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장>에 바란다

 

  [새 문장에 바란다]

 

 

새 〈문장〉에 바란다

 

이낭희(국어교사)

 

 

 

 

 

   2005년 봄! 아직은 웹 기반으로는 ‘문학을 통한 자유로운 소통이 부재했던 그 시절’. 〈문장〉이라는 웹 기반 문학광장이 이제 막 세상에 고개를 내밀려고 꿈틀거리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문학 공간의 밑그림을 나누기 위해 현장의 문학 선생님으로 혜화동 대학로 복판에 자리 잡은 문예진흥원 건물의 작은 워크숍에 참여했었지요. 어느새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개인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 그들이 좋고 그들만이 지닌 풋풋한 감수성이 좋아서 그들과 함께 쉼 없이 울고 웃으면서 문학 선생님으로 살아오면서 어느덧 23년! 문학 선생님으로 오롯이 길을 걷다 보니, 저 스스로 교사로서 ‘문학 사랑’이 깊고 넓어졌고 문학작품에 말 걸기, 문학을 통한 제자들의 삶에 말 걸기가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편의 시는 사람이고 삶이다’라는 저의 문학 교육에 대한 철학이 새하얀 눈처럼 저의 가슴에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눈과 가슴에도 고요하게 깊게 스며들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열 시가 되면 학교에 오십니다.

   우리 차는 아니지만 회사 1톤 트럭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했는데

   교통 어중간하고 밤길 험하다며

   말하지 않아도 도착해 있습니다.

 

   오늘은 열 시가 되어도

   트럭이 없습니다.

 

   휴대폰으로 연락했더니

   아버지는 교문 옆에서

   떨리는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한잔했습니다.

   오직 자식 둘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독한 술을 한잔했습니다.

 

   누구와 마셨나 했더니

   “마음이 괴로워 혼자 뭇다.”

   아버지 눈은 구슬피 달빛을 흘립니다.

 

─ 「아버지가 흔들립니다」 고3 학생작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삶의 향기

  

   습작시 「아버지가 흔들립니다」를 보았습니다.

   님이 흘리고 간 발자국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어떻게 저만의 것일 수 있을까요. 1톤 트럭 회사차를 교문 앞에 세우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오늘은 맨몸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도 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는 님의 눈에도 구슬 같은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흔들리는 아버지가 외롭지 않으신 것은, 아버지를 위해 어깨 내어드릴 수 있는 님의 따뜻한 가슴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 아버지와 님이 만들어 가는 삶의 향기가 눈물겹습니다. 너무도 진실한 고백! 오랜만에 흘려 보았군요. 눈물을.

 

─ 『 살아있다면 리플』(이낭희 엮음) 중에서

 

 

   오랫동안 학생들과 문학을 통한 감상과 창작수업을 열어 가면서 청소년기에 만나는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이 성장을 자극하고 구원하고 치유하는 무한의 힘을 가졌다는 진실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지요. 실제로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공통적으로 체감하는 것이지만 해마다 한 학급 내에서도 학생들이 지닌 성장 속도가 점점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지요. 중학교 과정에서조차 고등학생의 성숙도를 보이는 학생과 초등학생 수준의 성숙도를 노출시키는 학생이 공존하니까요. 기성세대가 지닌 경제적인 소외, 문화적인 소외로부터 파생되는 가치의 대립이나 문제 상황이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요즘 청소년들은 과거의 청소년들보다 복잡하고 억눌린 감정의 공황상태가 많아졌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하는 대목입니다. 물질적인 격차가 가시적인 것이라면 정신적인 성장 격차는 감추어진 채로 잠복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감추어져 있으나 한 사람의 영혼의 뿌리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이 시대 ‘문학 교육’, ‘문학광장’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삶의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교실 밖의 가치충돌과 격차가 교실 속으로 그대로 이동하면서 학생들이 지닌 내적인 욕구와 좌절로 인한 갈등을 유연하게 이끌어 주는 지향점으로서 문학 교육의 전략을 연계하는 것은 효과적인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창의인재의 저변을 움직이는 핵심인 ‘감성’은 마음을 움직이는 문학 교육의 실천적인 확장과 공유로서 개방과 변화를 요구하는 중심에 있습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감성 교육, 문화예술 교육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고, 실제 단위 학교 내, 학교와 학교 간 교육과정을 통해 시대적인 요구와 맞물려 변화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교육 변인은 교실 속 문학 교육과 교실 밖 문학적인 인프라가 어떻게 접점을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타를 모색하는 데 매우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저는 현장의 문학 교육과 사회의 문학적인 인프라를 연계하면서 한 사람의 성장을 돕는 접점에서 〈문장〉 개편 방향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장〉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더 많은 청소년이 좀 더 입체적이고 개방적인‘문학적 소통 공간’으로 〈문장〉을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능동적인 개편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더불어 학교 현장의 문학 교육과 접합성을 모색하는 기획은 〈문장〉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략이 될 것입니다.

 

   교실 속 문학 교육, 단위 학교의 문학 교육을 연계하는 교실 밖 체험적인 문학 교육의 개방적인 소통 공간으로 확장시켜 갈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기존의 〈문장〉이 가진 작가인력풀을 최대한 개방적으로 활용하여 문학 멘토에게 자유롭게 연결해서 화상으로 만날 수 있고, 더불어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온─오프라인 모임으로 상설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방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어떨까요.

   운영사례를 나누어 볼까요. 다음은 제가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을 위한 본격 문학감상창작교육 사이트(www.nanghee.com)입니다.

 

   감상 교육과 창작 교육을 연계하여 운영하다 보니, 전국 단위의 많은 학생의 습작품이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청소년들의 감성이 녹아든 시편들이 적극적으로 공유되었습니다. 한 해 한 해 더하면서 나눈 창작의 열매는 학생들의 시와 학생들의 시에 제가 띄운 감성 편지로 엮은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되었답니다.

 

   시가 좋아서 만난 학생들이 시집 출간을 계기로 온라인에 문학 소통, 문화 소통 커뮤니티 ‘살리 커뮤니티’를 결성하였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매개로 살리 그룹만의 공간인 밴드를 구축하고 회원 간 SNS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답니다. SNS 기반으로 문학나눔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발적인 문학행사로 ‘살리 문학의 밤’을 마련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습작시를 발표하고 나누는 문학 이벤트를 나누게 했습니다.

 

   개방적인 문학 커뮤니티 개설과 연계해서 커뮤니티별 습작 합평으로 연계될 수도 있겠지요. 자유로운 문학 소그룹이 개방적으로 오프라인 문학캠프를 통해 다시 확장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다음으로, 사이버문학이 가질 수 있는 일방적인 전달 방식에서 체험적인 문학 공간으로 입체적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학생들 스스로 문학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식이 온─오프라인 연계를 통해 작품을 창작하고 재구성해서 무대에 올리고, 역할극 형태의 공연으로 발표의 장이 마련되는 문학체험, 문학이벤트 행사를 상설 공연으로 열릴 수 있도록 입체적인 기획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매체를 활용한 문학적 체험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문학방송을 개방적으로 확장하고 다양한 층위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기대합니다.

 

   참여하는 수요자가 직접 제작하고 참여하는 문학방송으로 재편하는 노력은 소통 방식을 다양화하고, 〈문장〉이 살아 있는 사이트로서 좀 더 실제적인 역할과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덧붙여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독서읽기 전략을 기존에 제공하고 있는 문학작품 콘텐츠에 보강하여 다양한 층위를 두어 제공하고, 작품의 매체 변용에 참여할 수 있는 지속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면 콘텐츠의 질적·양적 보강이 이루어질 것이며 현장에서 콘텐츠에 대한 교육적인 활용도도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을 돌아보고 확장하는 메타적 글쓰기의 공간이 풍성하게 제공되기를 바랍니다.

 

   현장교사로서 제가 시도한 창작 교육은 이른바 감수성 교육이었습니다. 논리적인 언어에 익숙해진 학생들의 언어와 가슴을 어루만지는 감성·감수성 교육을 극대화시킨 것이지요. 내면적인 감성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배설을 유도하고, 지지하고, 격려하고, 그 속에서 언어적인 훈련을 병행하는 창작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범적으로 열어 본 것입니다. 문학적 의사소통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강화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얻어낸 답이 ‘사물과 소통하기’, ‘삶과 소통하기’였습니다. 지금 눈앞에 동행하는 너를 새롭게 만나는 눈과 가슴이 있는 한 시도, 시의 그림자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학생의 삶도 향기로워질 테니까요. 눈앞에 만나는 그 모든 것을 향한 소박한 사랑과 애정으로부터 창작의 힘은 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뜰을 지키는 지킴이로 학생들 스스로 시 창작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고 강화하는 문학적 감성 교육과 감수성 교육을 열어 가면서 학생들 스스로 글을 쓰면서 보다 진실한 나를 발견하게 되고, 가슴 속 닫힌 골방에서 곪아 가던, 채 피어나지 못한 씨앗들이 시의 길을 따라 흘러나와 볕 쨍쨍 받으며 더 건강하고 단단한 씨앗으로 여물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메타적 글쓰기 공간이 과감하게 개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문장〉을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더불어 청소년들의 메타적 글쓰기는 청소년 자신의 성장을 지원하면서 어른들에게도 세대 간 정서의 간극을 부드럽게 넘나들면서 성숙하게 공유하는 효과가 매우 크지요. 다음은 제가 글로 대화를 나눈 장면입니다

 

 

   내 생애 한가운데서/ 고2 학생작

 

   나는 불행했다.

   철없던 어린 시절, 어머니와 우리 오남매는 아버지라는 기둥을 잃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병치레가 잦은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특별한 재주라곤 없다. 이 세상에 아버지가 없다는 서럽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쯤, 갑작스럽게 집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나에게 불리한 세상임이 분명했다. 우리 가족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누나가 여섯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처지가 됐다. 가면 갈수록 가중되는 생활의 압력으로 나는 내 짧은 인생 한가운데 주저앉고 싶었다.

   내 인생의 길에는 언제나 큰 돌이 더러 놓여 있었다. 아무리 피해 가려 해도 그 돌은 번번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걸림돌이었다. 나는 그 돌에 걸려 넘어져서 화내며 울곤 했다. 나는 계속 울며, 화내며 그렇게 걸었다.

   며칠 전, 높고 청아한 하늘이 매력적인 가을의 길거리를 산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 길이 내가 평소 다니던 그 길이던가.’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은 탓인지 그처럼 새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한참 걷다가 작은 놀이터에 이르렀다. 눈이 편안해졌다. 어렸을 때 즐겨 타던 그네, 시소, 미끄럼틀. 이러한 것들이 나를 반겼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놀이터 안으로 들어와서 그 익숙한 풍경들을 즐기고 있었고, 따라서 내 발밑에 무언가 놓여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다. 내 발에 걸리는 무언가는 나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게 하여 나를 당황스럽게 하였고, 결국 나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또 그놈의 돌이었다. 아이들 노는 곳에 이런 걸림돌이 왜 한가운데 놓여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무의식중에 발을 돌 위로 올렸다. 순간 내 머리는 둔기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 버렸다. 돌 머리에 발이 걸렸을 때 내가 ‘걸림돌’이라 불렸던 돌이, 내 짧은 발 동작 하나에 ‘디딤돌’이 되어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나다. 나를 전환시키는 일이 중요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 돌은 내 길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지만, 무엇이라 부를지는 내 몫이었던 것이다. 나는 양쪽 부모를 모두 잃은 사람이 보기에는 행복한 사람이었고, 사지 중 한 곳이라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약하지만 흠 없는 신체를 가진 행복한 사람이었으며, 혈혈단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사람에게는 화목한 나의 가족이 행복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큰 충격이었다. 이젠 디딤돌이라고 부를 그 돌에 화내지도, 울지도 않겠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돌아 나올 때 문득 매혹적인 하늘에 눈을 돌렸다. 유난히도 높고 파래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18세 제자가 들려준 풋풋한 삶의 이야기

  

   제자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추석 연휴로 몸도 마음도 지친 터라, 무어라 잡히지 않는 삶을 생각하며 조금은 무겁게 시작한 오늘입니다. 수줍게 놓고 간 제자의 글을 따라가다가, 참 많이 힘들었을 날들을 이렇게 풋풋하게 품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눈물겹게 아름다워 보여,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저의 삶 속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나누는 소리 없는 눈맞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교무실 창 너머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조차 향기로워진 10월의 첫날. 삶이란 홀로 묵묵히 꽃을 피우고 지는 일을 소리 없이 침묵하며 해내는 것이라며 제자가 들고 온 가을 국화꽃 한 송이를 가슴에 저 또한 품어 보렵니다.

(www..nanghee.com)

 

   새해, 새날, 첫 마음으로 시작한 2012년이 어느덧 세밑으로 저물어 갑니다. 우리들의 교실에서, 삶의 둥지에서 ‘문학’이 생의 한가운데서 행여 어두운 밤바다를 만날지라도 자기만의 향기와 빛깔을 곱게 품고‘삶의 길 찾기’를 할 수 있도록 때때로 따뜻하게 손잡아 주고, 더 자유롭고 더 풍성한 길 위의 멋진 동행을 할 것을 믿습니다. 더불어 문학교실 문학 선생님들의 문학 사랑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우리 학생들이 저마다 따뜻한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 곁에서 이제 새롭게 개편하는 〈문장〉이 교실의 문학수업과 교실 밖 문학의 숲을 더 풍성한 울타리로 엮어 주는 가교가 되어서 풍성한 문학적 소통을 열어 가는 공간, 감성의 힘을 확장하고 공유하는 영혼의 숲으로 우뚝 서서 아름답고 멋진 동행을 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 송구영신!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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