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게으름을 죽여라

공공의 적―게으름을 죽여라




구경미




1


나를 지금의 이 ‘게으름치료센터’에 집어넣은 사람은 할머니였다. 엄마도 반대하고 나도 반대했지만 할머니를 이길 수는 없었다. 삼십대 초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부터 할머니는 집안의 제왕이 되었다. 제왕이 된 할머니는 그때 초등학생이던 엄마를 먹이고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킨 다음 잠시 평민으로 돌아갔다가 이혼하고 갈 데 없어진 엄마와, 그 엄마에 딸린 나를 받아들이면서 다시 제왕의 지위를 되찾았다. 엄마가 할머니의 가게를 물려받은 뒤에도 집안의 권력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할머니의 곱창집을 팬시점으로 업종 변경한 다음부터 가게는 겨우 적자만 면하는 형편이었고, 할머니가 새로 재미를 들인 일수업은 사고 한 번 없이 잘 굴러갔다. 생활비가 할머니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이상 엄마와 나의 반대는 반대가 아닌 투정에 불과할 뿐이었다.

 

 

“얘는 이제 스물여섯이에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엄마가 소리쳤다. 오늘이 1월 3일이니까 나는 이틀 전에 스물여섯이 되었다. 하지만 12월 28일생인 나는 나이에 관해서라면 많이 억울하다.

“그러니까 치료센타로 보내자는 거 아냐. 스물여섯 먹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있냐? 난 저 나이 때 애 키우고 살림하고 시부모 봉양하고 가게에서 허리 부러져라 곱창 구웠다. 다 큰 게 방 안에서 뒹굴거리는 꼴, 더는 못 본다.”

다시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열 통도 넘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는 걸 할머니도 봤으면서 왜 못 본 척하는가. 텔레비전에서 청년실업이라는 말만 나와도 젊은 것들이 때를 잘못 만나 고생한다고 혀를 차더니 왜 나한테만 가차없는가.

“그럼 결혼은 어떻게 해요? 거기 들어갔다 나온 애를 누가 데려 가겠어요?”

“게으른 것도 병이다. 병은 빨리 치료할수록 좋다. 병을 놔두면 옆으로 옮고 속으로 옮는다. 속병 든 애를 누가 데려갈 것 같니?”

엄마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대꾸가 없었다. 내가 게으르고 싶어서 게으른 것도 아닌데 나를 병자 취급하는 게 섭섭했다. 그런 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엄마는, 취직이 안 돼서 그렇죠, 쟤는 놀고 싶어 놀겠어요? 하고 모기 소리만 하게 반박했다.

“그게 다 게을러서 그런 거야. 난 한평생 일 없어서 놀아 본 적은 없다. 핑계야.”

이 말에는 엄마도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정적이 길어졌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할머니, 하고 불렀다. 할머니와 엄마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어쩌면, 하는 기대와 어차피,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꺼냈다.

“그 돈으로 차라리 유학을 보내 줘.”

할머니와 엄마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아니면 연수라도. 딱 1년만. 갔다 와서 효도할게요.”

“이 할미 등골 빼먹으며 대학 다닌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외국까지 공부하러 간다는 거냐? 젊은 것이나 어린 것이나 어찌 그리 철이 없냐.”

엄마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흘끗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할머니의 곱창집을 팬시점으로 바꾼 뒤부터 엄마와 할머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툭하면 그 얘기를 꺼냈다. 곱창집은 할머니가 평생을 일해 온 일터였다. 다행히 손님도 많아서 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당연히 엄마가 그 일을 이어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는 곱창을 굽는 대신 다이어리와 인형과 아로마 향초들을 팔았다. 어릴 때부터 맡아 온 곱창 냄새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수시로 가게에 드나들며 훈수를 두는 것으로 삶의 낙을 삼으려던 할머니의 계획은 어긋났고, 당신이 평생 해 온 일을 엄마가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팬시점이 잘 됐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도 못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특히 돈 들어갈 일이 생길 때마다 할머니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잔소리를 쏟아냈다. 곱창 얘기가 나오기 전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

“알았어요. 들어갈게요.”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입원하는 거다.”



2


정확하게 말하면 ‘입원’이 아니라 ‘입소’가 맞다. 할머니는 게으름을 ‘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습관’이나 ‘무기력’에 더 가까우니까. 그래서 이곳의 우두머리는 ‘원장’이 아니라 ‘교장’이고 직원들은 ‘간호사’가 아니라 ‘선생’이다. 선생은 우리를 ‘교육생’이라 부른다. 그런데 왜 이곳의 명칭은 ‘학교’나 ‘훈련소’가 아니고 ‘치료센터’일까. 어쩌면 교육생들을 철저하게 교육 시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인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게으름을 ‘병’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할머니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지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놀랐다. 정말 놀랐다. 깜짝 놀랐다. 우선은 생각보다 교육생이 많아서 놀랐고, 그 교육생이라는 사람들이 또 대부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후반까지라는 데 놀랐다. 물론 삼십대에서 오십대 사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열 명 안팎에 불과했고 나머지 사십여 명이 나보다 어리거나 내 또래거나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았다. 교도소도 아니고,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펑펑 쏟아 낸 엄마의 눈물이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또래가 많다고 해서 내가 위안을 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입소 예정 기간은 두 달이었다. 두 달 만에 ‘병’을 고칠 수 있을지 할머니는 의심스러워 했지만, 우선 두 달 이상은 엄마가 강하게 반대했고 할머니도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두 달은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인 나로서는 두 달이 두 달만의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들어와 있는 사이 절호의 취업기회가 다가왔다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기회란 자주 오는 게 아니므로 두 번의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취업을 못한다면, 그렇다면, 파리 날리는 엄마의 팬시점을 물려받아 입에 풀칠이나 하며 가난하게 살아야 하거나 아니면 젊은 나이에 일수를 놓아 그 이자를 받아먹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3조에 배정되었다. 나까지 포함해서 여덟 명. 그러므로 앞으로 두 달 동안 나는 일곱 명의 타인들과 함께 살아야 했다. 아니, 오십여 명의 타인들과 함께.

내 침대는 네 개가 나란히 놓인 가운데서 창가로부터 두 번째 것이었다. 두 번째 침대와 세 번째 침대 사이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었지만 그것은 슬리퍼를 벗고 침대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이어서 있으나 마나 했다. 가운데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빈 침대는 그것뿐이었다.

“원래는 내 거였어.”

짐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창가 쪽, 그러니까 첫 번째 침대에 앉은 아이였다.

“뭐가?”

내 목소리는 곱지 않았다. 뭔지 모르게 마음이 복잡했고 심기가 불편했다.

“그 침대. 원래는 내 거였다고. 이 자리 애가 나가자마자 얼른 옮겨왔어.”

그걸 자랑이라고 하니? 하지만 나는 참았다. 가만 보니 스물도 안 됐을 것 같은 앳된 얼굴이었다. 이제 왼쪽으로 돌아누울 때마다 저 얼굴이 보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마저 짐을 정리해 넣었다. 두 달만 견디면 된다. 두 달만.

그때 요란한 벨소리가 들렸다. 불이 났나,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허둥지둥 뛰어나가는 아이는 없었다. 일과표를 보았다. 시계도 보았다. 네 시였다. 정신강화교육? 다른 아이들은 이미 방을 나가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정신강화교육이 뭐지?

“난 김미조야. 반가워. 넌?”

넌? 지금이 한가하게 인사나 하고 있을 때야?

“진원형. 반가워.”

“이름 웃긴다. 진원, 진형, 원형, 다 되네?”

“하.”

나는 하, 하며 웃고 말았다. 내 이름을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웃기다니까 웃긴 것도 같았다. 도대체 정이 안 가는 이름이었는데 조금쯤 정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나저나 정신강화교육은? 방에는 이제 우리 둘밖에 없었다. 일과표를 보았다. 장소는 나와 있지 않았다. 미조가 팔을 뻗더니 내 일과표를 낚아챘다.

“만날 똑같은 소리야. 앞으로 지겹게 들을 텐데 첫날부터 귀를 오염시킬 필요는 없잖아.”

그러다 감점이라도 받으면? 형편없는 성적표를 들고 갔을 때의 할머니 얼굴이 상상되었다. 미조는 내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센터 안내 받았다고 해. 안내자는 바로 나고. 나가자.”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미조를 따라 방에서 나갔다. 정말 안내를 하려니 생각했다.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는 미조의 말도 있고 해서, 나쁜 점수를 받느니 차라리 안내인 역할을 자청한 것이려니 했다.

복도로 나가자 미조는 신중하게 행동했다. 양 방향을 다 살핀 뒤 움직였고 발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때 이미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이 애가 뭘 하려나 싶어 그냥 두고 보았을 뿐이었다. 들키지 않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벽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발밑에서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났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건물은 언덕바지에 있었다. 100미터 내에는 다른 건물이 없었다. 나무가 약간, 그 외에는 자갈과 흙뿐이었다. 그나마 드문드문 눈이라도 없었으면 참으로 황량해 보였을 것이다.

“난 스물한 살이야. 넌?”

생각보다 많이 먹었구나. 기껏해야 열여덟이나 아홉으로 보였는데. 그런데 나?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스물하나나 둘. 맞지?”

뭐 대충, 하고 얼버무렸다. 그 말을 할 때 나는 고개를 돌렸고, 주위를 휘둘러보는 척했다. 미조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고, 혹 있을지 모를 얼굴의 주름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다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번에는 나이를 속였다는 것 때문이었다. 다 왔다, 하고 소리치며 미조가 달려 들어간 곳은 체육관이었다.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물을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어둑했다. 네 시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흐렸든가. 할머니에게 다짐하고 또 엄마를 달래느라 오늘은 하늘을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여기는 왜?”

내가 물었다. 만날 사람이 있어, 하더니 미조는 체육관 구석으로 달려가 세워져 있던 매트리스를 눕히고는 그 위에 앉았다. 연애하니? 라고 다시 내가 조심스럽게 물은 것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벌써 선생들 중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입소 절차를 마치고 인사를 나눌 때 유독 잘생긴 선생이, 그래서 눈에 확 띄는 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만날 사람만 있으면 다 연애야? 웃긴다.”

웃긴다, 고 말해 놓고 미조는 정말 깔깔깔 소리 내어 웃었다. 아닌가? 하긴 연인을 만난다면 나를 데려올 리가 없지. 나도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차가웠다. 섬뜩한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미조도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센터에서 나눠 준 얇은 카디건 하나씩만 걸치고 있었다. 외투를 입어도 추울 날씨에 실내복을 입고 차가운 매트리스 위에 앉아 있으니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이가 부딪쳐 소리가 났다. 그러자 또 미조가 깔깔깔 소리 내어 웃었다. 이렇게 잘 웃는 아이가 이곳엔 왜 왔을까? 웃음과 활동성이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잘 웃는 사람은 외향적이고 부지런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가 닫혔다. 어두운 형체로만 존재할 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미조를 만나러 온 사람일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바짝 긴장했다. 눈앞에 존재함에도 상대가 누군지 모른다는 건 그렇게 두려운 일이었다. 미조가 손전등을 꺼내 켜서는 흔들었다. 상대편에서도 손을 들어 화답했다. 손전등이 정확하게 그 얼굴에 가 꽂혔다. 키가 훌쩍 컸지만 얼굴은 미조보다 더 앳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고등학생쯤? 나중에 들으니 열여덟이라고 했다.

“가져 왔어?”

미조가 물었다. 그러자 남자아이가 응, 하면서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얘는. 그렇지?”

미조가 남자아이를 보면서 말했으나 뒷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또 내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봐서, 하고 말했지만 남자아이는 오히려 그 대답에 안심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체육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선생에게 일러바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남자아이가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미조는 여러 층으로 쌓인 매트리스와 매트리스 사이에다 손전등을 끼웠다. 손전등 불빛이 작은 원을 그리며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비췄다. 컵라면 두 개와 뜨거운 물이 담겼을 보온병, 그리고 소주 하나, 맥주 하나, 잔 두 개, 젓가락 두 개.

죽인다! 어쩐지 그런 말이 하고 싶었다. 일탈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좀 바보스럽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옹기종기 붙어 앉아 컵라면을 먹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마셨다. 컵라면이 그렇게 맛있는 줄 미처 몰랐다.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마시는 술이 그렇게 달콤한 줄 미처 몰랐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고 있었다.

“얘 봐.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지?”

나를 보고는 있었지만 미조의 그 같은 말은 남자아이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자 남자아이가 씨익, 웃었다.

그날 밤 나는 중요한 정보 하나를 알았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면 소주를 마신 것 같은 효과를 내면서 냄새는 덜 난다! 미조가 그렇게 말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믿기로 했다.



3


미조는 휴학 중이었다. 체육관에서 만났던 남자아이도 휴학 중이었다. 미조는 대학, 남자아이는 고등학교였다. 이십대 중반까지의 많은 교육생들이 대학이거나 고등학교를 휴학 중이었다. 미조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다. 체육관에서 만났던 남자아이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몰랐다. 동시에 둘은,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자식들 다 키워 놓고 할 일이 없어지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중년을 제외한다면, 센터에서 만난 많은 교육생들이 그랬다. 공부만 하고 경쟁만 하느라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들은 게으르고 싶어서 게으른 게 아니었다. 뭘 하고 싶은지를 몰라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부모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들은 강요했고 자식들은 반항했다. 반항하지 않으면 무시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미조는 반항한 쪽이었다. 딱히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게 없었으므로 대학 졸업장도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학교에 잘 가지 않았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까지 한 걸로도 충분했다. 대학에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했다. 대학만 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장이 생긴들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집에서 빈둥거렸다. 부모의 잔소리가 심해졌다. 다시 학교에 나갔다. 대신 공부는 하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지도, 어학연수도 가지 않았다. 부모는 세 끼 식사 때마다 약육강식의 사회에 대해,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증’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무한경쟁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는 딸을 질타했다. 1년 동안 세 끼 식사 때마다 잔소리를 들은 딸은 마침내 폭발했고, 자퇴를 선언했다. 부모의 질타가 오히려 거세졌다. 효과가 없었다. 더 강한 것이 필요했다. 결혼을 선언했다. 부모가 코웃음 쳤다. 집으로 남자를 데려갔다. 그날 처음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십대의 남자였다. 이혼한 전력이 있는 남자는 마침 아이들을 키워줄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흔쾌히 승낙했다. 날짜를 잡고 식장까지 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모가 다급해졌다. 부모는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이곳에 딸을 격리 조치했다.

미조가 반항한 쪽이었다면 체육관에서 만났던 남자아이는 무시한 쪽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남자아이는 알았다. 자신에게는 목표가 없었다. 대학 외에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목적은 있으나 목표는 없었다. 대학 합격이 목표가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과정에 불과했다. 그런데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과정을 목표로 잘못 알고 살고 있었다. 그 과정에 도달하고 나면 그 다음엔? 막막했다. 두려웠다. 난 왜 하고 싶은 게 없지? 고민했다. 성적이 떨어졌다. 부모에게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부모는 이해하지 못했다.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를 댄다고 했다. 2학기에는 성적이 더 떨어졌다. 부모의 질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가 번갈아가며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못 들은 척, 못 본 척했다. 만날 같은 소리였다. 들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소리였다.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그날 부모는 큰맘 먹고 아들을 앉혀 놓고 대화를 시도했다. 대화는 잔소리로 시작되었다. 결론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의 말이 끝났을 때, 공부를 왜 해야 하지? 라고 남자아이가 한마디 했다가 이틀 뒤 이곳으로 끌려왔다. 부모는 폭발했다. 부모는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했다. 1년 꿇는 한이 있더라도 틀려먹은 정신상태를 고쳐 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조와 남자아이는 이곳에서 만났다.

인생 상담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게으름치료센터에 가득했다. 미조와 남자아이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나중에 나는 미조에게, 그때 부모가 가만 있었으면 정말 결혼할 생각이었냐고 물었다. 미조가 대답했다.

“하면 하는 거지. 어쨌든 잔소리는 안 듣고 살 거 아냐.”


입소 이튿날, 남녀 중년반인 5조와 6조를 제외한 교육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강당에 모였다. 현장체험을 나간다고 했다. 나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새벽 여섯 시 반에 아침을 먹은 것도 처음이었다. 억지로 몇 숟갈 구겨 넣은 밥이 식도 어디쯤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거북했다. 그런데 현장체험이 뭐지?

교장선생이 단상에 올라와 일장연설을 했다.

“어제도 말했다시피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정신강화교육시간에 땡땡이쳤지만 교장의 연설로 인해 그게 뭘 하는 시간인지 알게 되었다. 미조도, 미조 옆에 선 아이도 하품을 했다.

“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밥을 버는 행위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몸소 체험함으로써…….”

“완전 코미디야.”

미조가 속삭였다.

“우리가 대여섯 살 먹은 어린앤 줄 아나 봐. 웃겨.”

교장의 말이, 교장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리란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얼른 연설이나 끝났으면 좋겠다. 이렇게 추운 강당에 가만히 서 있느니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게 낫겠다. 그 뒤로도 교장의 연설은 십 분이나 더 계속되었다. 마침내 연설이 끝나고 작업조가 편성되었다. 1조와 3조가 한 조가 되고 2조와 4조가 또 한 조가 되어 각각 다른 현장으로 투입된다고 했다. 투입되는 곳이 어딘지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대기 중인 미니버스에 올랐다. 우선은 따뜻해서 살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스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혹시 교도소를 벤치마킹 한 건 아닐까?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기분이 씁쓸했다. 어제 체육관에서 만났던 남자아이의 이름은 동화였다. 이동화. 버스를 탈 때 뒷자리로 가며 미조에게 슬쩍 쪽지를 건네는 걸 보았다. 동화는 1조였다. 미조가 내게도 쪽지를 보여 주었다.

‘공공의 적―게으름을 죽여라’

무슨 뜻이냐고 물었으나 미조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식도에 걸린 것 같던 밥알이 내려가면서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아직 여덟 시도 안 됐는데 이미 아침은 물 건너갔고, 점심은 아직 멀었다. 점점 더, 배가 고파왔다.

우리는 신축공사 중인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은 로비였다. 인솔 선생이 둘, 1조가 열, 3조가 여덟, 인원수는 모두 스물이었다. 우리를 2열종대로 세운 뒤 인솔 선생이 말했다.

“이 빌딩은 지상 15층, 지하 3층으로 총 열여덟 개 층이 있다. 오늘 우리가 맡은 구역이다. 보다시피 지금은 몹시 지저분하다. 우리는 이 빌딩을 목숨 걸고 윤나는 거울처럼 만들어 놓는다. 다들 잘 알 테니 긴 말 않겠다. 몇 시가 됐든 이 일이 끝나야 우리는 돌아갈 수 있다. 여러분은 지금 게으름을 버리기 위한 훈련 중이라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구체적인 작업은 여기 반장님의 지시를 따르도록. 이상.”

인솔 선생들은 난로가 피워진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의 분담은 이곳 작업반장이 맡았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유리창 닦기와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여자아이들에게는 바닥과 계단 청소가 맡겨졌다. 크게 구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막 공사가 끝난 빌딩 안에는 치우거나 쓸거나 닦거나 뜯어내야 할 잔일들이 무진장 많았다. 게다가 얼마나 넓은지. 또 사무실은 얼마나 많은지, 마흔다섯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풀썩 일었고 기침이 났다. 무엇보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진짜 인부도 있었다. 그들은 미처 끝내지 못한 내부 마무리작업 중이었는데 가끔은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내야 하기도 했다.

“현장체험이라는 거 자주 나오니?”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쯤?”

대걸레로 바닥을 닦던 미조가 허리를 폈다. 손과 얼굴이 퍼렇게 얼어 있었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일당은 주나?”

“꿈도 크다. 여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센터에 필요한 거 산대. 교장이 그렇게 말했는데 모르지, 안 봤으니까.”

억울한 일이다. 추위에 떨면서 죽도록 고생하고 일당도 없다니. 할머니 갖다 드리면 좋아하실 텐데. 이런 무임금 노동을 앞으로 일곱 번이나 더 해야 한다! 기가 찼다. 경제관념이 철저한 할머니니까 이런 사실을 알면 나를 빼내 줄지도 모른다. 아니다. 일당 내놓으라고 센터를 한바탕 뒤집어 놓을 것이다.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숨기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빼고는 휴식시간도 없이 작업이 계속되었다. 놀라운 일은, 아이들이 아무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던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을 찾아서 했고,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했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장난을 치는 아이도 없었다. 열심히들 하고는 있었지만 생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자포자기의 몸짓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마치 잘 조직된 청소 전담반 같았다. 한 사람을 빼고는. 동화가 가끔 미조를 찾아와 우스갯소리를 늘어 놓고 돌아갔다. 그럴 때면 퍼렇게 얼었던 미조의 얼굴에도 깜짝 화색이 돌았다.

작업은 저녁 일곱 시에 끝났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일이 결국은 끝났다. 그것도 일곱 시에. 감격스러웠지만 감격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너무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다. 밥을 버는 행위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비참했다. 나 자신이 하찮은 벌레처럼 여겨졌다. 노동의 신성함이나 정신의 고귀함 따위는 말할 계제가 아니었다. 육체의 따뜻함을, 육체의 배부름을, 육체의 편안함을 요구하는 1차원적인 본능에 시달리느라 그런 것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교장선생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결국은 공부였고, 경쟁이었고, 물질적인 성공이었다.

미니버스에서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내가 코를 곯았다며 미조가 놀렸다. 잠도 안 잤는데 무슨 코를 곯았다는 거야? 나는 반박했다. 버스가 멈췄다. 동화가 지나가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누나 코 고는 소리 저 뒤에까지 들리던데?”



4


센터의 휴게실에는 서가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고, 공공의 적으로 분류된 책들로만 꽂힌 칸도 있었다. 나뿐 아니라 적도 함께 알아야 한다는 교장선생의 지론에 의해서였다. 예를 들면 이런 책들이었다. 토마스 호헨제의 『당당한 게으름』,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피에르 상소의 『게으름의 즐거움』. 반면 일반 서가에는 공공의 적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부지런한 일꾼들』, 『부지런한 습관만이 인생의 기적을 낳는다』, 『드나드는 개가 꿩을 문다』, 『게으름을 죽여라』 등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책등에다 ‘공공의 적’이라고 일일이 써 붙인 것도 그랬고, 애써 구분해 놓았지만 교육생들의 외면을 받아 여전히 종이 날 빳빳한 새 책으로 남아 있는 것도 그랬다. 그러다 문득 낯익은 문장을 발견했다. 나는 이분법적으로 분류해 놓은 서가를 번갈아보며 각각의 칸에서 낯익은 문장을 가져와 조합해 보았다.

‘공공의 적―게으름을 죽여라’

그것은 동화가 미조에게 보낸 쪽지 내용이었다. 『게으름을 죽여라』를 뽑아 들었다. 책 날개에 교장선생의 얼굴이 커다랗게 인쇄돼 있었다. 약력이 화려했다.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동화의 익살이 귀여웠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루 만 걸음을 걸으면 돈이 쏟아진다’

‘행동 하나에 인생이 달라진다’

‘그대가 멈출 때마다, 주저앉을 때마다, 엎드릴 때마다 부모님은 십 년씩 늙어간다’

격언이나 명언을 흉내 낸 문구들이었다. 그것들이 사방에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침실 벽에도 붙여져 있던 것이 생각났다. 식당에도 있었고 강당에도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찾았잖아. 종 울렸어, 가자.”

미조였다. 입소 사흘째, 다시 정신강화교육시간이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강의실로 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중간을 좋아했으나 미조의 손에 끌려 마지못해 앉았는데, 뒷자리는 온통 남자아이들뿐이었다. 큰 덩치들에 둘러싸여 우물 속에 갇힌 형국이었다. 흑판도 안 보이는데……, 내가 중얼거렸다.

“우리한테 흑판이 안 보인다면 선생한테도 우리가 안 보인다는 거지.”

미조가 쾌활하게 말했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어색하기만 했다. 이곳에 온 지 이제 사흘째였고 아는 얼굴보다는 모르는 얼굴이 많았던 것이다. 특히 남자들과는 조가 달라서 얼굴을 익힐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동화가 옆에 있어 조금 위안이 되었다.

교장선생이 들어와 교탁 앞에 섰다. 그는 먼저 강의실을 한번 둘러보더니 흑판에다 ‘황소가 된 게으름뱅이’라고 썼다. 설마, 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꼭 그 짝이었다. 교장선생은 「황소가 된 게으름뱅이」의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조들의 가르침은 어느 것 하나 틀린 것이 없다며 주위에서 보거나 들은 예를 들기까지 했다. 게을러서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게을러서 백수가 되고, 게을러서 비참한 말년을 맞고……. 한숨이 나왔다.

그 다음 얘기는 「개미와 베짱이」였다. 눈보라 치는 한겨울, 처참한 몰골의 베짱이가 개미의 집을 방문할 무렵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음소리가 좀 컸던 모양이었다. 교장선생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교육생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웃은 놈 나와.”

교장선생의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감히 나갈 수가 없었다. 제발 그냥 넘어가 주길 빌며 고개를 푹 숙였다.

“거기 뒤쪽! 거기 어느 놈이 웃은 거 다 알고 있다. 얼른 나와.”

교장선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몇 초만 더 버틴다면 뭐라도 집어던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냥 넘어가기는 글렀다. 강의실은 손목시계의 시침 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고, 긴장감이 돌았다. 버티면 버틸수록 손해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안 나와, 하고 교장선생이 버럭 고함을 질렀을 때, 나는 정말 일어나려고 했다. 다른 교육생들을 위해서라도 자수하려고 했다. 그런데 간발의 차로 동화가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나갔다. 동화도 웃었나?

“이 눔의 새끼! 사고뭉치 네놈일 줄 알았다. 좀 더 버텨보지 그랬냐? 그럼 1일 금식인데. 너는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을 굶는다. 배가 고파 봐야 정신을 차리지. 들어가.”

동화도 웃었나 생각했지만, 동화는 웃지 않았다. 우선 웃음소리가 하나였고, 동화는 나를 가운데 두고 미조와 쪽지를 주고받느라 바빴다. 아마 교장선생의 말은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동화는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나를 향해 싱긋, 미소를 날렸다. 나 대신 나갔구나. 동화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자 미조가 쪽지 하나를 건넸다.

‘괜찮아. 늘 있는 일인데 뭐.’

그래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교장선생의 말은 이제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대신 동화가 전체 교육생들 앞에서 쪽팔림을 당했다. 교장선생에게 찍혔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 또 두 끼를 굶어야 한다. 열여덟 살인 동화에게 두 끼를 굶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내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는 와중에도 미조와 동화는 쪽지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눈앞으로 쪽지가 휙휙 날아다녔다. 둘의 원활한 서신교환을 위해 다음에는 미조를 가운데에 앉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식당에 가니 먼저 와 있던 동화가 미조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태연해서 의아함마저 들었다. 금식벌칙이 풀렸나? 미조가 또 태연히 마주 손을 흔들었다. 식판에 밥을 받아 동화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갔다. 동화 옆에는 선생이 하나, 저녁을 먹고 있었다. 동화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조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동화가 과장되게 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를 냈다.

“오늘 미역국 되게 맛있다. 제육볶음도 죽여 줘.”

“미역국 먹고 빙판길에서 미끄러져라.”

미조가 놀리자 동화가 반격했다. 둘은 티격태격 말장난을 시작했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런 벌칙이었구나.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누나. 드세요. 난 눈으로 먹고 냄새로 먹을 수 있어요. 초능력자거든요.”

동화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이번에도 미조가 상대했다.

“그 초능력 어디 보여 봐.”

“지금 보이고 있잖아. 벌써 배불러.”

“하나도 안 줄었는데?”

“기만 빨아들이는 거야. 말하자면 누나는 기는 다 뺏기고 껍데기만 먹는 거지. 헛배만 부르는 거야.”

“배고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음식에 기가 어딨어?”

“껍데기 먹고 살이나 쪄라.”

“거짓말한 죄로 넌 10일 금식이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선생이 한마디 했다.

“그러게 빨리 나가지 왜 쓸데없이 개겨 가지고 사서 고생이냐.”

동화가 멋쩍게 웃으며 그러게요,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시간이 길수록 동화의 벌칙시간도 길어진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벌칙이라도 빨리 끝내주고 싶었다.


머리맡의 전등을 껐다. 방 안이 캄캄해졌다. 자정이 조금 안 된 시각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진작부터 자고 있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려면 나도 이제 자야 했다. 그러나 생각만 그럴 뿐 좀처럼 잠이 찾아와 주지는 않았다. 이곳의 시스템에 완전히 적응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아직도 일찍 잠들고 일찍 깨어나는 게 죽을 맛이었다. 내가 부스럭거리며 돌아눕는데 미조가 자니? 하고 물었다.

“화장실 안 갈래?”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가자, 하고 말했다.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는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희미한 불빛이 비추고 있어 아주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기에는 무서울 만도 했다. 뒤늦게 따라 나온 미조가 1층으로 나를 끌었다. 그러고 보니 미조는 외투를 입고 있었고 내게도 카디건을 건네주었다. 화장실에 간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두꺼운 옷차림이었다. 뭔가 있구나, 짐작했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열쇠가 있어야 열고 나갈 수 있는 문이었다. 미조는 나를 돌아보며 생긋 웃더니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대단하다! 나는 감탄했다.

“현장체험 나갔을 때 복사했지. 선생들은 아무것도 몰라.”

“멋지다!”

우리가 멈춘 곳은 체육관이었다. 동화가 먼저 와 있었다. 손전등 불빛 안의 동화는 몇 시간 만에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미안해졌다. 미조가 외투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과자와 빵,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였다. 역시. 나는 안도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미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화는 벌써 입 안으로 빵을 밀어 넣고 있었다. 걸신들린 모습은 다 연출하면서, 누나들도 먹어, 했다.

“이거 먹었다간 살아남지 못할 거 같은데?”

“눈치 하난 빠르네. 암튼 누나한텐 못 당해.”



5


미조와 동화가 떠났다. 나만 남겨두고 가버렸다. 그 애들이 사라지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위험인물들과 어울린 내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사고능력을 거세당한 교육생들은 교장선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의심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불온한 생각은 전염된다는, 얼토당토않은 믿음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위험분자가 옮았을지도 모르는 준 위험인물이었다. 그들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옆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의 존재는 무시당했다. 선생들도 모른 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선생들은 방관했다. 선생들은 눈을 감아 버렸다. 미조와 동화가 궁지에 몰렸을 때도 그랬다. 미조의 침대는 내가 센터를 떠날 때까지 빈 채로 남아 있었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남들 자는 시간에 자지 않았다는 거? 교육시간에 빠진 거? 군것질하고 술 조금 마신 거? 그 아이들의 반항이라는 게 고작 그 정도였다. 교장선생의 말처럼, 센터를 불태우는 것은 아니었다. 센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정치적인 것에는 관심도 없는 아이들이었다.

입소 보름쯤 되는 어느 날이었다. 자고 있는 나를 미조가 깨웠다. 왼쪽 팔이 살며시 흔들리다 그 강도가 세져 급기야 침대 아래로 팔이 떨어질 정도가 되었지만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감기몸살 때문이었다. 감기는 일주일쯤 되었고 몸살은 전날 현장체험을 나갔다가 얻은 것이었다. 눈 치우는 작업이었는데 날씨는 춥고 눈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던 것이었다. 한 곳의 눈을 다 치우면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나가자. 오늘 파티할 거야.”

미조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잠깐만 있다가 가. 네가 꼭 참석해 줬으면 좋겠어.”

미조의 목소리는 제법 간절한 것이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미조 혼자 나갔다. 그때 무슨 파티냐고 물었어야 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간절한 목소리에 귀 기울였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다는데 자꾸만 일어나라고 보채는 미조를 귀찮아했다. 병자 대접을 해 주지 않아서 섭섭해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은 미조의 생일이었다. 그러니까 미조는 여느 날과는 다른, 생일파티를 계획하고 있었다. 내가 빠진 가운데 미조와 동화 둘이서 파티를 열었다. 파티에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소주와 맥주가 등장했다. 생일파티이므로 동화는 좀 색다른 안주를 준비하고 싶었다. 용케 오징어를 구했다. 마른 오징어를 굽지 않고 그냥 먹을 수는 없었다. 식당 찬장에 있던 버너와 일회용 라이터가 체육관으로 옮겨졌다. 이왕 식당에 간 김에 동화는 냄비와 미역과 약간의 양념도 가져왔다. 나중에 이것들 중 몇 개는 교장선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이 되었다. 오징어와 냄비와 먹다 남은 미역국은 언급되지 않았다. 오로지 술과 버너와 일회용 라이터만이 살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캠프파이어를 주장한 것은 동화였다. 처음에 미조는 반대했지만 곧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평소보다 좀 과하게 술을 마셨다. 얼마간 이성이 마비되었다. 게다가 그날은 미조의 생일이었다.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왔다. 불은 붙지 않고 연기만 났다. 일회용 라이터로는 어림도 없었다. 버너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화력이 세서인지 이번에는 금방 붙었다. 어렵게 불 피우는 데 성공하자 동화는 신이 났다. 좀 멀다 싶은 곳까지 가서 나뭇가지들을 모아왔다.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아마 그것으로 불장난은 끝났을 터였다. 미조와 동화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바람이 불고 있었다. 게다가 체육관과 너무 가까웠다. 불을 크게 피울 생각이 아니었으므로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타오르는 불꽃에 신이 난 미조와 동화가 자꾸만 나뭇가지를 던져 넣었고 불꽃은 점점 커졌다. 체육관으로 불꽃이 날아가 앉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장 먼저 뛰어나온 사람은 교장선생이었다. 체육관이 불타고 있었다. 체육관 옆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교장선생은 다시 센터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벨을 울렸다. 방송도 했다. 선생들이 놀라 뛰쳐나오고 교육생들도 일어났다. 소방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누군가는 호스로, 누군가는 양동이로 물을 퍼 날랐다. 교육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평소 현장체험에서의 노동으로 다져진 민첩함과 단결력이었다. 그때 미조와 동화가 돌아왔다. 손에는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둘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때마침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불은 이미 잡힌 상태였다. 일찍 발견한 덕에 큰불로 이어지지 않고 체육관의 지붕과 벽이 조금 그을린 정도였다. 소방차는 돌아갔고 미조와 동화는 멱살을 잡힌 채 사무실로 끌려갔다.

방화가 아니었다. 고의가 아니었다. 과실이었다. 방화와 과실은 엄청난 차이였다. 두 단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고 있었다. 벌금과 합의금으로 끝날 문제가 범죄행위로 치닫고 있었다. 분노한 교장선생이 미조와 동화의 뺨을 한 차례 후려친 후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자 동화의 뺨을 서너 번 더 후려쳤다. 욕설을 퍼부었고 평소 착실하지 못했던 생활을 들먹이며 폭언을 했다. 그런 뒤 질문이 시작되었다. 대답은 미조가 했다. 처음에 미조는 사실대로 말했다. 생일이라는 것과 파티를 했다는 것, 불이 난 것은 실수라는 것. 그러나 그것은 교장선생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으므로 듣지 않았다. 다음에 미조는 교장선생의 질문에 무조건 네, 라고 대답했다. 센터를 불태울 계획이었냐? 네. 들킬까 봐 체육관에다 먼저 붙였고? 네. 짝. 미조의 뺨이 오른쪽으로 획 돌아갔다. 사람들이 다 타 죽든 말든 상관없고? 네. 다시 짝. 그러고 도망갈 생각이었구나. 네. 계획이 실패했으니 내가 원망스럽겠네? 네. 복수할 거니? 네.

그사이 선생들은 미조와 동화의 옷장에서 새로운 증거물들을 찾아냈다. 현관문, 식당, 체육관의 열쇠와 미조와 동화가 주고받은 쪽지들, 일기장 따위였다. 그 중에서도 교장은 ‘공공의 적―게으름을 죽여라’라고 적힌 쪽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목표는 나였군, 하고 중얼거렸다. 목표는 나였어.

“그런데 너희들, 실수했다. 불을 지르기 전에 먼저 현관문을 잠갔어야지. 물론 열쇠도 챙겨가고 말야. 그걸 깜빡했구나.”

미조와 동화는 몸수색을 당한 뒤 체육관에 감금되었다. 경찰에 넘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인계는 다음 날로 미뤄졌다. 체육관 문에는 평소 보지 못한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졌고, 교육생들에게는 돌아가 취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나 나는 잠들지 못했다. 내가 같이 있기만 했어도 일이 이렇게까지는 안 됐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후회와 자책으로 밤새 뒤척이다 일어나 보니 센터가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혀 있었다.

미조와 동화가 사라졌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애들과 친했던 내가 잠시 의심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물증이 없었다. 자물쇠는 그대로 채워져 있었다. 열쇠는 교장선생만이 갖고 있었고 그것은 여전히 교장선생의 허리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경찰들까지 와서 조사했지만 탈출 경로를 밝히지는 못했다. 그렇게 미조와 동화의 탈출은 미제사건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체육관 구석에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다만 매트리스가 사람 키 높이까지, 그것도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체육시간에도 앞쪽의 몇 겹만 사용할 뿐 뒤쪽의 것은 거의 손대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모를 뿐이었다. 미조와 동화만 알고 있던 비밀을 내가 공유하게 된 것은 입소 첫날 함께 술을 마시면서였다. 그 애들이 사라진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나는 구멍 얘기를 하지 않았다. 미조와 동화가 멀리멀리 도망갔기를 빌 뿐이었다. 둘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교장선생의 눈에 띄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이후 한 달 보름 남짓의 센터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몇 번인가 할머니에게 꺼내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뒤로는 묵묵히 남은 시간을 견뎠다. 하라면 하고, 자라면 자고, 가라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두 달이 다 채워졌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운 돈만 버렸다. 저 꼴 보려고 내 피 같은 돈을 쏟아 부었냐? 참 해도 너무한다.”

할머니의 넋두리였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할 만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주로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게 다 시들했다. 구직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몸은 잠을 자고 있어도 마음은 늘 불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무능력’과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이 이율배반적인 심리상태를 설명할 길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3월 중순, 어느덧 봄이 다가와 있었다.《문장 웹진/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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