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집

 

거미의 집

권영임

 
 

1. 탈피

내 몸속에는 독거미인 로즈헤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아메리카 중남부나 아프리카 등지에 서식하는 독거미가 언제부터 내 몸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S를 만나고부터인지, S와 몸을 섞은 다음부터인지.
S는 타란툴라 종류인 칠레산 로즈헤어 암수 한 쌍을 선물로 주었다. 거미줄에 대롱거리는 시커먼 거미밖에 모르던 내게 코발트, 블루, 금빛 털의 타란툴라를 사랑하게 만든 건 S다. 플라스틱 원통에 담긴 로즈헤어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거미를 온종일 바라보고 있다.
대형거미에 속하는 로즈헤어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탈피를 통해 성장한다. 알로 태어나 탈피를 해서 유충이 되고, 유충이 다시 탈피를 해서 성충이 된다. 물만 먹고도 2년은 살 수 있다고 한다. 성체가 된 후에도 탈피를 하는 암컷과 달리 수컷은 탈피를 하지 못하고 죽는다.
수컷이 먼저 탈피를 시작하려나 보다. 엉덩이 털이 다 빠져 땜빵이 생겼다. 땜빵 자리가 검게 변하면 먹이를 주어도 덤비지 않는다. 은신처에 스스로 몸을 숨기고 거식을 시작한다. 거미줄로 그물침대를 만들고 입구를 막아 버린다. 나 또한 커튼을 내려 세상과 연결된 빛을 차단한 지 오래다.
식욕이 점점 사라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물만 마시며 하루를 보냈다. 장미처럼 아름다운 털을 가졌다 하여 이름 붙여진 로즈헤어. 엉뚱하게도 로즈헤어가 또 다른 내 분신인 것만 같다.
“너는, 바라보게 만들어. 로즈헤어 같아.”
만지고 싶은 게 아니라 바라보고 싶다는 S의 말은 모든 경계를 일시에 허물어 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사람들은 나만 보면 만지고 싶어 한다. 솜사탕을 핥듯이 혀를 내미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뺨을 콕 찍으며 입맛을 다시는 남자도 있다. 십여 년을 길러준 양아버지는 양어머니가 없을 때면 민소매 입은 팔을 쓰다듬곤 했다. 반바지 입은 허벅지를 만지는 건 예사였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예쁜 구석 없이 평범한 나를 돋보이게 하는 건 사람들이 감탄하는 피부였다. 양아버지가 내게 집착하기 시작한 이후, 이런 찬사는 내게 저주가 되었다.
“볼래?”
S는 거두절미하고 내게 물었다. 커피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선배다. 고개를 끄덕이며 S의 방으로 따라갔다. 거미가 한 마리씩 담긴 사육장은 차곡차곡 쌓은 아파트 모형 같았다. S가 키우는 타란툴라는 돌 밑이나 나무 밑 등에 몸을 숨긴 채 거미줄을 쳐놓고 그 위를 지나가는 먹이를 감지해 사냥하는 은둔형이었다. 나는 붉은빛이 도는 주황색 털을 가진 로즈헤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창살 안에 갇힌 수인의 옷과 비슷한 색깔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끝나면 좁은 월세방에 틀어박혀 거미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양아버지 밑에서 고등학교를 겨우 마쳤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잡기란 불가능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는 내게 최상의 일자리다. 생계보다 더 절박한 존재의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어 난 수시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지곤 한다. S와 함께 타란툴라를 보며 보내는 시간만큼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괴롭히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와 달리 S는 심각한 걸 싫어했다.   
난 이대로가 좋아. 
S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사육장에 갇힌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S는 그런 것들이 삶의 목표라도 되는 듯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한 달 벌어 한 달을 사는 그에겐 꿈이 딱 하나 있었다. 더 많은 타란툴라를 구매하고, 타란툴라를 사육하는 데 필요한 장비들을 사들이는 것이다.
S는 더 이상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S가 다니는 대학에 가려고 재수, 삼수를 하는 사람도 많은데 한 학기를 마치고 그만두었다. 졸업을 하고도 도서관에 머무는 선배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 갔다는 거였다. 안정된 직장을 갖는다는 것, 아파트를 사고 평수를 넓혀 가는 것들은 그의 꿈과 거리가 멀었다. 졸업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게 S의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어찌 지내는지 알고 싶지 않아. 강아지건 사람이건 엉기고 달라붙는 건 딱 질색이야.”
내게 하는 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졸졸 따라다니며 알짱거리는 강아지 대신 도도한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사는 나무위성 거미보다 바닥재 밑으로 파고드는 놈을 좋아하는 건 자신을 닮아서라고 했다. S의 말에 왜냐고 묻지 않았다. 나 역시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아버린 지 오래다. 나와 닮은 S가 좋았다.
시간만 나면 원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도 S는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물속을 뚫고 길을 만드는 달빛처럼 내 몸에 길을 만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거미의 독침을 맞은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경계심이 없어지다 보니 그의 손길이 스쳐가도 소름이 돋거나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S가 엎드려 있는 내 속옷을 들추고 등을 쓰다듬는다. 입술이 이마로 다가온다. 이마에 닿은 입술은 천천히 눈썹, 코, 입술을 거쳐 목으로 내려온다.
로즈헤어는 진동으로 먹이를 사냥한다. 살아 있는 윔이나 귀뚜라미를 넣어 주면 먹이의 움직임에 따라 서서히 몸을 돌린다. 컴퍼스로 반원을 그리듯이 반 바퀴만 아주 조용히 움직인다. 마지막에 줄부채를 좍 펴듯 몸을 움직여 한 발을 먹이에 걸친다. 그리고 독각에 들어 있는 독침을 놓아 기절시킨 다음 액체를 만들어 서너 시간, 어느 때는 반나절 동안 만찬을 즐긴다.
한 번에 하나씩 아주 천천히 탈피를 하듯 S의 손길이 점점 등을 타고 올라와 브래지어 호크를 풀었다. 먹이를 앞에 두고 서두르지 않는 거미 같은 손놀림이다. 인간은 하루 두세 번 정기적으로 정해 놓고 식사를 한다. 커피, 아이스크림, 비스킷을 쉬지 않고 먹어대는 것과 달리, 로즈헤어는 이삼 일에 한 번씩 아주 오래 천천히 먹는다는 것이 다르다. S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거미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린다. 폴더를 연다. 가슴을 입술로 빨던 S가 잠시 동작을 멈춘다. 집으로 오겠다는 양아버지 문자다. 순간, 내 몸이 불을 만난 듯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S의 뒷머리를 움켜잡는다. 갑자기 달라진 내 태도에 순간 S가 멈칫하더니 맹렬히 다리를 벌리고 몸속으로 들어온다. 독침 맞은 먹이처럼 온몸의 힘이 빠진다.
절정으로 치닫는 S의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의 엉덩이를 감은 다리에 힘을 준다. 거칠게 움직이던 독침이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간다. 엎드려 있는 내 옆으로 누우며 팔베개를 해준다. 나는 반듯하게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본다.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를 S가 확인한다. ‘죽일놈’이라고 뜨는 액정을 보며 누구냐고 묻는다. 아버지. 나는 작게 대답한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철없는 딸의 투정쯤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가 봐야겠어. S의 은신처에서 나와 허둥거리며 원룸으로 향한다.
늦었다고 화가 잔뜩 난 양아버지에게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한다. 양아버지는 내 블라우스를 확 잡아챈다. 찢을 기세다. 밀쳐내고 스스로 벗는다. 양아버지가 독침을 찔러넣는다.
온몸이 독침에 찔려 서서히 액체가 되어 가는 거미의 먹이처럼 무기력해진다. 내 몸 안으로 들어온 독침을 잘라 버리고 싶다. 무기력하게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움직이는 양아버지를 받아들이면서 내 몸이 내 맘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기막히고 슬프다. 양아버지가 헉헉거리며 애원한다. 가만있지 말고 좀 움직여 봐. 나는 끝내 시체처럼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화장대 위에 봉투를 올려놓으며 자상한 아버지 탈을 쓴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거라.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앞으로 얼마간은 자유의 몸이다. 어쩌면 한 달쯤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S와 함께 있는 동안 양아버지 전화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돌변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S는 묻지 않았다. 양아버지 전화를 받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배웅할 생각이 없는 듯 S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신발을 신고 막 문을 여는데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
몸을 돌려 S를 바라보았다.
“이거.”
S가 건네준 건 로즈헤어 한 쌍이었다. 다음 날 S는 커피숍에 나오지 않았다. 나도 그만두었다.
자기 몸을 벗어던진 수컷 옆에 누워 양아버지를 기다린다. 불빛 아래에서인지 수척해진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거미에게 던져진 윔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몸 전체를 돌려 나를 짓누른다. 저항의 몸짓이 거세질수록 그의 손길도 거칠어진다. 엎치락뒤치락 실랑이가 길어진다.
“앗, 따거!”
얼굴을 감싸며 양아버지가 벌떡 일어선다. 로즈헤어 사육장 뚜껑이 열리며 스트레스를 받은 암컷이 순간적으로 뒷다리를 들어 엉덩이 털을 날린 것이다. 양아버지의 얼굴에 털이 박혔다. 며칠 고생은 하겠지만 독에 쏘였다 하여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뭐냐며 사육장에 손을 뻗는 양아버지를 가로막고 책장 뒤로 숨겨놓는다. 뒤에서 내 허리를 낚아챈 양아버지가 책상 위에 내 상체를 엎는다. 저항하지 않고 그의 독침을 받아들인다. 내가 하는 저항이란 게 결국 뒷다리로 엉덩이 털을 긁어내려 털이나 날리는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탈피를 한 놈이 누워서 몸을 말리고 있다. 길고 두꺼워진 다리와 아름다운 색깔의 등갑, 부절된 다리와 땜빵, 스크래치가 깨끗하게 없어진 전혀 새로운 놈이 탄생했다. 탈피를 끝낸 놈을 보면서 내 몸도 이렇게 한 꺼풀 벗겨져 새로운 몸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2. 먹이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에 나는 고아가 되었다. 벤처 사업을 시작해 막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아버지 사업은 끝없이 뻗어 나갈 것 같았다. 외동딸인 내게 아버지의 애정은 각별했다. 엄마의 요구는 거절해도 내가 원하는 것은 한 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는 아빠였다. 친구이자 동업자인 부부와 함께 여름이면 콘도를 빌려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없던 아빠 친구는 나를 자기 딸처럼 귀여워했다.
언제부터인지 아빠는 허둥거렸다. 나와 눈을 맞추며 얘기할 시간도 없어 보였다. 아빠의 사업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곧 돌아올 것이니 문단속 잘하고 있으라며 집을 나섰다. 그게 영원한 이별이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간 곳은 병원 영안실이었다. 교통사고였다.
장례식장은 난장판이었다. 채권자들이 들이닥치고, 경찰도 들락거렸다. 내가 믿을 건 아빠의 동업자뿐이었다. 친척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행여 자신들에게 짐덩이가 될까 봐 외면하는 게 어린 눈에도 훤히 보였다.
“오늘부터 내 딸로 키울 겁니다.”
동업자의 선언이었다. 그제야 친척들은 하나둘 내게 다가와 은혜를 잊으면 사람이 아니다, 네 부모님은 잊어버리고 잘살아라, 내게 한 마디씩을 남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갔다. 장례식을 마치고 아빠의 동업자 집으로 갔다.
“이제부터 너는 내 딸이다.”
그러면서 나를 꼭 안았다. 양어머니가 그만 쉬게 하라며 떼어냈다. 
성공해서 은혜를 갚으리란 다짐은 이런 때 하라고 있는 말처럼 나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하지만 공주에서 하녀로 전락한 건 순간이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는 당연하게 날 부려먹었다. 청소, 설거지, 심부름은 내 몫이었다.
번듯한 책상이 놓인 내 방은 얼마가지 못했다. 짐들이 차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방이 좁다는 이유로 책상이 치워졌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책꽂이만 구석에 붙어 있었다.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몇 번만 오는 출장 도우미로 바뀌었다. 아주머니가 쓰던 천장이 낮고 좁은 방으로 옮겨갔다. 시간이 갈수록 집안일이 많아졌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아니, 쫓겨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집안일을 도왔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는 것도, 집으로 데려오는 것도,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도 내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언제나 혼자였다. 내 처지를 숨기며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공부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첫 등록금만 내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을 마칠 생각이었다.
어깨를 감싸 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아빠의 손길처럼 느껴져 잠시 미소를 지었다. 엎드린 가슴으로 손이 들어왔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양아버지였다.
현지야. 이름을 부르며 내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숨을 내쉴 때마다 술 냄새가 풍겼다. 왜 이러세요? 문 앞에 버티고 선 아버지를 피해 도망갈 길은 없었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구석으로 몸을 피했지만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었다.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덥석 끌어안아 방바닥에 눕혔다. 헐렁한 치마 속으로 들어온 손이 우악스럽게 팬티를 끌어내렸다. 다리를 엑스자로 모아 버텨 봤지만 당할 수 없었다. 양아버지의 머리통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있는 힘껏 어깨를 물었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선 양아버지가 내 뺨을 후려쳤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사람이 맞는가. 친아버지처럼 돌봐 주겠노라 다독이며 눈물을 닦아 주던 사람이 맞는가. 너무 잘해 주지 말라며 양어머니에게 핀잔까지 들었던 사람이 맞는가. 그러고 보니 용돈을 주며 볼을 꼬집거나 엉덩이를 토닥일 때는 언제나 양어머니가 없을 때였다. 
그가 다리 사이로 밀고 들어올 때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두려움으로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여행을 떠난 양어머니를 이토록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양아버지는 그날 밤, 비좁은 내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에도, 오후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 채 양아버지 배 밑에 깔린 기분은 짐승이 된 것처럼 처참했다. 양아버지가 외출을 하고 양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쯤에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하루 만에 몰라보게 핼쑥해진 내 모습을 훑으며 양어머니가 혀를 찼다.
“아버지는?”
“어제 안 들어오셨어요.”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양어머니는 약국에서 약을 지어와 먹이고 죽을 끓여 입에 넣어 주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울지 말라며 눈물을 닦아 줄때는 잠깐 측은한 눈빛도 나타났다. 누군가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나를 대하는 것과 아무도 없을 때 나를 대하는 태도는 같은 사람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달랐다. 책임지지 않아도 될 동업자의 딸을 기르는 숭고한 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수틀리면 가차 없이 따귀도 휘갈기는 사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나를 안아 주던 눈빛이 스쳐갔다. 양어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양아버지는 병원이나 데려가라는 말을 할 뿐 내 방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지만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언제 양아버지와 마주칠지 몰라 가슴 졸이고, 양어머니가 집을 비우고 혼자 있게 될까 봐 조바심을 치며 살았다. 양아버지는 지속적으로 은밀하게 끊임없이 내 몸을 탐했다. 창문에 비치는 그림자에도 깜짝 놀라 깨어났다. 가위눌린 꿈을 꾸다 식은땀에 젖어 일어나면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내 성적만큼이나 양아버지의 사업도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 처박혀 박살이 날지 모를 뿐이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양어머니에게 큰소리를 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양어머니가 집을 나가 버리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내게 떨어졌다. 양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고 용케도 버티었다. 시간이 겹쳐 흘러서 어서 빨리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졸업식에서 꽃다발 하나 받은 것으로 내 인생이 새로 시작될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양아버지와 양어머니가 친척 집 장례식장에 갔다. 양아버지 신경 쓰지 않고 밤을 보낸다는 게 편안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누웠다.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었다. 잠결이지만 대문 여는 소리가 나고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양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포가 확 밀려왔다. 불을 켜려고 스위치를 찾았다. 내 손을 확 잡아챘다.
“아버지! 제발.”
팬티가 발목을 빠져나갔다. 술 냄새 풍기는 숨결이 귓불에서 가슴으로, 배꼽으로 오르내렸다.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가랑이 사이로 끔찍한 것이 밀려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바지 벨트를 매며 양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미칠 것 같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양아버지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어디냐고 묻는 양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린다. 손님 배웅하러 나왔어. 곧 들어갈 거야. 돌아서 나가는 양아버지 등에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며 뒤따라간 것도 잠시 멱살을 잡힌 양아버지가 끌려 들어왔다. 
“수상쩍다, 수상쩍다 생각은 했지만, 아이고, 아이고 기막혀, 내 이럴 줄 알고 쫓아왔지…… 이런 화냥년 같으니라고!”
양어머니는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목이 앞으로 꺾이면서 바닥으로 엎어졌다.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기 시작했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당신 남편을 죽이고 싶어! 죽여 버릴 거야!
“어디서 이게 눈 똑바로 뜨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쫓겨났다. 아무 곳에도 갈 데가 없었다. 친구도, 친척도…….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 양아버지 연락을 받았다며 나를 모텔에 데려다 주었다. 이른 출근길에 양아버지가 모텔에 들어왔다. 그 지경을 당하고도 내 몸을 탐했다.  
양어머니로부터의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양아버지가 만들어 준 은신처는 진정한 은신처가 아니었다. 내가 몸을 숨긴다 해도 그곳은 사육장일 뿐이었다. 로즈헤어에게 코르크 보드를 넣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들 그것은 내가 뻔히 알고 있는 공간이다.
로즈헤어는 바닥에 거미줄을 친다. 눈으로 사냥을 하는 게 아니라 먹이의 움직임에 따라 진동으로 사냥을 하기 때문에 바닥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진동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세팅을 해 준다. 곰팡이나 벌레 등이 잘 생기지 않는 기능성 에코어스를 사용하고 전기방석을 이용해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 준다. 양아버지가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환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들인 침대는 내 몸 위에서 욕망을 발산할 바닥재다. 젖가슴을 움켜잡으며 내 인생을 책임진다는 말을 쏟아낼 때에는 구토가 밀려온다. 먹잇감인 내게 그런 말을 왜 하는가. 거짓에 불과하다. 노동을 해서 스스로 내 생을 책임질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그가 만들어 준 은신처에 몸을 숨기며 가끔씩 물어오는 먹이를 받으며 다리를 벌린다. 로즈헤어는 탈출할 수 없다. 나 또한 양아버지 앞으로 계약된 원룸의 보증금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돈 없이는 나만의 서식지를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매일매일 터득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3. 교미

식각에 정자를 모은 수컷이 사육장 안에 정자망을 치기 시작한다. 바닥에도 벽에도 하얗게 쳐놓았다. 발정이 난 것이다. 수컷을 꺼내어 암컷의 사육장에 넣어 준다. 수컷을 처음 만난 암컷이 공격 자세를 취한다. 암컷의 공격을 잘 막아내야 살 수 있다.
독니를 자신의 갈고리로 고정시킨 수컷은 다른 다리로 암컷을 잡는다. 들어 올린 암컷의 생식기를 자신의 더듬이 다리로 두들기다 더듬이 다리에 있는 생식기를 한쪽씩 번갈아가며 암컷의 생식기에 몇 차례 끼워 넣는다. 짧게는 몇 초에서 길게는 5분도 걸리는 교미행위다. 교미가 끝나면 수컷은 잽싸게 뒤로 도망치려고 할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수컷을 죽이는 길을 나는 알고 있다. 탈피가 끝나 몸을 말리고 있는 수컷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수컷을 그냥 죽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먹이를 주지 않아 암컷은 굶주려 있다. 교미가 끝난 암컷이 수컷을 잡아챈다. 독침을 놓아 액체로 만들어 서서히 먹어치운다. 암컷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수컷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액체가 되어 가는 수컷이, 몸 전체로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침대 끝에 앉아 있는 내 가슴에 양아버지가 얼굴을 묻는다. 내가 양아버지를 감싸 안는 모습이 된다. 암컷을 들어 올려 수컷이 정자를 집어넣는 모양새다. 이대로 그의 몸을 녹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솟아오른다.
양아버지가 방문할 때쯤이면 잠을 잘 수가 없다. 피자가게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여전히 잠을 자지 못한다. 손님이 빙빙 돌아 보일 정도로 어지러울 때도 있다. 실수가 잦았다.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특별한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취업이 되어도 몇 개월 버티지 못할 알바가 대부분이거나…… 물론 처음에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부터는 늦게 자더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요. 낮잠도 자지 않아요. 그런 데도 밤이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처방은 해 주겠는데, 약에 너무 의존하지 마세요.”
나는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구입했다. 약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 때문인지 약을 먹지 않아도 조금씩 잠을 잤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십 대인 사장은 손님 옷에 음료수를 쏟는 실수를 해도, 손님의 요구를 제때 들어 주지 않아 클레임에 걸려도 못 본 척 눈감아 주었다. 실수를 저지른 다음에는 실수에 대한 책망이 아닌 웃음으로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술 더 뜨는 제안을 해 왔다.
“계약직으로 해 줄게. 2년만 더 있어.”
갈 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2년 동안 해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잠시 안도가 되면서 통장의 잔고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계약서를 쓰는 날 사장은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저녁은 때워야 했다. 사장의 차를 탔다.  
“넌 말이다. 꼭 소복 입은 청상과부 같아.”
운전대를 잡지 않은 한 손으로 어깨에 손을 얹었다. 화들짝 놀라 벌레를 털어내듯 부르르 떨었다.
“가만히 있어. 내가 결혼만 일찍 했으면 너만 한 딸이 있다. 아빠 같은 사람인데.”
아빠 같은 사람이란 말에 나는 속이 뒤집히고 말았다. 점심때 먹은 것들이 모조리 올라왔다. 사장이 황급히 차를 세웠다. 창자까지 넘어오는지 속이 뒤틀렸다. 생수로 입 안을 헹구고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콤플렉스 있니?”
“…….”
“음, 그렇구나. 앞으로 내가 더 잘해 줄게 걱정 마.”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4. 재생

로즈헤어는 탈피를 통해 성장을 하기도 하지만 탈피를 통해 상처 난 몸을 재생하기도 한다. 교미를 마치고 수컷을 먹어치운 암컷이 탈피에 들어갔다. 먹이를 넣어 주어도 다가가지 않는다. 일주일쯤 지나면 상처 난 더듬이와 독각은 온전하게 재생될 것이다.
스스로 재생하는 로즈헤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내 안에서도 커져 갔다. 탈피를 한 뒤에는 물만 주고, 몸이 마를 때까지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 탈피를 끝낸 상태에서 몸이 마르기 전 말랑말랑할 때는 귀뚜라미에게도 잡혀 먹힐 수 있다고 S는 주의를 주었다.
저녁 9시에 방문한다는 양아버지 연락을 받았다. 저녁을 함께 먹자는 사장의 문자도 들어왔다. 양아버지에게는 알았다는 답장을 보내고, 사장에게도 저녁을 먹자는 문자를 남겼다. 임신 중인 아내가 있는 사장은 부랴부랴 약속을 잡았다. 와인까지 곁들인 저녁을 사 준 사장은 자리를 옮기자며 일어섰다. 다리가 휘청했다. 계단에 쭈그려 앉았다.
“집엘 좀 데려다 줘요.”
“집이 어디지?”
사장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죽 가다가 좌회전이요, 24시 마트 지나서 우회전이요, 네, 저기 가로등에서 다시 우회전이요. 저기 골목 끝으로 가 주세요.
시간은 정확히 8시 50분이다. 양아버지 도착시간 10분 전, 가슴이 답답해요. 한적한 가로등을 약간 비켜서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사장이 날 부축하며 담벼락에 세웠다. 입을 약간 벌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사장의 입술이 다가왔다.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입술을 받아들였다. 골목길에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오는 순간, 그를 세게 밀쳐냈다. 토할 것 같다는 내 말에 약을 사 오겠다며 쏜살같이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원룸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향해 양아버지가 따귀를 갈겼다.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놈 누구야?”
“싫다는데 자꾸만 쫓아다니는 스토커예요.”
양복 윗도리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웃을 훌렁훌렁 벗어던진 양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왔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양아버지 몸 위로 내가 스스로 올라갔다. 송장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준 적이 없는 나였으니 양아버지가 받은 감동은 대단했다. 그의 몸 위에 올라타고 앉아 영화에서 본 여배우처럼 몸을 뒤로 젖히고 가슴을 내밀었다. 손을 뻗어 젖가슴을 주무르는 손놀림에 맞추어 소리도 질렀다.
땀을 흘리며 양아버지 옆에 엎드렸다.
“이렇게 좋은 걸…… 분명 스토커라고 했지?”
“이사 가고 싶어요. 그 남자 또 올 거예요.”
“처신을 똑바로 하고 다녀야지.”
한 달에 한두 번 오던 양아버지는 사흘이 멀다 하고 집에 들러 무리한 요구를 했다. 단단해진 물건을 억지로 입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장은 수시로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 양아버지가 올 시간에 맞추어 가로등 밑으로 불러냈다. 늦은 시간이었다. 담벼락에 기대 선 내게 황급히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밀착되어 오는 사장의 몸을 밀어내지 않고 그의 차 안으로 유인했다. 앞좌석을 뒤로 밀고 내가 먼저 누웠다. 사장은 허겁지겁 지퍼를 내리고 내 안으로 들어왔다. 자동차 불빛이 서서히 비치더니 차가 멈추었다. 양아버지가 차에서 내렸다.
“현지야.”
사장이 황급히 내게서 몸을 떼어냈다. 떳떳하게 나서지 못할 처지인 사장은 잽싸게 도망을 쳤다.
앞장서서 걷는 양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따귀를 갈기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단단해진 물건을 입속에 넣었다. 내 머리통을 붙잡고 울부짖던 양아버지 입에서 내가 원하는 말이 떨어졌다.
낼 계약금 가져올 테니 방 알아봐라.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전봇대에 붙여 놓은 전단지를 보고 집을 구했다. 내 이름으로 계약서를 쓰고 한 달 뒤로 이삿날을 잡았다. 애가 닳은 사장은 날마다 문자질을 해댔다.
“거미만도 못한 놈.”   
이 문자를 끝으로 나는 해고되었다. 어차피 그만둘 생각이었다. 양아버지는 전셋집을 알아봤다는 내 말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사를 가면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들랑거렸다.
“어디로 구했니?”
“설명하기 곤란해요. 오실 때 전화 주세요.”
“알았다.”
“잔금은…….”
“걱정할 것 없다.”
내 앞으로 된 통장과 도장을 건네주었다. 나는 혀를 한번 쏙 내밀고 양아버지 입술을 쪽 빨았다. 그 앞에서 하나씩 옷을 벗었다.
한 번만 같이 샤워를 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한다. 거품이 묻은 손바닥으로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거품을 걷어내더니 바닥에 눕히려 덤벼들었다. 잠깐만요, 물 좀 마시고…….
그래, 내 것도 한 컵 가져오너라.
시원하게 물을 다 마신 그가 내 앞에 꿇어앉아 허벅지 사이를 핥는다. 
암컷은 머리 사이에 생식기가 있다. 수컷은 암컷을 들어 올려 교미를 해야 한다. 수컷의 다리에는 갈고리가 있어 암컷의 등허리를 잡고 암컷에게 물려죽지 않기 위해선 이빨을 잡아야 한다. 암컷의 식각에 정자를 넣는 시간은 십 초에 불과하다. 암컷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뒤돌아보는 순간에 죽는다는 걸 알아차린다.
갑자기 왜 이리 졸리지?  
그를 내려다보며 웃어준다. 한낱 미물인 거미인 수컷도 교미를 마치고 돌아선 순간, 암컷으로부터 잡아먹힌다는 사실을 아는데 양아버지는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내 몸에서 미끄러진 머리통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머리가 부딪치며 상처가 났는지 피가 흐른다. 양아버지가 매고 왔던 넥타이로 손을 묶는다. 준비한 전선줄로 다리도 묶는다. 묶는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수면제를 몇 알쯤 먹어야 죽지 않고 깨어날 것인지 내 몸을 통해 연습하여 얻어낸 결과란 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침대로 돌아가 단잠을 잤다. 욕실 문을 열었다.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양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너……무슨 짓을…….
입에 테이프를 붙여 버린다.
상처를 낼 생각은 없었는데 피가 흐르네요.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겠군요. 당신 운명이죠. 나도 내가 이런 운명을 타고났는지 몰랐어요.
로즈헤어가 먹지 않고, 스스로 몸을 벗어던지는 탈피 과정은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지요. 하지만 탈피를 하고 나면 아주 새로운 몸이 돼요. 죽지 않고 살아날 확률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혹시 살아난다면 새사람으로 태어나세요. 재생을 위한 탈피는 항상 고통스럽거든요.
전선줄에 묶인 양아버지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다. 내가 다리를 벌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전선줄을 약간 느슨하게 풀어준다.
다리 좀 벌려 보세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다리를 벌린다. 그 사이에 손을 넣어 말랑말랑한 것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아버지, 참 이상하지요? 제 몸도 그랬어요. 치욕스럽고, 혐오스럽고,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데 내 몸이 열리는 거예요. 정말 죽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몸도 내 손길에 순응하는군요. 단단해지네요.
입속으로 서서히 빨아들인다. 이빨로 뿌리를 잡고 물어뜯는다. 테이프가 붙은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암컷에게 잡아먹히던 수컷의 몸에서 나는 비명처럼 아버지 몸이 흔들린다.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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