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화석

 

김숨


벽면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흡사 나무 같았다. 화석이 되어버린 나무. 여자는 나무화석을 본 적이 있었다. 1000도의 용암이 훑고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 화석이 되어버렸다는 나무는 쇳덩이보다 단단하고 차가웠다.

여자는 자신의 두 손을 허공에서 엇갈려 벽면에 나비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비는 나무화석 주위를 팔랑팔랑 맴돌았다. 가볍고 느리게 날갯짓을 해대던 나비는 나무화석의 곡선으로 패인 곳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곳은 남자의 목 부분이었다. 나비는 두 날개를 합쳐 곧추 세웠다. 시간이 흘렀다. 일 초가 백 초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비는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나무화석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절벽처럼 불쑥 솟아오른 곳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곳은 남자의 어깨 부분이었다. 나비는 날개를 접고 몇 분 간 그곳에 앉아 있다가 솟구치듯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팔랑팔랑 날갯짓을 해대던 나비는 한순간 날개를 접고는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나무화석의 뿌리 부분에 내려앉았다. 그곳은 남자의 발 부분이었다. 나비의 두 날개가 절인 배춧잎처럼 축 늘어졌다. 여자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자 날개가 힘없이 퍼덕거렸다. 시간이 흘렀다. 일초가 백초처럼, 일분이 백분처럼, 하루가 백일처럼, 일년이 백년처럼 흘렀다……. 나비는 날아오르지 않았다. 여자가 셀 수 없이 긴 시간이 흘러갔다.

하루가 백일처럼 흐르는 동안, 나비의 날개에 밀포되어 아름다운 색채의 반문을 나타내던 인분은 날아가 버렸다. 일년이 백년처럼 흐르는 동안, 나비의 몸속을 뜨겁게 흐르던 피는 얼음처럼 굳고 두 날개는 풍화를 일으키며 먼지처럼 나무화석의 미세한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꿀을 탐하던 대롱 모양의 입은 나무화석의 갈라진 부분에 고름처럼 맺혔다.

……나비는 그렇게 나무화석의 일부분이 되었다.   


*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버르적거리며 눈을 떴다. 창으로 밀려들어온 햇살에 방 안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간밤에 밝혀 놓은 촛불은 심지가 다 타버린 채 촛농이 눈뭉치처럼 뭉쳐 있다. 간밤에 나무화석이 박혀 있던 벽면을 여자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무화석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희미하게 지워진 나팔꽃 무늬가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져 있다.

보름 전부터 개수대의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샌다. 보름 전만 해도 빗방울만 하던 물방울은 조금씩 그 부피가 커지더니 개구리알만 해졌다. 수도꼭지 아래에 받쳐놓은 플라스틱 통에는 이미 물이 한가득 고였다. 여자는 플라스틱 통을 기울여 물을 따라 버린다. 있는 힘을 다해 수도꼭지를 잠그지만 물방울은 연신 떨어져 내린다. 닷새 전부터는 좌변기의 물까지 세고 있지만 여자는 손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자가 살고 있는 산격동의 기원맨션은 곧 허물어질 것이다. ‘축 재건축’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기원맨션에 나붙은 것이 벌써 일 년 전이었다. 기원맨션이 자리했던 곳에는 15층짜리 대형 상가 건물이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기원맨션에는 총 쉰여섯 호수가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세 호수에밖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여자가 세 들어 살고 있는 502호와 302호, 205호. 길어야 한 달 후에는 여자도 502호를 비워주어야 했다.   

가스레인지 위의 양은대야 속 물이 끓어오르며 집 안에 수증기가 부옇게 꼈다. 타일이 발라져 있는 부엌 벽과 천장에 물방울이 맺혔다. 여자는 가스레인지를 끄고, 행주로 양은대야를 감싸 집어들었다. 양은대야에 든 물을 고무통에 부었다. 여자는 고무통에 녹차 잎을 띄우고, 물이 우러나는 동안 남자의 몸에서 흰 러닝셔츠와 파자마를 벗겨냈다.

발가벗겨진 남자의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여자는 간밤 벽면에 그려졌던 나무화석을 떠올렸다. 남자의 몸은 흡사 나무화석 같았다. 겨드랑이와 성기 부분에 자라난 털들은 탈모로 인해서 듬성듬성했다. 남자의 입은 연신 금붕어의 입처럼 벙긋거렸고, 그때마다 붉은 잇몸과 누런 치아가 드러났다. 여자는 남자의 양 겨드랑이에 자신의 양팔을 집어넣었다. 남자의 몸은 헝겊 인형처럼 축 늘어진 채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여자는 남자의 상체를 20도 각도로 들어올려 고무통 가까이 끌고 갔다. 남자의 두 다리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여자는 먼저 남자의 두 다리를 고무통 속으로 집어넣었다. 있는 힘을 다해 남자의 상체를 허공으로 끌어올린 뒤 고무통 속으로 집어넣었다. 물이 출렁거리며 고무통 밖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남자의 가슴 부분까지 물에 잠겼다. 여자는 숨을 고른 뒤 손으로 물을 떠 연신 남자의 어깨에 부었다. 남자의 가랑이 사이를 더듬거리던 여자의 손이 성기를 움켜쥐었다. 벙긋거리던 남자의 입이 석류처럼 벌어졌지만 여자는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여자는 성기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꽤 오랫동안 그러기를 반복했지만 성기는 좀처럼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남자가 하루 종일 기원맨션 502호에 틀어박혀서 하는 일이라고는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여자가 외출한 사이에 누군가 남자에게 수면제가 든 주사약을 주입하기라도 하는 듯, 남자는 좀처럼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잠을 자는 동안 남자는 꿈을 꾸기도 할까……. 여자가 중얼거릴 때 남자의 눈이 떠졌지만 여자는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온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작년 11월에 왔으니까, 벌써 8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여자에게 온 뒤로 남자의 몸피는 마모되듯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곶감처럼 쪼그라들었고, 두 팔과 다리와 손가락들은 마르다 못해 뒤틀리고 있었다. 탈모가 진행된 남자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몇 올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의 몸피가 줄어들고 줄어들어 언젠가는 개수대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만 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차가운 보리차에 밥을 말아먹고 거울 앞에 바짝 붙어앉아 화장을 했다. 입술을 붉게 칠하고 눈가를 파랗게 칠했다.   

현관문이 열릴 때 남자의 눈이 떠졌지만, 현관문이 닫히는 동시에 스르르 감겼다. 현관문이 열릴 때 복도에 울리던 끼익- 소리는 마치 남자의 눈꺼풀이 들어올려지며 내는 소리 같았다.   


벽에 걸어놓은 온도계는 36도와 37도 사이를 오르내렸다. 여자의 등 뒤에서는 파란 날개의 선풍기가 연신 돌아갔다. 노인은 침대 위에 절인 배춧잎처럼 늘어져 있었다. 노인의 이마와 오른쪽 볼을 뒤덮고 있는 검버섯은 흡사 곰팡이꽃 같았다. 여자는 노인의 발에서 양말을 벗겨냈다. 노인의 발을 쓰다듬던 여자의 손길이 느려졌다. 검버섯은 노인의 양 발등에도 피어 있었다. 노인이 숨을 내쉴 때마다 압력솥에서 수증기가 빠져나올 때 내는 듯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성원목욕탕 편영감님. 일주일에 2,3번은 春안마시술소를 찾는 노인을 안마사들은 그렇게 불렀다. 노인의 발을 안마하며 여자는 자신의 몸이 찜통 속에서 건져 올린 고깃덩이 같다고 느꼈다.

여자는 안마사였다. 열여덟 살부터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오직 안마사로서 살아왔다. 여자를 비롯한 春안마시술소의 안마사들은 아무런 기구도 쓰지 않고 오직 두 손만으로 안마를 했다. 여자는 불현듯 자신의 양손을 부채처럼 활짝 펴고 지문과 손가락의 돌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지문과 손가락들의 돌기는 흐릿하게 지워졌다. 노인네들의 발과 몸뚱이를 쓰다듬고 문지르고 비벼대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지워진 것이다. 반면에 손가락 마디마디의 뼈들은 발달이 되어서 유난히 굵은 편이다. 여자의 ‘손’은 안마사의 손으로 훌륭했다. 손놀림은 부드러웠으며 세기의 강약 조절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손의 체온은 계절에 따라서 알맞게 변했다. 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가웠으며, 겨울에는 난로 위의 양은주전자처럼 따뜻했다. 봄과 가을에는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손의 온기가 알맞게 변했다. 안마를 하는 동안 여자는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안마를 다 받은 손님이 한숨 노곤한 잠을 자고 깨어날 때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여자가 육 년째 안마사로 있는 春안마시술소의 손님은 대부분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었다. 


새벽 한 시경에야 안마시술소에서 돌아온 여자는 남자의 옆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남자는 천장을 바라보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남자의 두 손은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몸을 일으켜 앉혔다. 여자가 남자의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을 떼는 순간, 남자의 몸은 중심을 잃고 힘없이 기울어졌다. 여자는 남자를 다시 일으켜 앉혔다. 그러나 여자가 손을 떼는 순간, 남자의 몸은 또다시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여자는 또다시 남자를 일으켜 앉혔고, 남자의 몸이 기울어지면 다시 일으켜 앉히기를 반복했다. 여자는 남자를 반듯하게 눕히고 남자의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남자의 숨소리는 다른 날보다 낮고 느렸다.

여자는 남자의 오른쪽 손목에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맥박이 잡혔다. 병든 물고기가 남자의 손목 안에 들어가 아가미를 힘없이 퍼덕거리듯, 맥박은 약동감이 없었다. 하나, 둘, 셋, 넷……. 남자의 맥박은 일분에 36회에서 39회 정도를 뛰었다. 여자는 자신의 맥박을 세어 보았다. 맥박은 50회에서 42회를 뛰었다.

여자는 남자 옆에 그림자처럼 길게 몸을 뉘었다. 여자가 숨을 내쉴 때 남자는 숨을 들이쉬었고, 여자가 숨을 들이쉴 때 남자는 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호흡을 멈췄다. 남자가 숨을 내쉬는 순간 자신도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남자가 숨을 들이쉬는 순간에 자신도 숨을 들이쉬었다. 호흡은 한없이 부자연스러웠다. 여자는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끼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자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방 안은 환하게 밝아 있었다. 거미가 이마 바로 위에서 대롱거리고 있다. 50원짜리 동전만 한 거미다. 기원맨션에는 개미와 바퀴벌레가 들끓지만 거미는 흔하지 않다. 여자는 거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손가락으로 거미줄을 끊었다. 거미줄이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거미줄 끝에서 거미가 대롱거렸다. 여자는 오른쪽 둘째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거미줄을 말았다. 거미줄이 손가락에 감기며 거미가 딸려 올라왔다. 어느 순간 거미줄이 끊어지며 거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자는 오른쪽 첫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거미를 집어올렸다. 여자는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놓여나려고 발버둥치는 거미를 남자의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죽은 듯 꼼짝 않던 거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십여 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거미는 남자의 이마를 가로질러 콧등을 타고 올랐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를 지나 미끄러지듯 방바닥으로 내려왔다.

 커다랗게 확대된 여자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거미를 좇았다. 여자는 거미가 남자의 얼굴에 집을 짓기를 바랐다. 남자의 얼굴과 몸에 친친 거미줄을 치길 바랐다. 남자의 발과 손도 거미줄에 친친 감기기를 바랐다. 거미줄에 돌돌 감긴 남자의 눈동자 속에, 귓속에, 입 속에, 콧속에 쌀알처럼 투명한 알들을 낳아주기를……. 거미는 방바닥을 빠르게 기어가 캐비닛 쪽으로 달아나고 있다. 거미가 캐비닛 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여자는 손가락으로 거미를 집어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놀란 거미는 여덟 개의 다리를 제각각 바동거렸다. 여자는 거미를 남자의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빈 유리병이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유리병 바닥에는 노란 오렌지주스가 말라붙어 있었다. 며칠 전 여자는 오렌지주스를 사다가 남자의 입 안으로 흘려 넣어주었다. 여자는 병뚜껑을 열고 거미를 유리병 속에 집어넣었다. 거미는 유리병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유리병의 표면은 지나치게 매끄러웠고, 거미는 유리병 입구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여자는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못으로 알루미늄 뚜껑에 구멍을 뚫었다. 구멍은 거미의 눈동자만 했다. 거미는 결코 그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과자 부스러기를 방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개미들이 과자 부스러기에 까맣게 몰려들었다. 여자는 개미를 집어올려 유리병 속에 넣어주었다. 개미는 거미의 먹이가 되었다. 지름이 채 1밀리도 안 되는 구멍으로 드나드는 공기와 여자가 잡아서 넣어주는 먹이만으로도 거미는 죽지 않았고,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온도계의 온도가 38도까지 올라간 날, 春안마시술소에서는 안마를 받던 노인이 죽어 나갔다. 노인은 성원목욕탕 편영감이었다.  

오후 두 시경 갑자기 전기가 나가며, 기세 좋게 돌아가던 에어컨과 선풍기가 일시에 멈췄다. 春안마시술소는 이내 찜통 속처럼 달아올랐다. 끓어오르는 폭양 속을 헤치고 안마를 받으러온 편영감은 냉커피 한 잔을 마시고 침대 위에 올라가 누웠다. 불규칙하고 커다랗던 편영감의 숨소리는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안마가 끝난 지 무려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깨어나지 않았다. 안마를 받는 동안 깊은 잠에 빠지는 노인들이 간혹 있었으므로,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동안 나갔던 전기가 들어오고 에어컨과 선풍기가 다시 요란한 소음을 내뱉으며 돌기 시작했다. 세 시간 정도 지나 노인을 흔들어 깨우던 안마사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노인은 숨을 쉬지 않았다. 편영감의 한쪽 팔은 침대 밑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春안마시술소의 사장과 노인을 안마했던 안마사는 경찰서에 불려갔다. 남은 안마사들은 저녁으로 냉면이나 콩국수를 배달시켜 먹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뉴스와 드라마를 보았다. 뉴스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있었던 정전 소식을 들려주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노인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자정 즈음 사장과 안마사가 돌아왔다. 사인은 심장마비사라고 했다.

그날 밤 꿈에 여자는 편영감의 ‘발’을 보았다. 여자는 죽은 편영감의 발을 기억하고 있었다. 흡사 전복 껍질 같은 발이었다. 편영감의 얼굴과 목소리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지만, 발만은 선명하게 기억했다. 여자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발들이 칼로 새긴 듯 찍혀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두 손으로 쓰다듬고, 주무르고, 비벼대고, 어루만진 발들을 좀처럼 잊지 못했다. 꿈에 여자는 붉고 긴 혀를 내밀어 편영감의 발을 핥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어……, 그것은 내 혀가 아니었어…….

여자는 남자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바짝 붙이고, 두 팔을 벌려 남자의 몸을 끌어안았다. 남자의 몸은 나무화석이었다. 1000도의 온도에서 화석이 되어버린 나무. 남자의 몸속 뼈들과 혈관을 흐르는 피들도 쇠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 시간보다 삼십분이나 일찍 도착한 여자는 약속 시간이 가까워오면서부터 불안해졌다.    

왜 나타나지 않는 걸까……, 왜 나타나지 않는 걸까…….

약속 장소인 다방 안에는 늙은 사내들만 득실거렸다. 찻집 마담도 그들만큼이나 늙은 여자였다. 지하 계단을 내려오는 발짝 소리를 듣고 여자의 시선이 출입문 쪽으로 향할 때마다 늙은이들 중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는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다방에서 잔치국수도 팔았는데, 조미료와 멸치를 넣고 우려낸 국물 냄새가 공기 중에 끈적하게 퍼져 있었다. 여자는 허기를 느꼈지만, 설탕과 프림도 타지 않은 쓴 커피만 홀짝거렸다. 그 여자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속이 쓰린 줄도 몰랐다.

그 여자는 남자의 전처였다. 여자에게 오기 전까지 남자는 그 여자와 살았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오게 되면서 그 여자는 남자와 이혼 절차를 밟았고, 여자는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 여자와 여자와의 계약일 뿐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호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아도 되었다. 여자는 잔치국수를 한 그릇 시켜 국수를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건져 먹었다. 

약속 시간보다 무려 두 시간이나 흐른 뒤에야 여자는 다방을 나와 春안마시술소로 갔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春안마시술소에는 손님이 들지 않았다. 안마를 받던 편영감이 죽어 나간 이후로 春안마시술소에는 노인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편영감을 안마했던 안마사는 그날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안마사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온양에 있는 온천지구의 안마시술소로 팔려 갔다는 소문도, 그녀의 고향인 중국 심양으로 되돌려 보내졌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여자는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에 기원맨션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을 데워 남자의 몸을 씻긴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라도 몸을 씻겨주지 않으면 남자의 몸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설핏 든 여자의 잠을 깨운 것은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짝 소리였다. 새벽 세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었다. 고양이 울음소리만 간혹 들려올 뿐 기원맨션은 깊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한없이 주저하며 복도를 걸어 들어온 발짝 소리는 현관문께서 멈춰 섰다.

그 여자가 왔어…… 그 여자가 왔어…… 남자를 데리러 그 여자가 왔어.

여자는 목 안에서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남자의 눈이 떠졌지만, 여자의 눈동자는 어둑한 허공을 떠돌고 있어서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여자는 물 위를 걷듯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며 현관문께로 걸어갔다. 공교롭게도 현관문에는 감시거울이 달려 있지 않아서 복도를 내다볼 수 없었다. 여자는 현관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여자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여자는 몸을 기울여 현관문에 자신의 오른쪽 귀를 가져다가 댔다. 알루미늄의 차가운 기운이 귓불을 타고 몸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 여자가 저 문밖에 있다…….

여자는 숨을 죽인 채 현관문에 바짝 귀를 댔다. 피를 토하는 듯한 마른기침 소리가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등줄기를 타고 한 줄기 서늘한 땀방울이 흘러내리며 오한이 들 듯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여자는 현관문 손잡이를 움켜쥐며 침을 삼켰다. 비루먹은 나뭇잎처럼 입 안의 혀가 바짝 타들어갔다. 눈앞에 아지랑이 같은 은빛의 물체가 오가며 현기증이 몰려왔다. 여자는 그 여자가 그대로 돌아가기를……,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여자는 그 여자가 남자를 데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저이는 내 남편이야, 아니아니…… 저이는 그 여자의 남편이야…….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목 안에서 낮은 탄식을 내질렀다. 한순간 중심을 잃은 여자의 몸이 현관문으로 기울며 끽,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조금 열렸다. 발짝 소리가 후다닥 복도를 뛰어갔다. 여자는 손으로 귀를 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자는 그 여자가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그 여자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다. 늦은 밤 기원맨션을 찾아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남자의 몸피가 조금씩 쪼그라들고 작아지듯 그 여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남자에 대한 기억도 점점 쪼그라들고 작아져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오 개월……. 그 여자는 오 개월이라고 했다. 오 개월 후에는 남자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정확히 오 개월 동안만 남자를 돌봐달라고 했다. 여자는 그 여자를 믿었다. 그 여자는 하루 종일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육 년 동안이나 보살펴왔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온 지 어느새 팔 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오던 날을 기억했다. 남자는 그 여자의 등에 업혀서 왔다. 그 여자는 남자를 아이처럼 등에 업고 여자가 살고 있는 기원맨션을 찾아왔다. 그 여자가 돌아간 뒤 여자는 남자의 발을 안마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여자는 집을 나왔다. 동사무소를 찾았다. 동사무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이른 아침이라서 여자는 문 여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쓰레기차가 지나갔고, 생선과 부식 따위를 파는 트럭이 지나갔다. 여자는 트럭을 세우고 물미역 한 무더기를 샀다. 동사무소는 정확히 아홉시가 되어서야 문을 열었다. 여자가 신청한 것은 호적등본이었다. 여자는 호적등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떼 보았고, 신청 서류를 작성하는 데 무려 30분이나 흘려보냈다. 호적등본이 나오려면 두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여자는 민원창구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서 꼬박 두 시간을 기다렸다. 물미역이 든 비닐봉지에서 물이 샜다.

장기남(張基男). 그것은 남자의 이름이었다. 남자는 1962년생이었고, 태어난 날짜는 8월 21일이었다. 남자의 이름 밑에는 여자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여자가 기원맨션에 돌아왔을 때는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개수대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이제 비눗방울만 했다. 여자는 사시안처럼 눈의 초점을 흐리며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물방울이 여러 개로 겹쳐 보였다. 여자는 물방울의 부피가 조금씩 커져 언젠가는 남자의 몸피만 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몸피는 조금씩 작아져서 언젠가는 물방울만 해질지도 모른다. 

여자는 호적등본에 풀칠을 해서 벽에 붙여 놓은 뒤 물미역을 넣고 죽을 끓였다. 

여자가 입 속에 흘려 넣어주는 죽을 남자는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남자의 입은 금붕어의 입처럼 벙긋거렸다. 남자의 두 눈은 꼭 감겨 있었다. 여자는 죽을 한 숟가락 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남자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가져가 포갠 뒤, 인공호흡을 하듯 자신의 입 안에 든 죽을 남자의 입으로 흘려 넣었다. 남자의 목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며 눈이 번쩍 떠졌지만, 여자는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여자는 개미를 잡아 거미가 든 유리병 속으로 넣어준 뒤 春안마시술소로 일을 나갔다.    

아침 일찍부터 기원맨션 건물주가 다녀갔다. 건물주는 열흘 안으로 502호를 비워달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다가 돌아갔다. 열흘 뒤에는 기원맨션이 허물어질 것이라고 했다. 남자를 빤히 내려다보던 건물주의 눈길을 여자는 잊지 못했다. 혐오와 경멸, 동정이 실타래처럼 뒤섞인 눈빛이었다. 여자는 건물주의 눈빛을 떠올리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고 그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그 누구도 증오해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열흘 뒤에는……. 여자는 당장 이사 갈 집을 알아보아야 했다. 살림은 간소했다. 몇 가지 옷들과 18인치 텔레비전, 그리고 소형 냉장고와 세탁기와 장롱으로 쓰고 있는 식기들.

저이를 어떻게 해야 한담…….

남자는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남자의 두 손은 늑골 부분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지금껏 여자는 단 한 번도 남자의 잠을 깨우려 든 적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의 잠을 깨우기라도 할까봐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고, 쌀을 씻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가능한 한 손놀림을 느리고 조심스럽게 했다. 전화벨과 텔레비전은 음소거에 맞추어 놓았다. 여자는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깨어나지 않기를……. 여자는 남자가 깨어날까봐 두려웠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성큼성큼 방 안을 나가 어딘가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여자를 괴롭혔다.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그 여자를 찾아갈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가 그대로 나무화석이 되어버리기를 바랐다. 나무화석이 되어버린 모습으로 여자의 곁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남자의 어깨를 흔들어대는 여자의 손길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눈을 홉뜨고,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원했다. 남자는 거칠게 갈라지고 마른 입술만 금붕어의 입처럼 벙긋거릴 뿐 눈을 뜨지 않았다. 여자가 체념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순간, 남자의 눈이 가늘게 떠졌지만 여자는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春안마시술소로 가는 길에 여자는 시장에 들렀다. ‘고급 신사정장 70퍼센트 세일’이라는 플래카드가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모텔 건물 지하 창고에 유령처럼 걸려 있는 양복들은 하나같이 유행이 지난 후줄근한 것들뿐이었다. 여자가 고른 것은 4만 원짜리 검은색 양복이었다. 흰 와이셔츠와 푸른 물방울무늬 넥타이도 샀다. 물방울은 모두 쉰여섯 개였다.

며칠 전 여자는 春안마시술소를 부동산에 내놓았다는 소문을 안마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안마사들은 불안해 보였다. 그녀들 대부분은 한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중국 국적의 여자들이었다. 채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여자아이도 두 명이나 있었다. 그녀들은 아직 한국말 구사에 서툴렀으며, 春안마시술소의 사장인 전영감에게 모종의 빚을 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春안마소 건물 옥상에 지어진 가건물에서 공동생활을 했는데,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어쩌다가 그녀들이 떼를 지어 공중목욕탕이나 시장에 갈 때는 전영감의 늙은 아내가 따라붙었다.               

자정이 넘어 여자가 돌아왔을 때 기원맨션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3층과 4층 사이의 계단을 오르다가 여자는 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의 발걸음이 빨라지며 발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개수대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세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물방울이 아니었다. 여자는 욕실 수도꼭지에 달려 있던 호수를 빼내와 개수대의 수도꼭지에 연결했다. 그리고 호스의 끝부분을 개수대 구멍에 꽂았다. 

 

다음 날 기원맨션에 나붙어 있던 ‘축 재건축’이라고 쓴 플래카드는 내려지고 ‘성원기공―건물 해체 전문업체’라고 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여자는 목욕탕에 다녀오다가 새로 내걸린 플래카드를 보았다. 

기원맨션은 폭파될 것이라고 했다. 거대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먼지 구름과 함께 흩어질 것이라고 했다. 남자가 그림자처럼 누워 있던 자리도 한 줌의 먼지로 흩어져 잊혀질 것이다. 계단을 오르던 여자는 기원맨션이 무너져 내릴 듯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에 안전 모자를 쓴 일군의 남자들이 퇴각하는 군인들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남자들은 발짝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여자를 지나쳐갔다. 여자는 녹슨 철제 난간을 부여잡으며 목 안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여자의 손에서 목욕가방이 떨어지며 비누갑과 샴푸통, 젖은 수건, 칫솔이 계단으로 흩어졌다. 창문들과 벽면이 무너져 내릴 듯 흔들렸다. 벽이 갈라지고 벌어진 곳에서 시멘트 가루가 흘러내렸다. 계단 천장에서 뭉친 페인트가 각질처럼 떨어져 내렸다. 여자는 계단에 주저앉아 진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잠들어 있었다. 방바닥을 기어가는 개미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개미를 손가락으로 집어들어 유리병 속에 넣어주었다. 여자는 春안마시술소에 일을 나가지 않았다. 여자는 하루 종일 남자의 곁에 머물며 남자의 발을 주무르고 귓속에 바람을 불어넣고 젖은 수건으로 입술을 훔쳐 주었다. 남자의 옆에 길게 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그 주의 일요일에 302호와 205호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갔다. 이제 기원맨션에는 여자와 남자와 유리병 속에 갇힌 거미와 셀 수 없이 많은 바퀴벌레들과 쥐들과 떠돌이 고양이들밖에 살지 않았다.   

그 주의 화요일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가구들이 거리로 들어내졌다. 수요일에는 기원맨션 둘레에 파란색 방음포가 쳐졌으며, 목요일에는 502호를 제외한 모든 창문들과 문(門)들이 떼어졌다. 502호의 창문과 문들도 떼어내려고 도적떼처럼 들이닥친 남자들은 방바닥에 죽은 해파리처럼 눌어붙어 있는 남자를 보고는 순순히 돌아갔다. 남자들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여자는 눈을 감았다.   


희부연 안개 속에 서 있는 것은 나무화석이었다. 1000도의 용암이 훑고 지나가던 찰나의 순간에 화석이 되어버린 나무. 안개가 걷히며 햇살이 비쳤다. 나무화석의 둥치와 뿌리에 물빛이 돌고, 새까맣게 타버린 수맥이 피를 수혈 받은 혈관처럼 꿈틀꿈틀 살아나기 시작했다. 줄기와 가지에 거무스름한 주황빛이 번지며, 새 가지들이 솟았다. 가지들이 쑥쑥 자라며 연둣빛 새순이 비누거품처럼 뭉텅뭉텅 돋았다. 어디선가 한 마리 나비가 날아들었다. 찹쌀 풀을 뭉쳐 말린 듯 새하얀 나비였다. 나비는 날개를 팔랑거리며 나무화석 주위를 날아다녔다. 새순들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며 분홍빛 꽃이 버짐처럼 피었다. 나비가 분홍빛 무더기 위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었다. 여자는 나비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여자가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나비는 수증기처럼 흔적도 없이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렸다.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며 잎들이 시들고 가지와 줄기가 검은 빛으로 변해갔다.


여자는 거북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던 목을 펴며 꿈에서 깨어났다. 벽면에 박힌 나무화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남자의 그림자였다. 여자는 두 손을 겹쳐 나비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무화석 주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니던 나비는 뿌리 부분에 내려앉았다. 그곳은 남자의 발이었다. 뿌리는 함부로 뒤틀려 있었다. 나비는 날아오르지 않았다. 일초가 백초처럼, 일분이 백분처럼 흘렀다. 여자가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나비가 나무화석의 일부가 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흘러가야 했다. 창문으로 새벽빛이 비쳐들며 나무화석과 나비가 희미하게 지워져 갔다. 복도와 계단을 뛰어다니는 인부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여자는 벽면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은 흡사 나무 같았다. 1000도의 용암이 훑고 지나가며 화석이 되어버린 나무. 여자는 양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려 나비 모양을 만들었다. 나비는 나무화석 주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날아다니기만 할 뿐 나무화석 위에 내려앉지 못했다. 작은 원을 그리며 빙그르르 돌던 나비가 날개를 바르르 떨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퍼덕거리던 나비는 어느 순간 힘없이 날개를 늘어뜨렸다. 

가스레인지 위의 양은대야에서 한약재를 푼 물이 펄펄 끓어올랐다. 한약 냄새가 집 안 공기 중에 가득 퍼져 있었다. 여자는 몸을 일으켜 가스레인지 쪽으로 걸어갔다. 가스레인지를 끄고 양은대야에 수돗물을 한 바가지 부었다. 날이 밝으면 502호를 비워주어야 했다.

여자는 이제 남자의 발로 남자를 기억할 것이다.

이이의 발은…….

여자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어쩌면 남자의 발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남자의 발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여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무수한 발들 속에 남자의 발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의 발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조차도 여자는 남자의 발이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여자는 손바닥을 맞대고 비볐다. 뜨겁게 달아오른 손으로 남자의 발을 감쌌다. 오래전에 퇴행을 시작한 남자의 발은 터무니없이 작다. 발의 전체적인 형태는 일그러져 있고, 발가락들은 뒤틀려 있다. 발톱들은 오래전에 마모되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남자가 설사 똑바로 일어선다고 해서 이런 발로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을 수 없다.

여자는 남자를 일으켜 앉혔다. 그러나 여자가 손을 떼는 순간, 남자의 몸은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힘없이 기울어졌다. 여자는 남자의 발을 양은대야 속에 담갔다. 발목 부분까지 물에 잠겼다. 물이 미지근하게 식어갈 즈음 여자는 양은대야 속에서 남자의 발을 꺼냈다.

여자는 주먹을 쥐고 남자의 발바닥을 두드렸다. 여자의 주먹이 남자의 발에 가 닿는 순간 물결이 번지듯 남자의 몸 전체에 진동이 일었다. 남자의 입은 연신 금붕어의 입처럼 벙긋거렸다.

어느 순간 여자는 자신의 혀를 길게 내밀어 남자의 발을 핥기 시작했다. 남자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눈을 감고 남자의 발바닥과 다섯 개의 발가락과 발등과 철사처럼 퀭하게 튀어나온 핏줄들을 핥았다. 입술을 타고 침이 흘러내렸지만, 여자는 의식하지 않았다. 생리 기간이라서 여자의 혀에는 바늘이 돋아 있었다. 혀가 남자의 발에 닿을 때마다 바늘 돋은 부분이 쓰라렸지만, 여자는 오래오래 쉬지 않고 남자의 발을 핥았다.

혀에 남아 있는 감각으로 남자의 발을 기억하리라.

여자는 남자의 몸에서 러닝셔츠와 파자마를 벗겨내고 시장에서 사온 새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양복을 입혔다. 여자는 넥타이를 맬 줄 몰랐기 때문에 몇 번이나 새로 고쳐 매어야 했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남자의 발에 감색 양말을 신겨주었다. 

거미는 유리병 바닥에 바짝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가 유리병에 넣어준 개미는 거미의 주위를 불안하게 맴돌았다. 여자는 거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유리병 뚜껑을 열었다. 유리병 입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손목이 아프도록 흔들어댔다. 개미와 거미가 거의 동시에 유리병 밖으로 떨어졌다. 몇 초 간 움직임이 없던 개미가 재빠르게 장판과 장판 사이의 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는 거미를 집어 남자의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집을 지어야 해…… 집을 지어야 해…….’

여자는 거미가 남자의 몸에 집을 짓기를 바랐다. 남자의 몸이 거미줄로 친친 뒤덮이기를 바랐다. 남자의 몸을 거미줄로 친친 감고, 얼굴에 분화구처럼 뚫려 있는 일곱 개의 구멍 속에 알을 낳기를 바랐다. 눈 속에, 귓속에, 콧속에, 입 속에 알을 낳기를 바랐다. 남자의 텅 빈 머릿속이 밤꽃 같은 거미 새끼들로 바글거리기를 바랐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돌아누웠다. 남자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금붕어의 입처럼 벙긋거리던 남자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여자가 눈을 감는 순간, 남자의 손이 허공으로 들어올려졌지만 여자의 몸에 가 닿지는 못했다.


여자는 눈을 껌벅거렸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기울여 수도꼭지에 입을 가져갔다. 현기증이 일 정도로 수도꼭지를 힘껏 빨아들였다. 물방울이 여자의 입 안으로 똑, 떨어졌다. 건조시킨 양말처럼 바짝 말라 있던 입 안에 그제야 침이 돌았다. 여자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서 형광등 스위치를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


여자는 고개를 외로 꺾고 방음포로 둘러싸인 기원맨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여자의 한쪽 손에는 감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여자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바리케이드에 가려져 502호의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기원맨션 앞 공터에는 좌변기와 세면대들이 팔려가는 노예들처럼 내놓아져 있었다.

여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손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었다. 나비는 허공을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여자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여자는 나비가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랐다. 높이높이 날아올라 나무화석의 뿌리에 가 닿기를 바랐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 나무화석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비는 높이 날아오르지 못했다. 여자는 나비가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라며 발뒤꿈치를 더욱 높이 쳐들었다. 팔랑팔랑 날아올라 나무화석의 뿌리에 가 닿기를……. 여자의 몸이 휘청거리며 치맛자락이 펄럭거렸다. 나비는 더 높이 날아오르지 못했고 나무화석의 뿌리에 가 닿지 못했다. 

여자는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풀었다. 고개를 외로 힘없이 기울이며 가방을 집어들었다.

남자는 기원맨션과 함께 폭파되어 먼지 구름으로 흩어질 것이다……. 거미가 남자의 눈동자 속과 귓속과 입 속에 낳아 두었던 알들은 미처 부화되지 못하고 먼지로 사라져갈 것이다. 

여자는 기원맨션에서 돌아섰다.《문장 웹진/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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