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사진

 

이재웅


현화는 지금 주방에 있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거나 요리책을 뒤적이며 잡채를 만들고 있다. 연지평 고모가 잡채를 좋아할 것이라고 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연지평 고모를 기다리고 있다. 연지평 고모는 오늘 아침 나의 어머니가 있는 시골집을 떠났다. 그녀는 우리 집에 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아침 일곱시쯤이었다. 그때 나는 현화와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신혼부부였고, 전날 직장 동료들의 집들이로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모처럼의 휴일이기도 했다.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현화와 나는 신경전을 벌였다. 내가 졌다. 나는 팬티 차림으로 거실로 갔다.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전화 내용은 대략 이랬다.

사흘 전, 연지평 고모가 어머니를 찾아왔었다. 그녀는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행상을 했는데, 어머니에게 물건을 좀 팔아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들른 것이다. 그녀가 파는 것은 수의였다.

어머니는 수의 한 벌을 구입했다. 가격은 이십오만 원이었다. 당시 어머니가 수의를 구입한 것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라기보다는 인정상 차마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수의 한 벌을 거둬주면 연지평 고모가 조용히 시골집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지평 고모는 그곳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그리고 어머니 외에도 시골 마을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수의를 팔았다. 심지어 그녀는 시골 노인들의 아들과 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아내기도 했다. 마을 노인들의 후손들에게까지 영업의 손을 뻗치려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좀 심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이때에 연지평 고모에 대한 사소한 불만, 말하자면 아버지 장례식의 불참 같은 것을 늘어놓기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마을 노인들의 후손들에게까지 영업의 손을 뻗치려 했던 연지평 고모는 당연히 어머니의 아들인 내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알아내려 했다. 어머니는 두어 번 웃음으로 넘기려 했다. 하지만 차마 끝까지 거절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역시 인정상 종이와 펜을 내미는 연지평 고모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지평 고모는 오늘 아침,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시골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나에게 통보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연지평 고모와 그리 친하지 않았고, 그녀의 행동이 불쾌했으며, 무엇보다도 젊은 나와 현화에게 수의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한 것임에 분명했다. 전화의 목소리가 그랬다.

어머니는 전화를 끊기 전에 나에게 요령껏 처신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었지만, 내가 반드시 수의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화는 끊겼다.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화를 껴안고 잠들었다.

사실 나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어머니의 목소리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조금도 실감나지 않았다. 잠에 반쯤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바그다드 위로 쏟아지는 미국 폭격기들의 불꽃을 TV로 지켜보는 것과 같았다. 물론, 나는 아주 잠깐 연지평 고모가 누구며, 또 어머니는 왜 그녀의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해 나를 귀찮게 하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잠과 함께 그런 의문과 불만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열시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어쨌거나 난처한 미래가 다가올 것과 내가 그것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현화에게 어머니의 전화 내용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청소를 하고, 음식이며 과일들을 준비했다. 연지평 고모가 반드시 우리 집에 들른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준비는 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집들이 때문에 어질러진 집 안을 좀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현화는 내심 걱정이 컸다.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연지평 고모의 마음에 들고 싶어했던 것이다. 나에게 굳이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묻고, 또 그것을 준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무척 진지했다. 그러나 내 편에서 보자면, 모든 상황이 조금은 일종의 해프닝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연지평 고모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나의 조부모는 슬하에 열 명의 자식을 두었다. 딸이 여섯, 아들이 넷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나의 아버지는 그 중 여덟째였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고모들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 세대의 유교적인 사고방식 때문인 듯한데, 말하자면 출가외인은 남의 집 식구라는 의식이 강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소소한 이유가 더 있었다. 예를 들면, 나이 차가 심했다거나 거리가 너무 멀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남자 형제들과는 일 년에 두 어 차례, 제사나 명절날 왕래를 했었다. 그런 까닭에 나에게 친척이라고는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한 분, 그리고 그 자식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연지평 고모가 온다는 것이다.

‘연지평 고모’라는 호칭만을 놓고 봤을 때에는 무조건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왠지 귀에 익기도 했다. 분명 과거의 언젠가는 한 번, 아니면 두어 번 들어본 호칭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기억해보려 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져 버리고 만다. 그것은 ‘연지평 고모’라는 호칭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단상들이 제멋대로 날뛰기 때문이다.

단상 하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 무렵이었다.

점심때가 되어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와 웬 낯선 사내가 서로의 얼굴에 고함을 치듯이 큰 소리를 내지르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루 위에는 밥상이며 밥그릇들이 엎어지고 부서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 쪽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손짓해 불렀다. 나는 그녀에게로 갔다. 그러자 그녀는 안방 쪽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한 여자가 아랫목 쪽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머리는 잔뜩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은 새까맸다. 몸은 깡말랐다. 그녀는 유독 눈이 컸는데, 공포의 감정을 얼마나 크게 머금고 있는지 그 눈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는 듯했다. 나는 안방 문에 기대서서 그런 그녀를 경계하며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단상 둘,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내가 면내의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없었다. 대신 한 여자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는 꽤 가녀린 인상이었다. 그녀는 내가 토방에 올라설 때까지 매우 지친 기색으로 마당의 한 곳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곳곳은 곧 피가 쏟아질 듯 멍들어 부풀어 올랐고, 옷은 군데군데 뜯겨 있었다. 나는 그녀의 왼손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루에 걸터앉았다.

“네가 생근이냐?”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마당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질문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것을 알았지만 그때에는 이미 대답하기가 머쓱해져 버렸다. 나는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녀 역시 큰 의미 없이 던진 질문이었던지 다시 묻지 않았다. 우리는 마루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단상 셋, 이것 역시 어린 시절의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나는 그때 무슨 일인가로 급히 동네 길을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한 여자와 마주쳤다. 그때의 그녀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앞에 서 있는 장승같았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기분으로 물끄러미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머리 위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그 햇살 때문에 그녀의 얼굴에는 이목구비를 구분 짓지 못할 정도로 짙은 음영이 깔려 있었다. 그 모습은 어린 나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놀란 가슴으로 그녀를 계속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단상들이 더 있었다. 아니, 더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검은 불꽃과 연기 같았다. 앞선 세 개의 단상에 비해 무엇 하나 뚜렷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왜 ‘연지평 고모’라는 호칭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단상들이 뒤엉키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러한 단상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으로 비추어 그 중 한 명이 연지평 고모가 아닐까 하고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상이 뚜렷하건 그렇지 않건 그녀들의 얼굴이 명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단상들의 끝은 어찌된 까닭인지 모두 잊혀져 있었다. 단상 속의 그녀들이 나를 껴안은 것 같기도 하고, 소리를 내지른 것 같기도 하다.

내 머릿속의 연상 작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연지평 고모의 남편, 그러니까 나에게 고모부 되는 이가 징용에 끌려갔다가 일본 본토에서 사망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것만 같았다. 혹은, 한국 전쟁에서 큰아들을 잃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조금 황당한 것도 있었는데, 그녀가 한국 전쟁 당시 공산당원 신분으로 부녀자들의 사상 교육을 담당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것이 역사책에 기록된 내용이고, 어떤 것이 정말 내가 주워들은 연지평 고모에 관한 소문인지 그것조차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연지평 고모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했다. 나는, 그런 표현이 정확하다면, 낯익은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현화가 “연지평 고모는 무슨 음식을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나는 태연하게 “잡채”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 묻는 순간에 또 다른 단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마을에서 꽤 부유한 집안의 잔칫날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 회갑 잔치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을 아이들과 함께 마당 위에 깔아놓은 덕석 위를 오가며 어른들의 틈새로 여러 잔치 음식들을 몰래 가져다 먹곤 했었다. 그러다가 돼지우리 옆에 있는 뒷간으로 갔다. 그곳에 가려면 뒤안길을 돌아 외진 텃밭 쪽으로 나가야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막 뒷간에 도착했을 때 뒷간 옆에 쪼그려 앉아 잡채를 먹던 여자를 발견했다. 내 기억에 그녀는 거지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몰골이었다. 그녀는 내가 뒷간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자, 한편으로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곧 나에게 달려들어 내 머리며 팔을 물어뜯을 듯한 묘한 표정으로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잡채를 입 안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 단상 역시 그 뒤의 결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도망치듯이 내 앞에서 사라진 듯도 하고 내가 도망쳐 왔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현화의 질문에 왜 그런 단상이 떠올랐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자와 연지평 고모가 동일한 인물인지도 알 수 없다.

내가 태연하고 단호하게 “잡채”라고 말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은근한 과시욕이었다. 나는 큰고모가 선호하는 음식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그녀와 나는 가까운 사이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 나아가 우리 집안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니면, 그 반대로 어떤 콤플렉스를 은근히 덮어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콤플렉스라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는 고모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가지를 더 말해보자면, 아버지가 고모들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 그랬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어머니가 고모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먼저 호통을 쳐서 말꼬리를 감추게 하는 아버지의 태도였다. 그 다음, 몇 년 전 큰고모가 죽었을 때인데, 아버지는 내가 모시고 가겠다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고 노환의 몸으로 홀로 장례식에 다녀오셨다. 결국, 나는 이날까지 큰고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부음장에 기록된 이름 석 자만 기억할 뿐이다. 그녀의 이름은 오분례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내심 아버지가 고모들의 생애를 감추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한때 그런 아버지를 너무 과민한 사람이거나 비겁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어떻게 혈육을 그렇게 부끄러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네들 간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적인 예의 차원에서는 영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갓 장가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서른이 조금 넘은 나는 어느새 아버지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고모들에 대해 정확한 정보도 없으면서 행여 그녀들로 인해 체면이 깎일까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현화에게 어머니의 전화 내용을 전할 때에도 그녀가 수의를 팔러 잠시 우리 집에 들를지도 모른다는 것 외에, 일테면, 마을 노인들과 그 후손들에게까지 수의를 팔려고 했다는 사실 등등은 일절 말하지 않았다.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 데에는 어머니의 전화 내용도 한 몫을 했다. 그 내용 어디를 뒤적여 봐도 연지평 고모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기는 힘이 드는 것이다. 이제야 말이지만, 연지평 고모가 어머니를 찾아온 것은 근 이십 년 만이라고 했다. 이십 년 전 어느 봄날, 우리 집에 돈을 꾸러 다녀간 후에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근 이십 년 만에 나타난 모습이 봇짐장수였다. 게다가, 그녀는 어머니의 체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에게는 물론―어머니의 표현을 빌면―마을과 이웃 마을까지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 자식들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받아내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할 때 약간 분노한 목소리였다. 나 역시 분노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거의 연지평 고모는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그러니까 대략 여든이 넘은 꼬부랑 할머니라고 추정할 수 있는 연지평 고모는 가난하고, 염치없어 보이고, 또 욕심 많아 보인다. 그런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런 노파를 아버지의 친누나라는 이유만으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현화 앞에서 그녀가 제법 예의바르고, 곱게 늙은 노파라는 인상을 줘야 한단 말이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사교적인 인간도 아니었고, 넉살이 좋은 인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거기에다 그녀가 들이밀 수의를 기분 좋게 거절할 방법까지 생각하면 머릿속이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현화는 말했었다.

“그건 절대 안돼. 우리가 몇 살인데 벌써 수의야? 게다가 한 벌에 이십오만 원이라구? 그럼 두 벌에 오십만 원인데, 그런 큰돈이 어디 있어?”

나도 그녀가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서른을 갓 넘었고, 현화는 스물여덟이었다. 큰 사고가 없는 한 우리는 아직도 살아야 할 날이 많다. 죽음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도 없다. 나로서는 난감할 따름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현화는 물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TV리모컨을 손에 쥔 채, 그러나 TV는 켜지도 않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현화는 주방 쪽에서 조리용 긴 나무젓가락을 손에 쥔 채 그런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실내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 차 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녀는 다시 물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나는 말했다.

“오빠 이름을 벌써 네 번이나 불렀어.”

현화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들었어. 음, 들었지.”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겸연쩍었다. 나는 되물었다.

“그런데 왜?”

현화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그러나 내가 감추고 있는 무엇인가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지켜보며 말했다.

“시금치, 시금치가 없어. 요 앞 야채 가게에 가서 시금치 좀 사다줘.”

나는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운동복 차림으로 실내화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현화는 다시 그녀의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으로 내려왔다.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야채 가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해서 연지평 고모에 대해 생각했다. 기억의 단상 속에서 그녀를 추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이상한 집착이었다.

나는 이럴 때 어머니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아마도 텃밭에 나가 일을 하거나 노인정에서 화투에 빠진 모양이다. 아니면, 라디오를 켜둔 채 낮잠을 즐길 수도 있다.

나는 곧 야채 가게에 도착했다. 시금치를 천 원어치 구입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구름 위에서 행해진 것 같았다.

열두시가 되기 전에 잡채를 요리하는 일은 끝이 났다. 현화는 그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준비했다. 베란다를 청소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자 한시였다. 점심 식사를 해야 했다. 우리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연지평 고모를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제 현화는 서재에 들어가 자신이 다니는 잡지사의 원고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거실에 남아 TV를 시청했다. 대개가 재방송 프로였다.

곧 두시가 되었다. 현화와 나는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 중에 현화는 물었다.

“고모가 오늘 오시기는 할까?”

“나도 모르겠어.”

나는 대답했다.

“미리 전화라도 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좋겠지. 하지만 노인들은 전화하는 것에 썩 익숙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올 수도 있지. 아니, 그럴 확률이 더 높다고 봐야지.”

그 후에 현화는 연지평 고모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나는 대답했다. 내 대답은 대개가 거짓이었다.

본래 연지평 고모는 고모들 중에서도 아주 부유하게 사는 편이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그 후 연지평 고모는 행상을 시작했다. 가난 때문에 조금 억척스럽긴 하지만 천성이 예의바르고 얌전한 분이다. 그분은 어렸을 적 나를 퍽 예뻐했다.

식사도 끝이 났다.

현화는 다시 서재로 갔다. 그리고 나는 거실로 와서 다시 TV를 시청했다. 그러다가 문득 앨범에 생각이 미쳤다.

나에게는 다섯 개의 앨범이 있었다. 두 개는 결혼 앨범이었다. 나머지 세 개는 결혼 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의 사진이 뒤섞여 있는 앨범이었다.

그 앨범의 사진들 중에는,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의 내가 담긴 흑백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또, 아버지의 앨범을 정리하다가 처치 곤란하게 된 사진들을 일종의 기념으로 간직하려고 내 앨범에 옮겨둔 것도 있었다. 나는 혹 그 앨범의 사진들 중에 연지평 고모를 기록한 사진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연지평 고모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밑져야 본전인 셈이었다. 나는 점심 식사 후 무섭게 몰려드는 식곤증을 물리치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나는 현화와 내가 드레스룸 겸 창고로 사용하는 작은 골방으로 갔다. 앨범들을 꺼냈다. 앨범들은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작은 평상 밑에 깔려 있었다.

나는 앨범들을 꺼내들고 삼단짜리 속옷 선반에 걸터앉았다. 앨범들의 먼지를 닦아내고 그것을 하나씩 펼쳤다. 그리고 옛 사진들, 일테면 노란 모노톤을 띠는 흑백사진들만을 한쪽으로 추슬러 보았다. 옛 사진은 생각보다 적었다. 열 장 남짓이 전부였던 것이다.

나는 그 열 장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딱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그 사진은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였는데, 중앙에 초췌한 할아버지가 검은 갓에 검은 도포를 입고 앉아 있었고, 그 주위로 가족이며 친척들이 모여 서 있었다. 아직은 젊은 아버지도 보였다. 아버지는 약간 작아 보이는 양복을 입고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경직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옆에는 큰아버지와 중학교 시절엔가 본 적이 있는 먼 당숙뻘 되는 아저씨도 서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호수 위에 떨어진 돌에 물결이 점점 퍼지듯, 아버지를 중심으로 조금씩 빛이 바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뭉개진 것이다. 심지어 나는 어머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오른편에 부녀자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흰 무명치마와 무명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보려고 했다.

나는 분명히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몇 안 되는 진기한 풍경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일찍부터 새 옷을 입고, 큰아버지의 집에 갔었다. 큰 아버지의 집은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낯선 손님들로 왁자지껄했다. 여자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조리하거나 날랐고,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으며, 누군가는 싸웠다. 한쪽에서는 젊은 장정들이 돼지를 잡았다. 돼지는 네 발이 모두 묶여 마당 한쪽에 버려지듯 눕혀 있었는데, 장정들이 번갈아가며 콧등 위에 해머 질을 할 때마다 움찔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돼지의 코 쪽에서 흘러내린 피가 마당의 좁은 고랑을 따라 흘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조금은 기이하게 바라보며, 또 한편으로 그때껏 보지 못했던 음식에 욕심을 부리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점차 시간은 흘렀다. 나는 어느 순간 꼬치구이 하나를 손에 쥔 채 덕석 위에 앉아 졸고 있었다. 옅은 봄 아니면 가을 햇볕이 마당의 천막 위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북적댔다. 바람은 제법 찼다. 그런데, 그때 어떤 여자가 나를 깨웠다.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나는 채 졸음을 떨구지 못한 채 그녀를 따라 큰아버지 집의 담 모퉁이 쪽으로 갔다. 이미 그곳에는 많은 어른들과 내 또래의 사촌들이 열을 지어 모여 서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면에서 나온 사진사가 지금 돌이켜보면 형편없이 크고 볼품없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서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잠시 가벼운 꾸지람을 들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은 어떤 여자의 손에 따라 맨 앞줄에 섰다. 양 옆으로는 온통 사촌들이었다. 사진사가 지시를 하기 시작했고, 곧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나는 그 여자의 손을 놓았던가? 나는 그것에 생각이 미쳤다.

기억 속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히 손을 놓지 않았다. 채 졸음에서 깨어나지 못한 대여섯 살의 나는 현실의 감각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고, 무언가에 떠밀려 붕 뜬 기분으로 그날 사진 촬영 대열에 합류했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낯섦으로, 한순간 삐끗했다가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될 것 같은 얼뜬 기분으로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분명 어머니가 아니었다.

나는 한순간 어쩌면 그녀가 연지평 고모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모들 중에 한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이미 열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나의 이름과 함께 ‘고모’라는 호칭을 호명한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사진 안에서 한 여자의 손을 놓지 않은 대여섯 살의 소년과 역시 그 소년과 손을 맞잡고 있는 여자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소년들은 모두 경직된 차렷 자세였고, 뒷줄의 여자들도 그랬다. 단 한 사람도 손을 맞잡거나 하고 있지는 않다. 사진의 빛이 바랜 것을 감안해 아무리 찾아봐도 그렇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사진과 내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괴리 이상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설레는 공포였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 이십여 년 동안 믿어왔던 무엇인가에 단단히 속은 기분이었다. 어째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인지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역시 짧은 순간, 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소년들 뒤편의 부녀자들을 한 번 더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들의 얼굴은 흐릿하고, 앞줄의 소년과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녀들은 내 고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녀들 중에 한 명은 내 어머니이거나, 아니면 연지평 고모이거나, 몇 년 전 죽은 큰고모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먼 친척이거나, 그도 아니면 나와 아무런 관계도 아닌 여자일 수도 있다. 역시 기묘했다.

나는 앨범에 옛 사진들을 집어넣었다. 앨범을 다시 작은 평상 밑에 넣었다. 기껏 되찾은 과거의 일부를 다시 망각 속으로 밀어 넣는 기분이었다.

골방을 나섰다. 소파로 갔다. 현화는 여전히 잡지사의 원고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다시 TV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식곤증이 다시 밀려들었다. 시간은 세시 반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짧게 잠들었다.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은 네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초인종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현화는 이미 현관 쪽에 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기 전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약간의 긴장이 흘렀다.

이윽고, 그녀는 모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듯 출입문 쪽으로 갔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바깥에는 말 그대로 꼬부랑 할머니가 한 명 서 있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 노파는 주눅이 든 듯도 하고, 경계를 하는 듯도 하며, 동시에 뭔가를 염탐하는 듯한 눈으로 현화와 나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 702호 안을 건너보았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사람은 현화였다.

“어머, 고모님. 어서 오세요.”

현화는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노파가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냉큼 그녀의 보따리를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그 노파는 보따리가 두 개였는데, 작은 보따리에는 부지깽이로나 사용할 법한 가늘고 짧은 나무가 끼어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지팡이인 듯했다.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죠? 집은 어떻게 찾으셨어요? 그렇잖아도 시골의 어머니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현화는 마치 친할머니라도 되는 양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전화가 없길래 안 오시나부다 했어요.”

나는 벌써 육 년째 현화를 알고 지냈고, 조금은 경박하기도 하고 애교인 듯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이 천성인 동시에 일종의 연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긴장하고 있다. 노파는 여전히 의뭉스런 눈초리로 집 안을 살핀다. 나를 힐끔거린다. 그러면서 못이기는 척 현화의 손에 이끌려 현관으로 들어선다.

현화는 그 노파를 등지고 서서 나에게 눈짓을 했다.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사실, 자연스럽게 반겨야 할 쪽은 현화가 아니라 나였다. 또 어느 정도는 그럴 심산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연지평 고모가 등장하자 내 몸은 굳고 말았다.

나는 간신히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딴에는 가장 자연스런 몸짓으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 어색해지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저 꼬부랑 할머니가 연지평 고모란 말이지?

나는 인사를 끝낸 후에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아버지와 닮은 듯도 했고, 그렇지 않은 듯도 했다. 사실, 주름과 검버섯 꽃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판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바랐던 것만큼 선한 인상은 아니었다. 얼굴 전체가 어딘가 모르게 약아 보이고, 탐욕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그동안 연지평 고모는 거실로 완전히 들어섰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는 안심하겠다는 듯 물부터 찾았다.

“물을 좀 다오. 원 차가 을매나 맥히던지. 또 질은 또 을매나 더우냐. 이건 여름이 따로 없구나.”

그리고 그녀는 거실에 주저앉더니 숫제 버선까지 벗었다. 발은 작다. 그리고 발바닥은 하얗다.

현화는 곧장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컵에 물을 부은 다음 그 위에 다시 얼음을 띄운다고 잠시 시간을 지체했다. 그동안에 거실에는 나와 연지평 고모라고 불리는 노파만 남았다. 여전히 어색했다. 그녀는 몸의 열을 식히려는 듯 저고리의 앞섶을 조금 열어젖히더니 손으로 턱 밑을 회회 저었다. 그녀는 나를 가끔 힐끔거린다.

현화가 곧 물을 가져왔다. 연지평 고모는 컵을 받아 쥐자마자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목은 깡말랐는데, 물을 들이킬 때마다 꿈틀거렸다. 행색에 비해 기운은 좋아 보였다. 그녀는 곧 물을 모두 들이켰고,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이제 좀 살 만하구나.”

그녀는 컵을 현화에게 건넸고, 그 옆에서 시종처럼 서 있던 현화가 물컵을 받았다. 숨을 좀 돌린다.

나는 이제 절친한 고모와 조카 사이에는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생각해본다. 머릿속이 텅 빈다.

그런데, 그때 물을 다 마신 연지평 고모가 시큰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넌 어째 고모를 보는 표정이 그러냐? 영, 순 지 애비를 닮아서. 얼굴도 생판 지 애빌 닮았구나. 고분고분하지 못한 성격하고는.”

그녀는 혀를 찼다. 그리고 또 말했다.

“아무리 연락이 없었어두. 어릴 적에 내가 너를 을매나 이뻐했는데, 그렇게 싱뚱싱뚱한 것이여?”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바보처럼 웃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그녀의 말이 당혹스러웠다. 그녀의 말은 대개가 옳다. 나는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그랬다. 그녀와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던 것 역시 옳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예뻐했다는 것은 기억에 없다.

그러나 내 기억을 신뢰할 수 있던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주눅이 들었다.

“원래 오빠가 성격이 좀 그렇잖아요.”

현화가 나섰다. 그러자 연지평 고모는 현화를 보며 또 말했다.

“으응, 그래도 자가 어렸을 적에는 꽤 귀염썽이 있었어. 기집애처럼 부끄럼이 많아서 그렇지. 그나저나 너긔 시애미가 네 자랑을 그렇게 해대더니 너 참 인물이 곱구나.”

현화는 내 어머니가 그녀를 자랑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혹은 솔깃한 척했다.

“어머, 어머니가 제 자랑을 해요?”

그녀는 묻는다. 그러자 연지평 고모는 말한다.

“응, 인물 좋구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왔다고 아주 자랑이 대단해. 내가 참 배가 아팠다.”

이윽고, 두 사람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현화는 조금 신이 나 있었고, 연지평 고모도 언뜻 그래 보였다.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 같다. 현화가 그녀의 조카 같고, 나는 전혀 남 같다. 물론, 불만은 없다. 나는 오히려 그렇게나마 자연스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그녀들을 지켜본다.

“식사는 하셨어요?”

현화가 물었다. 그러자 연지평 고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얘, 말 마라. 어느 통에 배를 채우니. 버스 타구, 걷구, 낯선 타지가 돼놔서 정신이 다 없었다.”

현화는 다시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 오히려 잘됐어요. 오빠가 고모님 잡채 좋아하신다고 얼마나 닦달을 해대는지 제가 잡채를 만들어뒀거든요. 식사하시고 오셨으면 서운할 뻔했어요.”

연지평 고모는 그 말을 듣고 힐끗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잡채 좋아하는 건 또 어찌 기억해냈누? 신통하다. 저거이 하도 나 본 지가 오래돼놔서 내 얼굴도 잘 기억을 못할 텐데.”

그리고 물었다.

“얘, 너 그건 어떻게 기억해냈니?”

나는 이번에도 좀 바보처럼 웃었다. 딱히 할 말도, 취할 행동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잡채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말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내가 현화에게 일러준 것은 하나의 단상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정확한 것은 나조차도 몰랐다. 게다가, 그 단상조차도 뚜렷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뒷간 옆에서 잡채를 먹던 그 여자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연지평 고모란 말인가?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도 찾을 수 없다. 뒷간 옆에서 잡채를 며칠 동안 굶주린 듯이 먹던 그 여자의 얼굴이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다. 무엇인가가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판단은 신뢰할 수 있는가? 역시 그럴 수도 없다.

두 여자는 곧 주방 쪽으로 갔다.

연지평 고모는 천연덕스럽게 식탁에 앉았다. 마치 그 자리가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라고 여기는 태도였다. 현화는 식탁 위에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대개 연지평 고모가 이야기를 하고, 현화는 듣는 쪽이다. 연지평 고모의 이야기란 대체로 아주 오래된 과거의 것으로, 말하자면 내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같은 것들이었다.

역시 나에게는 불만이 없다. 단지, 그녀가 우리 가족사를 너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어쩐지 그런 바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식사는 곧 끝이 났다. 이제 현화는 식탁 위의 그릇들을 대충 정리하고, 오전에 구입해두었던 과일들을 꺼내온다. 그리고 나를 부른다. 함께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웬일인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제 조명은 나를 향하고, 내가 연기를 할 차례이며, 또 나는 사실 그렇게 할 생각이었지만, 몸이며 마음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다. 역시 나는 사교적인 인간이 아니고, 넉살이 좋은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한순간 연지평 고모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연지평 고모는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말한다.

“놔둬라. 저게 숫기가 없다. 원, 어렸을 때하고 조금도 바뀐 것이 없다. 사람이란 게 그런 거다. 본래가 바뀌기가 힘든 벱이야.”

이윽고, 그녀는 목소리를 낮춘다. 그리고 현화의 얼굴 앞에 얼굴을 바싹 디밀고 무슨 말인가를 한다.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현화는 나를 쳐다보더니 크게 웃었다.

“정말이에요?”

그녀는 연지평 고모에게 물었다.

“그럼, 정말이고말고. 쟨 기억도 못할 거야.”

연지평 고모는 대답한다.

나는 약간 불쾌해진다. 하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연지평 고모는 한 술 더 뜬다. 식탁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서 여자끼리 실컷 흉이나 보자는 것이다.

그녀는 과일 쟁반을 먼저 챙겨 들더니 침실 쪽으로 간다. 현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접시를 들고 뒤따른다. 그녀는 잠시 나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낸다. 나는 미안함이 앞서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침실 문이 닫힌다.

나는 연지평 고모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그녀는 친조카인 나보다 현화가 더 마음에 들었음에 틀림없다.

갑작스레 혼자 남겨진 나는 그야말로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무엇엔가 좀 홀린 기분이기도 했다.

나는 리모컨으로 다시 TV를 켰다. 하지만 곧 그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TV를 껐다. 서재에 가서 책이나 읽을까, 아니면 아예 모든 것을 잊고 기원이라도 다녀올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침실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모기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간이 큰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그럴 필요가 있는가 싶으면서도 까닭 없이 불안해졌다.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생선의 가시 하나가 잇몸에 박혀 아주 고통스럽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아주 고통이 없지도 않은 묘한 통증으로 나를 괴롭히는 듯했다.

나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베란다에 분리수거해 놓은 쓰레기봉투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그것들을 밖에 내놓을 요량으로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런 것들 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베란다로 갔다. 간밤의 집들이로 음식물 쓰레기봉투며, 일반 쓰레기봉투 두어 개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양손에 쥐었다.

베란다를 나섰다.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간다. 그리고 그 순간, 연지평 고모에 대한 또 다른 단상이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분명 근 이십여 년 전에 돈을 꾸러 왔다는 어머니의 전화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앞서 기억해냈던 한 여름 이목구비의 윤곽이 뚜렷하지 못한 여자의 후편이기도 했다.

그 여름날, 그러니까 어머니는 근 이십여 년 전이라고 했지만 내 기억에는 정확히 이십오 년 아니면 이십사 년 전 여름의 어느 날, 나는 길 한가운데에서 음영이 짙어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지 못한 한 여자와 마주쳤다. 그때 나는 공포를 느끼며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조금 전까지 그 뒤의 일을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공포가 그녀의 갑작스런 출현과 함께 미지의 얼굴,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등에 진 검은 얼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그때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음영이 서서히 걷히고, 화상을 입어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마치 어떤 물체가 수면 위로 슬그머니 떠오르는 것처럼 드러났다. 내가 정작 가장 강렬한 공포를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녀가 했던 말들도 기억한다.

그녀는 말했다.

“네가 생근이니?”

그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던가? 대답을 했던가?

그녀는 계속 말했다.

“넌 고모를 처음 보지? 내가 네 고모야. 너는 나를 처음 보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네 아버지가 내 얘기를 한 번도 안 해줬지? 응? 네 아버지는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그랬지? 너도 그랬지? 응? 말해봐라. 말해봐.”

그때 나는 말을 했던가? 비명을 질렀던가?

그때 그녀는 분명히 내 양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다.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챌 때 온 힘을 다해 발가락을 구부리듯이, 마치 내 양 어깨에 그녀의 손톱을 박아 넣을 듯이, 분명 어떤 고통이 나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나는 그때 양 어깨를 파고드는 그 고통을 떨치기 위해 몸부림쳤던가? 아니면 비명을 질렀던가?

나는 고모에 대한 또 다른 소문들도 기억해냈다.

그것은 나의 고모들 중 한 고모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면내의 한국인계 순사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 전쟁 당시로 탈영한 한 한국군 병사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가 강간 후에 고모를 살해하려 하자 고모가 죽을힘을 다해 벗어났는데, 그가 쏜 총탄이 다리에 박혀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술주정뱅이 남편이 어느 날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불을 놓았고, 그 바람에 깊은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이들 중 내가 이제 막 기억해낸 화상 입은 여자와 일치하는 소문은 맨 마지막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단상의 여자와 고주망태의 남편으로 인해 화상을 입은 여자가 동일한 인물일까?

사실, 나는 단상 뒤에 기억해낸 소문을 신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분간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그 소문이 정말 옳은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시기도 정확치 않았고, 또 그 가해자도 순사였는지, 한국군이었는지, 아니면 인민군이었는지, 고주망태의 남편이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여름날의 여자가 정말 고모, 더 나아가 연지평 고모였는지도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여름날 화상 입은 얼굴의 여자와 그런 소문들이 연계되면서 나에게 한 명의 추상적인 여인상을 환기시키고, 그 여인상이 연지평 고모의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강렬해서 일종의 확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는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누군가가 물었다. 돌아보니 607호에 사는 김씨였다. 그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작은 컴퓨터 가게를 운영했는데, 내 집에 있는 컴퓨터를 몇 번 손봐주러 들렀기 때문에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는 다시 물었다. 그제야 나는 양손에 쓰레기봉투를 가득 쥔 채 쓰레기통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나보다 앞서 자신이 들고 온 쓰레기봉투를 쓰레기통 옆에 내려놓았다. 나도 그렇게 했다. 그는 손을 털었다. 그리고 몹시 언짢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아파트의 경비들은 허수아비야. 매달 내는 관리비가 아까워요.”

그리고 그는 한참을 투덜거렸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그는 본래 휴일도 없이 일을 한다. 그런데 오늘 하루는 휴업을 했다. 어제 시골 고향에 볼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오늘 새벽에야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랜 운전으로 몸이 피곤했다.

그에게 오늘 휴업은 일 년에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였다. 그만큼 그에게는 소중했다.

그는 실컷 먹고 잘 것이라고 단단히 결심했다. 실제로 그는 아침 일찍 아침 식사를 한 후에 곧 잠자리로 들어갔다. 아내도 그랬다. 꿀 같은 잠이었다. 그런데,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는 눈을 떠야 했다. 초인종 소리 때문이었다. 문밖의 사람은 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그는 잡상인인 것을 알았다. 무시하려고 했다. 무시하면, 지쳐서 돌아가려니 했던 것이다. 하지만 초인종소리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곤 했던 것이다.

그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자신의 잠을 방해한 대가를 단단히 치러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현관으로 갔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여든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파가 비굴한 웃음을 짓고 서 있었다.

그는 인정상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대신, 점잖게 거절했다. 그런데 노파는 결코 쉽게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이십 분 가까이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목청이 커졌다. 결국, 실랑이는 싸움이 아닌 싸움이 되었고, 노파는 그의 감정을 실컷 상하게 한 후에야 그를 떠났다.

“게다가, 그 물건이란 게 수의에요. 원 재수 없으려니.”

그는 투덜댔다.

“그렇게 추하게 늙다니. 그 할망구한테는 안됐지만 그렇게 늙어서는 안돼요. 얼마나 그악스럽던지. 덕분에 오늘 하루는 영 망쳤지 뭐예요. 사람은 일찍 죽어야 하는 거야.”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그 후에도 좀 더 투덜거렸다. 그리고 떠났다. 그는 나에게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하소연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가 떠난 후에도 쓰레기통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곧 그곳을 떠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올랐다. 문이 닫힌다. 엘리베이터가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사실, 나는 연지평 고모가 등장한 이후 계속 뭔가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단지, 연지평 고모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일종의 불안감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 허전한 기분의 정체를 명확히 깨달았다. 나는 그녀가 등장한 순간부터 그녀가 정말로 연지평 고모인지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704호에서 현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연지평 고모가 진짜 연지평 고모일까?

어째서 김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의문이 갑자기 명확해졌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와 현화는 연지평 고모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 집을 방문한 노파가 연지평 고모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인지 검증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 노파와 우리 두 사람을 관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그 노파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녀를 연지평 고모라고 믿고 있다.

나는 지금 연지평 고모라고 생각되는 노파가 처음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때부터 또, 거실에 들어오고, 현화와 나에게 말을 걸 때까지의 모습을 세세히 떠올려 보았다. 무엇인가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어긋나 있었다. 특히, 나는 노파의 눈이 마음에 거슬렸다. 생각이 많은 듯하면서도 철저히 계산을 하는 듯하기도 하고, 동시에 태연하게 보이려고 애쓰던 눈빛. 그녀는 내 눈치를 살폈었다. 나는 그것이 어색함에서 오는 일종의 경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연지평 고모가 아니라고 가정해 보았을 때, 그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을 헤아려 보는 것이었다.

나는 초조해진다.

나는 704호로 돌아가는 즉시 그 노파가 진짜 연지평 고모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모호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다그치듯 물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정말 연지평 고모라면 그때에는 그 무례함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따라서 나는 우회적으로 그녀의 신분을 검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우회적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행여 그 노파가 진짜 연지평 고모이고, 그 연지평 고모가 내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나는 신중해야 했다.

이제 나는 그녀가 연지평 고모라는 가정 하에서, 우리가 그녀를 반길 때부터 또 거실에 들어오고,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던 모습을 세세히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과 반대로, 그녀의 행동이 조금도 미심쩍게 여겨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눈빛이며, 엉거주춤한 행동이 마음에 걸렸지만 조카의 집을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후에 수의 한 벌 팔아보려고 들른 입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그 후에 아주 태연히 행동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몰랐다면, 또 내가 정말 혈육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태연히 행동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번에도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내 스스로를 농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7층에 멈춰 섰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나는 13층까지 올라갔다가, 704호로 되돌아왔다. 거실에 들어서니 침실에서 큰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약간 바보가 된 듯했다. 그 소리를 듣자, 모든 상황이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그런 상황 속에서 나 혼자 요란을 떨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좀 맥이 빠진다. 저 여자가 연지평 고모이면 어떻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단 말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연지평 고모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만약 연지평 고모가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어차피 연화는 수의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손해라야 기껏 식사 한 끼 대접한 것과 과일 몇 조각을 건네준 것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TV를 켰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 함께 어울릴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나로서는 무리였다. 나는 그저 TV를 지켜본다. 그러자 졸음이 몰려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잠이 든다. 나는 지난 새벽부터 잠을 충분히 자두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야 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화벨 소리를 꿈속에서 듣고 있는지, 아니면 현실에서 듣고 있는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15라운드에 그로기 상태에 빠진 권투선수처럼 몸을 일으켰다. 한순간 전화선을 뽑아버리고 다시 소파에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더듬어 수화기를 들었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역시 꿈속에서 듣는 것인지, 현실 속에서 듣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했다. 핵전쟁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 듯했다.

이윽고 전화는 끊겼다.

나는 소파로 돌아왔다. 누웠다. 나는 행복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었다.

어머니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야, 연지평 고모가 그냥 집으로 들어갔단다. 너 또 눈 빠지게 고모 기다리고 있을까봐 전화 넣어주는 거야. 원, 왜 너한테 직접 전화하지 않고 나한테 한다니. 귀찮아서. 어쨌든 그리 알아라?”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나는 소파 위에 앉아 있었고, 거실은 고요했다. 침실 쪽도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물론 아니었다.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 있었고, 정신도 멀쩡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물에 잠긴 듯했다.

나는 우선 주방 쪽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냈다. 물통을 입에 대고 마셨다.

모든 것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노파는 연지평 고모가 아니었다. 그녀는 나와 현화를 속인 것이다.

나는 이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생각했다.

지금 침실에 있는 노파를 내쫓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어떻게 그녀가 인간적인 굴욕을 덜 느끼도록 그것을 실행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갖출 수 있는 최대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것은 간단하지 않다. 노파는 물론이고, 나와 현화도 창피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다.

나는 물통을 다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침실 쪽으로 다가갔다. 침실 안은 조용했다. 나는 침실 문을 열었다.

현화와 노파는 침대 위에서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문고리를 쥔 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는데, 현화는 반쯤 엎드려 있고, 노파는 그 앞에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다. 그녀는 머리 흰 갓난아기 같다. 그녀의 몸집은 너무 작고, 검버섯과 주름진 얼굴은 하얗다. 그녀는 가끔 옹알이하듯 입을 비죽거리거나 얕은 소리를 내뱉는다. 전에 보았던 영악함이나 탐욕, 구차함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도저히 그녀를 깨울 수 없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나와 현화를 속이려 했듯이, 나 역시 나 자신을 속이려 했다. 그녀가 나와 현화를 이용하려 했다면, 나 역시 그녀를 이용하려 했다. 나 자신에게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과거를 그녀를 통해 덮으려 했던 것이다. 나는 내 미지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을 원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침실 문을 닫았다.

노파를 내쫓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얼마간 잠을 잘 시간 정도는 줄 수 있다. 더욱이, 나도 잠이 부족하다.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머릿속이 좀 몽롱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침실에 있는 노파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 나이, 그리고 출생지 따위를 몰랐다. 그녀가 어디에서 왔으며, 또 이제 어디로 갈 것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런 것들은 하등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것들을 안다고 해서 그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삶을 모른다. 물론, 나는 역사책이며, TV며,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의 단상들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어림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의 인생은 아니다. 그녀의 인생은 그보다 훨씬 무의미할 수도 있는가 하면, 훨씬 잔인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것도 그녀의 개인적 역사를 대변해줄 수는 없다.

나는 이제 현관의 신발장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두 보따리에 시선이 미친다. 나는 그것을 별 의미 없이 한참 동안 바라본다. 머릿속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선다. 두 보따리 앞으로 간다. 그리고 작은 보따리에 끼워져 있는 부지깽이 같은 지팡이를 쭉 빼어든다. 그것은 너무 가볍고 얇다. 양손으로 붙잡고 힘을 주면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다. 나는 허공에 잠시 그것을 휘둘러본다. 그리고 땅바닥에 짚어본다. 한참 동안 허리를 숙여야 그 높이에 맞출 수 있다. 이것은 어찌된 까닭인지 인간의 키에 맞춰진 지팡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팔십 년이 넘은 인생이 이 지팡이에 의지해 옮겨 다닌다는 것이 한순간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이제 큰 보따리를 풀어본다. 거기에는 수의가 너덧 벌 들어 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작은 보따리를 풀어본다. 거기에는 작은 가죽가방과 돋보기안경이 든 돋보기안경집, 그리고 사탕 봉지가 하나 들어 있다. 사탕 봉지는 뜯겨져 있는데, 그 안에는 이미 먹어치운 사탕의 종이껍질들이 수북하다. 반쯤 먹다 남은 사과도 하나 있다.

그 안에서 버스표도 한 장 눈에 띈다. 이미 사용해버린 ‘구기’발 버스표다. 나는 ‘구기’라는 지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풀어헤친 보따리를 다시 묶는다. 지팡이를 꽂아둔다. 소파로 돌아온다. 소파에 눕는다. 마음은 붕 떠 있고, 또 한편으로는 복잡한 큐빅 퍼즐 게임에 빠진 느낌이다.

나는 이제 구기라는 곳을 떠올려 본다. 흔하디흔한 농가길이 펼쳐진다. 산이 있고, 들판이 있다. 작은 촌가들이 십여 채 눈에 띈다. 해가 떠 있다. 바람이 분다. 냇가 옆의 갈대들이 하늘거린다. 길 위로 아지랑이가 핀다. 그리고, 그 위로 노파가 너무도 작고 낮은 지팡이를 짚고 내 쪽으로 걸어온다. 이제 산도 사라지고 들도 사라진다. 그녀는 백색 콘크리트가 깔린 길 위를 걷는다. 그녀는 작은 지팡이를 내딛으며 어딘가로 올라가는데, 그곳은 하얀 바위가 깔린 험한 길이다. 이윽고, 그녀는 우물을 지난다. 그리고 슬레이트 지붕의 집으로 들어간다. 마당을 가로질러 간다. 토방으로 간다. 마루에 앉는다. 그녀는 말한다.

“네가 생근이냐?”

나의 시선은 마루 위의 또 다른 어린아이에게로 향한다. 그 아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고, 계속 울고 있다. 노파가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려 한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고도 사탕이라는 걸 안다. 노파는 쉽게 그것을 꺼내지 못한다. 깡마르고 주름진 손으로 주머니를 헤집을 뿐이며, 계속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서랍을 열고 닫는 소리도 들린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현관문이 닫힌다.

나는 졸음에 겨워 실눈을 뜬다. 내 시선은 어느새 현관 쪽을 향하고 있고, 현관의 신발장 밑에는 수의 한 벌이 떨궈져 있다. 나는 노파가 도망가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눈을 감는다.


다음날, 현화는 우리가 칠만 원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수의도 한 벌 샀다. 내가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간 사이 계약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때 선불로 이십만 원을 지불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지평 고모에 대해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을 회피했다. 단지 한쪽 발을 절고, 얼굴에 화상이 있다는 것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이십여 년 전에 고모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현화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현화는 그 노파가 여전히 연지평 고모라고 믿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잠든 사이 연지평 고모가 떠나간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그녀는 우리의 칠만 원을 도둑맞았다고 전혀 생각지 못했으며, 단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었다.《문장 웹진/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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