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 입문

 

고산병 입문



해이수

                           



쿰부 히말라야의 희박한 산소 속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 어떤지 아내는 궁금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고쿄 피크(Gokyo Peak, 5,357m)를 등정하고 내려온 다음 날, 나는 산장에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창밖에는 폭풍설이 몰아치고 야크 똥을 태운 무쇠난로 위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어올랐다. 

‘딱 이런 느낌이지. 상상해 봐. 지금 네 머리에 비닐봉투를 써. 그리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목 부분을 끈으로 꽉 조여. 그 다음 호흡을 한다고 가정하면, 3,000m 지점은 비닐 봉투에 바늘구멍을 열 개 정도 냈을 때의 기분이고 4,000m 지점은 바늘구멍이 일곱 개, 5,000m 지점은 바늘구멍이 다섯 개로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돼. 자, 숨을 들이쉬어. 그리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계단을 서너 시간 정도 오르면 충분히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거야.’

갑갑한 듯 눈살을 찡그리며 심호흡을 하는 아내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1. 고산병 징후


“어디로 여행 가고 싶니?”

아내가 물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초였고 설날이 보름 정도 남은 휴일 저녁이었다. 분명히 그 말은 “어디로 취직하고 싶니?”도 아니었고, “어디로 쫓겨나고 싶니?”라고 물은 것도 아니었다. 아내는 부드러운 눈빛과 음성으로 내게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지 물었던 것이다.

“그, 그러니까, 지, 지금 그 말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보내줄 수 있다는 뜻이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얼굴로 나는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아내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외국계 회사의 유능한 과장일 뿐만 아니라 심성까지 고운 아내의 설명은 이러했다.

결혼 이후 사년 가까이 변변찮은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오로지 가사만을 담당하던 내가, 지난해에 ‘곰 인형 발바닥 붙이기 부업’으로 한 달에 삼십만 원씩 구 개월 동안 무려 이백칠십만 원을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런 내 행동이 갸륵하고 기특한 나머지 포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대내적으로는 ‘등처가’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애처가’임을 자부하는 나는 하해와 같은 아내의 사랑에 감격하여 순간 이렇게 소리쳤다.

“에베레스트!”

아내는 서른세 살이나 먹은 나를 마치 철없는 유치원생처럼 바라보며 흥미로운 듯 물었다.

“에베레스트? 거긴 왜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산에 가고 싶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목숨을 담보하고 등정하는 프로 알피니스트조차 이유를 대라면 선문답을 하는 마당에 뒷산으로 설렁설렁 약수나 뜨러 다니는 내가 거창한 까닭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런 생각은 오직 수년간 아내를 등쳐먹으며 백수로 지내다가 자격지심에 겨워 부업을 찾아나서는 놈만이 해낼 수 있는 뚱딴지같은 발상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모처럼 얻은 기회이니 만큼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했다. 

“사실 나 오래 전부터 아팠거든. 거기 가야지 이 병이 나을 것 같아.”

“무슨 병에 걸렸는데?”

“고산병.”

“그건 고도가 높은 산에서나 걸리는 병 아니니?”

“높은 산에서도 걸리지만, 높은 산에 가고 싶어서 걸리는 병이기도 한 거야. ‘지구의 등뼈’라 불리는 쿰부 히말라야 최고봉을 보고 싶어!”

혼자 흥분해서 지껄이며 나는 유치원생처럼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아내의 얼굴이 위아래로 마구 흔들렸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광적으로 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다는 사실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때마다 등산용품점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렸던 일들을.

“좋아, 알았어. 이거 받아. 필요한 준비물 있으면 이걸로 사.”

더는 묻지 않고 아내는 명쾌하게 대답하며 지갑에서 자신의 크레디트 카드를 꺼내 주었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신용 카드였다. 나는 카드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만세! 사랑하는 아내, 만세이!” 


 * *


다음 날, 아침상을 치우고 집안을 대충 정리한 뒤 나는 등산용품점으로 달려갔다. 상점 안으로 발을 딛자마자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돌면서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크고 작은 배낭, 색색이 말려있는 로프, 각종 기능성 재킷, 맵시 있고 튼튼하게 디자인된 고글 등속을 보는 순간 뜨거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괜찮은 등산화 한 켤레를 덥석 집어 들었을 때, 옆에서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 제품이 그야말로 요즘 대세죠.”

금테 안경을 쓰고 매우 학구적인 인상의 대머리 주인아저씨였다.

“뉴 블랙 블리자드 스톰 XG 5350 시리즈 중에 이만한 게 없죠. 현재 시판되는 중등산화 종류 중 가격대비 최강입니다.”

아저씨는 신발 한 짝을 집어 들더니 검지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박식한 말투로 빠르게 설명했다.

“외피는 방수누벽에 방수 투톤 코두라가 콤바인 돼 있고, 내피는 무려 포레이어 고어텍스로 되어 있죠. 여기 안을 보세요. 오소라이트로 만든 깔창이 펀칭구조로 되어 있어 장기간 보행에도 편안합니다. 무엇보다 바닥이 릿지에지로 되어 있어 접지력, 마찰력이 탁월하죠.”

듣는 동안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에 겨우 알아들은 단어 하나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릿지…… 에지요? 그게 뭐예요?”

“릿지에지는 V-7이라는 고기능 미끄럼 방지창이죠. 한국신발피혁연구소 실험 결과에 의하면 인장강도가 무려 116이나 됩니다. 미끄러짐강도를 67도까지 끌어올림과 동시에 내마모율강도를 114까지 향상시켰죠. 엄청난 제품이지 않습니까?”

인장강도 116이 뭔지, 미끄러짐강도 67도가 뭔지, 내마모율 114가 어떤 의미인지 알 턱이 없었지만, 무작정 수긍을 하던 나는 가격표를 보자 숨이 콱 막혔다. 이십오만 원이 넘었다. 한 달 동안 곰 인형 발바닥에 본드칠을 해야지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내가 망설이자 아저씨는 옆에서 보기 답답하다는 듯 추가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이 베라 좀 보세요. 페딩 레더에 홀딩을 줘서 벤틸레이팅 이펙트를 극대화했잖습니까? 발의 외전을 보완하기 위해 실리콘 몰딩을 했고 볼륨이 커진 라스트로 아치와 풋 토우의 착화감을 향상시켰어요. 이 가격에 이런 제품 보신 적 있어요? 없죠? 그렇죠?”

대머리 아저씨가 등산화를 내 코앞에 바싹 들이대며 추궁하는 바람에 나는 그렇다는 뜻으로 네,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손님은 어디를 가시는지?”

“에, 에베레스트에 가려고요.”

“에베레스트, 좋지요! 당연히 이 정도의 등산화 구입은 필수죠.”

“그럴까요?”

“그럼요! 세계 최고봉인데 당연하죠. 일단 신어보세요. 그리고 양말도 구입하셔야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아저씨는 양말을 한 뭉텅이 들고 왔다.

“자, 여기 고기능성 쿨 맥스 소재로 다섯 켤레 갖고 왔어요.”

“다섯 켤레나요?”

“며칠 계획하시는데요?”

“한 이십일 정도.”

“그럼 다섯 켤레는 기본이죠. 등산화도 구입하셨으니 제가 한 켤레는 서비스로 해서 여섯 켤레를 다섯 켤레 값으로 드릴게요. 십만 원이에요. 아, 스팻츠도 필요하시죠?”

“스팻츠도요?”

“스팻츠 없이 어떻게 히말라야 설산을 운행하겠습니까? 스팻츠는 필수품이죠!”

순식간에 발에만 사십만 원이 들어갔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더욱이 재킷을 구입할 때는 그야말로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박학다식하고 청산유수와 같은 아저씨의 설명은 거의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일일이 그 뜻을 물어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게 말이죠, 베스트 피크 클라이머 0XP 2035 맨 파워풀 인퓨전 자켓이에요. 저희 회사만의 혁신적인 인퓨전 시스템을 도입한 고기능성 고어텍스 XCR 자켓이죠. DWR지퍼, 코어 벤트 포켓, 포라블 후드 등의 구조를 채택한 최상의 제품이죠. 특수 폴리머를 생지의 심층까지 침투시켜 평면 코팅을 했죠.”

나는 고매한 교수님의 수준 높은 가르침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열등아처럼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자, 손님, 그러지 말고 일단 한번 입어보세요.”

내가 입자마자 아저씨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거, 이거, 이거, 아주 딱 맞네요! 전문 산악인의 폼이 그냥 바로 나오네! 자, 여길 보세요. 암핏에 벤틸레이션 지퍼가 있죠? 이게 바로 피지컬 엑티브 콘스트럭션 테크날러지의 운동 역학을 적용한 고기능 제품이거든요.”

거울을 보니 정말 몸에 딱 들어맞았다. 나는 팔을 한번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무게도 가볍고 활동성도 편하고 디자인도 좋았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근사한 재킷을 걸치고 어느새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서 가격표를 본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 거칠게 지퍼를 내렸다. 무려 칠십만 원에 육박했다.

“좀 다른 제품도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세요. 이건 어떻습니까? 네오 맨스 파운틴 페이스 서밋 ZCRQ 7856 자켓!”

그 긴 명칭만 들어도 금방 숨이 차오르고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아저씨는 특유의 손동작으로 의류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하드 쉘과 소프트 쉘을 믹스 매치하여 웰딩 작업한 아웃심 실링 자켓이죠. 이전의 하드쉘 종류보다 훨씬 소프트한 느낌으로 도트 웰딩 테이프 작업이 패셔너블합니다. 내수압이 높은 데다가 초경량 스트레치 원단으로 입체 설계되었고 네츄랄 리스토어레이션 구조를 채택하여 극한 상황에서도 적합한 최상의 제품이죠.”

이번엔 입어보지도 않고 가격표를 먼저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네오 맨스 파운틴 페이스 서밋 ZCRQ 7856 시리즈 자켓’은 ‘베스트 피크 클라이머 0XP 2035 맨 파워풀 인퓨전 시리즈 자켓’보다 사십만 원이나 저렴한 삼십만 원대였다.

“그런데 정말 제가 이렇게 비싼 자켓을 구입해야 하나요?”

“손님, 에베레스트가 어디 동네 뒷동산입니까? 필수품이라 할 수 있죠.”

“아무래도 그렇겠죠? 뒷동산도 아닌 에베레스트인데……”

내가 재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살펴보자 아저씨는 어느 틈엔가 고소 내복을 들고 왔다. 내복의 가격은 무려 십오만 원이었다.

“자, 만져보세요. 흡습 속건성이 뛰어나 상쾌한 기분을 유지시켜 주죠. 겨울 산행에서 내복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그리고 트레킹은 걷는 운동이기 때문에 땀 흡수 및 배출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잘 아시죠?”

“알긴 알지만…… 정말 이 정도의 내복까지 사야 하나요?”

대머리 아저씨는 금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아직도 못 알아들었냐는 듯 되물었다.

“어디를 가신다고요?”

나는 거의 울먹이듯 대답했다.

“에베레스트요.”

“그렇죠! 뒷동산이 아닌 거죠.”

이런 식으로 나는 트레킹 바지를 비롯해서 워킹 스틱, 방한모, 장갑, 헤드 랜턴, 날진 물통, 고글 등의 장비를 골랐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친 주인아저씨의 열정적인 강의는 마라톤 세미나를 방불케 했다. 우리는 질의문답에 지쳐서 점심으로 함께 순두부 백반을 시켜 먹기까지 했다. 종일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마지막에 계산을 하려고 테이블 위에 선택한 물건을 쭉 늘어놓았을 땐 더럭 겁이 났다.

“그런데 정말 이 모든 걸 전부 다 구입해야 될까요?”

“그렇죠.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필수품입니다. 히말라야 설산에서는 후회하는 순간 이미 늦은 거죠. 저를 믿으세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 물건을 구입하지 않으면 다음에 장비점에서 선택의 과정을 반복해야 된다는 게 벌써부터 끔찍했다. 플리스 본딩 원단이니, 초극세사 M2, 윈드 스타퍼, 탁탤 원사, 써모라이트, 쿨 맥스, 고어텍스 XCR 따위의 초기능성 소재에 관해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다. 입기만 하면 마치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되어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단번에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의류의 섬유 혼용율을 보면 단지 폴리에스텔, 폴리우레탄, 나일론이 몇 퍼센트로 섞였나에 불과했다.

어쨌든 나는 이 고단한 망설임을 끝내기 위해 아내의 크레디트 카드를 긁고 말았다. 자그마치 백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무슨 배짱으로 이런 짓을 겁도 없이 저질렀냐고 묻는다면 다만 병에 걸렸다고 변명할 수밖에. 이름하여 고, 산, 병.


* *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날, 나는 아내의 기색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장비 구입을 위해 카드로 거액을 지출했다는 사실을 보고해야만 했다. 아내가 기분이 좋을 때 말하려고 며칠 동안 눈치를 보았던 셈이다.

“음…… 사실은 할 말이 있는데……”

아내는 고개를 돌려 조용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나는 에베레스트에 가는 사나이답게 당당해지려고 애썼다.

“사실은 말이야, 나 장비 사는 데 의외로 돈을 많이 썼어.”

아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알고 있어.”

나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어, 어떻게 알았어?”

“네가 카드를 긁자마자 내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바로 왔거든.”

아, 그렇구나. 나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서른셋이 될 동안 살림이나 하며 곰발바닥이나 붙이는 놈이 그런 첨단 자동화 금융시스템을 알 턱이 없었다. 결국 아내는 카드 지출 금액을 알면서도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던 셈이다. 나는 어느새 변명을 시작했다.

“에베레스트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만 구입했어.”

“필요한 게 꽤 많았나 보구나?”

“응, 에베레스트는 동네 뒷동산이 아니거든. 전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야.”

아내는 내가 사용한 단어가 신기하다는 듯 한번 더 물었다.    

“필수품?”

“그렇다니까. 하나라도 빠지면 갈 수 없는 필수품이야. 히말라야 설산에서는 장비가 없어서 후회하는 순간 이미 늦은 거야. 나를 믿어!”

이게 바로 지난 사흘 동안 전전긍긍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내가 준비한 멘트였다.


* *


“잘 갔다 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2월의 겨울 새벽이어서 몹시 추웠다. 나는 등에 70ℓ짜리 커다란 배낭을 메고 가슴에는 작은 배낭을 멘 채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서 있었다.

“그리고 이거 가져가.”

아내는 만약의 경우 사용하라며 세계 어디서나 통용된다는 크레디트 카드를 내밀었다. 이미 한 달 여행경비치고는 충분한 금액을 현찰로 받은 상태였지만 일단 받아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 그런데 이 카드는 웬만해서 절대 쓰지 않을게.”

과도한 지출에 심적 위축감을 느낀 나는 아내가 당부하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냈다. 그리고 휘청거리며 다가가 아내를 안아주었다. 뭔가 멋있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특별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2. 고산병 초기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에서 한국 호텔 및 레스토랑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곳에서 여행객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말문을 트고 정보를 교환하며 목적지가 같을 경우 동행이 되기도 했다. 도착 이틀째, 나는 저녁으로 김치찌개 백반을 먹다가 사십대 초반의 남자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척 보기에도 그는 경험이 많고 노련한 산악인 같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검게 그을린 얼굴,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등산을 막 끝낸 산사나이에게서만 풍기는 당당함과 고단함이 느껴졌다.

“자네, 여기가 처음인가?”

“네.”

“목적지가 어디라고?”

“고쿄 피크에 가려고요.”

나는 그의 술잔에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 맥주를 따랐다. 병의 라벨에는 최초 등정자인 에드문드 힐러리 경과 세르파 텐징 노르게이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에게 트레킹 도중 유의할 점에 대해 알려 달라는 부탁을 했던 참이었다. 산사나이는 술잔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경험도 없는 사람이 이 겨울에 혼자서 거길 가겠다니 겁도 없군.”

그의 굵고 거친 목소리에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맥주잔을 잡고 홀짝거리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곳은 운이 많이 작용하는 곳이네. 우선 비행기 추락 사고를 조심하게.”

“비행기가 떨어지나요?”

“항공 사고는 매년 일어나지.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 경의 아내와 딸도 여기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지.”

놀란 나머지 나는 마시던 맥주를 조금 흘리고 말았다. 겁이 났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너무 싼값의 비행기는 되도록 피하는 게 최선의 예방책으로 보였다.

“그리고 산적을 조심하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 겁을 주는 것 같아서였다.

“웃기나?”

산사나이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죄송한 표정으로 얼른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보기보다 꽤나 순진하군. 쿰부 히말라야는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과 트렉커가 모여드는 곳이야. 그들이 지닌 카메라 한 대만 뺏어도 현지인들의 몇 년 수입이 넘지. 작은 교실이나 좁은 골목에서도 삥을 뜯는 게 현실이네. 이 엄청난 산악지대에 강도가 없을 것 같나? 해마다 실종자 신고가 들어오고 작년만 해도 두 명의 영국 젊은이가 시체로 발견됐네.”

“아, 정말 무섭군요!”

“자네, 현금 많지?”

“네, 그럼 어쩌죠?”

나는 달러를 환전하여 엄청난 금액의 네팔 루피를 현금으로 갖고 있었다. 트렉커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일단 산에 오르면 산장에서 소용될 스무 날 가량의 경비가 현금으로 필요했다.

“일단 믿을 만한 세르파를 구하게. 지금은 비수기이니 현지인과 동행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걸세. 그리고 귀중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산사나이가 비운 글라스에 술을 따르며 나는 심각하게 물었다.

“그 다음 주의할 게 뭔가요?”

“물론 고산병이지.”

“그건 책에서 읽었어요. 천천히 걷고 하루 300미터 이상 고도를 높이지 말고 물을 많이 마시면 된다고. 잊지 않으려고 노트에 정리까지 했어요.”

“그렇지, 알고 있는 것을 반드시 지키게. 그리고 고산병이 오면 무조건 내려와야 해. 폐인이 되거나 죽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지.”

산사나이는 잔을 들어 굵은 목울대를 출렁거리며 술을 비우더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덩달아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피곤하기도 하고.”

그와는 반대로 나는 점점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내 얼굴에서 두려움의 빛을 읽었는지 산사나이는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참, 자네, 크레디트 카드 있나?”

“네, 그런데 그건 왜……”

“항상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되도록 쓰지 말고. 행운을 비네.”

그리고 큰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는 성큼성큼 음식점을 빠져 나갔다. 산사나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왜 그가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크레디트 카드를 늘 주머니에 소지하라고 했는지 불현듯 궁금해졌다.

                     

 * *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려면 대개 쿰부 히말라야의 관문인 루클라(Lukla)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다. 힐러리 경의 아내와 딸이 추락사했다는 바로 그 노선이었다. 처음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픽 터져 나왔다. 꼭 이십여 년 전 열두 명 정도가 앉는 봉고차에 탑승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내부 마감재 일부는 목재로 덧대어 있었고 좌석은 간이 낚시 의자처럼 등받이가 아무렇게나 접혔다. 몇 발자국 앞에서 운전을 하는 기장과 부기장의 모습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골동품처럼 보이는 작동장치들은 마치 장난감 같았다.

이륙 시동이 걸리자 턱이 덜덜덜 떨릴 정도로 기체가 흔들렸다. 옆자리의 네팔 할머니가 염주를 굴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중얼거림이 빨라지면서 정점에 이르자 할머니는 쌀을 공중에 뿌려댔다. 그 주문과 의식이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쌀알은 내 머리와 옷에 후드득 떨어졌다. 이륙 뒤에도 강한 기류 탓에 기체의 떨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는데 추락은 둘째 치고 이대로 비행기가 공중분해 되지 않을까 불안할 지경이었다. 할머니 역시 겁이 나는지 그때마다 내 팔을 꼭 끌어안고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었다. 40분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온갖 걱정이 다 들끓었다.

루클라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해서 짐을 찾을 무렵 세르파 한 명이 내게로 걸어왔다. 동양인 트레커는 나 혼자뿐이어서 식별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세르파는 ‘코리안?’ 하고 물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나 역시 그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곱슬곱슬한 머리에 얼굴이 검고 순박한 인상이 영락없는 산골 사람이었다. 2초만 쳐다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을 만큼 눈빛이 순진했다.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고는 통성명을 했다. 그의 이름은 ‘푸르바’였고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루클라로 향하기 전 날, 산사나이의 충고대로 나는 여행사에서 세르파 한 명을 고용했다. 믿을만하고 특히 영어를 잘 하는 현지인으로 부탁했다. 무거운 배낭의 짐을 분할하고 낯선 환경에서의 대처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세르파의 도움이 절실했다. 무엇보다 눈이 내리면 삽시간에 길이 지워진다는 에베레스트에서 마지막까지 여정을 안내해 주는 가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영어를 잘 하는 현지인을 요구했던 이유는 한국어에 능통한 소수의 세르파들이 이미 예약된 상태였고 비용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혼을 하자마자 아내가 뉴욕의 회사에서 삼년간 일하는 동안 영어를 배울 기회가 많아서 어지간한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여행사에서는 걱정하지 말라며 가장 영어가 유창하고 믿음직스러운 세르파를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트레킹을 시작하자 푸르바는 내게 먼저 설명을 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내가 뭔가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지극히 단순했는데, ‘노 프라블럼’ 아니면 ‘베리 베리 프라블럼’이었다. 때로 내가 지명의 뜻이나 풍습에 관한 질문을 하면 헛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 물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문맥에 닿지도 않는 엉뚱한 말, 그러니까 그냥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영어를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푸르바, 이 지도상에 고쿄 피크는 어느 지점이죠?”

하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쉬울 것을 그는 꼭 어디 위, 어디 아래, 어디 오른쪽 하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럼 그 어디는 어디 있죠? 하고 재차 물으면 다시 어디 아래, 어디 위, 어디 왼쪽 하는 식의 대답이 계속됐다. 그래서 목적지의 위치를 알려면 나는 지도를 동서남북으로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푸르바가 숫자만 간신히 읽을 뿐 알파벳을 몰라서 지도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간신히 눈치챌 수 있었다. 그의 지도는 오직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쿰부 히말라야의 세르파들은 대부분 열 살 때부터 포터(짐꾼)로 고용돼서 거의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3. 고산병 중기


루클라에서 시작된 산행은 사흘쯤 지나 남체(Namche, 3,440m)를 벗어났다. 그러자 설산의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문득 트레킹 준비를 하며 읽은 서적 중에 강찬모 화백의 일화가 떠올랐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쓴 준봉의 장엄함에 감탄한 나머지 강 화백은 그대로 엎드리며 삼보일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보통 걷기에도 쉽지 않은 고도에서 게다가 노화백이 엄청난 체력 손실과 산소량이 요구되는 삼보일배를 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든 행동임에 분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네팔에서 십여 년 간 체류한 책의 저자가 강 화백의 행동을 고산병 증세로 해석한 대목이었다. 트레커의 상당수가 높은 산에 오르면 육체의 극심한 피로 외에도 가벼운 정신 이상을 수반한 비이성적인 행동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전에 산사나이도 지적했지만, 사실 8,000m 고산준봉이 버티고 선 쿰부 지역의 트레커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고산병(High Altitude Sickness)이었다. 어쩌면 내가 정신을 잃는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푸르바의 발바닥에 본드 칠을 하는 해괴한 짓거리를 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이 병에 심하게 걸리면 트레킹을 즉시 접어야 하므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 노트에 정리한 고산병 유의사항을 읽고 또 읽었다.

첫째, 2,500m를 넘으면 어떤 고도에서도 고산병에 걸릴 수 있다. 이 병은 줄어든 산소량이 몸에 익숙해지지 않아 신체에 오는 이상 현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 병을 피해갈 수 있는 특수체질은 없다. 따라서 히말라야에서는 그 누구도 평등하다.

둘째, 남한의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의 고도가 1,950m인 것을 상기하면, 3,000m가 넘는 환경은 대부분 처음 접하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체력과 체질에 과신하는 사실 자체가 만용이다. 3,000m 지점에만 올라서도 공기 중 산소량은 68%로 떨어진다. 고도를 높일수록 기온, 기압, 산소량은 반비례하여 급감한다.

셋째, 고산병의 초기 증상은 심장의 두근거림에서 시작하여 두통과 식욕부진, 불면으로 이어지고 결국 구토와 호흡곤란에까지 이르러 급속도로 폐를 상하게 한다. 폐수종(Hape)이 오면 뇌에 손상을 주고 결국 뇌부종(Hace)을 일으켜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는 해마다 적지 않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넷째, 고산병을 치료하는 약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다이나막스’라는 이뇨제와 ‘비아그라’를 복용하기도 하지만 실제 약리효과보다는 ‘플라시보(심리적 위안)’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따라서 몸에 이상이 오면 여유를 갖고 휴식을 취하든가 무조건 낮은 고도로 하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한데, 가급적 하루에 고도차를 300미터 이상 올리지 말아야 하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조항, ‘300m 이상 금지와 완보’는 에베레스트 트래커의 강령인 셈이다.


* *


내가 처음 고산병에 위협을 느꼈을 때는 3,973m 지점인 몽라(Mong La)에서였다. 3,440m에 위치한 남체(Namche)를 떠난 후 얼마 안 되어 쏟아진 폭설 속에서 네 시간가량의 힘겨운 보행 끝에 겨우 산장에 도착했다. 고도를 무려 500미터 이상 올린 셈이어서 여장을 풀고 나자 심한 어지럼증이 몰려들었다. 눈에 젖은 등산화와 양말을 벗겨내는 일마저 버거웠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벌려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아무리 휴지로 닦아내도 코에서는 콧물이 질질 흘러나왔다. 몇 시간 동안 배낭을 메고 느린 걸음으로 눈보라 속에서 오르막길을 올랐기 때문에 컨디션이 극도로 좋지 않았다. 내가 오늘은 그만 여기서 쉬자고 하자 푸르바는 침을 튀기며 말렸다.

“마운틴 식니스 이즈 어 베리 베리 프라블럼! (고산병이 걸리면 큰 문제야)”

보통은 조금이라도 고도가 낮은 곳에서 숙박하기 위해 다음 행선지인 포르체 텡가(Phortse Drengka, 3,680m)까지 가는 게 일반적인 코스였다. 하지만 폭풍설이 더욱 거세지고 있어서 현재 상태로는 트레킹이 무리로 보였다. 무엇보다 나는 소주를 두세 병 마신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체력이 바닥났다고 하자 푸르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또 이렇게 대답했다.

“오케이, 노 프라블럼!”

저녁으로 네팔 식 백반인 ‘달밧’을 먹을 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몽롱했다. 음식을 씹는 동안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씹는 일마저 버거워 밥을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그 전까지 별다른 고소 증세가 없었으므로 나는 지나친 자신감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 기분 전환 겸 후식을 먹으려고 준비해온 초코파이를 배낭에서 찾았다. 술에 완전히 취한 것처럼 시야가 흐려지고 정신이 깜빡깜빡 나갔다. 게다가 손의 움직임이 급격히 둔해져서 어디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좁은 배낭 안을 한참이나 뒤져야 했다. 그런데 막상 꺼내보니 납작해야할 초코파이 봉지가 공처럼 터질듯 부풀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 제품이 부패한 줄로만 알았다.

“어, 이게 뭐야!”

푸르바가 껄껄대며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는 전에 한국팀을 안내한 경험이 있어서 초코파이를 알고 있었다. 푸르바는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하며 여러 단어를 동원해 내게 손짓 발짓으로 설명했다. 부패한 게 아니라 기압이 낮아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여분이 있으면 하나만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서 초코파이 한 봉지를 굴렸다. 그것은 데굴데굴 테이블을 가로질러 그의 자리로 굴러갔다.

그 순간부터 두려움이 엄습했다. 사실 우리의 폐 역시 두 개의 공기주머니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기압과 기온, 산소량이 떨어진 가운데 내 폐의 상태가 현재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되자 점점 트레킹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날이 새도록 기침을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쉼없이 심호흡을 하느라 코가 얼어붙기까지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푸르바는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유 아르 프라블럼, 프라블럼!”

거울을 보니 얼굴 전체가 빵처럼 부풀어 있었다.


* *


트레킹 12일째, 마체르모(Machhermo, 4,450m) 산장에서 일박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햇볕을 쬐러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세르파 노인이 간이의자에 앉아 저 멀리 설릉(雪陵)을 지그시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날씨가 청명했다. 사방에 두텁게 쌓인 눈이 햇빛을 반사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운동회 날의 만국기처럼 산장 앞뜰에 기둥을 높이 세워 줄로 연결한 색색의 룽다르가 바람에 날려 일제히 펄럭거렸다.

“오늘은 날씨가 꽤 좋죠?”

내가 묻자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지난 밤 산장 주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노인은 젊은 시절 각국 원정대에 속해 에베레스트 등정에 여러 번 참가했고 왕궁에 초대되어 무슨 훈장도 받았다고도 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눈이 엄청 올 게야.”

노인의 목소리에는 가래가 들끓었지만 영어는 유창했다. 나는 옆에 서서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동안 주고받았다. 그 때 어디선가 요란한 기계음 소리가 한동안 골짜기에 진동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죠?”

“헬리콥터가 뜬 게로군. 트레킹은 과정에 의미를 둬야지. 자꾸 목적에만 집착하면 저렇게 된다네.”

“무슨 일이 났나요? 여기까지 헬리콥터가 다 날아오고?”

“간혹 저렇게 날아오지. 나도 저 놈을 한번 타본 적이 있네. 크레바스에 빠졌을 때 오른쪽 무릎이 얼음 덩어리에 부딪쳐 쪼개졌지. 자일 덕분에 목숨은 구했지만 그 뒤로 산을 오르는 일을 그만 뒀어. 여기서 헬리콥터는 탈 만한 게 못 되지.”

노인이 내뿜는 담배연기를 맡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옆에 지팡이가 세워져 있었다.

“자네는 이곳이 처음이라 했는데 좀 괜찮은가?”

“얼마 전에 고산병에 걸려서 약간 고생을 했어요. 500m씩이나 고도를 올렸거든요. 제 정신이 아니었죠. 저녁을 먹는데 꼭 꿈속에서 밥을 코로 먹는 기분이었어요.”

노인은 가래를 끓어 올려 눈 위에 뱉고는 빠진 이를 드러내 보이며 클, 클, 클 웃었다.

“하긴 제 정신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나. 제 정신이면 도리어 못할 짓이지.”

나도 따라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어쩌면 지금도 순간순간 반응할 뿐이지 제 정신이 아닌지도 몰랐다.

“하긴 말이야, 가장 빨리 높은 곳에 올랐을 때를 생각해보면 제 정신이 아닐 때가 많았네. 그렇긴 해도 야금야금 오르게.”

“그래도 솔직히 걱정이 되네요.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앞에 펼쳐진 설원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먼지가 하얗게 일어났다. 그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뭔가를 뜯어먹는 야크 떼와 그 뒤로 눈부시게 솟아오른 설릉과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위를 선회하는 검은 독수리가 새삼 적막하게 보였다. 해발 4,500m의 풍경이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게.”

노인은 갑자기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더니 산장에 들어가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자, 받게나. 생명에 위협을 받을 때 이걸 열어서 히말라야의 신께 기도를 하게. 그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게야.”

노인이 건넨 것은 편지봉투 절반만 한 크기의 때 묻은 종이 봉투였다. 입구가 봉해져 있어서 내용물은 짐작할 수 없었다. 뜻밖의 선물에 나는 두 손을 모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럼 잘 가게. 나는 좀 들어가서 쉬어야겠네.”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노인은 다시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얼른 짐을 챙겨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묻고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정말 기도를 하면 들어줄까요?”

그러자 그는 빠진 이를 내보이며 클, 클, 클 웃더니 유쾌하게 대답하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자네, 크레디트 카드 있나?”

나는 손가락을 구부려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낄낄낄 따라 웃었다. 루클라 행 비행기를 타던 날부터 지금까지 열이틀 동안 내 바지 뒷주머니에는 항상 플라스틱의 딱딱한 카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산행 중 자리에 앉을 때마다 불편하게 엉덩이에 배겼다.



4. 고산병 말기


4,750m 지점에 위치한 고쿄의 나마스떼 산장에 도착하자 손님은 나 외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온 스콧(Scott)이라는 27세의 백인 청년이었다. 내가 산장의 썬룸(Sun room)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스콧은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난로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앉아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눠보니 스콧은 그 악명 높은 촐라패스(Cho La Pass)를 건너온 불굴의 트렉커였다. 촐라패스는 동부의 EBC(Everest Base Camp)와 서부의 고쿄 피크(Gokyo Peak)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지름길로 말 그대로 ‘졸라 패스하기 어려운’ 코스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겨울철에 크레바스가 덫처럼 깔려 있는 그 루트를 건너는 일은 히말라야에서 낳고 자란 세르파들조차도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콧은 자신의 최종 목적지인 고쿄 피크를 목전에 두고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미 이틀이나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난롯가에서 끊임없이 쇳소리가 섞인 기침을 터뜨렸다. 산장 주인을 포함해서 스콧의 세르파가 하산을 권유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더 기다려보자고 우기는 상황이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누구라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 날, 나는 푸르바와 가벼운 행장으로 고쿄 피크(5357m)를 등정했다. 에베레스트의 서부에서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이었다. 구름은 우리의 발아래에서도 흐르고 머리 위로도 흘렀다. 저 멀리 푸마리, 창제, 에베레스트, 눕체, 샤르피고, 로체샤, 마칼루, 촐라 피크 등 눈 덮인 8000미터 봉의 정수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새하얀 지구의 등뼈’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겐 그 풍경이 거짓말 같았다. 그래서 나는 푸르바가 알아듣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조용히 말했다.

“푸르바, 이상하지? 고생 끝에 마침내 이곳까지 왔는데 저 모습은 마치 사진 속 풍경처럼 정지된 느낌이야. 전혀 실재감이 없어.”

무슨 뜻인지 모르는 푸르바는 난처한 표정을 잠깐 짓다가는, 내가 말한 영어의 몇 단어만으로 대충 뜻을 짐작했는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오, 포토? 포토? 오케이, 노 프라블럼!”

하고는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나를 여러 컷 찍어줬다.


* *


고쿄 피크를 내려오는 도중에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눈은 올라왔던 길을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푸르바가 앞장서서 길을 열고 내가 뒤에서 그 길을 밟자마자 길은 다시 눈 속에 파묻혔다. 고글의 시야를 뿌옇게 막고 강풍과 함께 뺨을 후려치는 분설이었다. 급경사의 설면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큰일이어서 한걸음 한걸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간신히 산장에 되돌아왔을 때, 나는 쓰러질듯 방으로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낭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신음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통과 함께 몸 전체가 아프고 호흡 곤란과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이전에 몽라에서 앓았을 때보다 그 고통이 더욱 심했다. 간혹 눈을 뜨면 엄청난 바람소리와 함께 들뜬 나무 창틀 사이로 설탕 같은 분설이 하얗게 밀려들어오는 게 보였다. 방 안과 밖의 경계는 오로지 나무판자 한 장에 불과했다. 먼 곳에서 눈사태 일어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눈은 이틀 동안이나 계속 퍼부었다. 칠팔천 미터 산군의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광풍에 실려 무자비하게 휘몰아치거나 포악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폭풍설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산장 안에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따뜻한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편히 쉬자 컨디션이 점차 회복됐다.

산장 주인과 푸르바, 스콧의 세르파는 대부분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와 스콧은 썬룸에서 낮 시간을 함께 보냈다. 주로 나는 야크 똥을 태우는 무쇠 난로 앞에 앉아 아내에게 긴 편지를 썼다. 희박한 산소 속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 어떤지, 이곳의 눈은 서울의 눈과 어떻게 다른지, 밤이면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추위를 견디며 침낭 안에서 자는 법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썼다. 물론 서울에 편지가 도착하려면 한 달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편지보다 내가 먼저 한국에 도착할 게 분명했다.

한편 스콧은 내가 고쿄 피크를 다녀오자 더욱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증세는 회복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호흡과 기침이 더욱 거칠어지고 입술과 손톱이 점점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젠 폭설 때문에 하산을 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내가 편지를 쓰는 동안 스콧은 난로 옆 긴 의자에 누워서 밭은기침을 하며 쑥 들어간 눈을 껌뻑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무서워.”

“뭐가?”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잖아.”

“죽긴 왜 죽어.”

나는 녀석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특별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전에 만났던 세르파 노인에게서 받은 선물이 떠올랐다. 나는 곧장 방으로 뛰어가 배낭에서 때 묻은 봉투를 꺼내왔다. 노인은 생명에 위협을 받을 때 이걸 뿌리면서 히말라야의 신께 기도를 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봉투를 열자 기도문처럼 보이는 얇은 종이 한 장과 쌀이 들어있었다. 비행기 옆 좌석에 앉았던 네팔 할머니의 의식을 나는 흉내냈다.

“스콧, 내가 주문을 외워줄게. 분명 효과가 있을 거야.”

나는 기도를 하며 내가 그동안 익힌 모든 네팔 단어를 총동원했다.

“아조르(저기요), 나마스떼(안녕하세요), 옴마니 반메홈(기도합니다), 버띠(빛), 우트느(일어나다), 구하르(도와주세요), 단니바드(고맙습니다) 베리베뚱라(또 뵐게요)!”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기도문을 빠르게 반복하여 중얼거리며 쌀알을 공중에 흩뿌렸다. 스콧의 털모자 위에, 창백한 얼굴 위에,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 위에 쌀알이 떨어졌다. 나의 엉터리 의식에 녀석은 희미하게 키득거리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 물음은 내가 세르파 노인에게 한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정말 그 기도를 들어줄까?”

나는 이를 내보이며 클, 클, 클 웃고는 노인이 그랬듯 유쾌하게 대답했다.

“스콧, 크레디트 카드 있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를 가리켰다.

“그럼 됐잖아. 죽지 않는다고.”

내가 부엌으로 따또빠니(뜨거운 물)를 부탁하러 갔을 때 푸르바는 스콧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힘주어 말했다.

“히 이즈 어 베리베리 빅 프라블럼!”


* *


눈이 그치던 그 다음날, 스콧은 드디어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를 빨리 카트만두의 병원으로 후송해야만 했다.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면서도 녀석은 뒷주머니에서 크레디트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다. 환자가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으므로 강제로 산을 내려가게 할 수밖에 없었다.

끝내 나는 녀석의 몸을 뒤집어 바지 뒷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신분질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네팔에서 세르파는 함부로 여행객의 몸에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주머니를 뒤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가 카드를 건네주자 스콧의 세르파는 기다렸다는 듯 결제를 하기 위해 산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산장 주인과 푸르바는 헬기장까지의 이송을 위해 당나귀를 불러왔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곧 죽어가는 응급상황일지라도 구조용 헬기가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트레킹을 하며 알게 되었다. 혹여 날아오더라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도착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오직 크레디트 카드에서 삼천 달러가 결제되는 순간에만 카트만두에서 헬리콥터가 이륙한다는 사실까지 결국 알게 되었다. 삼백만 원 정도와 자신의 목숨을 바꿀 사람은 그 누구도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트레커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앉을 때마다 엉덩이에 배기는 크레디트 카드는, 에베레스트에서 고산병에 대비해 스스로를 경계하는 일종의 부적임과 동시에 불문율에 부쳐진 채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하는 필수품이었다.



5. 고산병 후기


“와우, 산사나이가 다 됐네!”

아내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주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얼음이 배겨 빨갛게 언 코와 뺨, 까맣게 탄 입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얼굴로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잘 들어봐. 정말 흥미로운 일이 있거든!”

여장을 풀자마자 나는 아내에게 제일 먼저 스콧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녀석이 헬리콥터에 실려 내려가는 대목에서 예상대로 아내는 매우 놀라워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이십 일간 엉덩이 아래에서 수난을 당해 금이 가고 도색이 벗겨진 크레디트 카드를 꺼내 보이며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봐라, 나 이거 한번도 안 썼다! 그러니까 삼백만 원 번 셈이지! 잘 했지?”

내 말에 아내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참동안이나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처음에 나는 아내의 그런 반응이 카드의 돈을 낭비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남편이 기특해서 웃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내의 다음 말을 듣고는 엄청난 눈사태에 휩쓸려 몇 천 미터 아래로 까마득히 내던져진 듯한 현기증이 일었다.

“어머, 어떡하니. 그 카드는 한도액이 이백만 원밖에 안 돼!”문장 웹진/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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