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남촌에는

산 너머 남촌에는




김인숙


  


참 이상도 하지.

그 기억이 왜 그렇게나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다. 서방이 죽었을 때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생때같은 자식을 잃었을 때의 그 생생하던 고통도 다 잊었는데, 잊었다기보다는 더 이상은 가뭇가뭇 잘 떠오르지도 않는데, 그놈의 바람, 귀밑을 스치는 바람이 불어오기만 하면 꼭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이다. 좀 높은 곳의 창을 발돋움해 열다가도 문득, 베란다에 서서 아들이 퇴근할 때가 되었는가, 손주들이 귀가할 때가 되었는가를 흔들흔들 서서 내다보다가도 문득, 귀밑 흰머리 몇 올이 흔들리는가 싶기만 하면 난데없이 그때가 떠올랐다.

 

 

참 이상도 하지. 그것은 특별한 기억도 아니거니와, 그런 일이야 그이 인생에서는 넘치고 처지는 정도의 것이니, 각별히 기억에 담고 말고도 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놈의 바람…… 그 살랑거리는 바람이 귀밑을 간질이기만 하면, 어쩌자고 그 눅눅한 기억 중에서도 유독 그놈의 바람만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가 송송 빠진 합죽 입이 벙긋 벌어지고, 이제는 해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오래된, 그러나 완전히 그때로 돌아간 듯한 미소가 홀쭉한 뺨에 무구히 떠오르는 것이다.

열한 번째의 아이가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열여덟에 시집을 와 마흔이 넘을 때까지 그녀는 열두 번의 임신을 했는데, 남편이 일본 군대에 끌려가 있던 몇 해 동안과 딴 계집과 살림을 차렸던 몇 해, 그리고 외지를 떠돌던 동안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부른 배가 꺼질 사이도 없이 애를 배고 또 배고 했던 셈이다. 열한 번째가 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앞의 열 명의 새끼들 중, 둘은 낳아 보니 이미 뱃속에서 죽은 새끼들이었고, 하나는 뱃속에 들어선 지 몇 달 안 되어 핏덩이로 쏟아 냈으며, 둘은 돌이 되기 전에 숨을 거뒀다. 살려서 거둔 자식들 중 위로부터 셋째까지가 모두 아들이었으므로 자식 복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만 낳아도 좋다 싶었다.

 열한 번째 새끼가 뱃속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들고 있던 바가지를 부엌 바닥에 내동댕이쳐 깨트렸다. 씹을 헐 놈, 서방에 대한 욕설이 먼저 터져 나왔다. 외지를 떠돌던 남편이 몇 년 만에 돌아와 한 일이라는 게 고작 씹질뿐이었으니, 들의 밭에다 뿌리면 탐스러운 열매나 되지, 이것은 이제 무엇을 할 물건이란 말인가. 애를 낳는 일은 고되고 더러운 일이었다. 똥끝이 밀고 나오는가 하면 염불이 빠져 나오기도 했다. 생살로 바닥을 쓸고 다니는 것처럼 쓰리고 아리고 펄펄 뛰게 아픈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쟁이는 항상 오물과 피로 더럽혀져 엉덩이를 흔들지 않아도 악취가 쫓아 다녔다. 그래도 밭은 메야 했고, 젖을 빠는 새끼부터 밥알을 세는 새끼까지 밥은 먹여야 했다. 애를 밸 때마다 열 달 내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서방에 대한 저주는 물론이거니와, 어린 새끼들한테도 가차 없이 ‘씹을 헐 놈’, ‘씹을 헐 년’ 욕을 갖다 부쳤는데, 젖먹이 계집애가 그 욕을 들으면서도 벙긋 웃는 것을 보면 자기 입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이미 낳아 놓은 새끼야 입에 못 담을 욕을 하다가도 잘근잘근 깨물어 주고 싶게 이쁜 게 사실이지만, 아직 낳지 않은 새끼는 달랐다.

그녀는 찬장 속에다 모아 두었던 돈을 꺼냈다. 알량하기는 했으나, 읍내 의사에게 지불할 만큼은 되는 돈이었다. 구깃구깃한 지폐와 동전을 손바닥 위에 차곡차곡 올려놓은 채 그녀는 또 터져 나오려는 욕설을 눌러 참았다. 돈 주고 애를 떼어 내다니, 그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열여덟에 시집을 와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녀는 연거푸 두 번 죽은 새끼를 낳았다. 울지도 않고 숨 쉬지도 않던 어린 것……. 둘 중의 하나는 방금 전까지도 숨을 쉬었던 듯 콧등이 따듯했었다. 산 것을 낳을 수만 있다면, 밭을 갈듯 자신의 몸을 갈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밟고 갈고 메고, 무엇이든…….  열 번이나 임신을 하고, 나이 마흔이 넘고, 살아 있는 다섯의 아이를 거두기 전까지는 그랬다.

걸어서 두 시간 거리 남짓에 있는 읍내의 병원에는 늙고 눈밑이 거뭇한 의사가 진료를 했다. 근동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의사의 주사를 맞았다. 운이 좋은 사람은 병이 나았고, 운이 나쁜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 채 황천길을 떠났다. 어떻든 주사를 맞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긁어내기 위해 다리를 넓게 벌리고 누운 그녀에게 의사가 욕설을 내뱉었다. 오래 빨아 입지 않은 고쟁이와 밑물 하지 않은 아래에서 짠 젓갈냄새가 진동을 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자신에게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마취가 덜 된, 쑤셔 박는 듯한 통증 때문에 늙은 의사의 욕설이라든가 수상한 손짓 같은 것은 신경조차 쓸 수가 없었다. 수술을 끝내고 다시 냄새나는 고쟁이를 입을 때,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에 묻어 있는 수상한 액체를 보았다. 씹을 헐 놈. 욕설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려나, 의사선생님이 아니신가.

돌아오는 두 시간 길은 길었다. 밑구멍으로부터 올라오는 통증은 여전히 생생했고, 허망하게 생명이 빠져나간 자리의 헛헛함 때문인지 다리에서는 툭하면 힘이 빠져 무릎이 꺾였다. 초여름, 한낮의 땡볕이 무지막지하게 내리쪼여 땀이 온몸을 적셨다. 밭두렁에서 새끼를 낳고 호미로 탯줄을 자르고, 그 후에는 못다 맨 이랑을 마저 매는 것이 농부의 아낙이다. 그녀 역시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두 시간 길은 단숨에 맬 수 있는 이랑이 아니었다. 그녀는 길가 땡볕 아래에 주저앉아 숨을 가눴다. 그러고는 다시 걸었고, 걷다가는 또 주저앉았다. 세 번쯤 그렇게 주저앉았을 때, 문득 이마가 시원했다. 그러고는 목덜미가, 그러고는 귀밑이……. 그녀의 눈이 가늘어지며 온 얼굴에 웃음이 실렸다. 아이고, 바람이 좋기도 하여라…….  참으로 시원한 바람도 다 있구나. 세상에 이렇게 시원한 바람은 처음이로다. 땀에 젖어 귀밑에 달라붙어 있던 머리카락이 바람과 함께 그녀를 간질였다.

그 얼마 후, 그녀는 또 한 번의 임신을 했는데 생돈을 들여 애를 지운지 그야말로 고작 몇 달만의 일이어서 그녀는 자기가 읍내 병원에 버려두고 온 씨앗이 다시 자기 뱃속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고추 수확을 한 직후라 돈은 충분했지만, 애써 지워도 다시 돌아온다면 뭐 하러 아까운 돈을 들이겠는가. 산 것들 중에서는 여섯 번째, 죽은 것과 산 것을 전부 합쳐서는 열두 번째가 된 아이는 그녀에게는 마지막 아이가 되었다. 남편은 그녀의 마지막 아이가 세상을 보기 며칠 전에 타지에서 숨을 놓았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무슨 금광바람이 불어 노냥 금을 캐러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타지가 어느 곳인지, 숨은 어떻게 거두었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시어른들이 나서고, 아비가 밖을 떠도는 동안 한 몫을 하게 자란 큰아들이 함께 쫓아가 시신을 수습해 왔다. 그리고 그녀는 열두 번째의 아이를 낳았다.

허무하게 죽은 남편을 보내기 위해 굿을 하는 동안, 해산어미는 젖먹이를 품에 안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긴 굿거리가 다 끝나도록 그녀는 의지할 거라곤 그것밖에 없다는 듯, 젖먹이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만신이 공수를 했다. 별다른 사설은 없었다. 죽은 남편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똑같이 하나마나한 소리만 해댔는데, 죽어서 홀로 가는 황천길이 외롭고 쓸쓸하다는 얘기뿐이었다. 여보 마누라, 내가 당신을 혼자 놔두고 어찌 가오, 어찌 가오…….  만신의 입에서 징징거리는 울음소리가 나와도 그녀는 같이 울지 않았다. 오살을 할, 그러나 이제는 오살을 할 수도 없게 된 인간이 죽어서도 노잣돈 챙기기에만 급급하지 않은가. 젖먹이에 대한 얘기는 ‘가련하고 가련하다’는 말뿐이었다. 젖먹이에 대한 말이 나올 때 그녀는 잔뜩 땀을 흘렸는데, 더 이상은 별다른 말이 없자 그녀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귀신이라는 게 그리 쉽게 들어오고 그리 쉽게 나가고 하겠는가. 들어오지 않으면 나갈 일도 없을 터이고, 그러면 그저 그런 것이지. 그저 그렇지 않을 게 뭐가 있겠는가. 젖먹이가 혼자 일어나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문이 트이고, 그 후 다른 형제들보다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것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그녀는 막내에 대한 기묘한 걱정 때문에 가끔 얼굴이 어두워졌다. 물론 오래 전 얘기다. 그로부터 오십여 년 가까이가 흘러 버린 지금, 그녀는 많은 것을 잊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것을 잊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기억하는 것이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기억은 기억과 단절되어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미지로 헛돌았다. 바람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왜 그 바람이 들어왔을까. 막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간혹 막내를 유심히 쳐다보곤 할 때가 있는데, 그 눈빛이 다른 자식들을 볼 때와는 달리 각별하여 막내를 기겁하게 하곤 했다. 왜 그렇게 기분 나쁜 눈으로 봐? 엄만, 툭하면 그러더라? 한동안은 이유가 있었겠으나, 이제 구십이 가까워 오는 나이쯤에 이르면, 이유 같은 건 다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다. 이유는 있겠으나 의미는 없다. 누군가를 유심히 쳐다보는 눈길, 공연히 벙긋 입이 벌어져 입가에 실리는 웃음, 그러한 모든 것들은 그저 습관처럼 존재한다. 수없이 많은 습관들 중에 그저 오래 남아 있는 습관……. 그 모든 것들은 그녀의 마지막 습관과 함께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숨을 쉬는 일, 습관대로 살아서 숨을 쉬는 일 말이다.

사람의 나이 육십이 넘으면, 남의 나이라고 한다고 했다. 자기 나이를 꽉꽉 채우고 남의 나이로 넘어가던 무렵, 그러니까 육십 무렵에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해외여행이라는 걸 했었다. 자기 나이, 남의 나이를 운운하기에도 멋쩍을 만큼 육십은 너무 시퍼런 나이여서 환갑을 챙기기도 부끄러울 지경인데, 자식들이 돈을 모아 효도여행권을 사주었던 것이다. 펄펄 끓는 더위에 쨍쨍한 햇살 아래 난생 처음 본 석상과 절들이 가득했다. 볼 것도 많고 구경할 것도 많았으나, 그녀는 오만 군데에 있는 오만 가지의 나무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도무지가, 나무란 게 그렇게까지 장해도 되는 것인가 말이다. 열대의 나무들은 크고 높고 시퍼랬다. 마치 오만 군데에서 고음의 노래를 불러대거나, 웃음을 터뜨리거나, 악악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무들 사이에서 귀가 아팠고, 현기증을 느꼈다.

열대의 나무들은 나이테가 없고, 또 어떤 것은 거짓 나이테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는 그곳에서 들어 알았다. 1년 내내 쑥쑥 자라기만 하느라 나이테를 만들 시간도 없는 나무들의 굵고 무성한 뿌리들이 발밑으로 느껴져 그녀는 발바닥이 괜히 쫄밋거렸다. 나무가 거짓 나이테를 만드는 것은 심한 가뭄 때문이라고 했는데, 나이가 반드시 숫자로만 헤아려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생의 결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도 헤아려지는 것이라면, 열대 나무의 나이테 역시 거짓이라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열대의 가뭄, 그 목마름이 오죽 하였으랴. 자기 몸에 깊은 생채기를 남겨 주름을 새길 만큼 갈증은 제 살을 파먹는 고통이었을 터이다.

좀 더 늙어 남의 나이를 맞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계원들과 함께 갔던 여행지, 열대의 밤에 그녀는 생각했다. 60이 너무 시퍼래서 가짜 나이테를 만들고 상처를 주장하며 엄살을 떨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90이 가까운 나이에 돌이켜 보면, 60이나 90이나 크게 다를 바도 없다. 외려, 당신의 나이 전체가 남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특별히 허망하여서가 아니고, 특별히 회한이 많아서가 아니다. 자식 여섯은 골고루 다 잘 커서, 좀 빠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좀 넘치는 놈도 있기는 하지만, 다들 제 밥벌이는 하고 살았다. 다들 일가를 이루어 둘씩 셋씩 새끼들을 거두었다. 모처럼 온 식구가 다 모였던 그녀의 여든여덟 번째 생일날에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 거실에 앉을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소파에 발과 다리를 올리고, 작은 몸피 때문에 쪼그려 앉은 듯 앉아, 거실과 주방과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는 자식들과 며느리와 사위들, 그리고 손자와 손녀, 증손주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엄마, 뭐 하느냐고, 막내가 옆에 다가와 물을 때 그녀는 백 칠십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때 티브이에서 큰며느리가 좋아하는 연속극이 시작되었는데, 연속극이 시작되는 시간을 따져 보니 그녀는 한 시간이 넘게 가만히 앉아 숫자만 세고 있었던 것이다. 큰 며느리를 두 번 셌다가 한 번 지우고, 또 다시 세었다가는 다시 또 한 번 지우고, 그러다가는 세는지 지우는지도 모르고 센 것이 백 칠십이었다. 어쩌면 구백 칠십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고, 이 집에 사람이 너무 많다. 그녀는 두려운 듯 말을 했는데, 막내는 번성한 집안이 마치 자신의 자랑거리이기라도 한 듯 ‘그렇지?’라고 대꾸했다. 그때 그녀는 다시 막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또, 또! 또 그런다! 막내가 진저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서 버리는 그 잠깐 사이, 그녀는 자신이 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여든여덟 살의 나이, 내일 모레면 곧 구십인 나이가 통째로 남의 것은 아니었던가 여겨지는 것은, 자신이 더 이상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었다. 상처나 슬픔이나 고통이나 그런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날 어느 때 그리 즐겁고 행복했었던지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자식들은 의가 좋은 편이었다. 때마다 잘 모였고, 모여서는 함께 먹고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요란하게 웃음보를 터뜨리곤 했다. 몸피가 졸아들어 이제 한줌밖에는 안 되는 그녀는 자식들 틈에 없는 듯이 앉아 자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왁자한 웃음 속에 어떤 자식 하나는 그녀에게도 기억을 보채기 마련이었다.

그때 말이야, 엄마.

그러나 그때라니…….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거니와, 그러한 기억이 자식의 얼굴에 실어 주는 그 웃음, 그 즐거움이 신기했다. 자식이 저토록 기쁘게 웃으면 어미의 마음은 고봉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듯 부르고 따듯해져야 옳을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부르고 따듯한 마음의 기억조차 잊은 듯하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 그 무슨 일은 왜 저 아이를 저렇게 즐겁게 만드는지, 즐거움이란 대체 무엇인지……. 물론 그녀가 웃음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웃었고,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두 집을 비워 텅 빈 집에 하루 종일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가도 그냥 문득 웃었다. 그리고 때때로 울었다. 당신을 무시하는 며느리 때문에도 울었고, 무심한 큰아들 때문에도 울었고, 괜히 혼자 넘어져서도 울었다. 그러나 그녀가 웃거나 우는 이유는 행복이라던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허전함 때문이었다. 자신은 빈 항아리거나, 아니면 구멍이 숭숭 난 대바구니와 같았다. 생이 아가리로 들어왔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남은 것은 텅 빈 것뿐이다. 텅 빈 것조차도 남아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여든 무렵에 그녀는 화장실에서 낙상을 한번 하고는, 도무지 일어서지를 못한 채 오래 앓았다. 병에도 ‘내로라 할 병’과 그렇지 않은 병이 있다면 그녀의 병은 그렇지 않은 쪽에 속했다. 끝없이 어딘가가 아주 깊고, 무겁게 아팠으나 의사들은 그녀의 병명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캐어물으면 결국, 늙어 그렇다는 소리였다. 늙어 그런 병을 무엇으로 고칠 수 있겠나. 살이 빠지고, 키가 줄어들고, 기운이 달아나고, 그리고 마침내는 그녀 자신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사라졌다. 그것은 그러니까,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거쳐, 아주 조금씩. 그리하여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된.

자식들은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그녀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작은 아들이 심혈관 수술을 받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술 결과가 좋아서 더 이상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때에야 큰아들이 그러저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며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 주었다. 고비를 넘긴 작은 아들은 어미를 살아 다시 보는 것에 새삼 감정이 복받쳤는지, 그녀를 보자마자 눈가가 확 붉어졌다. 그녀가 병실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아들은 어미의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식들 중에서도 차가운 편인 작은 아들은 그 전에는 어미의 손을 잡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자식들은 그녀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속였다. 같이 사는 큰아들은 매일 먹는 고혈압 약을 영양제라고 했고, 딸들은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경주여행을 간다던가, 가까운 바닷가에 놀러가 며칠 자고 온다고 둘러댔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가 걱정을 이고 살 거라는 것인데, 자식들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언젠가부터 확실히, 그녀는 생각의 범위가 좁아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녀는 한 가지 생각만 할 때가 있었다. 하루는 놀랍게 짧거나 견딜 수 없이 길었다. 그때 그녀의 생각이 걱정에 관한 것이라면, 그녀가 걱정을 이고 사는 노인네라는 말은 옳았다. 그러나 걱정은 무의미했다. 늙은이가 걱정을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겠거니와, 설령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그녀가 남의 나이로 산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했다. 그녀의 일부, 혹은 절반 이상이 다른 집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큰아들과 함께 있는 이 집이 아니라 그녀가 알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집. 그런데 그것은 누구의 집일까. 그녀에게 집을 빌려 주느라 서둘러 자기 집을 떠나 버린 사람은 누구일까.

큰아들은 막내가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정작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가까운 곳에 꽃놀이를 갔다거나 단풍놀이를 갔다고 둘러대더니, 이번에는 어지간히 둘러댈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부부 동반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미국엘 갔다나, 영국엘 갔다나……. 막내의 전화가 끊긴 후부터 노을 무렵 베란다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눈길이 길어졌다. 미국이 아파트 문밖에 있는 나라인 것처럼. 평소에 막내는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다른 자식들이 며칠씩 혹은 열흘에 스무날이 넘도록 어미를 깜빡 잊고 사는 것은 그러려니 하면서도 저에게서 전화가 뜸하기만 하면 당장 안달을 하는 어미를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전화가 올 때거나 안 올 때거나, 그녀는 툭하면 막내를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나 오래된 습관이어서, 이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어 버린 일이다.

아비가 죽은 후 씻김을 하던 만신은 갓난쟁이 막내에게 악담도 축복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의심해 봐야 할, 생의 우연은 막내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막내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고, 그래서 고마웠다. 막내는 최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나쁘지도 않은 대학을 나와, 저보다 열댓 살이나 나이가 많은 큰오라비가 살 만큼 생을 살아 본 안목으로 골라 준 남자와 선을 봐 결혼을 했다. 선을 봐 만난 것치고는 결혼 전까지의 연애가 요란 벅적했다. 툭하면 헤어지고 툭하면 다시 만나면서, 막내는 열정적으로 행복해하고 절망적으로 괴로워했다. 때로는 밥을 굶고 때로는 죽겠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막내 혼자만의 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녀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저 무엇이든 남들만큼만 갖고 사는, 그러니까 넘치지도 처지지도 않는 아이라고 여겼던 막내의 내부에 실은 뻥하고 뚫린 구멍이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에 처음 알았다. 막내는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오라비들, 오라비이면서 아비였던 그들처럼, 남편도 그녀에겐 아비이고 오라비여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막내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홀로 광야에 던져졌다가, 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무렵의 막내는 연극무대에 홀로 오른 배우처럼, 뜨겁고 아슬아슬했다.

막내의 결혼식 날엔 비가 내렸었다. 그 기억은 선명하다. 차에서 내려 예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잠깐 사이, 막내의 면사포가 비에 젖었다. 그리고 이마에도 빗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막내가 그 빗방울을 영원히 기억하고 살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기억은 내부에 잠복해 있다가 무거운 옷을 완전히 벗어던진 후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 막내가 그 빗방울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기억이 아직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막내네 가족이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아들이 알려주던 무렵, 그녀는 집안으로 날아든 풍뎅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등껍질의 색깔이 어찌나 선명하고 곱던지, 어린 손주가 있다면 “옛다, 이것 가져라.” 마치 처음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선물을 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풍뎅이를 쭈글쭈글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가슴 어디께가 쥐어짜지는 듯이 아팠다. 찰나적인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격렬한 고통이었고, 슬픔이었다. 그와 같이 격렬한 감정에 휘말린 것이 얼마나 오랜만의 일인지 그녀는 그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놀라운 마음으로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가라앉은 후, 그녀는 풍뎅이를 창틀 위에 올려놓고 발돋움을 하여 창문을 열어 주었다. 바람이 그녀의 귀밑머리를 흔들었다.

사람들은 늙은이가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고 믿기도 한다. 그날 그녀의 가슴이 아팠던 것도 혹시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일부, 혹은 절반 이상이 몸을 담고 있는 집이 어떤 사람의 집인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혹시 무당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은 일이 있으랴. 그때 그녀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군가가 이승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러 왔다는 것도 알았다. 애틋함을 견딜 수 없고, 어느새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숨을 막히게 하는 그리움도 견딜 수가 없는데,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무병을 앓듯 그 며칠 동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큰아들과 큰며느리의 얼굴이 그 며칠 시꺼멓게 먹물을 칠해 놓은 듯 어두웠다.

새끼 둘을 죽은 것으로 낳았고, 아침에 멀쩡히 젖을 빨던 것이 저녁에 숨을 거두는 것도 보았고, 산 것을 핏덩어리로 쏟아내 보기도 하였으나, 자식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죽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제 배를 갈라 그 뱃속을 제 손으로 쥐어짠다 하여도 그 아픔을 비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늙어가며 좋은 일이 있다면, 이젠 더 이상 그 일을 곰곰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도 모든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모든 일 중의 하나이면서, 또한 유일한 그것……. 채의 구멍이 넓어진다. 때로는 어떤 것을 위해서는, 채가 스스로 자기 구멍을 넓히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던 막내가 불쑥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막내에게서 전화가 끊겼던 즈음으로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큰아들과 며느리가 전부 집을 비우고, 그녀 혼자 집을 지키던 대낮이었다. 혼자 있는 그녀는 현관문을 잘 열지 못했기 때문에, 전에도 막내는 제 큰오라비한테 현관열쇠의 비밀번호를 물어 스스로 문을 따서 들어오곤 했었다. 그러니 불쑥 들어서는 막내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그녀의 방에는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겨울도 아니었는데 막내는 이부자리 속으로 발을 묻고, 어미의 손을 잡았다.

잘 다녀왔니?

그녀가 묻자 막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선물을 못 사왔네. 이불 속에 발을 묻은 막내가 끄덕끄덕 졸기 시작하다가 잠에 빠져들기까지, 어미에게 한 말은 그것이 유일했다.

그녀는 잠든 막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너가 귀신이냐, 산 것이냐. 그녀는 묻고 싶었으나 두려워 물을 수 없었다. 막내의 얼굴에서 무언가 사라진 것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귀신이면 어떠하고 산 것이면 어떠한가. 다만 막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낮잠에 빠져 든 막내는 방이 어둑해질 무렵까지도 깨어나지 않았고, 큰아들이 귀가를 해서는 방문을 열어보았다. 너도 이 아이가 보이느냐, 묻고 싶은데 큰아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아프고 아린 얼굴, 오래 전에는 여동생이면서 또한 막내딸이었던 계집아이를 불현듯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퇴근이 오늘 일렀니, 물으려는데 막내의 서방이 전화를 넣었더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사위가 전화를 넣다니…….  그렇다면 사위도 아직은 이승에 있는 셈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 모두가 떠나고, 그녀 혼자만이 남았거나. 순간 집안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듯하다. 그녀는 그들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녀가 무당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아직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 누가 떠났을까. 그들의 집을 떠난 것은 누구였을까. 막내의 막내라고 했다. 교통사고였단다. 병원에 가고 응급수술을 하고 그럴 것도 없이 현장에서 그냥 떴단다. 아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소파 아래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줌밖에 안 되는 몸을 흔들흔들 흔들었다. 무당의 손에서 흔들리는 제구처럼, 흔들흔들……. 이상하게도, 막내의 막내, 그녀가 그토록 귀여워했던 그 어린 것의 얼굴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막내의 막내, 그 어린 것의 나이가 올해 스무 살이든가, 스물 하나든가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기야 이상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때로는 자기 새끼의 얼굴도 떠오르지가 않는 것을. 그녀는 어린 손녀의 얼굴 대신, 자신의 막내, 이제 낼 모레면 오십이 될 막내의 스무 살 때 얼굴을 떠올렸다. 그 시절에 그녀는 툭하면 막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막내는 어미의 그런 눈길에 질색을 하면서 얼굴을 돌려버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림자처럼 막내의 하얀 이마가 기억 속에 남았다. 예쁘고 반듯하고 하얀 이마였다. 그 무엇도 그 이마에 자국을 새기지 못할 듯했다. 그러나 오늘, 잠든 딸의 이마에서는 난데없이 새의 발자국이 보였다. 딸의 나이 오십이 가깝도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인데, 그 흰 이마에 난데없이 새의 발자국이라니.

딸이 태어나고 남편의 지노귀굿이 열리던 49제의 새벽, 소복이 쌓아놓은 흰 쌀 위로 망자의 떠나가는 넋이 흔적으로 남았었다. 새 발자국이었다. 의심하고 다시 볼 것 없이, 너무도 뚜렷한 새 발자국이어서 그녀는 하늘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아비 없이 태어난 딸이 그때 에에, 에에,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이제 그때의 막내는, 그때의 그녀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 점잖고 제 집 밖에는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해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없이 살았고, 제 아비를 닮은 아들과 저를 닮은 딸을 하나씩 낳았다. 어려서는 짓궂은 남자아이가 땋은 머리 한 번만 잡아당겨도 오라비 넷이 한꺼번에 달려가 그 놈을 두들겨 팼고, 커서는 귀가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오라비 넷이 골목마다 서서 지켰었다. 결혼을 한 후에는, 오라비 넷이 한 주 걸러씩 돌아가며 막내의 집을 찾아가, 마치 늙은 아비처럼 괜히 십 분 이십 분씩을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큰 오라비부터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막내 오라비까지 늙은 아비처럼 구는 것은 똑같았다. 그때, 막내는 잘 살려고 어찌나 노력을 했던지, 매일매일이 아슬아슬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하늘의 복이었는지 막내의 아들은 똑똑하고 건강하게 잘 컸고 막내의 막내, 그녀의 손주들 중에서 가장 어렸던 계집아이는 순하고 예뻤다. 그 막내의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온 가족이 모였던 날, 막내는 오래비들이 한 잔 두 잔 건네준 술에 취했던지, 아니면 감격에 취했던지 말했었다.

“아, 이젠 난 잠만 잘 거야. 아 진짜 실컷 자야지! 그러니까, 오빠들도 이젠 우리 집에 오지 마. 엄마도 오지 마.”

오라비들이 어린 막내가 궁금해 뻔질나게 막내의 집을 찾아가던 시절이 이미 스무 해는 더 전의 일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막내는 말했고, 오라비들은 순식간에 스무 해 전으로 돌아간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 웃음소리들이 좋아 그저 따라 웃었다.

그 어린 막내, 그토록 어렸던 막내가 제 새끼를 잃었다. 교통사고였다니……  제 목숨이 그만밖에는 안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가는 길이 그리 가혹할 필요는 없었을 터인데. 막내가 있는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가, 그녀는 거실 바닥에 발을 쾅쾅 굴렀다. 입 안에서 무언가 말이 터져 나올 듯한데, 말은 터지지 않고 발뒤꿈치가 아프도록 발만 쾅쾅 굴러졌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막내가 일어나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막내는 웃음을 띠었다.

“엄마…… ”

막내의 목소리가 얼마나 무구한지, 그녀의 가슴이 발뒤꿈치마냥 아팠다. 그녀는 막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새끼를 묻고 나서, 한 달 내내 잠만 자더라고 했다. 오죽하였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을 죽이고 싶고, 마침내 저가 저를 죽이고 싶어 막내는 깨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미를 보러 올 수 없었던 것도 아마도 그래서였을 테지. 늙은 어미가 놀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제 새끼 때문에 어미마저 죽이고 싶을까봐 올 수 없었을 테지.

“선물을 못 사왔네……  선물을 사왔어야 했는데…… ”

막내는 했던 말을 다시 중얼거리고, 또 쓰러져 눕는다. 무구히 웃던 눈매에 그 웃음만큼이나 느닷없게 눈물이 불쑥 맺힌다. 그러나 모두 꿈속의 일이다. 막내의 꿈길을 여며주기 위해 이불을 끌어올려주는데, 방바닥에 던져진 듯 놓인 막내의 손가락 끝이 너덜너덜했다. 새끼를 보내는 동안 물어뜯고 또 물어뜯은 곳이 어찌 손가락과 손톱뿐이었으랴. 그녀의 가슴이 막내의 손끝처럼 순간 너덜너덜해진다. 고통과 슬픔이 그 너덜너덜해진 가슴 속에 똬리를 트는데,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것도 기운이 필요한 일이라, 그녀의 입에서는 그저 에에, 에에 하고 울음 같은 숨이 쏟아져 나올 뿐이다. 어미가 되어 제 새끼를 잃을 때까지, 막내의 삶에는 어떤 구멍들이 뚫렸었을까. 그녀의 것처럼 생이 숭숭 구멍이 뚫린 대바구니처럼 되기까지는,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을까.

그나저나 선물이라니……  죽는 날에 이르러, 두 손 가득히, 품 안 가득히 받아들일 풍성한 선물이 기껏해야 아무 것도 아닌 거라는 걸 막내는 알까. 아무 것도 아니어서, 모든 것인 그것……  그 선물을 받기 위해 기나긴 생을 애면글면 살아가는 거라는 걸 막내는 알까. 알 리가 없고, 아직은 알아서도 안 될 터이다. 실은 그녀 역시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아픈 발꿈치를 자신도 모르게 어루만지며, 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그리하여 모든 것은 다 헛되다고 생각한다. 운명이고 귀신이고, 다 헛된 일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는 막내의 이마에 손을 얹어, 새발자국을 지운다. 새끼를 잃고, 어미의 집에 와서 잠든 막내의 마음이 오죽하랴 싶은데, 막내는 드렁드렁 코를 골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이 더욱 찢기는 듯하다. 젊은 시절에 그녀는 절에 다녔다. 때 되면 절에 가고, 떠돌이 중이 나타나면 알량한 곡식이라도 시주를 하는 것은 그 시절에는 누구나 하는 일이었다. 부처가 큰 복을 내려줄지는 알지도 못했고, 윤회니, 해탈이니 하는 말은 그 뜻을 알지도 못했다. 늙은 불자가 갑자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여든이 넘어서의 일이다. 의사도 어쩔 수 없다는 ‘늙어 그런 병’을 교회 목사가 안수기도로 싹 고쳐 준다는 말이 귀에 솔깃하기도 하였거니와, 서방을 쫓아 교회에 다니는 막내가 천국 얘기를 귀에 박히도록 해준 것도 그 영향이기는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집사니 무엇이니 하는 동네여자들의 살가운 행동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요일이면 집으로 와 잘 걷지 못하는 그녀를 업어갔고, 밥을 먹여 주었고, 다시 집에 데려다 주었고, 기도를 하러 와 주었으며, 머리도 잘라 주러 오고, 놀러도 와 주었다. 자식들에게는 그림자가 된 어미가, 난데없이 그 여자들에게는 하느님의 귀한 종으로 한 몫을 했다. 그녀는 새벽마다 기도를 했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성경을 앞에 놓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하느님에게.

그러나 지금 잠든 막내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녀는 누구를 불러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하느님일까, 부처님일까. 아니면 새발자국을 남기고 간 남편일까. 코를 골던 막내가 이불을 끌어당긴다. 초여름 더워지는 날씨, 추워서는 아닐 터인데, 혹시 몸이 허전해서인가.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에서야 알았다. 벽을 짚고 일어서 발돋움을 해 높은 창문을 닫으려는데, 그녀의 귀밑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바람이구나. 아이고, 바람이 좋기도 하여라……. 참으로 시원한 바람도 다 있구나. 창문을 닫아 주러 일어섰다는 것도 잊은 채, 그녀는 발돋움을 한 그 자세로 창문턱을 붙들고 서 있었다. 그 잠깐 사이, 방 안은 그녀의 등 뒤로 사라졌다. 바람이 하도 시원하여 이가 송송 빠진 그녀의 합죽이입이 벙긋 벌어지고, 그 홀쭉한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의 인생은 이제 구멍이 넓은 대바구니 정도가 아니라 밑이 빠진 항아리 꼴이었다. 담아둘 것이 없이 사라졌다. 그렇더라도 바람은 채의 구멍을 지나거나 밑 빠진 항아리를 통과하면서도, 제 울음소리를 남긴다. 그 바람은 그녀의 귀밑을 지나, 지금 어둠 속에 완전히 잠긴 방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깜빡 잊어버린 막내의 이마를 건드리기도 한다. 바람이 시원하기도 하여라. 온몸이 허전하여 깊은 잠결에도 악착같이 이불을 끌어 덮던, 눈물 젖은 얼굴, 막내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진다. 막내의 꿈속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간다. 새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막내도 오랜 세월이 흐르면, 자신의 이마를 건드리는 바람을 느낄 때마다 어찌하여 미소가 떠오르는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녀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때에 그녀는 여기에 있지 않으리라는 사실뿐이다.《문장 웹진/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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