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유실 구역

지뢰 유실 구역

 

정운균

 

 

 

               

“이제 그만 여길 떠나야겠어.”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하도 낯설어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내 의사를 묻는 대신 적요한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깊은 응시의 의미를 알지 못해 나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지붕 위로 규칙적인 빗소리가 흘렀다. 그 저음에 맞춰 그는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도 흔들렸다. 퍼덕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문 너머 마당에 꿈틀거리는 노란 마대자루가 비를 맞고 있었다. 그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물러서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와 호응하듯 마대자루가 거칠게 꿈틀거렸다. 나는 그의 가슴에 몸을 바싹 붙였다. 손을 뻗어 밤톨처럼 까끌까끌한 그의 머리를 만졌다. 꿈틀대던 마대자루의 움직임이 곧 잦아들었다. 몸속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열기가 파문처럼 번졌다.

땀에 젖은 그가 몸을 돌려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가 내뿜는 연기가 좁은 방 안으로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나는 여전히 꿈틀대는 마대자루를 보았다. 썩어 죽어 갈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자루 속 새들의 꿈틀거림은 힘이 없었다. 엄마가 뿌려 놓은 볍씨를 먹은 새들이었다.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퀴퀴한 물비린내가 풍겼다. 갈대들이 바닷바람에 수런거렸고, 그 너머 갯잔디가 밀물 끝자락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섬을 둘러싼 모래톱에 보랏빛 산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석양이 내리깔리는 그림자 너머 도달할 수 없는 수평선이 뒤로 물러났다. 해안선을 따라 새들이 무리지어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개펄로 나가 맨발을 디뎠다. 차가운 한기가 발바닥 전체에서 느껴졌다. 그 선뜻한 감촉 때문에 현기증이 나도록 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발을 내딛을 때마다 개펄이 발꿈치를 잡아끌더니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해안 초소의 서치라이트에 불빛이 들어왔다. 불빛이 타원을 그리며 바다와 암벽과 개펄을 핥듯이 지났다. 불빛이 지나는 자리를 따라 포구에 정박한 낡은 배가 흔들렸고, 뱃머리 위에 어지럽게 널린 그물망이 드러났다. 불빛이 성큼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깜짝 놀라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풀썩 엉덩방아를 찧으며 미끄러졌다. 몸을 더듬듯 지나간 서치라이트 불빛이 개펄을 핥으며 바다 쪽으로 물러났다. 몸을 앞으로 수그려 손바닥으로 개펄을 짚었다. 어둠 속의 개펄은 더욱 검고, 미세하고, 부드러웠다. 발소리에 돌아보니 군복 단추를 채우며 나온 그가 마대자루를 발끝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아직도 네 엄마는 밤마다 볍씨를 뿌리고 다녀? 내가 꼭 한 마리 잡아 주든지 해야지.”

그가 담배를 군용 라이터에 대고 툭툭 두드리다 입에 물었다.

“저 위쪽은 표시도 안 돼 있어.”

그가 군장에서 꺼낸 지도를 땅바닥에 펴고 해안선 주변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지도의 굵은 선 아래 지역은 도로와 강과 소도시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강을 경계로 북쪽 너머는 온통 흰색 공백뿐이었다.

바로 여기야. 우리 섬이. 나는 공백으로 표시된 지역 아래, 강 하구(河口)에 거꾸로 세워 둔 구두 모양의 섬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고개를 들어 해안선 너머 북쪽을 바라보았다. 흰 공백뿐이던 지도와는 달리 어스름에 여울이 울렁이고 있었다. 남쪽과 다름없었다. 경계선 따위는 다리 건너 육지 사람들이 마음대로 만들어 낸 것뿐이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풍겼다. 비를 맞은 개 비린내였다. 하나뿐인 앞발을 껑충대며 셰퍼드가 다가와 멈추더니 가만히 나를 지켜보았다.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어. 과거가 진짜 있었다는 걸 일깨워 주거든. 이놈도 다친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겠지?”

쭈그려 앉은 그가 개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목을 내준 개의 눈길에서 다정함이 묻어났다.

수면 위를 날아오른 하얀 새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셰퍼드가 새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짖었다. 하얀 새는 머리 위를 좀 더 선회하다 바람에 떠밀려 바다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작년 이맘때 군견이었던 개는 장맛비에 유실돼 흘러온 지뢰를 밟았다. 선착장 앞 개펄에서 산책을 하던 관광객이 지뢰를 밟아 다리가 잘린 후 이 년 만의 일이었다. 이 개를 맡아 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이놈은 안락사 당해. 안락사를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그 죽음이 결코 안락하지 않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사고가 있은 후 지뢰 유실을 경고하는 하얀색 푯말이 세워졌다. ‘야간 출입 금지’라는 글자 밑에는 흐릿한 지뢰 사진까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작년 피서철이 시작될 쯤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후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지뢰가 왜 개펄에서 터지기 시작했는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지도 위,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경계 너머로 가는 철도를 복원했다고 했다. 당시 나온 표토(表土) 2만여 대 분량을 강 상류 사토장에 쏟아 부었는데, 이때 유기된 지뢰가 강을 떠다니다 개펄에 실려 들어왔을 거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한 가닥 붉은 선인 지도의 경계를 따라서 수만 개의 지뢰가 깔려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해안을 경계하는 해병대도, 마을의 이장도 모두 지뢰가 터진 사실을 쉬쉬할 뿐이었다.

그는 부대로 돌아가 봐야 한다며 초소 쪽으로 걸어갔다.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자챙이 만든 그늘 아래 쉽게 읽혀지지 않는 그의 얼굴이 어두웠다. 나는 마대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향했다. 셰퍼드가 앞발을 깡충대며 따라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루 속에 넣어 둔 새들의 시체가 거치적거렸다. 발끝에 신경을 모으는데도 자꾸만 허공을 딛는 것처럼 걸음이 불안정했다.

바람이 불었다. 마을 초입에 결려 있는 플래카드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관광 특구 지정을 환영합니다. 주민 일동〉. ‘환영’이라고 쓰인 붉은색의 고딕체가 어스름 속에서 유난히 눈에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손끝을 꽉 쥐었다. 손을 얼마나 쥐었던지 손톱 끝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해안을 따라 육지 쪽으로 천천히 올라오는 해무(海霧)를 바라보았다. 안개는 도로 옆 우뚝 솟은 버스 정류장 푯말을 지나 완만한 경사를 따라 밀려 올라왔다. 우우우 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엄마가 누워 있는 안방이었다.

엄마를 떠올리자 늘 그랬듯이 가슴이 답답해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잠든 엄마 곁에 섰다. 더럽혀진 옷을 벗고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아 물기를 짜내다가 기척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잠든 줄 알고 있던 엄마가 눈을 뜨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미 알고 있는 나는 부엌에서 미리 준비해 둔 야채죽을 챙겨 들고 들어왔다. 배가 고프면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의 식욕은 지나치게 왕성했다. 밥상을 치우기도 전에 배고프다고 다시 재촉했다.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 고독이, 아주 지독한 고독이 느껴졌다. 우욱, 엄마가 야채죽을 게워 내기 시작했다. 입술과 턱밑에 삼키다만 죽이 뚝뚝 떨어졌다. 퀴퀴한 냄새가 와락 달려들었다. 게워 낸 죽을 닦아 준 나는 마당을 서성이며 심호흡을 했다.

하루 종일 꿈쩍도 않고 방 안에 누워 있던 엄마는 밤이 돼서야 반신불수의 몸을 일으켰다. 새들이 몰리는 갈대밭에 농약에 재워 둔 볍씨를 뿌려 놓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죽은 새들을 거둬 왔다. 새를 주워 오는 것은 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무래 봤지만 엄마는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식욕밖에 남지 않은 엄마에게 개펄에서 새를 주워 오는 것은 화석처럼 남은 생활의 유일한 습관이었다.

주워 온 새들을 나는 자루에 담아 뒤뜰에 쌓아 놓았고, 다음날 보양업자 김 씨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넘겼다. 그렇게 한 마리당 천 원도 안 되는 돈이었지만 개펄에서 바지락이 사라져 버린 이후, 그것이 우리 집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주로 청둥오리가 잡혔지만 가끔씩 도요새나 저어새가 걸려들기도 했다. 청둥오리에 비해 도요새나 저어새의 처리는 어려웠다. 저어새는 천연기념물이라 자칫 잘못하면 경찰에게 잡히고 만다. 가끔씩 저어새가 잡히면 김 씨는 청둥오리보다 서너 배나 많은 돈을 주었다. 박제를 만드는 다른 업자에게 넘기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받은 돈을 나는 아로나민골드 철제 캔에 차곡차곡 모았다.

저어새를 집어넣은 마대자루를 허리춤에 끼고 엄마는 개펄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뒤뚱대며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엄마의 휑한 뒤통수가 어둠 속으로 묻혀 가는 광경은 왠지 으스스했다. 엄마는 새 흔적을 쫓아갈 때는 완전히 사냥개처럼 변했다. 때때로 발길을 멈추고 땅바닥에서 뭔가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흙을 떠 손가락으로 비벼 냄새를 맡았다. 두 눈을 번득이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땅 쪽으로 몸을 굽히고는 뭔가를 찾았다. 그러다 갑자기 물을 마시려는 것처럼 얼굴을 땅에 대고 배를 납작 붙였다. 웅덩이 너머 엄마가 노려보는 곳에는 흰빛의 저어새가 파닥이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의 두 눈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찾았다는 듯 기쁨에 반짝였다.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 올 무렵이 돼서야, 엄마는 마대자루를 메고 절뚝대며 돌아왔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더니 마대자루를 마당에 던져 놓고 방 안에 들어가 잠들었다. 나는 꿈틀대는 마대자루를 뒤집어 쏟아냈다. 뒤엉켜 있는 몸뚱어리들. 부러질 듯 축 처진 목을 한 새들은 모두 처연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랑 같이 떠나지 않을래?”

그는 섬을 벗어나 먼 곳으로 가서 살자고 했다. 그가 말한 아주 먼 곳이 어딘지는 묻지 않았다. 섬을 벗어나고 싶다고 먼저 말한 것은 나였다. 그런데 정작 마을을 떠나자고 그가 말을 꺼내자 되레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전역하고 나면 도시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할 거야.”

그는 섬 밖에서 해병대로 출퇴근하는 부사관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 하숙을 했지만 중사로 진급하자 도시에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그의 얼굴은 거칠었고, 이마와 두 뺨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특히 멋있는 것은 그의 눈이었다. 내가 부사관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눈을 보기 위해서였고, 멀리서 나를 알아볼 때 얼굴 가득 번지는 미소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로 퇴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볼 때면, 나는 내 삶이 고여 썩는다는 느낌에 고개를 내젓곤 했다.

“나랑 같이 가고 싶으면 내일 막차를 타고 나가 고속 터미널에서 기다려. 야간 해안 순시가 끝나면 바로 따라 나갈 테니까. 하지만 네 엄마는 데려갈 수 없어. 너무 모질다고 생각하지 마.”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두려움의 정체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차가운 밤바람, 끔찍한 침묵, 특히 앞이 보이지 않게 몰려오는 해무(海霧). 이 모든 것이 내 혼을 빼듯 심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삼 년 전이었던가? 지독한 해무가 새벽부터 밀려오던 날이었다. 엄마와 함께 고속 터미널에 갔던 적이 있었다. 반드시 고속 터미널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멀리 떠나기 위해 막연히 떠오른 장소가 고속 터미널이었다.

새벽에 제일 먼저 도착한 버스의 행선지 차표를 샀다. 버스는 새벽 공기 속을 달렸다. 긴장이 앞서 엄마의 손을 잡은 손바닥엔 축축한 땀이 흥건했다. 버스 안 조명등이 수명이 다된 듯 쉴 새 없이 깜박거렸다. 차창에 부러질 듯 고개가 꺾인 채 잠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이 비쳤다. 그 모습이 전등이 깜박일 때마다 또렷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두 번 눈을 깜박이자 딱 그 중간쯤 되는 회색의 그림자만 망막에 남았다. 동쪽 하늘이 회색으로 엷어졌다. 차창 밖 거무스름한 산 뒤에서부터 햇빛이 밝아 오더니 생경한 도시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폭풍이 휘몰아쳤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초조함으로 눈앞이 온통 아스라하게만 보였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음식점 앞에 엄마를 세워 두고 어디로 가면 안 된다고,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재차 당부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곤 전혀 엉뚱한 행선지의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차마 곧바로 섬으로 돌아가기가 꺼려졌다. 차 안의 엔진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울렸다. 목과 귓속에서 핏줄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아. 내일이면 따뜻한 보호시설에서 편하게 자고 있을 거야. 나는 그 말만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버스를 탔던 곳에 다시 내렸고 왜 그랬는지 엄마를 세워 둔 음식점 앞으로 되짚어 돌아갔다. 저만치 그 자리에 붙박인 듯 멈춰 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엄마를 보았을 때 나는 그만 허물어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쓴 엄마가 망연히 서 있었다. 안도인지 원망인지 모를 기색으로 뚫어질듯 바라보던 엄마의 시선은 우울하고 아득했다.

“밥 줘, 배고파.”

내가 다가갔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은 고작 그거였다. 배고프다고 투정하는 엄마와 저녁을 먹고,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도 나는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다리를 건너자 저만치 잠들어 있는 마을이 보였다. 갈대들이 바람에 수런거리는 해안가. 그 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던 소름끼치도록 고즈넉했던 개펄만은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날 왜 나는 다시 되짚어 그곳으로 돌아갔던 건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든 나는 혼자서도 돌아오지 않으려 했던 그 길을 엄마와 함께 되돌아왔다. 그 무렵 시작된 편두통은 약을 먹어도 가시지 않았고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서너 번 눌렀다. 엄마는 마지막 남은 한 숟가락을 다 먹고 물까지 마시고서도 양이 차지 않는지 몇 번 더 투정을 부리고서야 잠이 들었다. 격자무늬 창틀로 들어오는 달빛이 엄마의 얼굴 한쪽을 사각형으로 토막 냈다. 꿈이라도 꾸는 걸까. 혼곤히 잠들어 있는 얼굴의 한쪽 근육이 꿈틀하며 움직였다. 이따금 바다가 가까이 다가오듯, 파도 소리가 훨씬 또렷하게 들려왔다.

밥상을 치울 때쯤, 대문 밖에서 탈탈거리는 차 소리가 들렸다. 셰퍼드가 컹컹, 짖어댔다.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밝힌 낡은 트럭이 배수로 앞에 멈춰 섰다. 입성이 허술한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부러 헛기침을 해대며 마당으로 들어왔다. 마을 이장이었다.

“서명 좀 받으려고. 벌써 다른 섬들은 관광 특구 지정이다 뭐다 해서 주민지지 서명을 한다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

육지와 이어지는 다리가 놓이고 해안선을 일주하는 도로가 생겼다. 더 이상 섬이 아닌 이곳에 섬을 느끼려는 도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개펄로 찾아오는 철새들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자, 해안 도로를 따라 모텔들이 들어섰고, 주말마다 도시에서 몰려든 차들이 모텔 주차장에 줄지어 들어찼다. 관광객의 돈맛을 알게 된 섬 주민들은 하나 둘 장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개펄에서 조개를 캐던 아낙까지 도로가로 나와 순무 김치와 인삼 막걸리를 내다 팔았다.

하지만 올여름엔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유난히 많았던 비와 태풍이 여름휴가 기간과 겹쳐 버렸던 거였다. 도청에서 관광 특구를 지정하려 한다는 공고가 나붙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특구로 지정되면 군사 보호 지역으로 묶여 있는 곳이 해제됨은 물론 대규모의 개발이 있을 거란 소문이 돌았다. 여기저기 풍광 좋다는 섬들이 앞 다퉈 주민들의 지지 서명을 받아 특구 신청을 내느라 경쟁하고 있었다.

“외지 사람들을 싫어하는 노인네들이 제일 걸림돌이야. 늙어 남은 거라곤 고집뿐이라니까. 꼴에 설득하느라 대접이라도 하려면 그 유세가 보통이 아니야.”

이장이 허, 하며 입김을 불었다. 서명 란에 도장을 눌러 찍더니 걸쭉한 가래를 우려 뱉었다. 그 소리에 셰퍼드가 다시 컹컹, 짖어댔다.

“저놈을 잡으면 살이 쏠쏠하게 나오겠는데? 그러고 보니 작년에 저놈이 지뢰를 밟았을 때가 마지막 사고였지 아마. 에이 염병할 놈의 지뢰하고는.”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장이 한마디 내뱉고는 탈탈거리는 트럭을 타고 되돌아갔다.

엄마의 숨이 깊어진 걸 확인한 후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폭우라도 쏟아지면 좋으련만. 나는 까닭 없이 답답함이 일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온통 시커멓게 채색된 개펄과 하늘은 그대로 한 덩어리 어둠이었다. 그 짚은 어둠 속의 마당을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었다.

내게 도시의 삶을 처음 이야기해 준 것은 아버지였다. 트럭을 몰고 인근 술집에 생선을 대 주는 일을 하던 아버지는 내게 도시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가 도시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두 눈에선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그 눈빛도 누워 있는 엄마를 볼 때면 이내 안쓰러운 연민으로 흔들렸다.

엄마는 나를 낳다가 뇌출혈을 일으켰고 그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내가 클수록 점점 더 병세는 악화되어 갔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모녀 사이 감정의 교류라든가 추억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졸업을 하면 도시로 나가 살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내가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보면 되니까 괜찮다며 도시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아버지의 트럭이 다리 난간을 박차고 나가 개펄로 추락했다. 횟감을 도시의 음식점에 대 주고 다리를 건너 돌아오던 중이었다. 엄마의 약값과 병원비 때문에 잠까지 줄여 가며 일을 한데다, 그날따라 그는 식당 손님이 남기고 간 소주 반병을 마셔 제법 취한 상태였다고 했다.

“이젠 니 엄마에겐 너뿐이다. 명심해라. 니 엄마는 네가 곁에서 보살펴 줘야 한다. 그런 게 다 핏줄 아니겠냐. 미안하다.”

잠시 정신이 든 아버지가 한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곤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지고 말았다.

그날, 추락한 개펄 아래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내게 미안하다고 하며 떠듬떠듬 말하던 그 마른 가슴속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지만 결국은 떠나지 못했던 곳. 아버지는 그렇게밖에는 떠날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계획했던 미래는 미뤄졌다. 곧 떠나게 되리라고 여겼던 나는,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저 개펄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내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해안을 가로막던 철조망은 철거됐지만 밤이면 초소병들이 민간인의 출입을 막았다. 개펄과 그 너머 수평선은 여전히 내게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었다.

한두 방울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 안에서 괘종시계가 세 번 댕댕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울림의 잔향이 귓가에 남아 마음만 더욱 초조해졌다. 좁은 마당을 나는 하릴없이 서성거렸다. 그때마다 축축하게 젖은 땅에 발자국이 파였다.

뭔가 썩는 냄새에 울컥 욕지기가 솟구쳤다. 뜯어진 마대자루에서 죽은 새의 하얀 깃털과 앙상한 뼈가 드러나 보였다. 섬뜩함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굽히고 무릎을 움켜쥔 채 목구멍 깊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구역질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신물이 넘어오고 이내 살갗을 뚫고 올라오는 비린내가 역겨워 구역질은 좀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게워 내고 나니, 켜켜이 쌓여 썩어 가던 두려움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 조금은 후련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내 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두려움은 스스로 해방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개펄 너머 저 멀리 아득한 곳을 바라보았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 사이로 방 안에서 휴우, 하는 엄마의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오늘 밤에는 개펄에 나가지 않을 모양이었다.

아침의 첫 햇살은 동쪽 언덕 위에 희뿌연 반점으로 떠올랐다. 개펄 위에 막막한 검푸른 하늘이 반사되고, 낮은 파도들이 밀려와 부서졌다. 실처럼 가는 하얀 구름이 하늘에 그려졌다. 구름 앞에는 은색의 반짝이는 물체가 나아가고 있었다. 공항이 있다는 인근의 섬에서 이륙한 비행기였다.  

갯잔디 위에 서서 비행기가 사라진 방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얼굴에 거세게 몰아쳤다. 바람을 피해 앞으로 몸을 수그렸다. 바람에 실려 온 소금기가 눈꺼풀과 입술을 쓰라리게 했다. 관자놀이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바닷바람 소리가 때로는 왼쪽, 때로는 오른쪽 귀에서 먹먹하게 들렸다.

밀물에 쫓겨 갯가 쪽으로 밀려왔던 새들이 썰물이 되자 저만치 나가 있었다. 썰물이 남기고 간 작은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웅덩이 옆 작은 구멍마다 집게를 세운 작은 게들이 들락거렸다. 나는 몸을 굽혀 그 웅덩이에 비친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보기 싫어 손을 휘저었다. 파문을 일으키며 홀연히 사라졌던 얼굴이 일렁이며 다시 드러났다.

바람이 바다 위를 차고 올라, 단숨에 개펄을 가로질렀다. 그 바람을 타고 두세 마리의 새가 원을 그리며 제자리서 뱅그르르 돌더니 내려앉았다. 흰 깃털에 이마와 눈가장자리가 검정색인 걸 보니 저어새였다. 갯고랑에 선 두 마리가 넓적한 부리로 개펄을 훑고 있었다. 목을 좌우로 흔들며 전진하다 먹이를 넘길 때마다 길고 가는 목덜미가 껄떡거렸다. 갯고랑에서 헛입질을 하던 새가 갈대밭으로 성큼 다가섰다. 나는 문득 엄마가 뿌려 놓은 볍씨를 떠올렸다.

조심조심 갈대밭 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한동안 꿈쩍 않고 먹이만 찾던 저어새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꿈틀대는 뭔가가 있었다. 저어새였다. 온몸에 잔뜩 뻘을 묻힌 새는 마치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고 착각한 듯 날갯짓을 해댔다. 하지만 이미 많은 볍씨를 먹었는지 몸부림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갈색의 댕기는 축 처졌고, 차가운 눈동자는 다가서는 숙명을 받아들이듯 한두 번 끔벅거리다 멈췄다. 갈대들의 꺾인 목이 유난히 아파 보였다.

갈대를 헤집고 다가섰다. 순간 뱀이라도 밟은 듯 나는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갈대 사이에 뒤섞여 비스듬하게 묻힌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개펄 입구 경고판에서 본 지뢰 사진이 떠올랐다. 주위를 살펴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흘렀고 가슴이 고동쳤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나는 내가 빠져나온 갈대밭을 바라보았다. 개펄 위에 생긴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내 발보다 더 작고 더 좁아 보이지만 분명 내 발자국이었다. 문득 반짝이는 물비늘이 가득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푸르스름한 쪽빛 기운이 흘렀다. 온몸의 모든 땀구멍이 활짝 열려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지럽게 난 발자국을 되짚어 갈대숲으로 다시 들어갔다. 주변의 갈대를 끌어 모아 지뢰를 덮어 놓은 후, 바로 곁에 눈에 잘 보이도록 죽은 저어새를 옮겨 놓았다.

조심스레 발자국을 되짚어 갈대밭을 벗어났다. 멀리 찰랑이며 밀려오는 바닷물에 개펄이 서서히 몸을 감추고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어둠이 내렸다. 처음에는 산 아래를 채우고, 개펄을 지나 바다까지 짙은 어둠이 밀려갔다. 나는 옷가지를 챙겨 넣은 가방을 품은 채 밤이 기울도록 엄마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째깍대는 금속 시계 외에는 집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퀴퀴한 땀 냄새가 눅눅한 이불에서 피어올랐다. 괘종시계 울리는 소리가 번졌다. 울림의 잔향이 귓속에 남아 마음만 더욱 초조해졌다.

지붕 위 양철판을 때리는 빗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끄응 하고 엄마가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비옷을 챙겨 입은 엄마가 툇마루에 앉아 장화를 신었다. 마루 밑을 뒤져 마대자루를 허리춤에 꿰차더니, 찬장 깊숙한 곳에서 비닐봉투를 꺼내 들었다. 농약을 재워 둔 볍씨의 푸르스름한 빛깔이 비쳐 보였다.

물이 차올랐는지 개집 밖으로 나온 셰퍼드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돌아선 엄마가 눈가에 흐르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닦아 냈다. 긴장했는지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엄마는 잔뜩 힘을 주어 깊은 발자국을 새기며 마당을 가로질렀다. 축축하게 젖은 땅에 오른발 자국만 유난히 깊게 파였다. 발을 딛을 때마다 허리춤에 찬 마대자루가 좌우로 흔들렸다. 휘청대는 엄마의 뒤통수가 개펄의 어둠 속으로 묻혀 갔다.

가방을 든 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잠시 가늘어졌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드넓게 펼쳐진 개펄 위에 비가 사정없이 내리 꽂혔다. 초소의 서치라이트가 개펄을 지나 바다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류장 앞으로 시뻘건 진흙탕이 흘렀다. 빗물이 그 흙탕물 속으로 꽂히듯 사라지고 있었다. 멀리서 막차 버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왔다. 전조등 불빛 속에 사선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취이익. 정류장 앞에 선 버스가 유압기 소리를 내며 버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엄마를 버려두고 야반도주한 나를 두고두고 얘기할 것이다. 게다가 남자와 함께 사라진 걸 알게 된다면 구설거리로 더욱 재미있어 할 것이다. 그런 웃음거리는 되기 싫었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이제 다시는 섬을 못 벗어날 것 같았다. 버스 곁을 트럭 두 대가 빗길을 가르며 지나가는 게 보였다. 운전기사가 나를 바라보며 재촉하듯 턱짓을 했다. 내가 오른쪽 발을 차에 올리려는 순간, 펑하는 폭음이 귓가에 울렸다. 단번에 주변의 모든 소음이 잠잠해지더니 흐트러진 내 숨소리만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개펄이었다. 검은 먹구름이 잿빛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듯 휘감겼다. 손잡이를 쥔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손잡이를 놓곤 운전사에게 그냥 가라고 손짓을 해보였다.

갑자기 마을의 개들이 짖어댔다. 불이 하나 둘씩 켜졌다. 다리를 건너 섬을 빠져나가는 버스 불빛을 뒤로하고 나는 개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쏴 하고 떨어지는 빗줄기가 눈꺼풀을 쓰라리게 했다. 젖은 옷이 허리와 어깨에 착 달라붙었다. 발밑에 달라붙는 뻘이 자꾸만 걸음을 더디게 했다.

개펄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비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파도뿐이었다. 빗방울로 군데군데 파인 진흙 위에 드문드문 난 맨발 자국을 따라갔다. 저어새가 먹이를 찾기 위해 몸을 웅크렸던 그곳에 도착했다.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 하얗게 엎어져 있는 물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순간, 예기치 못했던 상황 앞에 나는 잠시 아득함을 느꼈다. 입 안이 마르고 숨이 막혔다. 끈적끈적한 땀이 한꺼번에 모공으로 분출되는 것 같았다.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바로 부사관이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목과 관자놀이의 동맥에서 피가 뛰고, 박동하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발밑의 땅속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은 나는 그의 관자놀이에 두 손을 얹었다. 귀에 맥박이 뛰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그의 귓가에 대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감지한 듯했다. 그의 시선이 아주 멀게 느껴졌다. 옆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갈대밭 아래 팔로 머리를 감싸 쥔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바닥에 뒹굴었는지 온몸이 뻘투성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엄마의 왼손에는 그때까지도 저어새의 모가지가 쥐어져 있었다.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안 초소에서 군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몸에 판초를 휘감고 철모를 쓴 남자들이었다. 다가선 군인의 비상등 불빛이 낙인을 찍듯 내 얼굴을 비췄다. 목덜미를 타고 새어 들어온 빗방울이 등줄기로 주르르 흘렀다. 어둔 하늘을 번득이는 섬광이 세로로 길게 가르며 지나갔다. 우르릉 하는 뇌성이 산울림처럼 들려왔다.

 

미친 듯이 쏟아 붓던 빗줄기는 잦아들었다. 마을회관 스피커를 통해 지뢰 폭발을 알리는 이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마을 전체가 온통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마을회관 앞에 남자들 대여섯이 모닥불에 둘러서서 어름거리고 있었다. 혀를 차며 경위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다. 엄마가 나갔는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저녁을 먹고 난 후 편두통에 약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잠에 취해 있다가 폭발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개펄로 뛰쳐나갔다고 둘러댔다.

진작부터 지뢰를 발견하고도 가만히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적당히 엄마가 딛을만한 거리를 재 가면서 저어새를 놓았다는 말도, 더불어 엄마가 지뢰를 밟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후송하는 군인들을 뒤로하고 엄마를 들쳐 엎고 나올 때,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가슴이 아려 온 까닭도 오직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을회관에 모여든 사람들은 또 지뢰가 터진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급감했던 관광객이 이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큰일이라고 걱정이었다.  

날이 밝자, 군부대로 앰뷸런스가 오고갔다. 군인들이 개펄로 나와 혹시나 유실됐을지 모를 지뢰를 탐지하기 위해 흩어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구경하겠다고 주민들은 개펄에 몰려들었다.

“지뢰를 밟은 군인이 겨우 목숨은 건졌다는 구먼. 그 부사관 야간 순시를 하다 지뢰를 밟았는데, 전역이 한 달밖에 안 남았다더군. 쯧. 쯧. 어지간히 소갈머리 좁은 얼뜨기인 모양이야.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했는데.”

담배를 피워 문 이장이 잠시 주저하는 것 같더니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여하튼 이번 일은 우리만 알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부대에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니, 우리만 입조심하면 조용히 마무리될 것 같으니까. 그리고 이건 약값에 보태.”

이장이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나는 입술을 일그러뜨리곤 실뚱머룩한 표정으로 이장 쪽으로 봉투를 밀어냈다. 되돌아온 돈 봉투를 보고는 순간 이장이 오해를 했는지 눈빛이 매서워졌다. 신발장 위 마대자루를 힐끗 보더니 이장이 어쭙잖다는 듯 말했다.

“돈이 적어서 그런 건가? 이웃 간에 이러면 쓰겠어? 이게 나 혼자 잘되자고 이러는 것도 아닌 거 알잖아. 정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없지. 김 씨 말로는 잡아들인 새들 중에는 말 못할 새들도 꽤 있었다고 하던데, 그동안 뻔히 알고 있는 처지라 입을 다물었지만, 이렇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 없구먼.”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이장이 헛기침을 해댔다. 어기대던 나는 마지못해 돈 봉투를 집어 옷섶에 넣었다. 왠지 사람들의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희극적으로 보여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뒤뜰로 가 쌓여 있는 마대자루를 보았다. 이미 썩어 가기 시작한 자루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다. 썩고 있는 마대자루의 주둥이를 잡아 마당에 쏟았다. 처연하게 고개가 꺾인 새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하얀 깃털 사이로 앙상한 뼈가 드러났다.

휘발유를 가져와 그 위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살과 깃털이 타는 냄새가 휘발유 냄새에 뒤섞였다. 축 처진 새들의 몸뚱이가 붉은 열기에 맞춰 꿈틀거렸다. 희미하고도 나지막한 연기가 지붕 위를 타고 올라 고리들처럼 뭉쳐 바다 쪽으로 날아갔다.

군의관이 집으로 찾아와 엄마의 몸을 살폈다.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긴 했지만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이 상태라면 앞으로 십 년도 끄떡없을 겁니다.”

군의관은 뭐가 흐뭇한지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내게 얼마나 아득한 시간인지 그는 알고나 있을까?

창문을 열었다. 바닷가 특유의 소금기와 물비린내가 풍겼다. 밤새 부풀어 올랐던 밀물이 물러가자 개펄은 씻은 듯 깨끗했다. 갯지렁이 자국도, 그 위를 휘저어 놓았던 새들의 부리 자국도 모두 지워져 있었다. 부사관을 떠올렸다. 그를 정말로 사랑했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그의 체취와 생김새를 떠올리려 애썼다. 몸과 몸이 맞닿았던 온기와 감촉은 생생했지만 얼굴만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나를 보았던 시선, 그의 체취와 목소리.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잊어버린 그것들을 그는 흉터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씁쓸할 따름이었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보니 엄마가 눈을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뒤척이며 그녀가 허리를 세우려 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귀를 그녀의 입에 가까이 가져갔다. 귓가에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줘,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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