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들

 

고모들



김지현




항아리가, 흔들렸다. 항아리 속에 들어앉아, 그 모양대로 똬리를 틀고 있는 놈은 햇살비단구렁이였다. 비늘이 흑갈색인지라, 햇살비단구렁이는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간 고무바퀴처럼 보이곤 했다. 어두운 몸통이 빛을 받으면, 외려 예리한 빛을 되쏘며 요란하게 번쩍거렸다. 이것이 비단구렁이 앞에 ‘햇살’이라는 낱말이 덧붙여진 이유였다.

잠망경처럼, 햇살비단구렁이는 항아리 밖으로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길 좋아했다. 그때마다 두 갈래로 찢어진 혓바닥이 놈의 주둥이에서 빠져나와 팔랑거렸다. 혓바닥의 분열된 두 끝은,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했고 가벼웠다. 놈은 ‘혀’로 냄새를 맡았다. 갈라진 혓바닥은 따분한 허공을 핥아대며 ‘숨은 냄새’를 감지하는, 일종의 직감처럼 돌아가는 더듬이였다. 항아리에서 기어 나온 놈이 똬리를 풀자, 길이 2m나 되는 놈의 몸뚱이가 전부 드러났다. 어른 팔뚝만한 몸통은, 수백 년을 살아온 정자목의 나뭇가지를 닮았다. 톱날을 맞이해도 쉽게 동강나지 않고, 상처를 입어도 기필코 싹을 틔우는 재생의 의지. ㅡ자형 나뭇가지에서, 놈은 S자 형 개울로 구부러졌다. 두 가닥 혓바닥을 시종 날름거리며, 퇴화된 귀를 아쉬워하기보다 배 비늘을 바닥에 바짝 밀착시켜 진동을 느끼며, 놈은 ‘직선’과 ‘곡선’을 오가면서 성난 파도처럼 구불구불, 이동하기 시작했다.


햇살비단구렁이가 그의 몸을 타고 올랐다. 그는 등을 곧게 펴고 놈이 몸을 휘감도록 도왔다. 그는 놈에게서 싸늘한 풋내를 맡았다. 수풀이 우거진 젖은 땅에 뺨을 대고 누운 느낌이었다. 그에게 햇살비단구렁이는 종일 붙어 지내는 유일한 친구이자, 개성 만점인 사업 동지였다.

그는 경기장과 공원, 유원지에서 컵라면과 태극기, 야광 뿔, 풍선 따위를 진열한 노점을 열어왔다. 아버지는 그의 일을 반대했지만, 처음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것이 어느새 그에게는 대학 가길 포기하고 뛰어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는 거리로 나가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물건을 사 가는 그들의 표정을 지켜보는 일이 좋았다. 머리에 야광 뿔이 솟아난 아이의 웃음, 온힘을 다해 온몸이 붉어질 때까지 풍선을 불어대는 노인의 슬픔, 컵라면을 허겁지겁 입속에 말아 넣는 어느 실업자의 근심과 기대가 그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그는 종종 그 표정들을 마주 보면서 함께 웃고, 설레고, 슬프고, 기대감에 들뜨곤 했다.

벌이가 시원찮은 날, 햇살비단구렁이는 주로 그런 날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항아리에서 머리를 꼿꼿이 쳐든 햇살비단구렁이를 목격하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두려움과 혐오감에 비명부터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햇살비단구렁이를 목에 감았다. 햇빛 아래 놈의 비늘이 화려하게 반짝이자,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그들 중 몇몇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햇살비단구렁이를 콕콕 찔러보고 역겨움에 온몸을 비비 꼬다, 뭔 일이 있었냐는 듯 시종일관 태연한 구렁이를 보고 긴장이 풀렸는지, 별안간 유쾌한 폭소를 터트렸다. 참았던 오줌을 이제야 배설하는 것처럼, 전생에서부터 억눌러 온 웃음보가 터져버린 듯 그들은 웃음을, 그 시원한 분출을 그칠 줄 몰랐다. 그러니까, 그 큰 놈이 저 조그마한 곳에서 나왔단 말이죠? 가까스로 웃음을 그친 사내 하나가 항아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똬리를 틀 수 있다는 것은 놈이 가진 최고의 재주죠. 그는 빈 항아리를 끌어안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그는 오늘 밤이 지나면 성인이 되지만, 즐거운 성인식 따위는 없었다. 일 년 전 오늘, 그러니까 그의 생일날 밤,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제사상은 거실 TV 앞에 차려놓았다. TV가 있는 자리, 그곳은 그의 집에서 가장 넓고 중앙이 되는 곳이었다. 배와 사과, 북어와 곶감, 생밤 등이 차려진 가운데, 그는 향로를 가져다 놓았다.    

아버지는 지방 케이블 TV 주말 자정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였다. 중앙으로 진출해야 해, 중앙으로! 머리를 빗다가도 이빨을 닦다가도 신발을 신다가도 ‘중앙으로’를 외쳐대던 아버지는, 그 외침에 비례해 점점 침울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 스튜디오 어딘가에 잠복해 있던 똥파리 한 마리가 붕, 날아오르더니, 약 먹은 벌레처럼 사방팔방 앵앵대며 휘돌다가, 생방송 중인 아버지의 콧잔등에 사뿐히, 착지해버린 것이다. 손으로 쫓아낼 수도 방송을 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얼굴 근육을 살짝살짝 실룩거려 보았지만 파리는 요지부동, 뺨에 민망한 경련만 일어날 뿐이었다. 아버지는 코에 똥파리를 매단 채로 방송해야 했고, 그런 까닭에 눈동자는 연신 콧잔등으로 쏠려 사팔뜨기처럼 보였다. 시청 가입자 수도 적고 게다가 시청률 또한 바닥을 때리던 그날의 뉴스가, 올해 최고의 NG로 선정되어 인터넷 최다 검색 기록을 세웠을 때, 케이블 방송국은 아버지 사진을 크게 뽑아 건물에 내걸었다. 아버지는 꿈에 그리던 중앙 방송국에, 그러나 뉴스가 아닌 ‘NG천국’이라는 오락 프로에 자주 오르내렸다. ‘NG대왕’으로 선정되어 인기를 누리던 아버지는, 그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방송 중에 의도적으로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말 더듬기, 불쑥 웃기, 돌연 격앙되기, 핸드폰 벨 울리기, 턱에 밥풀 붙이고 말하기, 삐딱하게 시선 돌리기 등. 시청자들은 처음, 신선 하네! 흥미로워하다가 곧, 쇼하는 거 아니야? 의심했고 마침내, 뭐야 저건! 조롱하다가 결국, 저 뉴스 진짜야? 뉴스 프로 자체를 의심했다. 아버지는 자정뉴스를 떠나야 했고, 기약 없는 대기발령 신세가 되었다. 노는 건 죄악이야. 이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새벽녘에 사업 구상 차 낚시터로 떠난 아버지는,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고속도로에서 졸다 아차, 균형을 잃은 순간, 옆 차선에서 졸음운전으로 달려오던 레미콘이 아버지의 승용차를 덮쳐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분수처럼 5m 가량, 솟구쳐 올랐다고 했다.

그는 평생 자신의 생일날 아버지의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 생일 케이크와 제사 떡, 미역국과 건더기만 담은 탕(湯), 나이만큼의 촛불과 향불. 그렇게 탄생과 죽음은 손을 맞잡고 다가와 속삭였다. 기쁨과 슬픔, 빛과 그림자, 사랑과 증오도 손을 맞잡고 있다고, 그들은 하나라고. 그는 아버지에게 품은 증오심을 사랑 따위와 연결시킬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아버지는 끝끝내 함구한 채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엄마’라는 낱말을, 유아들이 보는 책에서 익혔다. 책 속의 ‘엄마’는 풍성한 갈색 파마머리에 노란색 스마일 마크처럼 웃고 있었다. 그럼, 나의 엄마는 어디에 있지? 그는 아버지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대답은 해마다 달랐다. 어머니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고도 했고, 어머니가 모두를 버리고 외국남자와 결혼했다고도 했고, 어머니가 먼 나라 정글 어딘가를 탐험 중이라고도 했다. 그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를 낳자마자 죽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 창백해졌다. ‘스님이 되었으나 어느 봄날 운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그러다 문득 아버지와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져 모든 것을 등지고 정글로 떠났을 거다’라고 나름 정리해왔던 그였다. 그 전에 이미 죽어버렸다니! 지금껏 곁에 있던 사람이 사실은 귀신이었노라고, 섬뜩한 고백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는 조개처럼 다문 아버지의 입술을 노려보며 내년에 한 번 더 물어볼 테야, 다짐했다. 엄마는, 어디에, 계신 거죠? 이듬해 같은 시간, 그가 또박또박 물었다. 엄마는 널 낳자마자 죽었어, 이젠 학교생활에 적응해야지, 언제까지 엄마를 찾을 테냐! 아버지가 두 해 연속 똑같은 말을 한 것에, 그는 새파래졌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혓바닥 위에서 결코 살아나지 못했다. 거짓말쟁이!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옥상으로 뛰어올라간 그는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쳐냈다. 그때, 할머니가 그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왔다. 거짓말 하는 습관을 바로잡아 주지 못했단다, 애비가 큰 학교에 진학하느라 어려서 일찍 집을 떠났거든,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끈기가 필요해, 애비가 양지만 좇다 보니 지친 게야, 음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먼 곳을 살필 수 있는 법이거늘. 할머니가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혀를 찼다.

그날이었다. 김장독처럼 생긴 할머니의 통치마 속에서, 햇살비단구렁이가 스르륵 기어 나왔다. 수만 개의 흑갈색 비늘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놈과의 첫만남에서, 그는 뒷걸음질쳤다. 다리도 귀도 눈꺼풀도 없고, 납작한 머리통에 차가운 피부, 혓바닥까지 갈라진 놈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두려웠다. 물지 않아, 이 새까만 눈 좀 보렴, 열을 감지하는 눈이란다, 차가운 사물을 꿰뚫고 뜨거운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지, 자, 무섭다는 생각은 버려도 된다, 징그럽다고 속삭이는 말에 속지 마라. 할머니가 타일렀다. 그의 나이 아홉 살, 혐오감보다 호기심이 더 왕성했다. 그는 햇살비단구렁이 곁으로 다가섰다. 놈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휘감았다. 놈에게서 달콤한 풀냄새가 풍겼다. 놈의 혀가 그의 머리를 핥아댔다. 그는 몸을 뒤틀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래된 상처가 있었다. 검붉은 딱지가 떨어지고, 점점 푸른빛을 띠며 불가사리 모양으로 굳어간 상처. 놈의 민감한 혀가 그의 머릿속 불가사리를 찾아 간질였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눈물도 흘릴 줄 아는 놈이란다. 정말? 그로부터 2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삼년 동안, 햇살비단구렁이는 항아리 속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놈을 겨우 끌어냈을 때, 놈은 똬리를 튼 채로 젖빛 물을 뚝뚝 흘렸다. 그 물에서 나무가 타고 남은, 매캐한 재 냄새가 풍겼다. 그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놈은 삼년 내내 슬픔의 시간을 태우며 눈이 아닌 피부로, 땅바닥에 붙어사는 몸뚱이로 울었던 거라고. 오랜 슬픔에서 깨어난 놈은 젖빛 허물을 벗고, 기지개를 켜듯 몸을 쭉 늘였다.

첫 배에 아들을 낳고 줄줄이 딸을 낳았다, 딸들 중 넷은 태어나자마자 죽고 넷이 살아남았지, 동네에서 네 할아비를 딸기밭 주인이라고 놀렸다, 할아비는 그 별명에 몸서리쳤단다. 할머니는 그에게 햇살비단구렁이를 넘겨준 그 옥상에서, 고모들을 키워 온 이야기를 밤새도록 들려주었다. 고모들의 성장 일기를 듣는 동안, 그는 똬리를 튼 햇살비단구렁이를 베개 삼아 오랜만에 단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모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고모들을 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처음이었다. 둥근 챙이 달린 검은 모자를 쓴 고모3을 선두로, 고모1과 고모4가 팔짱을 끼고 있었고, 그 뒤로 고모2가 껌을 짝짝 씹으며 서 있었다. 그는 고모3의 얼굴만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그가 네 살 때의 일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아버지가 고모3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선글라스를 쓴 고모3이 어린 그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내뱉은 첫마디 ‘저런, 혈이 많이 뭉쳤네!’를,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당시 고모3은 안마사였다.

5월 5일 밤, 아버지 1주기 제사, 참석 요망.

며칠 전 그는 고모들에게 전보를 보냈다. 고모들과 떨어져 지낸 세월이 만만치 않아, 아버지의 죽음도 할머니의 낡은 수첩을 뒤져 알아낸 주소로 겨우 알렸었다. 전화번호라도 알아둘 걸. 고모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물론 전화도 없었다.

밤 열한 시, 벽시계가 댕댕 울렸다. 삐이-걱, 오동나무로 만든 방문이 열리는 소리. 그의 머릿속 불가사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쭈뼛, 섰다. 식사하세요, 노크하고, 다녀왔어요, 외치고, 전화요, 노크하고, 모닝콜이요, 외쳐도 결코 열린 적이 없었던 오동나무 방문, 아버지의 서재였다. 그 끔찍한 괴물이나 치워, 안 그러면 절대 못 나가! 아버지는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 햇살비단구렁이를 두려워했다. 아버지는 그가 놈을 데리고 사라져야,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럼 그렇지, 그는 눈을 비벼댔다. 잠겨 있는 서재가 저절로 열릴 리 없었다. 아버지는 햇살비단구렁이가 서재로 숨어들까봐 두려워, 외출하기 전에는 꼭 문을 잠갔다. 서재 열쇠는 아버지가 사고당한 날, 분실되었다.  

그는 향을 꺼내들었다. 고모들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햇살비단구렁이의 찢어진 혓바닥이 향을 핥았다. 그는 성냥불을 향에 대었다.

향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그는 한쪽 눈만 뜨고 주위를 살폈다. 제사상 앞에서 그냥 잠이 든 모양이다. 타지 못한 향 서너 개가 차가운 향로에 꽂혀 있다. 햇살비단구렁이는 그의 머리를 떠받친 채 똬리를 틀고 자고 있었다. 그의 뺨으로 느껴지는 놈의 피부가 따뜻했다. 밤사이 그의 체온이 놈에게 전달된 것이다. 거실 창밖, 태양빛은 강렬했다. 그는 창문을 바라보는 일이 피곤했다. 햇살비단구렁이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늘을 찾았다. 놈은 항아리 속으로 기어들어가 똬리를 틀고 에너지를 비축했다. 그때, 그의 피곤한 눈동자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의 시야 속으로 불쑥 들어온 그녀, 고모1의 얼굴이 햇살을 가려주었다.

일어나렴, 밥은 제대로 먹고 사니?

고모1은 식탁 위에 찬합을 내려놓았다. 제사를 지내자는 건지,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라고 그는 따지고 싶었으나,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모1을 바라볼 뿐이었다. 항아리에서 머리를 쳐든 햇살비단구렁이가 고모1을 향해 반갑다고 혀를 팔랑거렸다. 고모1도 놈에게 오랜만이라고 혀를 날름거렸다. 그들의 혓바닥 인사는 상대방 얼굴에 침 뱉기나 귀 잡아당기기, 박치기하기 등, 아마존 부족민들 간의 독특한 인사법을 떠오르게 했다. 고모들은 햇살비단구렁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놈은 할머니의 치마 밑에서 살았고, 고모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놈과 함께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이 징그럽다, 무섭다, 끔찍하다 따위의 언어를 알기 전부터, 어쩌면 잉태되던 그 순간부터, 햇살비단구렁이는 할머니와 고모들 곁에 있었다. 놈은 고모들이 잡아다 준 바퀴벌레와 지렁이, 쥐새끼를 먹고 살았다. 놈의 특별식 담당은, 사실 여섯째였으나 그 위와 아래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막내가 돼버린 고모4였다. 죽은 고양이, 죽은 개, 죽은 청설모, 죽은 너구리, 죽은 고라니 등. 고모4는 주로 차도에 방치된 동물 사체를 끌고 왔고, 햇살비단구렁이는 그것들을 더 이상 상처 입히는 일 없이 꿀꺽, 삼켜 그대로 소화시켜버렸다.

“누구를 보고파/창문을 열-면/빨갛게 석류가 웃음-짓는다.” 고모1은 아버지의 제사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입술을 벌리고/미소를 짓는다/아 상쾌하다~”, 고모1의 입술이 잘 익은 석류처럼 벌어졌다. 온음표, 16분 음표, 8분 쉼표 따위들이 소리가 되어 흘러나왔다. 아버지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여동생, 할머니는 고모1이 그랬다고 얘기했다.

아버지는 첫째 여동생의 노랫소리를 좋아했지만, 그녀의 삶은 증오했다. 고모1은 기타 학원에서 고모부1을 만났다. 고모부1은 음악을 향한 고모1의 열정을 존중해주었고, 아버지는 고모부1의 마비된 두 다리가 못마땅했다. 고모1은 고모부1과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마비된 두 다리’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동정을 부르는 일이라고 대꾸했다. 아버지는 머리와 마음이 엇박자를 이루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는 고모1에게 자주 싸움을 걸었고, 문 뒤에 숨어 고모1의 노래를 감상했다. 고모1은 머리와 마음이 2/4박자 폴카 리듬을 탔고, 고모부1과 초라하지만 경쾌한 결혼식을 올렸다. 박자고 뭐고 모든 게 뒤엉켜 있던 할아버지는 첫째 딸 결혼식 날, 고모3의 품에 안겨 꾸벅꾸벅 졸았다. 3/4박자 왈츠 리듬을 밟고 있던 할머니는 고모1의 노래 재능이 자신을 닮은 것이라고 떠들었고, 고모부1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고모1의 성대를 제거하거나 입을 꿰매지 않는 한, 고모1은 좋아하는 노래를 죽는 날까지 부를 터였다. 고모1과 고모부1의 결합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고모1의 고집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고모1의 결혼식 날, 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예식장 부모님 석에 홀로 앉았다. 할머니의 치마 밑에는 햇살비단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놈은 예식장 카펫에 기생하는 온갖 벌레들과 산책하듯 튀어나온 귀뚜라미를 긴 혀로 재빨리, 낚아챘다.

그는 고모1의 손에서 엇갈렸다 평행이 되길 반복하는, 젓가락을 보고 있었다. 고모1의 손가락은 기타를 치고 바이올린을 켜고, 만돌린이나 가야금을 뜯곤 했다. 작은 키에 비해 그녀의 손가락은 길었고, 손마디는 나뭇가지에 튼 눈처럼 툭 불거져 있었다. 아버지가 말한 ‘마비된 두 다리’가 고모1네 생활을 고단하게 할 때도 있었다. 고모1은 음계의 질서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마비된 두 다리는 16분 쉼표나 온쉼표, 8분 음표 따위로 표현되곤 했다. 그것은 곧 노래가 되었다. 고모1은 찬합에서 음식을 꺼내 접시에 정성껏 펼쳐 담았다. 그는 고모1이 건넨 수저를 받았다. “진실로 모든 잘못은/너를 돌려놓고 살려던 것에서 빚어졌거니~” 고모1은 ‘고독’이라는 제목의 가곡을 불렀고, 식사 시간에 듣기는 거북했으나, 졸지에 아비를 잃고 허전한 밥상을 대해 왔던 그의 신세와는 어울렸다. 그는 고기전과 녹두전, 갈비찜 등 잔손이 많이 갔을 음식들에서 온기를 느끼자 순간, 침울해졌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식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참치 캔, 조미 김, 3분 육개장, 3분 미역국이 차려진 밥상에서, 아버지는 김을 조금 떼어내 앞니에 붙였다. 어떠냐? 시청자들이 쇼킹하겠지? 아버지가 물었다. 맹구 같아요. 그는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고모,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려던 그가, 멈칫했다. 고모1은 초록색 빗을 손에 쥐고 있었다. 빗은 반달 모양이었다. 굵고 성긴 빗살에 가운데 살 하나가 부러져 있고, 살 안쪽으로는 검은 때까지 끼어 있는 터라 꼭 늙은 촌장의 썩어빠진 이빨처럼 보였다. 초록색 빗은 한동안 아버지의 축 늘어진 머리칼을 정돈해왔다. 이 반달빗은 삼천포에서 데려왔지. 아버지는 욕심과 자기방어가 벗겨진 음성으로 말했다. 샛길로 빠졌다가 만난 애인을 고백하듯,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으며 얻은 정표(情表)를 대하듯, 아버지는 그 반달빗으로 머리칼을 빗으며 종종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그는 그 빗을 사용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 혹여 반달빗이 어머니에게서 받은 선물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아버지가 초록색 빗을 집어던진 것은, 자꾸만 뒤엉키고 뻣뻣해져 가는 머리칼 때문이었다. NG대왕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아버지는 밤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심했다. 아침, 아버지의 머리에는 시조새의 거대한 둥지가 틀어져 있곤 했다. 반달빗은, 심각하게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하지 못했다. 조급함이 더해진 아버지의 빗질 또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는 고모1이 초록색 빗을 어디서 찾아냈는지, 알 수 없었다. 고모1은 머리끈을 풀었다. 그녀의 풍성한 머리칼이 어깨로 쏟아졌다. 햇살을 등지고, 초록색 반달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꿍 짝짝, 4분 음표 세 개, 8분 음표 여섯 개. 고모1의 빗질 리듬은 3박자, 왈츠 리듬이었다. 항아리 밖으로 몸을 곧추세운 햇살비단구렁이가 똑딱, 박자계처럼 움직였다. 부러진 빗살은 문제되지 않았다. 빗이 정수리에 머물 때와 이마를 긁으며 지날 때, 귀를 스칠 때와 뺨을 누르며 쓸어내릴 때, 고모1은 각각 힘의 강약을 조절했다. 머리끝이 엉키면 빗을 쥔 손을 방울처럼 살살 떨다가 물살을 타고 흐르듯, 과감히 바닥을 향해 내리 빗었다. 고모1의 3박자 리듬은, 그날의 머리 상태와 망가진 반달빗이 손을 맞잡고 빚어낸 결과였다. 그는 초록색 빗이 처음부터 고모1의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에 휩싸였다. 

그때였다. 오, 반달빗 예쁘군, 하는 소리가 그의 뒤통수를 훑고 지나갔다. 고모4였다. 고모1과 똑같은 체구에 똑같은 웃옷을 입었고, 똑같은 머리끈으로 똑같은 스타일로 머리를 묶은 막내고모. 현관에 신발을 벗어던진 고모4는 폭주 기관차처럼 그를 밀치고 고모1을 향해 걸어갔다. 고모4는 머리끈부터 풀었다. 그녀의 풍성한 머리칼이 어깨까지 떨어졌다. 그는 고모4의 얼굴을 힐끗거렸다. 얼굴의 옆모습은 처진 눈초리 탓으로, 무언가 잔뜩 불만을 품고 실의에 빠진 듯 보였다. 입 꼬리마저 아치 모양으로 처져 있어, 금방이라도 불퉁거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 각도를 틀어 보면, 외려 눈초리가 가로로 길게 찢어져 있어 눈이 작아 보이며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한 인상을 풍겼다. 정면에서 본 얼굴은 곧 눈물을 뽑아낼 듯 위태로워 보였고, 그녀가 약간 고개를 숙이자 눈초리와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가며 얼굴에 짝, 맞물린 지퍼 같은 미소가 번졌다. 고모4의 얼굴은 여러 표정을 조각조각 이어붙인 듯했다. 다채로운 표정이 사라지면, 그녀의 얼굴도 존재할 리 없었다. 그때 햇살비단구렁이가 슬그머니, 항아리에서 기어 나왔다. 놈의 머리가 거실 바닥에 납작 붙어 미끄러져나갔다. 창에서 쏟아진 햇살이 놈의 몸통을 휘감았다. 놈이 꿈틀거릴 때마다 광택을 지닌 흑갈색 비늘이 하얗게, 붉게, 검게, 달빛, 물빛, 잘 익은 똥빛 등으로 반짝거렸다. 그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빛의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입체카드 같았다.

고모1은 고모4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물론 초록색 반달빗이 사용되었다. 한쪽이 웃으면 같이 웃고, 한쪽이 집중하면 같이 숨을 죽이고, 한쪽이 찡그리면 같이 안타까워하며, 둘은 마주 서서 머리를 빗어대다 얼굴을 쓰다듬다, 정신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에게 이야기했었다. 고모4는 아버지를 가장 피곤하게 했던 동생이라고.

어릴 때부터 고모4는,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갈등을 모두 쏟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놀이터 자리에 쇼핑센터가 생긴대, 이제 숨바꼭질은 △△쇼핑에서 하나? 숨을 곳은 있을까? 교장이 머리길이 귀밑 2㎝만 고집해, 행복은 머리칼 길이 순이 아니잖아, 난 곱슬머리야, 내 5㎝가 교장의 2㎝라니까, 포크에 찔린 석류를 그렸더니, 선생님이 외설적이라고 야단이야, 난 그냥 석류가 좋아요, 따졌더니, 바로 그런 사상이 문제래 등등. 고모4는 입만 열면 왜 그러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너야말로 왜 그러니. 도시의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고모4에게 던진 첫마디였다. 입술을 달싹이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동생의 ‘고민’을, 아버지는 하수구가 터져 물이 새는 일쯤으로 생각했다. 고민을 들어주다가도, 금세 일과에 지친 공무원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별 일도 아닌데, 그만 좀 쫑알대라. 아버지는 자신처럼 엄격하고 냉정하지 못한 고모4가 짜증이 났다.

다 듣고 있다, 계속해봐. 없는 살림에 구멍난 옷들을 꿰매느라 자리를 뜰 수 없었던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가족들의 낡은 양말을 수선하며, 막내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할머니가 고모4에게 어떤 해답을 던져준 적은 없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여준 횟수만큼, 고모4는 성숙해갔다. 할머니의 치마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햇살비단구렁이는, 졸린 눈을 떴다. 고민 털어놓기 삼매경에 빠진 고모4가 간혹 소심한 자기방어와 증오심으로 눈이 충혈될 때마다, 놈의 혓바닥이 빠져나와 그녀의 발바닥을 간질였다. 침착하자, 나를 믿어보자. 간지러운 발바닥을 긁으며 한참을 깔깔대던 고모4는, 세상이 노랗다고 자신도 꼭 노란색일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스스로 용기를 되찾아가며,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걷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고모1은 고모4의 고민들을 라단조의 선율로 슬프게 표현하곤 했다. 고모4는 고모1의 노랫소리를 좋아했다. 고모4가 고모1의 선율을 흉내내자, 고모1은 한 옥타브 내려 노래했다. 고모4가 고모1의 선율을 또다시 모방했다. 고모1이 다시 한 옥타브 올려 노래하자, 그녀들의 소리는 화음이 되었다. 고모1이 먼저 노래 부르고, 그 선율을 뒤쫓아 고모4가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돌림노래가 되었다. 고모4는 고모1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고모1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고모4는 아파트 난간에 매달렸다. 할머니가 왈츠 리듬을 밞으며 고모부1의 손을 잡은 날, 고모부1은 고모4의 손을 잡았다. 난 도둑놈도 유괴범도 아니야, 처제에게 형부가 생긴 거지, 새 식구가 생긴 거야. 고모부1은 신혼집에 고모4의 방을 마련했다. 셋은 가족이 되었다.

햇살비단구렁이가 고모4의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 빗어줘? 넌 머리칼이 없잖니! 고모4는 구렁이 무게에 밀려 휘청거리면서도 캐들캐들, 웃어댔다. 그는 고모4의 기묘한 웃음소리에 오싹했으나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라 그냥 눈만 똥그랗게 떴다. 지난날, 아버지와 마주보고 서서 그토록 고단한 아버지의 빗질을 도왔다면, 아버지 머리의 시조새 둥지도 손쉽게 없애고 그 아침, 씨발, 이놈의 빗, 하는 아버지의 비명도 듣지 않았을지 몰랐다. 그러면 아버지도 깨달았을까. 마주보는 일이 힘이 됨을. 그 사이, 고모1과 고모4는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재잘거리며 현관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반달빗을 찾으러 온 건지, 머리를 빗으러 왔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그녀들이었다. 어쨌거나 인사할 기회를 놓친 그는, 집을 빠져나가는 고모들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는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아버지의 위패를 바라보았다. ‘오철수’라고 쓰인 지방(紙榜), 글자 크기 40에 궁서체로 뽑은 아버지의 이름. 고모들도 오지 않고 향에 불도 붙지 않아 그냥 내버려둔 제사상에, 태우지 못한 지방 또한 멀쩡히 있었다. TV와 위패, 직사각형 틀 속의 이름. 그는 늘 사각의 틀 속에 들어 있는 아버지를 대하는 일이 익숙했다. 아버지는 그 틀이 정한 범위만큼 만족했고, 즐거웠고, 좌절했고, 불행했다. 어머니를 얘기할 때도 그랬다. 탄생의 비밀이 탄로나는 날, 틀에 알맞게 살찌운 아들의 키와 무게가 좀 더 늘거나 줄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아버지는 의심했을 것이다. 왜 자꾸 어두운 허공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거냐. 어머니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서, 아버지의 겁에 질린 눈빛은 말했다.

햇살비단구렁이가 그의 몸을 타고 올라 목을 감았다. 놈의 꼬리가 그의 배꼽 근처로 늘어뜨려졌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그를 밖에서 낳아 왔다고 말했다. 애비가 널 빼앗아오며 성공하면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다는구나, 지방 어디에서 미용실을 한다고 듣긴 했다만.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진실을 알려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죽었다던 어머니가 버젓이 미용실을 하다니! 순간 눈이 뒤집힌 그는 미용실만 눈에 띄면 그곳으로 뛰어들곤 했다. 머리에 파마비닐을 덮어쓴 여자들이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질러댔다. 그의 목에 감겨 있는 햇살비단구렁이 때문이었다. 얘는 독사가 아니라니까요, 위험하지 않아요. 그가 외쳤다. 그의 진실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런 ‘비명들’과 계속 맞닥뜨리다가는, 어머니고 뭐고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눈알이 다 빠져버릴 지경이었다. 오래된 상처, 비오는 날마다 도지는 노인의 관절염처럼, 그의 머릿속 푸른 불가사리가 욱신거린다. 통증을 감지한 햇살비단구렁이의 두 갈래 혓바닥이, 그의 불가사리를 핥았다. 그는 잠자코 어머니를 상상했다. 고모1처럼 노래 부르길 좋아할까, 고모4처럼 늘 고민거리를 늘어놓는 모습일까.


비가 내려 오늘 장사를 일찌감치 포기했던 그와 햇살비단구렁이는, 나무뿌리처럼 뒤엉켜 코를 골았다. 누군가, 그의 등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찬 바닥에서 웬 청승이냐!

고모2. 고모들 중에 가장 몸집이 크고 아버지와도 가장 사이가 나빴던 둘째 고모였다. 햇살비단구렁이는 거실 바닥을 S자 형으로 기어 다녔다. 고모2는 식탁에 펼쳐놓은 찬합의 음식들을 입속으로 던져 넣었다. 큰언니가 다녀갔군. 그녀는 입속의 것을 꿀꺽, 삼켰다. 고모2는 고모1과도 사이가 나빴다. 고모1이 노래를 부를 때, 고모2는 목 놓아 울부짖었다. 몸 안에 물을 눈으로 전부 짜내 버리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울기를 멈추지 않았다. 뚝! 박자를 잃어버린 고모1의 고함소리가 집을 쩌렁쩌렁 울렸다. 파편이 된 음들이 쟁강거렸고, 울음으로 질퍽해진 공기 속으로 날벌레들이 날아들었다. 고모1의 노래는 고모2의 귀에 슬프게만 들리는 모양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고모2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할머니는, 시집오며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건네받았던 햇살비단구렁이가 할아버지의 칼에 가죽이 벗겨지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 당시 할머니의 몸속에는 고모2가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구렁이 가죽을 지갑공장에 팔아넘겼고, 몸통은 8ℓ 소주 속에 담갔다. 할머니는 임부의 몸으로 펄쩍펄쩍 뛰었다. 신발장 깊숙이에서, 얼룩무늬 알 스무 개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햇살비단구렁이의 알. 산란기 물고기가 어부에게 낚이며 누런빛 알을 한없이 쏟아내듯, 죽음을 직감한 놈이 위기감에 내몰리며 알을 낳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지갑공장장이 준 돈으로 트럭을 장만했다. 잘 닦은 연장을 트럭에 실은 할아버지는, 팔도 공사장을 찾아 떠났다. 할머니는 골방에서 햇살비단구렁이의 알을 품었다. 70일이 지났고, 이제 갓 모양을 갖춘 고모2의 발이 할머니 배를 뻥 걷어찼다. 할머니의 어둡고 따스한 치마 속에서, 햇살비단구렁이가 알을 깨고 고개를 내밀었다. 스무 개의 알 중에 단 한 마리만이 껍질을 깼다. 할머니는 속이 곯아버린 나머지 알들을 끌어안고 울었다. 울음을 그친 날 밤, 할머니는 고모2를 낳았다. 고모2의 붉은 심장이 살갗에 그대로 비쳤다. 고모2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쿵쾅거리거나 지치는, 예민한 심장을 갖고 태어났다. 할머니는 구렁이 가죽을 벗기던 할아버지의 칼을 생각했다. 그때 놀란 어미의 가슴이 고모2의 심장을 약하게 만든 거라고, 할머니는 믿었다.

고모2의 발길질에 장사 나갈 야광 뿔들이 좌르르, 흩어졌다. 고모2는 꼭 안달이 난 빚쟁이처럼 온 방안을 빈정대며 돌아다녔다. 제길! 야광 뿔을 쓸어 모으던 그가 약이 올라 내뱉은 말. 고모2가 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댔다. 쉿, 난 소리에 민감하다. 고모2는 머리카락을 걷어 귀를 드러냈다. 유난히 뾰족한 귀 끝에 박음질 자국이 선명했다. 그것은 고모2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큰오빠와 다투다 생긴 상처였다. 아버지는 둘째 여동생의 울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무질서하고 나약한 몸부림을 경멸했다. 아버지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다 홧김에 유리컵을 냅다, 던졌다. 유리파편이 튀어 고모2의 귀를 찢어놓았다. 열두 바늘을 꿰맨 자리, 귓바퀴에 엎어져 있는 송충이 한 마리. 고모2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예민한 심장은 울음 대신 주먹을 선택했다. 이제 그녀의 울음은 거친 힘으로 뻗어 나왔다. 고모1이 고모4와 화음을 맞출 때, 고모2는 고모4의 따귀를 갈겼다. 고모2의 주먹에 쓰러진 고모4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종일 고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런 그녀에게 고모1이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고모2는 멀리서 그 둘을 바라보며, 펄떡거리는 심장에 주먹을 가만히 댔다. 손이 얼얼했다. 잔인성과 분노로 가장한 외로움과 비겁함, 그리고 질투심. 고모2는 외톨이라고 느낄 때, 이를 닦았다. 가지런한 이빨들, 협력과 끈기로 하나가 되어 에너지원을 만들어내는 그 단단함. ‘단단한 힘’을 조율하는 일, 그것은 울음이 폭력이 되지 않길 바라는 고모2의 소망이자, 과제였다.

그는 고모2의 오른손 팔목을 움켜쥐었다. 어쭈. 고모2는 왼손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머릿속 푸른 불가사리를 감쌌다. 고모2의 주먹은 아버지의 것보다 더 매웠다. 울음이 주먹으로 변질된 탓이었다. 큰오빠는 둘째 여동생의 주먹을, 주먹으로 막아왔다. 그 주먹은 또 주먹으로 이어졌다. ‘주먹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갓난아기였던 그가 천장을 향해 붕 떠올랐다가 방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는 태어나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정신을 잃고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 여덟 명이 달려들어 별 모양으로 찢어진 머리통을 꿰맸다. 상처로 생긴 땜통은 머리칼이 자라며 불가사리 모양으로 굳어버렸다. 푸른 불가사리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날 집어던진 범인이 고모2 맞죠? 그가 물었다. 네 아버지 짓이야. 고모2는 장롱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넥타이까지 갖춰진 아버지의 양복이 교수형 당한 죄수 꼴로 걸려 있었다. 내가 한 짓일 수도 있지. 고모2가 뒤로 홱, 돌아섰다. 어느새 햇살비단구렁이가 고모2의 몸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고모2는 주머니에서 바퀴벌레를 꺼내 놈에게 주었다. 봐요! 그는 머리칼을 헤집고, 고모2에게 푸른 불가사리를 보여주었다. 외계인이 도장을 찍어놓은 꼴이군. 고모2는 까치발로 서서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며 덤덤히 말했다. 목에 감긴 구렁이 때문에, 그녀의 고개는 잘 숙여지지 않았다. 햇살비단구렁이의 혓바닥이 그의 불가사리를 간질였다. 놈의 혓바닥이 고모2의 귓바퀴 송충이를 간질였다. 그와 고모2는 흉터가 있는 자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고모2는 옷걸이에 덜렁 걸린 아버지의 양복을 쓰다듬더니, 이내 장롱 문을 쾅, 닫았다. 그녀는 옷장 서랍들을 죄다 열어놓았다. 고모2가 몸을 격렬하게 놀릴 때마다, 그녀의 목에 감긴 햇살비단구렁이는 물결처럼 출렁였다. 보석 박힌 넥타이 핀, 집 한 채 값을 호가하는 반지, 금도금된 담뱃갑 등. 고모2는 아버지가 평생 아껴왔던 물건들을 마구 헤집어 놓으려고 들이닥친 사람 같았다. 그는 욕실로 향하는 고모2를 막아섰다. 이 자식이! 고모2는 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녀의 목에서, 햇살비단구렁이의 기다란 혀가 빠져나왔다. 두 갈래로 찢어진 혓바닥이 그의 눈과 코를 동시에 핥아댔다. 그가 재채기를 하는 틈을 타, 고모2는 욕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욕실 한구석에서 찾아낸 낡은 칫솔에, 치약을 짰다. 아버지의 칫솔이었다. 전동칫솔이 들어와 퇴출당한 칫솔. 누런 때에 찌든 칫솔모가 바람에 쓰러진 풀처럼 누워 있었다. 그는 욕실 거울을 통해, 양치질 중인 고모2를 보았다. 흰 거품을 뒤집어 쓴 아버지의 칫솔. 단단한 힘을 유지하는 데 이쯤이야 뭐. 이빨 하나하나 닦아내는 고모2의 손놀림은 신중했고, 섬세했다. 카악, 침과 뒤섞인 치약 거품을 모아 퉤퉤, 뱉어내고 금방 또 입에 칫솔을 무는 그녀. 이건 앞니, 송곳니, 어금니, 칫솔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주는 중인지, 끝났나 싶으면 다시 치카치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란한 양치질 소리에 그의 잇몸이 저려왔다. 잇몸이 아린 만큼, 빈속은 쓰려왔다. 양치질하는 죄인을 감시하는 교도관 같다고 스스로 느낀 그는, 조용히 돌아섰다. 그는 식탁으로 걸어갔다. 식었으나 아직껏 고소한 향을 잃지 않은 고모1의 녹두전을, 그는 오래 씹어 삼켰다.

찬장 유리에 검은빛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누, 궁? 그가 너무 놀라 혀를 깨문 탓에 발음이 샜다. 고모3이었다, 검은 모자를 단정히 차려 쓴. 그는 순간, 욕실을 뒤흔들던 양치질 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모3은 챙이 둥근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햇빛이든 빗물이든 벼락이든 주먹이든, 무엇이 날아들어도 챙이 넓어 머리와 얼굴을 끝까지 보호할 터였다. 모자 중앙이 망사로 되어 있어 바람이 드나들 수 있었고, 추위를 느낄 때 그 위에 달린 덮개를 내리면 그만이었다. 모자는 고모3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탐험을 즐기는 이들의 정글모자와 흡사했다. 고모3은 모자를 쓴 채, 아버지의 제사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향에 떡 하니 불을 붙이자, 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이 붙지 않아 애를 먹이던 향이 어찌 단번에 새빨간 불똥을 달고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것인지, 신기했다. 제사상을 혼자 차렸구나, 수고했다. 고모3이 말했다. 지금껏 다녀간 고모들 중 유일하게 아버지의 제사를 언급한 터라, 그는 밤길을 헤매다 이제야 사람다운 사람을 만난 듯해 눈물이 핑, 돌았다. 햇살비단구렁이가 구불구불, 기어와 고모3의 발목을 칭칭 휘감았다. 흑갈색 항아리 속에 고모3의 한쪽 발이 빠진 듯 보였다.

팔도 공사장을 떠돌던 할아버지가 집에 들를 때마다, 할머니에게 아기가 생겼다. 고모3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대학 입학시험을 치렀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할아버지가 개를 잡은 날, 할머니는 아랫집에 홀로 사는 점쟁이를 초대해 함께 보신탕을 먹었다. 오호, 이 집 셋째 딸이 아비를 잡아먹을 팔자일세. 점쟁이는 저녁 값으로 엄청난 예언을 남겼다. 웃기시네! 할아버지는 점쟁이가 돌아간 자리에 소금을 뿌렸다. 아버지에게 대학 합격증이 배달되었다. 문제는 입학금이 부족하다는 사실. 할아버지는 강보에 싸인 고모3의 작은 주먹을 주시했다. 저 작은 주먹이 사람을 해먹다니. 할아버지가 점쟁이의 말을 되뇌고 있을 때였다. 마을 지주인 팽씨가 고모3을 수양딸로 삼고 싶다고 찾아왔다. 부인도 자식도 없는 팔자에 고모3을 잘 키워 훗날, 늙은 몸을 의탁할 작정이라고 했다. 쌀 삼만 석 값에, 고모3은 팽씨에게 입양되었다. 팽씨는 할아버지 가족이 멀리 떠나주길 원했다. 고모3을 강제로 입양시킨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깟 딸 하나 남 준 게 뭐가 아까워, 넷이나 죽었어도 우린 행복하잖소!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의 치마 속이 싸늘해졌다. 치마 속의 햇살비단구렁이도 덩달아 차가워졌다. 놈은 금세 부서질 듯 위태로운 할머니의 아랫배를 휘휘, 휘감았고, 분노로 딱딱해진 그녀의 허벅지를 꾸준히 핥아댔다. 할머니는 밤마다 섬뜩한 말들을 쏟아냈다. 여편네가 노망이 났다고 판단한 할아버지는 서둘러 할머니를 들쳐 업고, 고모1과 고모2를 트럭에 태웠다. 아버지는 서울에 자취방을 구했고, 대학에 입학했다.

20년이 흘렀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했던 할아버지는, 트럭을 끌고 팔도를 돌아다녔다. H섬 여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슴을 풀어헤친 여자가 할아버지 방으로 숨어들었다. 여자는 포주에게 쫓기고 있었다. 얼굴은 어리지만, 투실투실한 젖가슴만은 추석날 햇과일 같던 그녀. 할아버지는 트럭을 팔아 여자의 빚을 갚아주었고, 그녀와 영원히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남은 인생 그녀와 함께 살라네. 할아버지가 새파랗게 어린 여자를 곁에 끼고 선언하자마자, 할머니의 얼굴 또한 새파랗게 질렸다. 할머니는 여자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여자의 발등에 난 세계지도 모양의 푸른 반점. 발등에 그런 점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았다. 여자는 투명한 스타킹을 신고 있었고, 그녀가 일찍이 입양된 고모3이라는 사실도 ‘투명하게’ 드러났다. 할머니는 고모3을 끌어안았다. 할머니 치마 밑에서 햇살비단구렁이가 놀라 튀어나왔다. 삼복더위에 태어난 너는 햇살비단구렁이의 서늘한 몸통을 베고 잠들길 좋아했단다. 할머니가 울먹였다. 늘 뺨 한쪽이 서늘했어요, 추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고모3은 꿋꿋하게 살아온 세월을 회상했다. 변태성욕자로 돌변한 팽씨에게서 도망친 일과 H섬 티켓 다방에 고용된 일을 얘기하다 돌연,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쏟았다. 나이 많은 연인이 순식간에 아버지로 돌변해버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네가 모르고 저지른 짓이다, 울지 마, 아가야. 할머니에게 고모3은 오래전 강제로 빼앗긴, 불쌍한 딸이었다. 할머니는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젖가슴에 눈이 팔려 발등을 못 봤도다! 할아버지는 독주를 들이킨 듯 괴로워했다. 아버지랑 정분난 애예요, 혐오스러워요! 아버지는 고함을 질러댔다. 큰아들 큰소리에 연이은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는 집을 뛰쳐나갔고, 보름 만에 어느 시설에서 발견되었다. 할아버지는 큰아들을 ‘아빠’라고 부르고, 바지에 오줌을 쌌다. 울음으로 눈이 퉁퉁 부어오른 고모3은,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리고 가족들 몰래 집을 떠났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탓도, 꺼지라고 소리치는 큰오빠 탓도 아니었다. 입덧이 시작된 것이다.

고모3은 모자를 벗지 않았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들릴락말락 몇 마디 던지고, 느릿느릿 고개를 들며 슬쩍 미소 짓고, 신중히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샅샅이 살피고. 알다브라 섬 자이언트거북이 목을 늘였다 줄이며 거실을 활보하는 느낌이랄까. 얼굴에 내려앉은 챙 그림자가 짙어 눈 주위는 시커맸으나, 붉은 입술과 쭉 뻗은 흰 콧대는 도드라져 반짝였다.

내가 걔를 용서했듯이, 그 애도 뱃속의 아기를 용서했을 거야.

할머니는 고모3이 집을 나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했다. 고모3은 할아버지의 첩이자 딸이자 자식의 어미이자 손주의 어미였고, 형제자매의 동생이자 조카를 낳은 것이었다. 그 난잡한 관계를 모두 따지다 애를 잡고 말지. 할머니는 고모3이 무사히 살아가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아버지는 고모3을 부르며 종일 아이처럼 울었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고모3을 수소문했다. 삼년 만에 나타난 고모3은 안마사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고모3을 두 번째로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할아버지는 고모3을 할머니로 착각한 채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고모3도 할아버지를 기꺼이, 끌어안았다. 그녀는 큰오빠 대신 할아버지를 간호했고, 밤에는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고모3이 다시 돌아온 후로, 아버지는 부모님을 찾지 않았다. 아직 어린 그만이 할머니에게 맡겨지곤 했다. 고모3은 할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자신만의 모자를 만들었다. 그는 둥근 쟁반, 둥근 접시, 바퀴, 보름달만 보면 고모3의 검은 모자가 떠올랐다.

그가 향불이 켜진 아버지 제사상 앞에서 묵념하는 사이, 고모3은 신발장으로 걸어갔다. 벌써 가시려나, 그는 사촌이자 삼촌인, 고모3의 아이 안부를 물으려다 멈칫했다. 고모3은 신발장 문을 열어젖혔다. 그녀의 한쪽 발목을 감고 있는 햇살비단구렁이도 고개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신발장 안을 살폈다. 놈의 혀가 재빨리 특정한 신발을 가리켰다. 그래, 나도 그 구두에 마음이 가. 고모3이 말했다. 끈이 낡아 너덜거리고 밑창도 절반이나 삭아버린 구두, 굽마저 닳아빠진 아버지의 구두는 이 집안에서 가장 낡은 물건이었다. 고모3은 구두 입을 활짝 벌렸다. 냄새가 구수한 걸 보니 거름이 되는 균들이 사는 모양이야. 고모3은 아버지의 찌든 발 냄새를 맡고 한껏 들떴다. 곧이어 그녀는 웃옷 주머니에서 흙이 떨어지는 뭔가를 꺼냈다. 난봉옥이야, 주교의 모자를 닮았지, 아이랑 한 뿌리 심고 남은 것을 가져왔어, 물! 고모3이 외쳤다. 그는 바가지 가득 수돗물을 떠 고모3 앞에 받쳤다. 고모3은 난봉옥 뿌리를 훌훌 털어 개미와 지렁이를 골라내 햇살비단구렁이에게 주었다. 생김새가 둥글둥글해서 물새알이라고도 부르지. 고모3은 아버지의 낡은 구두 속에 가져온 흙을 채우고, 난봉옥을 심었다. 얘는 선인장 종류라 처음은 이렇게. 구두를 바가지 물에 띄웠다. 물이 구두에 스며들어 난봉옥의 뿌리를 적셨다. 낡은 구두는 고모3에게 훌륭한 화분이 되었다. 흙이 바짝 마르면 물을 줘, 구두 밑이 심하게 해져서 물이 잘 빠질 거야, 잘 키워보렴, 여름에는 꽃을 볼 수 있을 거야. 고모3은 아버지 구두에 심은 난봉옥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삼촌이자 사촌인 그 아이가 난봉옥에 물을 주며 꽃이 피기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출생의 아픔이 있는 그 아이는 꽃이 피자마자 할머니이자 엄마인 고모3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 알릴 것이다. 여러 호칭을 지닌 고모3은 가족 관계를 복잡하게 뒤흔드는 골칫덩어리지만, 그녀 역시 난봉옥의 꽃 앞에서만은 환히 웃을 것이다. 그는 고모3에게서 받은 아버지의 구두를 끌어안았다. 여름이 기다려졌다. 그는 꼭 꽃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모3이 불을 붙인 향이 전부 탔다. 그는 향을 하나 더 꺼냈다. 향에 불이 척, 붙자 그는 씩 웃었다. 고모3은 현관 거울을 보며 모자를 다듬어 썼다. 그는 고모3의 등 뒤에서 거울을 통해 똑똑히, 보았다. 순간 슬쩍 드러났다 사라진, 모자의 챙 그림자에 깔려 있던 고모3의 눈. 크고 시원한 눈매, 말간 광채가 고여 있는 그녀의 눈은 투시능력을 지닌 듯 어질고 총명한 빛으로 또렷했다. 미안해, 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깜빡했어, 화장터에서 줘야 했는데, 2000℃에서도 녹지 않았더군, 강철로 만들었나봐, 열쇠야. 작고 느린 목소리에, 결정적인 정보를 맨 마지막에 흘리는 고모3의 언어 습관. 그래서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귀를 쫑긋거려야 했던 그는, 얼떨결에 받아든 그것이 아버지 서재 열쇠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서재 열쇠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유아시절 그는 서재 한 켠에 마련된 작고 낮은 책상에서, ‘엄마’라는 낱말이 적힌 책을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자라는 동안, 서재는 아버지만의 유일한 공간이 되어갔다. 책들이 숨 막힐 정도로 가지런히 꽂혀 있겠지, 마호가니로 짠 책상도 있겠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방문이 밀리지 않아 한동안 끙끙대야 했다.

방문이 겨우 열린 이유를 알았다. 철제 발마사지기와 족탕기가 오동나무 방문을 막고 있었다. 그는 서재에 발을 들이자마자, 먹다 버린 사발면 용기를 밟았다. 발바닥을 털다 끈적거리는 무엇이 묻어나는 느낌에 손바닥을 들여다보니 시커먼 먼지는 물론이요, 가래침으로 의심되는 누런 진액이 원한 서린 피처럼 마르지 않은 채로 들러붙어 있었다. 그는 방바닥을 살폈다. 빵 봉지, 국물과 면이 꾸드러진 사발면, 누런 휴지, 빗물 젖은 양말, 깎다 튄 손톱, 발톱, 머리칼, 음모(陰毛), 살비듬, 먼지 덩어리. 책장에 꽂혀 있어야할 책들은 죄다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지린내와 곰팡내가 뒤섞인 그곳에 똥이 발견되어도 그럴 수 있지, 고개가 끄덕여질 판이었다. 벽지가 우글우글 일어난 이유 또한 습기가 아닌, 아버지가 오줌을 싸 버렸기 때문인 듯했다. 그는 머릿속 불가사리를 긁적였다. 불가사리에 내려앉은 곤충이 똥파리인지 나방인지 나비인지 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따라 들어온 햇살비단구렁이가 쓰레기들 속을 파고들었다. 위장술에 능한 벌레처럼, 쓰레기 더미에서 햇살비단구렁이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오감을 곤두세우고, 놈이 지나간 자리를 밟아나갔다. 배 터져 죽은 바퀴벌레와 과자 부스러기에 압사당한 개미들, 떼로 몰려다니는 파리들을 넘어 도착한 곳은, 아버지의 책상이었다.

책상 한가운데, 글씨들로 빼곡히 채워진 노트가 있었다. 어쩌다 씨 없는 수박 스티커를 바지에 붙이고 온 동네를 돌아다닌 사내, 辛라면을 푸라면이라고 발음한 아이, 할머니의 주름진 맨살을 보고 좀 다려 입으라고 조르는 할아버지, 최대 불황, 건망증, 입장 차이, 전문가와 문외한 등. 이 모든 것을 TV 뉴스에서 활용할 작정이었는지, 아버지의 노트에는 유머 관련 자료들이 가득했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아버지의 은밀한 농담들이 살고 있는 아지트였다. 아버지가 실수로 흘린 콧물과 침, 아버지가 모르는 사이 떨어진 피부 껍질, 허기진 입술에서 새어나온 라면 국물 따위들로 가꿔진 비밀의 정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서재 문을 꼭꼭 잠근 것은 자신만의 정원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순간, 그는 숨을 멈추었다. 책상 한 귀퉁이에 세워놓은 액자 속의 얼굴. 양손 각각에 빗과 가위를 쥐고 있는 여자, 어머니였다. 둥근 얼굴에 가는 눈과 낮은 코, 작은 입술과 넓고 휑한 이마, 전체적으로 반질반질한 조약돌과 비슷했다. 20대 중반의 앳되고 창백한 얼굴은 정글 탐험과 인연이 없어 보였고, 똬리를 틀어 올린 머리 또한 스님과는 멀었다. 억지로 사진기에 찍힌 사람처럼, 어머니의 미간 주름이 ‘川’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핼쑥한 뺨과 빈약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것은 별안간 자식을 아비에게 빼앗기고 오랜 시간 슬픔과 허탈에 지배당한 흔적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그가 어머니와 입맞춤을 하는 동안, 서재에서 빠져나온 햇살비단구렁이는 구불구불, 부엌 식탁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초록색 반달빗과 모가 누운 칫솔, 난봉옥이 뿌리를 내린 낡은 구두. 식탁 위에는 고모들이 찾아놓은 아버지의 물건들이 모여 있었다. 햇살비단구렁이는 그 물건들을 에워싸며, 몸을 ?자형으로 만들었다.


그는 아버지의 물건들을 끌어안고 마당으로 나왔다. 햇살비단구렁이가 그의 몸을 타고 올라 목을 둘둘 감았다. 그는 놈에게서 풍기는 풋내를 맡았다. 그는 성냥을 꺼냈다. 불이 붙은 성냥을 아버지의 물건들 위로 휙, 던졌다. 커다란 불꽃이 일어났다. 불길은 너울거리며 그 낡은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삼켰다. 그는 품에서 어머니 얼굴이 들어 있는 액자와 아버지 이름이 적힌 지방을 꺼냈다. 불길은 액자 유리를 깨버렸고, 지방을 순식간에 태웠다. 뜨거운 열기가 그에게로 몰아닥쳤다. 그의 얼굴이, 머릿속 불가사리가 붉어졌다.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사이좋게 맞잡고 걸어오는 꿈을 종종 꾸어왔다. 그런 꿈을 꾼 날은, 아버지 얼굴에서 침묵이 아닌 미소를 본 듯도 했다. 점점 격렬하게 넘실대는 불길 뒤로, 멀리 거실 창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고모들이, 어느새 거실 창 가까이 붙어 서 있었다. 고모들도, 아버지의 물건들이 불에 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고모들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점차 커졌다. 고모들의 얼굴 때문이다. 모두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얼굴, 이제 갓 성인식을 치른 그와 엇비슷한 나이를 지닌 얼굴. 그 얼굴들은,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옥상에서, 할머니의 입을 통해 밤새도록 들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고모들은 방긋,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머뭇거리다 그녀들을 향해, 손을 높이 쳐들어 반갑게 흔들었다. 그의 목을 감고 있던 햇살비단구렁이가 땅으로 내려왔다.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는 햇살비단구렁이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놈의 눈이 젖빛을 띤 푸른색으로 변했다. 놈이 죽은 표피를 벗어내기 시작했다.

탈피는 곧 끝날 것이다.《문장 웹진/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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