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아웃

 

화이트아웃




김애현




1


개구리가 운다. 내리는 빗소리가 함께 뒤섞인다. [개구리 ?? 양서류 무미목(無尾目)의 참개구리과,…… 통틀어 이르는 말. 올챙이가 자라…….] 나는 사전을 덮는다. 폐 기능이 썩 좋지 않은 개구리는 피부 호흡에 의지한다. 축축한 피부는 대기 중 산소를 공급 받기에 좋은 상태다. 낮보다는 밤이, 맑은 날보다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씨가 개구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니까 개구리는 지금 기분이 좋아서 우는 것이다. 숨 쉬기 편하니까. 손가락 사이에서 볼펜이 핑그르르, 돈다. 볼펜이 떨어져 책상 위에 구른다. 사전의 둔탁한 모서리에 맞아 멈춰 선 볼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때, 볼펜을 떨어뜨리지 않고 쉼 없이 돌려댄 적이 있다.

 


– 볼펜 돌릴 시간 있으면 머리 좀 돌려 봐. 

부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 이 책이 나오면 누가 먼저 보는지 몰라서 이래? 애 엄마들이 먼저 훑어. 그런 다음에라야 책을 산다는 건 이 바닥에선 기초 상식이야. 없는 걸 만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버벅대는 건가?

부장은 책상 위에 놓인 원고를 내가 서 있는 책상 끝으로 밀었다.  

– 남이 판다고 딴 구멍 찾아 파는 놈치고 대박 나는 거 못 봤다. 딴 데 팔 시간도 없고 우린 그럴 돈도 없어. 묻어갔다는 말 듣기 싫어서 돈 먹는 하마처럼 자존심 내세우지 말란 말이야. 어떻게든 끼어서 파. 뭐 색다른 것 없나 파 보라구. 비틀든지 꼬든지 아니면 갖다가 붙이든 제발 어떻게 좀 해 봐봐.  

원고를 들고 돌아서는 내게 부장은 요즘 추세에 맞추라고 덧붙였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아 볼펜부터 찾았다. 색 다른……것. 사전을 펼쳤다. [색-다르다 ?? 종류가 다르다. 보통과는 달리 특이하다.]

볼펜을 돌릴 때마다 손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일의 진척이 더뎠다. 볼펜은 쉼 없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돌아가고 통증은 팔꿈치로 어깨로 진행되었다. 사진과 세밀화를 곁들여 싣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온갖 종류의 혼합물이라 해도 좋을 휴대용 동물백과사전은 결국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백지화 되었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을 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그 어느 감정보다 앞섰다. 그 감정이 사라지고 나자 배가 고팠다. 깜빡 잊고 있던 약속이 불현듯 생각난 사람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사무실을 나오던 나는 그 약속을 매번 어긴 사람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건물 앞 계단에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계단 위에 서서 깍지 낀 두 손을 이마에 댔다. 손차양을 비껴 올려다본 하늘은 두터운 먼지 층 때문에 몹시 탁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는 매끄러운 유리표면처럼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먼지 층을 뚫고 내려온 짱짱한 햇빛이 비비탄처럼 길바닥에서 튀었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깍지 낀 손을 풀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전 옆에 나둥그러져 있는 볼펜을 주워 든다. 손가락 사이에 끼고 돌려 본다. 몇 바퀴 돌아가지도 못하고 볼펜이 튕겨나간다. 열 바퀴만, 열 바퀴만 돌아라. 나는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인다. 손목이 뻐근해진다. 자꾸만 볼펜을 떨어뜨린다. 내 손가락 사이에서 볼펜이 쉼 없이 돌아가던 기억마저 의심스럽다. 볼펜이 빠져나간 오른 손을 바라본다. 어쩌면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믿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재빨리 사전을 끌어당긴다. 맨 뒷장을 펼쳐 내 이름을 확인한다. 볼펜을 들고 그 위에 덧쓴다.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눌러 쓴다. 그때 노랫소리가 눅눅한 밤기운에 섞여 방충망의 비좁은 그물코를 뚫고 들어온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바로 위층, 201호 아이다. 나는 아이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때 동물백과사전에 끼워 넣었던 동요가 뭐였더라.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위험해, 어서 이리 와. 여자가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베란다 앞에 바짝 다가서 돌확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돌확은 작은 분수대 모양이었다. 나는 베란다 앞에 서서 물끄러미 그 낯선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돌아섰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여자는 201호에 새로 이사 왔노라고 말했다. 201호요? 나는 선 채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위층, 201호엔 물이 끓는 주전자 속 같던 다섯 식구가 살았는데. 밤이면 늘 부글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었다.

나는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여자와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더 이상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돌확을 바라보자 여자는 돌확을 뒤로 가리며 섰다.  

– 전에 살던 집 마당에 두었던 건데 새 집에는 마땅히 둘 곳이 없어서요.

베란다와 담벼락 사이의 폭 좁은 공간은 잡풀이 무성했다. 늦은 밤,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그곳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한 여름이면 모기떼가 들끓고 아침이면 누군가 창밖으로 내던진 자잘한 쓰레기가 잡풀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그곳이 돌확 같은, 잘 가꿔진 정원에나 어울림직한 소품이 놓일 마땅한 자리일까, 생각했다.

며칠 뒤, 201호에 사는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 뒤뜰에 텃밭을 만들었으면 하는데요. 아이가 집에만 있어선지 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도 만들어 눈길을 끌어 주면 좀 나을까 싶어서 그럽니다만, 어떨는지요.

– 뭘요?

– 그러니까 뒤뜰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도 될까요?

나는 현관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곳의 주인도 아닐 뿐더러 그곳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아무도 그곳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곳을 뒤뜰이라고 부른 사람은 남자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돌확 주위를 맴도는 아이가 보였다.

– 아마,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식탁 의자에 앉아 베란다 밖을 바라보면 돌확과 텃밭이 보였다. 빛이 좋은 날이면 그곳에 201호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쪼그려 앉아 텃밭을 가꾸는 남자의 등은 언제나 부드럽게 휘어 있었다. 여자는 남자와 말을 주고받으며 웃었지만 시선은 늘 아이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아이가 돌확 주위를 토끼처럼 뛰며 맴돌았다.

세 사람이 있는 베란다 창밖을 바라볼 때면 눈이 부셨다. 그럴수록 내가 있는 곳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럴 때면 나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각자의 역할을 놀라우리만치 잘 소화해내는 탁월한 연기자들. 그들의 얼굴을 향해 누군가 떨리는 두 팔로 치켜든 반사판이 빛을 퍼붓고 더, 더! 행복하게! 주문을 외치는 감독의 말소리를 미세한 틈에 교묘히 숨긴 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필름. 행복해 보이지? 그런데 그게 다일까? 그게 다가 아닌, 그래서 처음부터 널 속이고 말 거야,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비참한 결말. 내가 상상한 영화 속 그들의 행복은 흥행 대박을 위해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쉽고 간편하게 대본에서 삭제될 수 있는 삽화였다.

나는 돌확과 텃밭에 나온 201호의 사람들을 보지 않기 위해 베란다의 버티컬을 걷지 않았다. 얼마 후 작은 텃밭에 잎을 밀어 올린 푸성귀에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베란다 밖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돌확에는 금붕어가 살게 되었다. 그 즈음 201호의 여자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 미싱을 들였어요. 소리가 요란할 거예요.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내게 잡채가 든 그릇을 내밀었다.

– 무얼 만들 건데요?

그릇을 건네받으며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릇을 든 채 돌아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했다.

– 가끔 밤에도 어쩔 수 없이, 아니 되도록 낮에 다 끝내도록 할게요. 죄송해요. 대신 뭐든 박아 드릴게요. 셔츠 단추나 바짓단 같은 거, 뭐든 주세요. 그냥 박아 드릴게요. 

여자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말했다. 여자가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잡채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여자였다.

– 저, 그거요, 잡채. 상하기 쉬워요. 지금 안 드실 거면 냉동실에 얼려 버리세요. 먹을 만큼씩만 나눠 얼리세요. 먹을 때마다 녹여서 데워 드시면 그럭저럭 한 끼 음식은 되거든요.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잡채 그릇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여자는, 혼자 살면서도 제 먹고 사는 일쯤 잘 꾸려나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데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란 것까지 훤히 꿰뚫었는지도 몰랐다.

  

방을 나온다. 냉장고의 손잡이를 잡는다. 문을 열고 잠시 머뭇거린다. 이렇게 주위가 습한데도 왜 목이 마른지 알 수 없다. 냉장고 안에 두 조각의 케이크가 눈에 띈다. 얼려 두세요. 음식을 줄 때마다 여자는 그 말을 잊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아, 물병. 돌아보지만 냉장고를 다시 열고 싶지는 않다.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다. 케이크의 잔상이 줄래줄래 따라온다. 

여자는 내게 늘 많은 양의 음식을 건네준다. 잊을 만하면 음식이 든 그릇을 들고 나를 찾아온다. 그러나 나는, 여자가 건네 준 음식을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그저 바라만 본다. 음식은 대개 식탁 위에서 혹은 냉장고 안에서 상해 버리기 일쑤다. 때론 집안에 퍼진 음식 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버린 적도 있다. 밤이 오길 기다려 쓰레기통에 음식을 버리고 돌아오면서 나는 몇 번이고 되뇌이곤 한다. 201호는 좋은 이웃이다, 라고. 그들에게 혼자 사는 나는 늘 안쓰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내게 건네주는 음식들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 음식들이 잊고 있던 기억을 모조리 일깨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를테면 내 아이의 돌 잔칫상에 올려졌던 떡의 알록달록한 색깔과 어떤 과일이든 정수리에 톡, 하고 칼집부터 내던 아내의 버릇 따위. 여자가 건네준 음식들은 그게 뭐든 꼭 하나씩은 생각나게 만든다. 그러나 음식의 기름 냄새가 가시고 푸릇푸릇 곰팡이가 필쯤이면 그것이 일깨웠던 내 기억은 모조리 과거형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의자에 앉아 사전을 끌어당긴다. 뭉툭한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케이크 조각의 뾰족한 끝이 내 마음을 콕콕, 찌른다. 사전을 들춘다. 촛불을 끄려고 한껏 숨을 들이마신 아이의 불룩한 양 볼이 떠오른다. 사전을 소리 나게 덮어 버린다. 통증이 손목을 휘감는다. 손가락 사이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볼펜의 환영을 본다. 통증은 팔을 타고 어깨로 목덜미로 이어진다. 드르륵, 드르륵. 201호에서 미싱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어금니를 힘주어 문다. 통증에 뒤섞인 불안감이 내 안에서 부푼다. 검은 뒤집개를 손에 쥔 여자의 모습은 불안감 속에서 점점 또렷해진다. 음식 만드는 일에 서툰 여자 때문에 뒤집개의 검은 손잡이는 불에 덴 상처투성이다. 여자는 음식을 만들다 말고 재봉틀 앞에 앉는다. 천이 덧대어진 솜의 두툼한 끝자락을 박다가 검지손톱의 한가운데에 바늘이 꽂힌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집 안 가득 음식이 타는 매캐한 연기가 고여 있다. 아이가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남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부글부글. 201호에서 소리가 끓어오른다. 소리는 음충처럼 바닥을 긴다. 벽을 타고 오른다. 벽에 걸린 201호 가족사진의 테두리가 썩고 있다. 썩은 틈을 비집고 소리가 스며든다. 사진 속 그들의 얼굴 위로 검버섯이 핀다. 행복 끝. 영화의 엔딩 자막처럼 그 말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러나 불온한 상상을 멈출 수 없다. 그렇게 나는 표백의 순간을 맞이한다.


늘 그렇듯 주위는 눈부시도록 하얬다. 빛 때문이었다. 빛이 오면 그림자는 사라졌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은 한 컷의 필름처럼 부동의 자세였다. 사전 속 단어의 풀이말처럼 건조하고 냉랭하게 보였다. 현실감도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화이트 아웃을 만난 극지의 누군가처럼 불안에 떨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생각은 두서가 없고 결말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생의 틈에 빠져 버린 것 같았다. 그림자를 찾아 봐. 극지의 흐린 날, 구름층을 통과한 빛이 빙설 면과 구름 사이에서 난반사(亂反射)를 멈추지 않고 내게 속삭였다. 그림자를 지운 건 너잖아. 균형 감각을 잃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빛에게 말했다. 빛은 대답 대신 속도를 높였다. 구석구석 내 몸을 뒤졌다. 빛이 지나간 자리마다 생채기가 났다. 쓰리고 아팠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뒤틀리고 말렸다. 언젠가 내가 뜯어내 버린 사전의 낱장처럼 내 몸이 잔뜩 구겨졌다. 희망이나 행복 따위의 단어들의 각진 모서리에 찔려 내 몸이 따끔거렸다. 몸을 펴, 움직여 몸을 펴. 오래도록 그 소리에 부대껴 온 사람처럼 나는 피곤했다.

 

눈을 뜬다. 몸이 축축하다. 숨을 내쉰다. 한 팔을 이마에 올리고 눈을 감는다. 빗소리가 여전히 드세다. 눈시울이 뜨겁다.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과장된 호흡을 여러 번 반복하지만 참을 수 없을 만치 슬퍼진다. 소리 내서 운다. 

가까스로 일어나 의자에 앉는다. 사전이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전을 줍는다. 떨어질 때 몇 장이 구겨졌나 보다. 한 장 한 장 반듯하게 펴고 있는데 위층에서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뛰는 모양이다. 시계를 본다. 남자가 돌아올 시간이다. 사전을 뒤진다. [콩2 ?? 단단한 바닥에 작고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거나 부딪쳐 울리는 소리. 콩콩-거리다(-대다) ???? 아이들이(복도를)콩콩거리며 뛰어다닌다.] 사전을 밀어낸다.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전에는 없는 것. 아이는 남자 때문에 뛴다. 이른 새벽에 나가 늦은 저녁에야 돌아오는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아이는 늘 잠을 미룬다. 이제 막 시계 보는 법을 배운 아이는 남자가 돌아올 무렵이면 벽시계 밑에서 공처럼 튀어 오르곤 한다. 아이의 발소리가 들렸다가는 안 들리고 또 그러다 다시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간다. 방충망을 조심스레 연다. 밤이 무겁다. 나는 베란다 난간을 넘는다. 맨발에 질척한 느낌이 들러붙는다. 돌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돌확 안의 금붕어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돌확 속으로 손을 넣는다. 움직여, 움직이라니까.

201호를 올려다본다. 미싱이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밝다. 유도등 같다. 슬그머니 몸에 한기가 돈다. 그 집에 들어가 눕고 싶다. 남자가 건네주는 옷으로 갈아입고 여자가 만든 따듯한 꿀물을 받아 마신 뒤 아이가 들려주는 자장가에 잠이 들고 싶다. 미치도록 그 집, 201호의 행복 속으로 스며들고 싶어진다.

나는 돌확 속의 금붕어 한 마리를 손에 움켜쥔다.  



2


내 아내였던 저 사람, 수척해 보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괜스레 물 컵만 들었다 놓는다. 창밖 풍경은 볼 만하지도 않은데 쉽사리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나는 뭐 좋은 얘기라도 없을까, 먼저 입을 떼자니 생각나는 게 없다. 언제부터였더라. 나와 마주 앉으면 저 사람은 늘 눈길을 다른 데 붙박아 두고 나는 지레 짐작으로 주눅부터 들어 입을 떼지 못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뭐 좋은 얘기는 없을까, 나는 생각을 헤아려 보곤 했다.

“어떻게 지내?”

잘 지낸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그렇게 말해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저 사람은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위층에 새 사람들이 이사 왔어.”

저 사람, 미간을 약간 찌푸린다. 질문을 비껴나간 대답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렇게 내게 묻는 말투가 비뚜름하다.

“참 좋은 사람들 같아.”

내 말에 픽, 웃으며 고개를 다시 창밖으로 돌린다. 당신한테 안 좋은 사람들도 있어? 그런 표정이 웃음 끝에 스친다.

“뭐하는 사람들인데?”

말머리가 그렇게 잡힌 이상 하는 수 없다는 듯 내게 묻는다.

“남자는 마을버스 기사고 여자는 집에서 미싱을 돌려.”

“미싱?”

“음. 이불 박는대. 남자는 늘 늦게 들어오지만 씩씩해 보여. 아이는 노래를 잘 불러. 처음 들어보는 동요가 아주 많아.”

“시끄럽겠네.”

저 사람,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한데도 괘념치 않으리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전에 살던 사람들보다야 훨씬 나은 걸, 뭐.”

“아이는 남자, 여자? 몇 살이야?”

“남자 아이. 이사 오고 난 뒤에 케잌 두 조각을 받았어. 다섯 살이 되었다고 하더군.”

“브라이언보다 두 살 아래네.”

“브라이언?”

“해주, 영어 이름이야. 영어학원에 다니면 영어 이름 하나씩 만들어.”

나는 해주와 브라이언 사이에서 잠깐 혼란스러운 기분이 된다. 그 틈을 비집고 원탁이 떠오른다. 식사 때가 되면 밥상이 되고 틈틈이 아이의 책상 구실도 하던 앉은뱅이 원탁은 지금도 내 집에 나와 함께 있다. 그 원탁에 앉아 아이는 이른 바 선행학습이란 걸 했다. 내가 출판사를 그만두었을 때 아내는 가장 먼저 아이가 공부하던 학습지를 끊어 버렸다. 나는 몇 푼이냐 된다고 그걸 끊느냐고 호기 있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내의 말은 단호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지 안 봐도 비디오야.


“해주가 영어학원엘 다니는구나.”

“영어, 곧잘 해. 담임 말로는 타고난 것 같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런 말 말고 뭐 다른 할 말 없어? 묻고 있는 표정이다. 지금의 남편보다 나와 산 날이 더 많은 사람이다. 저 사람, 내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쯤은 훤히 꿰뚫고도 남는다. 

“해주 볼 테야? 두 시간 뒤면 이리로 데리고 올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싫어하지 않아, 나 만나는 거?”

“그 사람 딸도 제 엄마 만나. 쿨한 사람이야. 만나도 좋다고 했어.”

나는 머뭇거린다. 아이를 만나고 나면 진한 오크색 장롱 문에도 아이의 얼굴이 어른거린다는 사실을 저 사람은 모른다. 그런 날이면 나를 따라다니는 아이의 잔상 때문에 눕지도 못한 채 집 안을 서성인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모를 것이다.

저 사람, 화가 난 것 같다. 벌떡 일어서더니 카페 밖으로 나가 버린다. 이게 아닌데. 중얼거려보지만 내 앞자리는 이미 비어 있다.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나는 생각했다. 한바탕 밝은 얼굴표정을 짓고 이게 얼마만이냐고 손부터 내밀어야지. 나랑 살 때보다 백 배, 천 배는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내친 김에 너스레를 떨려고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오래도록 서성였다.


나는 물끄러미 창밖만 내다본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저 사람, 내 앞에 다시 앉는다.

“당신 때문에 본론을 까먹었어. 새로 이사 왔다는 당신 이웃 얘기 때매 하려던 얘기를 놓쳐 버렸다구. 자, 이것부터 받아.”

통장을 내게 내민다.

“양육비 통장이야. 이혼하고 양육비 떼먹는 전 남편들도 꽤 많다는데 거르지 않고 넣어 줘서 고마웠어.”

“이걸 왜…….”

“해주하고 나, 떠나. 캐나다로. 그 사람하고 딸도 같이 가.”

“아주 가?”

“거기서 살 거야. 하긴 바라던 바지, 나한테는.”

바라던 바를 이룬 저 사람의 표정이 쓸쓸해 보인다.

“다신 안 와?”

“늦었어. 해주 보여 달란 말 하지 마.”

“그럼, 이거 넣어 둬. 해주 줘.”

“아직도 버티는 게 힘으로만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거였으면 난 재혼하지도 않았어. 번역 일 한다면서. 어디든 불황이야. 당신이 그걸 비껴 갈 재주라도 있는 게 아니면 받아 둬. 나, 갈게.”

그렇게 말하며 통장을 내 앞으로 민다. 나는 일어서려는 사람을 다시 앉힌다.

“저기……, 사진 있으면 한 장 줘.”

저 사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가 이내 핸드백을 연다. 작고 검은 핸드백 줄에 박힌 작은 유리알이 빛났다. 저 사람, 큰 가방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지갑 속에서 사진을 꺼내 들고서 저 사람, 다시 나를 쳐다본다.

“함께 찍은 건데 괜찮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건네받는다. 사진 속에 내 아이는 전과는 썩 다른 모습이다. 아이의 달라진 모습이 내 부재의 기억을 꼬집는다.

“해주만 오려서 가져.”

사진은 아이의 얼굴만을 오려낼 수 없을 정도로 네 사람의 얼굴이 바투 붙어 있다. 아이의 얼굴만 따로 오려낸다면 저 사람의 오른쪽 볼과 새 남편의 턱과 새 딸아이의 왼쪽 볼이 함께 떨어져 나올 게 분명하다. 오랜 후 동그랗게 잘라낸 내 아이의 사진을 보며 어느 쪽이 저 사람의 볼인지 까닭 없이 궁금할 지도 모른다. 저 사람,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바탕 눈물이 쏟아질 듯하다.

“당신하고 살 때 나 많이 불안했었어.”

이제 나와 헤어졌는데도 창밖을 바라보는 저 사람의 얼굴이 몹시 불안해 보인다.

“알아.”

“당신이 아는 게 뭔데?”

“나랑 사는 동안……당신 많이 힘들었다는 거.”

“그거 내가 지금 한 말이잖아.”

“그래. 당신이 지금 했던 말, 그 불안감이 나 때문이었다는 걸 잘 알아.”

“그래서?”

“그래서 미안했었어.”

“지금도 미안해?”

“음,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겠지.”

“용서가 필요해?”

“?”

“이 모든 게 당신 때문이라며? 그러니까 용서를 해주면 더 이상 안 미안해 할 거냐구?”

“…….”

“다 지난 일이라고, 지난 일이니까 하는 말인데 솔직히 내가 수도 없이 당신한테 했던 위로의 말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였다고, 따지고 보면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은 나라고 하면 당신은 더 이상 안 미안해 할 거냐구. 살면서 엎어지고 꺾여서 박살나는 게 어디 우리뿐이었냐고 말하면 당신은, 당신은 나처럼 이 땅에서 도망치지 않고 살 수 있겠냐고, 이 나쁜 자식아-!” 

나는 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저 사람의 눈물이 그치길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문득, 울고 있는 저 사람에게 손수건이라도 건네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내겐 손수건이 없다. 저 사람과 사는 동안 내가 자주 잃어버리는 단골 메뉴 중에 하나가 바로 손수건이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플라스틱 통에서 종이를 뽑아 저 사람, 가까이로 민다. 저 사람, 흘끗 종이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눈 밑이……그러니까 마스카라가 번졌어.”

“많이 번졌어?”

“좀. 그러구 나가면 팬더곰인 줄 알겠어.”

저 사람, 핸드백을 열어 작은 손거울을 꺼낸다. 얼핏, 핸드백 안에서 잘 접힌 손수건을 훔쳐본다. 손수건 끝에 달린 흰 레이스가 예쁘다. 하지만 저 사람은 종이를 집어 들고 거무스름한 눈가를 조심스레 눌러 닦는다.

저 사람, 작은 손거울을 다시 핸드백 안에 집어 놓고 아무 말이 없다.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일어서자고 말한다. 저 사람, 일어선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나를 따라 일어선다.

나는 밖으로 나와 잠시 두리번거린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

“나, 간다.”

저 사람, 내게 그렇게 말하고도 선뜻 발을 떼지 않는다. 저도 모르는 생판 낯선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생의 어디쯤이라 단호하게 말해 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저 사람 앞에서 입을 뗄 수 없다.

“주민증 꼭 챙겨. 잊지 말고 넣고 다녀. 아무데서나 팩팩 쓰러지지 말고 되도록이면 병원 근처나 가까운 경찰서 같은데서 쓰러지라구.”

그 말, 저 사람이 내 아내였을 때 자주 써먹던 지독한 농담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웃기지 않는다. 나, 진짜 간다.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서 돌아선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사람이 신고 있는 구두가 참 낯설다. 굽이 높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가파르게 가늘어진다. 저 사람, 학습지 선생을 할 때 신었던 낮은 굽의 구두가 떠오른다. 비좁은 현관에서 구두를 벗을 때마다 저 사람은 부은 발을 빼내느라 신음소리를 냈다. 원탁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부은 발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바깥쪽이 비스듬히 닳아버린 저 사람의 구두는 지금도 여전히 신발장 한 쪽에 놓여 있다.   

저 사람, 지하철 역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하이힐이 보이지 않고 종아리가 그리고 옹송그린 두 어깨가 사라진 뒤 이윽고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내게 엽서 한 통쯤은 보낼 것이다. 제 사는 곳의 수려한 풍광을 담은 사진엽서일 것이다. 잘 살고 있어요. 주머니 속에 사진을 꺼내든다. 아이의 얼굴 위를 손끝으로 매만진다.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아이의 표정 어딘가에 긴장감이 배어 있다. 웃어요, 활짝. 촬영기사의 채근에 아이는 마지못해 입술을 열었을 것이다. 사진을 내려다보며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디어 대디(Dear Daddy). 어쩌면 나는 영어사전 없이는 아이의 편지를 해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키만큼 자란 아이가 사진 속을 빠져 나와 성큼성큼 내게로 걸어온다. 그리고 악수를 청한다. 나는 사진 속 아이의 얼굴처럼 긴장감을 떨치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일 것이다. 더듬더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오래된 몇 개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다가 끝내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아이는 다시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일곱 살, 저의 어린 얼굴 뒤로 숨는다.  

사진을 주머니 속에 넣고 모서리를 쓰다듬는다. 뾰족한 끝이 손가락에 스친다. 사진의 중심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천천히 모서리를 잡아당긴다. 주머니 속에서 사진이 돌아간다. 사진 따위는 달라고 하지 말 걸 그랬다. 그 부동의 자세를 못 믿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더더욱 사진엽서는 보내지 말라고 못 박을 걸 그랬다. 얼굴을 보지, 말했어야 했을까. 내게 와서 어떻게 사는 지 말을 해 봐. 사진으로는, 사전으로는 도저히 못 믿을 그 놈의 희망이나 행복을.

지하철역을 등지고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이제 무얼 한다지. 딱히 떠오르지 않는 대답 대신 담뱃갑을 찾는다. 가게 차양이 만든 거리의 그늘 아래 서서 담배를 피워 문다. 한 개비가 다 타들어 갈 즈음 다시 담뱃갑을 찾는다. 웃옷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보지만 없다. 모든 주머니를 뒤진다. 뒤지다가 통장을 만진다.


은행의 현금자동 입출금기 앞에 선다. 통장을 집어넣고 스크린의 버튼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인다. 예금 지급의 버튼을 누른다. 비밀번호를 누르세요. 훅, 숨을 들이킨다. 아이의 생일을 떠올리며 네 개의 번호를 누른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기계음이 들린다. 기계가 돌아가고 지급기의 뚜껑이 왈칵, 열린다. 나는 물끄러미 석 장의 만 원권 지폐를 내려다본다. 눈시울이 뜨겁다. 돈을 꺼내라는 경고음이 들린다. 서둘러 돈을 꺼내 움켜쥔다. 뚜껑이 닫힌다. 돈을 움켜쥔 채 손등으로 두 눈을 연신 문지른다.

돈을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다. 늘 얄팍했던 검정색 지갑을 떠올린다. 거기엔 너무 많은 칸이 있었다. 나는 지갑을 버리고 낱장의 지폐와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지갑보다 편해서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이 돈의 일부가 사라진대도 아쉬울 것 없는 만큼의 적은 액수이기 때문이었다.

담뱃갑을 꺼낸다. 담배를 휴지통에 버리고 그 안에 돈을 접어 넣는다.

은행을 나와 잠시 머뭇거린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한 발짝 내딛는 순간 그대로 증발해버릴 것만 같다. 뒤돌아본다. 푸르스름한 유리 너머로 등 돌린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 중 서넛은 밖을 내다보고 있다. 누군가 길게 하품을 한다. 아저씨, 금붕어도 하품을 해요? 그렇게 내게 묻던 201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 없다, 없어!

베란다 밖에서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가로 가 버티컬을 반쯤 걷고 내다보았다. 돌확 안을 들여다보는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가 달려와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돌확을 가리키며 울었다. 여자가 일어나 돌확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베란다에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 금붕어 한 마리가 없어졌다고 이래요.

아이는 울며 여자를 향해 두 손을 활짝 폈다. 그리고 오른 손의 엄지와 검지를 구부렸다.

– 맞아, 여덟 마리. 그런데 대장 물고기가 없어졌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가 잘 돌보지 못해서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는 돌확 옆에 쭈그려 앉아 한쪽 무릎에 아이를 앉혔다.

– 그런 거 아냐. 절대 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 말 믿어. 

아이는 여자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였다.

– 울지 마, 엄마가 대장 물고기한테 전화할게. 다시 돌아오라고 말할게. 아마 우리한테 다시 온다고 할 거야.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거니까 기다려 봐, 응? 

여자는 아이의 등을 한참 동안 토닥여 주었다.

   

수족관을 찾는다. 쉽지 않다. 혹 반대편에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방향을 틀어 횡단보도를 건넌다.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걷는다. 오래도록 걷는다. 아무리 봐도 수족관이 있을 거리 풍경이 아니다. 낯선 길을 걷는다.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걸음이 느려진다. 시계를 본다. 한 시간 반이란 시간을 소모해 버렸다. 땀이 밴 웃옷이 자꾸만 몸에 달라붙는다. 허겁지겁 버스를 탄다. 노선표를 살펴본다. 낯설다. 집으로 가는 것조차 수월치 않을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냉방이 잘된 탓인지 버스에 탄 지 얼마 안 가 차츰 몸이 움츠러든다. 혹 수족관이 보일까, 차창 밖을 내다본다. 얼마 안 가 속이 메슥거린다. 나는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다. 손바닥이 축축하다. 바지에 손바닥을 문지른다. 금붕어의 안간힘이 되살아난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와, 꼭 와. 아이는 여자의 말을 믿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뛰어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돌확 근처에 묻은 금붕어를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손목의 통증은 힘껏 움켜쥔 내 손안에서 진저리를 치던 금붕어의 안간힘을 일깨워 주었다. [안간힘 ?? 울화나 고통 따위를 참으려고 하지만 저절로 터져 나오는 간힘. 간힘 ?? 내쉬는 숨을 억지로 참으며 괴로움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힘.] 나는 사전을 덮고 욕실로 갔다. 물을 세게 틀고 손을 비벼댔다. 여러 차례 비누칠을 하고 씻어내도 대장 물고기의 안간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수족관은 신기루 같다. ‘물고기 나라’라는 간판의 글씨가 뚜렷하게 보일쯤 나는 그것이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릿한 냄새가 코끝으로 달려든다. 사내가 다가온다.

“금붕어…….”

“몇 마리나 드릴까요?”

“서너 마리쯤……돌확에 넣고 키우려고요.”

“돌확이요?”

“돌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거요. 요만한 아이 키쯤 되는 크긴데.”

“밖에서 키우시게요?”

“집에는 들여 놓을 자리가 없다더군요.”

“하긴, 아무데서나 키워도 되죠. 물만 잘 갈아 준다면요.”

“그러면 오래 삽니까?”

“살다 말다요.”

나는 그래요? 하며 담뱃갑 안에서 돈을 꺼낸다. 사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잔돈을 받아들고 돌아서려는데 사내가 잠깐요, 하며 나를 불러 세운다. 사내가 내게 무언가를 건넨다. 금붕어 먹이가 든 작은 비닐봉지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는데 사내가 손사래를 친다.

“그냥 드리는 거예요.”

“왜…….”

“제가요, 가끔 필 받으면 이러거든요. 우리 마누라는 장사 망치는 필이라고 하지만요. 잘 키우시라는 부탁이라고 생각하세요. 뭐, 그것도 좀 그러면 서비스라 생각하시고 다음에 또 들러 주세요.”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사내는 며칠간 먹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라며 웃는다. 

금붕어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수족관을 나온다. 두 눈이 부시다. 여전히 속이 메슥거린다. 걸으면서 숨을 고른다. 얼마 안 가 다리의 힘이 빠진다. 그늘을 찾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쭈그려 앉는다. 주위를 둘러본다. 대체 여긴 어딜까. 거리 풍경은 내 눈 앞에서 자꾸만 메말라 간다. 그늘 속의 나는 그림자가 없다. 손목에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은 팔을 타고 어깨로 올라온다.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바라본다. 물속의 금붕어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비닐봉지를 흔들어본다. 물만 흔들릴 뿐이다. 금붕어는 안간힘으로 흔들리는 물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운 바람이, 훅 지난다. 주민증, 꼭 챙겨. 아무데서나 팩팩 쓰러지지 말고 되도록이면 병원 근처나 경찰서 같은 데서 쓰러지라구. 아내의 말이 떠오른다. 움직여, 몸을 움직이라니까. 빛은 난반사를 되풀이하며 나를 다그친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그늘 속에서 걸어 나온다. 나의 두 발 아래 검고 또렷한 그림자가 생긴다.《문장 웹진/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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