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일지- The Police Story No. 1

김종은





 

07시 30분(출근) : 이틀 전까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았는데 싸이카의 핸들이 어쩐지 절로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만 같았다. 지난주 폭주족 일제단속이랍시고 제법 속도를 붙였던 것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올림픽공원에 이르렀을 때에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문에 도착하기까지 그는 잔뜩 어깨에 힘을 준 채로 오토바이를 몰아야 했다.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속도를 꽤 늦춰야 했는데 그랬더니 자꾸만 거리의 호프집 간판들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와 또 제대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호프집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것이었다. 정문에 도착해 헬멧을 벗으려 팔을 올렸더니 어깨 언저리에 시큼한 느낌이 들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다음에야 그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잠이 부족한 것일까.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내린 것이었다.

“박 경장님, 피곤하신가 봐요.”

정문에 서 있던 인상 좋은 전경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말했다. 지난주 훈련을 마치고 들어왔다는 막내 녀석이었다. 번들거리는 전경 모자에는 작대기가 나란히 두 개, 그 아래 녀석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지난밤의 피로가 역시 나란히 쌓여 있었다. 밤새 사연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맞아줬겠다 싶은 어린 녀석이 애처로워, 또 자신의 군복무 시절도 떠오르고 해서 박 경장은 전경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였다. 교통과 소속 경찰관들 대부분은 정문 근무 전경들과 사이가 좋았다.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그들과 얼굴을 마주쳐야 했기 때문이다.

조부의 제사에 참석하는 바람에 그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였다. 그 밤 아버지는 자신의 막내아들인 박 경장에게만 연거푸 술을 따르라 했다. 그것이 무언가 부탁하고 싶다는 노부의 포즈라는 것을 형제들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를 제외한 형들이 그런 아버지의 포즈를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밤 아버지의 잔은 막내아들 앞으로만 향했다.

얼마 전부터 그의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호프집을 하나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벌써 상호까지 지어 놓은 듯 아버지의 열의는 대단했다. 그러나 형들은 이미 아버지에게 더 이상은 절대 안 된다 못박아둔 터였다. 올봄 노래방을 하고 싶다는 성화에 못내 적금을 털어 부었던 그의 둘째형은 급기야 6개월 간 아버지가 해놓은 것이라고는 팔백만 원에 이르는 적자가 전부 아니냐는 말까지 꺼냈다. 화가 단단히 난 둘째형은 아마도 그것을 단기적인 투자쯤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순간 깜짝 놀란 둘째형수가 바로 둘째형의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둘째형은 그 적금 하나로 자신의 도리를 다한 것 아니냐는 투로 되레 형수를 쏘아봤다. 결국 제사를 위해 모인 가족 분위기는 순식간에 데면데면해지고 말았다.

“생각해봐라. 그게 우리 처지에 작은 돈이냐? 그건 그렇고 솔직히 이렇게 됐으면 형님이 얼마라도 돌려주셔야 되는 거죠. 형님이야 잘 버시지만 우리한텐 보통 돈이 아니란 말입니다.”

둘째형의 말에 큰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둘째형은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았으니 그만두라는, 다분히 귀찮다는 투였으니 그도 그럴 법했다. 둘째형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오히려 큰형수였다.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른 것이 큰형수는 그 한마디에 단단히 골이 난 모양이었다.

“다 똑같은 자식인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전 아버님 돈 구경도 못해봤는데. 자네도 참 그래. 돈 팔백이 아까워 그러는가? 참 장하네. 그럼 자네가 아버님을 모시든가.”

둘째형에게 대놓고 말하기는 껄끄러웠던지 큰형수는 둘째형수를 향해 눈을 흘기며 그렇게 말을 이었다. 갑자기 자기 앞에 떨어진 불똥에 둘째형수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이 여자가. 거 참, 시끄럽다니까. 보세요, 아버님. 또 뭘 하시겠다는 거예요?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잖아. 형제들 괜히 싸움 나게 하실 겁니까? 그 나이에 술 판다 하면 사람들이 누구 욕을 먼저 할지 생각을 하셔야지. 배불러서 그래, 배불러서.”

묵직한 큰형의 한마디는 그들 가족에게 여전히 유효했다. 식구 모두는 꾸지람이라도 들은 듯 잠자코 입을 다물고는 잘린 배 조각을 입 안에 넣은 후 오물거리기만 했다. 박 경장도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형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배 한 조각을 골라냈다. 그러나 이내 어쩐지 형이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형의 그 말이 그에게는 나는 할 만큼 했으니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 고 떠미는 듯 여겨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내 끄덕이던 고개를 멈추고는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곧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개운치가 않아서였다. 형의 한마디 말에 그런 것까지 계산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 스스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다.


08시 20분(교통지도계 도착) : 경찰서에 별관으로 마련된 교통지도계 건물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1층은 경찰서 소속 전투경찰들의 내무반으로 사용됐고, 2층은 교통지도계와 조사계가 반반씩 나누어 쓰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것이라 얼핏 보면 가정집 같았다. 사무실로 통하는 계단 아래에 서서 박 경장은 그렇듯 지난밤 일을 떠올리다 담배를 하나 꺼내 문 참이었다. 때마침 울타리 너머 소방서의 직원 한 명이 꾸벅 인사를 건네기에 박 경장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담배에 막 불을 붙이려는 찰나 교통과장이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소방서 직원에게 안부라도 한마디 건넬 수 있었을 터였다. 계단을 오르려다 그를 발견한 교통과장은 한 손에 둘둘 말린 수건을 든 채로 그를 쏘아봤다. 교통과장의 볼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는 하늘로 솟구친 채였다. 사우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하필 이렇게 맞닥뜨릴 것은 또 뭔가 싶어 박 경장은 선생에게 들킨 고교생처럼 화닥 놀라 채 한 모금 빨지도 못한 담배를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근무복 입고 담배 피우지 말라니까. 가오 떨어지게.”

“일찍 나오셨습니다. 과장님.”

교통과장을 향한 박 경장의 거수경례는 그의 대꾸만큼이나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것이 몹시 짜증난다는 듯 교통과장은 한마디 내뱉었다.

“박 경장이, 요샌 사고 안 치나?”

“예. 열심히 합니다.”

역시나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박 경장은 후회하고 있었다.

지난밤 아버지는 한사코 물러설 줄 몰랐다. 호프집은 절대 망할 수가 없는 것이라 극구 강조하면서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눈치만 연신 살폈다. 그는 장사는 핑계고 아마도 얼마든 돈을 건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차라리 얼마가 필요하니 얼마를 내놓아라,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박 경장으로서는 그 어느 편이든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그가 묵묵히 재차 아버지의 손에 들린 소주잔에 술을 채우기만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교통경찰 하면 이래저래 생기는 게 많나?”

아버지로서는 어렵게 꺼낸 말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자신의 큰형을 탓했다. 고추 농사를 짓던 시절의 아버지와는 좀체 어울려 보이지 않는 그 말이 어찌된 일인지 형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여겨진 까닭에서였다. 그가 언제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버지, 탄탄한 목에 수건을 두르고 손부채질을 해대던 어느 여름날의 아버지는 이제 어디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 아버지는 호프집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한마디면 형제 모두는 머리를 조아렸고, 그래서 그는 광활했던 그 고추밭이 자신의 평생 몫이 될 것이라 여겼다. 때때로 그는 그때를 추억하곤 했다. 아버지가 변한 것은 큰형님 탓일까. 서울로 가야 한다는 큰형의 말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셈이었으니 그의 생각은 옳을지 몰랐다. 그러나 형의 손에 이끌려 땅을 정리하고 서울에 온 지 꼭 10년 만에 아버지가 변해버린 것이 전적으로 형 탓이라 하기에는 또 무엇인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큰형에게는 당장에라도 자신의 사업을 위해 팔아치웠던 고추밭을 아버지에게 다시 돌려줄 여력이 있었지만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떠올리자면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아서였다.

“이제와 공부는 무리니까 넌 순사나 해라.”

돌이켜보니 그가 경찰관이 된 것도 실은 형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치에 밝은 큰형의 선택은 언제나 탁월해서 그에게는 실패라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조언이라기보다는 명령이거나 체념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박 경장은 여기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도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밤 그는 이미 풀이 죽어버린 아버지의 어깨에 다시금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공무원이 무슨 돈이 있겠어. 지들 식구한테 들어가는 돈도 빠듯할 텐데.”

그만 좀 하라는 큰형의 통박과 물러터진 막내아들이 단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고 계속 따라댄 술에 아버지는 항복하고 말았다. 그 모두가 몹시 서운했던지 아버지는 체념처럼 입을 뗐다. 아버지는 형제들을 향해 늦었으니 그만 모두들 돌아가라 엄숙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열심히 살라 했고 그래서 그는 건강하시라 대꾸했다. 사실 그것만큼은 진심이었다.

박 경장은 형제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도 한동안 점퍼를 챙겨 입지 못했다. 그가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자리를 지킨 까닭은 말랑말랑하게 변해버린 것 같은 아버지의 어깨 탓이었다. 그 밤 박 경장은 꼭 그래야 할 것만 같아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어찌된 일인지 그렇지 않고서는 발을 뗄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아버지의 집을 빠져나오던 길에 아내는 너무 늦어졌다며 그에게 투정을 부렸다.

“돈 문제는 아니야. 한 달에 이백쯤 드려도 아버님은 부족하다 하실 텐데 뭐.”

그것은 위로였지만 또 옳은 말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편치 않았다. 어느덧 제법 차가워진 10월의 새벽 공기는 아내의 등과 닮아 있었다. 그는 또 그것이 서러워 괜히 걸음을 늦췄다.

그들 부부가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다. 피로는 익숙한 것이었지만 아버지의 침묵은 그렇지 않았던 박 경장은 그 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박 경장은 후회하고 있었다.


09시(교통지도계 아침조회) : 교통지도계의 조회시간은 제대로 지켜지는 법이 없었다. 관내에 뿔뿔이 흩어져 밤새 철야근무에 시달린 갑부 경찰관들이 속속 모여들며 지난밤의 사건들을 영웅담처럼 주고받는 동안 비번으로 하루를 쉬고 새로 철야근무를 위해 출근한 을부 경찰관들은 상황실에 들러 총기를 수령한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것이 교통지도계의 일상적인 아침 풍경이었다. 보통 교통지도계의 아침조회란 그래야 시작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철야근무를 한 쪽의 발목은 늘 예정에 없던 대형 교통사고나 연장된 음주 단속, 혹은 깜빡 잠에 빠져 돌아오지 못한 순찰차 근무 직원에게 잡히기 일쑤였다. 새로 출근하는 쪽은 우습게도 늘 교통체증에 발목을 잡혔다. 교통경찰관이 한데 모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고, 때문에 조회시간은 10분 20분쯤 훌쩍 쉽게 넘어가기가 예사였다.

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황실에 들러 권총을 수령한 다음 일지에 사인을 하던 박 경장이 그만 권총을 놓치고 만 것은 군데군데 코팅이 벗겨진 38구경 리볼버가 어쩐지 아버지의 말랑말랑한 어깨처럼 보인 까닭이었다. 총기담당 경찰관이 권총을 그에게 건네던 순간 그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타인을 공격해보지 못했을 권총은 경찰관에게 이미 무기로서의 가치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 역시도 언젠가 동료들과 함께 과연 이 총이 나가기는 하는 것일까, 하면서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리볼버는 보란 듯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 그는 마치 누군가 자신을 향해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라 착각했다.

문제의 리볼버는 상황실 중앙에 놓인 탁자 아래로 떨어지자마자 펑 소리와 함께 격발됐고 동시에 상황실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는 일제히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8평쯤 되는 상황실, 그 좁은 공간에서 터진 총소리인지라 다들 당장 먹먹해진 귀를 감당하기도 어려웠을 터인데, 사람들은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 먼저 살폈다. 행여 누군가 죽지는 않았을까, 누군가 피를 흘리게 된 것은 아닐까, 아니 대체 어떤 때려죽일 놈이 총을 쏜 것일까. 그들의 눈초리에는 그렇듯 매서운 처벌의 기운이 가득했다. 황급히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던 상황실의 경찰관과 의경들 대부분은 그런 눈초리로 박 경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상황실 안 사람들 모두가 중앙의 그를 두고 우러러보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의외로 그것이 격발될 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태연했다. 아니 묘하게 올라간 그의 입 꼬리는 어쩐지 그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퍼지는 화약 냄새가 그의 코를 스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사실 그는 기묘한 만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놀란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때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던 박 경장은 그래서 얼핏 미소까지 머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실탄이야? 뭐야? 공포탄이야?”

상황실장이 소리쳤을 때에야 비로소 침묵이 깨졌다. 상황실은 이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의경들은 당장 모니터 등속을 문질러대며 기기들부터 살폈다. 옆방 경무과에서도 몇몇 경찰관들이 몰려들어 상황실 안은 갑작스레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공포탄인 것 같은데요.”

“니미, 우리 박 경장은 참 가지가지 하신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박 경장은 낯선 곳에 갓 도착한 먼 이국의 여행자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박 경장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허리를 굽혀댔다. 밤새 상황실장을 맡았던 방범과장은 또 하나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귀찮다는 듯 애꿎은 상황판을 향해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그로서도 짜증나는 일임이 분명했을 터라 박 경장은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아니 진심으로 미안했다. 30분만 지나면 교대였는데 그런 사고가 터져버린 것을 조직이 온전히 박 경장 탓으로만 돌릴 리는 없었다.

“교통과장 오라고 해!”

경찰서 안에서 유일하게 교통과장보다 나이가 많은 방범과장이었다. 곧 정년을 앞둔 방범과장은 부속실에 전화부터 넣어 그나마 경찰서에 아직 서장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안도했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는 그렇게 쏘아 붙였다. 그때 박 경장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것은 방범과장의 호통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찌됐든 다시금 공포탄 한 발을 채워야 권총을 메고 근무를 나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우려였다. 물론 그 방법에 대해 그에게 대꾸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박 경장이 교통지도계 아침조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격발 관련 사유서를 작성하느라 오전 시간을 허비해버린 까닭이었다.

격발 사건 때문에 뒤늦게 근무일지를 챙겨든 박 경장은 용지를 받아들자마자 자신이 오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점검했다. 사실 교통경찰관의 근무일지라는 것은 그다지 복잡할 것이 없었지만 사거리 근무를 몇 시간이나 해야 하는지 또 단속 시간은 언제인지 음주 단속은 몇 시까지 해야 하는지 그리고 휴게는 몇 시부터인지 등을 점검하지 않으면 하루가 꼬이기 마련인지라 꼭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근무일지에는 급히 수정된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근무일지를 보면서 오늘 하루가 굉장히 고단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서무 보조를 맡고 있는 하얀 얼굴의 의경은 그것이 제 죄라도 되는 양 격발 사건 때문에 오전 사거리 근무를 놓쳤으니 저녁에 부득이 근무가 연장될 수밖에 없다, 고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의 총에서 공포탄이 터져버린 일이 이미 경찰서 안에 속속들이 퍼진 듯했다.


10시~12시(휴게) : 근무가 뒤로 몰리는 바람에 출근하자마자 휴게였다. 박 경장으로서는 뜻밖의 휴식시간이라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집에 가 볼까, 아니면 싸이카를 점검할까, 초소로 돌아가 잠시 눈을 붙여볼까, 그렇듯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또 그러기에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박 경장은 교통센터에 전화를 걸어 당일 근무자인 이 순경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 순경이 일러준 것은 박 경장이 참석하지 못했던 아침조회 풍경이었다. 방범과장에게 아침부터 이 새끼 저 새끼 소리를 듣게 된 교통과장의 심기가 편할 리는 없어서 조회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는 말로 이 순경은 목청을 높여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갑부계장이 과장한테 살살거려서 을부 분위기 좋지 않은 판에 선배가 또 한 건 했어요. 잘 좀 합시다. 우리까지 피곤하잖아.”


13시~14시(식사) : 초소에서 자장이나 하나 시켜 먹을까 했다가 귀찮아져 사거리 빌딩 1층의 롯데리아에 들렀다. 새로 나왔다는 햄버거 맛이 신통치가 않아 박 경장은 또 한 번 자신의 선택에 후회해야 했다.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 형편없는 맛의 햄버거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오늘 하루가 뭔가 꼬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개운치 않은 맛의 햄버거를 끝까지 먹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을 터였다. 때마침 퇴근해야 했을 갑부계장이 의경들을 몰고 롯데리아의 유리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광경을 확인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입맛이 똑 떨어져버린 것이었다. 사복 차림의 갑부계장과 역시나 사복 차림인 갑부 근무 의경들의 걸음걸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당당하기만 했다.

“여어, 박 경장이네. 밥을 먹어야지 이런 거 먹어서 힘이나 쓰겠나.”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우리 애들 수고해서 좀 먹이러 왔지. 여기 뭐가 맛있나? 늬들 맘대로 골라 봐. 왜 가려고?”

“저는, 속이 안 좋아서요.”

참으로 초소에서 자장이나 시켜 먹을 것을 그랬다. 갑부계장은 의경들을 거느리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조달청 지급 볼펜처럼 아이들을 함부로 굴려 먹다가도 밥이며 음식이며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아서 몇몇 의경들은 터무니없게도 그를 따르고 있었다. 갑부가 을부보다 배 이상 실적을 올리는 원동력은 계장의 능력이라기보다는 그것이었다.

“잘 좀 해, 사고치지 말고. 눈 똑바로 뜨고 다니고.”

지난주 박 경장은 중앙선을 침범한 세단 운전자를 단속한 일이 있었다. 미사리 인근에 러브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한적하기만 했던 박 경장 초소 인근 4차로 도로에도 제법 세단들이 지나치는 일이 잦게 된 터였다. 박 경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거수경례를 붙이고 위반사항을 고지한 다음 운전자에게 면허증을 제시해줄 것을 정중히 요구했다. 배기량 높은 운전자의 차량은 정차하자마자 그렁그렁 야생마처럼 울어댔고 차창을 내려 빼꼼히 머리를 내민 사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면허증 제시해주십시오.”

 “어, 그래, 그래. 어디 소속인가? 미안하게 됐긴 한데 내가 좀 바빠. 식구끼리 그러지 말자고. 나 본청에 있어.”

 “그렇다면 더 잘 지키셨어야죠.”

 “알았어, 이 친구야. 이 친구 참 올곧네. 그래, 정직해. 좋아. 알았으니까 나 갈게.”

 50대로 보이는 문제의 운전자 조수석에는 빨간 립스틱이 좀처럼 어울려 보이지 않는 여자가 앉아 껌을 씹으며 초록색 망사 스타킹을 쓸어 올리고 있었다. 고급 차량을 단속하다 보면 늘 있는 일이어서 박 경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금 운전자에게 면허증 제시를 요청했다. 내가 누군지 몰라, 아무개 국회의원 보좌관인데 공무가 바빠서 그래, 는 그나마 점잖은 편이었고, 자신이 경찰청장의 아들이라는 둥 제가 실은 대통령의 배다른 동생이거든요, 하고 거침없이 말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내가 누군지 알 건 없고 이거나 받아, 하면서 3만 원쯤 근무복 주머니에 다짜고짜 찔러대는 운전자도 빠지지는 않았다. 그렇듯 그 유형이라는 것이 실로 다양하기만 해서 그런 것들을 귀담아 듣다 보면 단속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잦은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 경장이 믿지 않았던 것은 그런 사람들이 벌건 대낮에 러브호텔로 몰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싶은 것이었다. 끝내 물러서지 않은 박 경장에게 위반 사실을 고지 받은 운전자는 비로소 욕설을 내뱉고는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 나중에 봐. 내가 의의신청 할 테니까.”

그래서 의의신청 절차까지 친절히 일러주었던 것인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가 정말 본청 직원이었다고 갑부계장이 그에게 일러줬으니, 박 경장의 행동은 정말 실수였는지 몰랐다. 하필 갑부 지도계장의 선배라니 박 경장은 난감하기만 했다. 그가 박 경장에게 비아냥대듯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 한 것은 그 일을 두고 한 말이었다. 순사가 순사를 알아보지 못하면 누가 알아보겠느냐고 갑부계장은 가슴을 치며 말했다.


14시~18시(단속 및 계도) : 박 경장은 자신의 초소로 돌아와 담배를 하나 빼물었다. 교통과장의 말대로 가오를 생각해야 했으니 먼저 주변부터 살펴야 했다. 가을바람이 제법 차갑게 달라붙었다. 그처럼 순찰차를 타지 못하는 초소장들에게 추위란 그 무엇보다 매섭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귀마개까지 걸쳐도 싸이카를 몰다 보면 바람이 뼛속까지 스미곤 해서 곰이나 뱀처럼 저도 모르게 겨울을 건너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났던 것이다.

박 경장이 너덜너덜한 싸이카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속도가 제대로 붙지 않는 대형 트럭이거나 소형 화물차거나 고교생들이 모는 이륜차거나 시간에 쫓겨 헬멧 쓰는 것을 깜빡 잊어버린 배달 오토바이거나 그도 아니면 경차가 고작이었다. 그런 차에는 온몸에 흙을 덕지덕지 바른 돼지가 있거나, 호떡 굽는 기계가 달렸거나, 눈두덩이도 제대로 칠하지 못하는 여고생이 타고 있거나, 전단지 따위가 널려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사람들, 하루 일해 하루를 먹는다는 사람들, 아니면 아직 머리꼭지가 채 마르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런 학생들을 상대로 무슨 전적을 올릴 수 있을까. 박 경장의 초소 인근은 관내에서조차 후미지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사거리에서 1.5km만 벗어나도 논이 나왔고 소가 울었다. 기껏 번화가 축에 든다는 그의 초소 사거리라는 곳도 덜렁 고등학교만 둘이었다.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주요 위반사항 단속 철저 기간이었지만, 그가 서 있는 곳은 무단횡단이나 안전장구 미착용 등을 잡다보면 하루해가 훌쩍 지는 그런 곳에 불과했다. 88도로를 끼고 백화점 사거리까지 점령한 갑부 경찰관들이 순찰차에 올라 전광석화처럼 주요 5대 위반사항을 어긴 운전자들을 단속하는 동안 박 경장은 경고장만 달랑 8장 발부했다. 횡단보도에서 넘어진 할머니 손을 잡아주고 사거리 행운식당 앞 주차장에 투기된 쓰레기들을 주인과 함께 정리했던 것이다.


18시~20시(사거리 근무) : 박 경장의 사거리에는 러시아워라는 것이 없었다. 외떨어진 교통초소 근무에 그나마 장점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퇴근시간 근무였지만 4차로는 정체를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횡횡한 사거리에 서서 지는 석양을 한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행여 무슨 책이라도 잡으려는 듯 교통과장을 태운 순찰 1호가 1시간 동안 2번이나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개의치 않기로 하고 그때마다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교통과장을 비롯한 몇몇 직원들은 그를 다른 과로 보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박 경장은 다시금 파출소 근무를 하거나, 아니면 책상 앞에 앉아 서류 따위를 정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노을은 아름답기만 했다. 호프집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 박 경장의 등 뒤로 사위는 어둑해지고 있었다.


20시~21시(식사) : 늘 그래왔듯 저녁은 행운안경원 사거리 앞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몇몇 경찰관들은 보통 모여서 식사를 했지만 그 누구도 박 경장에게 함께 하자 무전을 보내는 법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박 경장도 혼자 저녁식사를 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되레 이제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면 괜히 주눅이 들고 떨리기만 해서 달갑지가 않았다. 그가 엑스반도와 모자를 벗고 식당 낡은 의자에 지친 몸을 부렸을 때 식당의 이 사장은 그에게 따뜻한 보리차를 건넸다. 절뚝거리는 이 사장의 오른쪽 다리는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더 삐걱거릴 터였다. 일과에 지친 그의 머리칼은 새하얀 근무모에 눌려 기름진 채로 납작해져 있었는데 식당의 이 사장은 그런 박 경장의 머리칼을 스스럼없이 제 손으로 훌훌 털어줬다. 공교롭게도 식당의 이 사장은 박 경장의 아버지와 나이도, 또 생김마저 비슷했다. 그래서 박 경장은 그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강아지는 잘 크고 있나 모르겠네.”

“아, 애가 좀 약하긴 한데 그래도 잘 크고 있어요.”

그때가 정확히 언제였을까. 아이가 강아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때가 있었다. 하루하루에 지쳐 그만 강아지를 깜박 잊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통지도계로 배명 받은 이후 박 경장에게 집은 잠자는 곳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곳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강아지.”

대체 어디서 그런 것을 봤는지 다짜고짜 방에서도 키울 수 있는 작은 강아지를 사 내라고 아이가 없던 투정을 부려댔던 것이다. 박 경장의 여러 가지 형편상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지만 아이가 그런 것을 헤아리기를 바라는 것 역시 무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형편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개를 집 안에서 키운다는 것이 그로서는 마뜩치가 않았다. 모름지기 개란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것인데 그의 아파트는 좁았고 무엇보다 사방이 단지로만 둘러싸인 그곳을 한갓 미물인 강아지도 답답해하지 않을까 싶은 우려 때문이었다. 박 경장의 22평 아파트는 세 식구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그렇게 여러 번 달래봤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여서 박 경장 부부는 한동안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 몰랐다.

“동생이 필요해.”

“동생이라니?”

“강아지.”

“강아지?”

“강아지.”

“강아지가 네 동생이야?”

“응.”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강아지를 동생이라 부르고 있다며 아내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면서 그렇게 그 한마디가 안쓰러웠노라,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노라, 그에게 어렵사리 고백했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태어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포메라니안을 집으로 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행운이었다. 이 사장이 그의 마음을 헤아려 한 마리 건네지 않았다면 박 경장과 아내는 여전히 아이를 달래고만 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그가 강아지를 구한다는 소문이 거리에 퍼졌고 사거리에서 그의 평판은 대체로 좋은 편이었으니, 막내동생이 경기도 인근 어디에서 애완견 분양 일을 한다던 이 사장이 팔을 걷어붙인 것은 예정된 일이었는지 몰랐다.

“이게 굉장히 비싸다고 하던데 그냥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키우는 게 돈이 더 들어. 박 경장님이니까 드리지. 다른 사람 같으면 돈 받지.”

마음 좋은 이 사장님께 사례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는데 돌이켜보니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녀석을 건넸을 때 아이가 지어 보였던 표정을 그는 여태 잊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환히 불 밝힌 전구처럼 반짝였다. 아이는 참으로 제 형제를 만난 듯 기뻐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박 경장은 그것 봐, 진작 동생 하나 만들어 줬으면 좋았을 거야, 라는 말을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꺼낼 뻔했다.

“가모리!”

아이는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뭐?”

“얘 이름이 가모리.”

“가모리가 뭐야?”

“가모리는, 가모리.”

어째선지 아내는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다 했다. 의사는 그것이 이 도시 탓이라 했고, 그때에도 그는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웃으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만 가모리는 그렇지 못했다. 잔병치레가 잦았다. 사료를 거르기가 일쑤였고 어떤 날은 아예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로 하루 종일 꼼짝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가뜩이나 동그란 눈이 어찌나 슬퍼 보였는지 몰랐고 강아지를 데려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이고 가모리를 품에 안은 채로 동물병원을 찾았다. 아이의 걱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이왕이면 아이가 없을 때 시간을 내려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다.

“그러니까 면역력이 약해요. 가모리뿐만 아니라 요즘 애들이 다 그래요. 아시겠지만 이런 데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게 사실은.”

“그러니까 딱히 치료할 만한 게 없는 모양이에요.”

“이를테면 그런 셈이에요.”

의사의 말을 듣고 그는 다시금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역시 이 도시 탓이라는 게 아닐까 싶어 괜히 부아가 치민 것이었다. 어찌됐든 의사의 요지는 딱히 치료할 만한 병이 아니라는 것이었으니, 언제부터인가 그가 가모리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가모리가 또 아파.”

“괜찮아질 거야.”

“병원에 가야 해.”

“의사 선생님이 푹 쉬면 낫는다 했어.”

“병원에 가야 해.”

아이가 다그칠 때마다 그는 그것을 어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고는 했다. 아이에게 도시 탓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복이 쌓인 흰쌀밥을 한 수저 가득 우겨 넣으며 박 경장은 가모리를 생각했다. 사거리에는 여전히 끊임없이 꼬리를 문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그런 그에게 천천히 먹으라고 충고했다.


22시~익일 04시(음주단속) : 아침의 기우는 적중했다. 음주단속 실적이라도 올려 격발 사고의 실수를 그나마 만회 해야겠다 싶어 저녁도 든든히 먹었건만 일은 여지없이 또 꼬였다. 스포츠카 한 대가 음주측정을 거부하고 달아나는 통에 그 차량을 쫓느라 새벽을 허비하고 만 것이다. 다짜고짜 조수석의 문을 닫아버린 운전자는 박 경장의 팔이 문틈에 끼인 줄도 모르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댔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근무복 바지가 아스콘에 쓸려 찢어졌고 어깨에서 무릎에 이르기까지 찰과상은 제법 컸다. 병원에 가 보라는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더니 교통계장은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박 경장에게 그럼 오전 조회시간까지 집에서 좀 쉬다 오라 일렀다. 연신 괜찮다고 했지만 그나마 절친한 후배인 김 순경이 등을 떼미는 통에 박 경장은 헬멧을 쓰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 비명소리가 꿈인 줄만 알았다.

잠에서 깼을 때 딸아이는 묵묵히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살려내라 소리치지도 않았고 한 마리 더 사내라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 숙인 채 아이는 눈물만 흘렸다. 어린 나이와 도무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그런 울음이었다. 툭툭 떨어져 내리는 눈물방울에 아이의 분홍색 양말이 속절없이 젖어드는 참이었다.

그제야 박 경장은 퍼뜩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내였지만 그에게 아내의 목소리는 꽤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무어라 대답할 줄 몰라 허둥대야만 댔다.

“뭐가?”

“애가 울고 있잖아.”

“뚝.”

역시 적절한 대답이라 할 수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싶은 낭패감보다 며칠째 풀리지 않은 피로가 먼저 그를 맞은 탓이었다. 그는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그만 그렇게 대꾸하고 말았다.

“뚝.”

그렇게 그는 다시 잠들고만 싶었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 뒤돌아서면서 그런 그가 야속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 턱없이 부족한 잠 때문인지 아내의 얼굴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뭐 이런 꿈이 다 있나 싶어 그는 손사래를 친 다음 애써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잠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뚝.”

애초에 그는 그것이 꿈이라 생각했다.

“어째 사람이 그 모양이야. 점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그는 저도 모르게 벽지만 발라진 벽에 대고는 물 한 잔만, 이라고 말했다. 찰과상을 입은 오른쪽 어깨가 칼에 베인 듯 쓰라렸다. 아내가 소리 나게 문을 닫고 방을 빠져나간 지 이미 오래였다.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아이 방에서 오가는 아이와 아내의 희미한 발걸음 소리가 전부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참 이상한 꿈이다 싶어 다시금 질끈 눈을 감은 것이었다.

“아빠 때문에 죽은 거야.”

“그런 게 아니라니까.”

얼마쯤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해. 시간 다 됐어. 일어나. 경찰서 안 가?”

아내가 그의 등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관자놀이가 쨍한 느낌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머리가 아팠다. 그제야 모든 것이 현실처럼 다가왔다. 아내의 말이 옳았다. 일어나야 했다. 습관처럼 시계를 확인하고서 그는 으, 하고는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목이 말랐다.

“게보린 있으면 좀 줘.”

그는 아내에게 두통약을 달라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박 경장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 눈치였다.

“저거 어떻게 해?”

아내는 분명 당황하고 있었다. 경황없이 닥친 두 가지 상황 중 어느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투였다.

“애는?”

“자. 울다 울다 지쳐서. 저거 어떻게 할 거냐고.”

“가모리?”

“그래. 가모리.”

어쩌자고 저리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을까. 글쎄 왜 그랬을까. 그의 눈에 가모리는 기묘하게도 잠들었다기보다는 버려진 듯 보였다. 그것은 영락없이 누군가 무심히 버린 갈색 털뭉치였다. 그는 두통약을 삼키고 나서 눈을 감았다. 가모리의 눈동자가 무슨 색이었는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한동안 알약을 목구멍 너머로 넘기지 못했다.

“요새 나는 자꾸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가 보라니까.”

“갔었어.”

“뭐래?”

“신경성이래.”

“두통약 자꾸 먹지 마. 뭐가 좋다고.”

아내는 그에게 건네받은 물컵을 개수대 아래 부려 놓았다.

아내가 곱게 다려 놓은 근무복과 가모리는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가슴에 배지를 달고 있는 그에게 아내가 모자를 건넸다. 8년이나 입어온 옷인데도 그는 배지를 다는 일에 서툴렀다.

“이리 줘. 내가 할게. 무슨 경찰이 이걸 못 다냐.”

아내가 그의 근무복 상의를 낚아챘다.

“경적은?”

“점퍼 주머니에 넣었어.”

“몸은 괜찮아?”

“그런 것 같아.”

“그래도 병원에 가서 치료 받아.”

“그나저나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이 안 나.”

아내는 그에게 피로회복제와 드링크제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가모리가 당신 옆에 가는 일이 좀체 없는데, 당신 잘 때 말이야, 종아리 아래 웅크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난 꼭 자는 줄만 알았지. 애가 하필 계속 가모리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거든. 걘 또 왜 하필 그때에. 당신 잘 때 말이야.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애가 막 우는 거야. 가모리 입에서 피가 난다고.”

말을 잇다 말고 아내는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내 역시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꼼짝을 하지 않는 게 죽은 것 같아서, 자기 막 깨웠더니 세상모르고 잠만 자니까. 애는 애대로 울어대지.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당신은 괜찮아?”

“괜찮긴. 나도 아까 얼마나 울었다고. 참 예뻤는데.”

“또 한 마리 구해 볼게. 애는 뭐래?”

“당신이 죽인 거래. 병원 안 데려갔다고. 그게 문제야? 또 한 마리 사준다 해도 가모리만 살려내라는 걸 어떻게 해.”

“어떻게 하지?”

“몰라. 저것부터 치워. 어떻게 할 거야. 난 그게 더 걱정인데.”


익일 07시 30분(출근) : 싸이카의 핸들은 여전히 오른쪽으로 쏠리기만 했다. 올림픽공원에 이르렀을 때에는 또 한 번 넘어질 뻔했다. 그래서 그는 이후로 이를 악물고 핸들을 쥐었다. 거리의 호프집 간판들은 여전히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박 경장님, 피곤하신가 봐요.”

정문에 서 있던 인상 좋은 전경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말했다. 지난주 훈련을 마치고 들어왔다는 예의 막내 녀석이었다. 번들거리는 전경의 모자에는 작대기가 나란히 두 개, 그 아래 녀석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지난밤의 피로가 역시 나란히 쌓여 있었다. 밤새 사연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맞아줬겠다 싶은 어린 녀석이 애처로웠지만 박 경장에게는 더 이상 녀석을 위로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이번에는 전경이 박 경장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08시 20분(교통지도계 도착) : 경찰서 정문에 도착해 박 경장은 헬멧을 벗고는 가모리부터 챙겼다. 왼손에는 헬멧을 오른손에는 강아지를 든 채로 정문을 지나치게 된 것이었다. 죽은 줄도 모르고 몰려든 전경들이 그를 에워싸고는 녀석이 귀엽게 생겼노라 여기저기 쓰다듬으며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박 경장에게 허락된 땅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파트 단지 안 어디에도 녀석을 묻을 만한 곳은 없었다. 6단지 뒤편 공원 야산에 파묻자니 그가 경찰관임을 아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종량봉투에 담아 버리자니 또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는 가모리가 제 아빠 탓에 죽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박 경장은 경찰서를 택한 것이었다. 경무과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부탁해 경찰서 뒤편의 소각장을 사용할 요량이었다.

사무실로 통하는 계단 아래에 서서 박 경장은 다시금 지난밤 일을 떠올리며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때마침 울타리 너머 소방서의 직원 한 명이 꾸벅 인사를 건넸다. 경찰서 안의 시간은 그렇듯 어제와 똑같은 꼴로 흐르고 있었다. 박 경장이 담배에 막 불을 붙이려는 찰나 다시금 교통과장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계단을 오르려다 그를 발견한 교통과장의 왼손에는 칫솔이 들려 있었다. 교통과장의 볼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솟구친 채였다. 사우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박 경장은 다시금 화닥 놀라 채 한 모금 빨지도 못한 담배를 그만 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근무복 입고 담배 피우지 말라니까. 가오 떨어지게.”

“일찍 나오셨습니다. 과장님.”

교통과장을 향한 박 경장의 거수경례는 그의 대꾸만큼이나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왼쪽 옆구리에 가모리를 끼고 있었으니 그도 그럴 법했다. 그것이 몹시 짜증난다는 듯 교통과장이 한마디 내뱉었다.

“박 경장이, 또 사고 쳤다면서?”

“예. 죄송합니다.”

“그건 또 뭐야?”

“예, 가모리입니다.”

역시나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은 대답이지만 더 이상 주눅 든 목소리는 아니었다. 박 경장은 후회하고 있었다. 그제야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제 처지가 못마땅해 괜히 화가 난 것이었다. 그래서 박 경장은 빈주먹을 불끈 쥐었다. 초록의 윤기가 끊임없이 펼쳐진 저 옛날 여름날의 고추밭을 떠올리면서 이를 악문 것이었다. 가모리를 태우고 나면 어서 빨리 경찰서를 벗어나리라 마음먹고는 떨어진 담배를 입에 물고 새로 불을 붙였다.

“근무복 입고 담배 피우지 말라니까. 가오 떨어지게.”

교통과장이 말했지만 그는 시원스레 연기를 내뿜을 뿐이었다.《문장 웹진/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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