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을 걷는 시간

곡선을 걷는 시간

 

 

 

염승숙

 

 

 

 

부러 그렇게 만들어진 경우를 제외하면, 세상 모든 휘어진 것들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거나, 정신적 혹은 물리적 충격이 가해졌거나. 노인의 굽은 등과 허리, 사춘기 아이의 비뚤어진 성격이나 오래된 연인들의 등 돌린 마음, 사고에 의해 부러진 뼈, 아주 추운 겨울날 주머니 안에서도 곱아드는 손, 허리가 꺾인 붓의 단면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이때 시간이라는 개념마저도 물리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므로, 어쩌면 휘어진다는 건 ‘충격’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곰곰 생각해 본다. 굽고, 곱고, 휘고, 둥근 그 모든 것들은 그러나 결국, 곧아지기 위해 일생을 견뎌야 하는 불행한 존재들은 아닐까 하고.

 

“괜찮다, 그런 눈도 있는 거야.”

지난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곤 불을 껐다. 그가 등 돌려 눕는 모습이, 얇은 이불을 어깻죽지까지 끌어당기는 모습이, 두어 번 헛기침을 하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그 모든 모습이, 보이진 않고 그저 소리로만 확대돼 귓불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며, 몰래, 딱딱한 손바닥을 두 눈에 바투 대고 있는 모습까지도 내게는 소리로, 불행히도 소리로만 달라붙어 왔다.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며 나는 물결처럼 흔들거리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밤의 파도 안에서 잠잠히 웅크린 채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물고기처럼 아버지의 등은, 어깨는, 다리는, 고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붙잡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작게, 그러나 힘겹게 요동치는 아버지의 등을, 어깨를, 다리를, 가만 붙들어 주고 싶다고. ‘아버지’ 하고 나직이 부른 뒤 그의 뒷모습 전체를, 스케치하듯 그려 간직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움직이는 물체의 특징을 빠르게 포착해 그려 내는 크로키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흔들림도 또한 아무런……, 휘어짐도 없이.

그러나 흔들리는 것은, 아버지가 아닐 테지.

“어서 자라.”

목이 잠긴 아버지가 말했다. 방 안을 잠식한 희붐한 공기가 잠시 흐트러졌다. 눈을 감았지만, 망막에 각인된 어둠의 잔영마저도 내겐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시선을 모으는 곡예사인 양 위태롭게 느껴졌다. 패잔병처럼 축축한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집을 찾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스물넷의 여름밤이었다. 찌는 듯이 더운 열대야에도 가슴을 찌르는, 화살촉 같은 서늘함이 뒤돌아 누운 아버지와 나 사이의 물리적 공간만큼 잔존해 있었다.

나는 새벽녘 어스레함이 문지방을 슬그머니 넘는 것을 보고야 잠이 들었다.

 

“왜…… 왔어.”

“…….”

“어떻게…… 여기까지.”

“…….”

해가 뜨자 손님이 찾아왔다. 내 목소리는 자꾸만 끊겼고, 소정은 대답 없이 제 구두코만 내려다보았다. 청바지에 받쳐 신은 소정의 하늘색 구두 앞코에 뽀얀 먼지가 얹힌 채였다. 취업 준비에 여념 없던 그녀에게 봄이 되자마자 선물로 사 주었던 구두. 아마도 이 시골 동네로 들어서기 위해 소정은 구두를 신은 발로 꽤 오랜 시간 서서 버스를 기다렸겠지. 정류장에 내려서도 몇 번이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재우쳐 길을 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와 소정을 번갈아 바라보곤 아무 말도 없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별다른 반찬이 없는 점심상이었지만 그래도 공기 속의 밥이 절반 넘게 남은 채였다. 아버지는 곧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아버지.”  

옷자락을 붙들려 했는데, 내 손은 아버지의 빈 허리께에 닿았다가 맥없이 돌아왔다.

“괜찮다.”

정오의 볕에 휘감긴 탓에 아버지의 거뭇한 얼굴이 도드라졌다. 아버지의 눈과 코와 입과 귀가 마냥 흔들흔들해 보였다. 아버지는 마당에 세워 둔 자전거에 올라탄 뒤 천천히 집을 빠져나갔다. 아버지가 ‘찌링 찌링’ 벨을 울리며 페달을 밟는 소리가 내 귀엔 마냥 둥글게 들려왔다. 한동안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소정은 말했다.      

“너무 이기적이잖아.”  

화장기 없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걸.”

나는 소정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담담히 대꾸했다. 소정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오늘도 참…… 덥다.”

마당에 물을 좀 뿌려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껏 달궈진 시멘트 바닥을 구두 한 켤레로 밟고 가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일 테다. 아니, 소정이 가고 나면 아예 새로 시멘트 가루를 물에 개어 마당 전체를 다시 바르는 게 어떨까. 대문 입구와 수돗가 주변의 시멘트가 깨지고 파여 흉물스러워진 지도 오래니까. 장마는 끝났지만 함부로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는 고양이들은 여전히 게을러지지 않을 테니까. 태풍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해치워 버리는 게 좋겠다.

 

“울지 마.”

나는 소정의 어깨에 손을 한 번 올렸다 내리곤 말했다. 소정이 고개를 들곤 말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어쩜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있어?” 하고, 소정은 물었다.

“편안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망설임 없이, 나는 대답했다. 그랬다. 편안하지 않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 어디에도, 불편함이 공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은. 내 아버지의 집이며, 내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붉게 웃다 떠난, 그런 공간이니까.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리고 내가 돌아와야만 하는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인 곳이니까. 그러니 이곳이라면 내가 조금쯤 흔들린다 해서 나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떤 흔들림도 이곳에선 자연의 풍경인 듯 모두가 침묵해 줄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 어떤 빛깔의 흙더미 혹은 아스팔트 위에서 느린 발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계신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돌아가.”

내 말에, 소정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기다릴게.”

“그러지 마, 내가 불편해.”

나는 힘주어 말했다. 이 단호함만이, 조금이나마 소정의 마음을 움직여 주겠지. 상처 없이,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배려라고 믿을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정말 아무런 방법도, 없어?” 하고, 소정은 물었다. 내겐 그것이 의문문이 아닌 평서문으로 들렸다. “모르지” 하고 대꾸했으나 내 목소리에 묻어 나오는 떨림을 소정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다행이야. 나는 그렇게, 너에게만은, 무언가에 쉽게 동요되지 않는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 감상적이 되어서는, 절대 이별할 수 없는 인간이 되고야 말테니.

“선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하고 소정은 망설이며 물었다. 아니라고, 나는 짧게 대꾸했다. 그런 날 바라보며 소정은 “그건 네 탓이 아니야. 누구의 탓도 아니야” 하고 중얼거렸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려는 소정의 손목을 슬며시 쥐어 주고픈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차가 크게 지는데도 불구하고 나와는 꽤 가까웠던, 내가 퍽 의지했던 선배 T. 졸업을 하고 서른이 가까워 오기까지 그는 취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성격이 늡늡했던 그는 입사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수백 장씩 되풀이해 쓰면서도 언제나 밝은 얼굴로 도서관과 동아리방을 오갔던 사람이었다. 그는 서류 심사에 통과할 때마다 나에게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 주었고, 나는 빵빵하게 부른 배를 문지르며 그에게 후식을 사 주었다.

싸구려 자판기 커피를 뽑아 주어도 “아, 달달하다”며 배시시 웃던 T. 함께 커피를 마신 뒤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을 때면 서로의 손을 방해하느라 안간힘을 쓰곤 했다. 그러고는 어두운 동아리방으로 들어가 밤새도록 함께 낄낄거리기 일쑤였다. 잔뜩 굳어 버린 석고를 주무르거나 팔레트에 몽쳐진 물감을 개어 낼 때면 취업도, 연애도, 일상사의 모든 고민도 잊고 오로지 생의 목적이 농담인 양 달근달근한 수다를 이어 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여름의 초입에, T는 너무나 황망히 내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믿기 힘들지만 그것은, 다소 우스꽝스럽다고도 할 수 있는 죽음이었다.

집에 좀 잠깐 다녀오려고.

T는 분명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내실 있는 가구 회사의 2차 면접을 통과한 직후였다. 건강 검진만 받으면 최종 합격의 통지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T가 학교를 떠난다는 사실이 내심 아쉬웠지만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그 어떤 일말의 징후나 조짐도 느낄 수 없던, 마냥 안온하고 평화롭던 인사였다.

하지만 주인집 아주머니의 떨리는 음성을 듣고 달려간 다섯 평짜리 하숙방에서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후문 쪽을 향해 난 언덕배기를 가분가분 날듯이 내려갔던 T의 뒷모습이 언제라도 잡힐 듯 선명한데, 어째서 이런 광경을 마주해야 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어둡고 습한 방 한가운데에서 태아처럼 웅크린 채 모로 누워 있던 T. 그는 털이 뭉텅 빠져나가 휑뎅그렁한 붓처럼 몹시도 흉흉한 모습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헌 옷가지를 개키듯 T의 어깨를 답삭 쥐곤 힘주어 일으켜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나는, 서툴게 세워 놓은 이젤처럼 뒷걸음질을 치다 문턱에 주저앉고 말았다.

꽤 오랜 시간 술만 마셨군요. 음식물 섭취의 흔적이 없습니다.

의사는 콧등에 걸쳐진 안경을 검지로 밀어 올리며 꽤나 열성적으로 말했다. 나는 개구리의 배를 갈라 들여다보는 어린아이만큼이나 순진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의사를 멍하니 바라보다 맥없이 돌아섰다.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왜 죽었는지 알고 싶은 내게 의사가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망의 원인이나 추정 시간, 부패 여부 등의 말들 나부랭이는 아무래도 좋았다. 누군가의 삶이 끝날 때 필요한 건 사이렌이 요란한 구급차나, 위장을 찍어 보여 주는 엑스레이 필름 같은 것들은 아닐 테니까. 고작 그 따위 것들보다는 차라리 주둥이가 깨진 채로 널브러진 소주병이나 뜯다 만 구운 오징어 다리 같은 것들이 곰팡이 핀 방에 누운 T의 죽음을 말해 주는 편이 훨씬 나았다.

나는 어쩌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그 누군가가 보여 준 생의 마지막 장면을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기괴할지언정, 그것이 바로 도무지 긍정할 수 없는 삶의 완결판으로서의 죽음이라는 게 아닐까 하는 것 또한 덧붙여. 병원을 나서며 나는 오랜 시간 부대껴 살아왔던 T의 소소한 버릇이나 말투, 얼굴 표정들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 어떤 영상도 머릿속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잃어버린 건 T가 아니야. T와 함께 나누어 먹고 마셨던 음식물의 온기야. T의 표정과 T의 목소리와 T의 미소와……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내 것이 될 수 없을 T와의 따뜻한 시간.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해졌고, 다 닳은 형광등처럼 세상이 가물거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번지는,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수채화 속에 들어가 숨죽여 울고만 싶은 마음과는 달리, 나는 오래도록 거리에 서서 나 스스로를 방치해 두고픈 마음뿐이었다.

 

“선배는 왜, 그렇게 훌쩍 가 버린 걸까?”

나는 대답을 구하지 않는 마음으로 물었다. 내게 있어 T의 죽음이란 언제까지고 끓어오르지 않는 물과 같은 것일 테니까. 비등점에 닿을 수 없다면 의문의 불꽃을 피워 올리는 것은 소용없는 짓일 뿐이다. T는 어째서 그 흔한 일기장 한 권, 짧은 편지 한 장 남기지 않은 것인지.

소정은 대꾸 없이 고개를 저었다.

“화구들 잘 챙겨 놓을게.”

“가져. 싫으면 필요하단 후배들 나눠 줘도 되고.”

“사물함도 다 그대로 놔 둘 거야.”

“고집 피울 일 아니잖아.”

나는 조금 언성을 높였다.  

“…… 연락할게.”

말하곤, 뒤돌아선 소정의 등이, 어깨가, 다리가, 가느스름히 흔들렸다. 하르르한 물빛 블라우스의 소정이 차츰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그랬듯 앞으로도, 곧았던 너의 등을, 어깨를, 다리를, 나는 두 번 다시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동아리 후배이고, 내 연인이었던 네가, 나는 언제고 나를 향해 걸어 들어오는 존재일 줄만 알았지 이렇게 손닿을 수 없이 멀어져 가는 존재일 줄은 몰랐다. 점점 줄어들어야 마땅한데, 동네 어귀를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소정의 구둣발 소리는 귓불에 달라붙어 통증처럼 언제까지고 맴을 돌 작정인 듯 느껴졌다.

그러니 모든 휘어지는 것은 왜, 이토록 아프기까지 한 것일까.

 

‘치료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라며 소정은 그날도 울었다. 서울에서 이별을 고했을 때, 그때 이미 나는, ‘눈물을 닦아 줄 수 없어 미안해’라고 말했어야 했는지 모른다. 말이라도, 말 뿐일지언정, 마음은 전했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내게 닥친,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달했다. 나는 머지않아 시력을 잃게 될 거라고, 그러니 우리 그만 여기서, 헤어지자고. 지금도 그랬던 내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다. 소정의 볼을 타고 흘러내릴 눈물을 닦아 줄 평범한 눈이 이제 내게는 없으니 말이라도, 그녀를 향해 굽이치는 한마디 말이라도, 내뱉어선 안 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갔니.”

“…… 네.”      

아버지는 어느새 돌아와, 다시 수저를 들었다. 밥이 딱딱하게 식어 있었을 텐데도, 아버지는 과장된 몸짓으로 밥공기를 싹싹 비워 냈다. 어릴 적의 나는 어째서, 수저로 공기 긁어대는 소리에도 진저리를 쳤던 것일까. 바닥에 내던져도 결코 깨지지 않는 그릇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화가 나곤 했다. 그건 명백히, 갑갑증에 빠진 어린 아들이 으레 그러하듯 아버지를 향해 쏟아 내는 이유 없는 분노였을 테다. 제아무리 팽개쳐도 부서지거나 깨어지지 않는 내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굴레 같은 것을 알아 버린, 사춘기 아이의 치기(稚氣)같은 것.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아버지를 떠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대학은 서울에 있었으므로, 나는 표를 끊고, 기차에 몸을 실어 아버지가 쫓아올 수 없는 정당한 거리를 만들었다. 허리까지 일직선으로 웃자란 벼들이 내게서 멀어지는 동안, 나는 어떠한 이유로도 이곳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대학도 미처 졸업하지 못하고, 나는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고 나서야, 직선을 달려 나갔다 믿었던 뜨거운 철로 위의 쳇바퀴는 기실, 곡선의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시해지지 마라.

손 흔들며, 아버지는 강마른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더랬지. 건강 잘 챙겨라 또는 전화 자주 해라, 그도 아니라면 사람 조심해라와 같은 말도 아니고 시시해지지 말라니. 나는 무심히 그 말을 흘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3년 간, 때때로 심해지는 빈혈 정도로만 치부해 왔던 나의 병이 급격히 진행되어, 나는 우습지만 군 입대도 무산된 채로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떠나기 전 그대로였다. 다만 나와, 나의 눈만이 변화한 것일 뿐.  

습성 황반변성. 그것이 나의 병명이었다.

  

“황반은 필름 같은 거예요. 카메라에 넣는 필름 말입니다. 필름이 손상되면 사물이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없죠. 같은 원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텔레비전 속에서 의사는 빠르게 말을 뱉었다. 기자는 등을 보인 채로 “아, 필름이요” 하고 대꾸했다. 기자의 등도, 의사의 얼굴도, 내 눈엔 자꾸만 물안개가 어린 듯 흔들거렸다. 나는 손에 쥔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면서 놀이를 하듯 눈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

“증세는 어떻습니까?”

기자가 계속 질문했다.

“네, 환자분들이 현재 겪고 계시는 상태 그대로입니다. 직선이 흔들려 보이거나 굽어보이다가 점점 사람의 얼굴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손상되죠.”

기자는 다시 “네, 그렇군요” 하고 말을 받았다. 그래, 얼마 전에 어떤 돌팔이 사내에게서 나도 저런 똑같은, 위험한 말을 들은 적이 있지.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요?

처음, 석고상을 두고 데생을 하던 날처럼 손이 덜덜 떨렸었다.

그럼, 기간은……?

의사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러나 또렷이, 나를 바라보았다.

유감스럽게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짧으면 몇 달, 길어야 2년이에요.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담담해지는 기분이었다. 화가 나지도, 눈물이 흐르지도 않고 그저 마냥 평온하기만 했으니까. 자취방에 돌아와 저녁을 차려 먹고는 무력한 손놀림으로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눌렀던 것 같다. 신호음이 끊기고 아무런 떨림도 없이 “아버지” 하고 불렀을 때, “그래”라고 대답하기 전에 아버지는 그 침묵 속에서 무엇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세상 모든 아버지란 불우하다’고 생각했던 그 밤, 나는 나 스스로가 마음 깊이 절망했단 사실에 숨죽였다. ‘시시해졌다……’고 중얼거리며 나는 모로 누워 잠이 들었던가.

이렇게 흔들려도 내가 나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묻고 싶었다.

“주로 고령화된 노인들에게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습성 황반변성이 이렇듯 현재 젊은 층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한 말씀 더 해주시죠.”

기자가 마지막으로 질문했고, 의사가 답했다. “네, 지금으로선 딱히 어떤 이유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만한 의학적 근거는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 층이 지닌 특수한”까지 들었을 때 ‘팟’ 소리가 나며 텔레비전이 꺼졌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귀로 뉴스를 듣느라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피곤하면 좀 눕지 않고 왜.”

이제 겨우 점심을 먹은 참인데, 아버지는 이부자리를 폈다. 허둥대는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재미있어서, 나는 끅끅 웃었다. 아버지는 이불을 반쯤 펴다 말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하는 수 없다는 듯 마주 웃어 보였다.“간에 바람 들었다고 소문날라.”

나는 앉아 있고 아버지는 서 있는데, 눈높이를 맞추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몸이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의 그것처럼 자꾸만 휘청거려 보였다. 직선을 용납하지 않는 내 눈이 영 갑갑했다.

“너무 그러실 것 없어요. 아직은 괜찮은데요, 뭘.”

“쉬어야 해. 몸도, 마음도 다 쉬어야 눈이 낫는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이 보내는 신호인 거야.”

아버지는 기어이 바닥에 얇은 이불을 깔고, 구석 한 귀퉁이에서 잠자던 선풍기까지 끌어 왔다.

“늙으면 찬바람도 잘 안 찾게 돼.”

아버지는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버튼을 눌러 바람의 세기를 조절했다. 잠시 후 방 안은 ‘미풍’으로 가득 채워졌다.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의 날개 소리가 새삼 익숙해 나는 그것만으로도 한껏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털고 온몸의 힘을 빼 버리자 이대로 마냥 잠에 빠져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들어 베개를 베 주곤 옆자리에 다붓이 누웠다. 아직 대낮인데 부자(父子)가 함께 멀뚱히 누워 있으려니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고요가 쓰륵쓰륵 밀려들었다.

“마당에 시멘트…… 새로 바르는 게 어떨까, 아버지.”

나는 하품하듯 말했다.

“태풍 오기 전에 발라 두는 것도 뭐 나쁘지 않겠지.”

아버지도 심드렁히 대답했다.

“남의 집 마당은 철마다 찾아다니며 잘도 새로 발라 주면서, 정작 우리 집은 왜 저 모양인 거예요. 가루 때문에 걸을 때마다 아주 버석버석해” 하고 내가 눙치자, 아버지는 설핏 웃었다.

“아침마다 소일삼아 쓸어 내는 재미도 쏠쏠치.”

나는 불현듯 조금 짓궂어져서, “엄마 입술, 어쨌어요?” 하고 놀리듯 물었다. 잠시 가만있던 아버지는 “허허” 하고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그 놈의 입술…… 어쨌냐고 어지간히 떼를 쓰더니 또 그 얘기냐.”

 

엄마는 아주 붉은 입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꽃잎이 녹아 물처럼 흘러내린다면 꼭 그와 같은 색일 거라고, 어린 나는 엄마의 입술을 보며 생각하곤 했다. 그만큼 붉고, 화려했던 색감. 32색 크레파스에선 그 색깔을 찾을 수 없어서, 어렸던 나는 끝내 엄마의 입술 색을 칠하지 않은 채로 그림 숙제를 제출했었지. 서른두 가지의 색깔로는 감히 붙잡을 수 없던, 마술 같이 진한 색이었다.

엄마는 늘 빨갛게 입술을 바르고는, 동네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화장품을 팔았다. 스킨, 로션, 영양 크림과 같은 기초 제품부터 파우더, 아이섀도, 인조 속눈썹 등의 메이크업 제품까지 취급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사교적인 성격에 말투도 사근사근해서, 모두들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래선지 등하굣길마다 마주치는 아줌마들에게서는 모두 다 똑같은 향기가 났다. 우유 냄새와 장미향이 한데 뒤섞인 값싼 화장품의 향.    

엄마는 동네 여자들의 개별 피부 타입과 현재 상태, 또 제각각 어떤 향기와 질감의 제품을 선호하는가에 대해 훤히 꿰고 있었다. 로션 한 병을 팔고 와서는 그 여자와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 내용까지 두툼한 장부에 매일 기록했던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방바닥에 엎드려 누운 엄마의 허리를 베고 누워 구구단을 외거나 동화책을 읽던 시간들은 그래서, 언제나 향기로웠다고 나는 기억한다.

 

이게 ‘루주(rouge)’라는 거야.

엄마는 손가락 모양의 새붉은 입술연지를 보여 주며 말했다.  

루우주?

응. 루주.

루우주, 루우주.

엄마가 일러 주는 대로 무작정 따라 발음하면서, 나는 이따금 그것이 신비한 주문이라도 되는 양 웅얼웅얼 외우곤 했다. 짧고 도톰하고 둥근 모양의, 게다가 빨갛기까지 한 앙증맞은 크기의 루주가 엄마의 하얀 손 안에서 빙그르르 돌아 위로 올라올 때의 그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결코 손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그 너머에 존재하는 공간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엄마가 신제품의 비닐 포장을 뜯어 언제나 조금씩은 다른 색깔의 루주가 솟아오르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내겐 또 하나의 환히 열리는, 그 어떤 신비함을 맛보는 경험과도 같았다.

루주는 ‘붉다’라는 뜻의 프랑스어란다, 아들.

엄마가 입술을 납작하게 만든 뒤 꼼꼼히 루주를 바르는 시간엔 그래서, 가슴이 뛰었다. 엄마가 발음하는 ‘프랑스’라는 이국적인 느낌의 단어에도 설레었지만 루주의 생김새 또한 내게는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잘 벼린 칼날에라도 마주한 듯 사선으로 단호히 잘린 모양의 루주. 그 비스듬한 단면을 볼 때마다 마치 이등분한 세계의 한쪽 면을 차지하기라도 한 것 같은, 그런 으쓱한 마음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래……, 그래서 나도 네 엄마가 좋았지. 온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들어오면 집에선 늘 아련한 분 냄새가 났으니까. 순식간에 나른히, 그날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 싸구려라도, 그땐 그것대로 또 괜찮았어.”

아버지는 한쪽 팔을 구부려 이마에 대곤 눈을 감았다. 일평생 거리 곳곳, 아스팔트 까는 작업을 해 온 아버지에게 살갑게 굴지 못했던 건 단지 기름 냄새 때문이었을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눈 감은 엄마의 마지막 얼굴을 본 직후 나는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보름 가까이 크게 앓고 나서야, 그제야 눈물을 터뜨렸다고도, 아버지는 말했다.

“엄마 입술을 어쨌냐고 네가 물었지.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는데.”

나도 눈을 감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천장엔 그저 낡고 얼룩진 도배지뿐이었으므로 휘우듬히 보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게 더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휘어짐조차, 내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결국은 보이지 않게 될 거라는 예고된 시간이, 한없이.

 

새까만 입술만을 남겨 놓고 엄마가 식도암으로 죽어 버렸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한테 인사해야지’라며 손자국이 남도록 내 어깨를 꽉 쥐었던 아버지의 떨림만이 고스란히 심장으로 전해졌을 뿐. 나는 엄마의 입술만을 오래도록 노려보다 까부라졌다. 붉은 루주가 발린 입술 속에 언제 저토록 많고 많은 검은 주름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던 것인지, 나는 다만 그것을 막연히 슬퍼했던 건 아닐까.

누가 엄마의 입술을 훔쳤지? 엄마의 붉디붉은 그 색깔들은 대체 어디로 갔지?

기름 냄새가 밴 아버지의 큰 손바닥을 밤마다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엄마의 입술을 빼앗은 게 분명해. 아버지는 왜 엄마의 입술을 손에 그러쥐고 돌려주질 않는 걸까? 눈이 부시도록 붉고, 둥글었던 그것을.

“아마도 싸구려 색조 화장품 때문이었겠지. 착색이 되는 탓인지 루주를 지워 낼수록 입술이 까매진다고, 네 엄마, 늘 불평하곤 했으니까.”

아버지가 내쉬는 나직한 한숨이, 선풍기 바람에 날려 방 안을 휘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조심스레 ‘후’ 하고 숨을 뱉어 보았다. “아홉 살 때 본 엄마의 그 까만 입술이, 잊히지가 않아요”라고,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팔다리가 줄고 또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떠난 뒤 아버지는 도로에서 아스팔트 깔던 직업을 그만두었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오가며 마을의 품앗이를 돕거나 무너진 담장을 세우고 수도관을 설치하거나 마당의 시멘트를 발라 주는 등 분주히 일감을 찾았다. 나는 턱을 괴고 방안에 엎드린 채 집 안과 밖을 개미처럼 바지런히 오가는 아버지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홀로 상상에 빠져들곤 했다. 엄마의 붉은 입술 위에서 묵묵히 선 채로 잿빛 시멘트를 바르거나 새까만 아스팔트를 부어대는 아버지. 조심조심 걸으며, 때론 천천히 자전거 페달도 밟으며, 엄마의 입술을 도로 삼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는 아버지.

비가 오면 아버지는 우산을 쓰고, 눈이 오면 아버지는 코트를 입을 테지. 시간이 흘러 다시 푹 팬 주름들 사이에서 바짓단이 젖거나 쑥쑥 발이 빠지면서도 부서진 시멘트 가루와 아스팔트 조각을 쓸어 내고 또 바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다만 허허 웃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길은……, 곡선일 테니까. 그렇지, 아버지?”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응?”

아버지가 이마에서 손을 내렸다.

“마당에 시멘트 바르고 그게 좀 마르면…… 어디 좀 다녀올까 해요.”

나는 머뭇거렸는데 아버지는 의외로 선선히 말을 이었다.

“나쁘지 않겠지.”

“미국 애리조나 주 북부에 그랜드캐니언이라는 곳이 있대요. 콜로라도 강의 급류에 깎이고 파여 형성된, 세계에서 가장 깊고 거대한 협곡.”

고백하듯 나는 주섬주섬 말들을 풀어냈다.

“협곡?”

“T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어요. 취직을 하고, 월급을 모아서 꼭 그곳에 가겠다고. 대신, 다녀오고 싶어요. 마지막 여행이 될 거고, 분명히 이 눈으로는…… 힘들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요, 꼭 한번은.”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겠지’라든가, ‘나쁘지 않겠지’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네 엄마의 입술 같은 게 아니겠니.”

“네?”

“입술 말이다. 색에 가려졌던 주름 같은 것.”

나는 멀뚱멀뚱 천장을 향해 눈을 끔벅였다.

“기온이 높은 여름이면 아스팔트도 물렁해지지. 원유에서 기름을 추출해 내고 남은 찌꺼기가 아스팔트인 건데, 그래서 여름엔 늘 밤이 되어서야 작업을 시작한다. 지반이 침하되거나 대형 과적 차량이 지나가면 아스팔트에 균열이 생기는데, 열에 의한 손상도 상당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뒤틀린 아스팔트를 파쇄기로 찍어 들어 올리지 않는 한 대부분은 그저 기존의 자리에 손쉽게 새 아스팔트를 덧씌우곤 했어, 그게 돈도 시간도 품도 절약하는 방법이었으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엔 그렇게들 많이 했다.”

나는 조용히 귀 기울여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여름밤은 늘 너무나 짧기만 해. 그래 시간에 쫓겨 작업을 하다 보면 언제나 매끈하지 못하단 말씀이야. 제아무리 아스팔트를 평평히 펴 바르려고 애를 써도, 울퉁불퉁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아스팔트가 부어질 때의 그 뜨거운 온도란 상상조차 하기 힘드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럴 때마다 나는 담담히 생각하곤 했지. 아, 이 몸이 또 지구에 굵은 주름을 만들어 주고 말았군.”

“주름이라…… 꽤 미안했겠는데요.”

아버지에게 이런 소년 같은 엉뚱함도 있었나 싶어서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나는 지금 지구의 주름을 보고 있다고……, 세상이 울퉁불퉁해 보일 때마다 말이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른거리던 빛의 점막이 거두어졌다.

“세상엔 주름도 많고 많고, 곡선도 많고 많고, 따지고 보면 직선이 없는 곳이야. 흔들리는 게 눈인지 세상인지 알 게 뭐냔 말이다. 제 몸의 터럭 한 올 흔들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동물은 없어. 휘면 휘는 대로, 꼬부라지면 꼬부라지는 대로 가는 거야. 걷는 순간엔 다 일직선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이리 기울, 저리 기울, 사는 게 다 기울 기울, 그렇단다. 따지고 보면 매끄러운 길만큼 걷기 힘든 곳이 또 어디 있겠니. 그러니 마찰이 생기는, 주름지고 접히는 자리마다 이리들 함께 모여 사는 것이지.”

아버지의 말이 자꾸만 귓바퀴에서 돌고 돌았다. 나는 어쩐지, 뼛속 깊이 평온해지는 기분에 휩싸였다. 곧 탈탈대며 돌아가는 선풍기의 바람 소리와 뒤섞여 아버지의 목소리가 간간이 뭉개졌으므로 나는 아버지 쪽으로 천천히 돌아누웠다.

“협곡이라면…… 그것도 아주 구불구불할 게 아니냐.”

아버지는 누운 채로 손바닥을 맞비비곤 저린 듯 양손을 주물럭거렸다. 무심코 바라보던 나는 그제야, 유년의 그 무수한 밤들에, 내가 아버지의 손을 뒤적이며 엄마의 입술을 찾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버지의 까만 손과 엄마의 까만 입술, 까만 손의 주름과 까만 입술의 주름…… 둘이 꼭 같아 보여서, 그것이 혼란스러워, 아마도 어렸던 나는 자꾸만 아버지를 보챘을 것이다.

 

생각하면 참 많은 것들이 서로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손과 엄마의 입술이 그렇고, 이 둘과 함께 내가 발 딛고 선 지구의 표면마저도 무수한 주름으로 뒤덮여 있을 터였다. 더불어 사라진 T와, 소정과, 나의 몸 구석구석에도 굽고, 곱고, 휘고, 둥근 그것들로 가들막이 채워져 있겠지.

휘어진 그대로가 아름답다면 용기 내어 떠나리라, 나는 결심했다. 짐을 챙겨 비행기에 오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T가 즐겨 썼던, 가장 커다란 크기의 붓을 챙겨 대륙과 바다를 건너야지. 곡선을 걸으며, 그러니 나는 즐거이 아버지의 말을 노랫말처럼 중얼거려도 좋을 것이다. 이리 기울, 저리 기울, 사는 게 다 기울 기울이니, 흔들리는 게 눈인지 세상인지 알 게 뭐냔 말이야……, 안 그래요, 아버지?  

세상은 언제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소멸을 몰고 온다. 그러나 지금 내가 지닌 단 하나의 소망이라면, T의 붓에 물감을 담뿍 묻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곡선을 그리는 것. 자연 그대로의 협곡이 캔버스가 되어 줄 테니, 어쩌면 나는 그것을 고이 접어 소정에게 편지를 띄울 수도 있겠다. 삶의 모든 직선이 사라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생의 기운을, 그 곡선 위에서 마음껏, 붓질해 볼 수도 있겠다.

“아버지.”

“…… 그래.”

“아버지.”

“그래, 여기 있다.”

끈끈한 유화 물감처럼 아버지의 목소리가 온몸에 묻는 기분이 들었다. 매운 향이 훅 끼친 듯 코끝이 당겼다. 뜨뜻미지근한 단 한 줌의 바람에 실려 부유하는, 내게는 마냥 휘우듬한 이 오후. 그래도 방 안 가득 굽이쳐 돌고 도는 이 느릿한 속도감이 싫지 않았다. 눈꺼풀이 달팽이집처럼 무거워졌다.

아버지, 그러나 나란 존재도 결국엔, 한낱 지구의 주름에 지나지 않을 뿐은 아닌가요. 어느 여름밤, 아버지가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서둘러 만들어 버린 울퉁불퉁한 주름 말예요.

소리 내어 묻지 않았는데도 잠결에, 아버지의 느릿한 목소리가 자근자근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곧아지기 위해 너무 애쓸 것 없지 않니. 주름지고 접혀야, 마찰도 생기는 법이야. 생의 즐거움도, 삶의 고단함도, 언제나 그 마찰의 지점에서 잉태된단다.

나는 몸을 더욱 웅크린 뒤 아버지에게 슬며시 다가붙었다. 졸음이 햇볕처럼 쏟아져 내려서 나는 쉽게 눈을 뜰 수 없었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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