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와 빈 곳

 

폐허와 빈 곳

 


박청호




어딘가에서, 불명의 장소에서, 어디에서나, Somewhere, Anywhere,

어떤 형태로, 아마, 있을 수 있는, 있어야 하는 결정하기 어려운,

-자크 데리다


외부는 내부의 결과이다.

-르 코르뷔지에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존재한다. 누군가 오래 전에도 이곳에 아무것도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보다 먼 과거에, 그보다 더 전에 그리고 시간의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최초의 기억을 아직까지 지니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 무엇이 있었는지, 단지 지금 없다는 것인지 말할 수 없다. 다만 어떤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으로 아주 오래 전에는 무언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뿐이다. 폐허의 흔적. 없지만 있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떤 것.

누군가 사이버스페이스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가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에서는 늘 있어 왔으나 이제야 발견한 처녀지인지 물었다. 거기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궁극적으로 발명이란 존재한 적이 없었으므로 결국 발견에 불과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그곳은 건축할 수 없는 곳이다. 아무도 그곳에 집을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서버라고 알려져 있는 무한대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기적의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도서관의 지식과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 무한히 공유되고 증식하고 움직이는 지식 창고를 날마다 새로 짓고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곳은 “꿈의 이동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그곳은 팽창하고 있다. 아무리 먹어도 여전히 배고픈 주머니였다. 겉이나 경계가 없고 다만 속[內]으로만 존재한다. 형식이 없는 내용, 오직 지식의 총화 그것 자체이다. 그곳엔 아무도 따로 집을 짓지 않았다. 거기엔 모든 게 다 벌거벗은 채 있었다.

이곳은 가난하고 춥고 쓸쓸하다. 여기는 황폐한 곳이다. 이제 더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전에 누군가 살았다는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하고 바랄 뿐이다.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이런 말은 고고학자들의 어설픈 자기증명이었다. 폐허의 흔적, 아무것도 없는 여기야말로 어떤 것이 존재했다는 역설의 자리이다.

K에게 전몰의병들의 유적지를 만들라고 요청한 것은 S시였다. Y시와 K, B군에서도 지원금을 냈다. K는 S시 외곽에 전몰의병들을 위한 위령비와 기념관을 지어야 했다. K의 회사에서 설계와 시공 그리고 감리까지 일괄했다. K는 그곳에서 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회사조직을 다 알지 못했다. 위령비와 기념관의 규모와 구체적인 설계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 있었지만 정작 터를 잡는 것이 문제였다. S시와 Y시는 적극적으로 바다가 보이는 야트막한 산언덕빼기에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의병들의 주무대였던 K와 B군에서는 강을 아우르는 산중턱을 고집했다. 두 군데 다 일리가 있었다. S와 Y시의 경우 의병들이 활동한 곳이 한두 개 마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찾기 쉽고 앞으로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병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는 K나 B군 사람들은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서는 그분들이 살았고 목숨을 다 바쳐 싸웠던 바로 그곳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곳이란 과연 어디인가. 아무도 그곳을 정확하게 짚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엔 정작 의병들의 무덤이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다른 무엇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여기에 죽은자들을 다시 모실 수는 없었다. 이미 산자들이 훼손한 땅이니 말이다.

K와 이 사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가능하면 현재 주민들이 살지 않고 어느 정도 역사적 근거를 댈 수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을 원했다. 그래야 의병들이 그곳에서 전몰했다는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역사가들이 정말 그들이 전몰했을 만한 자리를 짚어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념관 터로 지정할 만한 곳이 나오는 족족 반대에 부딪혔다. 쓸만한 터를 구하기도 전에 무슨무슨 유족회니 무슨 기념사업회니 하는 단체들의 압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사실 K는 자신의 설계도대로 잘 지어질 만한 터를 고르는 것 외에는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4?19묘지나 5?18묘역이 역사의 현장 바로 그곳이 아닌 바에야 좋은 터라면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K가 스스로에게 이번 일 역시 하나의 일일 따름이라고 이야기한들 이 건축물은 예전에 지었던 것과 사뭇 다를 것이 틀림없었다. 말하자면 약간 심오한 무엇, 어쩌면 숭고하기까지 한, 인간의 존엄에 관해 뭔가를 예시하는 듯한,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건축의 목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 뭐 이런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왕에 지어질 바에야 정말이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K는 아직 그만한 자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도저히 사람들이 찾아올 만하지 않았고 위험이 높은 절벽이거나 산을 절반쯤 깎아야 했으므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또 다른 곳은 이미 다른 종류의 위령비가 서 있거나 보상작업이 난항을 겪거나 알 만한 사람들은 풍수지리를 들먹이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선산이라면서 절대 땅을 내놓지 않는 사람도 있다.

처음 K가 발견한 곳은 지은 지 천년 가까운 사찰이 중건을 포기하고 세상과 좀 더 가까운 곳으로 불당을 옮기고자 매물로 내놓은 곳이었다. 어떻게 천년 고찰(古刹)을 팔 수 있을까 싶었지만 깎아지른 절벽에 가파른 오르막길을 보자 적극적인 포교를 결심한 스님들이 갑자기 딴맘이나 먹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회사의 보스는 이런 식의 문화재 공사를 입찰하는 데 맛을 들인 터라 실값에 공사비만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에누리 없이도 일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K의 회사는 다른 곳에서도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어 문화재 사업은 회사를 알리는 좋은 홍보 수단이었다. 스님들은 산 아래쪽에 더 크고 사람들의 왕래가 자유로운 곳에 부지를 사들이고 싶어했다. 이미 원하는 땅의 반 정도는 입수한 상태였다. 보상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고 절벽 반대편을 평지를 만드는 작업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다만 중장비가 산꼭대기까지 들어갈 수 없어 헬기로 장비 몇 개를 실어 날라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K는 소방대 헬기를 섭외했고, 산림 담당자는 중요 사찰이 불에 타는 사건 뒤로 가끔씩 헬기 동원 훈련을 한다며 공사 기간과 타이밍을 맞춰 보겠노라고 나섰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약 20일간 실사가 진행되고 곧 공사에 착수하려던 찰나 이 근방에서는 단 한번도 전투가 없었고 의병이 왜군에 쫓겨 은신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역사학계의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K는 그냥 웃었다. 학계는 늘 현장에 없으므로 한 박자 늦게 사실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설계도를 그리는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클라이언트에게 투덜대듯이 그들도 K가 아무런 역사적 지식도 없고 심지어 고증조차 거부한 채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전몰의병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싸웠으며 어디에서 죽었단 말인가. K는 별다른 반대 의사를 내세우지 않고 물러섰다. 위령비와 기념관은 어디에나 세울 수 있었다. K는 오직 애초의 설계도대로 잘 건축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울러 건축물의 예술적 가치나 효용성 혹은 도시 디자인과 맞아떨어진다면 금상첨화였다. K에게는 시간이 충분했다. 공사 발주에서부터 감리까지 진행되는 동안 회사에서는 급료를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었다. 설사 이 공사가 중간에서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그에겐 큰 피해가 없었다. 단지 자신이 짓는 건축물의 목록에서 하나가 줄어들 뿐이었다. 사실 많은 건축물을 지을 필요도 없었다. 이번 일 역시 뭔가 다른 것을 지어보려는 욕심만 뺀다면 그저 일의 추이에 따라가면 별 탈 없을 터였다. 물론 그가 설계했다는 기록이 남고 건축물이 그가 죽은 뒤에도 남아 건축가의 존재를 증명할 테지만 그가 자신을 예술가로 여기는 일 따위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이름을 남긴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대신 K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건축물을 보고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비평가들의 말에는 이율배반적으로 귀가 솔깃했다. 돈벌이로 집을 지었는데 칭찬까지 들으니 두 배로 돈을 번 듯한 기분이랄까. 그런 면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은 그럭저럭 해볼 만한 일이었다.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도 K도 잘 몰랐다. 한 달쯤 지나자 기념관 부지 선정 책임은 K군 출신인 A에게 맡겨졌다. A는 소설가였다. 역사학자도 건축가도 아닌 작가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하다못해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또 몰랐다. 하지만 작가라니. 역사소설을 쓴 것도 아니고 이 고장에 관한 향토적인 작품 하나 내놓지 못한 위인이었다. 기껏해야 연애소설 따위를 몇 편 썼으며 지방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게 이력의 전부였다. 그가 일본 자본가와 안면이 있어 이 지역에 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대신 애초의 입안자인 S시나 Y시보다는 이제 K군이 주도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K는 이제 K군 소속 공무원들의 명령에 따라야 할 판이었다. 공무원들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고는 말도 되지 않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뿐이었는데 K에게도 새로 보는 후보지에 대한 견해를 문서로 작성하라고 난리였다. 새로 투입된 소설가라는 작자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공무원들을 따라 와서는 K에게 인사를 한 뒤 그저 조용히 동행하는 것 말고는 옆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A는 K가 보는 지점만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K가 먼 산을 바라볼라치면 같은 곳에 꽂히는 A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먼 바다를 볼 때도 계곡이나 절벽 아래를 내려다볼 때도 A는 K 뒤에서 유령과 같이 K의 시선을 좇았다. K의 시선 위에 A의 시선이 떨어졌다. 항상 그랬다.

“의견이 있으시면 서슴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공무원들이 채근을 해도 A는 입을 열지 않았다.

K는 일부러 A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건축에 대한 상식이라고는 건축법 조항 몇 개 외우는 것이 전부인 공무원들이 쏟아내는 땅 품평도 아주 지겨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A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K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A가 공무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꾸가 없으면 으레 K에게 의견을 물어오니까 말이다.

가끔 A가 입을 열 때도 있었다. A는 공무원들에게는 일절 말을 하지 않았지만 K에게 지형에 대해 묻거나 위령비와 기념관의 규모나 디자인 설계상의 기본 원칙이나 어떤 공법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이라는 것이 정리된 것이라기보다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여기는 지반이 약한가요? 위령비를 무슨 돌로 만듭니까? 따위였다. K는 가능하면 전문적인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 A가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했다. 하지만 A가 K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A는 질문은 했지만 막상 그 대답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K가 말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초점이 흐릿했다. 다른 사물을 볼 때는 항상 K의 시선을 따라 그 위에 눈길을 고정했지만 서로 마주볼 때는 도무지 뭘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절벽 꼭대기 바위 곁에 선 나무를 베지 않고 기념관을 세울 수는 없나요?”

A가 애초에 K가 발견한 산꼭대기의 고찰 터에 왔을 때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물었다.

“이곳이 마음에 드나요?”

K가 되물었다.

“소나무가 좋습니다.”

K가 이곳을 선호하는 것도 바로 소나무 때문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백송에 가까운 희고 푸른 소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멀리서도 큼지막한 바위와 맞서는 형상으로 조화를 빚었다. K는 설계도면에서 위령비의 길이를 좀더 줄이고 기념관의 높이를 낮추는 한이 있어도 소나무를 올연히 살아나게 만들 참이었다. 인공이 자연을 재배치할 절호의 기회였다.   

“나무를 베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K는 A를 향해 안심해도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산을 자르려고 하십니까?”

K는 말문이 막혔다. 산을 자르려고 하다니. K는 단지 위령비와 기념관을 건축하고자 할 뿐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려면 산을 깎고 땅을 밀고 물을 막거나 끌어당기거나 해야 했다. 단순히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었다. 환경과 생태를 걱정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 할 것이다.

“화전민에게 불을 내지 말고 농지를 개간하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미안합니다. 나무를 베지 않고 건축디자인을 살리려는 의도는 좋습니다. 다만 산을 자르면 의병들이 지키고자 한 것이 사라지겠죠.”

K는 화가 치밀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의병들을 기리는 일인데 그 의미를 반복해서 따져서는 그 일 자체를 못하게 막으려 하다니 기가 막혔다.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 해야 할지 의미전도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역사 공부하는 분들에게 해야 할 질문 같습니다만.”  

“건축물만큼 역사적인 대상도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려는 건 건축이라기보다는 역사적 행위 같은데요.”

K는 A의 면상을 갈겨주고 싶었다. 도대체 소설가라는 작자들은 입만 열면 궤변들이었다. 저런 세 치 혀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말만은 청산유수였다. 며칠 동안 아무 말 않고 있더니 기어코 본색을 드러내고야 마는군. K는 A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침을 퉤 뱉었다. A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리고 산을 내려갔다. K는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는 A를 보면서 혹시 그가 다리를 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A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K가 두 번째로 마음에 든 장소에는 이미 카페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은 A가 먼저 발견한 곳이었다. 어쩌면 A의 아지트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이미 잘 알던 곳이었다. A는 이런 곳이라면 어떻겠느냐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여기라면 관광 목적에도 꽤 소용이 닿지 싶은데요.”

모리아는 바다로부터 약 500미터 떨어진 언덕배기에 올라앉아 있었다. 바닷가에 있는 카페 이름이 모리아라니 우스꽝스러웠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는 유대교의 성지 아닌가. 카페 마당은 아래로 경사가 30° 기울어져 온갖 꽃과 나무와 풀들로 덮여 있었다. 서양식도 아니고 일본이나 중국식도 아닌 어정쩡한 정원이었다. 조경의 원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아담하고 정성스레 가꾸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페는 고요하고 예뻤다. 하지만 이곳에 전몰의병의 위령공원을 만들 수는 없었다. 싸움터를 연상시키기엔 이곳은 너무 평화로웠다. 뭔가 결의를 다지고 독립정신을 되새길 만한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을로부터 멀찍이 떨어졌고 바다와 거의 맞붙어 있는 언덕배기라 건축물을 짓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역사에 대한 고려만 없다면 이만한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이라면 너무 앙증맞고 고요한 풍경이었다.

“딱 이만했으면 좋겠군요.”

K가 말했다.

“만들어놓고 보면 이 근방 모두 이런 모습일 겁니다. 그걸 원하나요?”

A가 무슨 말을 하든 K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기껏 도움이 될 만한 곳을 보여주겠다고 데려와서는 이런 곳에 위령탑을 세우면 모두 카페처럼 그림 같은 모형이 될 거라며 그런 걸 원하느냐고 되묻다니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정말 뭘 어쩌자는 것인가. 하기야 A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터로 보아서는 이곳만큼 수월하게 위령공원을 조성할 만한 곳도 드물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지대가 너무 얕았다. 아무리 작은 묘역이라도 과거의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돌올하게 일어서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역사가 발목을 잡았다. K는 오락가락하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누가 딱 그만한 자리를 잡아두고 빨리 건축하라고 채근했으면 싶었다.   

갯벌에 몸을 묻고 물이 차기를 기다리는 낡은 배들이 몇 누워 있는 게 보였다. 그 중에는 몸뚱어리가 산만한 것도 있었다. 폭풍을 이겨낸 배도 갯벌 속에서는 장애를 겪는 어린아이처럼 벌러덩 드러누운 채 마냥 물을 찾고 있었다. K는 폭풍의 위력에 맞서는 강건한 건축물을 상상했다. 그리고 동시에 세월의 풍상에 먼지로 소멸하는 빈 집의 형상도 떠올랐다. K는 자신이 지으려는 집이 진정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웅장하지도 장엄하지도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들의 넋만을 기린다면 이런 야트막한 언덕배기의 권태로움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일이 빌어먹을 역사적 사업만 아니라면. 

“산으로 둘러싸이고 분리된 장소이며 동시에 사회공동체로부터 너무 떨어지지 않은, 그러니까 우리 지역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고 그러면서도 바깥에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마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나 볼 수 있듯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요.”

특별시에서 고문으로 내려온 건축가 G가 떠벌렸다. 그와 몇 명의 도시건축가들이 특별시의 한복판에 맑은 개천을 되살리고 공원을 조성했다. K의 기획안에도 비슷하게 씌어 있는 말이었다. 이미 도시가 완벽하게 건설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 기념비적인 무엇인가를 세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뭔가를 세운다는 것은 언제나 그 뒤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나중이었다. 당장은 눈에 보기 좋은 곳에 위령비와 기념관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곳이 적당한 장소가 아니라면 유목민이 천막을 걷어 풀이 많은 곳으로 이동하듯이 혹은 수몰지구로 선정된 고택을 이동하는 수준으로는 뒷일을 감당할 수 없다. 위령비와 기념관은 단 한 번 세워져야만 한다. 그것을 다시 옮기거나 두 번째로 세우는 일은 전혀 의미없는 일이며 또 불가능하다. 죽은 자들을 두 번 죽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K는 건축가였지만 A의 말대로 역사적 행위에 이미 휘말려 있었다. 그것이 그를 점점 짜증나게 했다. 그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훌륭한 설계도와 첨단 공법의 완벽한 조화를 맛보고자 할 뿐이었다. 사실 전몰의병들을 기리는 일은 건축이 다 끝나고 난 뒤 민족주의사관을 신봉하는 역사학자들이나 애국심에 불타는 시민들이 담당하면 그뿐이었다. K는 보는 사람마다 칭송하는 멋진 건축물을 세우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K와 K의 건축물이 역사가 되는 것은 어차피 자신이 죽고 난 뒤의 일이니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피아성당을 침탈하고 현재의 주인이기도 한 이슬람이 다시 그곳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수밖에 없듯이 전몰위령비와 기념관은 목적에 부합한 곳에 세워져야만 했다. 개선문을 센 강변에, 자유의 여신상을 맨해튼에 세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G가 나타난 뒤로 A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 아우슈비츠기념관을 세우는 것과 우리의 기념사업은 다릅니다. 우리가 전몰의병들을 기리는 사업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 사업목적이나 의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적당한 장소에……”

“그래서 그게 어디라는 거요?”

S시 건축 담당자가 입을 열자 K군 군수가 소리를 높였다. 결국은 K군에 세우자는 뜻이었다.

“요즘 K군에 일본 쪽 자금이 유입됐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 돈으로 전몰의병들을 기린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Y시 시장이 되받아 소리쳤다.

“자금은 무슨 자금이요.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는데. 설령 돈이 물 건너왔다고 칩시다. 지금이 일정시댑니까? 돈이야 무슨 돈이든 좋은 일에 쓰면 됩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요. 그 돈 좀 구경이나 합시다.”

“그래도 쪽바리 돈은 안 됩니다.”

“돈이 없대도 그러네.”

“그럼 왜 이 사업에 그리 열을 내는 거요? 돈도 없다면서.”

“돈 때문입니까. 사업이 중요해서지요. 우리 고장에 그 후손들만 해도…….”

K는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다시 그렸다. 짧은 지식으로 볼 때 전몰의병들은 대체로 두 군데서 전멸했다. 한 곳은 산이었고 다른 곳은 강이었다. 아니면 산에서 끌려내려와 강가에서 처형당했다. K군에는 의병들을 재판하던 간이재판소가 있었다. 그곳을 헐고 위령비와 기념관을 세우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지방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법원은 옮길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정작 문제는 보상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곳의 땅값이 K군 내에서는 가장 높았다. 그리고 주변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도 끊이지 않았다. 법원 자리에 기념공원이 들어서면 집값만 폭락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지나치게 K군 한복판에 있었다. 이것은 생태공원을 만드는 일과는 전혀 달랐다. B군에서는 한일합방을 통탄해 자결한 한학자의 생가 주변을 기념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뒤늦게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분은 실제 전투에 나가 싸운 전몰의병들과는 다른 측면에서 독립에 기여했으므로 이번 사업과는 무관하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입장이었다. 

“왜 그렇게 장소가 중요한 것일까요?”

G의 패거리가 떠난 뒤 조용히 나타난 A가 물었다.

K는 A의 질문에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거기에 역사적인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니까 그렇겠죠.” 

A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또 며칠 동안 아무 말 없이 후보지를 돌아보기만 했다.

“물위에 집을 짓는 것은 정말 바보들이 하는 짓일까요?”

바다 근처에 오자 A가 뜬금없이 물었다.

“베니스나 세계 여러 곳에 수상가옥이 있으니까 그렇게만 볼 수 없죠.”

K는 A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지만 이야기가 모두 건축에 관한 것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휘말려들었다. 묘한 경쟁심 같은 것이 발동한 탓도 있었다.

“우리가 지으려는 것도 K, B, S, Y를 모두 가로지르는 강 위에 있으면 안 될까요?”

“유람선처럼 띄우게요? 소설가다운 발상입니다만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K가 웃자 A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목을 친 시신들을 수습해서 땅에 묻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불살라 강물에 뿌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물위에 기념관을 짓자는 얘깁니까?”

K는 정말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왜 일본으로 끌고 간 자도 있을 텐데 대마도나 오사카에 땅을 사서 비를 세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K씨, 저놈의 공무원들한테 차라리 인터넷 홈페이지나 하나 만들자 그래요. 건축은 무슨 놈의 건축.”

고문 노릇을 하던 S시 국립대학 건축과 교수인 O가 K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K는 웃었다. A도 들었는지 K를 향해 웃었다.

K는 좀 더 큼지막한 항구로 갔다. 일본에서 배가 들어왔을 만한 곳을 찾았다. 대부분 왜적은 P항으로 들어와 서진해서 이곳으로 왔다. S만이나 H곶에 정박한 배는 거의 없었다. 이 바다는 오래 전부터 오로지 우리 바다였고 우리 배들만이 들고 났다. 일본의 흔적이 전혀 없는 곳이 오히려 전몰의병들의 위령지일 수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우리 땅이 우리 것으로 존속하기를 바라고 죽음을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일본이 넘볼 수 없었던 바다 끝에 위령비와 기념관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차라리 A의 황당무계한 발상처럼 아예 바다 한복판에 세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조개무덤이 여기저기 보였다. 사람의 무덤이 죽은 몸을 감싸는 것이라면 조개의 무덤은 몸이 빠져나간 빈 껍질이었다. 인간에게는 가죽이나 껍질이 없다. 그저 맨몸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짓는지도 모른다. 알몸으로는 바람도 추위도 뜨거운 햇볕도 막아낼 수 없다. 맨몸뚱어리로는 죽어서도 몸 밖의 세계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세상 속에 작은 세계를 여러 개 짓고 몸을 숨기며 살고 있다. 그 방식대로 죽어서도 그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멸한다. 결코 죽지 못한다.     

“예수는 지상에 무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종교계 대표로 나와 반대의견을 제시하던 목사의 말이 떠올랐다. K는 피식 웃었다.

전몰의병들 역시 아직까지는 묘지가 따로 없었으니 목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을 찾아 위령비와 기념관을 세우려는 계획은 없는 무덤을 만들고자 하고 있으니 문제였다. 이 마당에선 구태여 무덤이 있니 없니 하며 원점으로 되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성지를 순례하는 자들을 위해 아리마대 요셉의 동굴을 열고 거기 묻힌 사람들을 다 옮긴 뒤 부활한 예수의 텅 빈 무덤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은가. 건축이 역사를 만나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못 됐다. 이것은 고건축물이 그 자체로 역사가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역사에 대한 사후 건축물이란 얼마나 옹색한 변명인가. 의병들이 싸우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때 살아남은 자들이 지금 기념비를 세우려고 하고 있다. K는 처음으로 이 일을 맡은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회의하기 시작했다. K는 건축이란 인간의 활동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이 이 땅에 살았음을 증명하는 최초이자 마지막 자기증명이 바로 건축이었다. 물론 다른 말로는 폐허였다. 건축은 폐허의 동어반복이었다.

저녁이 밀려들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곳 가운데 세 번째이다. K는 첫 번째나 두 번째를 알지 못한다.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 K는 건축가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일을 맡고부터 이 일대 풍경 좋은 곳은 거의 다 둘러보았다. 이 지역의 풍광은 사람에게 많이 노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덜 훼손되었고 덜 화려하고 덜 유명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덜 알려졌다는 사실이 이곳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이다.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이곳의 경치를 집에까지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풍광은 닳아서 없어질 것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노골적으로 옷을 벗지 않는 데 있다.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자연의 옷을 벗기고 그 몸을 핥고 빤다. 그럼 자연은 닳고 닳아서 사람을 닮아간다. 아름다움이 빛을 잃는 것이 아니라 닳아빠진 표면이 빛을 반사한다. 사람들은 눈이 먼다. 더 이상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먼 바다로 나갔던 소금물이 다시 갯벌로 돌아왔다. 물의 표면은 노을빛을 받아 노랗고 불그레하고 푸르면서 동시에 점점 검게 변했다. 파도의 겹마다 색깔이 달랐다. K는 다시 한번 물위의 건축을 꿈꾸었다. 파도에 떠밀려 저만치 먼 바다에서 기우뚱거리며 출렁이다가 다시 밀물 때면 갯벌 위에 혹은 모래 위에, 해변의 마을 한복판까지 떠밀려와 저녁밥을 얻어먹거나 잠시 헤엄에 지친 몸을 쉬는 건축물. K는 거의 한 달 동안 붙어 다니면서 정신을 어지럽힌 소설가 A의 존재를 실감했다. 어디 갔는지 보름째 보이지 않는 그가 그립기까지 했다. 아마 공무원들에게 다시 잡혀와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어떤 장소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A는 도대체 얼마나 받고 부지 선정의 책임을 떠맡은 것일까. 그는 고문도 아니었고 실무자도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결정권자를 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이 하라는 대로 묵묵히 따를 뿐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전문가나 고문들의 의견을 종합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공무원의 우두머리였다. A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자기 의견을 말하라는 대목에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괜히 어처구니없는 질문만 하지 않는다면 K는 A와 옆에 있다는 게 한결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위상학일 뿐이었다. K 옆 A 〉K 옆 공무원들.

“왜 항상 내가 보는 걸 보려고 애를 씁니까?”

K가 먼저 A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스스로 볼 줄 모릅니다. 건축에 대해서는 장님이니까요. K씨, 당신의 눈을 통해서 볼 뿐입니다. 당신이 보는 것만 볼 수 있지요.”        

“그럼 내가 보지 못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당신이 여기 온 목적이 그거  아니던가요?”

“먼저 보아야 나중에 문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저 K씨의 눈을 빌려 많이 보고 싶습니다. 딱히 이번 일 때문만은 아니고 건축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껴보고 싶거든요.”

“그래, 뭐가 다르던가요?”

“글쎄요.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 자체가 사실 눈먼 것이 아닐까요. 정작은 그쪽에서 우리를 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K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A는 틀림없이 삼류일 게 뻔했다. 언제나 핵심을 비켜서 도통한 사람처럼 이야기하니까 말이다. 무엇인가를 보려고 시선을 대상에게 주는데 그것은 눈먼 것이며 그쪽에서 나를 봐야 한다니. 그래서 다음엔 뭘 어쩌자는 것일까. 대상이 주체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A씨, 언제 부지 선정이 끝날 것 같습니까?”

K는 부동산 투기를 하려는 것도 아닌데 지루하게 땅만 보러 다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K씨 결정에 따라서 결정나겠지요.”

“뭐라고요. 제발 동어반복 좀 하지 마세요. 난 A씨 결정에 따라 집짓는 사람이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저 공무원들 보는 것도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공무원들이 결정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라고 A씨를 모시고 온 것 아닙니까?”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결정은 전적으로 K씨에게 달려 있습니다. 건축가가 자기가 건축할 터를 고르지 누가 고르겠습니까?”

“그럼 공사가 시작조차 되지 못한 게 다 내가 부지를 고르지 않아서라는 말입니까?”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K씨가 부지를 선택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아니 그럼 거의 공사 직전까지 갔던 것은 다 뭐란 말입니까? A씨도 마음에 들어했던 백송이 있는 절터 말입니다. 하마터면 거기 집을 지을 뻔했잖습니까?”

“네, 그랬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못 지었죠. 사실 여기를 부지로 선정할까 하면 유족이나 후손들이 들고 일어나고 저기로 할까 하면 행정구역 싸움 때문에 밀리고 나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그 때문에 공사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게 아니면 뭡니까? 정말 공무원들하고는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면 짓지 못하나요?”

“네?”

“그들이 반대하면 위령비와 기념관을 세울 수 없나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죠? 저 공무원들한테 물어보세요.”

“저들은 지으라고 해도 짓지 못합니다.”

“뭐라고요?”

“오직 K씨만 건축할 수 있죠.”

“아니 이 양반이. 그럼 역사학자들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그때 지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글쎄요. 아무튼 지금까지 집을 짓지 못한 건 K씨가 부지를 최종적으로 선택하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내가 결정하나요? 저 공무원들이 하지?”

“우선은 K씨가 먼저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저들에게 결정하라고 공문을 보내야 합니다. K씨 당신이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뒤 저들에게도 같이 따먹자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K는 잠시 멍해졌다. 역사학자들이 반대할 때 그 공사를 밀어붙였더라면 다른 부지에 대해 유족이나 후손도 그렇고 다른 행정구역에서 반대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공사가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K는 건축 하청을 받은 자로서 그들이 결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K가 건축가이므로 건축 부지를 먼저 결정해야 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선정한 부지 위에 K가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K가 선택한 장소에 K가 건축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계약에 없는 항목이었다. 그냥 선정된 부지에 건축을 한다고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부지 선정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공무원들은 건축가인 K를 데리고 다니며 어떤 곳에 위령비와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 좋겠느냐고 계속 묻고 있다. K는 어차피 그들이 결정할 것이므로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지만 어느 한 곳에 반드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K가 건축한다면 K가 짓겠다고 결정한 곳에 지어야 한다. 다른 누구도 K보다 먼저 ‘이곳이야’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작업환경은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K에게 부지 선정에 대한 자율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것은 K 때문이라니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선택의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K는 이미 건축가가 아니었다.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한 자유란 결코 없는 것이라고 K는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유를 사용함으로써 사후(事後)에 증명되는 것이었다. K는 지금까지 어느 한 곳에 반드시 위령비와 기념관이 세워져야 한다고 외친 적이 없었다. K는 스스로 건축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 K는 웃으며 이런 식의 강요된 선택에도 자유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사실에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K는 어느 한 곳을 지목해서 공사를 시작하자고 말해야만 했다. 만약 공무원들이 반대하거나 다른 장애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만약 반대를 이기지 못한다면 더 이상 건축을 할 수 없을 것이다. K는 그동안 자기 일을 끊임없이 연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일에 얼마나 신중을 기하고 있으며 결정만 떨어지면 그 누구보다 더 멋지게 집을 짓겠노라고 떠벌리고 다녔던 것이다. 일을 시작하지 않고 그저 벼르고만 있었던 것이다. 벌써 일을 맡은 지 백일이 넘었다.

“A씨, 정말 내가 부지만 선택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 아닌가요?”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된다는 것인가요?”

“K씨, 당신이 원하는 곳은 어딘가요?”

K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인가? 전몰의병을 기리기 위한 위령공원은 어느 곳이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인가? 내가 위령비와 기념관을 건축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어디인가? 아니 이미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이 기념사업의 목적에 합당한 곳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이라니! 내가 선택해야 하는 장소가 바로 내가 원하는 곳이라니. 도대체 이런 아이러니는 어디에서부터 전도되기 시작한 것일까.

“다른 곳을 더 둘러보시렵니까?”

S시 건축공무원이 K에게 다가와 물었다.

K는 이미 후보지를 열두 번도 더 둘러보았다. 이제 K는 전몰의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어느 곳을 더 보고 싶으냐고 열두 번쯤 더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K는 여전히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는 자기 자신을 불러들이지 못하고 자기 밖에서 서성였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장소는 지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구하는 곳은 늘 자기 속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K는 언제나 자기 밖에서 있었으므로 자기가 원하는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K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A가 예전에 전몰의병들을 위한 위령사업을 벌였던 지역 신문에 발표한 글을 읽게 되었다. 고향에 관한 한 편의 시였다. 제목은 「낯선 고향」이었다.


고향에 왔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불안하고 동요하고 있으며

죄를 짓는다


너무 오래 고향을 비워둔 탓인가

텅 빈 고요가 낯설다

나는 나조차 믿을 수 없다

여기가 정녕 내 집인가


쌍둥이를 비추는 본질의 거울인가

고향을 지키는 문지기가 속삭였다

너무 일찍 도착했노라

한참 더 기다리노라면

이미 늦었노라


고향은 늘 나를 바깥에 들이고

문을 반쯤 여닫지도 않은 채…… 섬뜩!

거기 이미

내가 있었으므로.《문장 웹진/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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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sh ζ?? ϴ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