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의연금 납부사

국민 의연금 납부사

 

 

 

허문재

 

 

 

 

뉴스 속보였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를 휩쓸고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도시의 80프로가 물에 잠기고 수천 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도둑이 들끓기 시작하고 살인과 약탈이 자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은 선진국이라고 배웠습니다. 미국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저들이 하루아침에 떼강도나 떼도둑으로 돌변하다니,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차라리 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이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미국에서 살인과 약탈이라뇨? 미국은 절대 그런 나라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홍수가 나면 의연금을 걷고 이재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도와줘야 한다고 일찍이 배웠습니다. 미국처럼요. 지금 저 방송이 혹시 아랍의 알자지라 방송은 아니겠죠?

한편에선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서 연방 정부에서 무관심한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 나와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흑인들이었습니다. 백인들에게 허리케인은 예고된 재앙이었지만 흑인들에겐 운명이었다고 합니다. 백인들은 재빨리 허리케인을 피해 달아났지만 흑인들은 시내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흑인들에겐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새삼 자신들이 노예선에 실려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후손임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이 해방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는 자들의 유언비어입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조국이라고 배웠습니다. 인권을 가장 존중하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난민을 수용해 놓은 풋볼 경기장 슈퍼 돔은 지옥을 방불케 한다고 떠들어댔습니다. 지옥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헛소리라고 나는 단정했습니다.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없이 보아 온 저들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민첩하고,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틈만 나면 폭도로 돌변하는 저 나라의 국민성이 간혹 의심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 LA 폭동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선진국이라고 어려서부터 배웠습니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 시민들은 시민 정신이 투철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며 국민들은 애국심이 강하다고 배웠습니다. 꿈속에서라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나라, 선진 미국.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 미국. 재난에 신속하고 철저하게 대처하는 나라. 어려운 사람들이나 나라들을 자기 가족 돌보듯이 도와주는 아름다운 나라. 우주선을 심심하면 쏘아 올리는 돈 많은 나라. 미국은 부족한 것이 없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북한을 위협해도 그게 다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외 주둔 미군들이 원주민들을 강간하고 폭행해도 그게 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속 좁은 원주민들이 몰상식하게 부대 앞에까지 달려가서 항의하면 저렇게 배은망덕한 짓을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나는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니까. 세계평화를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겐 구호품을 아낌없이 보내 주는 아름다운 나라니까. 그러니까 뭔가 이상합니다.

우리나라는 은혜를 잊지 않는 민족이라고 배웠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에 미국 사람들이 보내 준 헌 옷과 밀가루 때문에 얼어 죽지 않고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은 은인의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저런 방송을 여과 없이 내보내다니 우리나라가 겁을 너무 상실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엔 미국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먹는 음식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대찌개가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대찌개엔 아직도 미군 부대에서 나온 햄이나 고깃덩어리를 넣는다고 했습니다. 미군이 먹다 버린 이빨 자국이 선명한 햄이 들어간 것일수록 원조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미국과 그들의 은혜를 기념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친구이고 자식들입니다. 더 이상 미국을 음해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은 선진국이고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선진국이란 모름지기 길거리에 먹을 것이 널려 있어도 남의 물건엔 손을 대지 않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미국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저건 분명히 미국이 아닐 거야. 반미주의자들의 음모야.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도와주고 구제해야지. 우리나라도 저런 적이 없는데 미국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도 안 돼. 이게 다 빨갱이들의 음모야. 방송도 좌파들이 다 장악했다고 하잖아.’

미국은 분명히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조차 벌어지지 않는 일들이 아름다운 저들의 나라에서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아마 지금쯤 전국에서 성금이 밀려들어서 이번 수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다 도와주고도 남아서 기아에 허덕이는 수천만 세계 인민들을 앞으로 10년 동안 다 먹여 살리고도 돈이 남을 겁니다.

‘아무렴. 의연금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을 거야, 의연금! 미국은 그런 나라야. 뭔가 착오가 생긴 게 분명해. 음모야 이건.’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자국 국민의 생명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반미주의자들의 음모를 하루속히 분쇄하여 친미 통일을 이룩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참 딱합니다. 이 나라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방송으로 미국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우리마저 그러면 안 됩니다.

 

옛날 옛날에 나는 국민 된 도리로 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초딩이 아니었죠. 당당한 국민학생이 된 거였죠. 국민 된 도리를 배우는.

금수강산 아름다운 나라, 하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의연금은 아름다운 겁니다. 의연금은 내야 합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안 내면 간첩이다. 또 그렇게 배웠습니다.

조세 의무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한 나라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세금은 국민의 의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내 부모가 내는 세금이 어느 정도인지,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세금이 적절한 것인지 어떤지를 난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나라는 후진국이라고 했습니다. 뭔가 많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에너지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고 학교도 부족하고 힘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만 생기면 나라에선 뭔가를 국민들에게 걷어 갔습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국가의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천재지변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추가로 국민들이 돈을 좀 더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매년 방위성금이란 걸 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무기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낡은 무기도 교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국가의 예산 가운데 방위비가 가장 비중이 높다고 했습니다. 방위비만 줄일 수 있으면 다른 분야가 훨씬 좋아질 거라고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냄새나는 김치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학교에서 급식을 받아먹을 수 있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밥까지 주다니. 그러나 방위비는 줄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분단국가가 지불해야 할 당연한 대가라고 했습니다. 분단이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통일만 되면 과도한 국방비 지출을 줄여서 그 돈을 경제 발전에 쓰면 금방 중진국이 되고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쪽발이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의문은 남는 법.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국가 예산 중에 국방비의 비중이 제일 높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그게 문제야.”

“국가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세워진다고 하셨죠?”

“그야 물론 당연하지.”

“그럼 국방비랑 방위비는 다른 건가요?”

“아니지. 그게 그거지. 그 말이 그 말이지. 같은 말이란다.”

“선생님, 그렇다면 방위비는 이미 국민들이 세금으로 낸 거잖아요? 그런데 왜 또 방위비를 내야 하죠?”

“그건…….”

“…….”

“너 이리 나와! 말이 많구나. 우리나란 뭐든지 부족한 나라라고 했지?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되냐? 국가란 것도 그런 거다. 국가 예산도 쓰다 보면 원래의 계획대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 모자랄 때도 있고 남을 때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모자라면 더 걷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러면 남을 때는 돌려주나요?’

그 아이를 대신해서 나는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습니다. 그럴 땐 참는 게 제일입니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다! 뭐, 강제로 내라는 게 아니다. 성금이란 모름지기 정성껏 내면 되는 거지. 정성으로 내는 돈 아니냐? 하지만 편의상 우리 반은 백 원씩 내기로 했다.”

‘누가?’

“계산하기도 편하고, 또 누군 많이 내고 또 누군 적게 내면 서로 위화감이 생기니까 공평하게 내는 게 좋지. 민주적으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 봐야겠지만 시급한 일이니 내가 일단 결정했다. 잘 따라 주기 바란다.”

‘아니요. 백 원이면 새로 나온 라면이 몇 갠데?’

솔직히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부족한 학용품이나 군것질거리라도 사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번엔 최신 전투기를 좀 사 와야 한다고 한다. 북괴의 공군력이 우리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우린 최신의 전투기를 구입해서 수적으로 우세한 적의 공군력을 압도해야 한다. 성의껏 알아서들 내면 되겠지만 그래도 공평해야 되니까, 안 내는 사람은 한 달간 화장실 청소다. 알겠지?”

그 후 한동안 팬텀기가 부지런히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방위성금으로 구입한 거라고 했습니다. 든든했습니다. 성금의 힘은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성금은 마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참여와 액수가 중요한 것이란 걸 배웠습니다. 알아서 하라고 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다. 아는 만큼 무서워집니다.

다음엔 탱크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6?25 땐 그놈의 탱크가 한 대도 없어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갔다고 했습니다. 무척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설움을 다시는 당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엔 군함도 교체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고 배웠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해군력이 증강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계는 사람 머리와는 달라서 쓰면 쓸수록 낡고 못쓰게 된다고 배웠습니다. 제때에 바꿔 주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배웠습니다.

성금의 힘은 놀랍고 무서웠습니다.

 

여름철 장마 때가 되면 해마다 어딘가에선 홍수가 나는 모양이었습니다. 개 돼지 닭들이 떠내려가고 집과 사람마저 떠내려갔습니다. 비 피해로 어렵게 된 사람들을 수재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수재민은 어렵게 된 사람들이니 도와줘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수재민을 도와주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라엔 그런 식으로 갑자기 쓸 돈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유식한 말로 예산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말했습니다.

“이번에 내야 할 돈은 수재 의연금이다. 의연금이란 자선이나 공익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내는 돈을 말한다. 그러니까 수재 의연금은 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돈을 말한다. 액수는 정해 주지 않겠다. 하지만 십 원짜리는 좀 그렇고 많을수록 좋겠지?”

의연금, 뭔가 이름부터 의로운 일에 쓸 돈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의심은 남는 법.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자발적으로라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내지 않아도 되는 거죠?”

“음, 물론 그렇지만 남들 다 하는 일에 빠지면 좀 곤란하겠지? 특히나 좋은 일을 하자는데 빠지면 좀 그렇지?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물에 빠진 사람만 하겠냐?”

이쯤 되면 분위기 파악이 좀 되어야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한 학생이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지역엔 수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없는데 왜 또 돈을 걷어야 하는 거죠?”

“우리 지역엔 수재민이 없지만, 저 남쪽 지방에선 난리가 난 모양이다.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말이 많냐? 이리 나와라.”

그렇게 수재 의연금은 무조건 내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수재와 같은 천재지변은 불시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 예산으로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홍수는 해마다 일어났고 그에 따라서 수재 의연금도 해마다 정기적으로 걷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엔 국민이 꼭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남들 다 하는 일에 혼자 빠지려는 짓은 아주 좋지 않은 버릇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나라도 나라지만 부족한 국민들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불우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불우 이웃 중에는 부모가 없어서 살기 힘든 아이들, 자식이 없어서 먹고살기 힘든 노인들, 남편이 없어서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부인들, 부인이 없어서 가정 살림을 못하는 남편들, 부모도 있고 자식도 다 있지만 원래 가난해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 원래는 잘살았지만 갑자기 사업이 망해서 어렵게 된 사람들,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된 사람들, 전쟁 상이용사 등등. 불우 이웃이 무척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라에선 신경 쓸 곳이 너무 많아서 그들을 잘 돌봐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라는 무척 바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국민들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일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은 것이 국가라고 배웠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오래된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어차피 나라나 나라님은 워낙 바쁘기 때문에 불우 이웃들한테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럴 땐 역시 한가한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이라고 했습니다. 성금이란 이미 정성껏 꼭 내야 하는 돈으로 배웠습니다. 이를 의심하면 공산당이요 빨갱이고 비국민이라고 배웠습니다.

불우 이웃 돕기 문제를 놓고 학교 선생님들이 꽤나 고민한 모양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돕는 건 돕는 거고, 자체적으로 우리 주변의 불우 이웃을 도와주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돈은 돈대로 모으고 이번엔 쌀까지 모았습니다. 먹고살기 힘든 주변의 학우들을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은 중앙으로 보내고 쌀은 주변의 불우 학생들을 돕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쌀도 모았습니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 사이엔 언제나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런 것도 살다 보니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어떻게 알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불우 이웃이 필요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진 신고를 받았습니다. 신통치 않았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불우 학생이라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엔 주변의 불우 학생을 추천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못해 몇 명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상당히 미안하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우리 반에서도 한 학생에게 쌀 서너 말이 전달됐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우 이웃을 도왔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그 쌀을 전달 받은 학생과 그 가족들은 별로 기뻐하지도 않았습니다. 기필코 그 쌀을 주겠다면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는 두겠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뿌듯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불우 이웃을 도울 수 있다니!

그 후 그 쌀을 받은 학생이 동네 가게에서 그 쌀을 빵과 라면으로 바꿔 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너무 쌀밥만 먹느라 식상해서 간식거리가 필요하다고 하더랍니다.

불우 이웃은 밥만 먹느라 지겨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내가 낸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이 우리나라 간식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불우 이웃을 그런 식으로만 도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 안에도 교문 밖에도 동네에도 불우 이웃은 많았습니다.

“돈 좀 있냐? 이 선배가 점심을 굶었다.”

“도서실(만화방) 좀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 어쩌겠냐, 너희들이 좀 도와줘야지.”

뭐 이런 식으로 후배나 친구들의 성금을 강요하는 불우 선배나 불우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들도 다 우리가 돌봐야 할 불우 이웃들이었습니다. 성의를 표시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우해지고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습니다. 불우 이웃 돕기 성금, 그것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불우 이웃이 더 많아졌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불우 이웃은 더더욱 많아졌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겨울이 되면 군부대로 위문을 갔습니다. 그곳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로 고생하시는 국군 장병 아저씨들이 있었습니다.

위문을 가려면 그냥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위문품이란 게 있어야 했습니다. 위문편지도 썼습니다. 편지야 그냥 쓰면 되지만 위문품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위문금을 걷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나라가 부족한 것이 많다 보니 군인들도 가난하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군인들은 부족한 것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하고 입을 것도 부족하고, 총도 부족하고 무기도 부족하고(그래서 방위성금을 모아서 무기도 사 줬잖아요. 아시죠?). 이번엔 먹을 거, 입을 거를 사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족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문화시설이 빈약한 나라의 군인들을 위해서 읽을거리도 보내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열심히 편지도 썼습니다. 작년에 뭐라고 썼는지 잊어 먹었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기분으로 썼지만 늘 그 말이 그 말이었습니다. 알게 뭡니까? 위문편지를 보낸 건지 밑씻개용 휴지를 보낸 건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종이들이 유용하게 쓰였을 거라는 사실만은 확신합니다. 부대엔 부족한 것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땔감도 부족하고 화장실 휴지도 부족하고 기타 등등.

부족한 나라의 군인들에게 정작 부족한 것은 그런 것들만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엔 무엇보다도 여자가 부족했습니다. 시커먼 사내들만이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부족한 나라의 부족한 군인들은 위문품보다 위문 온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똑같이 시커먼 남학생들보다는 그들의 누나와 여선생님들한테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같이 간 여학생이나 여선생님들을 위문품으로 남겨 두고 올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집에 있는 누나를 위문품으로 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의 부족한 것이 많은 군인들은 할 수 없이 건빵에 정력 감퇴제를 넣어 먹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의 부족한 것이 많은 군인들에게도 정력만은 부족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엔 결핵 환자도 많다고 했습니다. 나라의 힘만으론 역시 뭔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뭔가를 사라고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실이라고 했습니다. 그 실에는 결핵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약값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부칠 때 우표 옆에 붙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우표 대신 붙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표도 붙이고 실도 붙이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폼이 나는 거라고 했습니다. 실을 써먹으려면 크리스마스카드를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쉬는 날이니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카드를 써서 보낼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끼리 다 아는 처지에. 할 수 없이 선생님은 자기한테 보내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생님한테 크리스마스실이 붙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어쩌다 돕는 것은 진정으로 돕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때가 되면 정기적으로 각종 성금을 걷었습니다. 나라가 부족한 것이 무척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배우는 만큼 나는 자랐습니다. 해마다 해마다 그 만큼씩 자랐습니다. 자라는 만큼 내야 할 성금의 액수도 많아졌습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집에서도 아버지나 어머니들이 똑같은 성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누나나 형님들도 나랑 똑같이 냈습니다. 그것이 이중 과센지 삼중 과센지도 몰랐습니다. 의심이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배웠습니다. 나라가 워낙 부족한 것이 많다고 배웠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의 대학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불만의 내용은 역시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서관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교수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실험실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시민 정신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주체 의식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나라님이 된 인간은 욕심이 많다고 했습니다. 부인과 함께 나랏돈을 긁어모으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습니다.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서 나랏돈을 모두 긁어모으느라 정신이 없다고들 했습니다. 원래 나라님은 바쁘다고 배웠습니다. 나라님이 돈이 많으면 나라도 국민도 자연히 돈이 많아지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수준을 의심받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나라님이 살인마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살인마가 나라님이 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나라님이 군인 출신이라고 하더니 어느 전쟁에서 적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퍼진 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쪽 어딘가에서 일어난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유능한 군인이라는 증거였습니다. 분단국가이자 준전시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선 군인 출신이 나라님이 돼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왕조는 너무 문약해서 나라가 망했다고 배웠습니다. 겨우 오백 년 만에 말이죠. 그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나라에서는 군인 출신 선생님들을 학교마다 보내서 나약한 학생들을 엄하게 훈육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의 대학교에는 열사나 의사들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나라에 뭔가를 요구하다가 자신의 몸을 불사른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라가 부족한 것이 많다고 배웠습니다. 그러한 나라에 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를 위해서 뭔가를 할지언정 국가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은 공산당이나 할 짓이라고 배웠습니다. 감히 나라나 나라님을 향해 행패를 부리듯이 뭔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의 대학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족한 나라와 나라님을 향해 뭔가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이 벌어졌습니다. 심히 송구스러웠습니다. 마지못해 몇 번 따라 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열 받쳐 죽은 열사나 의사들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열사나 의사의 장례비나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한 성금 모집엔 돈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도와줘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배운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에도 나라의 적들은 호시탐탐 우리 국민들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건설부 장관은 적들이 금강산에 어마어마한 댐을 쌓았다가 일시에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금강산댐이 완공되어 일시에 그 댐을 무너뜨리면 서울이 온통 물바다가 된다고 떠들었습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수공을 적들이 준비 중인 모양이었습니다.

건설부 장관에 이어서 국방?통일?문공부 장관도 나서서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거나 믿으려 하지 않는 무식한 국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유명 대학의 교수들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과학적으로 국민들을 이해시키려고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금강산댐의 최대 담수 능력과 그 물을 일시에 방류했을 경우 서울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 예상되는 침수 지역 및 그 규모 등등을 그들만의 수치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은 경악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20층 이하의 모든 건물들이 물에 잠긴다는 결론 앞에 국민들은 이미 반 이상 정신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피난 보따리를 싸는 사람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슈퍼의 라면이 동이 나기도 했습니다. 생필품이나 비상 약품을 사들이느라 생필품 회사와 제약 회사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은 연일 계속해서 금강산댐에 대한 특집 기사나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결론은 자연히 우리 쪽 대응 방안은 뭐냐는 것으로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찌감치 국난에 대비해 온 나라답게 이미 준비된 답은 있었습니다. 결론은 대응 댐을 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안심했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이 국민들이 안도하기 시작하자 이번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에서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응 댐을 쌓으면 되지만 대응 댐을 쌓을 돈이 나라엔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아직도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예상치 못할 일에 쓸 만한 예산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방송이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대응 댐을 ‘평화의 댐’이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전 국민 성금 모으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성금 모으기 운동을 하느라 방송사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했습니다. 국민들이 좋아하던 일일 연속극도 중단했습니다. 쇼 프로그램도 중단했습니다. 코미디 프로그램도 중단했습니다. 국민들은 도저히 웃을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심각했습니다. 방송사마다 모든 아나운서들을 총동원해서 하루 종일 돈을 받는 장면을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그 후로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를 만나면 지갑을 꺼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직도 가끔 아나운서들이 부자들과 결혼하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그들도 뭔가 부족한 사람들이니까요). 누군가가 예상했던 대로 국민들의 성원은 방송과 더불어 뜨거웠습니다. 우리 민족은 국난을 당하면 더욱 강해진다고 배웠습니다. 정말 그런가 봅니다. 놀라운 일들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계속해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코흘리개들은 코 묻은 돈을 들고 나왔습니다. 자신의 콧물에 빠져 죽기 전에 금강산댐에서 방류한 물에 빠져 죽게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빨 빠진 칠순 먹은 노인들은 이를 해 넣으려고 모아 놓았던 쌈짓돈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빨을 해 넣기도 전에 그 입으로 금강산 물이 들어가게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코흘리개들이 드나들던 동네 구멍가게들과 노인들이 드나들던 동네 치과들이 때 아닌 불황에 빠져들었습니다.

국공립 초·중·고등학교는 서로 경쟁적으로 학생들의 성금을 모아 왔습니다. 사립학교들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대학의 총장들도 학교 홍보 겸 자기 돈처럼 손수 돈을 들고 나왔습니다. 국가 기관은 물론 산업체 단위마다 성금을 모아서 대표들이 역시나 자기 돈처럼 들고 나왔습니다. 애국심은 전국의 마을마다 있는 새마을 부녀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애연가들은 담뱃값을 들고 나왔고 애주가들은 술값을 들고 나왔습니다. 심지어 술집 아가씨들은 팁이나 화대를 들고 나왔습니다. 일찍부터 족보에 있는 얘기들입니다. 감격적인 장면들이 연일 계속해서 그렇게 화면에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금강산댐 물에 빠져 죽기 전에 전 국민들의 감동의 물결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금강산의 어디에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릴 만한 물을 가둬 둘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의심이 들었지만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또 서울이 금강산 바로 아래에 있는 도시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삽시간에 수십 층 높이까지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역시 공식적인 질문 사항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한강에 댐이 하나도 없었던가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말 많고 의심이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배웠습니다. 이럴 땐 그저 잠자코 있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평화의 댐 얘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군 입대를 한 후배한테서 평화의 댐을 쌓다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 그 엄청난 일을 거짓말처럼 잊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저도 모릅니다. 아무튼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휴가를 나왔다는 후배가 그 얘기를 꺼냈습니다. 자신이 그 평화의 댐을 쌓다가 나왔다고 말이지요.

“평화의 댐을 왜 군인들이 쌓고 있냐?”

전방의 군인들은 물을 막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휴전선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래.”

“돈은 그때 국민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아 줬잖아?”

“글쎄…… 내가 알 게 뭐야.”

정부는 나중에 평화의 댐 사업비가 총 1,509억 원이었으며, 그 가운데 국민 성금이 733억 원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길이가 410미터, 높이 80미터, 만수위 221.5미터, 저수량 5억9,000만 톤의 저수 용량을 자랑한다고 했으나 아직 본 적은 없었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는 세상이 된 후에도 북쪽의 금강산댐 얘기를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금강산 물이 참 좋다는 말만 했습니다.

한쪽에선 나라님과 그 일족들이 국민 성금을 삥땅쳤다고 했지만 너무 속된 말이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일찍이 전 국민이 그토록 열과 성의를 다해 성금을 모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 성금이 개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고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나라님이었던 할아버지가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마당에 코흘리개들의 코 묻은 돈까지 나라님이 긁어 갔다고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에선 대통령을 한 사람도 부족한 것이 많은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다 보니 여전히 소문만 무성합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군인이었던 동창들끼리 사이좋게 권력을 주고받던 나라님들은 나란히 감옥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군부 독재 시대가 갔다고 했습니다. ‘문민정부’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군인 신분이었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것도 같았습니다.

새로 나라님이 된 분은 머릿속이 비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매일 뜀박질만 한다고 했습니다. 나라님의 첫 일성이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는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갑자기 헬스클럽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의 나라님답게 나라님의 머리도 부족한 것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몸뚱이가 재산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의 나라님답게 나라님께선 정말 매일 아침 뜀박질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랏일은 나라님의 아드님이 대신 뒤에서 열심히 한다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누가 하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또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그 나라님의 임기 말년에 방송사 카메라는 텅 빈 나라 은행의 금고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국가 부도 위기 사태라고 했습니다. 진즉에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IMF 신탁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다국적 자본의 음모라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수십 년 간 누적되어 온 부정부패의 결과라고도 했습니다. 구조적인 모순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렸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샴페인과 금고가 빈 것이 무슨 상관인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샴페인 값으로 너무 많은 외화를 지불했다는 소리일까요?

나라 은행의 금고에 외국 돈이 얼마나 있었는지, 정말 그 안에 돈이 있긴 있었던 것인지, 있었으면 얼마나 있었던 것인지 알 바는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그 돈이 내 돈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연일 국가 부도가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괜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문민정부 다음에 들어선 정부는 자신들의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고 했습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초상집 분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 거지꼴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원래부터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금고 속에 있던 외국 돈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어차피 외국 돈인데 왜들 그리 난리였는지 모릅니다. 엄청 심각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새로 나라님이 된 할아버지가 더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나라님이 되기 전까지 여러 번 낙방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많이 먹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나라님을 믿고 살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할아버지가 머릿속에 든 것은 많다고 했습니다. 감옥살이를 여러 번 한 모양인데 그동안 그 안에서 책을 많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욕도 많이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욕 많이 먹은 것이 자랑도 아니고 힘이 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나라의 살림은 거덜났지, 나라님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실거리지, 정말 심각해 보였습니다. 나라님 옆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돈 빌리러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역사 이래 나라가 국민들을 위해서 뭘 제대로 한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나라나 나라님이 사고를 치면 국민들이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순리라고 배웠습니다. 원래부터 그런 거라고 배웠습니다.

‘뭐가 걱정입니까? 국민이 있는데.’

이번엔 정말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금붙이들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랏빚을 갚겠다고 집집마다 꼭꼭 숨겨 놓았던 금붙이들을 가지고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금 모으기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먼저 제안한 것인지 모릅니다. 국가 부도 사태를 이용해 금융 기관에서 금을 독점하기 위해 내놓은 음모인지, 국가 기관에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수습 방안인지, 금방 주인들의 상술인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쉬지 않고 금붙이들을 들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아이 백일 반지, 돌 반지, 결혼반지, 목걸이, 금수저, 은수저, 귀고리, 팔찌, 할머니의 금비녀 하다못해 금이빨을 뽑아 내놓겠다는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도둑들도 찾지 못하게 숨겨 놓았던 전국의 금붙이들이 은행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틈을 이용해 금을 싼값에 사들이는 얌체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금붙이들을 사심 없이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밀수해다가 숨겨 놓았던 금덩이들을 내놓는 통 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여자도 얼마 되지 않는 아이들의 돌 반지와 우리 부부의 결혼식 예물 반지를 들고 미친 듯이 달려 나갔습니다. 난리를 많이 겪은 나라의 국민답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집에 금붙이 좀 남겨놓아야 된다는 시아버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는 콧방귀를 뀌며 달려 나갔습니다. 그만두라고 했다가 나는 그만 이기적인 인간으로 몰렸습니다.

이 기상천외한 광경을 촬영하기 위해 외국의 언론과 방송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이 감동적인 장면들이 외국 언론과 방송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덕분이었는지 1년 만에 IMF 사태에서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은 쇼였을 뿐 IMF 사태를 극복하는데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소문도 들렸습니다. 사라진 기념 반지들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잊기로 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뭐 그럴 수도 있죠.’

부족한 것이 워낙 많은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착하기만 할까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인명 피해가 1만 명에 육박한다고 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넘도록 미국의 연방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휴가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국무 장관도 휴가 중이라고 했습니다. 피해액은 천억 달러를 넘어선다고 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에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도로 표지판엔 시체가 감겨져 있으며, 아직도 물에 잠긴 도시에선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약탈과 살인?강간이 벌어지고 있으며, 수재민을 모아 놓은 대피소에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경찰관들의 삼분의 일은 도망가고 남아 있는 경찰관들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경찰관들이 손수 자살 시범을 보이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분명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 겁니다. 나날이 반미주의자들의 선전?선동이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설마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강 건너 땅을 다 팔아서라도 성금을 모아서 달려갈 겁니다. 미국 소 먹고 힘내서 미친 듯이 달려갔을 겁니다. 거짓말이니까 아직 조용하겠지요.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재난을 위해 의연금을 미리 걷어 놓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미국, 사랑해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나라는 여전히 당신의 따듯한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의 주머닛돈도 이 나라는 무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성금, 퍼 주기가 절대 아닙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태풍 나비가 북상중입니다. 나비의 날갯짓은 곧잘 태풍으로 변하곤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지하철에 불이 날 수도 있고 산이나 절에도 불이 날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아시죠? 촛불? 아니죠! 성금? 그렇죠!!!  《문장웹진 9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