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숨결

 

 

김정남

 

 

 

 

1

 

붓을 잡은 손이 자꾸 곱아든다. 장갑을 끼면 터치감이 좋지 않아서 맨손으로 할 수밖에 없다. 차가운 대기 속으로 희부연 빛살들이 시름시름 쏟아진다. 하루 중에 제일 싫은 시간이다.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가는 빛이 좋을 리 없다. 서쪽 담장에서 알록달록한 꽃밭을 그리던 주(周) 씨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사실 이 일도 그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판타지 월드’라는 놀이 공원에 채색 작업을 시작한 것은 연초부터다. 이월 중순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일시불로 돈을 받기로 했다.  

“거의 다 그렸네요? 카우보이들이 뛰쳐나오겠어요.”

그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회전목마 기구에 카우보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는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어린아이들이 카우보이를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정들이 나오는 환상적인 동화 속 풍경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놀이 공원 사장에게 말했지만, 그는 카우보이를 고집했다. 그런 구시대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니 슬슬 망해 가고 있는 거다.

“왕년의 솜씨 나오네. 여기 이 사람, 클린트 이스트우드 맞죠?”

그가 이지렁스런 표정으로 그림 속의 남자를 가리킨다.

“그래, 황야의 무법자일세. 됐나?”

내가 부러 큰소리를 지른다.

“왜 또 그러세요? 천(千) 부장님!”

그는 시너 냄새로 가득 찬 극장 미술부에서 일했던 호시절의 호칭까지 붙여 가며, 사람을 어르듯 추켜세운다.

“그놈의 부장 소리 좀 집어치울 수 없겠나?”

사실, 그도 인근 극장의 간판장이였다. 그러니 누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성냥개비를 입에 문 주윤발의 모습을 그려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면, 그는 단단한 근육질의 실베스터 스텔론으로 인정을 받았다. 〈영웅본색〉에서는 내가 이겼고 〈람보〉에서는 그가 이겼다는 얘기다.

그때만 하더라도 극장 간판은 길거리에 덕지덕지 붙은 영화 벽보와 함께 영화 홍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선전물이었다. 적지 않은 임금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개봉관에서 간판을 그린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사람들이 ‘뺑끼질장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도 얼굴을 잘 그려 달라며 봉투를 찔러 주던 시절이었다.

“그나저나 이 일을 빨리 마무리해야 할 텐데…….”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내가 말했다.

“이제 한 이틀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요? 그럼 돈 받고 어디 좀 가 있지요, 뭐.”

그도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지만 내심 불안한 눈치다.

“그래, 어디 가면 뭘 못 해먹고 살겠나. 내 아들이야 원양어선 타니까 문제없고, 당신 아내는 웬만한 건 까딱도 안 하니까 괜찮겠고, 문제는 박(朴) 씨야. 그 사람 처와 대학생이라는 딸내미는 어떻게 해!”

“별걱정 다 해주시는군요. 박 씨는 부장님 조수였다고 감싸고 난 걱정도 안 된다 이 말이에요? 듣자듣자 하니까 서운하네요. 내 아내도 다방에서 굴러먹고 있지만 마음은 약해요. 왜 그래요?”

그가 부러 큰소리를 낸다.

“알았네, 알았어. 어서 일하세. 오늘 해도 벌써 꼴딱이야.”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얻어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저 멀리 박 씨는 ‘슈퍼 윙스’라는 회전 놀이 기구에 별똥별을 그려 넣고 있다. 농지거리 한마디도 던지지 않고 하루 종일 은하수 속에 파묻혀 있다. 그도 애써 조마조마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거다.

극장에서 미술부를 폐쇄하자, 박 씨는 화양리의 한 성인 극장에서 간판을 그렸다. 그는 칠 년 만에 내 그늘에서 벗어나, 겨우 주인공의 얼굴에 붓을 댈 수 있었지만, 그가 그린 그림들은 〈젖소부인〉, 〈夜市場〉, 〈정사수표〉 같은 16㎜ 비디오 영화들이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박 씨가 은하수를 등에 지고 허적허적 걸어온다. 야광 안료가 섞여 있는 페인트라서 어둠 속에서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사실 그는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인지라 더 마음이 쓰인다.  

“부장님, 오늘은 이만하시고 저희 식당에서 한잔 하시죠.”

그가 몸을 숙여 내게 말한다.

“거기도 장사하는 데 아닌가. 이렇게 만날 신세지는 법이 어데 있나? 오늘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아닙니다. 안 오시면 제 아내가 오히려 서운하게 생각합니다.”

주 씨도 서둘러 붓을 놓고 다가와 한마디 거든다.

“술 먹고 돈 내면 되잖아. 맞지?”

그러자 박 씨는 헤식게 웃으며 연방 손을 내젓는다. 주 씨는 귀가 밝아서 돈이 되는 일감을 잘도 물어 온다. 그러나 자기보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박 씨에게 슬쩍슬쩍 말을 놓는 본새가 밉살스럽다. 자기는 정식 간판장이였지만, 박 씨는 내 조수에 불과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페인트 뚜껑을 닫으며 말한다.  

“어디든 가세.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해!”

 

 

2

 

곳곳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면서 단관 극장들은 날개관(손님이 안 오는 변두리 극장)이 되어 갔고, 이미 극장 간판은 모두 실사 간판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영화배우와 흡사한 그림보다는 그와 똑같은 사진을 원했다. 물론 극장 입장에서도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하면 제작비가 우선 싸기 때문에 간판장이를 둬 가며 손간판을 그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영화의 장르와 성격에 맞는 다양한 색감과 세심한 붓터치를 요구했던 장이의 공력은 하루아침에 췌물로 전락했다. 영사기사도 매표원도 청소부 아줌마도 모두 떠났다.

성인 극장에서마저 쫓겨난 박 씨는 나와 함께 아파트 외벽에 매달렸다. 아파트 단지는 모두 네 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사계절에 맞게 벽화를 그려야 했다. 그가 101동과 102동의 봄과 여름 테마를, 내가 103동과 104동의 가을과 겨울 테마를 맡기로 했다. 화사한 채색으로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은 오히려 쉽지 않다. 미묘한 색감과 여백을 잘 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극장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나는 가을 단풍잎에 진홍색을 입히고 있었다. 근 육 년 만이었다. 그동안 극장은 시사회 전용 극장으로 이용되면서 일주일에 두 편씩 영화가 상영되었다고 했다. 사장은 간판을 그려 달라고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극장은 그런대로 운영이 되지만,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극장이 헐리게 됐다며, 마지막으로 추억의 영화를 상영하는 이벤트를 열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옛날식 손간판이 필요하다고.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다리 사이로 한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영화는 〈더티댄싱〉.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개봉한 이 영화는 패트릭 스웨이지의 현란한 춤 솜씨만큼이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다. 어느 극장은 밀려드는 관객 때문에 스크린 앞 무대를 뜯어 의자를 놓을 정도였다. 극장 앞에 뱀처럼 길게 줄을 서야 했어도 사람들은 모두 영화를 보기 위한 당연한 노력으로 생각했다. 청바지 밑단을 좁게 줄여 접어 입는 것이 유행했던 것도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베이비(제니퍼 그레이) 때문이었다. 사장은 바로 이 영화의 간판을 그려 달라고 했다. 아파트 벽화 공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다행히 한 달의 시간이 있었다. 작업 장소도 내가 일하던 미술부 작업실을 내주기로 했고 박 씨도 얘기를 전해 듣고는 명작을 하나 만들어 보자며 나섰다.

나는 박 씨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미술실에는 시너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단 육 년 동안의 시간이 지난 삼십 년의 시간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 방 안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그렸던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의 간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병헌과 이은주의 얼굴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내 마지막 그림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빗자루를 들고 구석구석 거미줄과 먼지를 털어 내고 있을 때, 박 씨는 그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 한쪽에 겹겹이 세워져 있던 간판 위에 흰 페인트를 입히고 있었다. 습관이란 그만큼 무서운 거였다.

물감은 일곱 가지 색깔의 오프셋 잉크에 시너와 자동차 오일을 섞어 만든다. 점성이 강한 자동차 오일 때문에 물감이 잘 흘러내리지 않고 변색과 탈색도 막을 수 있다. 이 비법은 이 바닥에서 내가 처음 개발한 것이었다. 다양한 색감을 나타낼 수 없는 유성 페인트는 이후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당시 주 씨에게만 알려 준 비방이 한 달 사이에 장안의 모든 간판장이들에게 퍼져 나갔다.

가로 3m, 세로 2.4m의 간판 여덟 개를 이어 붙여 그림을 완성하는 대작업이었다. 이처럼 큰 화면에 성인 남자의 머리통만 한 눈동자, 선키에 달하는 코를 그려 넣기 위해서는 여느 그림과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안구의 구조나 미세한 안면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잘 알고 있어야 백지 같은 캔버스 안에서 디테일을 구사할 수 있다. 눈동자가 찡하게 아려 오는 것은 단지 시너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댄스 강사인 패트릭 스웨이지가 열일곱 살 소녀인 제니퍼 그레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그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춤추고 있는 장면을 전경화하기로 했다. 그 앞에 필기체로 ‘Dirty Dancing’이라는 타이틀과 “더티댄싱이 돌아왔다”라는 문구를 겹쳐 장식하면 된다. 전체적인 색감은 보라색으로 가되, 수직으로 그러데이션을 주기로 했다.

그림을 스케치할 때는 절대 OHP(overhead projector)를 쓰지 않는다. 그것에 그림을 띄워 놓고 그리면 물론 쉽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실사 간판을 비판할 이유가 서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영화 간판에 불어넣는 장이의 숨결이 중요하다. 그와 나는 이십 년 전 영화와 함께 추억이라는 시간 속으로 속절없이 끌려 들어와 있었다. 붓을 잡은 손이 간판에 처음 붓을 댈 때처럼 떨렸다.

대체로 그 기억이란, 미적지근한 사이다를 팔 것 같은 달동네 구멍가게와 같이 어둡고 음습하고 쾨쾨한 것들이다. 그 시간의 얼룩들이 나에겐 수없이 그렸다 지웠다 했던 극장 간판 속에 얇은 켜로 쌓여 있다. 다음 작업을 위해서 그림 위에 다시 흰 페인트를 덧칠할 때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 금방 간판을 내려야 할 때는, 참을 수 없는 허탈감을 느꼈다. 남기고 기억해야 할 그 무엇도 없는 일회용의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 그러나 나의 그림은, 흐릿한 형광등 아래서 밤낮으로 미싱을 돌려야 했던 수많은 누이들과 검은 분진 속에 파묻혀 매운 눈물을 흘렸던 그 많은 청년들에게는, 구질구질한 생을 잊게 해주는 시네마 천국의 표지판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신전이었던 극장 입구에는 늘 내가 그린 그림이 성화처럼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은 일방적으로 영화를 홍보하는 선전용 그림이 아니었다. 제목조차 가물가물해졌지만, 칠십 년대 한 문예 영화의 간판을 제작하면서 나는 화면 전체를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찬 풍경으로만 제시한 적이 있었다. 사장은 이런 간판을 걸 수 없으니 다시 그리라고 난리를 쳤다. 도대체 극장 간판에서 인물이 빠지는 게 어디 있냐고. 지금 여기가 예술 하는 덴 줄 아느냐고 모멸에 찬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는 내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붓을 내던지고 잠적해 버렸다. 이번엔 사장이 나를 찾아오라고 박 씨에게 야단법석을 떨었고, 나는 간판이 그대로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다시 돌아왔다. 그 뒤로 사장은 내 그림에 대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사 간판의 등장은 이런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고집으로도 꺾을 수 없는, 침침한 미술부 작업실에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말하자면 사장보다 더 크고 힘센 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의 위력은 단관 극장을 단번에 성인 콜라텍이나 실내 골프 연습장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두려운 것이었다.

 

 

3

 

작업은 꼬박 한 주가 걸렸다. 한창때는 일주일에 서너 편의 간판을 그린 적도 있었지만, 아파트 벽화를 마무리하면서 야간에 작업을 했기 때문에 시간이 길어졌다. 개봉에 맞춰 간판을 걸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 앞에 모여들어 디카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느라 장사진을 이루었다. 티켓 가격도 개봉 당시의 가격 그대로 삼천이백 원을 받았고, 극장 로비에는 추억의 영화 음악을 틀어 주었다. 나는 로비를 서성거리며 마치 과거의 시간 속을 꿈결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박제화 된 사물처럼 여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판도 포스터도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과거를 재현해 놓은 밀랍 모형들처럼 여겨졌다. 이런 이벤트로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화마에 사라진 문화재를 몇 년에 걸쳐 복원해도 원래의 아우라는 결코 되살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이런 행사조차 던적스럽다. 세상에는 꼭 남아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쇼핑카트를 끌고 대형 마트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다녀야 하는 재래시장은 불편함을 넘어 하나의 구질구질함이다.

사장실에 올라가 그림값이나 받아 돌아가기로 했다.

“사장도 쓸쓸하긴 마찬가질 텐데, 뭐 그리 바빠요?”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박 씨가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이렇게 어슬렁거리는 게 좋소? 사람들은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잠시 잃어버린 자신의 옛날을 찾아온 것에 불과하잖소. 영화도 디지털로 복원된 필름일 뿐이오.”

내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하자 그는 금세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솔직함이 내가 그를 가까이 하는 이유이긴 하지만, 그런 심성으로 살벌한 세상을 견디기엔 늘 힘에 부칠 것이었다. 그것은 어두침침한 극장 미술실 안에서 그를 조수로 부렸던 내 책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식당이나마 억척스럽게 꾸려 가고 있는 그의 아내 덕이었다.

“같이 올라가지. 마지막으로 사장 얼굴이나 보고 헤어지자고.”

내가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바로 그때였다. 주 씨가 어디서 왔는지 희색이 만면해서 나타났다.

“천 부장님! 이게 얼마만이에요.”

그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내 손을 덥석 쥐더니 크게 흔들어댔다. 그는 박 씨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과장된 인사를 건넸다.

“웬일인가?”

내가 짐짓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못 올 데라도 왔습니까? 괜히 또 그러시네? 저도 이쯤 소식은 듣고 삽니다요.”

그도 지지 않고 대거리했다.

“아닐세. 잘 왔네.”

“그림, 죽이던데요? 역시 왕년의 터치파의 거봉이신 형님이 다르긴 달라요?”

그가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과거 간판장이들 사이에 두 개의 유파가 있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선 영화 포스터를 그대로 모사해 내는 ‘보카시파’가 있었다면, 영화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개성적으로 그려내는 ‘터치파’가 존재했다. 당시에도 영화 스틸 사진을 그대로 흉내 낸 보카시 그림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터치 그림들은 여기저기서 간판장이들이 찾아와 그림을 보고 연구하곤 했다. 나는 당시 주 씨가 그린 간판을 보카시 그림이라고 거침없이 비난하기도 했고, 한창때는 그 일을 기화로 주먹다짐까지 오고 갔더랬다. 사실 어설픈 터치 그림을 그리느니 차라리 정교한 보카시 그림이 더 정직한 것이기에, 나는 그를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보카시파의 태두로 인정하는 선에서, 그림을 둘러싼 서로간의 싸움은 정리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얘기예요?”

박 씨가 주 씨를 나무라며 거들고 나섰다.

“아이, 조수는 빠지시고.”

주 씨가 박 씨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이쯤 되면 다시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와서 그런 얘기들이 무슨 소용이요? 그만하시오.”

내가 둘 사이를 막아서며 말했다.

“성인 극장 뺑끼질장이였던 주제에!”

다시 주 씨의 펀치가 박 씨에게 날아들었다. 주 씨가 박 씨를 볼 때마다 으르렁거리는 것은, 박 씨가 나를 대하듯 자신을 선배로서 대우해 주기를 바라지만,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데 대한 아니꼬움 때문일 것이다.  

“그만하라니까. 남의 집 잔치에 와서 이게 무슨 행패요?”

내가 주 씨에게 달려드는 박 씨를 말리며 말했다. 둘은 식식거리며 날카로운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이미 맥이 풀려 있었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으로 쌈질을 할 만한 치기마저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구조 조정으로 밀려난 샐러리맨이라면 억울함이라도 토로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일이 이젠 쓸모없는 직업이 되어 버린 다음에는 어느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박 씨를 끌고 올라가 사장실에서 돈을 받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는 사장실 문을 닫고 돌아서자, 참았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저무는 태양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애썼네. 그만 가세.”

내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코끝이 매워지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간판장이 일은 마음 저편에 묻어 둔 지 오래건만, 괜한 일이 다시금 사람의 심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까지도 주 씨는 극장 로비를 서성이고 있었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그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 긴히 나눌 말이 있는데, 시간 있죠?”

사장에게 받은 돈은 박 씨와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 그것은 나와 함께 나눈 세월의 찌꺼기 같은 것이었다. 나는 불룩해진 안주머니를 어색하게 느끼며 박 씨와 극장 문을 나섰다. 극장 앞에는 아직도 카메라를 눌러대는 구경꾼들로 어수선했다. 어느새 주 씨도 내 옆에 붙어 함께 걸었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술집이 있으니 그리로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또 이렇게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주 씨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구의동의 허름한 고깃집이었다. 그는 돼지비계 누린내가 진동하는 이 식당에 단골인 듯, 사장에게 생 삼겹살을 주문하며 좋은 고기를 내놔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글지글 익어 가는 삼겹살을 집어먹으며 술잔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주 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되놈들 그림이 들어와서 이제 이 짓도 못 해먹겠어요.”

주 씨는 삼각지 화랑거리에서 이발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한때 그 일로 제법 돈을 벌어들였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는 거였다.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허공에 매달려 그림 그리는 건 할 만해 보여요?”

박 씨가 주 씨의 입을 막고 나섰다.

“참 삐딱하게 나오시네. 아까는 내가 미안했소.”

주 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박 씨도 제풀에 웃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는 그들은 이제 하나의 재미가 되어 버렸다.

“변죽 울리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요.”

내가 주 씨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는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백 호짜리 한 점에 이십오만 원이오. 그리시렵니까?”

나와 박 씨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지만 부러 모르는 척했다.

“아시죠? 쫑쫑이 그림.”

‘쫑쫑이 그림’이란 유명 화가의 그림을 위조한 소위 짝퉁 그림을 말한다.

“알고 있소.”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주에 이미 공장도 있어요. 몸만 오시면 됩니다. 짭새들한테 잡히는 거요? 이건 누구도 쉽게 파헤칠 수 없는 점조직이에요. 사실 우리 실력이면 뭐가 진품이고 뭐가 가짠지 알 수도 없을 걸요?”

주 씨는 조곤조곤하게 말을 맺더니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페인트 냄새 속에 인생을 바친 간판장이치고, 이런저런 그림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했던 유년 시절이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미대 진학은커녕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방황해야 했던 청년 시절이 없었던 사람은 없다. 그것은 네 살 무렵부터 곱돌을 들고 강아지나 어머니의 모습을 마룻바닥에 그려대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환쟁이 나부랭이가 되려고 저러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인생의 업은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안겨 오는 것이다. 붓을 들고 있을 때는 나를 잊었기에 충만했지만, 붓을 놓았을 때는 나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 공허했다. 그러니까 간판장이 일을 그만 두어도 붓을 놓을 수 없는 것은 단순한 돈벌이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엇이라도 그리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운명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그 그림이 극장 간판이든, 이발소 그림이든, 쫑쫑이 그림이든 그린다는 운명 앞에서는 모두 하나다. 나의 결론은 이러했고, 나와 박 씨는 파주 공장으로 조용히 거취를 옮겼다.

 

 

4

 

아들이 바다에 나간 건, 아내가 심근경색으로 죽은 이듬해였다. 대학을 포기하고 해군 하사관으로 입대한 아들은, 복무 4년 만에 군복을 벗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가 쓰러졌다. 어떤 예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온 아들이 거실에 엎어져 있는 제 엄마를 발견했다. 부검 결과, 아내의 시신은 사망 시점으로부터 만 하루가 지나 있었다. 아내는 병원 침대 신세도 지지 않고 곧바로 영안실로 갔다. 언제나 어두침침한 미술실에 처박혀 있었던 남편과 늘 밖으로만 돌았던 아들은 아내의 단말마의 비명조차도 듣지 못했다. 아내의 영혼은 차갑게 버려진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며 얼마나 서러웠을까. 아내가 죽자 아들은 아예 땅에 뿌리를 두지 않으려는 듯 바다로 떠났다.

아들이 이슥한 시간에 극장 미술실로 찾아왔다. 한 번도 아비를 찾지 않았던 아이였다. 나는 마치 아들이 혼령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원양어선을 타게 됐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아들에게 몸조심해라, 언제 다시 들어오니, 같은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런 자격조차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들은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아비 앞에서도 오연했다. 아마 어미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닌 체하지만 속은 새순처럼 여린 아이다. 이미 모든 결심이 선 듯했기에 나는 말없이 아들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줄 뿐이었다.

놀이 공원 채색 작업은 곧 끝날 것이다. 일을 빨리 마쳐야 돈을 받고 각자 어디든 푹 잠겨 있을 수 있다. 원양어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는 아들처럼 아예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참에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곳에서 몇 년 간 머물다 왔으면 싶다. 혹시 거기서는 극장 간판을 다시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쫑쫑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이 컸다는 얘기다. 제대로 펼쳐 나가지 못한 인생의 회한은 이런 그림을 그리면서 더 크게 느껴졌다. 이중섭, 천경자, 박수근 등 일가를 이룬 화가들의 그림을 베낄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이 불쑥불쑥 찾아와 가슴패기를 콕콕 찔렀다. 그러면서도 물감만 좋으면 거의 분간이 가지 않는 또 하나의 진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옹색한 자만심도 있었다. 이 두 가지 감정 사이를 오가며 나는 지쳐 갔다. 그 즈음 우리의 점조직 중 한 곳이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불안했다. 이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내걸린 박수근의 〈귀가〉를 보았을 때의 당혹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긴장감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린 위조 그림이었다. 잘못했다가는 오랫동안 콩밥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 씨에게 일을 그만두고 공장 문을 닫자고 말했다.

아파트 외벽이나 건설 현장 가림막에 그림을 그리거나 이런저런 리모델링 현장에서 붓질을 하며, 위조 미술품 수사가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사동 미술품 중간상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또 날아들었다. 수사팀의 끈질긴 미행과 휴대폰 추적을 통해 잡아들였다고 했다. 경찰은 그가 거래한 위조 그림이 진품의 가격으로 따졌을 때 시가 천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그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몇 단계의 고리를 풀면 우리에게까지 수사망이 좁혀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놀이 공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우리는 늘 그랬듯이 박 씨의 식당을 향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을 향하는 나란한 발걸음은 모두 터벅터벅 맥없이 풀려 있다. 파주에 있을 때, 자신의 아내가 경영하는 다방의 여종업원을 공장에까지 불러들여 희희낙락할 만큼, 모든 일을 장난처럼 여기던 주 씨도 오늘은 왠지 허우룩한 표정이다. 다방에서 제일 어리고 예쁘다는 ‘소희’라는 이름의 아가씨는 하루 종일 우리와 발가벗고 놀았다. 그때 나는 여러 명의 사내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여자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여자는 몸 전체가 성기였다. 그녀는 아프다고 소리치면서도 우리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결국 주 씨는 아내에게 이 사실이 들통이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갔더랬다.

버스 정류장에는 그때 주 씨의 아내로부터 인간 망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세 명의 짐승이 우두커니 서 있다. 우리들은 소리 없이 미쳐 가고 있는 중이다. 푸른 물로 둘러싸인 지구의 한 모퉁이를 항해하고 있는 나의 아들도, 환쟁이 아버지를 따라 만화학과에 진학한 박 씨의 딸도, 이런 부끄러운 이름의 아버지를 알고 있을까.

순간, 주 씨의 휴대폰이 울린다. 정신 사나운 트로트 벨 소리다. 그의 얼굴이 순간 굳어 버린다. 무슨 일인가. 전화를 마친 그는 휴대폰 배터리를 빼서 바닥에 버린다.

“휴대폰 꺼요. 당장 튑시다. 다방에 형사가 찾아왔었대요. 지금 소희가 전화한 거예요.”

나는 머릿속이 멍해진다. 다만 소희가 아직도 그 다방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나는 박 씨와 같이 서둘러 휴대폰을 끈다.

“놀이 공원 뺑끼질 값은 어떻게 하지?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박 씨가 나선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검거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돈이다. 그만큼 아내와 딸을 둔 가장으로서 절박하다는 말이다.

“그런 건 자네 아내나 내 마누라 시키면 될 거 아닌가!”

주 씨가 냅다 큰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이 덧붙인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하면 우리가 어디 있는지 다 알아. 어서 도망칩시다. 가능하면 버스를 타고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겁니다. 난 먼저 갑니다.”

주 씨가 서둘러 말을 마치고 사람들 사이에 파묻힌다. 나와 박 씨도 함께 있어서는 안 된다.

“집엔 나중에 알리고 우선 몸부터 피해요. 내가 또 연락할게.”

내가 박 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한다. 그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린다.

“다 잘 될 거야. 어서 가!”

내가 다시 힘주어 말한다.

그도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가슴속이 휑하니 빈 듯하다. 아! 드디어 나는 내 몸 하나 둘 곳 없는 존재로 완성된 것이다. 이게 내 인생이라는 그림의 화룡점정이다. 마음이 자꾸 초조해진다.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멈춰 선다. 버스는 흰 불빛을 쏟아내며 자신의 옆구리를 찢어 사람들을 토해 낸다. 나는 번호도 보지 않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탄다. 이젠, 정처 없는 사람이니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버스 안은 제법 만원이다. 지금 이들은 모두 집으로, 약속 장소로 가고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아들이 몬테비데오 항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전해지는 아들의 음성에는 짠 소금기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거기엔 정처 없는 자에게 드리운 외로움의 무게가 얹혀 있었으며 엷은 설움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아버지, 이제 힘든 일 하지 마세요. 제가 돈도 좀 부쳐 드릴게요. 눈앞이 자꾸 일그러지며 꾸역꾸역 뜨거운 게 밀려 나왔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스스로 철든 아이다. 아들의 외로움을 보듬어 주지 못했다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지구의 반대편에도 밤이 찾아오면 아들은 무엇을 할까. 그 도시 어디쯤에서 까무잡잡한 이국의 여인을 사고 외로운 잠을 청할까.

벽에 붙어 있는 노선도를 보니, 버스는 의정부를 향해 가고 있다. 이 좁디좁은 나라의 치안망은 후미진 낙도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텐데, 내가 몸을 피해 가는 곳이 서울에서 지척이라니. 차라리 잡혀 버렸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약한 마음이 든다. 주 씨가 잡히지 않았으니, 동업자가 누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거다. 일단 출국 금지령이 내린 것은 아니니까 하루라도 빨리 국내를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일단 관광사에 연락해 단체 관광 비자를 내서 중국으로 떠야겠다. 그 나라는 사람만 빼고 다 가짜라니까, 위조 여권을 만드는 건 식은 죽 먹는 일일 거다. 그럼 아들이 가 있는 남대서양으로 떠날 수도 있을 거다. 어쩌면 몬테비데오의 후미진 홍등가 골목에서 아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피붙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주 씨! 조금만 더 열심히 도망쳐라! 아직은 한없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싱싱한 두 다리가, 생의 숨결을 불어넣는 굵은 붓이 되어 내 생의 그림을 스스로 완성할 수 있도록. 부디부디 부탁해!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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