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목격자




김 휘




그 놈이다. 나를 쏘아보는 눈. 갈고리 모양으로 긋고 올라간 입술. 놈은 웃는 건지 조롱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미칠 노릇은 얼굴은 물론 왜소한 체격과 키까지 나와 똑같다는 사실이다. 우체국 마감 시간에 밀려든 사람들로 북적거려 잘못 봤단 생각은 놈을 본 순간 내동댕이쳤다. 손끝에 달린 우편 봉투가 파르르 떨렸다. 봉투 안에 든 위조 주민등록증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제 주문 이메일이 왔다. 첨부된 사진 파일을 열었을 때, 나는 기겁했다. 사진 속의 얼굴은 꼭 나였다. 선수금이 입금된 뒤라, 사진을 트집 잡아 주문 취소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닮은 사람일 뿐이라고 억지로 나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위조하는 내내 명치끝이 울렁거렸다. 내 얼굴이 박힌, 완성된 주민등록증을 만질 땐 손톱 끝으로 징그러운 벌레를 집듯 했다. 우체국에 오는 동안에는, 발걸음마다 땅에 운동화 밑창이 들러붙는 기분이었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일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재수가 옴팡지게 나빠서일까. 몇 주 전 발생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조사 받았을 때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늦은 밤 인근 지역의 미용실 여종업원 한 명이 살해되었다. 몽타주가 사방에 깔렸다. 나는 담배 사러 나갔다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 동네 누군가가 제보했다는 거였다. 형사가 수배범 전단을 내 얼굴 가까이 들이댔다.

“정말 비슷하네.”

몽타주 우측에 키 160cm, 마르고 왜소한 체격, 하얀 피부, 꽁지머리를 한 장발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보자 침이 목구멍으로 절로 넘어갔다. 내가 봐도 닮았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세상이다 보면 닮은꼴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몽타주는 사진이 아닌 이상 비슷한 눈 코 입의 조합일 뿐이었다. 그런데 형사는 범인 대하듯 물었다. 이름은? 박종일. 나이? 스물아홉. 하는 일은? ……하는 일은? 대필 작가요. 사실 대필 작가라고 말한 건 거짓만은 아니었다. 전에 국회의원이나 기업체 사장의 자서전을 대필해 준 일이 몇 번 있지만, 짠 고료에다 제때 주지도 않아 지금은 손 뗀 상태였다. 신분증 위조 대행업을 한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대필 작가라고 얼버무린 거였다. 형사는 곧바로 사건 당일 범행 시각의 행적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그 치도곤을 당하고 나서, 날아온 주문 이메일의 사진에서 내 얼굴을 본 것도 기막힌데, 이젠 그걸 보낸 놈이 나타났다.

놈이 움직였다. 북소리가 몸 안에서 둥둥 울렸다. 나는 대기 번호표를 바닥에 내던지고 무조건 밖으로 뛰어나갔다. 누군가와 부딪쳤다. 욕지거리가 튀고 뾰족한 시선이 뒤통수에 꽂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렸다.

문을 급하게 잠갔다. 등 뒤로 기댄 문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거친 숨소리와 심장 박동소리만 집안을 메웠다. 뒤돌아 문 잠금 장치를 확인하고 고리체인까지 걸었다. 어안렌즈에 눈을 대었다. 복도에는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하도 고요해서 조금 전까지 모든 일이 거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닫힌 앞집 문을 바라보았다. 근처 상가에서 안경점을 하는 영식은 퇴근 전일까. 영식이 범행 시각에 같이 맥주를 마셨다고 확실하게 증언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미용실 살인 사건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영식에게라면 조금 전 일어난 일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봉투를 거실 의자에 던져두고, 주방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입을 댄 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 나니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허공에 퍼진 하얀 연기 사이로 책상 위의 소설책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공포소설인데다 나와 동명인 작가가 쓴 때문인지 읽고 또 읽어도 손이 가는 책이다. 작가 박종일은 약력을 보면 몇 년 전 스포츠신문 신춘문예 장르 소설 분야로 등단해 지금까지 장편소설 세 권을 발표했다. 주목받지는 못했는지 박종일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는 없었다. 책을 집어 접은 페이지를 폈다. 그 페이지에는 살인마 K가 공원을 배회하며 세 번째 희생자를 물색하는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다. K가 호숫가 벤치에 앉은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밀도 있게 묘사된 그 장면을 읽다가 나는 책을 덮어버렸다. 제기랄. 소녀를 향한 K의 눈빛을 묘사한 부분에서 놈의 눈빛이 떠오를 건 뭔가. 아, 이놈의 잡념. 머리를 흔들었다. 솟듯이 일어났다. 거실에 던져둔 봉투를 가져와 서둘러 뜯었다. 놈, 아니 내 얼굴이 박힌 위조 주민등록증을 가위로 마구 잘라 쓰레기통에 쓸어 넣었다. 긴 숨이 목구멍으로 푸, 하고 넘어왔다. 그리곤 인터넷에 접속했다. 주문 메일 온 게 있는지 궁금했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코너에 한 기사가 시선을 잡았다. ‘미용실 살인사건 수사 난항.’ 클릭하자 몽타주가 떴고, 제보를 바란다는 문구가 화면에 이어졌다. 변을 당한 미용실에서 몇 번 머리를 잘랐다는 걸 문득 기억했다. 내 머리를 잘라 주던 미용사 아가씨가 살해 당한 건 아닐까. 내 머리카락 길이만큼 자란 망각 때문인지 그 미용사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사 목록에서 빠져나와 이메일을 검색했다. 스팸메일이 가득했다. 스크롤바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주민등록증 만드는데 비용은 얼마인가요?’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75년생 남자의 주민등록증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급할 비용을 알려주고 증명사진 파일을 첨부해 이메일을 보내라고 답장했다. 신분증 위조 대행. 이 일을 하게 된 건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는 급한 사정이 생겨서 갖고 있던 기계를 팔아야 하는데 싸게 줄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그 사정이란 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기계가 가져다 줄 수입에 대해선 귀가 솔깃해졌다. 기계란 신분증 특수 복사기인데, 신분 세탁이나 일자리를 얻으려고 신분증 위조대행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 돈벌이가 쏠쏠하다는 거였다. 돈도 안 되는 대필 작가 노릇도 지겨워진 터여서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 친구가 가르쳐 준 대로 인터넷 카페 몇 곳에 맞춤형 신분증을 위조해 준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틀 만에 주문 이메일이 왔을 때, 친구의 말을 실감했다. 그런 식으로 열 건쯤 주문을 처리하고 나자 손놀림은 빠르고 노련해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당 주민등록증 위조 본이 몇 개나 돌아다닐지는 내 알 바 아니었다.

앞집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에서 나와 거실을 빙빙 돌았다. 내게 닥친 믿을 수 없는 일을 어서 머릿속에서 털어버리고 싶었다. 앞집 초인종을 눌렀다. 웬 강아지의 낑낑대는 소리와 발소리가 문 가까이 들렸다.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신가요?”

“…….”

머리 모양과 메이크업 스타일은 아니라 해도 이목구비가 똑바로 내 눈에 꽂혔다. 그건 얼었던 손을 뜨거운 전구에 댔을 때의 느낌이었다. 재희. 단박에 떠오른 그 이름을 하마터면 소리 내어 부를 뻔했다. 내가 멍한 얼굴로 빤히 보자, 여자는 경계의 시선으로 나를 아래위로 힐끔거렸다. 여자 어깨 너머로 영식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어서 와.”

“누구?”

여자가 눈을 깜박거렸다.

“내가 말한 적 있지? 앞집에 소설 쓴다는.”

언젠가 영식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글을 쓴다고 얼버무렸다. 작가야?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뭘 꼬치꼬치 알려고 드는 것이 성가셨다. 무슨 작가? 소설가? 영식의 거듭되는 관심에 나는 마침 손에 든 박종일의 소설책을 즉흥적으로 흔들어 버렸다. 순간 아차, 했지만 영식에게 난 그렇게 공포소설가 박종일로 각인돼 버렸다.

“아, 얘기 들었어요. 소연이라고 해요.”

‘아,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재희라고 해요.’ 하던 재희의 새침하고 가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물며 숨을 고르고서 말했다.

“아. 저 저도요. 전 박종일이라고 합니다.”

소연은 내 얼굴을 뜯어보듯 살피며 말했다.

“공포소설 작가시라더니 분위기도 남다르시네요.”

“…….”

영식이 소연의 어깨를 밀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여긴 헤어 디자이너야.”

내가 물었다.

“어디 미용실? 이 근처? 패션 샵들이 밀집된 공원 쪽 거리?”

옆에서 소연이 불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영식은 싱글거리며 말했다.

“살인 사건이 난 미용실이 그 거리에 있다던데 다행히 거긴 아니고, 길 건너 삼거리에 십 층짜리 스포츠센터 빌딩 있지? 그 뒷골목 3층 건물 2층에 장미 헤어샵이야. 언제 머리 자를 일 있으면 한번 가 봐.”

나는 고개를 까딱했다. 소연이 입을 삐죽거리며 영식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영식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새 애인이 생겼다고 며칠 전부터 자랑하던 게 이 여자였나. 소연은 하양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영식은 개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소연에게 빠져 있는 이상 개가 아니라, 악어 새끼를 데려다 놔도 찍소리 못할 거였다. 동거한 여자가 이전에도 몇은 있었다면서 새로 사귄 소연이 지금껏 만난 여자 중에 최고라고 말했었다. 영식은 웃는 낯을 바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영식은 내가 주방 식탁의자에 앉자, 표정이 심각하게 보였는지 담배 한 개비를 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 주며 이어 물었다.

“뭔 일 있었던 거야?”

나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서 빼 식탁 위에 톡톡 두드렸다. 재희, 아니 소연을 대하자 머리가 아뜩해져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내를 봤다는 사실과 소연이 전에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분해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불편해 하는 소연의 시선이 탐조등 불빛처럼 내 얼굴을 지나갔다. 내 입에선 옅은 숨만 새어나왔다.

“할 일을 깜박했네.”

나는 급하게 인사를 하고는 문을 나섰다.

“좀 이상한 사람 같아. 눈매가 쭉 찢어진 게 인상도 안 좋고. 아깐 날 멍하니 봐서 기분이 나빴어.”

등 뒤로 닫힌 문 안에서 소연의 말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영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이. 그냥 외로워서 그런 걸 거야. 그리고 겉 인상만 좀 날카롭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나는 코끝을 찌푸리며 슬쩍 뒤돌아보았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재희를 만난 것처럼 기분이 얼떨떨했다. 견딜 수 없었다. 영식의 앞에서 줄곧 나를 모른 척하는 재희. 아니다. 내가 왜 이러지. 그놈을 봐서 그런가. 제길. 소연이 재희로 보이다니. 마른세수를 했다. 마우스를 움직여 문서 폴더를 열었다. 주문자가 요구한 75년생으로 남자 주민등록증 목록을 훑었다. 복사기의 전원을 켰고, 빈 플라스틱 카드를 서랍에서 꺼냈다. 선택한 주민등록증의 개인정보를 빈 카드로 복사했다. 그 위 사진 들어갈 자리에 주문자의 사진을 티 나지 않게 씌웠다. 놈이 보낸 첨부 사진 때문에 주문자의 사진 파일을 열 때 은근히 긴장했다. 나와 생판 다르게 생겼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가슴을 쓸었는데 이런 내가 순간 소심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완성한 위조 주민등록증 앞뒷면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서 그 이미지 파일을 의뢰인에게 이메일 파일 첨부로 보냈다. 이메일은 곧 왔다. 돈을 송금했으니 빨리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을 수시로 체크한 모양인데 주문자는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나는 인터넷 뱅킹으로 입금 여부를 확인하고는 위조한 주민등록증을 봉투 안에 넣었다.


오전 일찍 우편물을 부쳤다. 집으로 오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홱 뒤돌아보았다. 눈동자를 좌우로 굴려 행인들을 살폈다. 그런 나를 미친놈 보듯 아래위로 흘기며 몇 사람이 지나갔다. 다시 앞으로 걸음을 뗐다. 몇 걸음 나가자 누가 따라오는 게 또 느껴졌다. 돌아보았다. 역시, 놈이 행인들 속에 서 있었다. 심장 박동이 요동하는 걸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집 문 앞에 도착하자 안도감에 겨우 눈을 비볐다. 열쇠를 꺼내려다 고개 돌려 앞집 문을 바라보았다. 재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망설였다. 나도 모르게 앞집 초인종을 눌렀다. 영식이 문을 열었다. 얼굴빛이 어두웠다. 카드 사용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자신도 모르는 지출 내역이 있다는 거였다. 담배를 물고 거실 안을 서성대던 영식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백화점에도, 이런 고급식당에도 난 간 적 없다고.”

심장에 날카로운 바늘 끝이 닿은 느낌이 들었다. 영식은 나 같은 작자한테 카드 복제를 당한 모양이었다. 나는 마치 내가 저지르기라도 한 양, 눈을 가늘게 뜨고 영식과 소연을 힐끔거렸다. 소연은 가슴에 안은 하양이의 목덜미를 쓸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카드 복제를 당했나 봐.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는지.”

나는 소리 안 나게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눈을 둘 데 없어 티 탁자 위에 여성잡지를 슬그머니 펴 들었다. 영식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헌데 카드 복제를 어디서 당한 건지 기억나진 않아. 주유소에서 기름 넣다가 그랬는지 원. 신문에서 신분증이니 신용카드니 복제 피해 사례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네 어쩌네 해도 나와 상관없는 이야긴 줄만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어.”

소연은 영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이런 식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부쩍 많아졌나 봐. 사실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청구서가 날아와서 화병에다 우울증까지 걸린 애가 있어.”

소연은 내가 보이지도 않는지 내겐 눈 한번 주지 않고 이어 말했다.

나도 당할까 봐 불안하네. 도대체 그런 짓 하는 인간들이 문제라고. 잡아서 족칠 수 없나.”

페이지를 구겨질 정도로 빠르게 넘겼다. 명품 화장품, 성형외과, 피부미용, 패션잡화 등 현란한 색상의 광고와 유명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잡다한 기사들이 쿵쿵대는 심장 박동만큼 정신없이 지나갔다. 영식이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빨며 말했다.

“그러게 말야. 그런 놈도 당해 봐야 복제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닫지. 대포 폰이나 유령 이메일 같은 걸 사용하니 수사 당국에서도 손을 못 쓰나 봐.”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나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눈을 내리깐 채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 광고가 계속되는 페이지로 넘어 가자,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놈의 얼굴이 페이지 넘기는 곳곳에 있었다. 소스라쳐서 얼른 책을 덮었다. 숨을 겨우 삼켰다. 두 사람이 본 건 아닌지 분위기를 살폈다. 책을 티 탁자 위에 놓으며 일어났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영식에게 말했다.

“나 가 볼게.”

“참, 무슨 할 이야기 있어서 온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눈이 퀭한 게 안 좋아 보여.”

“아, 그게……나중에 ……지금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깜박했네.”

허둥지둥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등 뒤로 소연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주방 냉장고에서 콜라 캔을 꺼내 들고 방으로 갔다.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긴 콜라의 찌르르한 느낌이 발끝까지 내려갔다. 잡지에서까지 나타나다니.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컴퓨터를 켰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끝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인터넷 뉴스 포털 사이트에 뉴스 몇 개가 올라와 있다. 그중 ‘미용실 살인사건의 용의자, 검거 도중 놓쳐’ 란 제목을 클릭했다. 다시금 몽타주가 눈을 찔렀다. 볼수록 눈 코 입의 조합이 나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놈이 저지른 건 아닐까. 아니면 그저 비슷한 외모를 가진 또 다른 인물일까. 기사를 읽어 보니 용의자가 제보로 체포될 뻔한 장소가 여기서 멀지 않았다. 놈이 내 주위를 맴도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 무슨 조화일까. 불안으로 가슴이 조일 때마다 재희의 얼굴은 더 또렷이 떠올랐다. 숨이 입 밖으로 밀려나왔다. 내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니긴 했지만, 재희는 내 첫사랑이었다. 재희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말 잘 듣는 애완견처럼 나는 열심히 물어다 바쳤고 앉으라면 앉고 뒹굴라면 뒹굴었다. 그럴 때면 재희는 입매와 눈매에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며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 미소를 본 날은 밤에 잠도 안 왔다. 재희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었으니까. 얼마 뒤, 재희는 다른 남자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내 앞을 지나갔다. 내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재희의 미소만 눈앞을 아른거렸다. 사람이 속이 타면 실제로 숯덩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시간이 지났다. 겨우 잊었나 싶었다. 헌데 소연에게서 재희를 보다니.

소연의 쉬는 요일이 오늘이란 걸 떠올린 나는 우체국에 다녀오면서 제과점에 들렀다. 일전에 영식이 무슨 말끝에 소연의 휴무일을 말했는데, 그 발음이 거미줄에 걸린 파리의 파르륵 대는 진동처럼 귓가에 남아 있었다. 빵 봉지 두 개를 바투 움켜쥐고 영식의 집 앞에 섰다. 침을 한 번 삼키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문을 연 건 영식이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말문이 막혔다. 나야말로 퇴근 전이어야 할 사람이 이 시간에 웬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잠시 머뭇대다 말했다.

“아, 빵을 두 봉지 샀어. 생각난 김에 빨리 전해 줄 생각에 초인종을 그냥 눌러 버렸네. 마침 집에 있어서 다행이야.”

“웬 빵. 어쨌든 고마워. 들어올래?”

나는 소파에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소연 씨는?”

“내가 좀 몸살 기운이 있어서 약 사러 근처 약국에 갔어. 곧 올 거야.”

그러고 보니 영식의 낯이 창백한 게 아파 보였다. 그때 하양이가 엉덩이를 카펫 위에 엉거주춤 대더니 똥 덩어리를 떨어뜨렸다. 영식이 소리를 빽 질렀다.

“저놈의 개새끼.”

영식이 하양이를 카펫 위에서 밀쳐냈다. 두루마리 휴지를 잔뜩 끊어 똥 묻은 자리에 난 누런 얼룩을 닦으면서 구시렁거렸다.

“이 쪼그만 개새끼 똥냄새는 왜 이리 지랄인 거야. 곧잘 욕실에다 싸더니, 이게 그냥.”

영식은 얼굴을 구긴 채 거실 창문과 현관문을 열었다. 바깥의 찬 공기가 들어와 실내가 환기되는 게 느껴졌다. 열린 문을 응시하다가 나는 하양이를 슬쩍 보았다. 하양이를 가슴에 안고 미소 짓던 소연을 떠올렸다. 조금 후면 소연은 약국에서 돌아올 것이다. 휴지로는 잘 닦이지 않는지 영식은 욕실에서 물걸레를 가져와 문지르고는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욕실 쪽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나, 이만 가 볼게.”

욕실 쪽을 살피고서,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있던 하양이를 얼른 가슴에 안고 나왔다. 문을 그대로 열어 둔 채.

먹을거리를 던져 주고 하양이를 가두었다. 문에서 먼 서재 방이니 소리가 날 염려는 없었다. 베란다 창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문 쪽을 힐끔거렸다. 뭔가를 기다리면서 피우는 담배 맛은 달았다. 드디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어 다투는 소리, 우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문을 열었다. 영식이 씩씩대며 대뜸 물었다.

“아까 나갈 때 하양이 못 봤어?”

“하양이 소파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없어졌어?”

소연이 영식을 노려보며 울먹였다.

“하양이한테 무섭게 대하니까 그래. 왜 문을 열어놨냐고 왜!.”

“카펫에 똥을 질러놔서 냄새 나가라고 열어 뒀다고 말했잖아.”

“아무튼, 하양이 책임지고 찾아내. 안 그러면 우리 사이 끝장이야.”

소연이 엄포를 놓자 영식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개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같이 나가서 찾아 보자고 말했다. 소연은 울먹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영식도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말했다.

“흩어져서 우선 단지 주변을 돌아보자고.”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집으로 들어가 개를 안고 나왔다. 단지에서 좀 먼 곳으로 갔다. 시간을 끌 요량이었다. 그런데 하양이가 깽깽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걸터앉을 만한 곳을 찾았다. 마침 가까운 상가건물 옆으로 벤치가 보였다.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옆구리와 팔꿈치 사이에 하양이의 몸통을 고정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그만 게 앙칼지게 굴었다. 짜증이나 주둥이를 한 대 때렸더니 제법 이빨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어쭈, 이놈 봐라. 소연이 아끼는 하양이가 내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희미한 전율이 온몸에 감돌았다. 하양이를 안고 나타나면 소연이 날 바라봐 줄까. 담배가 반 토막쯤 타들어 갈 무렵, 영식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하양이 찾았어.”

영식의 거실로 들어섰다. 소연이 울어 눈이 부은 얼굴로 내게 뛰어왔다. 나는 과장을 섞어 하양이를 찾느라 고생했다는 듯 숨을 헐떡거렸다. 소연은 하양이를 받아 안으며 물었다.

“어디서 찾았어요? 우린 이 근방을 몇 번이나 돌며 뒤졌는데 못 봤거든요.”

“이 쪼그만 녀석이 참 멀리도 갔더군요. 저 아래 공원에 있더라고요. 거기 호숫가 나무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걸 이름을 부르니까 냉큼 달려와 안기던걸요.”

“어쩜.”

소연은 하양이를 가슴에 꼭 안았다. 그리고는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아찔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소연은 정말이지 재희를 똑 닮았다.

영식에게서 식사 초대를 받았다. 소연이 초대하자고 했을까. 아무렴, 잃을 뻔한 하양이를 찾아 주었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하양이를 안은 영식이 내게 “어서 와” 하고 말했다. 내가 가까이 가자 하양이가 이를 드러내며 돌멩이 구르는 소리를 낮게 냈다. 영식은 “요 녀석이 왜 이래.” 하고는 하양이 목털을 쓸며 말했다.

“우리 소연 씨가 음식 솜씨 끝내 준다.”

소연이 영식의 얼굴을 힐끔대며 희미한 미소로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어젠 정말 감사했어요.”

“뭘요. 이웃끼린데.”


“이제 이 사람이 하양이를 끔찍이 아껴 주기로 약속했어요. 그지?”

영식은 소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방 하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양이가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하양이의 눈을 피해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식탁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영식은 수저를 입 댄 채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이건 내가 먹어 본 것 중에 최고야 최고.”

입맛이 싹 달아났지만, 나는 그릇에 담긴 내 몫을 다 먹어 치웠다. 나를 위해 만든 재희의 요리라고 생각하자 남길 수 없었다. 바닥에 작은 건더기도 남김없이 수저로 싹싹 긁어 입에 쑤셔 넣었다. 얼마나 열심히 긁었는지 귀청을 찢는 섬뜩한 소리가 찍찍 났다. 소연의 언짢아하는 눈빛이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사건 당일 저녁에 늦게 미용실에 왔었다고 하던데?”

형사가 내 눈을 비스듬히 찔러보며 물었다. 기선을 제압하려는 형사 앞에서 나는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자칫 또 용의자로 의심 받을 수도 있었다. 눈을 번득이며 형사가 재우쳐 물었다.

“그렇게 입 다물고 있지 말고 말하지. 미용실엔 왜 갔나?”

그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서 나오는데 갑자기 장미 헤어샵이 떠올랐다. 생각난 김에 머리나 자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발길을 돌렸다. 길 건너 삼거리의 스포츠센터 빌딩 뒷골목에 있는 3층 건물의 2층이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미 헤어샵의 널찍한 창문이 불빛으로 환했다. 1층 입구에서부터 비트가 강한 테크노댄스 음악이 쾅쾅 울렸다. 갓 파마를 한 아가씨들이 머릿결을 매만지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나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 벽을 장식한 헤어모델 사진들이 조명에 반사되어 표면이 하얗게 빛났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테크노 음악이 더 크게 귀를 때렸다. 나를 본 카운터 아가씨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머리 자르시게요?”

“……네.”

나는 두리번거렸다.

“처음 오신건가요? 아님 전에 어느 선생님한테 머리 자르셨나요?”

“저어, 윤소연 …….”

“아 네. 윤소연 선생님요. 잠시만요. 아, 저기 계시네요.”

카운터 아가씨가 윤소연 선생님-, 하고 불렀다. 샴푸실 앞에서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소연이 심각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보자 급하게 핸드폰을 닫았다. 약간 당황한 기색이 소연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소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머. 오셨네요.”

소연이 가볍게 알은 체를 했다. 나는 귀와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소연이 안내한 미용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떨어뜨렸다. 거울 속에 비친 소연이 물었다.

“얼마나 잘라 드려요?”

“짧게, 아주 짧게 잘라 주세요.”

나는 엄지와 검지로 짧은 길이를 강조했다. 이전의 모습과 확 달라지고 싶었다. 소연이 거울 앞 미용 서랍을 열어 도구를 꺼내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 벽이 다 거울로 장식되어 있어서 공간이 퍽 넓어 보였다. 가슴까지 확 뚫리는 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연은 미용 서랍을 뒤적이며 고개를 돌리더니 영미 씨이, 하고 불렀다. 그러자 안쪽 샴푸실에서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아가씨가 뛰어왔다. 소연이 아가씨에게 말했다.

“이 손님 샴푸 부탁해요.”

나는 실망스런 기분이 되어 소연에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소연 씨가 직접…… 해 주면 좋겠는데…….”

소연은 미간을 찌푸리다 옅은 미소를 물고 말했다.

“빨리 마무리 할 손님이 기다려서요. 영미 씨 부탁.”

그리고는 등을 돌려 소연은 파마 기구를 머리에 인 중년 여자 쪽으로 가 버렸다.

샴푸 뒤, 다시 미용 의자에 안내되었다. 젖은 머리를 감싼 수건이 벗겨졌다.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거울 속에 소연이 물었다.

“샴푸 편안히 잘 하셨죠? 샴푸할 때 두피 마사지 솜씨는 그 직원이 좋죠.”

“네…….”

“꽤 긴 머리인데 그동안 어떻게 관리하셨을까. 힘드셨을 텐데. 시원하게 잘라 드릴게요.”

눈을 감았다. 소연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만지고 두피를 쓸자 온몸에 야릇한 느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퍼졌다.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그동안 제대로 못 잔 탓인지도 몰랐다. 머리털이 날 선 가위에 사각사각 잘려 나가는 동안 의식이 몽롱해졌다.

“미용실에 머리 좀 자르러 간 것도 죕니까.”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형사가 윽박질렀다.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미용실 사람들 말로는 카운터에서 윤소연을 불러 달랬고, 그녀에게 특별히 머리를 부탁했다고 하던데.”

“이웃이니까요.”

“그럼 윤소연의 동거남인 구영식과 잘 아는 사이란 말이지?”

“네. 서로 편하게 지내는 이웃이죠.”

서에서 몇 시간을 시달리고서 집에 왔다. 외투를 벗었다. 형사가 허탈하게 한숨 뱉던 모습을 떠올렸다. 경찰에선 이번 사건을 미용실 연쇄 살인 사건으로 규정한 터라 몽타주와 제보에 기대를 건 눈치였다. 내게서 혐의점을 찾지 못해 형사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나는 겨우 숨통이 트였다. 어쨌거나 번번이 몽타주 때문에 경찰서로 불려 다니는 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위조 신분증이 든 우편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내로 부쳐야 하는데 급작스레 경찰서로 연행되는 바람에 처리 못 한 거였다. 외투를 다시 입었다. 우편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집 문을 열쇠로 잠갔다. 영식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사건 이후 며칠 동안 영식을 보지 못했다. 안경점으로 형사가 찾아간 게 틀림없었다. 추리소설에 보면 왜 그러지 않은가. 여자 시체가 발견되면 치정을 의심해 먼저 남편이나 동거남부터 조사했다.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위로의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인종을 눌렀다.

영식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어깨가 축 쳐진 모습이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싶었다. 소파에 앉으며 영식이 물었다.

“미용실에 갔었다며?”

“그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영식의 주위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영식은 다시 입술을 떼었다.

“왜 갔는데?”

“머릴 잘랐어.”

“그렇구나.”

영식은 내 달라진 머리 모양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으로 소연 씨 미용실에 간 날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야. 내가 좀 더 기다렸다가 같이 나올 걸 그랬나 봐. 지금 생각하면 그냥 나온 게 후회되네.”

“흠…….”

영식은 한숨을 내뱉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끝이 빨갛게 타들어 갔다. 영식이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속울음을 삼켰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 줄 위로의 말이 궁해졌다.

“그럼 쉬어.”

“벌써 가려고.”

“가 볼 데가 있어서.”

봉투를 챙겨 들었다. 현관문 앞에서 운동화를 신었다. 그때 영식이 말했다.

“저기. 잠깐.”

“어? 왜?”

허리를 접고 운동화 뒤꿈치를 손가락으로 쑤시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기……그날 말이야…….”

“응?”

“아 ……아니야. 그냥 가.”

고개를 떨어뜨린 영식을 바라보았다. 문 손잡이를 비틀어 밀다가 다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영식의 발치에 앉은 하양이가 까만 눈을 반짝이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돌멩이 구르는 소리가 살짝 벌린 주둥이 사이에서 가늘게 새어 나왔다. 나는 얼른 문을 닫고 통로 계단을 내려갔다.

우체국 마감 시간이 대략 사십 분 남았다. 우체국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걸린다.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옆에 선 중년 여자가 힐끔거렸다. 텔레비전 뉴스나 길가 벽에 붙은 몽타주를 유심히 들여다본 걸까. 나는 시선을 앞에만 두었다. 파란불이 켜지자 빠른 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넜다. 꽁초담배를 문 노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못 본 척 계속 걸었다. 스포츠센터 빌딩 앞을 지나는데, 그 앞에 세워진 작은 게시판에 ‘미용실 살인 사건 용의자 몽타주’가 네 개의 모서리에 압정을 찔린 채 월계관을 쓴 서양의 누구처럼 붙어 있었다. 장발의 몽타주. 그걸 보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내 머리카락은 아주 짧다. 두 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머리를 자른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단, 내 머리를 잘라 준 소연이 변을 당했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손을 올려 이마에서 뒤통수까지 손가락으로 한 번 쓱 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연은 내 머리를 근사하게 바꿔 주었다. 헤어 디자이너다운 솜씨였다.

소연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세심하게 가위질하는 동안, 나는 재희를 상상했다. 재희가 내 머리를 만진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몽롱했다. 그렇게 몇 분간 흘렀을까. 까칠한 스펀지가 귀와 이마와 목을 스쳤다. 감질나게 벌써 끝났나. 눈을 떴다. 거울을 보았다. 머리는 레옹 머리처럼 아주 짧았다. 마음에 들었다.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제가 볼 땐 참 잘 어울리는데.”

“네. 좋네요. 정말 소연 씨가 보기에도 잘 어울리나요?”

“그럼요. 레옹 머리 어울리는 사람 몇 없거든요. 종일 씨는 어울려요.”

행복했다. 순간 ‘종일 씨는 어울려요.’ 하는 오래전 재희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무엇과 어울린다는 건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내일 휴무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가벼운 흥분을 느끼며 나는 소연의 질문에 답하지도 않고 성급하게 말했다.

“내일 영화 같이 볼래요?”

“네?”

소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영화요. 어때요? 내가 예매해 놓을게요. 지금 상영 중인 …….”

소연이 내 말을 잘랐다.

“아, 그게. 제가 별로 영활 잘 안 보러 다니거든요. 죄송.”

소연은 등 돌려 카운터로 갔다. 거울 속에 시무룩한 표정을 한 내가 보였다. 코끝을 찡그렸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머리끝을 만지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때였다. 뒤쪽 벽 거울 앞에 놈과 눈이 마주쳤다. 더 기겁할 일은 놈도 나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이라는 거였다. 나는 급하게 일어났다.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카운터 책상 위에 던지고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뛰어나갔다.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둑한 거리 어디에도 놈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찬찬히 휘둘러보았다. 문득 소연이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놈은 태연히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던가. 다시 되돌아갔다. 미용실이 있는 3층 건물 앞에 섰다. 3층 치과는 불이 꺼져 있지만, 2층은 마무리 정리 중인지 환했다. 주위를 살피고 나서, 신속하게 계단을 올랐다. 어두운 3층 층계참에 쪼그리고 앉았다. 놈이 어딘가 숨어 있을 거로 생각하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고개만 살짝 내밀면 2층 장미 헤어샵 유리문으로 내부가 보였다. 조금 후 카운터 아가씨가 핸드백을 손에 든 채 나왔다. 일 분 뒤쯤 내 머리를 감겨 준 샴푸 실 아가씨와 다른 몇몇 헤어 디자이너가 “먼저 가요.” 하며 한 무리로 몰려나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지 바바리코트를 입고 핸드백을 어깨에 멘 소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 갔어요? 여긴 왜 왔어요?”

“아무래도 소연 씨가 걱정돼서요. 그래서 같이 가려고 다시 와서 위 3층에서 기다렸어요.”

“네에? 뭐 뭐라고요?”

소연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딱 벌렸다.

“도대체 왜 이러시죠?”

“뭐가요?”

멈칫하며 소연을 바라보았다.

“왜 치근덕거리냐구요.”

“전 정말 소연 씨가 걱정돼서 온 거라구요. 그리고 소연 씨를 처음 본 순간 …….”

소연의 차가운 표정을 보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미친놈.”

분명히 소연의 빨간 입술에서 새어 나온 소리였다.

“미친놈?”

“그래 이 미친놈아. 내가 우리 영식 씨한테 다 말해 버릴 거라고. 빨리 나가 미친놈아.”

이가 절로 악물어졌다. 유리문으로 뻗는 소연의 팔을 잡았다. 소연이 겁먹은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순간적으로 재빨리 입을 다른 손으로 거칠게 막았다. 소연이 몸부림쳤다. 읍읍, 하는 신음이 내 손바닥에 눌려 토막 났다. 귀 안에서 둥둥 거리는 북소리가 울려댔고, 그 가운데 재희의 차가운 표정과 말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재희의 집 앞에서 밤늦도록 기다렸다. 만나서 대화하면 달콤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집 근처까지 함께 온 남자와 가볍게 포옹을 한 뒤 손을 흔드는 재희가 보였다. 걸어오는 재희의 팔을 홱 잡아챘다. 흠칫 놀란 재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재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보고 싶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몰랐다. 그녀는 내 말을 다 듣자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가 언제 사귀었나? 네가 착각했나 본데,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야. 어이없어 정말. 그러니까 귀찮게 전화 자꾸 하지 말고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마. 착각도 유분수지. 미친놈.” 곧바로 재희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런 뒤, 두 손으로 목을 힘껏 졸랐다. 더 힘주면 내 손가락뼈와 재희의 목뼈가 닿을지도 몰랐다. 재희가 컥컥거렸고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관자놀이의 푸른 혈관이 도드라졌고, 검은 눈동자가 위로 넘어가면서 흰자위가 넓어졌다. 내 두 손아귀가 바르르 떨리면서 뻐근했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이빨 사이로 물었다. “뭐라고?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난 너밖에 없었어.” 속에서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와 눈물이 핑 돌았다. 더 힘을 주었다. “말해 봐! 말해 보란 말이야.”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소연의 팔이 축 늘어졌다. 깜짝 놀라 목을 쥐었던 두 손을 놓았다. 몸뚱어리가 벽 밑으로 미끄러져 내리더니 바닥에 퍼덕 소리를 내며 널브러졌다. 눈을 크게 뜨고 소연을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울컥함에 한숨을 토했다. 그때 고개를 돌리다 정면 벽 거울 앞에 선 놈과 눈이 마주쳤다. 놈의 발치에 소연이 쓰러져 있었다. 놈이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내 예상은 틀림없었다. 한발 일찍 와 소연을 구했어야 했다는 자책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놈이 시퍼런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몸을 겨우 움직여 뒷걸음질했다. 그리곤 팔꿈치로 유리문 옆에 형광등 불 스위치를 눌러 껐다.

게시판에 걸린 장발의 몽타주를 한참 보다가 가던 길을 계속 직진했다. 오십 미터 전방에 우체국 계단이 보였다. 나는 산뜻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면서 짧게 자른 건 잘한 일이라고 되뇌었다. 그리고 형사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 또한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놈이 소연을 목 졸라 죽이는 걸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말했다간 놈의 인상착의를 묘사해야 할 텐데,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 시퍼런 눈초리를 생각하면 감히.《문장 웹진/2008년 7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