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잃어버린 아이,들1

 

조헌용



모든 것들이 낯선 풍경이다. 낯설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뜨거운 햇살. 손을 들어 햇살을 막는다. 그러나 생각뿐, 내 손은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영은 어디로 갔을까?

이영은 또 어느 거리를 읊조리며 흐르고 있을 것이다. 티비 CF처럼 경쾌한 녀석은 그러나 사막처럼 스산한 노래를 즐겨 불렀다. 모래바람 같은 녀석의 노래가 갑자기 듣고 싶어진다. 그런 날이다. 또 얼마나 많은 권태와 환멸의 강줄기가 내 몸을 휩쓸고 지나 간 것일까? 햇살은 무겁고, 내 몸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입안이 사각거린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이 사막의 모래를 끌어다주었으면······

이곳은 어디?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돌린다. 아무래도 낯선 풍경.

기찻길 옆으로 콩밭, 잔바람에 흔들리는 잎들이 잔뜩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무청과 배춧잎이 자라는 밭들 사이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은 초라하고 볼품없다. 칠팔십 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어떤 영화에서도 저토록 허름한 집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직도 한국에 저런 집들이 남아있을까, 손도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몸을 겨우 움찔거릴 때마다 내가 기대어 쓰러져 있는 건물 벽에서 부스스 흙이 떨어진다. 기차가 오는지 빠아앙, 멀리서 기적 소리. 제비 몇 마리가 기적 속으로 날아든다. 석탄을 잔뜩 실은 기차가 풍경을 흔들며 지나간다. 풍경 속에서 내 몸이 흔들린다. 경제가 어려워 다시 연탄을 피우는 집이 점점 많아진다 하더니 진짜 그런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 뉴스 속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어려워진 경제, 연탄, 석유, 중동, 이라크, 후세인, 부시, 전쟁, 파병, 팔다리가 잘린 아이들, 사막을 적시는 붉은 피, 분수처럼······ 나는 애써 더 나아가려는 생각을 멈춘다. 뜨거운 햇살 아래 그대로 방치된 몸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스르르 감기는 눈 속으로 철길 저 편에서 우르르 달려오는 꼬마아이들이 보인다.

눈이 감기며 아이들은 사라지고 눈 속에도 길이 있어 햇살이 길을 놓는다. 가벼운 걸음걸이. 깃털처럼, 별똥별처럼.

통통통, 소리로 철길을 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멈춘다. 쓰러진 나를 두고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죽었나봐, 어떻게 해, 외국사람인가 봐, 머리가 빨게, 옷도 되게 이상하다, 진짜 죽었으면 어떡해, 가보자, 가보자······

야아, 하지 마. 몇몇 아이들이 말리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벌써 내 곁으로 온다. 찰팍찰팍,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한결 가까워진다.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이 걸음을 멈춘다.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갑자기 온몸을 휩쓰는 갈증, 눈 속을 돌던 햇살의 길이 끊기고 얼굴을 찌르는 아픔이 전해진다. 움찔. 야아 살았나 봐, 저기 움직이잖아. 빨리 가서 어른들한테 말하자. 다시 아이들의 수군거림, 나는 힘겹게 눈을 든다. 저희들끼리 말하는 것도 잠시 멈추고 아이들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잠시, 시간이 멈춘다. 살아 있다, 살아있다. 막대기를 숨기며 꼬마 하나가 소리친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나는 꼬마들을 훑어본다, 문득 막대기를 숨기는 녀석의 등뒤에 숨어 고개만 쭈뼛 빼낸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순간, 알 수 없는 아찔함, 저 깊은 수렁,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가위눌림, 갑자기 눈앞에 수천 수만 가지의 영상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낯선 풍경들이 점점점 점점 너무도 낯익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빌어먹을. 도무지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 몸이 벌떡 일어난다. 아아아, 주위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소리치며 달아난다. 몇몇 아이는 뒷걸음을 치다가 넘어진다. 나와 눈이 마주쳤던 아이가 일어나 뛰어가는 걸 지켜본다. 아이의 뒷모습이 어쩐지 아련하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나는 풀썩 쓰러진다.


꿈을 꾼다, 아주 오래된 꿈.

천구백구십구년 지구는 유성 엠좌 칠팔둘과의 충돌을 피하지 못한다. 멸망한 지구를 떠나 한국 대표 몇 백 명만이 겨우 살아 우주를 떠돈다. 우주에 떠서 바라보는 지구의 폭발 장면은 아름답다. 어떤 불꽃놀이도 저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내 데이터를 믿고 나에게 우주선을 만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금송아지 우주선에는 또 다른 지구별에서의 새로운 문명을 실현시킬 한국 대표들이 타고 있다. 미국도 소련도 실현시키지 못한 프로젝트. 우주 어딘가에 있을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한 꿈, 그러나 우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한 전투 비행정 독수리호와 제비호 그리고 자살 무선 소형정 파리호와 모기호는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삼십 년이 넘게 그저 망망한 우주를 향해할 뿐이다. 해적 보다 우리에게 더 위험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임을 우리는 차츰 알게 된다.

꿈에서 깨어나며 나는 오래된 과거를 떠올린다. 그래,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난 그런 꿈을 꾼다. 지구가 유성과 충돌, 천구백구십구년 구월 구일 아홉시 구분 구초에 멸망한다는 소문이 온 학교를 휩쓸고 다닌다. 나는 그 날을 대비하여 금송아지 우주선을 만들 것이라고 꿈꾼다.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은 몇 가지 다른 꿈을 품으며 자라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꿈들이 바닥났을 때 소년에게 남은 것은 권태로운 현실이다. 권태로움이 내 몸을 가득 점령하고서야 나는 위험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니라 미래, 그 자체임을 알게 된다. 과거가 환상에 지나지 않듯이 미래 또한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알게 된다. 다만,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이 시간의 강물도 그렇게 한 번 지나간 자리를 다시는 보여주지 않는다. 영원히 오늘뿐인 시간의 굴레, 그 무시무시한 현재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과거라는 이름과 미래라는 이름의 환상을 만들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은 오늘일까? 어제일까? 혹은 내일의 어떤 환상일까?

아무도 믿지 않을 일이 내게 벌어진다. 어떻게 이런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나는 천구백칠십구년의 가을을 살고 있다. 2006년을 살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천구백칠십구년으로 떨어진다.

2006년 여름, 나는 이영과 함께 핸드폰을 샀다. MP3와 FM라디오, 그리고 천 만 화소의 내장형 카메라를 광고하는 최신식 핸드폰이었다. 우리들은 킥킥거리며 새로운 핸드폰을 축하했다. 괴로워할 일도 기뻐할 일도 그리 많지 않은 권태로운 시절이었다. 콤플렉스 없는 시절이라고 이영은 또 어느 CF나 잡지에서 보았을 말을 지껄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축하할 일이 많지 않았으므로 이영은 내 새 핸드폰을 축하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이영의 축하를 받기 위해 호텔 라운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영을 기다려야 했다.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천 만 화소로 사막을 노래하는 이영을 담았다.

정말 선명하지 않아?

노래가 끝났을 때 나는 이영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칙칙해. 마치 앵무새 같아.

삭제 버튼을 누르며 이영이 말했다. 최고의 뮤지션을 꿈꾸던 한 녀석은 호텔 라운지에서 노래를 불렀고, 다른 한 녀석은 노래를 부르는 녀석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 주었다. 최고의 뮤지션 따위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킥킥거렸다. 술을 마시고 당연하게 모텔을 찾아 들어가 거친 섹스를 나눴다.

니 몸에서는 사막 냄새가 나.

또 그 얘기다. 사막이라고는 모래밭에도 가보지 못한 주제에······ 그런 소리 집어치우고 나 좀 찍어 줘. 여자의 몸은 막 섹스를 마쳤을 때가 가장 아름답대. 긴장이 풀리지 않은 몸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 더 늙기 전에 내 몸을 찍고 싶어.

잠깐만, 널 다시 긴장하게 만들고 나서······

나는 다시 이영에게 달려들어 녀석의 몸을 탐했다. 밤새도록 우리는 거친 섹스와 폰카찍기를 되풀이했다. 모텔 카운터에서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고 전화가 왔을 때도 이영은 내 몸 위에서 흔들렸다. 찍어 줘, 찍어 줘, 이영은 소리쳤고 나는 흔들리는 이영을 핸드폰에 담았다. 이영이 흔들릴 때마다 천장이 함께 흔들렸다.

모텔을 나와 우리는 어디로 갈까 잠깐 망설였다. 언제나 그랬다. 밤새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행동했지만 날이 밝으면 우리는 길을 잃었다.

야, 광화문 가자. 광화문 사거리에서 차들을 막고 사진을 찍는 거야. 왜 내가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한 번도 못했지. 너 디카 안 가져왔지? 아니다, 이거 산 기념으로 이걸로 찍자.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이영은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거침없이 지하도로 향했다. 지하도로 내려와서야 우리는 겨우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야, 이거 제법인데······ 너 똥배 나왔다. 킥킥.

밤새 찍은 사진을 보며 이영과 나는 자꾸 까닭도 없이 킥킥거렸다. 옆자리 남자가 힐끔거리며 자꾸만 핸드폰을 훔쳐봤다.

볼래요? 

이영이 자신의 체모가 드러난 사진을 액정화면에 띄워 남자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주 잠깐 핸드폰 화면을 응시하던 남자가 흠흠 흠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버렸다.

병신! 떳떳이 보지도 못할 거면서······ 짜증 나.

이영이 폴더를 접으며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나는 이영과 내 귀에 각각 이어폰을 하나씩 끼우고 MP3를 틀었다. 너의 몸엔 나비가 살아. 네가 내게로 올 때 나비는 하늘을 난다. 나비를 깨워 줘, 나비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가식의 옷을 벗어. 거짓의 껍데기를 벗어. 너의 몸에 갇힌 푸른 나비 한 마리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무슨 노래, 이영이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만을 펼쳐 흔들었다. 새로운 노래, 아직 멜로디가 확실하지 않아. 녹음 기능도 된다기에 한 번 담아봤어, 좋아? 이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너의 몸엔 나비가 살아. 네가 내게로 올 때 나비는 하늘을 난다.

사막의 거친 모래 바람에 몸을 실은 작은 나비 한 마리.

이상해.

뭐가?

니가 만든 노래 말야. 아직 완성되기 전에 음을 잡는 니 목소리 듣고 있으면 꼭 아빠가 생각난다. 참, 미워했었는데······ 이렇게 어설픈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꼭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거든.

짜식, 너 생리하냐? 아님,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안 하던 센치를 다 하고 난리야.

그러게, 웃기지······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갈까? 만약에 말야, 우리가 이렇게 핸폰으로 우리 모습을 찍어서 마음대로 보내고 싶은 시절로 전송하는 거야.

거야 당연히 로또가 처음 시작하는 시절이지.

나는 내가 살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그래서 아빠에게 서태지 악보를 다 보여주는 거야, 재밌지 않아? 그럼, 아빠도 서태지가 될까?

아니, 그냥 지지리도 불행한 천재 뮤지션이 또 하나 탄생하는 거지, 나처럼······

그럼, 니가 서태지라고, 그럼 난 보아다.

킥킥거리며 우리는 광화문 사거리로 들어갔다. 씽씽거리던 차들이 시끄럽게 클랙슨을 울렸다. 더러는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거리의 중앙에서야 우리는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뜨거운 햇살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보아처럼 섹시하게, 이영이 긴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며 포즈를 취했다. 액정화면 속에 정지한 이영의 뒤편으로 지나치는 차들이 흔들리는 피사체로 화면에 잡혔다. 마치 시간을 거슬리는 것만 같았다.

뭐라구? 차 소리에 묻혀 이영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들리지 않았다. 바보야, 이리오라구. 큰 소리로 이영이 다시 한 번 나를 불렀다. 자기야, 우리 키스하자. 이영이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잡아채며 내게 키스를 퍼부었다.

호각소리가 가까워질 때까지 우리는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이영이 나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이영의 골반에 새겨진 푸른 나비를 만나지 못하리라. 내가 만들어준 노래를 부르는 녀석의 목소리가 부쩍 건조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유 같은 건 있을 리 없었다. 우리는 권태로울 뿐이었다. 서로에게 느끼는 권태로움을 우리는 더 견딜 수 없었다. 광화문 차도에서의 키스가 권태로움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줄 수는 없었다. 다만,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안녕. 이영이 손을 흔들며 저 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끼이익, 차들이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클랙슨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영과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녕, 푸념처럼 내뱉은 내 목소리가 클랙슨 소리에 묻혀들었다.

교보문고 뒷골목 어느 카페에서 나는 숨도 돌리지 않고 몇 잔의 데킬라를 연거푸 들이켰다. 가방을 열고 아껴두었던 마리화나를 꺼내 물었다. 후우, 한숨을 내쉴 때 어디서 날아왔는지 푸른 나비 한 마리가 펄럭거렸다. 이영이 만들어놓은 환상, 나는 이영과 찍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액정화면에 담긴 이영과 나. 이영의 이메일과 내 이메일을 액정화면에 띄우고 전송버튼을 눌렀다. 이영과 나의 알몸이, 이영과 나의 키스가, 보아를 닮은 이영이, 서태지를 닮은 내가, 트리니티를 닮은 이영이, 네오를 닮은 내가 차례로 전송됐다. 문득, 내 몸이 어딘가로 전송되는 느낌, 이것도 이영이 만들어 놓은 환상인가? 한 장씩 한 장씩 사진을 전송할 때마다 들이킨 데킬라와 마리화나가 점점 더 나를 취하게 만들었다. 사진이 몇 장 남지 않았을 때 배터리가 바닥이 났다. 전송되던 화면이 갑자기 치지직거리며 그대로 꺼져버렸다. 혼미한 내 정신도 그대로 꺼지는 것 같았다. 저 깊은 나락······


나는 꿈이길 바란다. 꿈이라면 아주 길고 긴 꿈이겠지, 그러나 이곳은 분명 현실 속이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느낀 아찔함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종종 아이가 내 방에 놀려올 때면 그 아찔함은 살아난다. 멀리서부터 아이가 오는 것을 나는 느낀다. 거부하기 힘든 그 무엇인가에 이끌리는 느낌.

아이는 이제 곧 과학자가 되는 꿈을 꾼다. 금송아지 우주선을 만드는 꿈······

내가 처음 금송아지 우주선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건 마을에 이상한 아저씨가 찾아들면서다. 외국에서 살다가 왔다는 아저씨는 손바닥보다 작은 이상한 기계를 들고 있다. 신기하게도 당시에는 그리 흔하지 않은 사진기가 되기도 했고 라디오가 되기도 했고 녹음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신기한 듯 그걸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면 아저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때까지 한 번도 꿈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꿈에 대해서 생각한다. 꿈이 뭐지, 어떤 꿈을 꾸어야 하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떤 꿈이 좋은 꿈이야?

글쎄, 니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걸 알고 실천해 나가는 게 가장 좋은 꿈이겠지.

아저씨는 그렇게 대답하고 기타를 튕겼다. 나는 내가 가장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만약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나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천구백구십구년 구월 구일 아홉시 구분 구초에 지구가 멸망하리라는 예언이 그 때 우리에게는 전설처럼 퍼져 있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귀하고 강한 금속은 금이었다. 금으로 만든 우주선이라면 지구의 멸망 속에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왜 하필 송아지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송아지 한 마리를 사고 싶다던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 라는 우스갯소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금송아지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 멸망의 시간을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근데 진짜 천구백구십구년에 지구가 멸망할까?

그럼, 당연하지. 그때는 말야, 그때는 말야, 음, 그때는 말야······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래, 기타를 튕기고 있는 내 앞에 앉은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천구백구십구년보다 더 먼 미래의 어느 날에서부터 내가 날아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바로 내 앞에 앉아 아무 곳으로도 나를 전송하지 못하는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는 자신의 먼 미래의 모습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이곳으로 날아왔는지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추적하다가 나는 천 만 화소를 자랑하는 핸드폰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버지에게 서태지 악보를 전해주겠다던 이영의 바람이 내게로 옮겨온 것일까? 나는 천 만 화소의 액정화면에 담겨 아주 먼 과거로 전송된다. 배터리가 떨어지며, 혹은 내 정신이 혼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나는 불행하게도 이곳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곳의 나는 지금 존재할까? 치지직 흔들리던 액정화면의 깊이, 짐작하기 힘든 곳으로 내가 떨어진 것일까, 나의 이미지가 떨어진 것일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 그러나 아이의 존재에서 나는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다. 아이는 어린 날의 내 모습이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을 앞에 쓰러져 발견되었던 외국에서 살다온 낯선 아저씨다.

나는 과거로 와서, 현재를 살고 있는 과거의 나를 만난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미래에서 온 미래의 나를 만난다. 나는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에 살고 있다. 오늘 이곳의 이 시간은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이다. 아, 이 불가능의 현실 앞에서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의 진실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거짓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과거란 무엇이고, 현재란 무엇이며, 미래란 무엇인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며,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인 지금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내가 나이기는 한 것일까?

티잉. 기타줄이 하나 터진다. 아이가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아아, 나는 드디어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차라리 미쳤으면 좋으련만······

이곳의 생활이 익숙해진다고 느껴질 때마다 어김없이 해답 없는 물음들이 찾아든다. 그때마다 나는 절망한다. 처음에 신성하게 느껴졌던 노동은 오래지 않아 내게 벅차다. 나는 노동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달리 방도가 없다. 내가 가진 돈도, 카드도 이곳에서는 쓸 수가 없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진실이란 이곳에서 거짓도 되지 못한다. 거짓도 되지 못하는 진실은 다만 미친 넋두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나는 깨닫는다. 몇 번의 소동을 경험하고 나는 나를 숨겨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다시 나를 전송시킬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 백 볼트 전기만이 공급되던 시절, 어렵게 승압기를 구해 나는 핸드폰을 충전한다. 그러나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미래에서 날아온 핸드폰을 전송시킬 그 어떤 장치도 이곳에는 없다. CDMA 2007을 자랑하던 핸드폰은 이곳에서 단지 신기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나는 액정화면에 담긴 나를 띄어보내려 하지만 번번이 절망한다. 버릴 수 없는 희망만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저 쓸모없는 기계를 부셔버렸으리라.


나는 아이를 위해 피리를 만든다.

네 개의 긴 합판을 곱게 사포로 문지른다. 하나의 합판에는 여섯 개의 지공과 한 개의 공명을 뚫는다. 황토를 칠하고, 아교를 얻어 붙인 판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통나무 하나를 깎아 늑대를 조각한다. 합판으로 만든 관에 늑대를 붙이면 바람은 우우우 늑대의 울음을 토해놓을 것이다. 늑대는 바람을 타고 어디든지 달려가리라. 인디언들은 피리를 불며 동물의 영혼을 달랜다지······ 늑대이거나 독수리이거나 곰이거나 더러는 뱀이 달린 피리들을 나는 북미 여행에서 본다.

나무 속에 웅크린 늑대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기차가 지날 때마다 우수수 흙이 떨어지는 방안에 앉아 늑대와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나를 또 미쳤다고 쑥덕거린다.

빨갛게 염색한 머리를 하고, 귀걸이를 달고, 코에는 피어싱을 하고, 힙합 바지에 헐렁한 트렁크를 걸치고, 온몸에 치렁치렁 액세서리를 달고 쓰러져 있는 나를 본 사람들은 미쳤다고 쑥덕거린다. 오히려 나는 오늘을 천구백칠십구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를 보살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마을을 벗어난다. 데킬라와 마리화나에 쩔은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는다. 나는 물을 사기 위해 조그마한 구멍가게로 들어간다. 천 원짜리를 건네며 물을 찾는 나를 주인 아주머니는 안됐다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천 원짜리와 내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천 원짜리를 내게 건네더니 마당 펌프에서 물을 한 바가지 길어다 준다. 아주머니가 건넨 물에서 풀 냄새가 싸하게 풍긴다. 울컥, 하릴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애써 부인하려는 현실을 머리보다 먼저 몸이 받아들인다. 큰길로 달려 버스에 오르고서야 나는 모든 것을 인정한다. 낡고 오래된 버스에 오르자마자 무너지듯 자리에 앉는다. 안내양이 언제 없어졌던가? 아저씨, 지금 장난해요. 안내양은 내가 내민 천 원짜리를 한 참 보더니 도로 내게 내민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하던지······ 애들도 아니고 돈 가지고 장난을 치냐.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 오라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들이 갑자기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뒤미처 달려드는 기억들······ 어떻게 이런 일이······ 버스가 시내를 돌아 차고에 설 때까지 나는 일어서지 못한다. 아저씨, 안 내려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안내양은 쯧쯧 혀를 찬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던 안내양이 봉지빵과 음료수를 내민다. 배 안 고파요? 이거, 먹어요. 근데, 아저씨 어디서 왔어요? 처음 본 얼굴인데······ 나를 바라보는 안내양의 눈에 호기심이 담겨 있다.

아저씨 그 가짜 돈 다시 한 번 줘봐요. 잘 만들긴 했는데 좀 어설프다. 아저씨 근데 이거 예술 작품이죠? 아저씨 예술가야? 나, 이거 기념으로 한 장 가져도 돼요? 근데, 어디 가요? 이 차 곧 출발하는데······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이제 갈 길을 잃는다. 조잘거리며 안내양이 아무런 대꾸도 없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에이, 참, 재미없어. 말 한 마디를 더 던지고 버스에서 내린다. 대걸레와 물통을 들고 와 안내양이 버스를 청소하기 시작한다. 안내양의 콧노래 소리가 너무 경쾌하다. 청소가 끝나고 다시 버스가 출발할 때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버스에 앉아 차창 밖 흔들리는 풍경, 아무래도 낯선 풍경이라고 나는 고개를 흔든다. 붉게 물드는 놀 아래 총총총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낯선 풍경이 다시 낯익은 풍경으로 바뀐다. 저 멀리 아이가 엄마인 듯 보이는 여자와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내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인정하기 시작한 일들이 사실이라면 저 여자는 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일까? 이제는 저승에나 떠돌 나의 어머니. 아이와 여자가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다정하다. 스톱, 스톱! 나도 모르게 버럭 고함이 터져 나온다. 급하게 차를 세우고 나는 아이와 여자에게로 달린다. 헐떡거리는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그러나 아이와 여자는 쭈뼛거리며 나를 훔쳐보며 멀어진다. 그래, 쓰려졌던 나를 보살피며 저들은 내게 미쳤다는 꼬리표를 단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대로 주저앉는다. 울컥,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애써 참았던.

주인이 버리고 떠난 빈집에 들어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생각의 긴 꼬리들만 잡아당긴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가? 나는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마을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돌 때쯤 나는 내가 무엇인가에 의해 이곳에 전송되었고, 그것이 핸드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니, 믿기로 한다. 그냥 그렇게 믿기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함정이라면 오래도록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결론 내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갑자기 미칠 듯 허기가 달려든다. 나는 우선 좀 배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게 먹을 것은 없다. 문득 어려서 몰래 훔쳐 먹던 무가 떠오른다. 몸을 일으켜다 나는 무너진다. 며칠 사이 내 몸은 다시 엉망이다. 무밭까지 엉금엉금 기어가 다 여물지도 않은 무를 뽑아 문다. 흙도 털지 않고 우걱우걱 입안으로 무를 밀어 넣는다. 어린 무의 아린 맛이 차라리 달게 느껴진다. 겨우 허기를 달래고 돌아누워 바라본 하늘, 별이 하 많기도 많다. 저 별은 어느 과거에서 이곳까지 달려오는가? 어쩌면 저 별도 미래에서 달려오는 것인지도 몰라, 나는 시간이 얼마나 커다란 속임수인가를 생각한다. 과거가 현재이고 현재가 미래이고 미래가 과거이다. 나는 이제 과거라는 현재를 인정한다. 미래라는 과거를 인정한다. 드디어 나는 미치기로 작정한다. 미친다. 입안에 남은 흙들이 아작아작 씹힌다.

시간이 단지 속임수라고 생각한 뒤로는 이곳에서의 생활도 그럭저럭 할 만하다. 나는 집을 고치고, 어설픈 내 노동을 팔아먹을 걸 마련하고, 마을로 내려 가 어렵게 승합기를 구한다. 줄이 끊기고 목이 부러진 기타를 얻은 일은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못과 아교를 얻어다가 목을 고치고 시내에 나가 기타줄을 구한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나를 두고 수군거리지만 몇몇 동무도 생긴다. 아이는 나의 가장 든든한 동무다. 거의 매일 아이는 내게 찾아와 서울과 외국에 대해서 묻는다. 천구백칠십구년의 서울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적당히 거짓말을 만들어 아이에게 들려주면 아이는 마냥 신기하다는 표정을 하고 귀를 기울인다. 가끔은 숙제를 들고 찾아오는 아이는 다음 날이면 김치나 마른반찬을 가져온다. 아이는 무엇보다 내가 가진 핸드폰에 관심이 많다. 내가 아무런 말이 없을 때면 아이는 핸드폰으로 제 모습을 찍으며 신이 난다.

 텔레비전처럼 내 모습이 화면에 나오기도 해, 나는 조그마한 화면을 바라보며 자꾸만 설레인다. 서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마냥 설레인다. 어쩌면 그것은 이상한 사진기와 이야기가 주는 설레임이 아닌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미래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떨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짜르르 전기처럼 밀려드는 두근거림.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저씨가 말하는 서울이 궁금해진다. 서울에 가면 아저씨의 기계보다 더 신기한 것들이 많으리라.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나는 미리 그것들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집안을 홀라당 뒤집어 만 원짜리 몇 장과 천 원짜리 몇 장이 있는 곳을 찾아낸다. 만 원짜리를 하나 들었다가 내려놓고 나는 천 원짜리를 집어 들고 편지를 쓴다.

엄마, 아빠, 나 서울 가요. 가서 과학자가 될 거예요. 아주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서 지구가 폭발할 때 엄마, 아빠 먼저 구해드릴게요. 그리고 가져간 천 원은 나중에 꼭 갚을게요.

세상을 향한 첫 출정은 그러나 너무 쉽게 무너진다. 천 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돈이 아니다. 나는 서울이 아닌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꼭 서울은 아니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천안역에 내려 역 밖으로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돌아올 차비도 없이 나는 괜스레 역을 서성이다 역무원 아저씨께 돌아갈 표를 달라고 한다. 허, 이놈 참. 역무원은 돌아오는 기차에 나를 태워보내며 사탕 한 주먹을 주머니에 넣어준다. 기차에서 내려 집에 돌아갈 때는 이미 어둠이 깊다. 그제야 무서워진 나는 사탕을 씹으며 울음을 삼킨다.

내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가 멀리서 달려온다. 엄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를 때리는 엄마의 매가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런데도 엉엉 하고 울음이 터진다.

뭘, 뭘 잘 했다고 울어. 뚝. 뚝, 안? 이 놈이 그래도 정말, 뚝.

한참을 그렇게 나를 때린 엄마는 내 손을 이끌고 아저씨에게로 간다. 나는 엄마 뒤에 숨어든다.

저기 남들이 다 뭐라고 해도 나는 안 그랬어요. 우리 아이 숙제도 봐주시고······ 그런데 도무지 알 만한 사람이 아이에게 무슨 말들을 한 거예요, 예? 무슨 말을 했길래, 마냥 착하던 애가 서울이 어떻느니, 과학자가 어떻느니 그러면서 집에서 돈을 다 훔쳐요, 예? 이러다 애가 잘 못되기라도 하면 아저씨가 책임질 거예요? 아저씨가 책임질 거냐구요. 무슨 말을 좀 해봐요, 예? 우리 아이 어쩌려구요?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러다 애가 잘 못되기라도 하면 아저씨가 책임질 거예요? 아, 어머니, 당신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당신의 아이는 환멸과 권태 속에서 이렇게 자라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나를 키운 것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이 아니다. 부모도 선생도 나를 키운 것이 아니다. 나를 키운 것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나로부터 비롯한 나의 꿈들, 나의 이미지들, 나의 기억들. 그래, 내가 만났던 모든 낯설며 또한 낯익었던 사람들은 어느 미래이거나 어느 과거이거나 어느 현재로부터 전송된 나였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돌아가는 아이게게 나는 피리를 건네지 못한다. 나는 그저 혼자 남아 피리를 분다. 북미 여행 때 배운 인디언의 노래. 달이 뜨네 손톱 속으로, 해가 뜨네 발톱 사이로, 늑대가 우네, 꽥꽥꽥, 바람이 부네, 하하하, 내가 죽었네, 곰은 왜 걸어다닐까, 펄럭펄럭 저기 달아나는 토끼 한 마리······

며칠째 아이는 보이지 않고 나는 아이에게 전하지 못한 피리를 분다. 가끔은 줄이 끊긴 기타를 친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에 대한 기억을 재생하지 못한다. 엄마와 함께 나에게 다녀온 며칠 뒤 나는 어딘가로 잡혀갔다는 소문을 들었던가? 나는 수신이 고르지 않은 흑백 티비의 화면처럼 지지직 흔들리는 기억의 끈을 어렵게 잡는다. 엄마의 손에 끌려 나에게 다녀온 뒤로 나는 더 이상 내게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며칠 뒤 나는 밤이면 기찻길에서 피리를 불던 나의 피리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되었던가? 지지직 흔들리는 기억들······

어느 날, 나는 교실에 들어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엉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선생님을 본다. 똥도 싸지 않고 밥도 먹지 않는 선생님이 눈물은 흘리는 것일까?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좋아서 떠드니? 아무리 세상을 모른다지만······

울음을 그친 선생님은 대통령 각하가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헐벗고 가난했던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아버지 한 분이 붉은 괴뢰의 앞잡이가 쏜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붉은 괴뢰라는 말에 우리는 술렁인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검은 리본을 앞가슴에 달고 학교에 나온다. 며칠 간 수업은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 우리가 알기 힘든 무거움이 세상에 그득하게 깔린다.

야, 너 그거 알아? 그 외국에서 살다 온 아저씨 있잖아. 어제 군인들한테 잡혀갔다. 그 아저씨 공산당 빨갱이래. 외국에서 온 간첩이래.

진짜? 진짜? 어쩐지 진짜 이상한 거 많이 엄청 가지고 다니더라. 근데, 간첩이 사람하고 똑 같이 생겼어? 머리에 뿔 달린 늑대 아니야?

툭, 기억이 멈추고 내 손에서 피리가 떨어진다. 우드드드 몸이 떨려온다. 나는 내처 달리기 시작한다. 방안에는 달력이 보이지 않는다. 째마리 아줌마의 구멍가게로 가 나는 닫힌 문을 두드린다. 한참을 두드리자 째마리 아줌마가 하품을 하며 문을 연다. 오, 오늘이 며, 며칠? 다짜고짜 나는 그렇게 묻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그런 표정으로 한참을 멍하게 나를 바라보던 째마리 아줌마가 턱짓으로 달력을 가리킨다. 한 장 한 장 찢어 넘기는 달력, 10월 28일. 하품을 하며 째마리 아줌마가 달력을 한 장 부욱 찢어 넘긴다. 29라는 글자가 눈 속으로 와락 달려든다.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내처 달린다.

나는 이제 권태로움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그 보다 견디기 힘든 어둡고 붉은 방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위대한 민족 지도자의 죽음으로 다만 미래에서 왔을 뿐인 나는 간첩으로 내몰린다. 간첩이라니, 내가 간첩이라니······

나는 나를 숨겨야 한다. 나는 나를 버려야 한다. 나는 우리가 흔히 역사라 부르는, 수많은 질곡의 세월들이, 수많은 핏빛 함성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픈 과거를 살아온 사람들의 거친 숨결들이 또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살지 못한 세월들이, 내가 겪지 못한 사건들이, 혹은 내가 있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진 수많은 일들이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재가 되어버린 나의 과거 속에서 나는 이 시대의 모든 역사들이, 역사라고 부를 것도 없이 이 세계의 모든 시간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과거에 있는가, 현재에 있는가, 미래에 있는가? 나는 다만 과거가 되어버린 나의 미래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다시 나의 현재 속으로 숨고 싶다.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찾는다. 전원 버튼을 누르는 손이 자꾸만 떨린다.  


학교 가는 길, 나는 기찻길에 떨어져 있는 이상한 피리를 주었다. 후후, 나는 피리를 불었다. 《문장 웹진/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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