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남자

 

전성혁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었다. 며칠째 늦은 밤까지 토익 동영상 강의를 듣다가 집을 뛰쳐나간 뒤였으니까. 때마침 하나뿐이던 선풍기도 과열로 고장이 나버렸다. 정말이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던 하루였다. 다행히 시원한 밤바람을 쐴 수 있는 한강공원이 집 근처에 있었다. 한강 산책과 야경만큼은 파리의 센 강도 독일의 라인 강도 부럽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니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장우산 하나와 가벼운 샌들만 신은 채 한강을 향했다. 시계는 자정을 가리켰다. 이 시간에 집 밖으로 나온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물론 후덥지근한 여름밤을 에어컨도 없는 작은 방에서 영어 공부로 씨름하기엔 몸과 마음이 이미 지쳐 있었다. 하지만 자정이 넘은 공원 산책로의 이미지를 떠올리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닭살 돋는 커플들의 진한 애정행각이 미리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앞두고 겨우 다잡은 백수 독신남의 독야청청한 마음을 이내 접어야만 하는 건 아닌지 점점 불안해졌다.

신사동 가로수 길을 지났다. 하릴없이 카페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수다를 떠는 연예인처럼 화사한 그들을 보자니 허름한 옷차림의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게다가 이슬비에도 굳이 우산을 함께 쓴 채 몸을 밀착하고는 다정히 길을 거니는 연인들을 보자니 없던 울화가 치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단명 하는 ‘모태솔로’에 대한 뉴스기사가 실시간 인기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그 연구결과에 따르면 독신남이 결혼한 남자보다 대략 17년 먼저 사망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원인이 빈번한 질병과 사고사라고 분석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솔로가 아닌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 내년에는 반드시 여자와 이 길을……. 내놓아라 하는 대기업에 취업만 한다면야.’ 친구가 연결해 준 몇 번의 소개팅에서 고배를 마시며 내린 결론이다. 한국에서 직업과 학벌, 집안 배경은 여자가 남자를 판단하는 데 무엇보다 우선 순위였다. 이처럼 솔로인 이유를 내가 처한 환경 탓으로 돌리며 행복한 공상의 시간을 펼치는 사이, 지나가던 포르쉐에 빗물이 튀었다. 재수 없게도 황톳물이었다. 며칠 전에 산 소라색 반바지가 진흙으로 엉망이 되었다. 뒤돌아서 욕할 틈도 없이 2억 원이 넘는 빨간색 포르쉐는 빠른 속도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좀 전까지 외국인 강사를 보며 영어 회화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따라했건만 정작 머릿속에선 ‘퍽 유’의 ‘F’ 자도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시험을 위한 공부는 실생활에선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사실 포르쉐 차주를 욕하기 보다는 도대체 언제쯤 저런 차를 몰 수 있을까란 생각이 더 컸다. 어차피 헛된 희망일지라도 일생에 한 번은 꼭 타보고 싶은 차였다. 그래서 야밤에 한남대교를 빵빵거리며 미친 듯이 달리고 싶었다. 물론 옆자리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면 더 좋겠다. 그것도 포르쉐처럼 아주 예쁘고 잘 빠진 외모의 소유자. 역시 남자에게서 사고의 종점은 언제나 여자였다.

토모미를 만난 곳은 잠원 한강공원 입구였다. 토모미는 친구인 레이코와 같이 있었다. 사실 집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벽’이 아닌 누군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줬으면 했다. 그게 여자라면, 예쁜 여자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우울하고 기나긴 장마철, 나는 혼자 너무 심심했고 외로웠다. 그 일상의 지루함에 가끔씩 자살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다 작은 방에서 쓸쓸히 썩은 채 시체로 발견되는 악몽에 놀란 가슴을 쓰다듬기도 했다. 그런 내게 먼저 말을 건넨 건 레이코였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레이코는 가방에서 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살짝 더듬거리며 한국어로 길을 물었다. 귀여운 억양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장소였다. 게다가 낮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렇다고 모른다며 마냥 도리질을 하기엔 그들이 화보 속 연예인처럼 너무 예뻤다. 명동에 놀러갔을 때 자주 만났던 ‘욘사마’ 아줌마 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그녀의 말투와 화장 스타일로 그녀의 국적을 단번에 파악하고는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레이코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공부해서 간단한 회화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 서류전형에서 가산점을 받기 위해 JPT(일본어능력시험)를 지난 겨울방학 때 잠시 준비했었다. 하지만 일어도 영어처럼 서툴긴 마찬가지였다. 서로 말문이 막히면서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나는 혹시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그녀는 옆에 있던 토모미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하지만 토모미는 시크하게도 아무 말 없이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모자란 영어 실력이었지만 그들과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사진을 확대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특이하게도 누에 모양의 의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는 어느 공원인 것 같았다. 얼핏 뒤쪽에 남산타워도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충 이 근처인 것 같았다. 나는 또 다른 사진이 없냐고 물었다. 레이코는 사진을 보고도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한동안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잠원 한강공원’이라는 문자를 보여주었다.

“여기가 맞는데…….”

나는 이제야 감이 왔다. 그러고는 우산으로 반대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나올 거라고 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토모미는 못 미더운지 불안한 표정으로 어두운 한강만 바라보았다. 나는 시계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래, 국위선양이 별건가?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떠나도록 하는 것도 나라를 위한 일이지.’ 물론 사심도 조금은 섞여 있었지만 이내 결심을 했다.

“팔로우 미.”

나는 졸지에 일본인 가이드가 되었다. 그것도 야밤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여자 둘을 데리고 다니는 넉살 좋은 남자. 얄밉게도 하늘에선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앞세우고선 뒤에서 일본어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얼핏 듣기로는 나보고 “이케맨데스네.” 어쩌고 하는 것 같았다. 슈퍼맨, 배트맨 같은 슈퍼 히어로도 아닌 이케맨? 새로 나온 악당인가? 설마 욕은 아니겠지. 또다시 나는 왕따가 된 신세였다. 기분전환도 할 겸 잠깐 바람만 쐬러 나온 터였는데 때 아닌 노동을 하게 되었다. 비에 젖어 허벅지에 착 달라붙은 바지가 자꾸만 거치적거렸다. 게다가 샌들도 질퍽거리더니 발이 미끄러지면서 자꾸만 앞으로 빠졌다.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내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시종 무표정했던 토모미가 피식 웃었다. 고개를 돌려 뾰로통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레이코가 내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고민했다. 사실대로 나이를 말할까? 아님 그냥 속일까? 소개팅 자리도 아니고 그들에게 나의 완성되지 않은 프로필을 정확하게 말해 줄 의무는 없었다. 어차피 다시 보기 힘든 사이 아닌가. 목적지에 도달하면 곧 헤어질 관계. 나는 그냥 나이를 한 살 줄여 27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무슨 큰 거짓말이라도 한 걸까 뜨끔해할 찰나, 생각보다 어리다나? 예상치 못한 반응에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그들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도 27이라고 했다. 내가 알기론 일본 나이는 한국식 나이와 달리 만으로 계산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복잡한 숫자 계산을 떠나 동갑이라는 말에 없던 동질감이 생겼다. 태어난 곳과 성별은 달랐지만 뭔가 우리를 하나로 이어 주는 끈끈한 공감대 같은 것이었다. 그들도 조금씩 나에 대한 경계를 풀어 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셋이서 나란히 걸으며 서투른 영어식 농담에도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디랭귀지를 가미해 영어와 일어를 섞어 말하는 나 자신이 안쓰러우면서도 한심해 보였다. 국제화 시대라지만 정작 한국의 표준어도 제대로 못 쓰면서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일본말과 비슷하다며 좋아하는 경상도 남자. 광복절인 오늘, 대한의 아들로서 기개와 자존심도 없는지 내가 봐도 이 밤에 참 애쓰는 중이었다.

말은 주로 레이코와 주고받았지만 시선은 계속 토모미를 향했다. 토모미는 높은 힐을 신지 않았는데도 보통 남자의 키만큼 커서 나랑 눈높이가 잘 맞았다. 또한 최근 유행 중인 갸루족 특유의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을 한 레이코와는 달리 단정하면서도 수수했다. 긴 생머리에 튀거나 과장되지 않은 여대생 같은 분위기였다. 다시 말해 휴가차 외국으로 놀러 온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여성이 평소 이상형이어서인지 그런 토모미에게 더 눈길이 갔다.

“맞어?”

어둠 속에서 산책로를 한참 걸어도 주변에 공원 같은 곳이 보이지 않자 시종 밝았던 레이코도 점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길은 좁고 주위의 가로등 불빛은 어두웠다. 그래도 여자가 두 명이라서 다행이었다. 혼자였으면 애초에 치한으로 몰릴 수도 있었을 테니까. 나름의 선행이 그들에겐 계획된 범죄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네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갈피를 못 잡자 조용히 있던 토모미가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여자의 목소리치고는 저음으로 다소 굵었다. 옆에 있는 레이코와 비교해도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토모미가 일본인이어서 그런 것이라 믿고 싶었다. 어쨌든 일본 여자와 직접 대화해 보기는 태어나서 오늘이 처음이니까.

“나마에? 앨빈.”

나는 영어식 닉네임을 말했다. 학기 중 틈틈이 다닌 영어회화 학원에서 몇 년간 불렸던, 앨빈 토플러를 존경해서 따라한 이름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앨빈(Alvin)의 의미는 고귀한 남자였다. 두 번째 뜻으로는 남에게 잘 속는 남자? 이른바 호구였다.

“앨빈? 코리안 네임?”

동갑이라서 그런지 반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영어에 높임말이 따로 없지만 정중한 표현은 분명 있지 않은가. 완전한 문장도 아닌 딱딱 끊어 단어만 나열하는 것이 토모미도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나이와 마찬가지로 이름도 그들에게 사실대로 말해 주고 싶지 않았다. 마치 몽유병에 걸린 환자가 처녀귀신들을 만나 밤거리를 배회하듯, 거짓말처럼 지금 이 순간이 내겐 연극 같았고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태웅.”

나는 어릴 적 즐겨 봤던 만화책에서 좋아했던 주인공의 이름을 대신 말했다.

“태운? 풀 네임?”

대충 넘어가도 될 텐데 꼬치꼬치 캐묻는 토모미의 질문이 귀찮게 느껴졌지만, 그동안 만났던 한국 여자들과는 달리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는 그 자체가 이미 감동이었다. 그리고 영어를 발음할 때마다 올라가는 토모미의 입 꼬리가 너무 귀여웠다.

“서태운? 가와이.”

서태웅이란 이름이 과연 귀엽나? 슬램덩크를 수십 번 보았지만 그런 느낌은 받은 적이 없었다. 그냥 일본인 특유의 일반적인 리액션인 것 같았다.

“와따시와 토모미데스.”

“토모미짱? 가와이.”

나도 토모미와 똑같이 반응했다. 그러자 토모미와 레이코가 까르르 웃었다. 토모미(朋美)는 한자로 훈독하면 아름다운 우정이었다. 어쩌면 토모미와 나는 국적을 떠나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출발한 지 십여 분이 지나서야 겨우 통성명을 마쳤다. 그래도 내성적인 나에겐 장족의 발전이었다. 우리는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공통의 관심사를 찾았다. 아무래도 한류의 중심인 케이 팝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아이돌 가수 이름을 죄다 얘기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 않아서 갓 데뷔한 신인 가수들의 이름이 헷갈렸지만 인지도가 높은 데로 그냥 툭툭 내던졌다. 내가 그룹 이름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레이코는 일본식 발음으로 이름을 바꾸며 따라했다. “카라? 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내 흥얼거림에 레이코는 카라 〈미스터〉의 엉덩이춤을 췄다. 굴곡진 몸매를 강조하는 춤사위에 하늘하늘한 꽃무늬 원피스가 팔랑거리며 시선을 끌었다. 이에 손뼉을 치며 내가 춤을 따라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졌다. 다음은 소녀시대. 레이코는 소녀시대 특유의 각선미를 강조한 제기차기춤을 췄고, 나의 볼썽사나운 몸 개그도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동방신기. 레이코는 동방신기의 열혈 팬이었다. 그중에서도 영웅재중이 이상형이라고 했다. 나는 영웅재중이 하얗고 예쁘장한 게 아마 게이일 거라고 장난삼아 말했다. 레이코는 정말이냐며 정색하며 되물었다. 그러고는 슬쩍 토모미를 쳐다봤다. 토모미는 레이코의 시선을 피했다.

“재준, 게이?”

나는 근거 없는 소문을 예로 들며 그를 순식간에 게이로 몰아갔다. 예를 들면 “가수 활동하는 줄곧 여자 친구가 없었다고 하더라, 집 근처에 나갈 때도 화장을 하고 나간다더라, 평소 혼자 있을 때 여장을 즐겨한다더라.” 등등. 이른바 기자가 아닌 누리꾼들의 ‘카더라’ 통신이었다. 레이코는 나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듯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표정이 재미있어 계속 거짓말을 이어 갔다. 콘서트 때 여장이 잘 어울리는 빅뱅의 지드래곤부터 영화 속에서 턱선이 고운 강동원과 일본 아줌마들의 대통령인 머리 긴 욘사마까지. 잘생긴 한국 남자 연예인은 모두 다 게이이니 너무 충격 받지 말라는 망언까지 곁들였다. 어디까지나 질투심에서 비롯된 사견이었다.

“원빈사마?”

가만히 있던 토모미도 이에 거들었다. 아마도 토모미의 이상형은 남자다운 원빈인 것 같았다. 사실 게이는 여성스런 외모가 아닌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성향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이태원에 가면 우락부락하고 생각보다 못생긴 게이들도 많이 있다. 평소 게이를 혐오하는 편이었지만 대놓고 욕한 적은 없었다. 웃자고 한 얘기가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자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왓츠 유어 하비?”

솔직히 이 상황에서 취미를 묻는 건 너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무슨 초급회화‘1’도 아니고 질문을 하고도 부끄러웠다. 하지만 영화보기, 독서 등 대다수의 일반적인 대답과는 달리, 토모미의 취미는 벨리댄스였다. 이렇게 차분해 보이는 토모미가 배꼽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선 격렬하고 관능적인 섹시 춤을 춘다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쇼 미?”

“코코?”

토모미는 여기서 보여 달라는 나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영력했다. ‘야밤에 벨리댄스라? 그것도 강변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너 같으면 추겠니?’ 옆에 있던 레이코의 표정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답변이었다.

“조크.”

사실 정말로 보고 싶기도 했다. 이왕이면 가슴이 깊게 팬 빨간색 의상이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호기심에 상기된 낯빛으로 질문을 이어 갔다. 취미 다음 그들의 직업을 묻자 레이코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 중인 학생이라고 했다. 패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옷감에 미싱을 박는 동작을 취했다. 나는 웃으며 토모미를 쳐다보자 시선을 피하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같은 학교 학생이냐고 물었다. 물론 한국 남자처럼 군대도 가지 않았을 텐데 대학원생이면 모를까 이 나이에 아직 대학생인 레이코가 더 신기했다. 토모미는 수줍어하며 그냥 카페에서 일한다고 했다. 레이코가 옆에서 ‘메이드 카페’라며 내게 고자질하듯 귓속말로 얘기했다. 메이드면 하녀? 손님이 시키면 그대로 다 한다는 그 변태 카페? 소문에 따르면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에도 비슷한 게 생겼다고 한다. 나는 벨리댄스 복을 입고는 “주인님.” 하며 손님의 시중을 들고 있는 야릇한 토모미를 상상했다. 넋이 빠진 채 헤벌쭉 멍하니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오던 행인과 어깨가 부딪쳤다. 먼저 죄송하다고 했지만 남자는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몸을 비틀거리며 내게 다짜고짜 반말로 욕을 했다. 이러다 크게 싸움이 날 것 같아 그들에게 서둘러 자리를 뜨자고 했다. 일본어로 대답하는 레이코의 말을 옆에서 들었는지 남자는 이번엔 그들을 향해 쌍욕을 해댔다.

“쪽발이 년들. 광복절 날 한국엔 왜 왔노? 독도 드시러 오셨나?”

토모미가 남자의 말을 듣고 얼굴을 붉히자 나는 남자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좀 전보다 언성을 더 높였다.

“에이 샹, 벨도 없는 왜년 앞잡이 새끼야. 내 나라에서 내 입으로 내 나라 말 하는데 니가 왜 지랄이고. 사과는 저 년들이 해야지. 지진 났을 때 불쌍해서 성금도 보냈구만. 에이, 배은망덕한 놈들.”

사실 뜨끔했다. 요즘 한일 관계가 동해 표기와 독도 영유권 문제로 시끄러웠다. 얼마 전에는 일본 국회의원들이 한국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울릉도를 방문하려다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이처럼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이 남자의 말처럼 얄밉기도 했지만 그건 몇몇 우익을 포함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고, 여기 있는 토모미와 레이코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싸잡아 욕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순수한 목적으로 한국에 여행을 온 관광객이 아닌가. 외화를 번다는 경제적 이유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들의 방문은 국가 차원에서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남자는 이런 나의 생각을 비웃는 듯 혼자서 한참을 구시렁대더니 내가 장우산을 쥐고 무섭게 노려보자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남자가 떠나자 레이코는 쪽발이가 뭐냐고 물어봤다. 나는 별 말 아니니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남자를 대신해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독도? 다케시마?”

토모미는 좀 전 남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사람을 대표해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평범한 일본 국민들은 독도를 누구 땅이라고 생각하는지. 물론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답은 하나다. “우리 땅.” 사실 이를 증명하는 지리적 역사적 증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우리로선 매우 치욕스런 일이었다.

“버드즈 아일랜드.”

토모미는 독도를 새들의 섬이라고 대답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가수 정광태의 노래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문현답이었다.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역사적 지리적 이해관계를 떠나 새들의 고향이었다. 우리는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어느덧 반포대교가 보였다. 저녁이면 달빛 무지개 분수로 유명한 한강의 명소다. 특히 데이트를 나온 연인들에겐 그야말로 낭만적인 볼거리지만 내겐 그저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일 뿐이었다. 토모미는 반포대교를 가리키며 여행책자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토모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전에 주워들은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해를 등지고 분수를 보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떠요.”

“레인보우? 스고이네.”

토모미는 무지개를 직접 본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해질녘 동작대교에서 바라보는 붉은 노을이 무척 예쁜데다가 분수 아래서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이벤트도 멋지다고 했다. 만약 내일도 토모미가 한국에 머무른다면 오늘처럼 직접 안내해 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

“투마로우? 왓 타임?”

나는 대략 저녁 8시쯤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토모미는 내일 2시행 비행기라고 했다. 혹시 머무는 날짜를 더 연장할 수 없는지, 시간이 있다면 알려지지 않은 멋진 곳을 보다 많이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물론 가이드를 핑계로 토모미를 하루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따분하고 지루한 삶 속에서 찾아온 뜻밖의 행운을 쉽사리 놓치기 싫었다. 어떻게 구슬리면 좀 더 토모미를 한국에 붙잡아 둘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레이코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찾았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레이코의 뒤를 따라 진입로로 들어가자 정말 사진처럼 커다란 누에 모형이 있는 공원이 있었다. 푯말에는 ‘누에체험 학습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잠원(蠶院)이란 지명도 누에를 많이 치던 고을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누에는 뽕잎을 먹고 자란다지. 늦은 밤, 뽕밭이라. 주변을 둘러보니 군데군데 뽕나무 몇 그루만 눈에 띄었지만 ‘뽕’이라는 어감에 야한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레이코는 마치 스카이 콩콩을 탄 아이처럼 통통 뛰며 기뻐했다. 진흙에 힐이 푹푹 빠졌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밤에 최종 목적지를 어렵게 발견한 터라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누에고치로 명주실을 만들어 비단을 짜기에 패션을 전공하는 레이코가 이처럼 관심을 가질 만했다. 토모미도 덩달아 즐거워했지만 나는 왠지 기운이 빠지고 쓸쓸해졌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머릿속을 스쳤다.

“가와이, 혼또니 가와이.”

누에 모형의 벤치에 앉아 이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레이코는 연신 귀엽다고 말했다.

“낫 가와이. 베리 어글리.”

레이코의 아이 같은 행동에 괜히 심술이 났다. 사실 누에는 귀엽다기보다는 징그러웠다. 나의 말을 애써 부정하던 레이코는 토모미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인증 샷을 찍었다. 디카로도 아이폰으로도 포즈를 다양하게 연출하며 사진을 찍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리겠다며 셀카도 몇 번 더 찍다가 이번엔 토모미와 커플 샷을 찍겠다며 내게 카메라를 건넸다. 다정한 둘의 포즈에 레즈비언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내 스마일을 외치며 친절하게 찍사의 임무를 수행했다. 나는 몇 번 눈치를 보다가 토모미에게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혼또?”

레이코는 짐짓 놀라며 슬쩍 토모미의 의중을 떠보았다. 토모미는 머뭇거리더니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것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우기고는 누에 모형의 벤치에 토모미와 함께 앉았다. 벤치가 비에 젖어 엉덩이가 차가웠다. 레이코는 플래시를 터뜨려 가며 사진을 몇 장 찍더니 나보고 자연스럽게 웃으라고 했다. 하지만 증명사진 찍듯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레이코가 나보고 토모미의 어깨를 감싸 안으라고 했다. 토모미는 장난치지 말라고 얘기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토모미의 어깨를 살짝 만졌다. 평소 수영을 즐겨하는지 토모미의 어깨는 생각보다 넓었다. 토모미는 분위기에 취했는지 살포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긴 머리가 내 뺨을 스치며 향기로운 향을 풍겼다. 순간 달빛만큼 황홀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레이코는 신이 난 듯 토모미에게 내 뺨에다 뽀뽀를 하라고 시켰다. 나는 바보처럼 웃으며 눈을 꼭 감았다. 혹시나 했는데 토모미는 싱겁게도 벤치에서 일어나버렸다. 민망해하는 내게 레이코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옷차림이 별로라 괜찮다고 거절했다. 한강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이 끝나자 레이코는 피곤한지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오늘 하루, 인사동부터 광화문까지 종일 힐을 신고 걸어 다녀서 발도 아프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늦어 지하철과 버스는 이미 끊겼다고 했다. 레이코는 얄밉게도 택시를 타면 된다며 어디서 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 택시를 타면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하고 다시 입구 쪽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콜? 따부르?”

레이코는 한국의 교통수단에 익숙한 듯 지갑을 꺼내 지폐의 액수를 여러 번 살렸다. 그러고는 토모미를 쳐다보며 어떻게 할지 물었다. 토모미는 고민하는 듯 보였다. 시각은 2시를 가리켰다. 나는 새벽 4시까지 택시 할증 요금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토모미와 상의한 레이코는 인근 카페로 가자고 했다. 그러고는 특별히 커피가 맛있는 집이 있냐고 물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여자 친구도 없는 내가 밖에서 커피를 사 먹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가로수 길을 지나칠 때면 유독 사람들이 붐비는 카페가 있었다. 분위기도 좋았고 듣기로는 이탈리아 커피를 재료로 쓴다고 했다. 여기선 좀 멀지만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가자고 합의를 봤다.

발걸음을 옮기자, 세찬 바람소리에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목덜미가 차가워지자 호신용 지팡이로 쓰던 장우산을 재빠르게 펼치면서 토모미에게 우산이 있냐고 물었다. 토모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셋이서 같이 쓰기엔 우산이 작았다. 다행히 레이코는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우연찮게도 토모미와 나는 함께 우산을 쓰고 빗속 길을 걸었다. 처음엔 어색해하며 떨어져 걷다가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자 비에 젖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서로 몸을 밀착시켰다. 어깨가 살며시 닿자 손잡이를 쥔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우산에 세차게 부딪치는 빗소리가 떨리는 마음을 더 긴장시켰다. 뿌연 비안개 속에서 우린 말없이 한남대교까지 걸어갔다. 다리 위 가로등 불빛이 반영된 한강은 그 빛 갈림으로 한 폭의 진한 유화를 연상케 했다. 강물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커다란 흑색 화폭에 거친 붓 터치를 남기며 빠르게 번져 갔다. 오늘 밤, 그 농후함에 취해 깊이 잠들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하늘에선 천둥이 쳤다.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란 토모미가 내게 안겼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화산처럼 터질 것만 같았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했다. 그리고 정말 행복했다. 왜 이런 행복을 이제야 누리게 됐는지. 그것도 한국 사람이 아닌 일본인에게서 느끼게 됐는지. 지나온 시간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진심은 반드시 통하기 마련이다. 모태솔로였던 이유도 내가 남들보다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단지 나를 원하는 한국 여자가 서울에 없었을 뿐이다. 나는 살며시 토모미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우리는 한 쌍의 다정한 연인처럼 한강 나들목을 빠져나왔다. 빗줄기가 약해졌지만 우산을 접은 레이코와 달리 우린 그대로 우산을 함께 쓰고 가로수 길을 거닐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데이트하는 연인들을 욕하던 나였지만, 지금 이 순간 거친 보도블록도 토모미와 함께라면 레드 카펫이 부럽지 않았다.

가로수 길에 위치한 카페는 시간이 늦어서인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광복절이지만 월요일 새벽이라서 더 그랬다. 평소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던 곳이 너무 조용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뒤에 따라오던 레이코는 골목마다 주차된 비싼 외제차를 보고는 “스고이네.”를 끊임없이 외쳤다. 나는 여기가 한국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는 벤츠나 BMW는 흔히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 옷가게가 많아 주말 낮이면 여대생과 직장 여성으로 붐빈다고 말했다. 레이코는 낮에 다시 와보고 싶다고 했다. 모퉁이를 돌면서 혹시나 G카페가 문을 닫았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열려 있었다. 나는 우산을 접고는 토모미를 에스코트하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는 개방형이라 문이 따로 없었고 이층 구조로 탁 트인 것이 꽤나 넓었다. 하지만 비가 와서 안도 바깥처럼 후덥지근했다. 게다가 에어컨 없이 환풍기만 돌아가서 실내가 끈적거리며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1층이 사람들로 북적거리자 그들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안쪽 소파형 의자에 마주보며 앉았다. 토모미는 허벅지 위로 올라온 치마가 거슬리는지 내 눈치를 살피며 정돈했다. 레이코는 발이 무척 아팠는지 힐부터 벗어던졌다. 손에 든 쇼핑꾸러미를 내 자리 옆에 내팽개치고는 자기 안방처럼 쿠션에다 몸을 뉘었다. 나는 레이코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지만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나는 주문을 받았다. 레이코는 카페라떼를 토모미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고 했다. 역시 토모미는 나랑 취향이 같았다. 다만 실내가 더워서 핫보다는 아이스가 더 나을 것 같았다. 카운터를 향하는 나를 따라 일어서려는 토모미에게 커피는 내가 사겠다고 했다. 레이코는 빙긋 웃으며 좋아했지만 토모미는 그럴 수 없다며 길 안내까지 해줬는데 자신들이 사겠다고 했다. 나는 남자의 자존심상 넙죽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비록 백수 신세지만 호감이 가는 여성에게 빌붙기는 싫었다. 호의를 베풀어도 내가 먼저 베풀어야 남자지. 몇 번 실랑이 끝에 결국 일본식 더치페이인 ‘와리깡’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일본에서는 깔끔하고 자연스런 계산방식이라고 했다. 커피가 나올 동안 레이코가 화장실에 간 사이, 좀 전과는 다르게 어색해졌다. 마치 처음 만난 남녀가 소개팅을 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어두운 데만 있다가 밝은 곳에서 토모미를 또렷하게 마주보니 더 그랬다. 옷이라든가 화장이라든가 피부 상태와 가슴 크기까지. 어둠 속에서 감추어져 있던 토모미의 본모습이 빛과 함께 내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추측과 상상으로 조합된 이상적인 외모도 현실에서 냉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토모미는 웃을 때 덧니가 심했고 등과 앞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무척 작았다. 풍문으로는 일본 여자들의 가슴이 꽤 크다고 하던데, 야동배우들만 그럴 뿐 토모미를 보니 다 거짓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콩깍지가 씌어서인지 남자의 로망인 큰 가슴 정도야 내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수유만 할 수 있으면 되었다. 토모미를 바라보며 어느새 진도가 결혼 후까지 나가버렸다. 나는 행복한 상상에 피식 웃었다. 벨 진동이 울리자 점원에게서 커피를 받아와 토모미에게 친절하게 건넸다. 토모미는 나를 보고 ‘이케맨’이라고 했다.

“이케맨?”

좀 전 한강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얼핏 들었던 말이었다. 토모미는 웃으며 이케맨은 인기가 있다는 ‘이케데루’에다가 남자를 뜻하는 ‘맨’의 가타카나식 표기를 붙인 신조어라고 했다. 오토코마에(男前)가 단순히 잘생긴 사람을 뜻한다면 이케맨은 거기에다 다정다감하면서 매너도 갖춘 다소 복합적인 의미라고 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훈남’과 같은 뜻이었다. 엄마 이후 여자에게 처음 듣는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그게 토모미라서 더 기뻤다. 세상에 많은 눈이 있다지만 가까이서 본 토모미의 눈은 어느 여자보다 더 예뻤고, 누군가를 아껴 주고 거짓말을 못하는 눈이었다. 왠지 토모미는 처음으로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 줄 사람일 것만 같았다. 양손으로 턱을 괸 토모미를 바라보며 궁금했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이, 레이코가 돌아왔다.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중이었는데 그만 김이 새버렸다. 레이코는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냐며 자신의 흉을 본 건 아니냐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서 그녀는 관심 밖이었다. 나는 토모미에게 사는 곳을 물었다. 그들은 후쿠오카에 산다고 했다. 나는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로 착각하고는 안전하냐고 물어봤다. 토모미도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선 후쿠오카는 남부 규슈지역으로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도쿄보다 더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후쿠오카로 꼭 놀러오라고 했다. 나는 후쿠오카에 뭐가 유명하냐고 물었다. 토모미는 한참 고민하더니 온천이라고 대답했다. 하긴 온천은 일본 어디를 가도 좋았다. 사실 후쿠오카 하면 윤동주 시인이 떠올랐다. 윤동주는 그곳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마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어로 시를 쓰며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을 텐데, 나는 광복절 날 한국에서 일본 여자 한번 꼬셔 보겠다며 카페에 앉아 노닥거리고 있으니, 망조다. 나는 그들이 찍은 사진을 천천히 구경했다. 그들은 낮 동안 동대문에서 쇼핑도 했고 인사동에서 쌈짓길을 오르내리며 기념품도 사고 삼겹살도 먹었다. 레이코는 시장 옷이 생각보다 비싸다고 투덜댔다.

“투 익스펜시브?”

“응. 비싸!”

“와따시와 오까네가 나이데스. 싸게싸게 플리즈.”

돈이 없다는 장난스런 말에 그들이 크게 웃었다. 나는 그들에게 바가지를 쓰지 않고 물건 값을 깎는 방법에 대해 알려 줬다. 그리고 여행에 꼭 필요한 한국말을 몇 가지 가르쳐 줬다. 나는 어디를 가든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그들이 나의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했다. “멋지다, 잘생겼다, 똑똑하다” 등등. 한국말을 잘 모르는 그들을 상대로 욕구를 풀었다. 끝으로 이 세 글자를 가르쳤다.

“사.랑.해.”

토모미는 나를 보며 “사랑해”라고 했다. 유치하고 바보 같았지만 마냥 좋아하는 나를 보며, 레이코는 드라마에서 봤다면서 그 뜻이 “아이시떼루”가 아니냐며 토모미를 놀려댔다. 토모미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커피가 뜨거운지 좀처럼 입을 대지 못했다. 내가 카운터에서 얼음을 가져오겠다고 하자 보다 못한 레이코가 자신의 커피에서 얼음을 꺼내 넣어 주었다. 빨대로 열심히 커피를 젓는 토모미의 손에 눈이 갔다. 토모미는 손이 크고 길었다. 키가 크다고는 하지만 레이코의 두 배는 되는 듯했다. 자세히 보면 예쁜 남자 손 같기도 했다.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토모미는 양손을 테이블 밑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2층에 있던 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자 카운터에 있던 남자 점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에게 혹시 일본인이냐고 묻고는 광복절 이벤트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에게 직접 만든 브라우니를 선물로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절차상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내가 영어로 통역하자 레이코는 여권을 호텔에서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토모미에게 대신 보여주라고 했다. 토모미는 내 눈치를 보더니 가방에서 조심스레 여권을 꺼냈다. 여권을 본 점원은 죄송하다며 여성만 해당된다고 했다. 얼굴을 붉히는 토모미를 보며 당황한 표정으로 점원에게 장난하느냐고 물었다. 점원이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하자 나는 그의 손에서 여권을 뺐다시피 해 펼쳐보았다. 아뿔싸, 토모미는 정말 남자였다. 성별 란에 F(Female) 대신 나와 같은 M(Male)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사진도 지금의 토모미와는 달리 짧은 샤기 컷을 한 예쁘장한 사내였다. 순간 ‘앨빈’이란 내 이름처럼 글로벌 호구가 된 듯 불쾌하고 절망적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배신감보다는 희망이 무너졌다는 상실감이 더 컸다. 이에 토모미가 보란 듯이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고, 황당함에 패닉 상태로 멍하니 쓰러질 듯 앉아 있는데 레이코가 직접 브라우니를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나를 달래듯 처음부터 속일 생각은 아니었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그들은 연인이었다. 평소 몰래 여장을 즐겨하던 토모미를 위해 가까운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여장카페로 유명한 신촌의 N카페에서 여장을 한 뒤, 토모미의 진짜 성향도 확인할 겸 서울 시내 곳곳을 활보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레이코에게 어디까지가 거짓말이냐며 그동안 나를 놀려서 재밌었냐고 화를 냈다. 레이코는 머리를 조아리며 “스미마센”을 반복했다. 하지만 토모미가 남자인 것만 빼면 다 사실이라고 했다.

“죠소코(女?子)?”

토모미는 게이가 아니었다. 요즘 일본에서 한참 유행하는 트렌드로 수술해 여자가 되겠다는 욕구보다는 단순히 여장을 취미로 즐기는 정상적인 남자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행동들은 뭐란 말인가. 레이코도 지금 혼란스럽다며, 토모미가 유별난 구석은 있었지만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남자에게 이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토모미가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눈을 여러 번 세차게 비볐다. 다시 봐도,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는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가녀린 팔과 늘씬한 다리, 잘록한 허리는 여자보다 더 여자 같았다. 목소리만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면, 손과 발을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누구나 믿게 될 예쁜 여자였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턱하니 막혔다. 불행히도 이미 나는 토모미를 좋아하고 있었다.

“혼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토모미의 진심을 물었다. 토모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토모미의 눈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길가에 정차 중인 택시를 잡았다. 묵고 있는 호텔이 어디냐고 했더니 명동 프린스 호텔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호텔까지 잘 부탁드린다고 말한 뒤 뒷문을 열어 주었다.

“고마워.”

토모미는 내게 배운 한국말로 울먹이듯 말했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손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는 토모미의 손을 잡으며, 처음으로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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