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아니라 삶

 

   [새 문장에 바란다]

 

 

전쟁이 아니라 삶

 

이강진

(문학평론가)

 

 

 

 

 

   문예지란 기실 다양한 텍스트들이 난무하면 그만인 자리다. 다만 그것이 어떠한 기획 아래 의도될 때 텍스트는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굴절된 창을 통해 재현된다. 모든 문예지들은 시와 소설 외에도 비평과 기획물·연재물을 싣는다. 텍스트 이외의 이러한 개입들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이들은 불편해할지도 모르겠으나, 알고 보면 게재되는 작품의 선정이 이미 편집된 손길을 의미하므로 때늦은 고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왕 불가피하게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라면 좀 더 유의미하게 하고자 애쓰는 것이 옳다. 이 긍정적인 취지와 의도가 선용되어 온 것이 지금의 문예지들이다. 좋은 소통들이 많았고, 그러한 선례들은 창작자나 비평가 그리고 독자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여느 문예지든지 이미 그들만의 충분한 성찰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믿음은 어느 정도 자명하다. 무엇을 바란다고 구체적으로 지목할 것이 세세한 구성에서는 없을 수밖에. 그렇다고 귀한 자리를 아깝게 놓아버릴 수도 없는 일이므로, 그동안 우리가 지나온 길을 한번 되짚어 보는 기회로 삼음이 어떨까 싶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온갖 문예지를 유령처럼 떠도는 풍문이 있었다. 이 풍문은 근래에 다른 양식으로 치환되어 다시금 변주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유언비어가 아니며, 처음 풍문을 읊은 자 또한 아름다운 뜻에서 시작하였으나, 오히려 세인들의 입을 건너면서 그 사이의 허공에서 더럽혀진 바 있다. 비유하건대 그 형국이란 이러하다. 한 차례 큰 전쟁이 있었고, 살아남은 용사들은 당대의 사가들에 의해 전쟁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실제로는 아무도 그 전장의 실체를 마주한 바 없으나, 어쨌든 용사들은 전쟁을 치러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사가들은 전장을 목격하였다. 영웅들은 전쟁터 둘레의 비옥한 땅을 봉토 삼아 귀족이 되었고, 사가들은 그 전쟁을 눈으로 겪고 살아왔으므로 삶의 권위를 얻어 현자가 되었다. 십여 년 후, 폐허가 된 자리에서 다시 원인 모를 전쟁이 일어났다.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전쟁의 실체를 모르지만, 사가들은 기록에 착수했으며, 나라에는 동원령이 내려졌다. 다만 이번에는 참전한 이들이 이전의 용사가 아니라 소년병들이다. 그리고 적은, 어찌 된 일인지 없다. 소년병들은 적을 죽이지 못하면서 창칼을 휘두르느라 팔이 아프다.

   현자가 된 사가들은 말한다. 보라, 저들은 적을 잘 죽이지 못한다.

   귀족이 된 용사들은 말한다. 적을 제대로 죽이지 못한다면 승리할 수 없단다.

   소년병들은 아직 봉토를 가진 귀족이나 권위 있는 현자가 되지 못했다. 아직 승리하지도 못했다. 실제로는 적을 만나지도 못했다. 소년병들은 적을 죽이지 못해 괴롭다. 적을 죽이라는 주변의 아우성들 때문에.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가. 죄는 현자가 된 사가들도, 귀족이 된 영웅들도, 물론 가여운 소년병들의 것도 아니다. 죄는 ‘소년’들에게 갑옷을 입히고는, 한 명의 적도 없는 폐허로 내모는 상황 그 자체의 것이다. 아니다, 죄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눈앞에 펼쳐진 전장이 실제로는 텅 비어 있음을 외면해 온 죄. 빈 허공에 휘두른 칼날은 결국 자기를 향해 날아들게 마련이다. 구현된 바 없는 저 기이한 공론장에서 전쟁이 되풀이되는 이 상황은 참극이며, 우리는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이제 막 첫발을 떼려는 새 〈문장〉에 이런 음울한 우화를 소개하기란 퍽 기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문예지는 텍스트를 담는 그릇 혹은 텍스트를 보는 시야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를 담/보는 그릇/시야는 텍스트와 창작자를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호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명명은 텍스트와 창작자를 시선 안에 가두어버리지만, 호명은 텍스트와 창작자를 발견한다. 자폐하고자 웅크린 텍스트와 창작자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이다. 바라건대, 새롭게 거듭날 〈문장〉이 이러한 저변을 앞장서서 실천해 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애초에 전쟁이란 삶을 위한 불가피한 형식에 불과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전쟁이 아닌 삶이 필요하다.

 

   《문장웹진 12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