀진 인어는 깊고 깊은 바다 속에서 소곤거리는 말미잘의 목소리가 귓속을 간질이는 통에 잠에서 깨어났으나 자리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지요. 어부는 배가 해안에서 멀어지자 인어를 일으켜주었습니다.

-여봐, 정신 차려. 바다라고, 바다.

간신히 윗몸을 일으킨 인어는 오래 전 어부가 금주전자라고 속였던 놋쇠주전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인어는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비린내가 나는 물을 꿀꺽꿀꺽 마셨지요. 인어는 물을 마신 뒤 어부를 돌아보지도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풍덩 소리를 어부는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못 들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렁이는 파도 사이로 인어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까요. 잘 있으라는 인사도 없이 물거품처럼 비누방울처럼 어부 앞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요.


8


어부의 집 안방에서는 밤늦도록 텔레비전소리가 들려옵니다. 수목드라마를 보며 어부는 오레오 쿠키를 먹고 있습니다. 어부는 달콤한 오레오 쿠키를 씹으며 밤마다 인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합니다. 잠이 코밑까지 차오른 자신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며 인어가 하려 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어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부는 알 수 없기에 그냥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기로 합니다.

밤은 깊어가고 멀리 밤바다에서는 찰칵찰칵 베틀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도 어부와 어부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이 듭니다. 《문장 웹진/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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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있어도보고싶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묘하게 이끌림이 있는 글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