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상(自塑像)

자소상 (自塑像)

 

 

 

김이설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던 사찰에서 수계증을 보내왔다. 여름 신행 체험의 전 과정을 마치었기에 수여한다는 수료증이었다. 수료증에는 나의 불명과 법어, 오계(五戒)가 적혀 있었다. 생명을 죽이지 말라,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사음을 하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 불명은 무량심(無量心). 하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않았다.

 

6월의 햇빛이 뜨거웠다. 창밖으로 입원 병동 잔디밭이 보였다. 식은땀이 났다. 입 안에 신물이 고였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누나. 형철의 목소리였다. 검은 양복을 입은 형철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일주일 만이었다. 형철에게서 옅은 향  냄새가 났다.

“잘, 다녀왔죠?”

차마 꺼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너무 쉽게 물었다.

“네. 누나도 어서 추스르고 저랑 다녀와야죠.”

“어머님은요?”

“이제 물 좀 넘기세요.”

아들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감히 헤아릴 수 없을 터였다. 엄마는 차마 내게 그만 울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약혼자를 잃은 딸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하는 엄마의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당신 자식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안도를 숨기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나였으면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따라 죽고 싶었다.

퇴원 수속을 하러 간 엄마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형철과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기운이 없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투둑, 눈물이 떨어졌다.

“힘들어도, 이겨내야 해요, 누나.”

형철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지만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눈물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저절로 그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비 와서 못 가겠는데?”

인철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커튼을 열자 새벽하늘이 새파랬다. 공기가 청명했다. 늦지 말자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기 전, 인철은 사랑한다고 말했다. 통화 끝에 주고받는 습관이었다. 한 달 뒤에는 신혼집에서 함께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내 목소리는 쾌활했을 것이다. 그 어떤 징조나 증후는 없었다. 다섯 시간 뒤, 인철은 내 앞에서 죽었다.

인철의 등산 조끼 앞섶이 검붉게 젖어들었다. 지하철은 똑같은 속도로 진행하고, 피 묻은 칼을 든 사내는 우리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칼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승객들의 비명 소리와 인철의 신음 소리가 이명처럼 느껴졌다. 인철을 부르는 형철의 목소리가 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틀이 지나 있었다. 식구들의 안도는 오히려 한탄에 가까웠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꿈이 아니었어?”

떨리고 있었지만 내 발음은 정확했다. 깨어나지 못했던 이틀 동안, 내가 너무 오래 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명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깨고 싶지 않았다. 잠이 깨면 현실이 될 테니까, 믿고 싶지 않으니까. 눈을 뜨면 악몽보다 더 끔찍한 현실만 남을 것이었다.  

인철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솟구친다. 사방으로 피가 튀는데 인철은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으려고 바동거릴수록 인철은 희미해지고, 나는 점점 더 피투성이가 된다. 인철의 손이 보이지 않는다. 안 돼, 사라지지 마! 그렇게 가지 마! 나는 몸부림친다. 저 손을 잡지 못하면 인철은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몸부림칠수록 내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꼼짝할 수 없다. 얼굴을 감싸고 울다 보면 인철이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고,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자는 내내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악몽을 꾸느라 인철의 발인도 보지 못했다.

사건은 신문에도 실렸다. 인철의 이름 뒤의 괄호 속에는 ‘남, 33’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와 형철은 일행으로 묘사되었다. 범인은 범행 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정신착란 증세가 있는, 오랜 노숙 생활을 해 왔던 부랑자였다. 칼에 찔린 박인철 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과다 출혈로 결국 숨진 것으로. 몇 문장이 그 시간의 기록이었다. 워낙에 끔찍하고 돌발적인 사건들이 줄을 잇는 세상이었다. 인철의 사고는 더 흉악한 사건들에 이내 묻혔다.

 

퇴원 이후 나는 계속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급작스런 발작을 하거나, 고통스러운 호흡 곤란이 잦았다. 계절은 여름으로 바뀌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컴퓨터를 켜지 않았고, 신문 한 장도 들추지 않았다. 나는 줄곧 내 방 모서리에 무릎을 세워 앉아 있곤 했다. 그도 아니면 미동 없이 침대에 누워 있거나, 하염없이 창밖을 응시하며 지낼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눅눅한 공기가 지속되었다. 장마가 왔다 가고 폭염이 시작되었다. 응급실에 가는 횟수는 줄었지만 자꾸 음식을 게워 내거나 식은땀을 흘렸다. 식구들 중에 한 명은 꼭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집을 나선 건 형철의 전화 때문이었다. 인철이 죽은 지 한 달 만이었다.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물론 나도 울지 않았다. 더 이상 눈물을 흘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이 끝날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읊조렸고, 그때마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형철이 어머니의 어깨를 안았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마음 잡도리 잘해야 한다, 애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손이 뜨거웠다.

“그렇게 흉하게 간 걸 보니, 다 내 업보니 싶다.”

나는 어머니, 하고 길게 불렀다. 말없이 웃어 보이는 어머니의 눈가에는 체념마저 사라진 슬픔이 깊게 드리워졌다. 어머니와 오래 마주 보았다.

“아가,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울 힘도 없다고, 이제 진이 다 빠져서 내 몸에는 어떠한 물기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밑도 끝도 없는 서러움이 북받쳤다. 어머니도 형철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결혼 날짜를 잡고서야 인철은 같이 가자고 했다. 새벽 예불과 암자 순례, 산림욕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수련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니까 쉴 수 있는 여유는 없어도 괜찮겠어?”

매년 여름휴가를 신행 체험으로 보내던 인철이었다. 나와 함께 보내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함께하자고 말할 법도 했는데 선뜻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먼저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물으면, ‘나중에 때가 되면’이라고 만류했다. 그러다 결혼 후 첫 여름휴가 계획을 미리 세우자며 꺼낸 것이었다. 비로소 인철과 결혼한다는 실감이 났다.

“이제부터는 어디든지 나랑 같이 가야 해.”

언제라도 기꺼이 응했을 일이었다. 인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나는 인철의 사십구재에 참석하지 않았다. 신행 체험의 일정과 맞물려 있었지만 사찰에 들어선 것도 아니었다. 대신, 나는 산부인과에 누워 있었다.

셋을 셀 겁니다. 하나, 둘……. 나는 간호사가 말하는 ‘셋’을 듣지 못했다. 흐릿하게 정신이 든 건 심한 요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방광이 터질 것 같고, 아랫도리가 빠질 듯이 아팠는데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간절하게 누군가를 불렀지만, 그날처럼, 내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는 다시 정신을 놓쳤다.

칼끝으로 후비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신음을 뱉으며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마취에서 깼다. 내 몸에 붙어 있던 인철의 흔적이 사라졌다.

 

병원을 나서니 강한 햇빛이 쏟아졌다. 한낮의 거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처럼 흔들렸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상가가 밀집된 좁은 도로의 열기가 대단했다. 나는 통증 때문에 아랫배를 부여잡았다. 허리가 굽어져 두 발을 끌었다. 심한 갈증이 났다.

뒤쪽에서 굉음의 경적 소리, 곧이어 사내의 욕설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차도 한복판이었던 것이다. 여관으로 가려면 길을 건너야 했다. 사내가 경적을 계속 눌렀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느린 걸음으로 도로에서 비켜섰다. 부아가 난 사내는 차를 그대로 멈춘 채 나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나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멈춰 선 사내의 차 뒤로 정체된 다른 차들도 경적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차창을 내리고 저마다 욕설을 쏟아 부었다. 사내는 개의치 않고 나에게 거친 말을 퍼부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사내를 향해 웃었다. 그 정도로 당신의 분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해보라. 적어도 당신과 나는 살아 있지 않는가.

“미친년아, 죽으려고 환장했지!”

크윽, 퉤! 창밖으로 가래를 뱉고 나서야 사내의 차가 움직였다. 그 뒤를 이어 자동차들이 줄지어 움직였다. 차 안의 그들이 나를 흘끔거리며 지나쳤다. 삼삼오오 구경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사라져 거리는 다시 한적해졌다. 갈증이 더욱 심해졌다. 어서 눕고 싶었다. 긴 잠을 자고 싶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가야 여관이 있었다. 앞 건물 때문에 늘상 그늘 속에 있는 여관은 스산해 보였다. 나는 골목 입구의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샀다. 골목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젊은 연인이 여관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남자는 두리번거리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나는 골목을 그냥 지나쳤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 골목이었다. 그들의 곁을 불편하게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단내가 났다. 골목 입구에서 주춤거리자 과일가게 주인이 과도에 찍은 수박 한 조각을 불쑥 내밀었다. 미지근했지만 달았다. 좌판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과일이 시들고 있었다. 주인도 그 시든 과일처럼 무심했다. 나에게 과일을 사라고 채근하지도 않았다. 그는 부채를 휘휘 저으며 파리를 쫓았다. 나는 복숭아를 골랐다. 거스름돈을 꺼내러 주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골목의 젊은 연인이 내 뒤를 지나갔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박에 꽂혀 있던 과도가 햇빛에 반짝였다. 나는 과도를 뽑아들었다. 쉽게 쑥 빠졌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잔돈을 받지 않고 그냥 골목으로 들어섰다. 원피스 주머니에 과도를 숨겼다. 걸을 때마다 칼날 끝이 다리에 스쳤다. 과도를 만진 손가락이 불쾌하게 끈적거렸다. 골목의 그늘 속으로 몸을 숨기니 안심이 되었다. 카운터 청년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방 열쇠를 내주었다. 나는 방문을 닫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형철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피해자 가족 모임에도 나간다고 했다. 함께 다니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똑같은 고통을 지닌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은 오히려 내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억지로 회복하고 싶지 않았다. 생채기는 언제나 저절로 아물지 않던가. 아물지 못하는 깊은 상처라면 그 통증조차 익숙해지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디게 무뎌지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금세 웃을 수 있는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 담당의도 그런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며 참여하기를 권했지만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한단 말인가. 그날의 맑았던 새벽하늘에 대해서? 결혼식 준비에서 하루라도 벗어나자는 말을 했던 게 나였다는 사실? 약속 시간에 10분 늦게 도착한 건 형철이었다는 것? 그래서 결국 나와 형철이 인철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죄의식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칸, 그 자리에 앉아 죽게 된 건 전적으로 인철의 개인적인 불행이라는 결론이 될 것이다. 그 결론을 얻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말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졌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버릴 수도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응하지 않았다. 정신과마저도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치유란 인철을 잊는 것이 아니라, 인철을 잊을 수 없는 내 자신을 놔 버리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아랫배의 통증 때문에 몸을 동그랗게 움츠렸다. 허벅지에 둔탁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과도였다. 언제부터 울렸는지 모를 벨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어둑한 방에 더운 열기와 땀내,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가 맡아졌다. 벨 소리만 아니라면, 저 끔찍한 벨 소리만 아니라면. 나는 나를 의식의 세계로 불러내는 모든 것들이 환멸스러웠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인철의 선명한 흰자위, 그리고 피가 떨어지던 번득이던 칼날, 벨 소리, 수술실의 섬광이 어지럽게 섞여 나에게 쏟아졌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 누군가 나를 깨워 줬으면.

눈을 떴는데도 내 몸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나, 나 일어났어요. 그만 좀 흔들어요.”

그제야 침대에 눕혀졌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카운터 청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팔 좀 뗄래요? 아파요.”

청년이 놀란 듯이 내 몸에서 손을 뗐다. 내 목소리를 듣고도 믿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일어나 앉자 그제야 나에게서 떨어졌다.

“정말 괜찮습니까?”

완력으로 흔들었던 팔뚝이 욱신거렸다.

“병원에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청년이 불안한 듯 좀처럼 움직이질 않고 나를 바라봤다.

“물 좀 줄래요?”

장기 투숙하겠다는 것도 이상했는데, 잠시 외출한다고 나선 여자가 핏기 없는 얼굴로 절룩이며 돌아왔다. 혹시나 싶어서 전화를 넣었는데 받지 않았다. 방문을 두들겨도 기척이 없더라. 방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왔더니 시트가 붉었다. 손에 칼을 쥐었다. 놀랄 만했다.

나는 방을 바꿨다. 매트에도 얼룩이 배어 있었다. 시트만 갈아 주면 된다고 했지만 청년은 방을 바꾸는 것이 쉽겠다고 했다. 똑같은 구조에 똑같은 가구와 똑같은 커튼이 있는 다른 방으로 옮겼다. 청년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방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피 얼룩이 도드라진 하얀 시트를 안고 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소리 없이 방문을 잠갔다.

원피스는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벨 소리가 들렸던 것만 설핏 떠올랐다. 그때까지도 내 손에는 과도가 쥐어져 있었다.

 

소읍은 밤에도 조용했다. 커튼을 열어 보니 여관 입구의 반대쪽 거리가 보였다.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학생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남자, 빈 리어카를 몰고 가는 노파도 보였다. 취객 하나가 비틀거리면서 술집에서 나왔다. 일행이 따라 나오더니 그의 등을 두들겼다. 그가 속엣것을 게워 냈다. 힘든 건 나 혼자만은 아니다. 식구들은 내가 형철과 함께 산사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창문을 열었다. 습기가 많았다. 검은 구름이 빠르게 움직였다.

형철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어디에요?

―그냥 조금 쉬었다 갈게요. 집에는 얘기하지 말아요.

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형철 씨, 나 어린애 아니잖아. 그냥 잠시만 혼자 있고 싶어.

―누나.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형철의 숨소리만 들렸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취객이 술집으로 들어가고, 길거리의 사람들도 분주히 뛰기 시작했다. 형수, 형철이 다시 나를 불렀다. 우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나 때문에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형철이 가여웠다.

―더 울어요.

멀리 청년이 여관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바깥세상과 차단된 무거운 고요가 엄습했다. 전화기 너머로 형철의 통곡 소리가 여관방에 울렸다. 이제 형철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 인철과 연결된 그 어떤 것도 남겨 둬서는 안 될 것이었다. 형철의 눈물이 잦아들었다.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커튼을 내렸다.

 

벨 소리가 울렸다. 카운터 청년이었다.

―식사하셔야죠. 화장대 서랍을 열어 보면 야식집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내가 계속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 없어요.

―저, 뜨거운 국물이라도 좀 드셔 보시겠어요?

나를 보자 청년이 벌떡 일어섰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졌다. 얼굴도 붓고 몸도 무거웠다. 청년은 내 느린 걸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자세히 보니 기껏해야 스물 두엇 정도로 보였다. 카운터 뒤 테이블에서 청년과 나는 갈비탕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거센 빗소리가 들렸다. 에어컨 때문에 실내는 서늘했다.

“술은 안 팔아요?”

“맥주는 있어요. 그런데 그 몸으로 드시게요?”

“조금 마시면 좋겠는데.”

그는 내실에 들어가더니 맥주 두 병과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나왔다. 맥주병은 보기만 했는데도 선듯 소름이 돋았다.

“난, 그냥 소주 마실게요.”

청년이 유리컵을 내밀었다. 나는 조금 따라 한 번에 삼켰다. 금세 명치끝이 뜨거워졌다. 쉽게 식지 않는 갈비탕은 맛있었다. 폭우가 여관 건물을 흔들어댔다.

남은 소주의 반 정도를 마셨을 때, 군복을 입은 청년과 앳된 아가씨가 입구로 들어섰다. 군인은 왼쪽 어깨가 다 젖어 있었다.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가씨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나는 소주를 조금 더 마셨다. 그들이 객실로 올라가고 청년은 다시 갈비탕 앞에 앉았다.

“어려 보이는데……”

“이런 시골은 단속도 별로 없어요.”

“아뇨, 그쪽이요.”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콧등에 땀이 맺혔다. 술과 뜨거운 국물 때문에 나도 땀이 났다. 몸이 땅에서 조금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에요?”

“아뇨, 형님 일인데 제가 잠깐 보는 중이에요. 형수가 지금 병원에 있거든요.”

나는 병원이라는 말에 경직되었다.

“안색이 또 안 좋아요.”

나는 피곤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청년이 무언가 더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나도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청년이 빈 그릇 두 개를 포개어 들고 나갔다. 출입구가 열리자 빗소리가 함성처럼 쏟아졌다. 빗소리와 술기운 때문이었다. 인철이 보고 싶었다. 그와 보낸 8년이라는 시간을 한순간에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비칠거리면서 방으로 올라왔다.

 

인철 대신 형철이나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아득해졌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천장이 내려앉지는 않을까, 자동차가 내 방 창문을 깨고 돌진할까 봐 두려웠다. 손을 씻다가도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져 화상을 입게 될까 봐, 텔레비전이나 핸드폰이 터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말도 안 되는 상상 때문에 괴로웠다. 말이 안 되는 것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세상이었다. 더한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불완전해서 불안했다. 인철이 아니라 형철이 그 칼에 찔렸더라면, 그 칼이 내 가슴을 후볐더라면 조금 더 수월했을까. 아니, 모든 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샤워를 하다 말고 벽이 무너지는 것 같아 알몸으로 뛰쳐나오거나 밥상 위로 먹던 걸 토해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작은 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느닷없이 눈물이 떨어지면 좀처럼 멎지 않았다. 내 몸뚱이 하나가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나를 부둥켜안고 같이 울던 엄마나 여동생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내 뺨을 후려치며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놀란 엄마는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고, 여동생은 그런 집이 싫어 귀가가 늦어지거나 거침없이 외박을 했다. 아버지와 여동생의 갈등은 엄마와 아버지의 다툼으로, 엄마와 여동생의 싸움으로 이어졌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구석에서 계속 울어댔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두 지쳤다. 원망하거나, 복수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치 남겨진 자들의 운명 같았다.

콰광 쾅. 천둥소리에 방이 흔들렸다. 나는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당장이라도 청년이 달려와 칼을 휘두를 것 같았다. 좀 전에 먹었던 갈비탕과 소주에 독극물이 들어 있을 것 같았다. 번개를 맞은 여관에 화재가 나고, 가스 폭발로 이 작은 소읍이 통째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누가 확신하겠는가. 온몸이 덜덜 떨렸다. 번쩍, 번개가 쳤다. 깜깜했던 방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그 순간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이 보였다. 나는 저승에 다다르지 못해 이승을 헤매는 혼백 같았다. 무서웠다.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죽기 싫어서, 살고 싶어서 무서운 것이었다.

 

갈비탕을 함께 먹은 이후로 나는 카운터 뒤에서 청년과 찬 맥주를 마시곤 했다. 어린 연인들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술에 취한 중년들이 불쑥불쑥 들어섰다. 손님을 맞을 때면 청년의 어깨뼈에 자꾸 눈길이 갔다. 면 티셔츠 위로 드러난 청년의 골격이 가냘픈데도 강해 보였다. 훔쳐보는 모양 같아서 얼른 고개를 숙이면 불규칙하게 또각거리는 그녀들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여관에 들어서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문 받은 맥주를 들고 청년이 객실로 올라간 사이 들어온 손님에게 내가 키를 건네기도 했다. 두어 번은 내가 손님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부스스 일어나 객실로 올라갔고 오후가 될 때까지 잠을 잤다. 일어나면 길 건너편의 시장통을 걸었다. 매일 같은 풍경이었는데 매번 새롭게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와 몸짓, 그들이 펼쳐 놓은 물건들이 나에게는 너무 눈부셨다. 시장 끄트머리에는 공중전화가 있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전화기를 볼 때마다 나는 형철과 식구들을 생각했다.

가끔은 여관 앞의 그늘에 서서 좁은 골목 저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나 아닌 사람들은 모두 건강해 보였다. 저들과 내가 달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환한 거리의 사람들을 보다 보면 어느새 청년이 내 옆에서 담배를 물었다. 청년이 여관으로 들어간 후에도 담배 냄새는 골목에 머물렀다. 매일 소나기가 간헐적으로 쏟아졌다. 청년과 나는 갈비탕이나 육개장을 시켜 놓고 맥주를 마셨다. 항상 소리를 죽인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연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었으므로 취하거나 혹은 속내를 말할 만큼의 긴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보낸 보름여 동안, 처서도 지나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다.

그 사이 통원 치료를 받으며 조제약을 먹었다. 마지막 치료를 받던 날, 간호사가 생리 주기가 바뀔 거라고 이야기해 줬다. 인철은 남자 아이면 윤성, 여자 아이면 윤주로 하자고 했다. 인철이 죽고, 인철이 만든 아이도 죽었다. 아이를 죽인 건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였다.  

 

“저는 곧 떠납니다.”

청년이 고개를 숙이고 맥주잔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조금 붉었다.

“저도 오래 있지는 않을 거예요. 조만간에…….”

“그럼요, 제자리로 돌아가셔야죠.”

남녀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둘은 싸운 사람들처럼 거리를 두고 여관 뒷문으로 나섰다. 하룻밤도 함께 있지 못하는 저들의 불안한 발걸음 소리가 처연하게 들렸다.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이제 저들은 어디로 갈까. 청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방금 나간 남녀가 연모의 정을 치른 방 호수를 확인하고 청소 도구를 들고 올라갔다. 여자의 머리카락을 줍고, 시트를 갈아 끼우고, 욕실의 물기를 닦아 내는 동안 청년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미지근한 맥주를 마저 마셨다. 내려온 청년에게서 악취가 났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청년의 손에 썩은 복숭아가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내가 아이를 지운 날에 사 온 복숭아였다. 문드러진 복숭아가 담긴 봉지에는 미망(未忘)의 흔적이 그악스럽게 매달려 있는 것처럼 악취가 났다. 그 악취의 끄트머리에는 희미하지만 설핏 단내가 맡아졌다. 문득, 훔친 과도가 떠올랐다.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청년은 골몰해 있는 내 앞에 좀 전의 모습처럼 조용히 앉았다. 시큼한 땀내가 났다. 풋과일의 떫은맛처럼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그러자 잠에서 깬 듯이 정신이 명료해졌다. 되돌아가야 한다면 지금이어야 하지 않을까. 청년이 팔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청년의 두 눈을 빤히 쳐다봤다.

내실에 들어섰을 때, 청년이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나도 잘 몰랐다. 그렇지만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었다.

청년이 천천히 나를 눕혔다. 내 아랫도리에 청년의 그것이 묵직하게 눌렸다. 나는 청년의 허리춤을 풀었다. 밖에서 손님의 기척이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가 오려는지 온몸은 금세 눅진해졌다. 정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청년과 나는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웠다.

“무위사가 여기서 먼가요?”

“버스로 한 삼십 분 들어가면 돼요. 왜요?”

“그게…….”

“아……. 참 조용한 절입니다.”

청년이 질문을 거두는 바람에 어색해졌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따지면 지금껏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나는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았고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러니 나에 대해서 입을 뗄 수 없었다. 청년에 대해서 궁금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것은 나를 말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나의 과거를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기대고 싶었다. 그럴수록 기를 쓰고 벗어나야 했다. 나는 더욱 혼자여야 한다. 옷을 챙겨 입고 일어섰다. 청년은 자는 척 두 눈을 꾹 감았다. 내가 누웠던 자리에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다음날 새벽, 나는 군내 버스를 타고 무위사(無爲寺)에 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공기는 눅눅했다. 평지 사찰이어서 입구에서부터 저만치의 본당이 보였다. 돌로 마감된 길이 본당까지 이어졌다. 나는 본당 앞의 커다란 나무에 기대 큰 숨을 들이켰다. 오랜 시간을 고스란히 버텨 왔음을 증명하듯이 나뭇결이 고운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매년 인철의 재를 올리게 될 곳이었다.  

본당에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 불경을 읽는 초로의 여인만 있었다. 나는 합장을 한 손을 가슴에 모았다. 고개와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숙였다. 부처를 떠받듯이 손바닥을 올리고, 부디……. 나는 깊숙이,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다. 낮게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렸다.  

박인철, 오랜만에 발음해 보는 그의 이름이었다. 이름을 적던 본당의 여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바람을 말하라는 뜻이었다.

“이름만 써 주시면 돼요.”

검은 기와에 흰색으로 박인철 세 글자가 적혔다. 여인이 나에게 합장을 했다. 나 역시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무위사를 나왔다. 언제 또 오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돌아보았다. 극락보전 앞의 커다란 나무가 반짝였다. 이파리에서 차르륵 소리가 났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버스에게 만난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나는 터미널 매점에서 우산을 하나 샀다. 문득 비를 맞으며 뛰던 청년의 모습이 떠올라 똑같은 우산 하나를 더 구입했다. 심한 공복감이 몰려들었다.

여관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낯선 사내가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뒤늦게 호수를 말했다. 사내가 꾸벅 인사를 했다. 그때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어르는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사내가 서둘러 내실로 들어갔다. 짙은 이목구비가 청년과 닮아 있었다. 나는 카운터에 우산을 내려놓고 객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짐을 쌌다. 떠날 때가 되었다.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이걸 놓고 가셨더라고요.”

사내가 우산을 내밀었다. 내 손에는 두 개의 우산이 들려졌다.

“동생에게 들었습니다. 많이 도와주셨다고요. 아이를 낳느라 동생을 입대 전날까지 일을 시켰지 뭐예요. 동생이 인사 못 드리고 간다고 대신 전해 달라고 했어요. 아, 참.”

사내가 내실에 들어가 봉투 하나를 들고 나왔다.

“잃어버린 물건, 찾았다면서 전해 달라고.”

사내는 내가 좁은 골목을 나설 때까지 여관 입구에 서 있었다. 나는 열흘 간 보냈던 소읍의 거리를 잊지 않기로 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여름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우발적인 사건들과 그로 인한 사상자가 계속 발생했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누군가가 될 것이다. 세상에 논리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나는 가까스로 받아들였다. 봉투에 들어 있던 것은 끝이 뭉뚝하게 잘린 과도였다.

참가하지도 않은 신행 체험의 수계증을 받던 날, 중절 수술 후 첫 생리 혈이 비쳤다. 그날은 모처럼 비가 오지 않았다.  《문장웹진 8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