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자루 속에서 2

바람자루 속에서 2

― 멧돼지의 탄식

 

 

김도연

 

 

 

 

경찰서에서 돌아온 그는 집 안 곳곳에 눌어붙은 듯한 어둠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듯 오디오의 볼륨을 평소의 네 배로 올렸다. 둥당거리는 경쾌한 드럼 소리와 함께 흑인 가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Come on everybody, clap your hands(자, 모두 함께 박수를 쳐 봐요)! 그는 냉장고에 있던 캔맥주를 마시며 4/4 박자의 리듬이 뚜렷하게 빠른 노래 〈Let's twist again〉에 맞춰 거실에서 장판에 발바닥을 비비며 춤을 췄다. 어쩌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과다한 기대와 약간의 불안에 들떠서.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서늘한 맥주가 속옷과 가슴을 흥건하게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며칠째 청소를 하지 않아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거실의 먼지가 신고 있는 양말을 반들반들하게 변모시킬 때까지 그는 아령 체조를 하듯 두 손을 허리 근처로 올리고 좌우로 엉덩이를 흔드는 어색한 트위스트를 멈추지 않았다. 오디오도 같은 곡을 계속 재생했다. Who's that flyin'up there? Is it a bird? No! Is it a plane? No! Is it the twister? Yeah(저 위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누구지? 새인가? 아니! 비행기? 아니! 트위스트 추는 사람? 맞아!)! 그는 목이 쉴 정도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폭설을 동반한 어둠이 대관령 골짜기를 모두 덮어 버릴 때까지.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하기 힘든 것을 되우 흘리며. 마치 지난 삼 일 동안의 긴장과 피곤이 한꺼번에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조금 있음 대관령이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그럴게요

그는 서울에서 강의를 끝내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메시지와 받은 메시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대관령의 검은 아스팔트길을 하얗게 덮어 버렸던 눈을 떠올리며. 고개만 돌리면 경포대와 동해 바다, 그리고 대관령이 모두 보이는 카페의 한쪽 구석에 앉아 그는 약간 탄내가 나는 커피를 마셨다. 멀리 보이는 대관령은 설산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휴대폰과 담배를 번갈아 만지작거렸다. 찻집 밖 휑한 도로에는 세찬 바람만이 어지럽게 눈을 쓸고 다녔는데 꼭 거인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 같았다.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만지작거리던 담배를 과감하게 두 동강 내 버렸다. 주간에는 금연이고 야간에는 피워도 된다고 탁자에 붙여 놓은 문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커피 좀 더 드릴까요?”

카페 주인인 아내의 친구는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어 왔다. 그는 고개를 젓고 탁자에 놓인 부러진 담배를 보라는 듯 담뱃갑에 다시 넣었다.

“아직도 담배 피우세요?”

“…… 이걸 대신할 만한 걸 찾지 못했어요.”

“담배가 몸에 얼마나 안 좋은데. 냄새도 지독하잖아요.”

그녀는 마치 담배 연기를 한 바가지 들이켠 듯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어떤 놈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했을까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내의 친구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더 들을 말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 같아선 주방 뒤편의 내실 문을 열어 봐도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술을 꾹 깨물었다. 종종걸음으로 문까지 따라 나온 아내의 친구에게 그는 무슨 소식이 있으면 연락을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는 고개를 딱 한 번 까딱 움직이더니 계단을 다 내려간 그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는 경포 호수의 물이 바다와 만나는 강문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웠다. 세찬 바람과 파도 때문인지 몰라도 강물과 바닷물은 쉽게 섞이지 못했다. 흰 거품을 토해 내며 서로 으르렁거렸다.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담배 연기가 나가게 열어 놓은 창문으로 이슬 같은 물방울들이 차 안으로 날려 왔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고 줄담배를 빨았다. 카페 안에서의 강요된 금연에 대한 화풀이라도 하듯.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은 마치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도 어딘가로 슬슬 등을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경찰서에서도 그런 기분이 들었고 아내 쪽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실 웃거나 냉담한 표정에서 그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운뎃손가락의 탄력으로 날려 보낸 담배꽁초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람에 쓸려 물보라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한숨과 함께 차의 시동을 걸었다. 더 찾아갈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어쩐 일이야?”

“방학.”

“새끼, 꼭 지가 심심하면 나타나요. 이번엔 또 어떤 가스나한테 차였냐?”

“술이나 한잔 마시자.”

“술?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바다와 가까운 포남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고등학교 동창 P를 옆자리에 태우고 그는 안목항으로 방향을 잡았다. 열기를 잃은 듯한 겨울 해는 대관령 능선에서 한 뼘쯤 위에 떠 있었다. 작은 항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노을만 남겨 놓을 것 같아 그는 속도를 올렸다. 아내는 안목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허름한 비닐 포장으로 만든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바라보는 대관령의 노을을 좋아했었다. 파도 소리와 인근 비행장에서 뜨고 내리는 여객기를 바라보며. 그런 날들도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잠시 쓴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얼굴을 향해 P가 담배 연기를 날려 보냈다.

“무슨 일 있냐?”

“없어.”

“새끼, 니가 무슨 일 없음 날 찾아온 적이 있냐!”

“땅 거간은 잘돼?”

“죽을 맛이다!”

사흘 전 새벽 무렵, 그는 오렌지색 가로등만 둥둥 떠서 눈발을 비추는 강릉 요금소를 나와 대관령 아래의 어두침침한 집에 도착했다. 외등조차 꺼져 있었다. 시동을 끈 차 안에서 그는 불 꺼진 집을 바라보았다. 휴게소에서 잠들지 않았더라면 벌써 도착해 눈 내리는 꿈속을 걷고 있을 시간이었다. 밤눈은 검은 기와지붕과 마당, 그리고 집 뒤 대나무 숲을 한 폭의 수묵화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그 숫눈 위에 발자국을 찍는다는 게 왠지 무서워졌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집 밖을 쏘다니다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돌아와 대문 옆에서 주춤거리며 망설이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와 괜찮다고, 어서 들어오라고 반갑게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건지도 몰랐다. 그는 차의 실내등을 켜고 자신의 차림새를 살폈다. 옷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손을 사타구니에 넣었다가 빼서 냄새를 맡아 보았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허브 사탕을 입에 넣고서야 비로소 차에서 내렸다. 눈이 내리는 탓인지 몰라도 집은 평소보다 훨씬 적막했다. 아내에게 사정을 해서라도 개 한 마리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쇠로 현관문의 잠금 장치를 풀었다. 시간은 새벽 세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리에 누우면 단 1분이 흐르기도 전에 잠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긴 하품과 함께 거실의 불을 켰다. 그리고 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냄새에 재채기를 쏟아 냈다.

“파도 소리가 굉장하네!”

“전투기 소리야.”

바닷바람에 반투명의 비닐 천막이 펄럭거렸다. 이륙을 하는 것인지 착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전투기 소음이 주기적으로 귀청을 때렸다. 그는 그 소리를 파도치는 소리로 착각했던 것이다. 삶은 문어와 소주는 입속에서 착착 달라붙었다. 간밤에 직접 잡은 거라고 주인이 이미 자랑을 늘어놓은 터였다. 전투기 소리가 다시 찾아오면 그와 P는 대화를 멈추고 술을 마시거나 생각에 잠겼다. 입속의 문어를 우적우적 씹으며. 사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P에게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물론 P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전투기 소리는 그 침묵을 이해한다는 듯 콩알만 한 누리를 함석지붕에 쏟아 붓듯 한 차례 지나갔다.

“…… 대체 어떤 놈이 음주 운전을 못하게 법으로 정한 걸까?”

“왜? 만나고 싶어? 만나면 뭐 하려고?”

“이렇게 쫄깃쫄깃한 문어와 소주를 먹이고 집에 어떻게 가나 지켜보려고.”

“대리운전 부르겠지.”

“그럴까?”

“그러겠지. 설마 너처럼 논길 밭길로 차 끌고 가겠냐!”

“젠장! 근데 너 지난번 그 아가씨랑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는 한쪽 턱을 손에 괴고 실실 웃으며 P에게 술을 따랐다.

“뭐? 누구?”

“아, 왜 지난 여름밤에 경포대에서 만난 술 취한 여자 말이야.”

“새끼! 옛날 얘긴 왜 꺼내. 술이나 마셔.”

전투기 소리가 이번엔 너울처럼 몰려왔다. 소리만으로도 두 사람을 일시에 쓸어버릴 것처럼. 그와 P는 그 틈을 이용해 배를 채우겠다는 듯 다시 문어 다리를 씹었다. 안목항의 끝자락에 자리한 비닐 천막 횟집은 파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흔들거렸다. 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없는 빈집에서 서성거리다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침대로 쓰러졌다. 온 집 안을 환하게 밝히는 불도 끄지 못한 채. 잠의 끝자락을 비집고 방문한 것들은, 언젠가 갑자기 길 위로 뛰어든 고라니를 자동차로 친 뒤부터 그의 꿈속에 단골로 출연하는 산짐승들이었다. 태운 적도 없는데, 밤의 영동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차에 산짐승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산짐승들은 너나없이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요즘의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윤리에 대해. 특히 로드 킬에 대해선 한목소리로 작금의 무분별한 도로 정책을 성토했다. 그가 화를 낸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산짐승들에게서 풍기는 냄새와 배설물 때문이었다. 창문을 열어도 빠져나가는 것은 냄새뿐이었다. 시트와 바닥을 배설물로 더럽히는 히치하이커들에게 고함을 내질렀을 때 그때까지 조수석에서 얌전히 있던 고라니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저씨 와이프 사라진 거 알아요?”

“…… 집사람이 왜 사라져?”

“그건 저도 모르죠.”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대관령이 우리들 운동장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고라니의 윤기 흐르는 까만 코와 동그란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관령 초입에서 아내와 주고받은 문자를 떠올렸다. 차 안에 가득 들어찬 배설물 냄새에 코를 찡그리며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를 고라니에게 보여 주었다. 고라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건성으로 훑어보곤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뒷자리의 산짐승들이 킬킬거렸다.

“답답하긴! 이 문자를 꼭 집에서 보냈다고 단정할 수 있어요? 휴대폰이야말로 주인 몸 따라 함께 움직이는 거잖아요.”

그는 고라니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아 급하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단순하고 오래된 벨 소리가 울렸다. 계속해서. 단조롭게. 통화중이거나 전원이 꺼져 있다는 그 흔한 멘트도 없이 벨 소리만 끈덕지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는 대관령 아래 골짜기 외딴 집에서 저 홀로 울리고 있을 전화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다가 깊은 잠에 빠져 집 전화와 휴대폰의 벨 소리도 듣지 못하는 아내도. 그러나 마음속에선 이내 아내의 오랜 불면증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산짐승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모두 내려!”

바람 불고 눈발이 날리는 대관령 중턱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내리지 않겠다는 산짐승들과 한동안 실랑이를 해야만 했다. 산짐승들이 모두 내린 차 안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서둘러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창 밖에서 고라니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다 못 찾으면 연락해요.”

한때 아흔아홉 구비였다는 대관령 길을 그는 거의 날다시피 달려서 내려오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뒤척거렸던 침대는 꿈속의 차 안처럼 어지럽혀져 있었다. 늦은 아침이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대각선으로 엎드린 채 방 밖의 동정에 귀 기울였다. 아내의 기척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P의 물음에 그는 대답 없이 입술을 좌우로 한껏 늘여서 이쑤시개로 잇새에 낀 문어의 살점을 빼내느라 인상을 썼다. 횟집 밖은 예상했던 대로 춥고 바닷바람이 사나웠다. 그는 맞바람을 피해 바다를 등진 채 캄캄한 대관령을 바라보았다. 띄엄띄엄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그곳이 영동 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임을 알려 줬다. 그 너머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어금니와 송곳니 사이에 끼인 문어의 살점은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어둠을 헤치고 꿈속의 산짐승들이 대관령에서 우르르 내려올 것 같아서 차 안으로 몸을 숨겼다. P는 추운지 창문도 열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그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양쪽 창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 놓았다. 그리고 담배 피우기와 이쑤시개로 잇새를 쑤시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을까 고민에 잠겼다. 그는 집요하게 이쑤시개를 움직이며 P에게 말했다.

“너는 강릉바닥에서 땅 장사, 집 장사, 방 장사 다하면서 이럴 때 불러낼 여자도 한 명 없냐?”

“새끼, 내가 무슨 포주냐!”

“누가 포주래. 같이 술 마실 여자가 없냐는 거지.”

그는 마침내 이쑤시개를 버리고 담배를 빨았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전투기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대관령에서 안목항까지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을 산짐승들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별다른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담배나 피우는 P를 괜히 끌어냈다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차라리 당장 집으로 돌아가 잠이나 자는 게 나을 것 같았지만 이미 소주를 한 병이나 마신 이상 더 마시고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겨울이라 그렇지 시간도 아직 초저녁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때 그는 아내의 친구가 운영하는, 낮에 들렀던 경포대의 카페를 딱 떠올렸다. 그녀가 미혼이라는 사실도. 그는 P의 얼굴을 퉁명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 왜? 아, 정말이야! 불러낼 여자 없어. 그리고 이 바닥은 좁아서 그런 일 있으면 며칠도 안 돼서 마누라 귀에 들어간다니까!”

“농담이었어. 그럼 내가 분위기 좋은 데서 2차 쏠 테니 3차는 룸에 가서 네가 쏘는 거다?”

“룸살롱?”

아내의 예고 없는 사라짐에 대한 뒤처리를 그는 삼 일 동안 말없이 수행했다.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 그리고 당연히 날아오는 의혹의 눈초리도 모두 견뎌냈다. 파출소와 경찰서, 처갓집과 아내의 친구들, 마을 사람들, 하루에 여섯 번 들락거리는 시내버스까지. 하지만 집 안에 남아 있는 아내의 내밀한 기록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스스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납치당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집 전화와 아내의 휴대폰 통화 내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렇게 하루치의 발품을 팔고 돌아온 저녁이면 술에 취해 기억 속을 더듬다가 마지막으로 한숨과 함께 맥을 놓곤 했다. 그와 Y와의 관계만 오롯하게 남더니 급기야는 모습을 바꿔 머릿속을 바늘로 찌르듯 두통이 엄습했다. 납치당한 게 아니라면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죄책감도 잠시뿐 울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고작 그것 때문에? 자정이 지난 지 오래였지만 냉장고 문을 열고 새 술병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디오의 볼륨을 한껏 올려놓고 거실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등을 잔뜩 구부린 채 술을 마셨다.

“아직 아무 연락이 없어?” Y였다. 서울의 위성 도시에 사는 그녀도 취해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오디오 볼륨을 줄였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그래? 내가 지금 당신 집으로 갈까? 그럼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Y가 전화기 속에서 깔깔 웃었다. 그는 베란다의 검은 통유리를 돌아보고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소곤거렸다.

“내려와. 하고 싶어.”

“정말?” 나팔꽃처럼 활짝 피어난 Y의 목소리였다.

그는 Y와의 통화를 마치고 운동장처럼 넓은 거실에서 통유리에 비친 자신의 웅크린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거실의 불을 끄고 외등을 켰다. 눈 덮인 마당 주변의, 잎 하나 없는 검은 감나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그 너머, 새로 개통된 영동 고속도로의 거대한 교량의 교각들이 보였다. 그것은 언뜻 보면 그리스나 로마의 고대 신전을 떠받치는 돌기둥과 비슷했다. 어두운 거실에서 술잔을 찾다가 술을 쏟고 나서야 그는 오래전에 Y와 함께 본 러시아 영화 〈노스탤지어〉의 한 장면과 바깥 풍경이 대단히 흡사하다는 걸 발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의 사내는 고향을 떠나 와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그는 고향에 돌아와 어떤 혼돈 속에 휘말려 허우적거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그는 거실에 쓰러져 잠들었다가 잠이 깰 무렵 꿈을 꾸었다. 서울에서 강의를 끝내고 Y와 이틀 간 놀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영동 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에서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을 맞고 교량을 이탈한 자동차가 바닥도 없는 곳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꿈을. 그 끝이 없는 추락의 어디에서도 아내와 Y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는다는 것보다 그 고독이 더 슬펐다.

“또 오셨네요.”

고양이 같은 눈을 뜬 채 아내의 친구는 예상했던 대로 쌀쌀맞게 그를 훑어보았다.

“오늘 매상 좀 올려 드리려고요.”

그가 카운터에 있는 아내의 친구에게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술을 주문하고 나서야 그녀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는 최대한 침울한 목소리로 아내의 실종을 P에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내색하지 말아 달라고, 그냥 P와 술 한잔 마시러 왔다고 부탁하자 그녀는 모처럼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바쁘지 않으면 같이 술 한잔 하자고도 청했다.

“뭐, 어렵지 않네요!”

“저 친구, 공인중개산데 알짜배기 부잡니다.”

경포대와 경포호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는 모래사장에서 부서지는 거품만 조금씩 보여 줬다. 가끔 밤하늘로 치솟는 폭죽이 딱, 딱, 소리치며 터졌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아주 잠깐 반짝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아내의 친구는 술과 안주를 내오기 전에 음악부터 끈적끈적한 블루스로 바꿨다. “괜찮은데!” P가 그에게 눈웃음을 치며 아내의 친구를 품평했다. 그는 아내의 친구를 볼 때마다 그녀가 아내와 그와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사실이 먼저 떠올랐다. 아내의 가족보다도 더 나서서 뜯어말렸던 것을. 다른 건 다 잊어 먹어도 그 일만은 잊어지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술잔이 나오고 이어서 술이 나오고 안주가 나왔다. 아내의 친구는 당연히 P의 옆에 앉았다. 그는 잠시 들고 있던 옷을 다시 옆자리에 놓았다. P의 옷도 그의 옆자리로 건너왔다. P는 양주 두 잔을 마신 뒤부터 슬슬 자신의 전공인 부동산에 대해, 특히 숨겨 놓았던 무용담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 친구의 가슴골을 훔쳐보며 아내를 생각했다. 대체 아내는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는 확 타오르는 입속을 간신히 냉수로 달랬다.

“서울 사람들한테 이 가게 좀 비싸게 넘겨주세요. 예?”

“그건 사장님하고 저랑 어떻게 각본을 짜느냐에 달려 있어요!”

“정말요?”

“그럼요! 근데 사장님, 이 친구 오늘따라 외로워 보이는데 불러낼 친구 분 혹시 없습니까? 그러면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두꺼운 유리 너머로 보는 밤의 경포 바다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밋밋한 파도밖에 보여 주지 않았다. 그 너머가 바다인지조차 헛갈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아내의 침묵과 맞닥뜨린 것만 같았다. 그는 억지로 심호흡을 하며 독한 술을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겼다. 아내가 선택한 방법, 난수표 같은 아내의 메시지를 해독해 보려고 돌아다닌 지난 사흘 동안의 여정을 복기하듯 다시 떠올렸다. 검은 바다 위에 몽롱한 시선을 올려놓고. 어둠이 깔린 바다의 끝자락에선 키 작은 메밀꽃만 하얗게 피어나고 부서졌다. 밤하늘로 솟구쳤다가 쓸쓸하게 가라앉는 불꽃을 보며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얼굴 없는 아내의 침묵이 꽤 오래 지속될 거라는 깨달음이 턱을 괴고 있던 손의 힘을 일시에 풀리게 만들었다. 그의 턱은 힘들여 들고 있던 손에서 놓인 호박돌처럼 탁자로 떨어졌다. 탁자 너머에서 깔깔거리며 놀던 아내의 친구와 P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마요네즈가 묻은 턱을 휴지로 닦았다. 얼굴 없는 아내의 침묵은 그동안 아내를 대했던 그의 오랜 침묵, 바로 그것과 똑같았다.

“미안. 폭죽 터지는 거 구경하다가 그만.” 그는 쓰러진 잔을 세우고 새 술을 따랐다.

“내 친구, 취한 사람 싫어하는데. 조금만 마셔요.” 아내의 친구는 조금 있으면 도착할 자신의 친구를 걱정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정말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귀를 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아내의 친구는 백치처럼 보였다.

“왜 우리 결혼을 반대했어요?”

휴대폰과 집 전화는 이어달리기를 하듯 번갈아 울리며 꿈과 잠을 깨웠다. 그는 온갖 쓰레기들과 폐유가 떠다니는 어항(漁港) 같은 거실 한가운데서 결국 전화를 받았다. 백 미터 육상 경기의 출발선을 방금 떠난 듯한 말들이 앞 다퉈 튀어나왔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내용으로 그를 질타했다. 그 일련의 소리들을 그는 눕거나 엎드려서, 빈 병처럼 물 위에 둥둥 뜬 자세로 받았다. 어서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가 볼 만한 곳을 다 가 보라는 얘기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앵앵거리는 전화기를 바닥에 던져 놓고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그가 복잡한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 대합실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내의 사진을 확대해 목에 걸고서. 그는 뒤늦게 도착한 부끄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터미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건 아닌지 아무리 꿈을 뒤적거렸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대관령의 산과 산을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 추락했던 그 전의 꿈만 오롯이 펼쳐졌다. 고라니의 말도 떠올랐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운동복에 스키 파카를 걸치고 뒤집혀 찌그러진 차 안에서 빠져나가듯 어기적어기적 집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사방에서 찬란했다. 그는 현관 앞에 서서 밤새 내린 눈을 실눈을 뜬 채 바라보았다. 눈길이 머무르는 곳이면 어김없이 터진 바늘쌈에서 쏟아진 알바늘 같은 햇살이 몰려들었다. 그는 눈꺼풀 너머의 햇살을 받아들이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갑자기 피어난 듯한 새소리를 들으면서 맹인처럼 눈길을 더듬어 마당에 세워 놓은 차로 다가갔다. 방탄유리 같은 선글라스를 쓰고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고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눈 위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발자국은 그와 아내의 침실 창문 아래에서 오래 생각에 잠겨 있었던 듯싶었다. 이가 빠진 흰 국화 몇 송이를 닮은 발자국. 그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뜬금없이 아주 가벼운 영혼의 무게를 생각했다. 깊은 밤, 폭설에도 빠지지 않는 고요한 마음은 어떤 것일까 헤아려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휘저었다. 타 버린 담뱃재가 허리를 꺾고 그 위에 떨어졌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던 모양이지…….”

창문 아래의 발자국은 집 뒤 묵밭으로 마치 물 위를 걷듯 가볍게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옆에다 깊고 거친 발자국을 찍으며 따라 걸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발목을 덮은 눈은 신발 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양말도 신지 않은 발을 아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발자국을 쫓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정도의 메시지로는 시시때때로 걸려 오는 전화는 물론이고 마음속에서 얽힌 주낙을 풀어 줄 어떤 실마리도 될 수 없었다.

뭐? 창문 아래에 새 발자국이 찍혀 있다고!

그는 묵밭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아이의 표정을 지었다. 눈 위의 발자국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혹시나 해서 선글라스를 벗고 사방을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세상을 어수선하게 했던 들림의 현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겨울하늘을 두리번거리며 발자국을 찾던 그는 다시 간밤의 풍경과 마주쳤다. 골짜기 끝 눈에 덮인 지붕 낮은 그의 집, 그리고 그 너머 대관령의 산과 산을 무지막지하게 건너가는, 어찌 보면 신전의 기둥 같은 거대한 다리의 교각들을. 그리고 시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밭에 서 있는 그의 모습. 허공으로 날아간 새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렸을 땐 대관령만 넘어가면 굉장한 게 있는 줄 알았다니까요!”

“맞아요. 서울로 가출했다가 돌아온 친구들이 은근히 부러웠어요. 안 듣는 척했지만 걔들이 꺼내 놓는 서울 얘기에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거든요.”

“여학생들도 가출을 했어요?”

“그럼요! 우리도 당연히 집과 학교가 답답하고 바깥세상이 궁금했죠.”

P는 양주를 세 병째 시켰고 아내의 친구는 영업이 끝났다는 팻말을 출입문에 걸어놓은 뒤였다. 뒤늦게 주문진에서 온 아내의 친구의 친구인 J는 능숙하게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다. 아내의 친구는 J가 아내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그에게 귀띔해 줬다. 남편이 배를 타다 죽었다는 것도. 하지만 그와 아내의 결혼을 반대한 까닭은 말해 주지 않았다. 그는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낮과 밤이, 취하기 전과 취한 후가 달라서 흐뭇한 겨울밤이었다. 경포 해변에서는 잊을 만하면 폭죽이 딱, 딱, 터졌다.

“가출은 제가 좀 해봤죠. 얘는 샌님이라 책상만 지켰지만.”

“어머, 그래요?”

아내 친구의 어깨에 얹어 놓고 있던 P의 손이 은근슬쩍 허벅지로 내려갔다. 아내의 친구는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 놓았다. 말이 별로 없는 J는 그 두 사람 앞으로 폭탄주를 배달했다. 그는 J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언제 보지 않았어요?” J는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 훔친 돈을 호주머니 깊이 감춘 채 직행 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가는데, 아, 이게 장난이 아닌 거예요!” P의 손은 아내 친구의 허벅지 사이로 들어가 있었다.

“왜요?” 아내의 친구는 손수건보다 턱없이 작은 자신의 손으로 그 위를 덮었다.

“길은 말 그대로 구불구불하죠. 게다가 비포장이죠. 열어 놓은 창문으로 흙먼지는 풀풀 들어오죠.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속은 울렁거리죠!”

P의 가출 얘기는 들을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는 J의 귀에 대고 다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는 댁을 본 것 같아요.” “어디서요?” “그게 잘 생각이 안 나고 가물가물 한다니까요.”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럼 술이나 마셔요!” 인상을 찡그리는 J에게 그는 건배를 제의했다.

“결국 차멀미를 세 번 하고 녹다운이 된 채 토사물이 물컹거리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내린 곳이 고작 고개 너머 진부였죠.”

“정말 진부한 가출이었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서울로 가려다가 강릉보다 천 배나 작은 진부의 오대산 월정사에서 사흘을 지냈어요. 나흘째 되는 날 돌아오려고 진부 차부를 서성거리다 그만 껄렁이들한테 걸려 돈을 다 빼앗겼죠. 그래서 제가 아직도 진부 놈들을 싫어한다니까요.”

“그때 이놈이 우리들에겐 서울 갔다 왔다고 사기를 쳤어요.”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신기한 건 서울의 명소들에 대해 마치 직접 갔다 온 것처럼 술술 풀어놓았죠.”

“공부를 좀 했지! 근데 말이야. 일 년 뒤에 다시 가출해서 진짜로 서울에 가 보니까 상상했던 것보다 영 아니더라고.”

“말로만 수십 번 섹스를 했으니까 그렇죠.” 당돌한 말을 꺼내 놓고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J가 신기한 듯 세 사람은 킬킬거렸다. 그리고 모두 잔을 들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럼 오늘 실제로 한번 해볼까요?” P가 아내 친구의 귀에 입을 대고 한 말이지만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아내의 친구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그럴까요?” 똑같은 자세로 그는 J에게 말했다.

“다 함께 가출해요. 대관령 너머 서울로.” J의 표정은 변함없이 태연했다.

“그 전에 노래방부터 먼저 갑시다!” 아내의 친구가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울 해는 짧았다. 그는 먹다 남은, 퉁퉁 불은 라면을 양변기에 버리고 잠시 들여다보다가 한숨과 함께 물을 내렸다. 그리고 그 옆 세면대 앞에서 평소보다 공들여 양치질을 했다. 치약이 목구멍의 가래와 엉켜 몇 번이나 캑캑거렸다. 심호흡 효과가 있었는지 간신히 구토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기껏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곧바로 양치질하다 구더기 떼 같은 라면 조각들을 토하는 것보다 비참한 일은 없었다. 목구멍에서 뱃속까지 물컹거리고 끈적끈적한 가래가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거실로 돌아와 울렁거리는 속을 냉수로 달랬다. 텔레비전에서는 〈동물의 세계〉를 방영하고 있었다. 그는 손이 닿는 곳에 휴대폰과 리모컨을 놓아두고 쿠션에 기댄 채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개미들의 일상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는 맹수들의 이야기를 더 선호했다. 손을 뻗어 휴대폰의 폴더를 열고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최근 통화 기록을 살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내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멘트만 흘러나왔다. 그는 배 위에다 휴대폰을 올려놓고 다시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개미와 베짱이」란 우화를 떠올렸다. 어두워진 베란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훔쳐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하고 있어?

Y의 문자 메시지였다. 아내는 Y 때문에 사라진 걸까……. 답신을 생각하고 보내는 동안 〈동물의 세계〉가 끝나고 〈생방송 강원도가 좋다〉가 이어졌다.

당신 아내 어떤 사람이었어?

그냥 말없이 착한 여자였다고 썼다가 그는 모두 지워 버렸다. 반쯤 누운 자세로 거실 곳곳을 살폈지만 마땅한 낱말이,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냄비에선 찌개가 설설 끓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찌개가 다 끓자 한복을 입은 여자가 숟가락으로 떠서 남자의 입에 애교 있게 넣어 주었다. 그는 침만 삼켰다. 백지 같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가 머뭇거리고 있자 휴대폰은 이내 어두워졌다.

당신 아내 독한 사람인 것 같아 여기 있는 내가 다 무서워진다니까 오늘은 길을 걷다가 깜짝깜짝 놀라 뒤돌아보곤 했어

Y는 아내가 자신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달아오르는 뒤통수를 손으로 주물러야 했다. 〈6시 내고향〉에선 마침 Y가 거주하는 지역의 재래시장에서 벌어지는 장터 노래자랑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언젠가 그와 Y도 그곳에서 장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몰려든 구경꾼들 사이에 있을지도 모를 아내를 찾으면서 재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서로 떨어져서, 사라진 아내의 침묵을 고역스럽게 견디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였다.

강릉에 올래?

당신 집으로?

바닷가 근처에 민박을 잡지 뭐

졸려 잠깐 자면서 생각해 볼게

그래 문단속 잘하고 사랑해

겨울밤은 길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아직 〈집으로 가는 길〉이란 일일 연속극이 끝나지 않은 채였다. 그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이불 위에 놓인 휴대폰을 확인하고 던져 버렸다. 냉장고와 화장실 문을 번갈아 바라보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시청하지 않아서 연속극의 흐름이 잘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만 할 수 있는 적당한 일이기에 부담은 없었다. 그는 리모컨을 가져와 천천히, 그러나 조금 지나지 않아 점점 빠르게 채널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리모컨도 휴대폰 옆으로 던져 버렸다. 무슨 꿈인가를 꾸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텔레비전 위에 걸린 단순한 디자인의 시계를, 매우 단순하게 이동하는 시계 바늘을 하품을 하며 바라보았다. 어떤 알리바이를 만들 듯 아내의 휴대폰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고문을 하는군.” 그는 전화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어 Y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발 내려와 겨울밤이 너무 길어

ㅋㅋ 이참에 아예 당신 집으로 들어가 살까?

그는 Y의 문자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답장을 않고 한숨과 함께 휴대폰을 던져 버렸다.  

“잠 그만 자고 노래 한 곡 불러요!”

여기는 어디인가? 붉고 노랗고 파란 빛의 물방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넓은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캔맥주와 안주, 투명한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노래의 곡명들을 그는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탁자 너머 무대에서는 아내의 친구가 노래하고 있었고 머리에 탬버린을 쓴 P는 아내의 친구를 뒤에서 껴안은 채 몸을 비볐다. 그는 끈적거리는 바닥에 붙어 버린 듯한, 지저분해진 구두를 향해 시선을 떨어뜨렸다. 바닥에서 지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의 구두 옆에는 빨간 구두 한 켤레가 스타킹으로 감싼 두 발을 감싼 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내의 친구의 친구인 J의 발이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제가 오래 잤습니까?”

“한…… 한 시간 정도. 그동안 저 혼자 엄청 외로웠어요!”

J는 눈을 하얗게 흘기며 아내의 친구와 P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P의 두 손은 아내 친구의 웃옷 속으로 들어가 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J의 손이 그의 사타구니로 넘어오고 그의 손은 J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남은 손으로 두 사람은 건배를 했다. 그는 맥주가 묻은 입술을 닦고 J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 진고개 삼계탕 집에서 만난 거 기억 안 나요?”

“아…… 어쩐지 낯이 익더라! 이걸 봤으면 훨씬 빨리 떠올랐을 텐데.”

J가 그의 바지춤으로 손을 넣어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깔깔 웃었다. 그의 손도 J의 어깨에서 아래로 내려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오대산 진고개 아래의 어느 삼계탕 집에 가면 항구 도시 주문진의 젊은 과부들과 기름기 번지르르한 닭을 뜯고 술을 마시며 진하게 만지고 주무를 수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들과 마음껏 먹고 취해도 닭 값과 술값만 내면 되니 다른 종류의 술집보다 굉장히 저렴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단순히 놀러 온 것이고 우연히 합석을 한 것뿐이었다. 남의 눈 때문에 자주 드나들진 못하지만 그는 가끔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어두워지길 기다려 몰래 진고개 아래의 골짜기로 스며들곤 했었다. 그런 어느 밤 J를 만났고 그 후 당연하게 잊고 있었다. 그날 J에게 둘이서 따로 술 한잔 하자고 졸랐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졸랐을 확률이 높았다. 그곳에선 만지고 주무를 순 있지만 관계를 가질 순 없으므로 대개 자신의 파트너에게 넌지시 운을 띄워 보곤 하니까. 그러나 오래된 일이라 그 다음은 캄캄했다.

“우리가 그때 같이 잠을 잤을까요?”

“글쎄…… 오늘 끝까지 가 보면 기억나지 않을까요.”

아마 J는 그를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동안 그녀의 파트너는 셀 수도 없이 많았을 테니까. 그녀의 기억 속엔 삶은 닭의 뽀얀 살과 국물만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그는 J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가 사라진 뒤로 잊고 있었던 것들이 다투어 떠오를 뿐만 아니라 눈앞에 직접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그는 J의 축 처진 젖을 주물럭거리다가 솥에서 나와 쟁반 위에 드러누운, 털이 모두 뽑힌 닭을 떠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열꽃이 몰려오는 듯 얼굴이 화끈거렸기에 다물었던 입을,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처럼 최대한 벌려야만 했다.

“꺄악!”

“아, 이 새끼, 오늘 할 건 다하네!”

“더러워! 냄새!”

그는 소파에 앉아 탁자 끝에 이마를 걸쳐 놓은 채 두 다리 사이로 토사물을 끊임없이 쏟아 놓았다. 오색 물방울 점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스피커에선 채 끝나지 않은 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옆자리에 앉은, 제일 먼저 비명을 질렀던 J가 몸을 피하기는커녕 뜨거운 다리미 같은 손으로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다는 거였다.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어쩌면 J는 자신을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토사물에서 올라오는 역한 냄새를 천천히 들이켰다.

새벽인 줄 알았는데 겨우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확인하고 텔레비전 화면으로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 〈낭독의 발견〉이란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겨울밤의 발견’이라고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아내가 사라진 지 한 십 년은 되었고 그 세월 동안 그는 꼼짝 않고 대관령 골짜기의 외딴 집에서 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내는 답이 없는 문제를 불쑥 던져 놓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를 풀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게 딜레마였다. 마치 선문답처럼. 그는 냉장고 안에서 은은한 불빛을 뒤집어쓴 채 차곡차곡 누워 있는 맥주병들을 눈으로 훑다가 문을 닫았다. 책꽂이 앞으로 이동해 낭독해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려고 서성거렸다. 그러나 선뜻 손에 잡히는 책을 찾지 못했다. 닫힌 방문들을 한 번씩 열어 보고 다시 옹관묘 같은 이불 속으로 되돌아왔다. 무엇인가를 발견하지 못한 자의 씁쓸한 표정으로.

“네가 왔으면 좋겠어.”

“생각해 봤는데 이건 당신 혼자 풀어야 할 문제 같아.” Y는 한 소식한 스님 같았다. 아니면 그녀의 문자 메시지에 답을 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나 있거나. 그거나 저거나…….

“그래서 안 오겠다는 거야?”

“졸려. 자야겠다.”

“…… 술이나 마셔야겠군.”

“조금만 마셔.”

“사랑해.”

길고 깊은 겨울밤, 〈스포츠 스포츠〉를 보며 그는 갑자기 천애의 고아가 돼 버린 듯한 심정을 지그시 깨물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텔레비전 화면 하단으론 잠시 후면 〈명화극장〉이 방영된다는 자막이 흘러가고 있었다. 보나마나 모두가 시청해도 되는 지루한 〈명화극장〉이겠지. 그는 투덜거리며 냉장고로 기어가다가 멈추고 베란다 쪽을 돌아보았다. 거기, 눈 덮인 마당에서 무엇인가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달음에 달려가 유리문을 열었다. 고라니 한 마리가 마당을 벗어나 눈 덮인 밭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골짜기의 지붕 같은 고속도로는 웬만한 산봉우리보다 높은 교각 위에서 고라니의 행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다리 밑에서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라지는 고라니를 향해 중얼거렸다. “한마디만 해주고 가지…….”

“다 같이 너네 집으로 가자고?”

“응. 집이 비었어.”

“우린 안 간다!” 단란주점에서 나온 P는 비틀거리는 아내의 친구를 부축한 채 등을 돌렸다. 아내의 친구는 일부러 취한 척하는 듯했다.

“우리도 그냥 여기 있어요.” J는 P가 걸어가는 반대쪽 거리로 그를 끌어당겼다. 경포의 파도 소리는 유리창이 깨질 듯 사나웠다.

“우리 집에 가자!” 그의 고함 소리가 모텔과 횟집이 즐비한 거리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Come on everybody, clap your hands! 그는 거실에서 홀로 춤을 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나타나기 전까진 어떤 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Ar ya lookin'good(너무 보기 좋은 걸)! 그러나 아내는 영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영영! 어느 날 일방적으로 내가 마음을 닫아 버린 것처럼. 오, 그렇다면 또 몇 차례나 관공서를 들락거려야 된단 말인가! 사람들은 수도 없이 전화를 걸어올 테고. I'm gonna sing my song(나는 노래를 부를 거야). 어떻게 하면 아내가 빨리 모습을 드러낼까? 길고 긴 겨울밤, 언제까지 홀로 거울만 들여다볼 순 없지 않은가. And it won't take long(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친구들을 초대하고 애인들을 불러들여 매일 밤 파티를 열어 볼까? 불이란 불 모두 밝혀 놓고 이렇게 트위스트를 추며 밤을 지새울까? 그러면 모습을 드러낼까? We're gonna do the twist, and it goes like this(우린 트위스트를 출 거야. 봐, 이렇게 하는 거야). 그는 졸지에 산에서 떠밀려 길거리로 내몰린, 흥분한, 알고 보면 심약한 멧돼지처럼 견치를 드러낸 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아니 방향 없이 쏘다니다 벽에 머리를 찧고 뒤돌아섰다. 견치에 걸리는 무엇이나 사납게 찢어발겼다. 고함을 질러댔다. “자, 우리 지난여름처럼 다시 트위스트를 추는 거야!” 그렇게 그는 씩씩거리다가 지쳐 쓰러졌다.

“…… 이럴 줄 알았어요.”

고라니는 마당에 서서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거실을 보며 중얼거렸다. 햇살이 눈부셔 그는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벌거벗은 P와 아내의 친구는 이불도 덮지 않고 텔레비전 근처에서 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 옆에는 토사물이 한 무더기 고여 있었다. 소파 위에서 새우처럼 오그리고 자는 이는 Y였다. 언제 그녀가 내려왔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도리어 머리만 지끈거렸다. 빈 술병을 손에 쥔 J는 냉장고에 등을 기댄 채 앉아서 자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쓰러진 술병과 안주가 흩어져 있었다. 화장실 문 바로 앞에 노랗게 고여 있는 건 오줌이었다. 그는 비듬이 날리는 더벅머리를 긁적거렸다.

“오랜만에 파티를 열었어. 춥겠다! 들어올래?”

“가야 돼요. 나랑…… 같이 갈래요?”

“…… 어딜?”

“알잖아요.”

“…… 사랑한다고 전해 줘.”

그는 베란다와 마당의 경계에 서서 고라니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거실로 시선을 돌렸다. 속이 쓰려 왔다. 얼큰한 짬뽕 국물이 떠올랐다. 중국집에서 대관령 골짜기까지 짬뽕을 배달해 줄까 생각하다가 마당을 두리번거렸다. 설어 가는 눈 위에는 고라니의 발자국만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산과 산을 건너가는 고속도로의 거대한 다리는 금이 가면서 천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달리던 자동차들은 허공으로 퉁겨져 함박눈처럼 분분히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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