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눈빛



원종국




받지 말걸 그랬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쿨룩쿨룩 기침을 하는 동안 낡은 철제 침대가 삐걱삐걱 괴성을 지르며 흔들거렸다. 배가 고프고 목이 아팠다. 나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말하라고 위협하지도 않았으니까. 방금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오기 전까지는. 누군가 내 삶을 간섭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그 자체로 모든 걸 소유한 삶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랬는데, 느닷없이 걸려 온 전화 한 통은 내 먼 기억을, 눈앞으로 바짝 끌어다가 들이밀었다. 그러니, 휴대전화기가 드르르르 몸부림치며 책상 위를 아무리 맴돌았어도, 끝내 그걸 펼쳐서 오른쪽 턱밑에다 붙이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일까?

 

이틀 동안 나는 상상 속에서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컸을 때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도 했고, 장인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 발탁되기도 했다. 가족들을 모두 인솔해서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며, 한적한 지중해의 해변에 모여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 일곱…… 손가락을 꼽아가며 가족 구성원을 구성해 보기도 했다. 또, 영화를 찍어 대박이 나기도 했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대부분 퇴폐적이었고 때로 박진감이 넘쳤으며 때때로 세상을 발칵 뒤엎을 만큼 전위적이었다. 그렇게 사는 길도 분명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상상들이 끊길 때마다, 나는 배가 고프고 목이 몹시 아팠다. 이젠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지, 생각만 앞설 뿐 몸은 물먹은 솜처럼 자꾸만 침대 속으로 내려앉았다. 그럴 즈음,

휴대전화기가 드르르르 몸부림치며 책상 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저러다 곧 끊기겠지 싶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전화기의 진동은 집요하게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드르르― 드르르르르― 굴착기 소리 같은 진동은 잠깐씩 끊어졌다가도 삼사 초 뒤엔 여지없이 되풀이되었다. 머릿속으로 통화 버튼을 연신 눌러대고 있을 유리의 모습이 스쳤다. 그리고 전화를 냉큼 받지 못한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도. 그런데…… 막상 휴대전화기를 들고 보니, 발신번호는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네.” 

이틀 만에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온 소리는 몹시 푸석거렸다.

“나다, 박. 잘 지냈냐?”

“예? ……누구요? ……박……”

“박이라니까. ……박 상병.”

“아! 박 상병님!”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졌다. 제대를 한 게 90년대 중반이니까, 벌써 10년 저쪽의 일이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몇 달 간의 그것도 인연이라고 이렇게 전화를 걸어오다니. 느닷없이. 그리고 나는 슬쩍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쑥 걸려 온 전화라면 반갑기보단 십중팔구 귀찮은 용건일 게 뻔했으므로. 삶을 간섭하려 들거나, 어느 한 부분을 소유하겠다며 달려들지도 모르는…… 그리고, 그런데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낸 걸까, 의혹도 치밀었다.

“영화 잡지에서 봤어. 이십 자평. 세상 참 좁지? 유학은 잘 마치고 온 모양이데?”

“아, 네에…… 그럼요.”

단 스무 글자가 내 현재를 대변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나마 대부분 임시변통으로 끼어든 영화평이었을 텐데.

“시간 괜찮으면 얼굴 좀 보자. 할 얘기도 있고…….”

“……그러죠 뭐, 언제…….”

“오후 늦게 충무로에서 볼일이 있거든…… 겸사겸사 일곱 시에 거기서 보자. 헐리기 직전에 우리 칠십 미리로 <닥터 지바고> 봤던 극장…… 기억 나냐?”

“그런데…… 오늘은, 좀…… 다음에, 언제…….”

“다음은 무슨…… 연락 됐을 때 보는 게 좋지. 내가 늘 서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 학기에 내가 L고 발령을 받았잖아. 너 졸업한…….”

“아! 그래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거, 아직 진행형이냐? 영화 찍어서 혁명하겠다고 했던 말 말야. ……너 왜, 영화로 혁명하겠다고 그때…….”

“예? ……흐흐, 아! 그거요…….”

“그리고…… 언젠가 네가 말했던 친구 있잖아. 설마 그런 친구가 있으랴 싶었는데, 거기 가 보니까 정말로……….”

전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다행스럽게도. 휴대 전화기 배터리가 다되어 전원이 꺼진 것이었다. 그런데, 혁명? 혁명이라고? 그 얘길 내가 박 상병 앞에서도 떠벌렸었단 말인가? 그것도 군부대 안에서? 나는 잠깐 당황스러웠다. 혁명…… 게다가 해민이 얘긴 또 뭐지?


나는 한동안 침대 모서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 오래된 기억의 도미노들이 타다다다다다닥 엎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 모교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박 상병은 아마도 내 혁명 계획을 부대 내 무기고 앞에서 들었을 것이다. 무기고 외벽에 M16을 비스듬히 세워 놓고, 파이버를 깔고 앉아서. 나는 오른쪽 어깨에 M16 소총을 메고 무기고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배우, 감독, 카메라맨, 심지어는 조명 담당과 편집까지 원맨쇼로 했을 것이다. 박 상병은 주로 가만 앉아서 듣는 쪽이었다. 레퍼토리는 늘 비슷했지만 무기고 경계근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데는 나쁘지 않았다. 머리를 박고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고 돌았지만 경계근무 교대 시간은 언제나 멀고 멀었으므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두 사람이 함께 무기고 경계근무를 서는 날은 비교적 유쾌하게 지나갔다. 반년가량. 넉 달 선임이던 박 상병의 소집이 해제되는 그날까지.

그때 나는 지방 소도시 인근의 육군부대에서 경계사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보충역이었는데, 보충역 제도가 없어지던 마지막 해에 소집되었으므로 ‘마방(마지막 방위)’이라는 별칭이 따라붙기도 했다. 훗날 사회에 나왔을 때, 더러 나이 어린 여자애들이 “아하, 공익이셨구나!” 하며 아는 소리를 할라치면 나는 세상에 없는 치욕으로 여겨 게거품을 물며 정정해주곤 했었다. “어허, 이 아가씨가 인의예지, 네 가지가 없는 소릴 하고 있네! 우린 엄연히 국방부 소속이었던 데다, 매일 M16 소총 메고 철책근무를 섰단 말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둘레가 8킬로미터나 되는 육군부대의 외곽 초소에서 철책을 바라보며 매일 네댓 시간씩 경계근무를 섰던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M16의 탄창은 비어 있는 상태였고, 철책 바깥은 적진이나 해안선이 아닌 그저 조용한 농촌마을일 뿐이었다. 신병 교육 지원이 주 임무였던 그 부대는 사실 지켜야 할 것도 별로 없었다. 물론 이따금씩 버섯 따러 가는 농부나 성묘객들이 길을 잘못 들어 철책선 옆을 지나는 일이 없진 않았다. 그때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고구마, 고구마, 고구마’ 했다가는 고문관 소릴 들을 게 뻔했으므로, 슬쩍 길을 일러주고 나서 모르쇠를 잡는 게 ‘보초의 일반수칙’에는 적혀 있지 않은 주된 임무였다. 그나마 외곽 초소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백사장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줍는 것만큼이나 흔치 않은 일이었다. 대개 트로트 메들리를 서너 번 되풀이하다 제풀에 지쳐 파이버를 깔고 앉아 꾸벅꾸벅 먼산바라기를 하거나 방아깨비 개구리 잠자리를 잡아다 놓고 노닥거리며 다음 근무자를 기다리는 게 주된 일상이었다. 그런 일상에서, 수시로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옆에서 두 사람이 함께 경계근무를 서는 무기고 근무는 고되기는 해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눈비가 오거나 부대에 행사가 있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대개 오 분에 한 대꼴로 차가 지나다녔으므로 그때마다 근무자는 경계총 자세를 하고 있다가 차가 무기고 앞을 지나칠 때 ‘충―성’을 외치며 받들어총을 붙여 줘야 했다. 더러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지나가는 일직 사령이 있을 때는 경례가 좀더 길었다. ‘충―성, 근무 중…… 충―성, 계속 근무.’ 물론 영관급이 지나칠 때는 가시는 방향과 기분 상태도 신속하게 당번병에게 알려 줘야 했다. 역시 ‘보초의 일반수칙’에는 적혀 있지 않은 주요 임무였다.

아무려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늘 ‘칼근무’를 서는 모범 사병들로 보였겠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 차나 사람의 기척을 듣고 경계 자세를 취하는 데는 불과 일이 초면 충분했으므로 고참병은 주로 노닥거리고 앉았다가 신참이 보내주는 신호를 듣고서야 일어나 대강 자세를 맞춰주곤 했다. 그러므로, 그 밖의 시간들은 잡담을 나누기에 몹시 좋았다. 나는 주로 영화 얘기를 했고, 사범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다 입대한 박 상병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시대 배경이나 정황의 오류 같은 걸 바로잡아주곤 했다. 박 상병은 오손 웰즈니 스탠리 큐브릭이니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명감독의 이름도 처음 듣는 눈치였다. 요즘엔 영화가 워낙 일반화되고 비디오나 DVD가 흔해져서 전공자 뺨치는 영화광들이 많아졌지만 그땐 <서편제> 100만 관객 돌파도 꿈만 같던 시절이었다. 나는 유명한 영화 장면이나 촬영 테크닉들을 마치 내가 직접 찍은 것처럼 과장해서 떠벌이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민망한 일이지만.

어쨌든 내 얘기의 결론은 항상 영화로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계획은 대강 이런 거였다. 혁명을 구상하는 중에도 틈틈이 차들이 지나갔으므로 얘기는 자주 끊길 수밖에 없었다.

“난 말이죠, 문화적으로 혁명을 할 겁니다. 병신 새끼들마냥, 나라 지키라고 내준 군대로 쿠데타를 일으키진 않아요. ……두고 보십시오. 군사혁명에 대한 문화혁명이 얼마나 멋지고 치밀하게 일어나는지. 작가주의 영화는 나중에 천천히 만들고, 차 오는데요, ……충―성! 우선 쌈빡한 상업영화 몇 편으로 떼돈을 벌 겁니다. 그 돈으로 의식 있는 정치 지망생 몇 명을 국회의원으로 키우는 거죠. 그런 다음 당을 하나 만들어서 조금씩 세를 불려 나가는 겁니다. 국민들도 생각이 있다면 표를 찍어줄 테니까요. 그러다가, 어! 일직 사령 옵니다. ……충―성, 근무 중! ……예, 계십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충―성, 계속 근무!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그다음엔 당연히 개헌을 해서라도 그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야죠. 놈들이 아직도 버젓이 살아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차 옵니다. ……충―성! 그다음엔 러시안 룰렛으로 처단을 해야죠. 살 확률이 그래도 육분의 일이나 있다는 건 대단한 자비 아닐까요? ……뭐, 그래도 운이 좋은 놈들은…… 살려 주죠 뭐, 까짓 거! 어, 어! 이일빵빵…… 여, 연대장 떴습니다. ……추―웅 성!”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때, 박 상병은 내 혁명 구상이 계란으로 황소 만드는 이야기하고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얘기했었다. 계란을 품어 병아리를 까고 병아리를 키워 장닭을 만든 뒤에 새끼 돼지와 바꾼다. 이 돼지를 잘 먹여 키우면 금세 커서 새끼들을 여러 마리 낳을 테고 그것들을 한꺼번에 팔면 중송아지를 살 수 있다. 이 송아지를 여름내 열심히 꼴을 베어다 먹이면 가을엔 듬직한 황소 테가 날 것이다,라는 바로 그 이야기.

젠장, 말귀도 못 알아듣는 사람한테 내가 너무 장황한 얘기를 들려 줬던 것이다. 멀쩡한 남의 집 황소를 강제로 끌고 가는 소도둑들이 활개 치는 마당에. 그런데…… 내 친구 해민이 얘긴 대체 뭐하러 꺼냈던 걸까?


내 운명을 바꿔 놓은 첫 번째 눈빛은 불꽃을 담고 있었다. 봄날 소나무 숲 사이사이로 번져 오르는 진달래꽃처럼, 그러나 한여름 수학 시간에 졸다가 바라본 운동장의 신기루처럼 강렬한 빛. 내 눈동자에 엉긴 그 빛의 타래는 눈을 감은 뒤까지도 망막에 남아 오래도록 불덩이로 일렁거렸다.

비평준화 지역인 내 고향에서 L고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고였다. 그리고 나는 그 학교 안에서도 제법 범생이 축에 드는 학생이었으니 늘 책가방만 끼고 집 학교 집 학교 했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내게 해민이는 분명 별종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다른 아이들이 『성문종합영어』와 『정석수학』을 성서처럼 들고 다니던 때, 녀석은 제목도 못 들어본 사회과학 서적들만 품고 살았으니까.

언젠가 반마다 돌던 무협지와 포르노 테이프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책상과 가방을 학생주임에게 양도하고 복도로 쫓겨나야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해민이는 다른 몇몇 아이들에 섞여 교무실에 불려 갔다가 대걸레 자루로 서른 대를 맞고 반장 등에 업혀서 돌아왔다. 녀석의 가방 속에서 『전태일 평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해민이는 그런 녀석이었다. 음악이나 교련, 미술 시간이 국영수를 위한 자율학습 시간으로 바뀌었을 때, 그리고 뒷자리의 껄렁대는 놈들이 학교 앞 만화방에서 빌려 온 빨간책을 돌려 보는 동안,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뻘건 책을 눈알이 시뻘게지도록 들여다보는. 하지만 우리는 그때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담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정말 우연한 기회에 해민이의 자취방에 들렀을 때 나는 그와의 공부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취방 한쪽 면에 잔뜩 쌓인 책들이라니. 대학생들이나 볼 만한. 그 책들을 들춰 보며 나는 내가 배우고 공부한 내용들이 어쩌면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작했던 듯하다. 그리고 나 역시 해민이의 눈빛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민이는 계속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애초에 가난했던 집안은 소값 파동과 그에 따른 빚 독촉의 여파를 견뎌내기 어려웠다. 그런 사정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2학년 1학기를 마친 뒤 휴학을 한 해민이는 서울 지하철에서 신문을 판다고도 했고, 수원 어딘가에서 중국음식 배달을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해, 참교육을 실현하겠다며 전교조 운동을 하던 선생님 다섯 명이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나마 해민이를 챙겨 주던 몇 안 되는 선생님들은, 교문 밖에서 서성이다 차츰 우리 등굣길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우리는 고3이 되었다.

그리고,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봄날, 우리는 교장 선생의 지루한 애국조회 훈시를 견뎌내고 있었다. 절정에 달한 개나리가 운동장을 돌아가며 노란 띠를 둘렀던 그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학생들의 시야 언저리로 불덩이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말인가를 외쳐대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내 귀에는 웅웅거리는 이명 소리로만 들려왔다. 교장의 훈시마저 멎은 운동장은 노란색 개나리로 가득한 채 불꽃으로 일렁였다. 해민이는 그렇게 교장이 서 있는 연단 앞까지 뛰어와서 고꾸라졌다. 선생 몇이 양복을 벗어 불을 껐고, 뒤늦게 양동이로 물이 들이부어질 때까지 해민이는 새카맣게 그을린 몸뚱어리로 연단 앞에서 간신히 꼼지락거렸다. 지독한 새끼…… 누군가 말을 꺼내다 말고 들이마셨다. 필경 교련 선생일 터였다. 내가 곁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을 때 해민이의 눈에서 눈물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그 눈빛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눈물 속에서 이글거리던 용암 같은 눈빛.

녀석은 일그러진 입술을 달싹이며 간신히 중얼거렸다.

그, 그 선생님은 내게 ……어떻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유일한 분이에요. ……그분을 학교로 돌아… 돌아오게…… 제발……

선생들은 아이들을 교실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개들이 양 떼를 우리 속에 몰아넣듯이. 해민이의 손을 쥐고 있던 내 목덜미도 누군가에게 낚아채 끌어올려졌다. 그러면서 나는 해민이에게 약속했었다.

네가 하려던 걸 내가 해 줄게. 내 평생을 걸고, 네 원수를 갚아줄게. 반드시.


배터리를 갈아 끼웠지만 박 상병의 전화는 다시 걸려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미 나와 일곱 시에 약속이 된 걸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냉장고 속에는 먹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물 한모금조차. 녀석은 문이 열리자마자 불을 켜고 자기 입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소상히 보여 주었다. 고춧가루만 덕지덕지 묻은 찌개 그릇, 상했을 게 분명한 날계란 2개, 슈퍼마켓에서 산 포기김치 반 쪼가리, 바짝 말라버린 참치 통조림…… 캔 맥주가 하나쯤 남았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나는 탁 소리가 나도록 녀석의 입을 닫았다. 순간 오래 전에 적(跡)을 놓은 치과대학 1학년 치구강학(齒口腔學) 시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로의 입을 벌리고 관찰하던 내내, 사실 나는 혁명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평생 남의 입속만 들여다본다면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혁명을 위한 정치자금을 만들 순 없지. 안 그런가? 난 영화를 찍어야 되는데…… 한꺼번에 정치자금을 긁어모으고, 내 생각을 사방팔방에 알릴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매체.

영화학으로 전공을 바꾸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치과의원 개업의가 되어 있을 터였다. 지금쯤이면 만오천여 명의 입을 들여다보고, 팔천여 개의 충치를 뽑았겠지. 더러 선을 보러 나갔다가도 이빨만 쳐다보다가 돌아왔을 거야. 남의 입속에만 관심이 있는 어떤 사람도 혁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을 테니까.

비릿한 수돗물만 한 컵 들이켜고 나서 나는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제작자와의 두 번째 미팅이 며칠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무식하게도, 제작자는 내게 저예산 액션 드라마를 원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액션이 적당히 가미되었으면서도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슴 찡한 휴먼 드라마를, 적은 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시나리오. 병신 새끼가 아주 육갑을 해요, 소리가 목구멍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일급 스타들을 캐스팅하고도 눈알이 휙휙 돌아가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한 블록버스터들이 우후죽순처럼 개봉되는 마당에 저예산 액션 드라마라니…… 모든 게 무명의 설움 탓이었다. 빨리 제대로 입봉을 해야 할 텐데…….

전원을 켜자 노트북이 울리는 위잉― 소리가 미세한 진동과 함께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그 소리는 왼쪽 귀에서 늘 울려대는 이명 소리와 너무도 흡사했다. 그리고 유리의 눈빛. 액정이 밝아지자 노트북 바탕화면에 올려둔 유리의 사진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십 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제대 직후의 겨울 어느 날, 서울타워 팔각정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에서 반짝이는, 뭔가 다른 눈빛. 십대 소녀처럼 맑으면서도 삼십대 여인의 관능미를 품고 있는 듯한, 아찔한, 모든 걸 빨아들일 것 같은, 여전한 눈빛.

“이거 지우면 죽음이야! 알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지난겨울, 어떻게 알고 찾아왔던지 유리는 잔뜩 취한 채로 내 원룸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유리는 블로그에서 자기 사진을 다운받아 바탕화면에 깔아놓더니 주먹을 불끈 쥐여보였었다. 한 번만 더 도망을 가면, 그땐 정말 죽음이야! 알지? 하는 표정으로.

그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아이러니 같았다. 그 눈빛을 피해 군대로 도망갔다가 제대하자마자 만나서 찍었던 사진을, 이번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아 놓게 되다니…… 그건 일종의 상징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야 결코 그녀를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이미 여러 번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결별을 선언하기는 했었다.

“이젠 제발 내 시야에서 벗어나 줄 수 없겠니? 우린 행복할 수 없어, 절대로. 너도 잘 알잖아?”

그때 그녀는 웃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모든 걸 빨아들일 것 같은 그 눈빛으로 내 눈동자를 거머쥔 채 속삭였다.

“또 그놈의 혁명 때문에? ……날 가져. 그게 혁명이니까. 자, 이리 오라니까.”

나는 윈도우즈의 바탕화면 설정 옵션에 들어가 (없음)을 클릭했다. 그 사진이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한 작업은 조금도 진척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유리는 일 센티미터 두께도 못 되는 노트북 액정의 암흑 공간 속으로 간단없이 사라졌다.

파워를 끈 나는 방 한가운데를 왔다 갔다 걸었다. 한참 동안. 한 손은 겨드랑이에, 한 손은 턱을 받친 채로. 저예산 액션 드라마…… 저예산 액션 드라마라…… 그러는 동안 현관의 센서등에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반복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휴대 전화기가 다시 드르르르 진동했다. 그리고 봉투 모양의 아이콘. 박 상병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유리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시나리온 끝냈어? 난 괜찮아. 용감하니까^^v 7시쯤 거기서 보자. 그리고 참, 아빠가 자리 좀 만들라던데~ 그건 이따 얘기해!!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 노트북 컴퓨터를 접은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이나 노트북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벌써 일주일째 나는 한 글자도 입력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다음번 미팅에 나간다면 제작자는 나와의 영화 작업을 재고하거나 공동 시나리오를 적극 고려하게 될 게 뻔했다. 펜션을 잡아 놓고 열흘쯤 합숙을 하게 된다면, 내 시나리오는 누구의 작품인지도 알아볼 수 없는 넝마 조각이 되어 버릴 터였다.

아! 그러니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내 운명을 바꿔 놓은 두 번째 눈빛은 물빛이었다. 불길 같던 첫 번째 눈빛을 수면 아래 감춘 채로 투명한, 그러나 온몸을 오그라들게 만들 만큼 서늘한 눈빛을 발산하는, 물빛. 그날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온몸이 부르르 떨려 오곤 했다.

부모님과 담임선생, 그리고 나중에 가세한 교장 선생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S대 입학 인원수를 일 명 늘리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당시 S대 입학생 숫자는 고등학교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그러나 입학을 하긴 했지만, 결국 나는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두었고, 다음 해에는 영화학과가 있는 다른 학교로 재입학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 봄, 거기서 두 번째 눈빛을 만났던 것이다. 이글거리는 캠프파이어 건너편에 앉아 손뼉을 치고 있던 새내기 여학생을.

내 눈은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녀의 눈빛 속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눈망울 가득 모닥불 빛을 담고 있는. 얼핏 보았더라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깊고 맑은 눈동자였다. 그 여학생의 눈빛 속에는, 믿을 수 없게도, 해민이가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개나리, 불꽃, 노란색, 그리고 문화적 혁명. 아닐 거라고, 그럴 리 없다고 머릴 흔들어댔지만 그녀의 눈빛은 집요하게 일렁이며 내 시야로 날아들었다. 대학생활의 낭만에 푹 젖어 있던 내게, 그 눈빛은 삼 년 동안의 공백을 너끈히 뛰어넘을 힘을 불어넣었다. ‘네가 하려던 걸 내가 해 줄게.’ 빌어먹을……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선뜻 했단 말인가?

그건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리의 눈빛 속에는 해민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들어 있었는데, 그 물빛은 또한 한순간 불길을 잠재워 버리고야 말 거라는 예감이 들게 만들었다. 해민이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유리를 향한 욕망도 결코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변명을 늘어 놓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리 앞에선 해민이를 앞세워 사랑의 감정을 숨기려 들었고, 해민이와의 약속을 떠올릴 때면 자꾸만 유리를 내세워 현실과 타협을 하려고 들었다. 점점 더 그런 마음은 강해졌다. 나도 모르게. 그건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리는 아무하고나 쉽게 친해졌고, 남자든 여자든 거리낌 없이 잠자리를 같이 하는 그런 아이였다. 연기 연습이나 야외 촬영 같은 스케줄이 많았던 우리 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자유분방한 여자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자유분방함이 싫지 않았다. 그해 가을, 잔디밭에 누워 자고 있는 유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자유분방함이 결코 나와 무관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걸 철저하게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나는 그녀가 쳐놓은 그물에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단지 소나무 그늘 아래에, 적당히 취한 것처럼, 적당히 섹시한 자세로, 그리고 두 번 융기한 곡선의 가슴 선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하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쓰리도록 붉은 노을이 거기 걸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누운 자세 그대로 옆에 누워 가슴을 밀착시켰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그녀의 젖가슴은 똬리를 튼 뱀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욕망의 화신처럼…… 그녀는 나를 잡아당겼다. 역시, 내가 옆에 있던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유혹하기 위해서?! 그러나 길진 않았다. 나는 혼자서, 바지 속에다 사정을 해 버렸고, 미친 듯 일어나 학교를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병무청에 입영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군대는 유리의 눈빛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제대하고 복학을 했을 때, 역시 한 해 휴학을 했던 유리는 되레 같은 학년이 되어 강의실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불길과 물빛은 여전히 상극을 이루며 내 주위에서 맴돌았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 사이에서 내 갈지자걸음은 계속 갈팡질팡했다. 영화 작업도 지지부진하던 어느 때부터였던가, 나는 또다시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졸업을 얼마 안 남겨두었던 겨울날, 나는 꽃다발과 생일 선물을 들고 유리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광고대행사에 취직해 있던 유리는 새벽 두 시가 가까워서야 비칠비칠 집 앞으로 걸어왔다. 이미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우리는 두 블록이나 걸어가 맥주 캔을 사들고 여관에 들어갔다. 유리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맥주를 땄고, 나는 속으로 똑같은 말을 되뇌며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난 너와 결혼할 수 없어.’

“내 생일은 지나 버렸는데…… 어쩌지? 선배.”

“뭐 어때, 아직 안 잤으니까 오늘이야. 지금이라도…….”

“난 왜 이렇게 챙길 사람들이 많은 거야. ……흐흐,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제야 만나고. 그치? 신경질 나 죽겠어.”

“괜찮아. 난, 그냥, 할 얘기가 있어서…….”

“미안해. ……선배, 나 먼저 샤워할까?”

“아니, 샤워는…… 그럴 필요 없어. 난…… 할 얘기만 하구…….”

“…….”

유리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을 테지만, 나는 그녀의 눈빛을 피해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

“후! 후훗. 또 그 소리야. 그만 만나자구? 혁명해야 되니까? ……선배, 무슨 혁명 중독증이야? 아님 혁명 귀신이라도 붙은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구. 난 어차피 널 만족시킬 수 없을 테니까…….”

“만족? 선배…… 혹시, 임포였단 말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혁명가의 아내는 힘들 수밖에 없으니까. 또 혁명이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고.”

“그깟 혁명, 안 하면 되잖아. 한 번만 더 혁명 얘기하면, 목을 졸라 버릴 거야.”

“너하고 결혼을 한다면…… 난, 그냥 평범한 월급쟁이가 될 거야. 아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영화 찍어. 돈은 우리 아빠가 주실 거야. ……아! 우리 아빠가 결혼 반대하신다구 그러는구나. 남자가 쫀쫀하게…….”

“…….”

“우리 아빤 내가 책임질 테니까, 걱정 마. ……아! 우리, 오늘 밤…… 애 가져 버릴까? 그럼 아빠도 어쩔 수 없을 거 아냐. 어때?”

“너, 미쳤니?”

유리는 내 말을 끊어버리곤,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유리가 이끄는 대로 침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날 가져. 그게 혁명이니까. 자, 이리 오라니까.”

아! 혁명, 영화, 섹스, 혁명, 영화, 그리고 섹……스. 나는 눈을 꽉 감은 채 알몸의 그녀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여관 문을 걷어차고 나와 어느새 새벽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눈빛.


그러니, 해민아! 내가 구상하는 혁명은 점점 유치해지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혁명은 어떻게 하는 거니? 정말 영화를 찍어서 대박이 나면 혁명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될까? 얼마 전에 듣자니까 그해 해직되었던 선생님 중에 한 분은 대학교 교수님이 되셨고, 한 분은 학원을 차려서 돈을 엄청 버셨다고 하더라. 그래, 네가 제일 많이 따랐던 선생님은 복직하셔서 지금은 우리 모교에 교감 선생님으로 계시지. 담배 피우는 녀석들을 어찌나 잘 잡아내시는지 별명이 흡연측정기라고 하더라. 웃기지 않니? ……어떻게 하면 혁명적인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그냥 나오기가 뭣해 나는 이틀 만에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고, 그리고 말끔하게 샤워도 했다. 침대 위에 붙어 있던 나무늘보에서 털 없는 원숭이로 변신을 하는 순간.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 뒤 헤어 젤을 바르는 순간엔 여지없이 사회적 동물로, 도구의 인간으로 진화를 했다.

그 해민인지 해파린지 하는 놈은 제발 좀 잊을 수 없어? 언제까지 그 자식한테 얽매여 살 거야. 이젠 선배 인생에도 투자를 할 때다 됐잖아. 그 자식이 죽은 지가 벌써 몇 년이야? 후훗. 또 그 소리 할 거야? 내 눈빛 속에 그 자식이 들어 있다구? 정신 차려. 이렇게 사는 건 남의 인생에 빌붙는 거지, 제대로 사는 거라고 할 수 없어. 이 바보야!

나는 가볍게 휘파람까지 불었다. 얼굴을 끌어당기던 노폐물들이 제거되고 나니 한결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막 오후 다섯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휴대 전화기부터 확인했다. 역시 하나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내 메시지 받았지? 아빠가 오늘 저녁 사주신대. 선배도 데리구 나오래^^* 나 잘했지? 울회사 앞으로 6시 반까지 나와. 같이 가게. 알았지?


노트북 화면에는 뫼비우스의 띠가 나와 연신 띠를 풀어헤쳤다가 오므렸다가 뒤집히기도 하고 몇 겹으로 꼬이기도 했다. 나는 옷장에서 양복과 넥타이를 꺼냈다. 몇 달 만에 입어 보는 양복은 그런 대로 몸에 착 달라붙는 것이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문밖의 세상 역시 사흘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무에 새순도 제법 자라나 있고, 도로 옆 화단으로는 군데군데 꽃도 피어 있었다.

길가로는 개나리가 지고 이제 제법 푸릇푸릇한 새순이 나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깊게 한번 심호흡을 했다. 아……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십칠 년 전 이맘때의 한 장면과 마주치고 말았다.


해민이의 장의차는 기어이 학교에 들어올 수 없었다. 병원에서 몇 번인가를 까물어쳤다가 깨어나곤 했던 해민이가 마지막으로 정신을 놓기 전에 한 말은 “내가 죽거든 학교를 한번 둘러보게 해 주세요.” 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 교문은 종일토록 굳게 닫혀 있었고, 교장 선생을 위시로 한 선생들의 제지로 끝내 해민이의 장의차는 교문 밖에서 꼼짝도 못하고 한 시간 넘게 서 있어야 했다.

우리는 모두 교실에 앉아 자율학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장의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트기로 약속했던 녀석들 중 단 한 명도 운동장으로 나서는 놈은 없었다. 아, 그런데……

그때 소리가 들려왔다. 이웃한 여고의 학생 수십 명이 우리 학교 운동장 개나리 나무 너머로 몰려와 있었다. 플래카드도 만들어 왔는지 노란 물결 위로 검은 천이 오르락내리락했고, 뭐라고 뭐라고 외쳐대는 새된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우리 교실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창가로 몰려가 운동장 너머를 쳐다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학생들의 구호는 우리에 대한 조롱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희들도 사내냐, 그까짓 거 떼 버려라. 떼 버려라, 떼 버려라. 그러나 그때까지도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빌어먹을, 에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

나는 창문을 타넘어 운동장을 질주했다. 또 한 명이 내 뒤를 따라서 뛰어오는 듯했지만 운동장 뒤로는 모든 게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여학생들의 함성 소리만 노랗게 들려왔다. 그러나 내가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해민이가 아니라, 교련 선생이었다. 그 우악스런 손아귀. 단 한 방에 나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 전에 시계를 보니, 막 여섯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가만,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빌딩숲 사이로 하얀 낮달이 풍덩 빠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낮달을 향한 뒤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접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접힌 손가락 세 개를 휙 훑어 내렸다. 이쯤 되자 나는 무척 쾌활해졌다.

“자, 게임 하나 할까? 러시안 룰렛. 당신이 죽을 확률은 육분의 오야. 물론 살 확률도 육분의 일이나 되지. 그만한 위험부담도 없이 독재정권에 빌붙어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건 아니겠지? 이제, 당신 때문에 죽은 죄 없는 사람들에게 사죄하러 가셔야지? ……딸깍, ………팡.

훗, 억세게 재수 없는 놈. 육분의 일이나 되는 확률을 피해 가다니…… 하하하, 내 리볼버는 공이가 뇌관을 건드리는 순간 오르가슴을 느낀다네. 보라구, 이렇게 떨고 있잖아. 바람에 흔들리듯이.

푸흐, 카메라는 왼쪽으로 천천히 돌다가 탄환이 발사되기 직전에 정지. 발사되면 탄환을 따라 줌-인하다가 피사체의 정수리를 통과하는 순간 암전. 그 다음에 타이틀 쾅 찍히고 나서 경쾌한 배경음악…… 화면 오버랩 되면서 음악은 정지. 원형 탄창 돌리는 주인공 모습 나가면서 대사, 내 리볼버는 공이가 뇌관을 건드리는 순간 오르가슴을 느낀다네. 보라구…… 하하하, 어때? 오프닝 죽이지?” 문장 웹진/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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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