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입덧

 

오래된 입덧



김서령




나는 또 냉장고 앞에서 헉헉대고 있었다. 냉동실 맨 아래 서랍에는 국물을 내는 멸치가 봉지째 들어 있었다. 허겁지겁 봉지를 열고 코를 박았다. 굵은 멸치에서 비린내가 울컥 올라왔다. 킁킁. 아예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냄새를 들이마셨지만 한번 달아오른 가슴께는 여간해서 잠잠해지질 않았다. 이런 냄새가 아니야. 나는 봉지 속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온종일 아무 것도 삼키지 못한 속이 헛헛했다.

 

 

“무어라도 좀 먹어야 할 텐데. 이러다 정말 사람 잡겠군.”

남편도 내 옆에 앉았다. 달걀옷 입혀 지진 두부 한 모와 함께 저녁밥 한 공기를 혼자 말끔히 비운 것이 새삼 미안해졌는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짠했다. 나는 봉지에서 얼굴을 빼낸 후 숨을 몰아쉬었다. 첫아이 지을이를 뱃속에 넣고 있을 때에도 비린내가 당기기는 했지만 이럴 정도는 아니었다. 두 번째 임신은 여러모로 지을이 때보다 고되었다.

은행 업무라는 것이 점심시간을 따로 한 시간씩 내어줄 리 만무해서 행원들은 지하 구내식당에서 재빨리 먹고 들어와 동료들과 교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식사시간은 늘 이십 분 안팎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은행 뒤편의 식당가를 구석구석 헤매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꽁치구이집, 횟밥집, 갈치조림집을 그냥 지나쳤다. 만족할 수 없는 냄새. 바람 몰아치듯 위장을 확 휘저어놓을 만한 비린내를 찾느라 시종 걸음이 바빴다. 계절에도 맞지 않는 계란빵 노점을 지나칠 때엔 그만 질겁을 하고 달아났다. 노란 물 뚝뚝 듣는 멍게살이라도 한 점 질겅질겅 씹어먹고 싶었지만 대낮의 실내포장집은 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결국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묽은 커피 한 잔을 천이백원에 샀지만 단단히 토라진 속은 커피 따위를 삼켜줄 만큼 낙낙하지 않아서 나는 또 점심을 걸렀다.

“자정 넘어 찹쌀순대 사러 간다는 남편들이 부럽군. 그런 거야 어떻게든 문 두들기면 사올 수 있잖아.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도 높은 비린내라니. 아아. 내가 이렇게 무능한 남자일 줄이야.”

급기야 멸치 몇 마리를 입에 넣고 씹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나도 내가 어이없어 웃음이 실실 샜다. 남편은 나를 따라 멸치 한 마리를 입에 넣었다가 퉤퉤, 뱉어버렸다.


은행에는 반나절 휴가를 낸 참이었다. 지을이 담임선생님은 벌써 두 번이나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더는 모르쇠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젊은 여선생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타일렀다.

“여덟 살인데, 김치도 한 조각 안 먹으려 들어요. 지난번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고춧가루 한 점 묻은 거라면 손도 안 대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일일이 김치를 물에 씻어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급식시간마다 맨밥만 대충 먹으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지을이가, 아무래도 또래들보다 키가 좀 작죠? 어머님께서 신경을 많이 쓰셔야 할 것 같아요.”

학교를 나오면서 나는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엇보다도 또래들보다 키가 작다는 말이 가슴에 턱 걸렸다.

“뭘 어쩌자는 거야? 지을이 저러다가 키가 조막만한 채로 자라지도 않으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 장서방 키 큰 거 몰라? 그 말짱한 유전자 받고도 애가 딱 똥자루만 해지면 나중에 엄마 미안해서 어쩌려고 그래?”

나는 택시를 기다리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아파트 대출금을 갚으려면 은행을 그만둘 수 없는 처지여서 나는 지을이를 낳자마자 엄마에게 맡겼다. 어설프게 아이를 방바닥에 굴려가며 막 키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앞집 아기 엄마는 한달에 팔십만원이나 주어가며 돌볼 사람을 구했지만 온종일 바닥에 눕혀만 놓는 바람에 아기 뒤통수가 납작 주저앉았다. 나는 퇴근길, 친정에 들를 때마다 지을이의 뒤통수부터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소리나 빽빽 질러댈 거면 데려가. 네 새끼, 이제 네가 알아서 키워!”

엄마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좀 져주면 좋으련만 환갑을 코앞에 두고서도 엄마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나는 분이 덜 풀린 채로 택시를 잡아탔다. 다시 은행에 돌아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집으로 향했다. 지을이 담임선생님에게 다시 불려가지 않으려면 엄마 버릇부터 고칠 필요가 있었다.

지을이의 편식은 모조리 엄마 탓이었다. 지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우리 집 밥상에서 고추장이 사라졌다. 엄마의 아픈 구석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 역시도 동네 슈퍼마켓에서 빨간 고추장 통만 보아도 마음 한쪽이 묵지근해졌으니 말이다. 어릴 적부터 붉게 양념한 음식을 먹어본 적 없는 지을이는 매운 맛을 몰라 아직 김치 먹는 법도 배우질 못했다. 달걀찜, 구운 햄, 묽은 된장국 정도가 지을이의 식단 전부였다. 물론 온 동네 여덟 살짜리들이 다 그러하듯 버섯볶음이나 콩나물무침 등은 입에 넣어보지도 않고 지레 투정질을 했다.

엄마는 안방에 누워 있었다. 어깻죽지에 큼직한 파스 한 장도 붙였다. 몸도 쑤시니, 공연히 부아 돋게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일 테다. 텔레비전에서는 몇 년은 묵은 재방송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비죽비죽 바닥에 앉아 채널을 돌리자니 놔두란다. 옅게 코를 골던 사람이 채널 돌리는 것에는 저리 민감하게 군다.

“좀 일어나 봐. 나, 지금 학교 다녀오는 길이란 말예요.”

엄마는 대꾸가 없다. 지을이는 피아노 학원에 간 모양이었다. 엄마가 지을이를 얼마나 야무지게 키우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직접 서점에 데리고 가서 책을 고르게 했고 쌀이며 채소는 유기농으로만 살뜰히 골라 먹였다. 패스트푸드는 나쁜 것이라고 어린 지을이에게 얼마나 되뇌어 놓았는지 텔레비전에서 햄버거 광고만 나와도 지을이는 도리어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엄마, 저건 정크푸드야. 저런 걸 먹으면 뚱뚱해지고 키도 안 커.”

“이봐요, 장지을. 너처럼 김치도 안 먹고 고추장도 안 먹는 애들은 더 키가 안 커.”

지을이는 내 말에 못 들은 척 딴짓만 했다. 그럴 때는 영락없는 제 할머니 판박이다. 얄미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이 흘겨졌다.

“매운 음식이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뭐. 너무 걱정하지 마.”

남편은 바짝 예민해진 나를 달래려 들었다. 지을이를 맡기는 대신 우리 부부는 엄마에게 매달 오십만원을 드렸다. 그 돈은 거의 지을이 몫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엄마는 지을이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을 만들어 매달 십만원씩 꼬박꼬박 넣었고, 피아노학원비와 영어학원비를 대신 치러주었다. 엄마의 눈썰미 덕에 지을이의 입성도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귀티가 났다. 남편은 그런 점에서 몹시 만족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우리 부부가 엄마에게 지을이의 편식을 대놓고 나무라지 않았던 건 오빠 때문이었다. 이미 십년도 넘은 오래 전 일이었지만 엄마는 아직 고스란히 오빠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니, 정말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엄마가 품에 넣고 있는 건 오빠가 아니라 오백그램짜리 붉은 고추장 통일는지도 몰랐다.


공군 제대를 한 오빠는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백화점의 겨울 세일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엄마는 오빠의 여행을 반대했다.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에 말쑥한 옷들을 좀 사야 한다고 내내 벼르던 참이었다. 오빠는 계속 친구들과의 낚시를 고집했고 엄마는 약간 짜증을 내긴 했지만 이년 간의 군 생활 동안 그다지 살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았기에, 대충 눈짐작으로 옷을 고르기로 마음먹고 오빠를 보내주었다. 오빠는 아버지의 낚싯대를 빌려 가방을 챙겼고 강원도로 떠났다. 이박삼일의 짧은 여정이었다. 나는 오빠 대신 엄마와 백화점을 돌았다. 바지 세 벌과 셔츠 두 벌, 그리고 가죽재킷을 골랐다. 가죽재킷은 두 가지의 디자인이 모두 엄마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엄마는 삼십분 넘게 매장에서 고시랑고시랑 잔소리를 했다.

“입혀 보고 사면 좀 좋아. 이 추운 날, 낚시는 무슨. 간장게장도 딱 맛있게 익어서 지금 먹여야 하는데.”

“오면 먹으라 그래. 내가 손도 안 댈 테니까 간장게장 한 통 다 오빠 먹이라구.”

다른 집과 달리 우리집 간장게장은 고춧가루가 송송 뿌려진 것이었다. 끓인 간장을 식혀 산 게에다 부으면서 고춧가루를 같이 풀어 넣으면 매콤달콤하게 게장이 맛깔났다. 엄마가 아들과 딸을 두고 편애했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빠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나는 집 근처 지방대학에 다니다 보니 얼굴을 덜 보는 자식이 더 애틋해서 그런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쯤 오빠가 집에 올 때마다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새벽 어시장에 나가 물횟감을 사왔고 아직 잠이 덜 깬 나를 닦달해 마늘을 찧게 했다. 엄마가 깻잎과 양파를 써는 동안 아버지는 마당 수돗가에서 회를 떴다. 나는 마루문을 활짝 열어놓고 신문을 펼쳐둔 다음 마늘에 반 신문에 반, 눈을 주어 가며 콩콩 절구질을 했다.

숭어와 우럭, 오징어가 섞인 회를 각자 오목한 그릇에 담고 채 썬 채소를 듬뿍 올려 횟장을 뿌렸다. 집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를 섞은 횟장은 달짝지근했다. 김 무럭무럭 나는 흰밥을 공기마다 고봉으로 푼 후에야 엄마는 오빠를 깨웠다. 빨갛게 무친 회를 절반쯤 먹고 나면 차가운 물을 부어 휘휘 저었다. 그렇게 물회를 홀홀 마시고 나면 설거지는 뒤로 미루고 다들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잤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주말 호사였다.

엄마는 오빠의 낚시여행에 횟장을 챙겨주려 했다. 오빠는 잠시 난감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는 아버지의 낚싯대 중에서 가장 비싼 걸로 골라 현관에 세워놓았고, 크지 않은 백팩에 날렵하게 짐을 이미 싸둔 터였기 때문이다. 포도주를 넣은 횟장병은 너무 컸다. 게다가 깨질세라 신문지나 수건으로 돌돌 말아 넣는다면 백팩은 보기 싫게 뚱뚱해질 것이었다. 채 가시지 않은 군인 티가 싫어 앞머리에 살살 젤까지 발라넘긴 오빠는 결국 고개를 내젓고 그냥 떠났다.

강원도 겨울 바다로 낚시를 떠났던 오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방파제, 테트라포드 사이로 빠진 뒤 물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파랗게 언 오빠의 친구들이 입술을 덜덜 떨고 있었다. 경찰이 테트라포드,라고 말을 했을 때 우리 가족은 자꾸 되물었다. 테트라, 뭐라구요? 그게 뭔데요?

“그, 뭡니까. 방파제에 세워놓는, 삼발이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 있잖아요. 파도치는 거 막아주는, 그게 테트라포드에요.”

바닷가 소도시에서 자란 오빠와 나의 옛 앨범을 뒤적여보면 방파제에서 찍은 사진들이 제법 있었다. 겁 많은 내가 그 테트라포드 위에 얌전히 무릎 모으고 앉아 있는 것에 반해 오빠는 사촌들과 어울려 그 콘크리트 덩어리를 잘도 뛰어다니고 있었다. 군대도 다녀온 스물네살의 오빠는 그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설프게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오빠의 친구들이 장례식장을 지켰다. 차마 경찰에게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이 소주 몇 순배에 취한 오빠 친구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벽에 기대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파도도 없었던 그날, 오빠는 제 손으로 점퍼를 벗고 테트라포드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고 했다. 고추장 때문이라 했다. 낚시에는 몇 마리 놀래미가 걸려들었고 몇몇은 회를 뜬답시고 설쳐댔을 것이고 몇몇은 매운탕 끓일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손에서 놓친 고추장 통이 테트라포드 사이로 퐁당 떨어진 것이었다. 오빠는 그걸 줍겠다고 점퍼를 벗어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고작 오백그램짜리 순창고추장 한 통을 건지겠다고 말이다. 병신.


엄마는 여전히 김치를 담갔고 돼지고기를 볶았고 간장게장을 만들었다. 간장게장은 만든 지 얼마가 지나면 곧 물러졌다. 나는 오빠의 빈 자리를 엄마에게 들킬까 봐 한 끼에 두 마리, 세 마리씩 꼬박꼬박 게장을 빨아먹었다. 입천장과 혀가 얼얼하게 헐었다. 또 엄마는 여전히 횟감을 사왔고 아버지는 마당 수돗가에서 회를 떴다. 다만 엄마가 횟장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마늘을 찧을 일이 없었다. 나는 마루문을 열어놓고 그냥 신문만 보았다.

우리 가족은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회를 찍어 먹었다. 간장으로는 물회를 만들어 먹을 수가 없어서 나는 곧 밍밍한 회에 입맛을 잃었다. 언제부턴가 냉장고에서 고추장통이 사라졌다. 직접 담근 포도주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서 뚜껑에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지금이라도 뒤란 창고를 뒤지면 곰팡이 푸르게 앉은 포도주 병이 나올지 몰랐다.

엄마는 생떼 같은 자식이 고작 고추장 통 하나에 숨을 놓고 말았다는 사실이 기가 막혀 한동안 바깥출입도 하지 않았다. 아까워라, 아까워라, 다 키워놓았더니 고추장 때문에 죽어버렸대잖아. 사람들이 그렇게 수군대는 것 같아서 엄마는 이불 속에서 꺽꺽거렸다.

“나, 아무래도 걔 얼굴 좀 봐야겠다. 네가 좀 찾아봐라.”

나는 말없이 엄마를 바라만 보았다. 소문은 슬금슬금, 찾아왔다. 누가 그런 말을 처음 전하기 시작했는지 그 말이 사실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찾긴 누굴 찾아? 이름도 모르고 누군지도 몰라. 또 그게 진짜인지도 모르고.”

“찾아봐! 내가 그애한테 화를 내겠다는 게 아니고, 그냥 물어보려고 그러는 거야.”

엄마는 울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가슴을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엄마의 울화를 나도 견뎌내기 쉽지 않았다.

“뭘 물어보겠다고 그래? 네가 내 아들 보고 물에 뛰어들라 그랬니? 네가 저 고추장 꼭 찾아오라고 그렇게 내 아들한테 시켰니? 그럴 거야? 그렇게 물어볼 거야? 그게 무슨 소용인데, 이제 와서?”

사람들은 속살거렸다. 같이 여행을 갔던 친구들 틈에 오빠가 평소 좋아하던 여학생이 끼어 있었다 했다. 고추장 따위 다시 하나 사오면 된다 다들 말했지만 그 여학생이 오빠를 빤히 쳐다보았단다. 저걸 네가 꺼내줄래? 그런 눈으로 말이다. 오빠는 그 여학생의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점퍼를 벗은 거라 했다. 연애를 하던 여학생이 꺼내 달라 징징거린 것도 아니고, 그저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는데 물로 뛰어든 오빠라니. 고추장 통은 손에 쥐지도 못한 채 미로 같은 테트라포드 사이에 끼어 결국 얼굴도 못 내밀고 죽은 오빠에 대한 소문들. 엄마뿐 아니라 나 역시 온 내장이 다 꺾여버리는 듯한 통증에 힘겨워하던 시간이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지을이를 낳았다. 주말에는 아버지를 집으로 불러 고추장을 듬뿍 풀어넣은 닭도리탕을 만들어드리기도 했다. 퇴직을 한 아버지는 성당 친구분들과 가끔 찻집에서 시간을 보낼 뿐 나머지는 거의 지을이와 함께 지냈다. 태어나서 잘한 짓이라고는 지을이를 아버지께 안겨드린 것뿐이라고 나는 종종 중얼거렸다. 삼십년 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회사 사택을 떠나본 적 없는 아버지는 그저 적적해 보였다.

아버지는 얼마 전 위암수술을 받고 난 후 부쩍 늙었다. 초기에 발견한지라 개복수술을 하지 않고 레이저로 암세포만 떼어내는 치료를 받았을 뿐 별다른 항암치료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일 년에 한번씩 정기검진만 받고 있었다. 아버지는 원래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조미료도 안 쓰고, 소금도 적게 치는데 왜 너희 아버지가 암이지? 도대체 왜 그런 거지?”

엄마는 억울해했다. 아버지의 암이 말끔하게 나았음에도 억울한 기분을 좀체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처럼 엄마는 망연해했다. 한동안 아버지는 병을 앓았다는 사실만으로 엄마의 눈치를 볼 지경이었다.

“심심한데 꼭지네 가서 칼국수나 먹을까? 그 집 칼국수 먹은 지 너무 오래됐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꼭지네 칼국수’는 벌써 우리 가족이 십여 년 넘게 드나들던 단골집이었다. 기계로 민 반죽이긴 했지만 손으로 숭숭 썰어 청양고추 칼칼하게 풀어 끓인 것이 해물 하나 없이 멸치만 넣어 만든 것인데도 국물 맛이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한 그릇 값도 몇 년째 이천오백원 그대로였다. 누구보다도 엄마가 그 집 칼국수를 좋아했다.

지을이의 편식 때문에 엄마가 한참 골이 나 있었으니 달래줄 필요도 있었고, 나 역시 치유될 기미 없는 입덧으로 온몸에 힘이 쭉쭉 빠지던 참이었다. 소파에 길게 누워 졸고 있는 남편도, 제 아빠 다리 사이에 끼어 함께 코를 고는 지을이도 깨워서 대충 옷 걸치고 나서면 주말 나들이로 괜찮을 듯했다.

“느이 엄마, 꼭지네 안 간 지 벌써 제법 됐다. 아예 발 끊었잖아.”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러게 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까탈스러워지네. 피곤해, 정말.”

별다른 취미랄 것이 없던 아버지와 엄마는, 시간만 나면 차를 몰고 바닷가를 돌았다. 새우를 사러 울진까지 다녀오고 생물 오징어를 사러 주문진으로 떠났다. 아침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만나려면 토요일 새벽 서너시 정도에는 출발해야 했는데, 세상모르게 잠든 나를 깨워 안방으로 질질 끌어다 놓곤 했다.

“전화 올지 모르니까 안방에서 자. 오징어 사올게.”

아침부터 딱히 누군가 전화를 걸어올 일도 없을 텐데도 나는 토요일 새벽이면 안방, 엄마와 아버지가 자고 일어난 이불 속을 파고들어야 했다. 가끔은 옥수수를 사러 삼척엘 가기도 했고 때로는 살 것이 없어도 길을 나선 적이 많았다. 그럴 때면 강원도 바닷가 마을 어디쯤에서 사온 근대 한 무더기로 된장국을 끓여 상에 올렸다. 맛도 없는 찐빵을 한 봉지 그득 사오기도 했고 말린 참가자미를 상자째 사들여 온종일 가위를 들고 지느러미와 꼬리를 다듬었다. 그때마다 마루에는 진한 비린내가 떠돌았다.

오빠가 강원도 바닷가에서 사고를 당한 뒤 엄마는 아버지와의 바다 나들이를 멈추었다. 엄마가 마주치는 바다란 고작 이 소도시와 맞닿은 어시장 정도였다. 어시장 앞바다는 파도도 들어오지 않았고 방파제도 없었다. 주차장처럼 다닥다닥 묶어세운 배들뿐이었다. 질벅한 구정물이 튀는 어시장을 돌며 문어와 냉동 원양꽁치를 샀다.

꼭지네 칼국수집에 가려면 아버지가 삼십년 동안 다녔던 공단을 지나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여길 어떻게 찾아냈을까 싶을 만큼 구석진, 시장 한귀퉁이의 작은 식당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꼭지네에서 칼국수를 한 그릇씩 비운 뒤 듬성듬성 문을 연 시골장에서 플라스틱 양동이나 숫돌, 나프탈렌 등 별 필요도 없는 소소한 물건들을 사들였다. 바다 나들이를 대신해서 엄마와 아버지가 유일하게 다니는 소풍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꼭지네 칼국수와 연을 끊었다니.

나는 남편과 지을이를 깨워 엄마네로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 지을이는 아무래도 소파 위에서의 잠자리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잠을 깨웠는데도 칭얼거리지 않고 냉큼 따라나섰다.

“몰라. 묻지 마. 그냥 맛이 없어서 안 가.”

엄마의 대답은 짧았다. 아버지가 옆에서 쯔쯔, 혀를 찼다. 나는 냉장고를 뒤져 마른 멸치를 한줌 꺼냈다. 손에 쥐고 하나씩 씹어먹고 있자니 지을이가 코를 감싸쥐고 달아난다.

“무슨 입덧을 데모질하듯이 해? 도대체 뭐가 먹고 싶다는 거야? 말을 해야 사다 주든 만들어 주든 할 거 아냐?”

엄마의 면박에 남편이 거들었다.

“완전히 깡패에요, 장모님. 멸치 봉지에다 얼굴 갖다 처박구서 성질만 바락바락 낸다니까요.”

“나도 힘들단 말야. 그러니까 꼭지네 칼국수라도 먹으러 가자구!”

비린내와 칼국수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나는 공연히 그 집 국수가 당겼다. 탁자라고는 네 개뿐인, 거미줄 숭숭 천장에 매달린 그 집 국수 국물이나마 후루룩 들이켜고 싶었다. 엄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쌀을 안쳤다. 씻어 건진 냉이가 소반에 얹혀 있었다. 보나마나 또 된장국이겠지. 나는 입이 댓발은 나와서 냉장고를 뒤적였다. 손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결국 아버지가 한 마디 던졌다.

“대단한 걸 먹고 싶대는 것도 아니고. 입덧하느라 저리 꼬챙이처럼 말랐는데 그냥 한 그릇 사주면 되지.”

그러죠, 장모님, 하고 더 보태려던 남편의 입이 채 다물어지기도 전에 엄마가 와락 소리를 쳤다. 남편이 움찔했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가려면 아주 숨이 턱턱 막혀! 삼십년이야. 삼십년을 거기서 딴짓 한번 안 하고 죽어라 일했어. 근데 거기서 당신한테 해준 게 뭐야? 쥐꼬리만 한 퇴직금? 그거? 하이고, 다 가져가라 그래. 그딴 거 필요없으니까!”

나는 비린내 나는 손가락을 코에 가져다 댔다. 바다 냄새라기보다는 소금기 앉은 찜솥 냄새 같은 것이 올라왔다. 엄마가 말하는 ‘거기’란 아버지가 젊은 날을 다 보낸 회사를 말하는 것일 테다. 아버지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명예퇴직이다, 정리해고다 해서 밀려날 때에도 아버지는 살아남았다. 정년퇴임식 날, 엄마는 근처 예식장의 연회장을 빌려 뷔페 파티를 열었다. 한복을 새로 하고 기념 수건을 돌리고 떡은 따로 맞추었다.

이미 오래 전 회사를 떠났던 아버지의 동료들은 아버지보다 훨씬 더 늙은 얼굴로 맥주를 마시고 약간의 주정을 벌였다. 후배들이 마련한 감사패를 반짝 들어올리고 엄마와 아버지는 사진을 찍었다. 며칠 뒤 입금된 아버지의 퇴직금은 내가 다니는 은행에다 정기예금통장 하나를 새로 만들어 이체시켰다. 삼십년 치 청춘에 대한 위로금이었다. 그로써 아버지와 그 회사와의 모든 계약은 끝이 났다. 아버지는 어린 지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리고 말이야.”

엄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리는 멀뚱하게 앉아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 집 국수가 쫄깃쫄깃한 건 다 이유가 있더라고. 왜, 경수 엄마가 요리학원엘 다녔잖아. 경수 엄마가 그 집 국수를 딱 먹더니 바로 그러더라. 자장면 반죽할 때 넣는 뭐라더라, 아무튼 무슨 가루가 있대. 그걸 넣으면 국수가 그렇게 쫄깃쫄깃해진다는 거야. 자장면집에선 단무지에다가 식초 뿌려 먹잖아. 그게 다 그 가루 나쁜 걸 해독시키려고 그러는 거래. 근데 꼭지네에선 단무지 나와? 그냥 김치랑만 먹잖아. 그게 그렇게 나쁘댄다.”

엄마는 된장국을 끓였다. 나는 잠자코 먹으려 했지만 몇 숟갈 뜨지 않아 식탁에서 일어나야 했다. 입 짧은 지을이를 달래 가며 먹이느라 엄마도 바빴다.


지을이의 편식 문제를 고민하느라, 그리고 머릿속이 빙글 돌 만큼의 강렬한 비린내를 그리워하느라 나는 하루하루가 바빴다. 냉큼 집에 들어가 멸치 봉지에나마 얼굴을 처박고 싶어서 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이 코앞이었다. 키가 작고 머리숱이 적은 여자를 막 스쳐지나던 참이었다. 흰 블라우스에 빨간 바지, 조그마한 가방을 겨드랑이에 꼭 끼운 채 타박타박 걷던 여자가 나를 홱 돌아보았다.

“아들들이라 그래도 다 소용없어요. 지들 먹고사느라 바빠서 부모 생일에 전화도 한통 안 해요. 참 기가 막혀요. 그죠?”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뜬금없는 여자의 말에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나는 잠시 갈팡질팡했다.

“아…… 네.”

“돈 없는 게 죄지, 뭐. ……그죠? 돈 없는 게 죄에요.”

사십대 초반쯤이나 되었을까. 입꼬리를 간신이 끌어올리며 웃어 보이던 그녀는 다시 갈 길을 갔다. 뒤에서 바라보자니 팔자걸음, 뒤꿈치에 걸린 샌들 스트랩이 헐렁헐렁 흔들리고 있었다. 왠지 그녀를 앞서 걸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느지막이 발을 뗐다. 혼잣말로는 도무지 속이 가라앉지 않아서 생판 모르는 나에게 불쑥 하소연이 튀어나왔던 것일까. 엉뚱하게도 나는, 우울을 앓는 엄마의 작은 몸피가 떠올랐다. 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마음을 바꾸어 택시를 잡아탔다. 꼭지네까지는 택시요금이 칠천원쯤 되었다.

“이건 또 뭐하는 짓이야?”

남편은 갈수록 가관이라는 듯 나를 보았다. 삼치 한 마리 구워 남편에게 내어준 뒤 나는 비닐봉지 안의 칼국수를 양푼에 부었다. 한 그릇만 넣어달라 했는데 꼭지네 아주머니는 넉넉하게 끓여주었다. 나는 양푼의 식은 칼국수를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좀 줄까? 밥 말아먹으면 맛있어.”

남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어떤 가루인가를 넣어 쫄깃쫄깃, 노랗게 반죽한 국숫발을 호르르 떠먹다가 밥을 반 그릇 퍼왔다. 그제야 식은 칼국수 맛이 조금 궁금해진 듯 남편은 숟가락을 밀어넣었지만 이내 인상을 썼다.

꼭지네에 가고는 싶지만 회사 앞을 지나치기는 싫고, 그렇다고 먼 길을 에둘러 가기에는 휘발유값이 아깝고. 마침맞게 국수 반죽에 무언가를 섞어두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을 엄마는 다행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웅얼웅얼 뱃속에 뭉친 것을 엄마는 어떻게 풀어낼까. 오늘 그 빨간 바지의 여자처럼 길을 가다가 낯모르는 누군가의 옷자락을 붙들고 하소연을 하지는 않을까.

세상에, 고추장통 하나 건질라고 죽은 병신 새끼가 또 어딨대요? 아무리 삼십년을 더 버텨봤자 별 볼일 없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덜컥 암이나 걸려버리는, 그런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애마르게 죽은 걸 누가 알아나 준대요?

나는 분홍색 플라스틱 양푼을 두 손으로 들고 국물을 마셨다. 청양고추 한 점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켁켁 기침을 했다. 국숫발이 입 밖으로 튀었다. 남편이 급하게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매운 고추 때문에 눈가가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랐다. 탕탕, 그가 너무 세게 등을 두들겨 하마터면 속엣것을 다 게워낼 뻔했다.


마당 수돗가 옆에 선 단풍나무에는 양미리 두 두름이 매달려 있었다. 파리가 꾀어서 지을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노는 중이다. 엄마, 뭐해? 엄마, 뭐해?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녀석은 심심한 모양인지 종일 나를 불러댔다. 수돗가에 주저앉아 따땃한 햇살에 등을 덥히며 김장김치 한 포기를 물에 씻고 있자니 졸음이 몽탕몽탕 쏟아져 지을이 말에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다. 양념을 말끔히 씻어낸 김치는 색이 노랬다. 꾸덕꾸덕 말린 양미리를 걷어내 엄마는 아마 간장을 넣고 조려 줄 것이다.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야 제맛이 나겠지만 아무래도 지을이에게 한 점이라도 먹이려면 병아리 눈물만큼 찔끔찔끔 흉내만 내야 할 것이다.

아버지와 남편이 목욕탕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서, 나는 밥을 천천히 안치기로 했다. 대신 잘게 썬 돼지고기를 양념 적게 해서 볶았다. 씻은 김장김치를 찢어 돼지고기 한 조각씩 올린 후 돌돌 말았다. 이쑤시개로 고정을 시켜놓으니 제법 이쁘다. 내가 그러고 앉은 양이 고까운지 엄마가 한마디 한다.

“비싼 김치 양념은 왜 다 씻어내고 그런다니?”

“비싼 김치 양념, 어차피 내 아들 입으로 들어가지도 않을 텐데 그나마 배춧잎이라도 먹여야 할 거 아냐?”

“직장 때려치우고 들어앉아 아들 밥이나 해먹이지 그래?”

“엄마가 우리 대출금 갚아줄 거야, 그럼?”

엄마는 못 들은 척 싱크대로 간다. 나는 더 보탠다.

“요즘 키 크는 주사도 있대. 그거라도 맞혀줄래?”

엄마는 대꾸 없이 내가 밥물 받아둔 걸 보더니 쌀이 적다며 쌀독을 열었다.

“난 밥 안 먹어. 그냥 그거만 안쳐도 될 거야.”

“굶어죽을 작정이야?”

“난 이거 먹을 거야.”

나는 국수 봉지를 들어보였다. 꼭지네에 들러 또 한 양푼을 사 온 길이었다. 엄마는 봉지를 들여다보았다. 퉁퉁 불은 국숫발이 뿌연 국물 안에 고여 있었다. 식은 칼국수에 밥을 말아먹는 걸 좋아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꼭지네에서 국수를 먹고 난 후에는 꼭 한 그릇을 봉지에 담아와 엄마와 나는 다음 끼니를 그것으로 떼우곤 했다. 엄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물 담아둔 그릇에다 좁쌀과 검은콩만 주르르 쏟아넣는다.

딱히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한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는 아버지와 남편을 기다리다 나는 마루에 앉아 끄덕끄덕 졸았고, 씻은 김치에 싼 돼지고기를 지을이에게 먹여보려다 그만 짜증이 난 엄마는 지을이의 머리를 몇 번 쥐어박았다. 녀석은 입술을 앙다물고 김치를 먹지 않으려고 버텼다.

앉은 채로 졸다가 나는 방파제를 걸었다. 꿈인지 무엇인지 모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파도가 사정없이 날아드는 방파제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하늘은 부옜고 파도의 키가 너무 높아 방파제는 반 넘게 물길에 먹혀버렸다. 테트라포드, 파도를 막아준다는 콘크리트 덩어리는 소용이 없었다. 머리 위로 파도 부스러기가 흰 비처럼 뿌려졌다. 바람이 거세었기에 몸이 흔들렸다. 넘어지는 순간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분명 나는 두려웠을 테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흰 바다 빗물이 입 안으로 쓸려 들어왔다. 오징어 냄새, 새우 냄새, 물컹한 문어 냄새, 은빛으로 푸르게 빛나는 꽁치 냄새. 아아. 바다 비린내. 진짜 바닷물이 풍기는 쿨렁쿨렁한 비린내였다. 나는 마루문에 머리를 쿵 찧었다. 어질어질했다. 

“엄마. 그때 그 아가씨 있잖아.”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 듯했다. 아버지와 남편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엄마는 부아가 나 있었다.

“나, 그 아가씨 만났다. 아주 우연히.”

엄마는 꾹 다문 입술을 하고 텔레비전만 바라보고 있었다.

“은행에서…… 인사를 했거든. 나를 먼저 알아보더라고.”

“걔가…… 너를 알아봐? 먼저 인사를 해?”

엄마의 목소리는 느리고 낮았다.

“응. 그러더라. 인사를 하더라.”

뒷말을 미리 생각해두지 않은 나는 잠깐 망설였다. 눈치 빠른 엄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않을까.

“미안하대. 나한테도, 엄마한테도 미안하대. 아버지한테도.”

“걔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엄마의 눈꺼풀이 떨렸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리모컨을 쥐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자기가 그랬대. 저걸 꺼내 달라고. 그 물이 그렇게 깊은지, 그리고 그 콘크리트 사이에 빠지면 얼마나 위험한지 정말 몰랐대. ……그래서, 오빠한테 그걸 꺼내 달라고 부탁했대. 그 추운 날, 물에 들어가게 해서 오빠한테 정말 미안하대.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했어.”

하악, 엄마가 숨을 몰아쉬었다. 채널은 엉뚱한 데에 가서 멈추었다. 엄마는 채널 버튼을 꾹꾹 누르고 있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가락 끝은 계속 버튼 위에서 미끄러지고만 있었다. 레슬링 선수들이 나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저희들끼리 치고 박았다. 주름져 늘어진 엄마의 눈꺼풀에 붉은 물이 고이고 있었다.

“오빠는 안 그러려고 했는데…… 자기가 부탁한 거라고…….”

엄마는 일어섰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커피 한잔은 줬니? 그래도 네가 일하는 은행에서 만났는데…….”

나는 끄덕였다. 화장실 문을 콩 닫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없게도 아버지와 남편은 술에 취한 채로 들어왔다. 휴대전화도 받지 않더니,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해장국집엘 들러 소주를 한 병 반이나 비웠단다. 술을 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기껏 두어 잔으로 입술이나 축이는 정도였겠지만 얼굴이 불콰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휘청,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엄마가 기함을 했다.

“아주 제 정신들이 아니야. 위암 앓았던 사람이 술을 마셔?”

“아버님이 심심해서 그러시잖아요. 맨날 집에만 계시고.”

남편이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씩 웃었다.

멀건 대낮부터 취해서 들어온 두 남자는 안방에 이불을 펴고 드러눕고 말았다. 결국 밥을 안치지 않은 엄마는 찬밥을 가져와 대충 나물과 된장을 넣어 비볐다. 나는 칼국수 국물에 밥을 말았다. 

“아유, 그게 얼마나 나쁜 건지 알아? 그 이상한 가루를 넣었대니까. 내 말을 아주 뭣 같이 들어요, 진짜. 나는 이제 냄새만 맡아도 이상해!”

“엄마. 나이 들어 입덧해? 나야 둘째 가져서 그렇다 치지만 엄만 뱃속에다 뭘 집어넣고 있길래 나보다 더 요란을 떨어? 내일모레면 환갑이야. 나 늦둥이 동생은 사양할래요. 남 보기 민망하거든!”

지을이는 된장에 비빈 밥 한 숟갈, 칼국수 국물에 말은 밥 한 숟갈, 그렇게 번갈아 받아먹었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았지만 꾹 참고 밥을 삼켰다. 다음 주 토요일쯤에는 어시장에서 바라다보이는 한 귀퉁이 바다가 아닌, 이 끝부터 저 끝까지 모조리 바다만 보이는, 그런 동네를 다녀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어디다 코를 박아도 바다 비린내 물씬 풍겨오는 그런 동네엘 가서 횟장 듬뿍 뿌린 막회를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나고 석쇠구이도 괜찮고. 7번 국도를 따라가며 오랜만에 방파제를 다 덮을 듯한 파도를 좀 보아야 하겠다. 테트라포드 위를 가볍게 뛰어다니는 스물네살쯤의 청년을 본다면 자판기 커피 한잔 나누어 마실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입에 단 침이 고이고, 그 바람에 그만 속이 뒤집어져버렸다. 나는 숟가락을 내던지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우욱우욱, 입덧을 하는 내내 싫은데도 속에다 밀어넣었던 온갖 것들이 도로 올라왔다. 나는 한참동안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엄마가 등을 두들겨주겠다며 화장실 문을 열어보라 했지만 나는 꽥꽥거리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문장 웹진/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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