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우리 집




박경철




차가 시 외곽을 벗어나 산자락을 타고 십 여분쯤 달렸을 때 멀리 계곡 중턱에 들어선 하얀 5층짜리 건물을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노인 요양 시설이라서 풍광이 좋은 곳에 들어섰구나, 라는 말에 아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것도 일종의 혐오시설이라서 민원에 시달리다 결국은 고립된 지역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다. 한적한 시골 산간의 봄경치가 갑자기 을씨년스럽게 여겨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떨떠름한 느낌은 아내의 휴대전화가 울릴 때까지 이어졌다. 아내가 차의 속도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잘못하단 오늘 못 가게 될지도 모르겠는 걸.”

찜찜한 표정으로 전화기 폴더를 접으며 아내가 말했다.

“오늘 우리가 모시고 가기로 했던 할머니가 갑자기 안 가시겠다고 그러신다네?”

“왜?”

“글쎄, 일단 와 보라고는 하는데 워낙 연로하신데다가 건강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한 노인들이다 보니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든 정 안 되면 서둘러 다른 분이라도 알아볼 테니 오늘 일정대로 진행하잔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 보면 다음 주 휴일에 다시 아이들한테 너희들끼리 놀고 있으라고 당부할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오늘만 하더라도 다음 주에는 인근 놀이공원에 가기로 약속하고 나서야 얻은 시간이었다.

차가 요양원 마당에 도착하자 사회복지사 한 분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미 아내와는 여러 번 통화한 적이 있는 김 선생이란 분이었는데, 20대 후반의 여자로 자그마한 체구에 대단히 활기차 보였다. 그래서일까, 우리 얼굴에 서린 근심을 읽었는지 전혀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태도로 오늘 모시고 갈 분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가 담긴 서류를 우리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변덕이 워낙 심한 할머니라서 항상 애를 먹어요.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통화를 하려고 했는데 다른 곳으로 가셨더라고요. 거기 사실 땐 그 목사님이 실질적으로 할머니를 돌봐주셨거든요. 그 이야기를 어제 저녁에 할머니한테 말씀드렸더니 마음이 틀어지신 거예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한 번 둘러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고 한참을 떠들었더니 간신히 마음이 돌아서긴 했어요. 다가가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금방 온순해지시거든요. 하지만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르고, 말이 많아져서 수다스러운 것도 문제이긴 해요.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엉켜 버린 이야기라서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차분히 들어 주시면 아주 고분고분해지시죠.”

“그럼 또다시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모시러 가죠.”

내가 말했다. 사실 그런 정도라면 문제라고 볼 것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도중에 갑자기 쓰러지거나 대소변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좋겠다는 말을 집을 나서기 전에 아내와 나누었던 참이다.

“시각 장애인이라는 건 지난번 통화 때 말씀드렸고요. 그래서 휠체어를 차 트렁크에 넣어 가셔야 합니다.”

휠체어란 말에 내가 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김 선생은 원에서 생활하는 대다수 분들이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로 모셔야 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라서 특별히 더 어려울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나들이 도중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지체하지 말고 자신한테 연락을 주면 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자, 이제 할머니를 만나러 가실까요.”


노인들의 공동 기거 장소인 건물 2층으로 들어서자 청결한 상태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깨끗하게 쓸고 닦아도 많은 분들이 함께 기거하는 곳에서는 노인들 특유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었지만 그런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청소 봉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도 의외로 많다며 김 선생이 우리를 휴게실 소파 한가운데 앉아 계신 할머니 앞으로 안내했다.

“오늘 할머니를 모시고 갈 분들이세요. 부부가 함께 오셨어요. 괜찮으시죠?”

“비가 내리는 건 아니구?”

“무슨 비요?”

“이 사람들이 밖에서 비 냄새를 몰고 들어왔어.”

“할머니! 아침 일찍부터 텔레비전 일기예보 들으셨잖아요, 오늘 날씨 맑을 거라고요.”

“어쨌든 난 안 가.”

“왜요?”

“싫어.”

“왜 싫은데요?”

“그냥 싫다니까.”

할머니의 반응이 워낙 완강해 보여 나는 당황스러웠다. 잠시 허리를 편 김 선생이 침착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설명했다. 고향 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많은 분들이 막상 방문길에 나설 순간이 되면 망설이거나 마음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 봐야 반겨줄 이 없는 고향이 대부분이었다. 형편이 힘든 자손을 찾아본들 묻어 둔 상처를 들추는 일이고, 설령 반겨 맞아준다 한들 이젠 남남만큼이나 멀어진 가족이었다. 아니 차라리 그런 건 나은 경우라고 했다. 원에서 생활하시는 분들 중에는 빈곤에 허덕이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나라에서 지급하는 몇 푼 안 되는 생계 보조금을 모아 두었다가 자식들에게 송금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것이 무료 시설에 들어와 생활하는 노인들의 처지였다. 어쨌든 이렇게 자원봉사자가 와서 기다리는 상황에 정작 당사자가 안 가겠다고 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었지만 김 선생의 표정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그년이 내 사물함을 뒤졌어. 낮에 내가 먹다 남긴 과자를 훔쳐 먹는 소리였지. 저녁을 안 처먹는다고 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짐작은 했었지.”

“그 얘긴 왜 또 꺼내세요?”

그러나 할머니는 김 선생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날은 내가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랐지. 동네에 무슨 일인가 있는 날이었어. 평소였다면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테지만 그땐 그러질 못했지. 대문을 나서 얼마를 가다 보니, 내가 가려고 했던 이웃집이 나타나질 않았어. 그러다가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지. ……모두가 잠든 밤이었다지 아마. 과수원 울타리 철조망에 갇혀 돌아오지 못하는 나를 아이들이 찾아낸 건 말이야. 눈앞은 캄캄했고, 머릿속은 하얘졌지. 장님이 진짜 그랬냐고? 정말 그랬지, 흑과 백처럼 말이야. ……그런데 지난밤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김 선생이 묘한 웃음을 흘리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미쳐! 할머니, 이분들은 할머니 사연 몰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할머니 사연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게 몇 십 년씩 건너뛰어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는다고요!”

“난 지난밤 일을 말하는 거야.”

“그 일은 오늘 아침 일찍 제가 할머니한테 가서 조용히 말씀드렸잖아요. 그 과자 제가 치웠다고요!”

“아니야! 그년이 훔쳐 먹었어.”

“아니라니깐! 할머니가 너무 오래 사물함에 과자를 넣어 두는 바람에 자꾸 벌레가 꼬이잖아요. 그래서 어제 저녁 할머니 산책 시간에 제가 깨끗이 청소를 했어요.”

김 선생의 말에 의하면 오늘 아침 할머니가 자신의 사물함에 들어 있던 과자가 없어졌다며 난리를 피웠다고 했다. 지난밤 맞은 편 침상을 쓰는 할머니가 그 과자를 훔쳐 먹었다는 말이었다.

“그 열기 말이지. 더우면 낮이고, 낮은 하얀 색이지. 추우면 밤이고 밤은 검은 색이야. 겨우내 추웠는데 지난밤은 유독 더웠다구. 그년이 내 과자를 훔쳐 먹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지. 그 때문에 세상이 하얘졌어.”

시각 장애인 입에서 자꾸 색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나에게는 몹시 생경하게 들렸다.

“그 동안 감기 걸리실까 봐 기름 안 아끼고 땠는데 겨우내 추우셨다고요?”

“그래, 김 선생이 내 침상에서 한 번 자 봐.”

김 선생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 남편은 어쩌고 제가 할머니 침대에서 자요? 어쨌든 좋아요, 그 과자하고 똑같은 걸로 제가 사다 드릴게요. 이 분들 앞에서 약속해요. 이제 가시는 거죠?”

할머니 태도를 살피던 김 선생이 이젠 됐다 싶었는지 우리에게 나가서 준비를 하고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주차장에서 할머니가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늘 아침 일찍부터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며 일정을 취소시킬 구실을 찾고 계셨을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막상 가려고 마음만 먹어도 겁이 나는 고향, 그래서 쓸쓸히 마음 돌리게 되는 고향 말이다. 그곳에 희미한 불씨라도 남겨두고 떠나 왔다면 마음마저 멀어지지는 않지 않았을까. 무엇을 보기 위해 고향엘 간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휠체어에 앉아 출입문을 나서는 할머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재빨리 자동차 뒷문을 열었다.

“매일 아침 나는 눈이 부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아침이면 동녘에 위치한 내 자리가 너무 밝아.”

“할머니 자리가요?”

할머니 손이 휠체어 바퀴를 잡았다.

“그래. 그래서 좀 옮겨 달라고 내 다른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했는데도 못 들은 척 해. 정말이지 눈이 부셔서 더는 누워 있을 수가 없다니까. 그래서 일어나지. 송순이가 나한테 말해. 더 자요, 아직 깜깜하니까. 벌써 나한테 이태째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니까. 내가 봉사라고 다들 그러는 거지. 하지만 눈이 없어도 난 빛을 느껴. 내 미간 사이에 커다란 해가 뜨니까.”

“알았어요, 이번에 고향 다녀오시면 할머니가 원하는 자리로 제가 바로 옮겨 드릴게요, 됐죠?”

할머니가 마지못한 듯 휠체어 바퀴를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김 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매일 새벽 다섯 시 반이면 복지원 보일러가 맹렬히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러면 여섯 시를 전후해 각 방마다 설치된 라디에이터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그 더운 열기를 할머니께서는 아침 햇살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이었다.

“점자책도 읽으시고. 그 내용을 우리들한테 말씀하실 때도 많아요. 아주 상식이 풍부하신 할머니세요.”

막 차에 오르려는 나를 향해 김 선생이 던진 말이었는데, 어감이 내게는 몹시 까다로운 할머니일 거라는 의미로 들렸다.


연록이 짙은 기운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땅은 붉고 새싹들은 어느새 자라 아이 손바닥만큼 펼쳐져 온통 녹색으로 내걸렸다. 산을 뒤덮은 나뭇잎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아내가 중얼거렸다.

“햐! 온통 녹색이에요!”

“뭐라고?”

“나뭇잎들이 정말 예쁘게 자랐어요. 대지는 온통 녹색이고요.”

의자 등받이를 움켜쥔 마른 나뭇가지처럼 구부러진 손가락들을 풀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할머니가 말했다.

“냄새가 기억 나.”

“무슨 냄새요?”

그러자 한참을 묵묵히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옅은 간장 냄새야. 아이 살갗에서도 그런 냄새가 났지. 남편은 아이가 오줌에 절어 가고 있다고 나한테 호통을 치곤 했어. …… 자주 씻기지 못한 건 내 잘못이었지.”

“할머니 몸이 불편하셔서 그런 거잖아요?”

“우리 집에 들르는 사람들 중엔 집 안이 온통 푸른 잡초로 뒤덮여 가고 있다며 뽑은 잡초를 내 코밑에 들이대는 사람도 있었지. 난 그 비릿한 냄새를 기억하지. 그게 우리 집 땅 냄새야. 드나들 때마다 나는 매번 대문을 손으로 더듬어야 했는데 한번은 손가락에 끈적거리는 기운이 닿는 거야. 냄새도 심했지. 남편이 파란색 페인트를 칠했다고 말했어. 그때부터 사람들은 우리 집을 파란 대문집이라고 불렀는데, 그 파란 대문처럼 잡초 때문에 우리 집 전체가 파랗게 변해가고 있다고 했지. …… 비릿했어, 파랗게 말이야. 그래서 파란 색의 비릿함을 알게 된 거지.”

그러더니 불쑥 말을 던졌다.

“남편은 좋은 사람인가?”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말씀에 아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 좋을 때도 있고, 싸울 때도 있고 그렇죠 뭐.”

“여자를 때리면 못 써요.”

할머니께서 운전하는 내 귀밑으로 던진 말이었다. 나는 볼에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짐짓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맞고 살아요, 할머니!”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일전에 아내가 나에게 30퍼센트가 넘는 결혼한 일본 남자들이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모호한 기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싶으면서도 정말 그래야 되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예전엔 오줌줄기가 격정을 못 이기듯 변기를 타넘곤 했는데 이젠 잔뜩 움츠러들어 꼬리를 제 가랑이에 감춘 개 모양 발치께로 떨어지기도 하는 처지였으니 말이다.

“변기 주변의 냄새도 심하고 변기도 지저분해 지니까 당신도 한번 그래 볼래요?”

사실 나는 아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기를 내심 바랐었다.

“집에서 변기 이용하는 횟수가 얼마나 되나?”

약간의 감정의 꿈틀거림, 변화, 그러나 곧바로 결국은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루함에 의해 내 감정의 문은 곧 닫혀 버렸다.

“단 한 번을 이용하더라도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다면 더 좋지 않겠어요?”

아내의 의지가 실린 언질에 나는 잠시나마 내 감정을 일깨우지 않은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감정을 살리는 행위가 아니라 죽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많은 일들이 그런 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럼 나도 그렇게 해 보지 뭐. …… 그런데 우리 아들은 어쩌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꺼낸 말이었는데 아내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는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일단 당신만 그러는 걸로 하는 게 좋겠어요.”

“왜?”

“친구들한테 놀림감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 글쎄. 아마 내가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기 시작하면 아들도 따라서 그렇게 할지도 모르는데.”

아내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부자가 한꺼번에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는 일은 삼가 주세요.”

우리 일상이라는 게 그랬다.

차가 신호대기 앞에 멈췄을 때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가 잔뜩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눈을 찡긋해 보였다. 여자를 때리면 못써요, 라는 사인 같았다. 한 달 전쯤 아내로부터 주말에 운전을 해 줄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부탁이라고 했다. 막 꽃집 앞을 지나던 길이었는데, 대답 대신 나는 아내를 꽃집으로 몰아세웠다. 자주 꽃을 사들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가끔은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내는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다발 대신 야생화 화분을 하나 집어 들었다. 꽃집을 나서며 내가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자 아내는 어떤 할머니와 데이트 기회가 생겼는데 자신이 운전하면서 데이트를 하기에는 너무 버거울 거 같아서 하는 부탁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자원 봉사라고 덧붙였다. 그 동안 몇 차례 함께 봉사를 나선 적이 있었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일정이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면서 어젯밤 비에 푸른 것들은 더 푸르러졌고, 녹색의 여린 싹들은 일 년 중 가장 싱그럽고 화사한 봄 햇살과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도로변을 따라 화사하게 피어난 때 이른 장미꽃도 아름다웠지만 멀리 산허리를 따라 꽃물결이 흐르듯 띠를 두른 산철쭉은 더 좋아 보였다.

“자제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고향 마을에 살고 계신가요?”

“김 선생이 그래? 모두 시집 장가간 우리 애들이 거기 있다고?”

“…… 아뇨, 고향에 누가 계신가 해서요.”

아내가 무안해 하며 말꼬리를 흐리자 할머니가 다시 매몰차게 말했다.

“없어. 동네 분들 중에 몇몇은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프지도 않아.”

대화가 뚝 끊겼다. 쉽지 않은 동행이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불쑥 할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가 말했지. 엄마! 내가 엄마 엄지손가락을 꽉 움켜쥐면 엄만 그 자리에서 멈춰야 해요. 알았죠, 엄마? 그러지 않으면 개울로 떨어지거나 자동차와 부딪칠지도 몰라요. 그랬지. 급박한 경적소리와 함께 발치께서 멈춰 서는 자동차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어. 내가 말했지. 도대체 왜 이렇게 차들이 많아지는 건지 모르겠구나!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굉장히 불편해 해요. 하긴 목사님도 지난번에 차를 구입했다고 하더라만 난 못마땅해 했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으면서도 자동차 사고로 앞 못 보는 나보다 먼저 저승에 간 동네사람들 생각이 나서야.”

불쑥 당신 아이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는 왜 끄집어 낸 걸까. 하지만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김 선생님이 그러던데 학교를 다니신 적도 있다고요?”

할머니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연은 아내가 복지원 사무실의 김 선생님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엔 침침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주 눈을 비비대는 그녀를 향해 그녀의 어머니는 이년아! 세수를 잘 해야지. 눈곱이 끼니까 잘 안 보이는 거지, 라고 했고 그녀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한 동네에 사는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로부터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다리가 반듯하게 펴질 거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사실 자신의 다리는 점점 더 굽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볼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때 자신 역시 그 아이처럼 돼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평생을 암흑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건 세월이 더 흘러서였다. 왜냐하면 동네에는 몸이 불편한 아이들부터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까지 모두가 그녀의 이웃이었기 때문이었다. 증세가 심각해지자 그녀는 책을 모조리 외워 버리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녀는 할아버지 친구 분의 도움으로 점자라는 걸 익혔는데 어쨌든 그녀가 눈으로 문장을 확인하고 외우면 그 문장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때가 열 살 무렵이었는데, 후로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그녀가 문장을 외우는 것보다 더 빨리 눈앞의 것들이 어둠의 장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이 생각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함께 하던 친구와 떨어져 오게 된 날이었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넘어지고 깨져 흙투성이가 됐어. 어머니, 아버지한테 이제 더 이상은 학교에 다닐 수 없어요, 라고 말했지. 그러고는 하루 밤낮을 훌쩍거리며 울었어. 울음을 그치고 났더니 더 이상 세상이 보이지 않았지. 후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봤어.”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 동안 갑자기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꼭 초행길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차를 도로변에 있는 상점 앞에 정차시켰다.

“할머니 드실 과자하고 마실 음료 좀 살까?”


“그런데 댁들은 내가 지금까지 자동차를 몇 대나 보았을 거라고 생각하시우?”

과자와 음료 모두 마다하시는 바람에 결국은 우리가 먹을 것들이 든 봉지를 들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 할머니가 우리에게 던진 말이었다. 내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열 살 전후에 시력을 잃으셨다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랬지. 내가 아이들한테 그렇게 물으면 큰아이가 이렇게 말하곤 했지. 세 대요. 엄마가 여덟 살이던 해 육이오가 끝난 무렵에 보았던 검정색 미군 지프가 처음이었다고 했죠. 그리고 나머지는 점점 시력을 잃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저 뿌연 형체로만 기억하고 있다고 했죠. 나를 태우러 온 시발택시의 청색 형체만 기억하고 계시다고 했어요. 그랬지. 조부께서 택시를 타고 나타나신 거였지.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부모님을 굉장히 야단치셨어. 아이가 장님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치료 한번 받지 않게 했다고 말이야.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했기 때문에 날 치료해 줄 돈이 없었어. 빌미가 된 건 내 눈이었지만 마땅치 못했던 아들 며느리와 그들의 가난이 조부의 노여움을 샀고, 내 인생에서 두 분은 지워졌어. 후로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됐으니까. 거기서 난 그저 점자책이나 읽으며 조용히 지내게 되려니 했어. 그런데 할아버지로부터 내가 먹고 살 정도는 되는 전답을 물려받은 거야. 그리고 우스운 건 말이지, 그 전답 때문에 결혼을 해야 했다는 점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모두에게 말이지. 나한테는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함께 할 동료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둘 다 장님이어서는 곤란하니까 장님만 아니라면 다리병신도 괜찮았을 테지.”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낳고 잘 사셨잖아요?”

“그래, 그건 노오랬어. 아이들 피부색도 그랬어. 남편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얼굴이 노오랗게 떠가고 있다고 했고. 오십 년 아니, 그 이전의 일들일 거야.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색깔들이 떠올라. 내가 눈이 멀기 전 그 노오란 색을 어느 해 부잣집 잔칫상의 하얀 쌀밥에서 보았지. 사람들은 흰 쌀밥이라고 말했지만 나한테 그건 노오란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쌀밥이었지.”


우리가 할머니 고향 마을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한참 지나서였다. 마을 입구는 차들이 지날 때마다 하얀 쌀알 흩어지듯 조팝나무 꽃잎이 몰려다니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10여 미터쯤 떨어진 마을 입구에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차가 교회 마당으로 들어섰다. 내가 할머니를 휠체어로 모시는 동안 아내는 교회 건물과 같이 붙어 있는 가정집에 들러 교회를 한 번 둘러볼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새로 온 목사 부인인 듯싶은 여자가 나오더니 교회 문을 열어 주었다. 할머니는 예전에 예배를 보던 자리에도 앉아 보고, 교회 건물 밖으로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배나무 가지가 교회 건물 벽과 닿아 있을 정도여서 한 달 정도 일찍 배꽃이 한창인 무렵에 왔더라면 지나는 바람에도 교회당 안으로 배꽃이 흩날렸을 듯싶었다. 그런데 아내의 말에 나는 휠체어를 멈추었다.

“할머니 울어요?”

그러고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 듯 물기가 내비쳤다.

“옛날 생각나서 그러시는구나?”

“아니야. 눈물이 말랐지. 난 운 적이 없어.”

“눈가에 물기가 내비친 걸요.”

“난 운 적이 없어.”

아내가 손등으로 할머니의 눈가를 매만져 주었다.

이곳으로 오는 차 안에서는 분명 하루 밤낮을 울었다고 해 놓고서 운 적이 없단다. 이렇게 내 생각을 헝클어 버리니 몸이라도 돌려 헤쳐 나가자는 생각에 나는 음식점 간판을 내건 건너편 도로 쪽으로 휠체어를 밀며 말했다.

“할머니 저희들 배고파요, 점심 먹으러 가요.”


“할머니, 사진 좀 찍을게요!”

식당에서 나와 할머니가 사시던 고향집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교회 마당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그만두라는 것인지, 혹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지 모를 투로 손을 한번 내젓고는 말이 없었다. 두 손은 휠체어의 팔받이 위에 놓여 있었고, 움푹 꺼져 찌그러든 안구자리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마치 정면에 서 있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희가 할머니를 잘 모시고 다녀왔다는 증거물로 원에 제출해야 하는 사진이에요, 할머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찜찜한 생각이 드는 것은 정작 할머니는 볼 수 없는 사진을 찍고 있다는 점이었다.

“할머니, 두 손을 모아서 아랫배에 올려놓아 보세요!”

나는 팔받이 위에 놓인 할머니의 손가락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여위고 마디진 손가락들은 그저 팔받이 위에 놓여 있기만 해도 그것을 힘껏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찍어요. 무슨 작품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닌데.”

나는 셔터를 눌렀다. 셔터를 누르기 전까지 따라붙던 수많은 경우의 수, 그러니까 더 나은 요소를 포착하거나 찾아내기 위해 머뭇거렸던 미련들이 찰칵! 하고 셔터가 닫히는 순간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것은 너무도 짧은 종결이어서 수없이 반복되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일 같았다. 그러자 내 안의 충동이 훨씬 더 듬직하게 가슴 한구석에 자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주제넘게도 나는 지금껏 할머니가 보지 못한 세월을 한 장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진 찍는 일이었다. 사진을 잘 찍는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구도나 색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보면 내게도 뭔가 창조적인 구석이 있구나 싶어 스스로를 대견해 한다. 살다 보니 내 몸이 기계지 싶은 시기가 되었고, 조금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그래서 구입한 것이 디지털 카메라였다. 필름을 사용하는 값 비싼 카메라가 일 년 내내 열어보지도 않는 서랍 속으로 자취를 감춰 버리는 경험을 대부분 갖고 있을 것이다. 찍는 횟수가 한정되다 보니 카메라와 대상 모두 경직되기 일쑤인데다가 필름을 사거나 현상과 인화를 하는 일 모두가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필름 카메라가 제 명을 다한 것이다. 대신 마련한 디지털 카메라가 가족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부담 없이 삭제할 수 있으니까, 과잉 샷과 과잉 포즈가 난무하는 가운데 찍는 이에게도 찍히는 이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이치였다. 어차피, 제한된 것으로부터 놓여나 자기 마음에 드는 시선으로 포착하고 싶은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나처럼 소심한 남자들도 나름대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댈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구입한 카메라의 새로운 기능을 제대로 익히지도 못하고 맞이한 휴일에 인근 산에 올랐다가 뜻하지 않게 담게 된 영상이 바람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바람이 좀 거칠기는 했는데 오솔길을 따라 산중으로 들어서자 나뭇잎과 가지에 실리는 바람이 심상찮아 보였다. 황사를 몰고 온 바람은 아니어서 대기는 깨끗했다. 그런데 산 중턱에 이르러 나는 거미줄로 드리워진 밀림 한가운데 들어선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잎사귀를 파먹던 자벌레들이 제멋대로 휘젓는 바람에 날려 연록의 잎사귀에 구명줄을 드리운 채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바람의 형상이 이거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등산로 바닥은 이미 자벌레들로 득실득실했다. 연록의 잎사귀들을 갉아먹는 자벌레들이 온 산을 뒤덮은 탓이었다. 해가 갈수록 자벌레 개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아니, 지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봄에 인근 산으로 등산을 할 때 자벌레가 숲을 온통 갉아먹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올봄 처음으로 숲에 들어섰을 때 나는 미약하나마 그 소리를 들었다. 숲이 갉아 먹히는 소리를 말이다.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면 그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자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소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부드러운 눈을 밟을 때처럼 사르륵사르륵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련한 빗소리 같기도 했다. 어찌됐든 영상 속에는 허공에 매달린 수많은 자벌레들이 마치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피터팬처럼 휘날리는 모습으로 담겨 있었다.

“할머니! 해를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왜 불쑥 그런 말이 튀어나온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셔터를 누르는 내내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꾸 사진만 찍지 말고 이 집 마당이 어떤지 설명 좀 해봐.”

“아, 예, 할머니. 그럴게요. 먼저 텃밭이 보이고요. 완두콩을 심었어요. 그리고……”

“그래, 그랬지. 텃밭으로 들어가면 안 돼! 거긴 아버지가 힘들게 가꾸어 놓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란다, 라고 말이야.”

“아이들을 돌보고 계셨나요?”

“물론. 우리 아이였지. 나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뜰에 나와 있었지. 추녀 끝에 놓인 벽돌에 앉아 해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어. 그런 내 앞에서 큰아이가 조금은 불안한 걸음걸이로 마당을 맴돌고 있었던 거야. 내가 계속해서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지.”

수십 년 전 추녀 끝에 놓인 벽돌에 앉아 해를 마주하던 그녀는 이제 휠체어에 앉아 해를 마주하고 있었다. 얼굴 하나 가득 잡힌 주름 사이사이에도 햇살이 스며들어 그 온기가 따사롭게 퍼지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그늘진 곳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할머니는 사라지고 두 아이의 엄마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듯한 모습처럼 여겨졌다.

“장독대는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위치해 있지. 그리고 방금 말한 텃밭은 왼쪽에 위치해 있고.”

“그런데 흙이 어쩜 저렇게 붉을 수가 있죠!”

아내가 말했다. 선명한 주황색 흙에는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듯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곤 했지. 맨발로 감촉을 느껴 보고 싶다고 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남편은 농사일은 꼼꼼했어. 밭에 잡초가 자라날 틈도 주지 않았어. 그런데 완두콩이라고 했나?”

“예, 강낭콩은 텃밭 둑을 따라 심었네요.”

“그래, 그랬을 거야. 그리고 아마 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텃밭이 끝나는 왼편 뒤꼍으로 낡은 농기구가 버려져 있을 거야. 같은 동네 사람이 이 집을 구입했지. 남편 친구였는데 그 사람도 술이 데려갔어.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에도 그 사람은 기계를 좋아하지 않았지. 그러니 아마도 그 농기계는 거기서 비바람에 녹슬어 가고 있을 거야.”

나는 뒤꼍 처마 밑으로 삐쭉 비어져 나온 농기계를 보았다. 비료부대 몇 장으로 덮어 놓았는데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비바람에 삭아 잘게 부서져 흩어지고 있었다. 기계는 녹이 슬어 드러난 철판의 반쯤이 이미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논밭을 쟁기로 갈아엎은 다음 덩어리진 흙을 잘게 부수는 것으로 경운기에 부착해서 사용하는 로터리라는 기계였다.

출입문 바로 위쪽에는 전기 계량기가 보였다. 검은 동체에 작은 창이 하나 있는 것으로 황토 흙벽 한가운데 붙어 있어 금방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하얀색 페인트칠이 된 우편함은 매달릴 곳을 찾지 못해 출입문 옆 추녀 아래 놓여 있었다. 그 옆으로 엘피지 가스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를 위해 아내가 천천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을 말해 나갔다.

시력을 잃은 여인이 반세기 가까이 머문 집이었다. 할머니의 시선은 여기 어느 곳에도 머물렀던 적은 없지만 그녀의 달팽이관을 두드렸을 소리들과 그녀가 더듬던 손길에 와 닿던 먼지나 거미줄의 감촉, 그리고 그곳을 지나던 바람이 실어온 냄새를 통해 그것들은 기록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갑자기 자지러지는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지. 나는 벌떡 일어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어. 아가야, 왜 그래? 이리 온! 그 날도 돌부리가 문제였지. 마당 구석구석까지 훤히 알고 있었지만 늘 만만찮은 그 돌부리 때문에 애를 먹었지.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남편에게 그 돌부리를 빼내 달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테지. 남편은 그리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나한테는 그런 사람이었지. 밤에 내 몸 위로 올라와 나를 쪄누를 땐 내 몸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아이들은 낳고 싶지 않았는데도 생겼어. 그리고 남편처럼 힘이 대단한 사람도 마당 한가운데 박힌 저 돌멩이를 어쩌지는 못했지. 동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물속에 잠긴 빙산처럼 무지무지하게 큰 몸뚱이를 흙속에 감추고 있었다더군.”

뒤꼍으로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할머니가 이 집을 떠난 후에 누군가 심은 것이지 싶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 일으켜 세워 손을 잡고 방안으로 엉덩이를 들이밀었지. 방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어.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을 거의 집안에 가둬 놓고 키웠다고 말했지.”

출입문 손잡이 옆 벽의 검게 변한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번들번들하게 패인 자국으로 남겨진 그 자리를 아내의 하얀 손가락들이 더듬고 지나갔다.


“손가락들은 알고 있었지.”

내가 휠체어를 밀기 위해 손잡이 부분을 잡자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안 돼. 항상 손을 잡아야 했지. 그래서 손을 보듬고 있으면 비로소 모든 것이 정리가 된 듯한 안도감이 들곤 했어.”

휠체어를 밀고 대문을 나서자 가까이 과수원 배나무들의 기다란 그림자가 휠체어가 지나는 길 가운데로 드리워져 있었다. 여기서 바라보니 할머니가 다니던 교회는 과수원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집사님이……, 권 집사라고, 그 분이 우리 집에 들렀어. 함께 교회를 오갈 때마다 내 손가락들을 꽉 잡고 다녔지. 손가락들이 아플 정도로 말이야. 교회가 가깝기는 해도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가야 하니 나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 게다가 처음에는 나도 예수쟁이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남편한테 말이지……, 그래서 그렇다고 말했더니 권 집사님이 믿는 건 자기가 믿을 테니까 나한테는 따라다니기만 하라고 그러더라고. 따라다니는 건 하나도 나쁠 게 없다고 그러라고 해서 남편한테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그게 위험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아이들이 출가를 하기 전이었다면 분명 손찌검을 당했을 거야. 다행히 그 일로 맞지는 않았지. 아이들이 결혼을 해서 모두 떠나고 나자 남편이 달라진 거야.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예전처럼 때리지는 않더라고. …… 하지만 맞을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결혼식이 끝나자 모든 게 끝났으니까. 처음엔 그저 한두 번 전화가 없는 거려니 했지. 일 년이 가고 이태가 지나도 아이들한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 남편이 나한테 하던 손찌검을 멈춘 것도 그 이후였지. 아주 잠깐 사이에 늙어 버리더라니까. 그리고는 쓰러졌지. 사람들은 술병으로 쓰러진 거라고 했지만 난 그 사람 입에서 약 냄새를 맡았어. 남편이 논에 농약을 뿌리고 들어설 때에 맞춰 나는 찬장에서 설탕 봉지를 꺼내 한 사발 가득 시원한 설탕물을 타곤 했지. 약내를 풍기며 들어선 남편 앞으로 사발을 내밀 때마다 끼치던 그 냄새를 지금도 기억해. 벼멸구를 없앨 때 쓰는 살충제 냄새였어. 권 집사님 말로는 잔뜩 웅크리고 잠든 아이 같았다고 했지. 그런 상태로는 입관을 시킬 수가 없어서 염을 할 때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젊은이들을 불러왔다더군. 그런데 남편이 죽고 나자 또 다시 내 눈이 먼 거였어.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이었던 거지. …… 정말 암흑 같은 시간이었지. 이따금씩 무슨 무슨 사회봉사 단체 사람들이 찾아왔어. 다들 조용히 움직였지.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어. 그런데도 못했어. 지금까지도 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 와서 내 밑까지 깨끗하게 씻겨 주곤 했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하고 싶은 말들이 모두 쑥 들어가 버리더라고.”

“…… 그러셨군요.”

“내 얘기만 해서 미안하우.”

“…… 저희들이 죄송한 걸요.”

그냥 그랬다. 배나무 잎을 뒤섞는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눈이 매운 것 같아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배나무 둥치를 보니 제법 오래 돼 보이는데요?”


“오래 됐지, 오래된 향기였어. 그날도 배꽃 향기를 맡았으니까. 봄바람에 봄볕이 따사로워 뜰에 나와 앉아 있는데 이웃이 우리 집에 들러 월말이라 고지서를 납부하러 간다고 하더라고. 남편이 죽고 난 다음 한동안은 그 분이 우리 집 고지서를 대신 납부해 주었거든. 그 뭐야, 자동으로 납부되게 해 놓기 전까지는 말이지. 그래 봐야 전기요금 납부가 전부였지만 말이야. 그게 습관이 돼서 월말만 되면 각종 공공요금 고지서를 들고 우리 집으로 오곤 했던 거야. 그런데 한 번은 그 분이 그러시더라고. 집안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죽었으니 더 이상 텔레비전 시청료를 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이지. 내가 말했지. 그렇기는 하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하지만 왜 시청하지도 않는 텔레비전 시청료를 내느냐며 따지는 거야. 그래서 내가 본다고 말했지. 이웃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자넨 듣기만 하는 거지, 라고 말하더라고. 물론 눈 먼 장님이 무슨 재주로 텔레비전을 보겠어. 하지만 난 듣고만 있어도 그림이 그려져. 내 머릿속에서 연속극이 진행되지. 그래서 그랬던 거야.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항상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 분이 나서서 텔레비전 시청료 면제를 받게 해 줬어. 난 여전히 텔레비전을 보고 말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며 할머니는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렇지 내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날도 그 이웃이 우리 집에 들러 언제나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우리 집 우편함을 뒤져 보았는데 거기서 편지 한 통을 끄집어 낸 거야. 진수 편지네, 라고 했지. 우리 아들 진수, 진수가 보낸 거라고. 내가 읽어 달라고 하기도 전에 이웃은 봉투를 열고 편지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끝부분을 들으며 알았지. 제가 지금 많이 힘들어요, 엄마!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던 집을 처분했다고 들었는데 조만간 들르겠어요.”

할머니가 다시 말을 잇기를 기다리느라 휠체어를 가만히 멈추고 있었는데 그만 가자는 손짓을 해 보였다.


“집을 비워 주기로 한 날짜는 다가오는데 갈 곳이 없었어. 배꽃은 지는데……, 그랬지. 그해 봄이 정말 그렇게 가 버렸어. 믿기지도 않아. …… 어쩔 수 없었지. 목사님이 요양원을 주선해 주시겠다고 했어. 무료인데다가 거기서 일하는 복지사들도 아주 친절해서 지낼 만할 거라고 말이야. 나한테는 아주 잘 된 일이었지. 여기서 살던 때보다는 답답하지만 나 같은 늙은이는 항상 보살핌이 필요하니까.”

그러더니 조금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을 먹은 지도 한참이나 지났으니 서둘러야겠어.”

“둘러보고 싶은 데 있으면 더 둘러보셔도 돼요. 가는 길에 저녁까지 드시고 들어가도 되고요.”

“아이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두 녀석인데 가끔씩 싸우기도 하지만 잘 놀아요. 아마 지금쯤은 컴퓨터 오락을 하느라고 정신을 없을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피식 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들은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나한테 대놓고 장님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들 그래. 그러다가 내가 점자책을 읽는 모습을 보더니 그건 또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걸로 생각한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어. 하얀 백지 위에 솟아 오른 돌기들을 더듬고 있으니까 내가 무슨 그림을 구경하는 줄로 알았는지 옆에 있던 할머니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들여다보느냐고 하데. 그러던 중에 한방 할머니 한 분이 연속극을 놓친 적이 있었어. 내 그년 이름을 기억하게 된 날이지, 송순이라고.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기에 내가 이야기해 주었지. 그때까지 나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송순이가 내 눈을 뒤집어 까려고 들었어. 멀쩡한 년이 장님 행세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야. 그랬지. …… 그래도 이젠 날이 저물면 송순이가 보고 싶어.”

아내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정말로 그러셨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는 자동차가 주차된 교회 마당 쪽으로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바퀴는 둥글구나 생각했지.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차에 오르기 전 할머니가 손을 더듬었다. 내 손을 찾는 모양이었다. 내가 가만히 다가가 손을 내밀자 내 손을 두 손으로 쥔 할머니께서 말을 이었다.

“이곳을 떠나던 날 나를 데려갈 휠체어에 올라 앉아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내 이 손으로 있는 힘껏 휠체어 바퀴를 돌리기 시작했지. 목사님이 위험하다고 소리치대. 하지만 휠체어 바퀴가 어디로 굴러가든 내 알게 뭐람. 여기만 아니면 괜찮았던 거지. 요 앞 도랑 보이지?”

“도랑이요? 예.”

“바로 그 앞에서 깜짝 놀라 달려온 목사님이 휠체어를 붙잡았지. 아까 점심 먹기 전에 휠체어에 앉아 교회를 둘러보는 동안 그 생각이 났어. 죽기 전에 목사님한테 그 일을 사과한다고 마음먹었는데 이젠 다른 곳으로 가 버렸으니 틀렸지.”

“그런 일이 있었어요?”

“오늘 내가 너무 수다스러워서 불편했을 테지.”

“전혀 아니에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이 없어. 사실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어서 내키지 않는 길이었어. 오전에 퉁명스럽게 대해서 미안허우.”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 저희들이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일 걸요.”

“그랬다면 다행이야.”

그러고는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아내가 도중에 할머니한테 혹시 화장실에 들르고 싶지는 않는지 여쭈어 본 것을 빼면 내가 아내한테 전했어야 할 잊었던 전화 통화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룸미러를 통해 바라보니 어떤 아쉬움이 할머니의 표정에 어리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 이제 원으로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머니 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들러볼 만한 공원이 한 군데 있는데 한 바퀴 둘러보고 가실래요?”

순간 할머니의 얼굴에 지루해하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늦었어. 들어가야지.”

“저흰 괜찮아요. 언제 다시 나오시기도 힘들잖아요?”

“그래도 싫어. 이젠 가.”

하는 수 없었다.


차가 원 마당에 도착하자 사무실에 있던 김 선생이 뛰어나왔다. 할머니는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올라앉자마자 서둘러 인사의 말을 건넸다.

“잘들 가. 어여.”

그러고는 휠체어 잡고 서 있는 김 선생을 향해 손짓해 보이셨다. 우리가 채 인사를 건네기도 전이었다.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이게 할머니 방식이겠거니 싶어 다소곳이 허리를 숙여 보이는데 할머니가 김 선생에게 다시 휠체어를 돌리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깐 고마웠지만 내가 소피가 급해서 그랬어. 미안허우.”

일전에 소변 문제로 아내와 나누었던 이야기도 있었던 터라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공원에도 화장실이 있는데요?”

할머니께서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내 집인 걸. 우리 집.”《문장 웹진/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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