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방 라이프

피시방 라이프

 

 

임정연

 

 

 

 

“내 고추 보여 줄까?”

구석진 계단참에서 아이가 손을 잡아끌었다. 해진 바짓단이 까맣게 때가 전 운동화 위를 덮고 있다. 아이는 씨익 웃더니 바지 지퍼를 잡아 내렸다. 스르륵 내려오던 바지가 발목에 걸린 채 멈추었다. 아이는 또 씨익 웃었다. 그러고 나서 흰 팬티를 끌어내렸다. 소름이 돋은 허벅지 사이로 고추가 숨어서 대롱거렸다. 아이가 속삭였다.

“만져 볼래?”

“흥.”

코웃음을 치자 아이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져 봐. 그리고 나 천 원만 줘.”

“없어.”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눈을 흘기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등 뒤에서 아이가 비굴하게 말했다.

“배고파 죽겠어.”

아이가 배를 만지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멍청이.”

아이에게 혀를 날름 빼물고 나서 그냥 계단을 달려 내려왔다. 아까부터 근처를 맴돌면서 계속 눈짓을 하기에 무슨 일인가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역시 바보 같은 소리만 지껄이고 있다. 저 아이가 피시방에 나타난 건 한 달 전부터였다. 의자 사이를 기웃거리며 사람들이 먹다 둔 과자 봉지나 컵라면 따위를 노리고 다녔다. 그러다 주인아저씨한테 들켜서 몇 번이나 머리를 쥐어 박혔다.

피시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훅 하고 담배 냄새와 컵라면 냄새, 김치 냄새들이 한꺼번에 코로 달려들었다. 그런 냄새들은 싫지만 추운 데 있다 들어와서 몸은 따듯했다. 삐융삐융. 전자음 소리가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 식구가 있는 칸막이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엄마랑 영호는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앉아서 칼로 괴물만 죽이고 있다. 아빠는 내가 왔는지도 관심이 없고 새빨개진 눈으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다. 떡이 되어 엉킨 머리카락을 마우스를 잡지 않은 손으로 피가 나게 긁었다.

“아, 씨발. 가려워 죽겠네.”

투덜거림도 잠깐 아빠는 다시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난 살며시 아빠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아빠처럼 게임에 몰두해 보려고 하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떠다녔다.

우리 식구들이 이곳으로 온 지는 두 달쯤 되었다. 전에 있던 피시방에서는 한 일 년쯤 살았다. 처음 거기서 살 땐 아빠는 피시방 아저씨와 사이가 좋았다. 컵라면이나 과자를 안주 삼아 둘이서 소주를 마시기도 했고 아저씨는 삶은 달걀을 나와 영호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아빠는 의자에 죽치고 앉아 게임에만 몰두했다. 돈이 떨어져도 새벽시장에 나가지 않았다. 밤마다 아저씨와 아빠는 문 앞에서 삿대질을 했다. 돈을 내라는 아저씨와 없다고 버티는 아빠의 실랑이였다.

피시방에서 네 식구가 살려면 하루에 팔천 원이 들었다. 먹는 건 컵라면이나 빵으로 때우고, 잠은 의자에서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잤다. 얼굴은 건물에 딸린 화장실에서 씻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겨울이면 찬물이 살갗을 찔러 세수를 하고 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처음에 나도 얼굴을 씻는 게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금방 깨달았다. 얼굴이 깨끗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 또 문방구나 포장마차에 들어가려면 얼굴이 깨끗해야 했다. 그 후론 찬물이 아무리 따가워도 참고 얼굴을 씻었다. 그 어느 날 피시방 아저씨는 아빠의 멱살을 잡아서 거리로 패대기쳤다.

“그동안 쓴 사용료 내든지 아님 당장 꺼져!”

아저씨는 식식거리며 ‘당장’이란 소리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아빠가 며칠만 봐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지만 아저씨는 다리를 흔들어 털어 냈다.

“있어, 없어?”

아빠는 체념한 것처럼 까치집 머리를 느리게 흔들었다. 그러자 아저씨의 눈이 다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일도 안 나가고 완전 미쳤구만, 이젠.”

아저씨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피시방 아저씨의 뒷모습은 우리를 쫓아내던 월세방 주인아저씨와 비슷했다. 생김새는 달랐지만 그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아빠에게 화를 냈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피시방 아저씨가 던진 가방 하나가 밑이 터져서 땅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빠는 부아가 난다는 얼굴로 터진 가방을 발로 걷어찼다. 눈치 없이 영호가 훌쩍거리고 있었다.

“이년아, 어딜 그리 싸돌아댕겨?”

뒤통수에 엄마의 손바닥이 날아와 박혔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영호 손을 붙잡고 등 뒤에 서 있다. 영호는 혓바닥이 빨갛게 물든 채 열심히 막대 사탕 하나를 빨고 있다. 내가 쳐다보자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엄마 뒤로 몸을 웅크렸다. 엄마는 굼뜨게 몸을 움직여 벽에 붙여 놓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엄마의 다리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다리와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당뇨 때문에 온몸이 점점 붓고 있었다. 엄마가 혼자 푸념하는 소리를 들어 보면 약을 빼놓지 않고 먹어야 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돈이 없었다. 지금 엄마가 먹을 약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겐 그날그날 먹을 음식도 없었고 따듯한 잠자리도 없었고 낯선 사람이 함부로 문을 두들기지 않고 맘 놓고 똥을 쌀 그런 집도 없었다.

엄마가 종이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안에서 붕어빵을 꺼내었다. 엄마는 영호한테 하나를 주고 아빠한테도 내밀었다. 하지만 게임에 빠져 있는 아빠는 충혈된 눈으로 흘끗 쳐다보곤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빠는 게임을 할 땐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씻는 것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누가 자신을 건드리는 걸 싫어했다. 지금 엄마가 아빠에게 붕어빵을 건네주어 봤자 날아오는 건 고함이나 손찌검밖에 없었다. 엄마나 나는 물론 그건 여섯 살 영호까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엄마는 마지못한 듯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 붕어빵이 오늘 우리의 점심이었다. 재빨리 하나를 먹어 치운 영호가 다시 붕어빵 하나를 날쌔게 움켜쥐었다. 나한테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허겁지겁 입속에 쑤셔 넣었다.

영호가 무엇이든 빨리 먹어 치우는 대신 난 조금씩 붕어빵을 뜯어먹었다. 혀로 달착지근하고 감미로운 단팥 맛이 느껴졌다. 우리 가족이 길로 나왔을 때부터였다.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려고 무엇이든 입에 들어오면 오래오래 씹었다. 그게 영호 것을 빼앗아 먹는 것보다 엄마한테 더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보다 편했다.

엄마는 붕어빵을 오물거리면서 아빠를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가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가지 않은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엄마가 컵라면도 아니고 붕어빵을 사 온다는 건 이제 돈도 다 떨어지고 없다는 거였다. 돈이 떨어졌다는 둥, 먹을 게 없다는 둥 그런 소리를 해봤자 아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빠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뻔하니까 아무 소리도 못했다. 난 의자에서 일어나 조용히 피시방을 빠져나왔다.

길에는 지난 밤 내렸던 눈이 까맣게 변해 질척거렸다. 채 녹지 않은 곳에는 누가 발을 대고 눌렀는지 커다란 발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나도 그 옆에다 쾅쾅 발자국을 찍었다. 저쪽에서 가방을 둘러멘 여자애 둘이 걸어오며 내가 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중에 눈이 가느스름한 애가 분홍 리본을 묶은 여자애에게 뭐라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분홍 리본을 묶은 여자애가 날 쳐다보더니 까르르 웃었다. 여자애들은 피시방 옆의 보습학원 건물로 사라졌다.

여자애들이 짊어진 가방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학교를 다니고 싶다. 나도 공부를 하고 싶다. 보습학원은 안 다녀도 좋다. 학교에 가고 싶다.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훔쳤다. 우리 가족이 아직 월세방에 살고 있을 때 나도 학교를 다녔다. 아빠는 그때도 피시방을 들락거렸지만 지금처럼 일을 안하지는 않았다. 입학식 날에는 차가운 바람이 쌀쌀하게 불었는데 엄마는 영호 손을 잡고 뒷줄에 서 있었다. 영호가 콧물을 흘려서 엄마는 몇 번이나 휴지로 닦아 주었다. 그때는 엄마도 화풀이하는 것처럼 날 때리지 않았고 약도 꼬박꼬박 먹어서 몸도 퉁퉁 붓지 않을 때였다.

난 입학식 전날부터 엄마한테 노란 원피스를 사 달라고 떼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돈이 어딨냐고 버럭 짜증을 내었다. 그리곤 내가 사 달라는 옷 대신에 노란색 실핀을 하나 사 주었다. 옆으로 흘러내린 단발머리에 핀을 꽂고 부아가 나서 엄마와 영호가 서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3학년에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우리 가족은 거리로 쫓겨났다. 그날은 황사 바람까지 불어서 날도 추웠고 모래 먼지 때문에 눈도 뜰 수가 없었다.

“아, 드러워서.”

아빠는 분에 못 이긴 듯 길거리에 찍 하고 침을 뱉었다. 아빠는 한바탕 욕을 퍼붓고 난 뒤 입에다 담배를 물었다. 엄마와 우리들은 몸을 오슬오슬 떨며 서 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춥다고 아빠를 채근하지도 않았고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담배를 다 피운 아빠는 꽁초를 그 집 대문을 향해 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좆도.”

아빠는 분이 풀리지 않는 얼굴로 월세집 문에 발길질을 해대곤 상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도 그제야 영호의 손을 잡아끌고서 아빠의 뒤를 따랐다. 엄마는 이제 난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도 모른 채 가족들은 모래 바람 사이로 멀어져 갔다. 이대로 발길을 돌려 사라져 버릴까.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사라져 버려도 누구 하나 모를 것이다.

“안 오고 뭐해.”

엄마가 뒤를 돌아보고 앙칼지게 소리쳤다. 아마도 엄마가 1초만 늦게 고개를 돌렸더라도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떤 찰나적인 느낌이었지만 앞으론 엄마에게 영원히 노란 원피스를 사 달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영호처럼 투정 부리는 짓도 할 수 없다는 걸.

모퉁이를 돌자 소란스러운 시장 골목이 나타났다. 채소와 생선을 파는 가게들 뒤편에 붕어빵을 굽는 아저씨가 있다. 배가 고파서인지 고소한 냄새가 유난히 코로 밀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발이 저절로 그쪽으로 움직였다. 검은 틀에는 이제 막 구워진 노릇노릇한 붕어빵들이 나오고 있었다. 쳐다보는 걸 보았는지 아저씨가 붕어빵 하나를 내밀었다. 냉큼 낚아채는데 아저씨가 살그머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저씨는 사방을 이리저리 곁눈질하더니 포장 안쪽으로 손짓을 했다.

“먹고 싶냐?”

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럼 아저씨가 하라는 거 할 수 있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아저씨가 말했다.

“아저씨가 좀 변태라서.”

윙크를 하며 씨익 웃었다.

“아는 노래 있음 불러 봐라. 그냥은 안 되지.”

내가 ‘엄마 곰 아빠 곰 아기 곰’을 부르는 동안 아저씨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검은 틀에 밀가루 반죽을 부었다. 아저씨는 노래가 맘에 들었는지 붕어빵을 뒤집으며 말했다.

“더 먹고 싶음 또 불러 봐라.”

노래 세 개를 연달아 부르고 붕어빵 네 개를 먹어 치웠다. 겨우 배에서 들끓던 허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더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물었다.

“너 스타 피시방에서 살지?”

“아뇨.”

“그래?”

“우리 집은 저기예요.”

아파트 단지 쪽을 가리키자 아저씨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내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피시방에 시간 때우러 오는 사람들과 달리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금방 표가 났다. 의자에 던져 놓은 큼지막한 가방과 보퉁이들, 팬티나 양말을 빨아 의자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모습, 몇 날 며칠 감지 않아 떡이 된 머리와 후줄근한 옷차림, 그리고 코를 골면서 자는 모습까지. 어떤 사람에겐 잠깐 스쳐 가는 곳이 어떤 사람들에겐 방이며 화장실이며 집이었다. 우리 식구도 언제까지 거기서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아빠가 우리들이 살 방이나 집을 얻지 않는 이상 피시방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나의 생존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거리에서 마주치는 그 어떤 사람도. 학교에 다니고 싶은 것, 책을 읽고 싶은 것, 공책에 무언가를 쓰고 싶은 것, 친구들과 놀고 싶은 것들은 다 잊어야 했다. 그것들은 지금 다 사치일 뿐이었다.

아저씨가 허리를 굽히고 주전자에 밀가루 반죽을 붓는 동안 날름 붕어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저씨가 고개를 들기 전에 빠른 속도로 먹어 치웠다. 내가 포장마차를 떠나는데 아저씨는 “다음에도 와” 했다. 못 들은 체 다리를 움직였다.

2층 계단참에 딸린 화장실 문을 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가 나오고 있었다. 1층엔 맥줏집이 있었는데 가끔은 이렇게 낮에도 술 취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남자는 중심을 못 잡고 다리를 건들거리며 지퍼를 올렸다. 남자가 돌아서기 전에 얼른 침을 묻혀서 양쪽 눈 밑에다 발랐다. 그리고 손을 벌려서 남자에게 내밀었다.

“아저씨, 배가 고파요.”

처량한 목소리로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남자는 성가셔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삼 일 동안 굶었어요…….”

“그래서 어쩌라고?”

남자는 내 손을 뿌리쳤다.

“돈 좀 주세요.”

“돈?”

남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술 마시고 죽을 돈도 없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매달렸다. 가끔은 이쯤에서 돈을 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쌀쌀맞게 돌아섰다. 나도 처음엔 그런 사람들을 욕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남자가 귀찮은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자자 비켜.”

남자가 갈지자걸음으로 등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내 손이 남자의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장지갑에 닿았다. 순식간에 지갑 속에서 초록 지폐를 꺼낸 다음 다시 남자의 뒷주머니에 찔렀다. 남자는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 엉거주춤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손을 휘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 피시방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아빠는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하느라 내가 뒤에 서 있는 줄도 몰랐다. 엄마와 영호는 등 뒤의 의자에 앉아 수건을 두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아빠가 달라붙어 있는 화면 안엔 괴상하게 생긴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남자가 그 괴물들의 몸을 하나씩 베고 있었다. 아빠는 눈이 벌건 채 괴물들을 잡으러 다녔다. 엄마와 영호는 서로 끌어안은 채 단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영호가 베어 먹다 만 붕어빵이 손에서 스륵 떨어졌다.

지퍼가 벌어진 가방 속에서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한 속옷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창틀에 늘어놓은 플라스틱 컵과 칫솔들, 치약, 세숫비누, 한쪽 알이 깨진 영호의 안경, 머리 묶는 고무줄.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으니까 슬프다. 난 이렇게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일까.

붉은 눈으로 게임에 빠져 있는 아빠의 등을 쏘아보았다. 아빠는 한 달이 넘도록 꼼짝도 하지 않고 게임만 하고 있다. 아빠가 저 의자에 달라붙어 있는 동안 학교도 집도 점점 멀어졌다.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기적이 일어나 아빠가 일을 하러 나갔기를. 아니 차라리 아빠가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저 의자에서 죽어 버렸기를. 난 피시방까지 올라오는 계단을 밟으며 나무 이파리를 한 장씩 떼어 내듯 속삭였다. 아빠가 일을 나갔다, 아빠가 일을 나가지 않았다. 아빠가 죽었다, 아빠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내 바람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아빠는 일도 나가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실망으로 어깨가 축 처졌다. 아빠의 등을 원망스럽게 쏘아보다가 몸을 돌렸다.

보습학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3학년 반이라고 씌어진 유리문 뒤에 몸을 숨기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까 발자국을 찍던 날 비웃던 여자아이 둘이 거기 앉아 있었다. 이 시간쯤은 언제나 국어를 배웠다. 학원 선생님이 칠판에 ‘오늘의 작문은?’ 하고 쓴 다음 그 옆에 ‘고양이’라고 커다랗게 휘갈겼다. 분홍 리본을 묶은 여자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은 아이들한테 글을 쓰라고 하는 듯 노트를 두드렸다.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연필을 쥐었다.

나도 복도에 앉아 머릿속으로 연필을 쥔 손을 사각사각 움직였다. 콘크리트에서 올라온 차가운 냉기가 엉덩이를 뚫을 듯 타고 올라왔다. 어느 날 강가를 걷고 있었어요. 개나리 울타리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어요. 녀석은 따듯한 봄볕을 쬐다가 잠이 든 것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산책을 나왔던 아줌마와 개 한 마리가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어요. 개가 고양이를 보고 소리 높여 짖어대기 시작했어요. 개는 흥분을 해서 킁킁 난리도 아니었어요. 아줌마는 목줄을 감아쥐고 재미있다는 얼굴로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 순간 궁금해졌어요. 고양이와 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따듯한 햇빛 아래에서 잠을 자던 고양이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뜨고 개를 노려보았어요. 뭐 저런 게 다 있어, 하는 눈빛이었어요. 하지만 개를 피해서 도망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개는 짖어대고 고양이는 꼿꼿하게 선 채 서로를 노려보기만 했어요. 계속 짖기만 하는 모습에 싫증이 난 아줌마가 개의 목줄을 끌고 그 자리를 떠났어요. 고양이는 다시 울타리 밑에서 눈을 감았어요. 이렇게 따뜻한 봄날 제발 아무도 날 깨우지 말아 줘, 하는 얼굴로 말이지요.

난 작문을 끝내고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날마다 이 시간에 여기로 오는 건 글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해진 바지를 입은 아이처럼 바보가 될 것이다. 학원 아이들은 아직도 사각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그중에 몇은 장난을 치며 떠들고 있다. 저 아이들은 나 같은 절실함이 없다. 언제든 엄마 아빠가 학교나 학원에 보내 주기 때문이다. 글짓기를 안하고 장난을 치거나 키득거리며 떠드는 아이들은 모른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학교를 다닐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우리 가족이 거리로 나왔을 때 그걸 알았다.

학원을 빠져나와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거리를 빠르게 걸었다. 날선 바람이 얼굴을 찢을 듯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몸을 웅크리고 시장 골목을 지나쳐 앞으로 죽 따라 올라갔다. 순댓국집 유리 안으로 해진 바지를 입은 아이가 머리를 처박고 무언가 먹고 있는 게 보였다. 희멀건 국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유리창 밖에 서 있는 날 보았는지 아이가 수저를 흔들었다. 입가에 밥알이 달라붙어 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손짓을 했다. 멍청이. 아이는 저 아래 만화방에서 살았다. 엄마도 없는지 달랑 아빠하고 둘이었다. 그 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추운 날에도 만화방 앞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가 눈처럼 하얗게 센 아저씨였다. 만화방에서 사는 사람들도 피시방에 사는 사람처럼 표가 났다. 주황색 의자를 나란히 붙여 놓고 만화를 베개 삼아 코를 골았다. 엄마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만화방에서 사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았다. 거긴 하루에 5천 원만 있으면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아빠가 게임에 미치지 않고 만화를 좋아했다면 우리도 만화방에서 살았을까. 아이가 유리창 너머로 손짓을 하는데 그냥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담벼락 밑으로 함부로 버린 비닐봉지들이 차가운 바람에 몸을 뒤척거렸다.

밖에서 목을 움츠리고 가게의 동정을 살폈다. 유리창 너머로 피둥피둥 살이 찐 대머리 아저씨가 무료한 얼굴로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곳은 두 번째 오는 곳이다. 오늘은 어쩌면 조심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지켜보았지만 가게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귀가 시려서 종종거리다가 문을 밀고 가게로 들어갔다. 위쪽에 매달린 종이 울리자 아저씨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았다.

난 뒤쪽으로 걸어갔다. 아저씨가 목을 빼고 내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몇 초가 걸려서는 안 된다. 뒤에 오래 있으면 아저씨의 의심만 살 것이다. 난 운동화 끈이 풀어진 것처럼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가 지우개 하나를 집어 들어 재빨리 잠바 속에 숨겼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저씨가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아저씨와 눈이 부딪치자 뭘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저씨는 귀찮은 얼굴로 다시 신문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뭘 찾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혹시라도 불러 세워서 옷을 뒤질 수도 있다. 며칠 전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문방구에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이 짓을 멈출 수가 없다. 들키지 않고 문을 밀고 나갈 때 그 짜릿한 기분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바보 같은 어른들을 감쪽같이 속였다는 흥분에 마음이 한껏 들뜬다. 내가 문을 밀 때 딸랑, 하고 요란한 소리로 종이 울렸다. 아저씨는 못마땅한 얼굴로 흘끗 쳐다보곤 고개를 떨어뜨렸다. 밖으로 나와서 유리 너머 상자에 들어 있는 인형들을 아쉬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마음속으로 인형에게 속삭였다. 언젠가는 널 꼭 데려갈게, 진짜야. 몇 번이나 손가락을 걸면서 발길을 돌렸다. 문방구가 보이지 않자 그제야 달음질을 쳤다. 칼바람이 얼굴에 부서질 듯 몰려와도 개의치 않았다. 물건을 훔쳐서 달려갈 땐 엄마도 아빠도 피시방도 다 잊었다. 난 지금 살아 있다.

볼이 발갛게 물든 채 숨을 헐떡이며 옥상까지 한달음에 달려 올라갔다. 피시방이 있는 건물은 5층이었는데 옥상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마지막 계단이 끝나는 곳에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이 나타났다. 난 노란 물탱크 뒤에 숨겨 둔 박스를 들추었다. 위에 덮어 두었던 신문지를 걷어내고서 방금 훔쳐 온 지우개를 소중하게 안에 넣어 두었다. 난 뿌듯한 얼굴로 박스 안의 물건들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연필 열다섯 자루, 지우개 열한 개, 주머니칼 여덟 개, 열쇠고리 다섯 개, 샤프펜슬 네 자루, 딱풀 두개…….

발걸음 소리에 소스라쳐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아이는 내가 손으로 박스를 가려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아이를 노려보았다. 아이는 박스 속이 궁금한 듯 기웃거렸다.

“너 이거 다 쎄볐지?”

“뭐야?”

내가 눈을 치뜨고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나도 하나만 줘.”

“시끄러.”

소리를 질러 주곤 박스 속에 있던 것들을 모두 꺼내 잠바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지우개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아이가 날름 집어 갔다.

“얼른 줘.”

“싫어. 천 원 줘.”

“병신.”

아지트가 들킨 것이 분해서 발을 쾅쾅 구르며 옥상 문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아이가 소리쳤다.

“야, 가지 마.”

아이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잠바 주머니를 꼭 누른 채 의아한 눈으로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뽐내는 목소리로 떠들었다.

“나 멀리 갈 거다.”

“거짓말.”

내가 코웃음을 쳐도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진짜야.”

아이가 양팔을 옆으로 크게 벌리고 떠벌렸다.

“이따만 한 트럭 타고 갈 거야.”

“누가 데려가 준대?”

아이가 내 손을 잡아서 시장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으로 끌어당겼다. 아이의 손이 순댓국집의 간판을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저 집 아저씨가 밤에 부산 간대. 나도 태워 주기로 했어.”

“네가 부산을 왜 가?”

“울 아빠 곧 죽어. 기침할 때 피난다. 그전에 도망칠 거야.”

아이가 비밀 얘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아이가 눈을 번득이며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감지 않아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었다.

“부산역이 엄청 크대. 거기 가면 먹고살 수 있대.”

“병신.”

“진짜야. 만화방에 있는 아저씨들이 그랬어.”

녀석을 흘겨 주곤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와 피시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아직도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엄마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영호가 울고 있다.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지만 아무도 영호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빠가 화장실에 가려는 것처럼 뭉그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걸음이 꼭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게임을 하고 있을 땐 아빠는 하루에 의자에서 몇 번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때 아빠를 보면 1층 맥줏집에서 나와 비틀거리던 남자들과 많이 닮아 있다. 멍하게 풀어진 눈동자, 빨갛게 변한 눈, 갈지자걸음걸이. 아빠는 울고 있는 영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

조금 뒤 엄마가 엉기적거리며 들어왔다. 부은 몸이 힘에 겨운 듯 엄마는 느리게 움직였다. 몸이 땡땡하게 부어서 엄마는 갈수록 인상이 사나워지고 있다. 엄마는 가끔씩 영호도 때렸지만 우리가 밖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 심하게 때렸다. 제대로 음식을 먹지 않아서 기운도 없을 것 같은데 엄마의 손은 갈수록 매워졌다. 엄마는 의자에 힘겹게 엉덩이를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엄마는 앞으로 얼마나 살까. 우리 엄마도 피를 토하고 죽을까. 귓전으로 좀 전에 아이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울 아빠 곧 죽어. 기침할 때 피난다. 그전에 도망칠 거야. 그전에 도망칠 거야, 그전에 도망칠 거야. 마지막 말을 머릿속으로 굴리고 있는데 엄마의 눈이 내 주머니를 보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엄마가 팔을 움켜쥐었다.

“너 이거 다 뭐야?”

엄마가 주머니에서 꺼낸 지우개, 연필, 주머니칼 따위를 함부로 집어던졌다. 내가 머뭇거렸다.

“그냥…….”

“어디서 났어?”

빽 소리를 지르며 엄마가 어깨를 때렸다.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엄마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어깨를 낚아채선 흔들었다.

“이젠 학교 못 가, 알아들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호가 울음을 그치더니 의자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양손 가득 물건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내가 못하게 하자 앙, 하고 다시 울음보를 터트렸다.

“호랑이 물어갈 년아, 동생은 왜 울려?”

엄마가 눈을 흘기며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지만 난 퀭한 눈으로 쏘아보기만 했다. 밖에 나갔던 아빠가 비틀거리며 돌아왔다. 아빠는 악다구니를 치는 엄마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마우스를 움켜쥐었다. 아빠는 엄마도 영호도 나도 쳐다보지 않았다. 아빠가 바라보는 곳은 게임이 펼쳐지고 있는 파란 화면뿐이었다.

우리 가족이 아직 월세방에 살고 있을 때 아빠는 밖에 나가서 집을 짓는다고 했다. 아빠의 얼굴이 까맣게 타고 손바닥이 갈라지고 터져도 난 자랑스러웠다. 아빠가 자꾸자꾸 집을 짓는다면 언젠가 우리가 살 집도 지을 거라고. 다른 사람들의 집을 실컷 지어 주고 나면 이제 우리 차례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쯤 아빠는 우리 집을 지어 줄까. 거기서 우리 식구들이 살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아빠가 피시방에 가서 꼼짝을 하지 않을 때부터 내 꿈은 죽어 버렸다. 아빠 때문에 꿈을 꾸었는데 이제 아빠가 그 꿈을 빼앗아가 버렸다. 꿈이 없는 피시방에서 난 살고 싶지가 않다. 난 꿈을 찾아서 떠날 거다. 엄마도 아빠도 영호도 없는 곳으로 아주 멀리멀리 가 버릴 거다.

“돈은 없어?”

엄마가 눈을 치떴다. 내가 말이 없자 엄마가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이년아, 이런 건 뭐에 쓰려고 훔쳐 와.”

엄마가 못 도망가게 하려는 듯 팔을 잡더니 내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엄마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찾아내더니 히죽 웃었다. 영호도 눈물을 닦으며 뚫어져라 돈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발로 밀었다.

“가서 팔아 와.”

“…….”

“못 팔면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엄마가 못을 박듯이 말했다. 뒤뚱거리며 문으로 걸어가자 영호가 재빨리 뒤를 쫓았다. 잠시 뒤 돌아온 엄마는 비닐봉지 가득 먹을 걸 사 가지고 왔다. 영호는 과자 봉지를 안 빼앗기려는 듯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다. 엄마와 영호는 뒤쪽 의자에 앉아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입에다 넣었다. 쩝쩝거리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난 물건을 주워 들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보습학원 앞에서 물건을 꼭 쥐고 기다렸다. 조금 지나면 저학년 아이들이 끝나서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심해서 학원이 보이는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귀가 시려서 잠바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잠시 뒤 아이들이 하나 둘 학원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눈이 가느스름한 애와 분홍 리본을 묶은 여자애 둘이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둘이서 손을 꼭 붙잡고 재잘거리며 걸어왔다. 모퉁이를 돌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야!”

고함 소리에 깜짝 놀란 듯 여자애들이 발을 멈추었다.

“거기 둘!”

담벼락에 붙어 서서 한껏 불량스런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여자애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너네들 나 알지?”

“모르는데…….”

둘이서 고개를 흔들었다.

“나 보고 웃었지?”

여자애들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런 적 없는데…….”

“웃었잖아. 확 그냥.”

내 서슬에 둘 다 찔끔 몸을 움츠렸다. 그쯤에서 지우개와 주머니칼을 눈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사.”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두 애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눈이 가느스름한 애가 더듬거렸다.

“어 얼마에?”

“하나에 이천 원. 두 개씩 사.”

둘은 싫다는 말도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돈을 꺼냈다. 지우개와 주머니칼을 받아 쥐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모퉁이에 숨어서 만만하게 보이는 아이들만 골라서 나머지 물건들을 팔았다. 울먹거리는 애들, 도와 달라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애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 버리는 여자애들. 아이들에게서 받은 돈을 접어서 잠바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어느새 거리는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하나씩 돋아났다. 찬바람이 더욱 앙칼지게 불어왔다.

피시방이 있는 건물로 다가가 2층을 올려다보았다. 꼭꼭 문이 닫힌 창문을 아무도 열지 않았다. 1층 맥줏집에는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을 뿜었다. 계단에서 나에게 돈을 털린 남자가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얼굴이 벌건 채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고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2층 화장실 문을 열었다. 뒤쪽 벽돌을 들어내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비닐로 둘둘 감아 놓은 지폐가 손에 잡혔다. 돈을 끄집어내고 벽돌을 다시 제자리에 얹어 놓고 돌아섰다.

시장 골목을 따라 올라갔다. 순댓국집 앞에는 낮에 안 보이던 트럭 하나가 서 있었다. 저게 아이가 말하던 그 트럭일까. 부산. 왠지 먼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도시였다. 다시 한 번 부산하고 중얼거리자 가슴이 조금씩 뛰었다. 마치 물건을 훔쳐서 거리를 내달릴 때 짜릿하던 마음처럼.

문방구가 보이는 담벼락 밑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늘인데다 어둠 속이어서 눈에 뜨이지 않을 것이다. 한길에서 길고양이 하나가 튀어나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녀석도 추운지 몸을 웅크리고 바닥으로 납작 엎드렸다. 고개만 위로 든 채 말끄러미 날 바라보기만 했다. 녀석의 눈이 어둠 속에서 반딧불처럼 빛이 났다. 내가 귀찮은 얼굴로 손짓을 했다.

“저리 가.”

고양이는 기분이 상했는지 담벼락 위로 올라가더니 튀어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참고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문방구의 불이 꺼지고 대머리 아저씨가 밖으로 나와 유리문을 잠갔다. 아저씨는 제대로 잠겼는지 흔들어 보고 나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도 좀 더 기다려야 했다. 문방구 옆 가게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세탁소에서는 부옇게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옷을 다리는 남자의 움직임이 보였다.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 갔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세탁소의 불도 꺼졌다. 골목이 조용해지고 칼바람만 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굳은 다리를 풀고 조금씩 걸음을 떼어 놓았다. 추운 날씨에 인적이 끊긴 듯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담벼락 밑에 앉아 있을 때부터 큼지막한 돌은 찾아 두었다. 손이 곱아서 몇 번이나 입김을 불어넣고 비볐다.

손에 돌을 쥐고 문방구를 향해서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겨 놓았다. 돌을 움켜쥔 팔이 부르르 떨렸다. 진열장 안의 인형이 어서 가져가 달라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뭘 망설여. 어서 날 데리고 떠나 줘. 인형이 조그만 입술을 달싹였다. 가슴이 후드득거리며 벅차올랐다. 이제 나한텐 엄마도 아빠도 영호도 필요 없다. 저 인형만 있으면 된다. 돌을 힘껏 유리창을 향해 날렸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리며 유리 조각들이 진열장 안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흠칫 귀를 세우고 골목길을 쏘아보았다. 다행히 사람들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몸을 굽히고 인형이 들어 있는 상자를 끄집어냈다. 오래전부터 그토록 갖고 싶었던 인형을 손에 들자 배고픔도 사라졌다.

난 달리기 시작했다. 인형 상자를 꼭 끌어안은 채 시장 골목을 뛰었다. 발바닥으로 얇은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순댓국집 앞에 트럭이 있을까. 아이를 싣고 벌써 떠났는지도 모른다. 따듯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아이는 침을 흘리며 자고 있을까. 부산역에 가면 먹고살 수 있다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아이는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난 아니다. 엄마도 아빠도 날 버렸다. 그런데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난 도망칠 것이다. 트럭을 타고 부산이든 어디든 떠날 것이다. 피시방이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 좋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로 자꾸자꾸 부딪쳐 왔다.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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