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자전거




송하춘




1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내비친 건물은 이층짜리 벽돌집이었다. 시멘트 벽돌집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 쳐진 걸 보면, 원래 오래된 낡은 동네가 한 차례 도시 흉내를 낸다고 낸 것이 이런 모양이다. 그나마 가시 울타리는 그 집 한 군데뿐이다. 다른 데는 말짱 다 블록 담장이거나, 가시 철망이거나, 양기와 지붕 집이다. 가시 울타리고, 블록 담장이고 할 것 없이 오월의 붉은 장미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넝쿨져 내리는 꽃줄기마다 정육점 육고기 같은 살점들을 뚝뚝 뱉어 내고, 이런 날일수록 문단속들이나 잘해야 할 텐데, 아닌 게 아니라 탱자나무 골목에서는 방금 정체불명의 두 사내가 수상한 자전거를 끌고 두리번거리며 나오는 것이다. 사람을 태운 것도, 무거운 짐 보따리를 실은 것도 아닌 빈 자전거를, 더구나 사내 둘이서 한 대를 끌어야 할 만큼 그것은 앉을깨보다 짐받이가 더 크고 튼실한 짐바리였다. 한 사내의 새뜻하게 흰 운동화가 유난히 눈에 띠었다. 폴짝 뛰어오르면 담장 위의 장미꽃 넝쿨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그래서 그런지 또 한 사내는 상대적으로 배불뚝이였다. 그들은 나오다가 블록 담장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장미꽃 넝쿨 아래 잠시 어정거렸다. ‘흰 운동화’가 자전거 받침대를 딛고 담장을 뛰어넘는 것이 보였다. ‘배불뚝이’는 곁에서 자전거를 붙잡아 주고 있었다. 흰 운동화가 담장 너머로 사라졌을 때 배불뚝이는 그것을 한쪽으로 치웠다. 그리고 담장 위의 장미꽃 넝쿨을 향해 한껏 자신의 팔을 뻗어 올렸다. 그때 한 소녀가 지나가다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배불뚝이는 소리 나는 쪽을 내려다보았다. 발아래 어린 소녀가 서 있었다.

-응, 너도 하나 꺾어 줄까?

배불뚝이는 친절한 척 반응하였다. 너 누구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이가 너무 어리고 깜찍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녀는 생각했던 것만큼 호락호락한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아저씨, 나쁜 사람이구나!

소녀는 공격적인 언어를 쓰고 있었다. 배불뚝이는 이번에도 부드럽게 다가서는 말을 썼다.

-그래. 아저씨 나쁜 사람이다. 어쩔래?

그리고 그는 소녀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넸다.

-싫어요. 아저씨나 가지세요.

소녀는 팔랑거리며 가던 길을 가 버렸다.

-너 참 웃기는 아이구나!

나풀거리며 달아나는 소녀의 눈앞에 연두색 산자락이 곱게 펼쳐졌다.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골목길 저쪽 끝에서 들렸다. 장미꽃 담장 길을 경계로 산동네는 정확히 음지와 양지처럼 쪼갠 듯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산비탈 위쪽으로 거슬러 갈수록 담장은 높고 기다랗게 뻗쳤으며, 담장 안의 집들은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든 하마들처럼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산비탈 아래쪽은 비닐하우스 촌이었다. 누더기 담요를 덮씌운 하우스와 가난한 슬레이트 지붕들이 어두운 터널처럼 길게 이마를 맞대고, 그러나 거기 사람이 살 만한 집은 없었다. 꿀벌이 잉잉거리는 호박꽃 밭두렁과, 칡넝쿨 잔솔밭 잡초 우거진 푸른 언덕의 산그늘과, 거기 버려진 듯 가로 누워 있는 쓸쓸한 담요 천막집이 또 한 채, 그쯤 어린 소녀의 눈길이 가 닿는 곳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깡마른 누렁이 한 마리가 킁킁거리며 아는 체를 해 주었다.

-무서워.

소녀는 몸을 피하듯 하면서 소년 앞으로 다가갔다.

-괜찮아. 

소년이 소녀를 맞아들이는 표정은 무덤덤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놀기 시작했다.

-엄마가 때려. 왜? 컴퓨터만 한다고. 하지 말지? 하고 싶어. 그럼 하면 될 거 아냐? 엄마가 못하게 하니깐 그치. 그럼 하지 마? 그래도 하고 싶단 말이야.

소년은 소녀와 노는 동안 줄곧 누렁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 곁으로 바싹 다가가고 싶었지만 누렁이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지 않고도 친해지자면 자꾸만 말을 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네 집에 컴퓨터 없니? 없어. 왜? 왜는 왜 왜야, 없으니까 없지. 있으면 네 집에서 놀면 좋은데. 없다니까. 그럼 네 핸드폰 번호는 몇 번이야? 핸드폰도 없어. 나도 없어. 그래서 슬퍼.

소년의 등 뒤로 보랏빛 나팔꽃이 장식처럼 피어 있었다. 소녀는 소년이 나팔꽃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소녀가 스쳐 지나간 장미꽃 담장 아래 아까 그 자리. 거기 배불뚝이는 아직도 장미꽃 꺾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옆의 탱자나무 집 대문은 양철대문이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집안에 사람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벌렁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황급히 뛰쳐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흰 운동화였다.

-야, 자전거 어딨냐? 자전거 좀 몰아 줘.

그는 두 팔로 웬 여인을 안고 있었고, 여인은 신음 섞인 몸부림을 치며 살려 달라고 외쳤다. 배불뚝이는 뜻밖의 사태 앞에 얼떨떨했지만 함께 놀란 척하기는 싫었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는 들어가더니, 웬 여자냐?

그는 빈정대는 말투로 태연을 가장하였다. 흰 운동화는 맞서 노닥거릴 새가 없었다. 우선 사람을 살리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애기야. 애기를 낳는대. 산부인과로 가 줘

배불뚝이도 조금은 눈치를 챈 모양이다. 그도 흰 운동화 편이 되어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로 될까? 가다가 택시를 잡자.

-그래, 뭐든지 타자. 어쨌든 가 줘.

배불뚝이가 앞장서 핸들을 잡았다. 흰 운동화는 짐받이 위로 올라가 여인을 받아 안았다.

-제발, 이러시면 안 돼요. 애 아빠가 와야지요. 금방 올 거예요. 

여인은 거칠게 팔다리를 저으면서도 힘껏 받침대를 움켜쥐었다.

-어디로 가지?

큰 길로 접어들기 전에 배불뚝이는 산부인과를 물었다.

-그냥 가 줘요. 아무데나.

여인은 자신의 산부인과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남편과 통화하겠다고 핸드백을 찾았지만 빈손이었다.

-어머! 내 핸드폰? 핸드폰을 놓고 나왔어요. 어쩌지?

배불뚝이는 자기 핸드폰을 건네줄까 생각했지만 운전 중이어서 참았다. 흰 운동화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손을 쓴다는 건 무리였다. 지금 그들에게, 달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큰길에서 왼쪽으로 산모퉁이를 돌아나가면 곧 번화한 도시가 나온다. 고층아파트, 상가, 단독주택, 빌딩 사이로 바둑판처럼 쭉쭉 뻗어 나간 사차선, 육차선. 팔차선. 가로 세로로 도로를 질주하는 버스와, 승용차와, 택시와, 오가는 사람들과, 밀리는 인파와, 소음 또는 매연의 콘크리트 숲속을 배불뚝이의 자전거는 넘어지지도 않고 용케 잘도 헤쳐 나갔다. 중간에 택시로 바꿔 타는 일은 하지 않았다.



2


마을로부터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종합병원, 산부인과, 분만실 앞에 배불뚝이와 흰 운동화는 잠시 우두커니 서있었다. 방금 산모를 응급실로 들여보냈고, 그러자 그들은 지금 무슨 일을 저질렀던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허탈했다. 귀신에게 홀린 것 같다. 그러니 그 귀신이 어떻게 생겼더라, 모습을 떠올려 보고도 싶고, 아니면 그 귀신을 피해 멀리 달아나야 할 것도 같고, 어쨌든 뭐가 뭔지 모른 채 그들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그들은 일단 자판기가 서 있는 쪽으로 갔다. 가서 오렌지 주스를 한 캔씩 빼 마시면서 망설였다.

-이제 우리는 어떡하지?

배불뚝이가 먼저 정신이 들었던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것은 지금 당장 뭔가를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그만 자리를 뜨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흰 운동화 자신의 생각과도 같은 것이었다. 고무줄 끈을 놓쳤을 때처럼 그들은 지금 무슨 일로든지 긴장하고 싶은데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이다. 흰 운동화가 결국 그 말을 해 버렸다. 

-어떡하긴 뭘? 집에 가야지.

바로 그거였다.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떠나려고 하는데 그래도 왠지 떠나지지가 않는 것이다.

-가고는 싶은데, 괜찮을까?

-뭘? 병원까지 데려다 줬으면 됐지, 죽치고 앉아 애 아빠라도 만나고 싶다는 건가? 아니면? 고추가 달렸을지, 맹추가 달렸을지, 그거라도 알고 가겠다는 거야?

그때 떠났어야 옳았다. 그런데 그 순간 배불뚝이가 보호자를 들먹거린 것이다.

-그래 주면 좋지. 어차피 보호자들이니까.

그것은 흰 운동화로 하여금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아도 되게 할 만큼 큰 충격을 주었다.

-누가? 누가, 누구의 보호자라고?

흰 운동화는 내가 왜 산모의 보호자냐, 그럴 리 없다고 손사래를 저었다. 배불뚝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흰 운동화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흰 운동화 쪽이나, 배불뚝이 쪽이나, 자신이 누군가의 보호자 된 것을 실감할 수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산모가 수술을 받으려면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간호사가 아까 그 말 가운데 서약서를 내밀었을 때 서명은 흰 운동화가 했었다.

-몸에 칼을 대는 일이잖아?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죽는 수가 있거든. 물론 아무 일 없어야지.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장담해? 아들인지, 딸인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산모의 생명이 문제라니까. 무사히 걸어 나올 때까지는 어쨌든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흰 운동화가 마지막 가닥을 잡아 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배불뚝이도 내심 동조하는 것 같았고.

-애 아빠가 올 때까지 만이라도.

흰 운동화가 마침내 쐐기를 박고 있었다. 

-아, 전화 거는 걸 잊었구나. 그 여자, 핸드폰 주고 나올 걸. 통화했을까?

애 아빠를 불러오자는 말이었다.

-안 해도 안다.

-어떻게?

-그건 본능이지. 새끼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아빠가 모르니?

둘이는 참다못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월의 살가운 바람이 두 사람 이마를 매만지듯 스치고 지나갔다. 봄꽃 향기를 담은 햇살이 파닥거리는 날개처럼 투명한데, 그래서 그런지 푸른 잔디밭 동산이고 환자용 벤치고 할 것 없이 쏟아져 나온 환자들로 병원 뜨락은 공원처럼 붐볐다. 배롱나무 잔디밭에 엉덩이를 내렸을 때 흰 운동화는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내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꽤 좋은 편이야. 둥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모르겠어. 그냥, 괜히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저지른 일인데, 그래도 기분은 좋다. 사람은 누구나 나쁜 짓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아까도 봐라. 장미꽃이 그렇게나 탐이 나는데 어떻게 안 꺾고 배기겠니? 꺾다 보니 남의 집까지 들어갔고, 들어가다 보니 산모가 진통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쁜 짓을 하려고 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그런데 오늘은 달랐단 말이다. 신음소리가 어찌나 놀랍던지, 죽는 줄 알았어. 뱃가죽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내 앞에 애기가 쏟아져 나오다니, 얼마나 겁나는 일이냐? 끌어안고 밖으로 나오는 수밖에. 가다가 길바닥에 쏟아 내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걸 내가 해결했단 말이다. 내 힘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기하지? 나도 놀랍다.

-벌써 몇 시간째야? 아이 하나 꺼내는 데에 무슨 시간이 이렇게나 걸린다지? 

이번에는 배불뚝이 쪽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말을 하였다.

-그렇게 걸릴 걸, 아마. 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인데.

둘이는 다시 분만실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3


나팔꽃 싱싱한 기운이 풍선처럼 시들어 간 오후 반나절. 때를 잊은 소년과 소녀는 아직 하우스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에게 하우스는 자기 집이지만, 그것이 소년의 집인지 아닌지, 소녀는 그런 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소년에게 그것은 감추고 싶은 수치이지만, 그것이 그의 수치인지 아닌지조차 소녀는 알지 못하였다. 개를 데리고 이 근처 나팔꽃을 따러 나온 아이, 소녀는 소년을 그런 아이쯤으로 알고 있었다. 소년은 배가 고팠다. 몹시 배가 고팠지만 지금 소년의 배를 채워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누렁이가 끙끙대기 시작한 것은 아까부터였다. 배가 고파 죽겠다는 말을 누렁이는 끙끙거리는 것으로 표현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도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그는 닥치는 대로 물어 버릴지도 모른다. 소년은 소녀가 돌아가   주기만을 기다렸다. 소녀가 돌아가기만 하면 소년은 어디론가 누렁이의 먹을 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소년은 마침내 참을 수 없었다.

-야, 너 집에 안 가니?

그래도 소녀는, 소년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괜찮아. 왜? 집에 가서 숙제 하려고?

바보 같이 소녀는, 소년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소년은 짜증이 났다.

-누렁이 배고파. 누렁이는 배고프면 문단 말이야.

어린 소녀는 마침내 가야 할 줄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서워. 데려다 줘.

-무섭기는? 너 혼자 가.

-탱자나무 울타리 앞에 모르는 아저씨들이 있단 말이야.

-누군데? 

-몰라. 괜히 친절한 척해. 나한테 장미꽃을 꺾어 주고 싶어 했단 말이야.

-받지? 그게 왜 나쁜데?

-모르는 사람이 친절한 척하는 건 나쁜 거잖아? 안 받았어.

-그게 왜 무서워?

-나쁘니깐 무섭지. 그 옆을 지나올 때 아까 내 몸이 오싹했었단 말이야. 무서울 땐 난 가끔씩 그래. 넌 안 그러니?

-나도 그렇긴 해. 그렇지만 난 무서울 땐 언제나 눈을 감아 버려. 귀도 막아. 그리고는 그냥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야.

소녀가 물었다.

-넌 뭐가 무서운데?

-다 무서워. 밤에 깜깜해지면 더 무서워.

-불을 켜. 도깨비나 귀신도 환한 데서는 꼼짝 못한대.

소년이 물었다.

-넌 귀신이 무섭니?

-그럼. 귀신은 진짜 무섭지. 너, 아니? 우리 학교 천정 속에 귀신 사는 거. 원래 우리 학교 자리가 공동묘지였대. 아파트가 생기면서 그걸 싹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학교를 지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 동안 공동묘지를 떠돌던 귀신들이 밤이면 밤마다 몽땅 우리 학교로 모이는 거지. 지금도 비만 오면 온통 귀신들이 복도로 몰려 나와 웅성웅성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다는 거야. 실제로 어떤 여선생은 밤에 학교 갔다가 귀신들한테 잡혀 먹인 적도 있었대.

이번에 소년은 자기가 아는 학교 귀신 이야기를 아는 체하고 싶어 하였다. 

-귀신은 박쥐학교 귀신이 제일 무서워. 교장실 창밖에 있는 비둘기 탑 말인데. 비 오는 날 밤중에 깜깜해지면 그 동네 귀신들이 모두 교장실 앞으로 모인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앉은 비둘기를 괴롭히는 거야. 은하수에 박힌 모래 별들을 모조리 쪼아 먹어라. 교장선생님의 돋보기안경을 몰래 꿀꺽 삼켜 버려라. 마귀할멈 같은 목소리로 사악한 노래를 불러라. 그렇지만 그 비둘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지 뭐냐. 그래서 사악한 노래를 부른다고 부른 것이 그만 너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버렸다. 샘이 난 귀신들은 너무 화가 났고, 그래서 비둘기의 정수리에 박힌 빨간 벼슬을 몽땅 쥐어뜯어 버렸다. 너도 가 봐. 박쥐학교 비둘기는 지금도 벼슬이 없대. 그 대신 비만 오면 밤마다 새빨간 핏물이 줄줄 흐른다는 거야.

-와아 무섭겠다. 그런 데서 어떻게 공부를 하지?

-낮에는 괜찮아. 귀신들은 어두운 곳을 좋아하니까, 날이 밝으면 힘을 못 쓰거든.

-그래? 그 귀신들이 낮에는 다 어디로 간다지?

-어디로 가는 게 아니라, 연기처럼 사라지는 거야. 환한 햇볕 아래서는 바람처럼 흩어졌다가도 어둠이 깃들면 다시 뭉치는 거야. 처음엔 황소눈깔 만해졌다가 나중에 커졌을 때는 눈사람처럼 뚱뚱해진다. 그러다가 다시 먼동이 트면 눈사람은 다시 주먹만 한 황소눈깔이 되고, 황소눈깔은 다시 연기처럼 풀어져서 슬슬슬 허공으로 흩어진다.

-와아, 무섭기는 무섭구나. 그렇게 무서운데 넌 밤에 어떻게 지내니?

-누렁이가 많이 도와준다.

소년은 다시 누렁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누렁이가 없었다면 나는 벌써 죽었다. 깡패 형들이 나를 탐낸다. 저번에도 잡혀가서 한 달이나 삐끼를 살았다. 이런 말 아무한테도 하지 마라. 나 여기 사는 거, 너 말고 아무도 모른다.

-네가 여기 산다고? 이게 네 집이라고?

소녀는 놀란 눈으로 하우스 쪽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밤에 누렁이가 짖기라도 하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켠다. 개 짖는 소리가 나면 거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뜻이거든. 누군가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함부로 못 덤빈다.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산다.

-야, 그만 이야기 하자. 나도 네가 무서워지려고 해.

-괜찮아. 그럴 줄 알았어. 누구나 처음엔 나를 겁내지 않다가도 내가 혼자라는 걸 알면 그때는 겁을 먹더라. 혼자면 왜 무서운지, 그걸 모르겠어. 나는 내가 혼자여서 세상이 무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이기 때문에 나를 무서워하는 그것이 나는 두렵고 외롭다.

-나, 갈래.

이번에 소녀는 진짜 가려는 모양이다. 소녀는 팔랑팔랑 밭두렁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내가 데려다 줄게.

뒤늦게 소년이 그 뒤를 좇아 올라갔다. 멀리 큰길 쪽에서 배불뚝이와 흰 운동화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어린 소녀가 먼저 그들을 발견하고 겁먹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까 그 아저씨다. 저기, 배불뚝이 아저씨, 아까 장미꽃을 꺾어 주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저 아저씨였어. 아까는 혼자였는데 지금은 둘이구나. 유괴범일지도 몰라.

-저 아저씨들이었어? 괜찮아. 저 아저씨들, 이 동네 개장사야. 우리 집에도 왔었다. 누렁이 팔라고.

-조심해. 유괴범들일지도 모른다니까.

-괜찮아. 개를 팔라고는 해도 훔쳐가지는 않아.

두 사내는 골목길 안으로 사라져 갔다. 골목길이 끝나면 등산로로 이어진다고 한다. 오솔길로 이어지는 숲속 어딘가에 개장사의 집은 있을 것이다. 멀리 컹컹컹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거기 아마 개장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을 빠져 나가 고개를 넘을 때 배불뚝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산부인과라고 했다. 애기를 낳았으니 어서 오라는 것이다. 흰 운동화는 무조건 반가웠다. 통화를 하던 흰 운동화가 잠시 자신의 핸드폰을 내리고 배불뚝이에게 물었다.

-야, 딸이란다. 어서 오라는데? 다시 갈 필요가 있을까? 네 생각은 어떠니?

-글쎄. 산모가 궁금해 하긴 하겠지? 이래봬도 우리가 출산을 도와 준 사람 아니냐? 그렇지만 뭐, 칭찬 받으러 거기까지 가는 건 좀 우습잖아?

-가지 말까?

-그래도 가 보자.

둘이는 다시 가던 걸음을 되돌려 큰 길로 나갔다.



4


산모가 어느 방에 있는가, 고 물었을 때 간호사는 두 사내를 수납으로 안내하였다. 수납을 담당하는 아가씨는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 평상복 차림의 그녀를 보면서 병원도 살림은 아줌마들 몫이구나, 흰 운동화는 생각하였다. 그녀가 몇 차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는 말했다.

-딸이에요. 축하합니다. 내일 하루 여기서 쉬시구요, 모fp부터는 퇴원 가능합니다. 의료보험증 갖고 오셔야 돼요. 여기요.

흰 운동화는 수납이 내미는 종이쪽지를 집어 들면서 물었다. 

-이게 뭐지요?

-의료보험증 갖고 오시면 삼십 프로 면제해 드려요. 모레 퇴원하시려면 내일 수납하시는 게 좋아요.

흰 운동화가 어리둥절해져서 배불뚝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날더러 이걸 어쩌란 말이지?

-수술비를 내라는 말 같은데 말해. 보호자가 아니라고. 저 안에 산모가 있는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네가 그 여자 남편인 줄 아나 봐.

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수납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수납은 납득할 수 없다며 두 사내를 건물 안의 어떤 외진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리고 병원 측에서 사육되고 있음직한 상담원이 와서 좋은 말로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보호자께서는 아니라고 우기시지만, 여기 문서가 말해 주지 않습니까? 이런 일이 어디 한두 건이어야지요? 그나마 이번 일은 산모가 나서서 직접 입을 열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떻게? 우리가 자기 보호자라고, 산모가 거짓말이라도 하더란 말입니까? 산모 어딨지요? 산모한테 가서 직접 물어 보면 될 것 아닙니까?

-물어 보셔야지요. 우리도 이미 물어 봤답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하셨구요? 그럴 수 있지요. 요즘 그런 일은 흉이 아니지요. 그건 그렇더라도 아빠라는 사람이 잉태만 시켜 놓고 나 몰라라 한 건, 그건 잘못이지요.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벌써 넉 달째 발을 끊었다던데, 아빠 노릇 포기하신 겁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만, 우리는 조금 아까 우연히, 아주 우하게도 그 집에서 만난 것뿐입니다. 안 들어가도 되는데 그만 아주 우연하게도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순간에 그 여자가 진통이 왔던가 봅니다. 어떡합니까? 들쳐 메고 나오는 수밖에요. 정신없었습니다. 그 핏덩이를 길바닥에 쏟아 놓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그만, 그만. 다들 말들은 그렇게 하지요. 거짓말이란 원래 쌍방 간에 입을 맞추고 또 맞추어도 탄로가 나는 법인데, 이번 일은 참 서툴군요. 미혼모들이 흔히 그런 거짓말들을 하지요. 엄마 쪽에서는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니까 가능한 한 애기 아빠를 감싸는 쪽이고, 애기 아빠는 어쨌거나 책임을 면하려고만 하니까, 아주 어려워요. 그렇지만 어쩝니까? 이런 일이 한두 건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사고인데, 그렇다고 우리 병원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문서는 문서대로 신용이 지켜져야 합니다. 출산 비용은 당연히 보호자가 책임져야지요. 그래야 갓난아기가 퇴원할 수 있습니다.

흰 운동화가 마침내 억울함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기가 막히는구나. 그 자식, 애기 아빠란 놈, 완전 사기꾼 아냐? 산모가 무슨 죄가 있냐? 불쌍하구나. 만나지 않겠어. 그런 산모를 만나서 어쩌겠다는 거냐?

-그럼요. 만나 보나 마나입니다. 그 여자 여기서 나가면 당장 우유 살 돈도 없는 형편이라는데, 만나면 또 쓸데없이 보호자 노릇이나 하게 되지 별 수 있습니까?

두 사람 겨우 밖으로 나온 것은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흰 운동화가 앞장서 자전거를 끌고, 그 뒤로 배불뚝이가 발걸음을 맞추면서 둘이는 하나 둘씩 가로등 불빛이 살아나는 거리를 걸어갔다.

-돈은 내가 낸다. 그까짓 수술비쯤, 태어나서 언제 한번 남을 위해 내 돈 써 본 적 있었냐? 착한 일은 착한 일을 하도록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해야지, 기회 놓치면 이런 일 하고 싶어도 못한다.

-잘 생각했구나. 범죄도 조작되는 수가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세상엔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따로 있는 줄 알았어. 모처럼 좋은 일을 했나 보다 싶었는데, 이게 뭐니? 하루에도 몇 번씩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었다가,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되었다가, 왔다 갔다 하는 판이니 도대체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구나.

-겁낼 것 없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세상일은 죽고 사는 것까지도 다 사람이 만드는 법이다. 사람이 하는 것 치고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은 없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냐?

-들어 봐라.

배불뚝이가 남의 말 하듯 자기 아버지를 말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겁쟁이였다. 살아 계실 때는 몰랐어. 돌아가시고도 모를 뻔했어. 어머니가 말해 줘서 알았다. 바보같이, 먹지 않아도 될 겁을 지레 잡숫고 돌아가셨더라. 그해 추석이 지나고도 아직 햇살이 따갑기만 하던 어느 가을날,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연말이면 제대 특명이 떨어질 임기 말년의 육군 병장이었다. 그날 사격장 저탄 창고에 들어가 몰래 낮잠을 즐기고 있는데, 중대 본부 차일병이 재수 없는 부음을 갖고 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덤덤한 편이었다. 삼거리 <맛둥이>집에 전화를 걸어 희주와의 주말 미팅을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우리 아버지의 죽음은 이미 준비된 슬픔이었는지도 모른다. 그해 1월 1일 아버지는 이미 병상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다. 1월 1일 그날, 아침 밥숟갈을 뜨다가 그만 넘어졌다. 그때는 상병 때였는데,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산소마스크를 쓰고 계셨으므로,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그러니까 입대하던 날 마지막 대화를 나눈 셈이다. 병명은 미상이다. 그렇게나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시체나 다름없는 몸이 된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장례는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연말에 나는 정식으로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석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도 아버지의 죽음을 더 가슴 아파 하셨다. ‘네 아버지가 글쎄 그놈의 점쟁이 때문에 돌아가셨지 뭐냐!’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다. ‘지난 번 49제를 지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이 들어 집안을 정리하는데, 글쎄 골방 네 아버지 손태 속에 그것이 들어 있지를 않냐? 백지로 엮은 몇 장 되지도 않는 종이 뭉치인데 글쎄 그걸 나 몰래 여태까지 꽁꽁 숨겨 두고 지낸 모양이더라. 점쟁이 책이더라니까. 점보는 책이 아니라, 젊어서 본 점괘가 고스란히 거기 적혀 있는 거야. 원, 펼쳐 보니, 네 아버지 점괘가 딱 작년까지만 나오고, 그 뒤는 없는 거 있자. 더는 점괘가 안 나왔던 거지. 그걸 글쎄 죽을 수라고 믿었더라니까. 에라, 멍텅구리 같은 영감아! 생각난다. 너 생기기 전이니까, 근 삼십 년 다 되어 가지. 그 해 가을걷이를 하다가 말고 아버지가 한 차례 죽도록 앓았었거든. 못 일어나는 줄 알았다. 한 달포 지내자 병줄이 떨어졌는데, 일어나자 곧 점쟁이를 찾아갔던 모양이야. 나도 몰랐었지. 그날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인데 어디선가 생기가 펄펄해져 갖고는 돌아오더니 ‘죽지는 않는다더라. 잘만 하면 환갑까지도 산다더라.’ 이러시지를 않겠냐? 그리고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는데, 글쎄 네 아버지는 그걸 기억하고 살았더라니까. 갑술년까지만 산다. 을해년이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없다. 올해가 그 을해년 아니냐. 그러니 어찌 무서운 생각이 안 들겠어? 멀쩡한 소도 도살장 앞을 지나갈 때는 기가 죽는다는데. 온다온다 하던 을해년이 오는데 어찌 겁이 안 났겠어. 정월 초하룻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그만 넉장구리를 하고 말았지 않니?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점쟁이가 무슨 죄야? 그걸 철석같이 믿은 네 아버지가 잘못이지.’ 어머니는 남의 일처럼 말하더라.

-야, 흰 운동화야, 너는 그러니까 네 아버지가 결국 당신의 죽음을 자초하여 그 길을 걸어갔다고 본다는 말이냐?

-그래도 그게 자살은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는 자살을 하지는 않았다.

-운명에 끌려갔다는 말이 죽음을 자초했다는 말인데,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그래, 배불뚝이야. 엎어치나 둘러치나 결국 그 말이 그 말일 텐데, 네 말대로 만약에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 맞다면 그 말은 다시 우리 아버지는 점쟁이가 죽였다는 말도 된다.

-점쟁이가 죽였다면 그건 타살이구나.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점쟁이가 죽이지 않았다. 타살 아니다.

흰 운동화가 생각에 잠겨 어둠 속을 걸어가더니, 마침내 생각이 난 듯 비장의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네 아버지가 겁쟁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겁쟁이다. 누군가 겁을 먹는다는 건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는 뜻이다. 네 아버지가 겁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당신 목숨을 아꼈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치고 겁 없는 사람은 없다. 지난 삼십 년 동안 네 아버지는 죽음을 무릅쓰고 죽음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어 하셨다. 그래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5


그날 밤 아홉 살 소년이 자기 집 개한테 물려 죽는 사건이 산동네에서 발생하였다. 어쩌다가 그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소년의 죽음은 이미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가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맨 먼저 텔레비전이, 그 다음 조간신문이, 그리고는 입소문이, 마지막으로 배불뚝이와 흰 운동화가 직접 사고 현장을 목격한 것은 이튿날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아침 일찍 산부인과에 들러 출산 비용을 지불하고, 나오는 길에 누구 개 팔 사람 없나 하고 마을로 들어서는데, 거기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배불뚝이와 흰 운동화는 밭두렁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걸어서 하우스까지 갔다.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누렁이는 밤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 뚝 따고 거기 하우스 앞에 앉아 있었다.

-저 개가 그 소년을 죽였단 말이야?

누군가 개도 알고 소년도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턱 끝으로 누렁이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어요.

또 누군가가 끌끌끌 혀를 차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인재로 보아야 합니까? 천재로 보아야 합니까?

그는 어쩌면 언론사 계통에 근무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묻는 것이 뚱딴지같아 보이지만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여보 젊은이. 그게 인재면 어떻고 천재면 어떻소? 사람이 죽었기로서니 그놈 목숨을 개한테 물어 내라고를 하겠소? 개가 죽였기로서니 그놈 죄를 물어 법정에 세우기를 하겠소?

그렇게 말한 사람은 그 동안 공직에 있다가 얼마 전에 정년퇴직을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뚱딴지같아 보이는 질문을 그 사람이 받으니까 진짜 뚱딴지가 되었다.

-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지 이대로 어물어물 넘어갈 수는 없지요. 죄 없는 어린 생명이 죽어 나갔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개한테만 죄를 덮어씌우면 그 또한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 되지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까 언론사 계통의 그 사람일 것 같지만 전혀 딴 사람이다. 순서로 보면 당연이 그 사람이지만 지금 순서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만큼 의견이 분분해진 것이다. 

-말인 즉 그렇소만, 그래도 개는 어디까지나 개지 사람이 아닌 건 사실이지요. 그러니까 개는 개처럼 다뤄야지, 그까짓 개를 갖다가 사람처럼 다룬다면 그건 개를 상전으로 모시는 격이 되어서 말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이번에 끼어든 사람도 순서가 정년퇴직한 사람이어야 맞지만, 전혀 아니다. 그는 에이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제 삼의 씨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토론 마당은 어느덧 정해진 말상대가 없었다. 아무나 먼저 나서서 말머리를 가로채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뿐이었다. 에이가 한 말을 엑스가 받고, 그 말은 다시 더블유에 가서 튀어 나오고, 그것은 다시 엉뚱하게 에프의 것이 되기도 하였다. 죽음을 애도해야 할 자리가 그만 언론의 난투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결국 개를 처벌하지 말자 그런 말씀인 것 같은데,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선 처벌을 먼저 해야 합니다. 사람도 뭔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벌을 받는데, 하물며 개가 개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는다면 그건 한 마디로 개가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게 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이 십 년 징역을 받는다면 개는 사형을 시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듣고 보니 그것도 이상하군요. 개도 처벌을 받고 사람도 처벌을 받는다면 결국 개 값이나 사람값이나 같이 친다는 말이 되는데, 그것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응징을 하되 죄 값을 달리 하자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개 값을 좀 낮추고 사람값을 좀 더 쳐 준 것뿐이지, 그래서 사람값이 더 높아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처음부터 사람값을 개 값과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봅니다.

싸움판은 개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개가 어째서 사람을 물어 죽였을까. 소년의 주검은 지금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소년의 죽음이 얼마나 애절한가. 처음에 구경꾼들은 그런 문제들로 개를 원망하고 소년을 애도하는 것 같더니, 어찌된 일인지 사태가 그만 순식간에 돌변하여 조의는 논쟁이 되고, 논쟁은 다시 말다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논쟁의 불씨는 소년을 인간의 대명사로 착각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논쟁이 격화되자 구경꾼들은 곧 개 편과 사람 편으로 양분되는 조짐을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구경꾼들은 누구한테랄 것도 없이 자신의 난폭한 언어를 무차별 난사했고, 그러자 싸움판은 곧 누구는 개, 누구는 개가 아닌 쪽으로 전락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제 누구도 이성적인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무조건 삿대질이고, 고함질이고, 나중에는 그것도 안 되니까 아무 멱살이나 움켜쥐고, 뒹굴고, 구르고, 하는 피투성이 난장판을 이루었다. 아무래도 사람보다는 개가 많아 보였다. 바야흐로 개판이 된 것이다.

두 사내가 모종의 실리를 도모하기 시작한 것은 그 개판의 무질서가 가히 절정을 치닫는 순간이었다. 배불뚝이가 자전거를 끌고 현장에 끼어든 것이다.

-별, 거지발싸개 같은 자식들. 싸워도 싸울 걸 가지고 싸워야지, 갯값이 높으면 어떻고, 사람값이 더 높으면 어때? 확실하게 돈 될 것을 챙겨야지. 야, 흰 운동화야, 옛다, 너는 누렁이나 챙겨라.

누렁이는 순식간에 네 발 꽁꽁 묶인 신세가 되어 자전거 위에 실렸다. 소년이 죽어 나가는지, 개가 죽어 나가는지, 그걸 상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탱자나무집 골목길로 접어들 때쯤 흰 운동화가 한숨 섞인 푸념을 내뱉고 있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배 안 고플까. 사람은 배고프면 훔쳐 먹기라고 하지. 배고픈 짐승이 말을 못하면 누구를 원망해? 사람이라도 물어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배불뚝이는 말 없는 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지금 가는 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받침대 위에 가로 누운 누렁이는 해탈한 듯 가만히 눈꺼풀을 닫고 다만 명상에 잠겨 있었다.《문장 웹진/2008년 7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