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낭독

 

은밀한 낭독

 

라유경

 



  

 

 

소리가 마이크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잡음 제거 기능이 탁월한 지향성 마이크는 오로지 목소리만 잡아낸다. 마이크와 입술 사이에 주먹만큼의 거리를 유지한다. 내 목소리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녹음을 주문한 사람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마이크 앞에 서면 몸 전체에 긴장이 스며든다. 무엇보다 또박또박 발음해야 하므로 입술과 혀를 움직이며 긴장을 푼다.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스펙트로그램이 목소리의 높낮이에 따라서 변화한다. 입술이 벌려졌다 다물어지는 것처럼 주파수 대역폭이 원을 그리며 늘어났다 줄어든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원고를 건드리지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

‘책을 읽는 행위는 작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사유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누가 썼는지 모를 이야기를 낭독하며 그들의 눈이 되어 읽는다. 생각할 여지없이 대본을 읽고 발음하면 되는 일이므로 어려운 일은 없다. 머릿속과 입 속, 말라 가는 입술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젖기를 반복한다. 이번 원고는 수능을 앞둔 고3 학생을 위한 기도문이다. 수험생의 어머니가 보내온 글 같다. 학생 이름은 필경. 이과 학생이었고, 외국어영역 등급이 낮으며 서울 소재 학교의 천문학과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필경 학생은 이 기도문을 자기 전에 듣는 걸까. 나는 여러 모습들을 상상하며 기도문을 낭독한다. 기도문의 특성에 맞게 최대한 간절함을 담아 경건하게 읽어 내려간다.

원고 녹음을 끝내고 나면 배가 고프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정확한 발음으로 낭독하고 나니 턱이 얼얼하고 입술이 바짝 말라 있다. 달궈진 얼굴을 침묵하며 식히는 동안 지운이 내 목소리를 컴퓨터에 MP3 파일로 저장한다.

 

운과 나는 녹음이 끝나자마자 함께 식당으로 갔다. 우리의 단골 식당은 베트남 쌀국수 집이다. 베트남 현지인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어서 국물 맛이 여느 다른 체인점과는 달랐다. 국물을 떠먹으며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메뉴 주문은 지운이 담당했다.

“양지 쌀국수 하나랑 모둠 쌀국수 하나요.”

“양지 쌀구쑤 하나랑 모두움 쌀구쑤 하나여?”

종업원들도 모두 베트남 현지인이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외국 도시 안에 만들어진 한국 식당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물을 마시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요즘 너 발음 이상한 거 알아?”

“뭐가?”

“자꾸만 새잖아.”

나도 모르게 손톱 끝이 입술에 닿아 있었다. 아랫입술에 보푸라기처럼 일어난 거스러미를 떼어냈다. 뜯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입술에 닿아 있었다. 뜯어도 자꾸만 트는 입술. 날씨가 건조해지고 입술이 트면서 거스러미를 떼어내는 습관이 생겼다. 보습제를 발라도 입술은 계속 따가운 잔디밭이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서로 부딪칠 때마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났다.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입술이 물에 젖어 부푸는 느낌이 들었다. 입술을 비죽 내밀고 양 볼에 공기를 가득 채웠다. 얼굴이 숨으로 가득 찬 풍선이 된 것 같았다.

입술이 트면서 발음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누구보다도 표준어로 정확하게 발음하던 나였다. 말이 없던 내가 말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는 건 그 덕분이다. 지운은 나의 정확한 발음을 좋아했다. 그것이 내가 마이크를 넘겨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처음에는 지운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메일로 받은 글을 정리하고, 여러 음향 효과, 배경음악 등을 선별하거나 음성 파일을 편집하고 저장했다. 지운은 말이 많지만 호흡이 좋지 못하고 발음이 부정확했다. 그는 초콜릿이나 사탕 등 단것들을 많이 먹었고, 입안에 침이 자주 고여 낭독할 때 침을 삼켰다. 지운의 낭독 파일을 받은 고객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차라리 자신들이 읽는 게 낫겠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낭독 서비스’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자, 지운이 마이크 앞에 나를 앉혔다.

지운으로부터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으니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 목이 말라 연신 물을 마셔댔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컵이 비어 있었다.

“여기 물 좀 주세요.”

종업원은 내 말을 듣더니, 하얀 무가 담긴 접시를 들고 왔다. 식당은 점심시간이 되자 금세 손님들로 가득 찼다. 종업원을 다시 부르려 했으나, 여기저기서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여 그만두었다.

 

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고객들이 낭독을 듣고 만족스러워하는 걸 보니 즐거워졌다. 내 목소리와 어조, 발음이 생각보다 좋다는 걸 깨달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한테만 보내온 글을 읽으면 그들과 내가 비밀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곤 했다. 보내오는 글마다 다른 얼굴들이 그려졌다. 상상 속의 그들은 낭독을 들으며 입술을 벌려 웃거나, 미소를 지었다.

특히 낭독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에서 전학 온 남자아이. 그 친구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말 한 마디만 툭 던졌는데도 시선이 저절로 갔다.

“니 이름이 뭐꼬?”

같은 알파벳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어 발음이 서로 다르듯 같은 한글도 서울, 전라도, 경상도 발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게는 매우 이국적으로 들려오는 사투리를 한 번쯤 배워 보고 싶었지만 경상도 아이와 말을 섞어 볼 기회가 없었다. 그 아이는 말이 없는 나와 굳이 대화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듬을 타며 껑충 뛰어다니는 경상도 억양의 말은 느릿느릿 기어 다니기만 하는 내 말과 서로 만났던 적도, 엉켰던 적도 없다.

말이 없는 나는 언제나 '없는' 사람이었다. 실수로 단어를 잘못 발음했던 적이 있다. '부모님을 공경하자'를 '부모님을 공격하자'로.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이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날 이후로 정확한 표준어 발음으로 신중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반면 사투리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경상도 남자아이는 언제나 '있는' 사람이었다. 어디에 있어도 그의 사투리가 들려왔고, 고개만 돌리면 사투리로 말하는 그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가 입만 열면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경상도 남자아이를 보면 보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매 끝이나 바지 주머니, 털 소재 목도리 등 그가 입고 걸친 것들에는 유난히 보푸라기들이 많이 일어나 있었다. 경상도 아이의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나는 그 보풀이 분명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부대끼면서 생긴 거라고 추측했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 전교 회장을 맡은 그 아이는 운동장 구령대에서, 교실 교단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자주 손에 쥐었다. 들리는 소문으로 그는 칠 년째 사법고시에서 낙방해 지금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티셔츠 소매에 일어나 있던 보풀이 떠오르거나, 경상도 사투리 억양의 목소리, 말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운과는 국어사전 단어 데이터베이스 구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다. 그와는 쉽게 친해졌다. 말이 없는 내게 말이 많은 지운은 접착력이 강한 테이프처럼 잘 달라붙었다. 그와 있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만히 듣기만 해도 유쾌했다. 끊임없이 문장을 이으며 말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나는 그가 아는 단어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운은 모르는 어휘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국어사전을 책 읽듯 여러 번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문 학술 용어나 고어(古語) 등 생소한 단어가 나오면 그는 바로 발음해 보았다.

말하는 것을 즐기는 지운은 입을 일 분도 가만 두지 못했다. 그는 한글만 보면 무조건 소리 내어 읽었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 그저 목소리 내는 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말을 한다고 했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낯설어 되도록 말을 많이 한다고. 그러다 보니 무엇이든 읽고 싶어졌다고 했다. 보이는 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글까지도. 국어사전 데이터베이스 구축 일은 끝나 가고 있었고, 나는 다른 일을 찾아봐야 했다. 지운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지운과 같이 있으면, 나도 말을 많이 한 것처럼 입 속이 시원해졌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입을 크게 벌려 웃고 감탄사를 자주 내뱉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운을 따라 낭독 서비스를 함께 시작했다.

낭독의 발견. 낭독의 밤. 신간 낭독회. 책 읽어 주는 어플. 텔레비전을 켜도, 카페를 가도, 핸드폰을 열어도 사람들은 언제나 낭독 중이었다. 문장들은 사람들에게 낭독되면서 숨을 쉬었다. 각각 다른 목소리를 빌려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지운과 나는 이메일을 통해 원고를 받고, 그것을 낭독한 후 MP3 파일로 제작한다. 분량 제한은 특별히 정해 두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대로 읽어 준다는 점이 우리가 세운 원칙이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낭독봉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무료로 진행된 교육에는 대학생과 주부,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아나운서가 강사로 초빙되어 호흡이나 발성, 표준어 발음 등을 지도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말투는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길 만큼 호소력이 있었다. 그녀는 교육생들에게 말했다.

“낭독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묵독(?讀). 소리 없이 자기만을 위해 눈으로 읽음. 둘째 음독(音讀). 읽는 이 스스로 만족하며 소리 내 읽음. 셋째 낭독(朗讀). 상대방이 내용을 수용토록 예술적으로 읽음. 낭독은, 정확한 발음으로 감정을 넣어서 읽는 게 포인트입니다. 자, 한번 따라해 보세요.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나는 것이 생각이므로 생각하지 않는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 생각한다.”

지운은 매우 신나게 아나운서의 말을 따라했다. 조용히 아나운서의 말을 경청해야 할 때도 그는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나운서는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언급했다.

“가성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낭독할 때 이 점은 꼭 주의해 주세요.”

우리는 교육을 받은 후 광고지를 만들어 지하철 광고판 모퉁이와 아파트 게시판에 꽂아 두었다. 녹음은 지운이 미리 알고 있던 녹음실에서 진행했다. 그는 잠깐 음악을 공부한 적이 있다고 했다. 광고지를 배포한 후 드문드문 고객이 생겼다. 지운의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고객들이, 보이는 글을 낭독해 주기를 바랐다. 주로 신문기사나 일기예보, 소설책, 학술논문, 교과서 등이었다. 시험 공부하는 학생이나 무료한 노인들, 신문이나 책 읽을 시간을 절약하려는 취업준비생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르자, 지운이 예상했던 고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애편지, 일기 등을 보내오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바라지만, 읽어 줄 사람이 없거나 보여줄 용기가 부족한 사람의 글이었다. 간혹 난처한 조건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연예인 P의 목소리처럼 읽어 주세요. 애교 있는 목소리로 읽어 주세요. 속삭이면서 읽어 주세요……. 어떤 사람은 소설 속 야한 장면만 영상 캡처하듯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재미없는 글은 낭독하는 게 곤욕이었다.

급료는 1분당 300원씩 계산해 계좌로 입금받는다. 핸드폰 통화료보다 약간 비싼 가격이다. 최근에는 낭독을 요청해 오는 고객들이 부쩍 줄어들었는데, 그중 한 명이 끈질기게 두 달째 꾸준히 메일을 보내온다. 성별도, 이름도, 직업도 유추할 수 없는 그는 W라는 이름으로 매주 A4 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보내왔다. 받을 때마다 이야기가 이어져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픽션이었다.

 

때 호루라기 제, 거기에서 제일 괜찮은 걸로 사와.”

지운의 전화였다. 그는 말하는 도중에 딸꾹질을 했다. 호루라기를 사오라는 말만 간단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 녹음에 쓰일 물건인가 싶었다. 새로운 고객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거기'에서 사오라는 걸까. 지운의 목소리는 매우 들떠 있었다.

녹음실에 가기 전 문구점에 들러야 했다. 다행히도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 문구점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호루라기를 구입했다. 오랜만에 호루라기를 입술 사이에 물고 불어 봤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숨을 쉬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다.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문을 열자마자 지운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지운은 최근 들어 노래를 자주 불렀다.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목소리는 말할 때와는 다른 음색이었다. 가성을 주로 썼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목소리에 익숙한 듯 편안한 표정으로 노래를 계속 불렀다. 녹음하는 시간 외에 그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오랜 시간 머물렀다. 그의 눈은 모니터를 향하고, 손은 자판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그는 동시에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말들을 지껄였다. 지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허공에 흩어지는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말들이었다. 혹시 전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쳐다보면 지운의 양쪽 귓구멍이 훤히 보였다. 드라마 대사를 읊으며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컴퓨터로 꽤 많은 분량의 글을 쓰는 것 같았다. 말을 많이 하는 만큼 글도 열심히 쓰는가 보았다. 하지만 컴퓨터에 저장해 놓지 않아서 찾아 읽을 수는 없었다.

심취해서 노래를 부르는 지운의 귀에 대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노래를 멈추었다.

“시끄러워!”

지운은 호루라기를 보자마자 의아해했다. 들떠 있던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까 전화해서 사오라고 했잖아.”

“무슨 소리야. 보푸라기 제거기 사오랬잖아. 그리고 이거, 네가 고장 낸 거지?”

지운이 컴퓨터 앞에 놓인 보푸라기 제거기를 들어 스위치를 켰다. 잠시 동안 칼날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금세 멈추었다. 지운이 언제 샀는지 모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보는데.”

“그럼 여기 널려 있는 입술 거스러미는 뭔데?”

컴퓨터 자판기 위에 널려 있는 입술 거스러미를 가리키며 지운이 말했다. 오전에 잠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보푸라기 제거기가 놓여 있었나. 잘 떠오르지 않았다. 지운에게 할 수 있는 변명이 없었다. 나는 말없이 호루라기를 컴퓨터 옆에 내려놓았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장소, 내게 잠시 머물렀던 물건에 나도 모르게 흔적이 남았다. 간밤에 누워 있던 침대 위, 잠시 앉았던 지하철 전동차 의자 위에는 떼어낸 입술 거스러미가 널려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들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곳저곳으로 이동했다. 마치 흰 벌레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지운은 카디건에 일어난 보푸라기들을 손톱으로 떼어내고 있었다. 손톱이 짧아 떼는 데 애를 먹는 모양이었다.

“이것 좀 떼어 줘.”

내가 손톱이 길다는 걸 눈여겨봤는지, 그가 보푸라기를 떼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운이 벗어 놓은 카디건을 들어 보푸라기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오돌토돌 돋아나 있는 보푸라기들 때문에 카디건이 지저분해 보였다. 지운은 그런 와중에 시끄럽게 말을 했다. 그의 큰 목소리가 내 귓속에 들어와 따가웠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그의 말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보푸라기를 거의 다 떼어내고 있는데, 그런 나를 지운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것 좀 들어 달라니까.”

보푸라기를 다 떼어내지 못한 채 지운을 봤다. 짐을 들어 달라는 의미인가 싶었지만 그는 A4 용지 한 장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지운은 종이를 보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지루했다. 카디건에 일어난 보푸라기 중 가장 큰 것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손을 뻗어 그것을 떼어내자 카디건 실밥이 함께 풀려 나왔다. 실밥이 끊이지 않고 따라 풀리면서 구멍이 생겼다. 당황스러워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하품이 나왔다. 지운이 그런 나를 보자마자 말을 멈추었다. 지운은 원고를 읽는 데 온 정신이 집중돼 카디건에 구멍이 난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보더니 내게 원고를 주면서 읽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일단 카디건의 구멍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다. 풀린 실밥을 뭉쳐 구멍을 메우려고 애썼다. 잠시 조용해진 지운이 원고를 던지고 말없이 녹음실을 나갔다. 책상 위에는 광고지가 여러 개 프린트 되어 있었다. 고객이 부쩍 줄어들어 지운이 광고지를 새로 만든 모양이었다. 나는 문구를 소리 내어 읽으며 광고지를 잘랐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읽어드립니다. 마음속에서 녹슬고 있는 문장들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 Readwow@naver.com 이나 트위터 @Readwow 혹은 010 9293 4526 으로 연락 주세요. 카카오톡도 환영입니다.’

 

안해공원 앞입니다. 불안해공원 앞.”

귓가에서 안내 방송이 맴돌았다. 불안해공원? 그런 이름이 있었나. 안내 방송이 멈춘 후 눈을 떴다.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모두 심각한 얼굴이었다. 버스 운전기사로부터 납치라도 당한 표정이었다. 버스는 크게 흔들리며 도로 위를 달렸고, 운전기사는 핸들을 격하게 돌렸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안전 바를 손으로 꽉 쥐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유난히 더 많이 탄 것 같았다. 급히 버스 앞쪽 전광판을 봤다. 순식간에 승객들 표정이 온화하게 변했다. 정거장 이름이 ‘보라매공원 앞’이었다.

‘보라매’를 반복해서 발음해 보니 ‘불안해’라고 들리기도 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귀로 들은 단어와 눈으로 본 단어가 서로 달랐던 적이.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대충 넘겼지만 몇 번 거듭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자 갑자기 한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된 것 같았다. 아니면, 자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다른 발음으로 통역해 주는 특수 보청기를 귓속에 껴 넣은 것일지도 몰랐다.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졌다.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어 후벼 팠다. 보청기는커녕, 귀지도 묻어 나오지 않고 깨끗했다. 열린 창문 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티셔츠 위에 떨어진 입술 거스러미를 털어냈다.

주변 소리를 잘못 들은 걸 확인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입술 거스러미를 뜯고 있었다. 거울을 봤다. 아랫입술이 바짝 말라 가뭄이 들 듯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보풀이 일어난 낡은 천처럼 입술이 너덜너덜했다. 낭독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입을 다물고 있었고, 그때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맞대어 자꾸만 비볐다. 비비면 비빌수록 입술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거스러미가 더욱 심하게 일어났다. 반면 말이 많은 지운의 입술은 매끄럽고 촉촉했다. 쉴 새 없이 입술을 움직였고,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주름이 조명에 반사되어 빛났다.

정신을 차리고 입술에 보습제를 듬뿍 발랐다. 입술이 트고 발음이 부정확해진 이후로 지운이 은근히 압박을 주었다. 두 명의 고객이 더 이상 낭독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발음이 예전 같지 않아 속상했다. 지운이 낭독했을 때처럼 고객들이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낭독 서비스의 고객이 없어지게 되면 나는 지운과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할 터였다. W의 원고도 더 이상 낭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W는 그만두지 않고 원고를 꾸준히 보내왔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통장으로 낭독료를 입금해 올 때마다 입금자 명을 달리했다. ‘목소리 좋아’, ‘발음 우아해’, ‘완벽한 낭독’ 등. 모두 낭독을 칭찬하는 말들이었다. 은행에 가서 통장 정리하는 시간이 매번 기다려졌다.

보라매공원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낭독 연습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W가 보내온 원고를 소리 내지 않고 읽었다. 원고는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다. 벌써 여덟 장째 보내오는 W의 글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노인의 쓸쓸함과 욕망을 건조한 문체로 담담하게 서술해 나갔다. 비문이나 오타가 거의 없는 문장들이었다. 나는 W가 작가 지망생 혹은 무명작가일 거라고 짐작했다. 퉁퉁 불어 터진 입술을 벌려 소리 내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조금 큰 목소리로 말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글을 반복해서 낭독하다 보니 가슴과 허벅지 위로 떨어지는 입술 거스러미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동안 W는 다양한 요구를 해왔다. ‘레’음으로 읽어 주세요. 동요 멜로디를 입혀서 읽어 주세요, 낙타가 걷는 느낌으로 읽어 주세요……. 이번에는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해 주세요’였다. W는 고향이 경상도일지도 몰랐다. 지운과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경상도 남자아이가 생각났다. 그때 미리 사투리 교습을 받아 놓을 걸 그랬나. 서적을 뒤져 봐도 마땅한 사투리 교습 교재가 없었다. 모두 국어학 학술 관련 서적이었다. 주변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없어 난감했다. 그렇다고 경상도에 무작정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약속한 날까지 5일도 남지 않았다. 요구한 대로 만족스럽게 읽지 않으면 W가 더 이상 원고를 보내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닥치는 대로 경상도 사투리 대사가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를 다운받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무작정 따라했다. 입술이 튼 이후로 발음에도 문제가 생겨 더 많이 연습해야 했다.

경상도 발음의 특징은 억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경상도 사투리에는 ‘밥 먹었니?’를 ‘밥 문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축약형이 많았고, 문장의 처음과 끝의 어조를 올려야 했다. 마치 외국어를 발음하는 것처럼 어려웠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몇몇 단어들은 사투리로 일일이 찾아 ‘번역’해야 했다. W의 원고에 억양을 나타낼 수 있는 기호를 그리며 연습했다. 문장 위에 억양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곡선을 그렸다. 흰색이 보이지 않을 만큼 종이가 지저분해졌다. 사투리 발음이 그럴듯하게 될 때까지 낭독 연습을 하는 사이에 입술이 저절로 벌리고 오므리고를 반복했다. 계속해서 원고를 읽다 보니 너덜너덜해진 종이 위에 적혀 있는 W의 문장들이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보풀처럼 보였다.

W의 원고 낭독을 경상도 사투리로 연습하면서 쉴 틈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입술 거스러미를 떼어내는 일이 줄어들었고, 트는 것도 점차 나아지는 듯했다. 떨어지는 거스러미가 없어 주변이 깨끗한 게 어색할 정도였다.

 

W의 원고 속 주인공은 서울 주택가에 사는 노인으로 가수가 되고 싶어 노래 경연대회를 찾아다녔다. 경연대회에 나갈 때마다 예선에서 탈락하는 내용이었다. 대화도 적어 경상도 사투리로 원고를 읽는 게 난감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녹음에 들어갔다. 마이크 앞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감정을 최대한 살리며 낭독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스펙트로그램의 폭이 크게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침이 마구잡이로 입술에, 마이크에, 원고 종이에 튀었다. 지운은 전과 달리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표정도 좋지 않았다. 카디건에 생긴 구멍을 발견해서일까. 녹음이 끝나도 지운은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고 모니터만 보면서 글을 계속 썼다.

“무슨 글을 그렇게 쓰는 기가?”

“…….”

“내도 좀 비줘라.”

“…….”

“카디건 때문에 그래? 내가 하나 사줄게.”

“한 명이 또 그만뒀어.”

달력을 봤다. 어떤 고객인지 짐작이 갔다. 필경 학생이 수능을 봐서 그런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내 낭독이 좋지 않아서 그만둔 게 아니라고.

“그럼 내가 고객이 될게. 네가 읽어 주면 되잖아.”

“……들어 주기는 할 거야?”

“당연하지.”

“됐고, 중국인 전화번호 알아?”

“새로운 고객이 중국인이야?”

“……보푸라기나 주워.”

“보푸라기? 다음엔 잘 떼어 줄게. 미안.”

지운은 중국집 전단지를 보며 전화를 했다. 나에게 상의 없이 짜장면 두 개를 시켰다. 발바닥으로 무언가를 밟은 느낌이 났다. 바닥에 호루라기가 떨어져 있었다.

 

장 정리를 했다. W의 이름이 한 줄 더 늘어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매번 해오던 시간에 입금해 주었다. 이번 입금자 명은 ‘경상도 사투리 최고’였다. 그도 매우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그가 다음에 보내올 원고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지운에게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지운일까.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다짜고짜 자신이 W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W입니다.”

“…….”

그에게 내 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지운이 새로 붙였다는 광고지에 내 번호를 썼는지도 몰랐다.

“다음 원고는 MP3 형식이 아니라, 전화로 낭독해 주시면 안 될까요? 돈은 더 드릴 수 있습니다.”

“…….”

W의 목소리는 의외였다. 상상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30대 평범한 회사원을 떠올렸었다. 꿈을 좇아 성실히 글을 쓰며 아내와 자식을 돌보는 가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화기 건너편에서 자신이 W라고 밝히는 사람은 목소리가 매우 작았고, 가성으로 말하는 듯했다. 소심한 사람 같았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그려지지 않았지만 남자인 건 분명했다.

“이 번호로 다음 주 이 시간에 전화하겠습니다.”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다.

“다음 낭독은 …… 해주세요.”

W의 말이 끊기면서 들렸다. 재채기가 멈춘 뒤 큰 목소리로 W에게 물었다.

“죄송한데,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수화기 건너편이 조용했다.

“다음 낭독은 묵음을 읽어 주세요.”

그가 이어서 뭐라고 말을 했지만 은행 ATM 기계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발신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끝없이 울릴 뿐이었다.

 

음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했다. W로부터 새로운 메일이 와 있었다. 제목이 ‘제목 없음’이었고, 내용도 마찬가지로 ‘내용 없음’이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첨부된 파일명은 ‘빈 문서1’이었다. 용량이 16KB이었다. 문서를 펼쳐 보니 백지였다. 프린트를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묵음’을 국어사전으로 검색했다. 묵음¹(默吟) ‘소리 없이 시를 읊음.’ 또 다른 뜻도 있었다.

묵음²(默音)

발음되지 아니하는 소리. 국어의 경우, 어중(語中)에 세 자음이 연속되면 처음 두 자음 가운데 하나는 발음되지 아니하는데, ‘젊다’가 ‘점따’로 발음될 때의 ‘ㄹ’, ‘없다1’가 ‘업따’로 발음될 때의 ‘ㅅ’ 따위다.

문서정보를 클릭했다. 글자 수 1531자. 빈 문서가 아니라, 꽉 찬 문서였다. 혹시 투명한 글자로 쓴 건 아닐까. 글자 색깔을 봤다. 흰색이었다. 빈 문서를 마우스로 천천히 드래그 했다. 검정색 바탕이 늘어날수록 보이지 않던 글자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말인 줄 알았던 글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노인이 매번 탈락하던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합격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끊겼다. 묵음으로 낭독해 달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두 번째 묵음의 뜻에 따라 단어의 받침에서 발음되지 않는 것들을 일일이 발음해 보았다. 아무리 정확하게 발음하려 해도 무엇이 올바른지 알 수 없었다. W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지운이 나를 보자마자 W로부터 메일이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W의 문서 창을 급히 닫았다. 지운은 지하철이나 아파트 게시판마다 광고지를 붙였지만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며 불평이었다. W의 것이 아니면 이제 더 이상 녹음할 원고가 없었다. 나는 W가 전화를 걸어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왠지 지운에게는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W가 나한테만 은밀히 부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드티에 생긴 보푸라기가 떼어내도 계속 생긴다며 지운이 혼잣말을 했다. 손톱을 바짝 깎아 보풀이 잘 떼어지지 않는다고. 아직 보풀제거기를 고치지 않은 듯했다. 보풀을 떼어 주기 위해 다가갔지만, 지운은 나를 못 본 척했다. 그는 문구점에서 투명 테이프를 사서 떼어내야겠다며 지갑을 챙기고 나갔다.

혼자 남아 W의 원고를 천천히 읽었다. 집중하며 읽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낭독 싸비쓰가 뭐시가?”

“무엇이든 읽어 주는 서비스예요.”

“뭘 읽어 주는기가?”

“본인이 원하는 글이면, 모두 읽어 드려요.”

“그라믄, 신문 기사 좀 읽어 줄 수 있나. 내 집사람이 베트남 쌀국수를 먹는데, 아직도 한글을 몬 깨우쳐써.”

“네? 베트남 쌀국수요?”

“뭐라 카노? 지금 장난하나? 베트남 처녀라고 처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는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지운이 붙인 광고지를 사람들이 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허락 없이 내 번호를 적은 지운에게 화가 났다. 지운이 오기 전에 W의 원고를 가방 속에 넣고 녹음실 밖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낯선 사람들이 말을 걸어 왔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근처에 편의점이 보여요?’라며 내게 질문했다. 나는 그들의 질문을 계속 잘못 들었다. ‘화장을 어디에 한 거예요?’라거나 ‘편의를 봐주나요?’로. 내가 그들을 밀어내기 위해 말을 한 것처럼 사람들은 내 대답을 듣더니 바로 등을 돌렸다. 그들이 내게 다가왔다가 멀어질 때마다 나는 접착력이 떨어진 테이프가 된 것 같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더 이상 있는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뀔 때 들려오는 소리마저 의심됐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뀐 게 맞는지, 보이는 것마저 믿을 수 없었다.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제대로 듣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을 멈춘 곳은 ‘보라매공원’이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고요한 곳이었다. 의자에 앉아 가방 속에서 W의 원고를 꺼냈다. 글을 천천히 낭독했다. 묵음의 두 번째 뜻에 따라 발음되지 않는 받침들을 일일이 소리 내어 읽었다.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어야 했다. 없다고 여겨졌던 자음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외계어를 발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W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W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쪽으로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낭독을 잘하지 못하면 W는 더 이상 글을 보내오지 않을 터였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글이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글. W의 글을 읽으면서 트던 입술도 점차 나아졌다. W에게 고맙다는 말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다. 이 글의 결말 또한 무척 궁금했다.

완벽하게 발음할 때까지 크게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입술이 쉴 새 없이 벌려졌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할 수 없어 불안했다. W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저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 내 손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입술에 닿았다. 더 이상 뜯어낼 거스러미가 없는데도 손톱으로 계속 입술을 뜯었다. 거울을 봤다. 피로 범벅된 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음실에 가면서 보풀제거기와 카디건을 구입했다. 카디건에 구멍을 만든 일을 사과하고 싶었다. 지운은 내가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원고를 보며 낭독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원고 내용은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여전히 발음이 좋지 않았고, 노래 부를 때처럼 가성도 조금씩 섞였다. 나는 지운의 낭독을 들으며 발음을 교정해 주었다. 그러나 지운은 내가 교정해 주는 말을 무시하며 계속 읽어 나갔다.

구입한 보풀제거기를 꺼내서 작동해 봤다. 제거기 안에서 칼날이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컴퓨터 옆에 지운이 프린트한 원고들이 널려 있었다. 저것들 위에 제거기를 갖다 대고 밀면 글자들이 모두 떼어지고 흰색 종이만 남지 않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제거기를 종이에 대고 밀었다. 칼날이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지운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말을 멈추더니 내게서 제거기를 빼앗아갔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외치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변명하려 입술을 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지운은 제거기의 전원을 끄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는 매우 화난 표정으로 나를 쫓아냈다.

지운은 내게 왜 그렇게 화를 낸 걸까. 고객들의 원고가 그에게 그렇게 소중했을까. 시계를 봤다. 몇 분만 더 있으면 W로부터 전화가 올 터였다. 나는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꼼꼼히 확인하며 묵음들을 일일이 발음했다. 이번 낭독이 끝나면 그가 통장으로 어떤 메시지를 보내올까 궁금하다. 결말을 모두 낭독하고 나면, 또 다른 글을 보내오겠지. 그때는 최대한 좋은 목소리와 발음으로 낭독할 생각이다. 그때쯤이면 입술이 트는 증상도 완전히 나아 있을 것이다.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도 W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핸드폰은 조용했다. 내게 전화를 걸었던 사실을 잊었나. 그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나는 언제 올지 모를 전화를 기다리며 그의 원고를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서너 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앉자마자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국어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중국어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다음 역은, 낯설대 입구입니다. 낯설대 입구.”

중국어로 떠들던 사내들이 낯설대 입구에서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버스정류장에 써진 글씨는 ‘낙성대 입구’였다.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W의 번호였다. 진동이 계속 울렸고, 전화가 끊기기 전에 급히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편이 조용했다. 숨소리만 조용히 들렸다. 액정을 보니 W가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낭독을 시작했다.

막상 전화로 낭독하려고 하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중국어로 떠들던 사내들이 나가고 난 후 버스 안이 고요해졌다. 앉아 있는 승객이 적었다. 내가 말을 하면 그들이 나를 쳐다볼지도 모른다. 보푸라기가 잔뜩 일어난 내 입술에 시선을 둘 것이다. 정확하지 않은 내 말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W로부터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바로 낭독을 해야 한다. 문득 제쳐 두었던 묵음의 첫 번째 뜻이 떠올랐다. ‘소리 없이 시를 읊음.’ 어쩌면 W는 소리 내지 않고 글을 읽어 주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백지로 글을 보내온 걸 봐도 그랬다.

글을 보면서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면서 읽었다. 묵독과는 달리 입술과 혀가 함께 움직였다. 묵독과 음독으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처럼 느껴졌다. 묵음으로 읽을 때는 입술을 최대한 크게 벌리면서 읽어야 했고, 얼굴 근육이 평소 말할 때보다 더 많이 쓰이는 것 같았다. 숨을 자주 들이마시며 말을 해야 했고, 호흡이 빨라지면서 침이 많이 튀었다. 문득 내가 무성영화 속 배우가 된 느낌이 들었다. 벨이 울리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소리가 부산스럽게 이어졌다. 맨 뒷자리에 앉은 탓에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였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말하고 있는 내 입 모양이 보일 리 없었다. W는 내 말과 입 모양을 상상하고 있겠지. W가 전화를 끊어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그가 끊기 전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낭독했다. 한 페이지의 글을 다 읽는 데는 10분 정도가 걸렸다. W는 전화를 끊지 않고 내 ‘묵음’의 낭독을 들어 주고 있었다. 낭독은 고요하게 진행되었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W는 전화를 끊었다. 들리지 않지만 자신도 함께 같은 호흡으로 읽고 있었나 보다. 긴장이 풀어지고 정신을 차렸다. 혓바닥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침을 발랐다. 매끄러워진 입술이 촉촉이 젖었다.

 

지막 낭독을 하고 난 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통장에는 W의 이름과 금액이 찍혀 있지 않았다.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낭독료를 입금하던 W였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서 메일로 정황을 물어봤지만, 수신확인이 계속 '읽지 않음'이었다. 나는 지운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시 W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번째로 전화를 걸었을 때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W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고,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입금을 안 해주셔서요…….”

“무슨, 입금이요?”

그는 여전히 가성으로 말을 하는 듯했다.

“저번 주에 했던 낭독이요.”

“네? 아, 제가 깜빡하고 전화를 못 드렸었죠.”

“전화가 왔었는데……. 제가 묵음으로 낭독했잖아요.”

“묵음, 이요?”

“네. 무- 금.”

“아…… 무감이요? 감정을 넣지 말고 건조하게 읽어 달라는 소리였는데.”

“……그럼, 저번에 제가 낭독했던 전화통화는 어떻게 된 거죠?”

“전화통화요? 그날 이후로 전화를 건 적이 없는데. 제가 바빠서 깜박했어요. 죄송합니다.”

침묵이 짧게 흐른 후 전화가 끊겼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했던 걸까. 그에게 낭독료를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낭독을 했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입술을 다물고 천천히 그 시간을 상기시켰다. 손끝이 나도 모르게 입술에 닿아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W가 보내왔던 메일들을 모두 클릭했다. 그가 보내온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 보았다. 바탕화면에는 여러 개의 폴더가 있었다. 그동안 녹음해 왔던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낭독을 듣고 있을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궁금하다. 그들은 지금도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읽어 보지 못한 낯선 문서가 눈에 띄었다. 클릭해서 읽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이었다. 계속해서 읽었다. 이상했다. W가 보내온 글과 똑같았다. 중간중간 내용이 조금씩 다를 뿐 다듬기 전의 글인 것 같았다. 끝까지 읽어 보니, 아직 받지 못한 결말 부분이었다. W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글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결말을 맺고 있었다. 주인공 노인이 여러 번의 도전 끝에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지만, 마이크가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열창하는 내용이었다. 노인은 노래 부를 수 있는 최대한의 숨을 모두 다 써버려 다시 부를 힘이 없다. 결국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지 못하고 내려온다. 아직 메일로 도착하지 않은 W의 글이 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문서정보를 클릭했다. 작성자 명이 ‘지운’으로 되어 있었다. 작성한 날짜를 봤다. 일 년 전이었다.

그동안 메일을 보내왔던 익명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모두 똑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W이거나, 지운이거나, 경상도 남자아이거나. 낭독하며 떠올렸던 다양한 얼굴들이 모두 똑같은 얼굴로 겹쳐진다. 내 말이 동일한 얼굴의 귓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 얼굴의 귓속으로 내 목소리가 들어가자마자 W의 원고가 백지로 변한다. 컴퓨터 키보드 옆에 놓인 투명 테이프가 보인다. 지운의 옷에 나 있던 보풀이 들러붙어 있다. 내 낭독은 단지 지운의 보풀을 떼어 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동안 W의 글을 낭독했던 것이 그저 음독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자 입술이 바짝 말라 간다.

나는 누구 것인지 모를 문서를 모두 프린트한다. 새로 산 보풀제거기를 손에 쥐고 글이 적혀 있는 종이 위에 갖다 대며 밀기 시작한다. 종이 모서리가 제거기 안으로 말려 들어가 구겨지고 찢긴다. 칼날이 종이를 찢는 소리가 녹음실 안을 가득 채운다.

스커트에 언제 생겼는지 모를 보푸라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호루라기가 보인다. 호루라기를 주워 입술 사이에 물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호루라기 소리가 녹음실 밖으로 퍼져 나간다. 입 속에 있던 모든 말들이 숨 속으로 섞여 나가는 것 같다. 호루라기를 입술에서 빼낸다. 스테인리스 재질에 얼굴이 비친다. 매끄러운 얼굴 위에 너덜너덜한 입술이 도드라지게 돋아나 있다. 얼굴 위에 붉은 보푸라기가 생긴 듯하다. 숨이 모두 빠져나간 후 얼굴에 투명테이프를 붙이고 다문 입술을 천천히 뜯어낸다.

 

《문장웹진 11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