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토스 이후, 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고봉준의 젊은 작가 인터뷰

 

 

파토스 이후, 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 하재연 시인 인터뷰

 

고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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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나는 감정의 격한 파동들이 시(詩)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그 시절 ‘시’는 고백이었고, 상처의 전언이었다. 고백할 수 있는 내면세계와 타인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처가 없다면 시인은 자신에게 고통을 가해서라도 그런 극단적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고통 때문에 시인들이 조로(早老)하고 단명(短命)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이유에서 불행한 시대, 그 시대의 정중앙을 관통한 시인들만이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시절, 시를 쓰려 했던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 없음과 상처 없음을 탓하면서 지독한 염오의 감정을 품었고, 그 독설의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폭발하기도 했다. 90년대를 지나오면서 그러한 정념과 파토스는 한층 낮은 곳으로 이동했다. 마치 비를 뿌린 구름들이 흔적 없이 흩어지거나 낮은 곳으로 몰려가듯이. 90년대의 시가 행복했다는 말이 아니다. 폭발조차 할 수 없었던 – 그때 폭발한다는 것은 촌스럽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었다 – 그 시절은 한층 끔찍했다. 분명한 것은 90년대를 지나오면서 ‘시’에 대한 표상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문예지와 시집을 통해서 목격되던 90년대적인 시 또한 느리지 않은 변화의 속도를 보였다. 시(詩)가 영원불변하는 동일성의 본질을 지닌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시(詩)’라는 이름을 공유하면서도 매 시대마다 다른 흐름을 보이면서 ‘진화’한다. 이른바 한 시대의 주류적 흐름 – ‘주류’라는 말이 거북하면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써도 좋다 – 은 존재한다. 그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시’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좋음/나쁨의 구별이나 개별적인 문학적 취향과는 별개로, 커다란 흐름과 그것의 문턱/경계를 통해서 연속/단절되는 흐름은 있다. 시에서 ‘90년대적’이라거나 ‘2000년대적’이라는 관습적 표현은 통상 이 문턱/경계를 기점으로 분기되는 어떤 경향에 대한 통칭이다.

   그렇다면 시에서의 ‘2000년대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까?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자신할 수 없지만, 나는 2000년대 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감정’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귀족주의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귀족주의’라는 말의 어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파토스’에 기대지 않는 시나 ‘감각’의 시라고 불러도 좋겠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시대의 많은 시들이 ‘감정’의 폭발이나 파동 대신 다른 언어들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파토스 없는 시대의 시’라고 불러 보면 어떨까? 이렇게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 몇몇 시인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간다. 확실히 2000년대 시는 ‘감정’의 표백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 시적인 것을 성취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런 특징은 몇몇 시인들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확인되며, 예외가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주류적 흐름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두 권의 시집(『라디오 데이즈』(2006),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2012))으로 이미 자신의 문학적 포지션을 획득한 하재연 시인의 경우도 이 흐름에 속한다. 봄기운이 한창인 어느 평일 오후, 혜화동에 위치한 ‘예술가의 집’에서 하재연 시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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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봉준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도의 질문지를 만들었지만, 막상 시인을 대면하니까 즉흥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혹시 영화 〈시〉 보셨나요?

 

   하재연 : 네. (웃음)

 

   고봉준 : 어떻던가요? (웃음)

 

   하재연 : 생각보다는 재밌게 봤어요.

 

   고봉준 :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이 영화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할 듯한데, 하재연 시인의 시는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시’와 많이 다르잖아요? 혹시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보여주는 ‘시’가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하재연 : 저는 그 〈시〉라는 영화에서 전달되는 부면들은, 그러니까 표면에 떠오르는 시에 대한 이미지들은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이미지가 강하다고 느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에 대한 상투성과 관례들을 보여주면서 그것과 상대편에 있는 시의 속성을 반대 방향에서 보여준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 시가 기존의 어떤 관습적인 시적 상투성과 혹시라도 다르다면, 아마 정서나 감정의 동일화(?), 그런 부분들을 많이 배제한 듯하게 느껴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 같은데……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는 열등감이 좀 있었거든요. 90년대에 스무 살 이후를 지나면서 읽은 시들은, 물론 기형도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감동적으로 읽은 시들은 이성복, 최승자, 황지우 등이었고, 그러다 보니 최승자 시인과 같은 뜨거운 감정이라든가 격렬한 상처 같은 것들이 내게 있을까, 그런 게 없는데도 시를 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문학적 멘털리티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있었고, 그것이 내게 충만해 있는가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던 것 같고요. 아마 그런 것이 흔히 생각하는 문학적인 관습이나 시적인 이미지에 대한 저 나름의 선입견이었겠군요.


   고봉준 :
처음에 쓴 시, 기억하세요?

 

   하재연 : 네.

 

   고봉준 : 언제, 어떤 계기였나요?

 

   하재연 : 어렸을 때 부끄럼을 좀 잘 탔다고 해야 할까? 감정의 동요(?) 같은 게 얼굴에 쉽게 드러나는 편이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쉽지가 않았어요. 지금도 비슷하고요. 이야기를 하고 나도 뭔가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내 안에 남아 있는 거 같아서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는데, 혼자서 책을 읽으면 작가들이 만들어낸 문장이 굉장히 분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쓰인 문장들로 그 사람이라는 하나의 개성을 판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러워서 그런 지점을 동경했던 것 같아요. 특히 고등학교를 다닐 때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에, 나의 외부, 내 밖에서 나를 짓누른다고 생각했던 ‘당신들’이 있다면, 그 당신들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을 글로 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땐 복수심 같은 걸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하지 못한 말을 글로 써서 표현하겠다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나 해야 했던 말을 잘 못했던 것을 보면 오히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나 자신들을 잘 풀어내지 못해서 오히려 못 쓴 거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나 자신을 풀어헤치는 느낌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의 형식들 중에서 가장 먼저 내 몸에 맞게 튀어나온 형식이 ‘시’였던 것 같고, 아직까지도 ‘시’라는 형식이 ‘나’라는 사람과 ‘내’가 살아가는 삶을 표현해 내는 데 최대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봉준 :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지만, 시인들이 시를 쓸 때 가장 중시하는 어떤 것이 있잖아요? 가령 ‘주제’일 수도 있고, ‘기법’일 수도, ‘가치’일 수도, 어떻게 부르든 중시하는 어떤 것이 있을 텐데, 독자들이 하재연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하재연 : (질문지에 적혀 있는 질문 중에) 이게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웃음)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하니까 최근의 제 느낌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시를 쓸 때 제가 만들어내고 싶은 것은 그 언어들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필연적인 지점이거든요. 한 편의 시를 썼을 때 내가 만들어낸 언어의 짜임이라는 게 있다면 그 짜임이 아마 과거의 짜임들과 비슷하고, 또 앞으로 올 짜임들과 겹칠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겹치지 않는, 그것이 쓰임으로써만 생겨난 일종의 공간일 수도 있겠고, 흐름 같은 것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시를 통해 전달하고 재현된 메시지가 있겠죠. 그런데 메시지란 것은 공간이나 흐름의 일부일 뿐이고요. 언어들이 세계를 어느 정도는 재현을 하지만, 그리고 세계가 그 언어 속에 깃들긴 하지만, 시에 쓰인 언어들은 세계를 재현하는 언어들 중에 무언가를 생략하거나 소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니면 반대로 세계를 구성하는 언어들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소거되거나 넘어서는 지점으로 인해서 생기는 미묘함, 그러니까 메시지나 전언을 제거하고서도 남는, 혹은 논리로 설명할 순 있는데 환원은 안 되는, 그런 좀 혼란스럽고 복잡한 ‘나’(?). 그러니까 움직이는 ‘나’나 세계에 대한 포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포착은 어떤 면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포착이니까요. 그래서 그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랄까, 좌절감을 잊지 않는 마음도 중요한 것 같아요.


   고봉준 :
어릴 때부터 시에 관심이 있었다면, 왜 그게 ‘시’였을까? 그리고 ‘시’가 중요했다면, 왜 문예창작과에 가지 않고 국문학과에 진학하셨어요? 등단 무렵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하재연 : 아까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처음에 반드시 ‘시’였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국문학과에 진학한 것은 어쨌든 글쓰기의 영역을 제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는데, 그것이 반드시 ‘시’라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 혹은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의지 같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표현의 욕망과 글쓰기로서만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매혹이 국문학과에 가게 만들었는데, 창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지의 확신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라는 형식이 나를 표현하는 데 걸맞은 최대치였던 같았고, 그게 좀 오래 진행되어 온 거 같아요. 오랜 습작기간을 거쳐서, 그때도 시인이 되겠다는 분명한 마음은 없었지만, 글쓰기를 내 삶의 하나의 영역으로 삼겠다는 마음으로 습작기를 거쳤고.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서 그때부터는 창작이라는 것을 가능한 한 오래 내 중심에 두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는데, 창작과 병행할 수 있는 ‘연구’를 택하게 된 거죠. 등단할 당시에도 사실 많은 응모를 거치진 않았는데, 같이 글 쓰는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면서 서로의 작품을 이야기할 기회를 얻고, 그래서 내 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 아마 등단 시기였던 것 같아요.

 

   고봉준 : 흔히 사람들은 ‘창작’과 ‘연구’는 영역이 다르고 언어를 쓰는 방식도 달라서, 두 영역을 오가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혹은 한국문학사를 연구하면서 본인의 시적 스타일의 전사(前史)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나요?

 

   하재연 : 연구와 비평을 겸하는 건 쉬운가요? 어렵지 않나요? (웃음)

 

   고봉준 : ‘연구’와 ‘비평’은 테이블을 옮기는 것이긴 하지만, 지도를 그리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창작’과 ‘연구’는 논리적인 글과 탈(脫)논리적인 글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막연한 추측이지만요.


   하재연 :
저는 서로 다른 영역이라서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애초에 선택할 때는 그 두 가지를 하는 것이 가장 글쓰기를 내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병행하기로 선택을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두 가지 다 일종의 창조적인 영감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좀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죠. 사실 연구도 창조적인 영감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 생각하는데, 한쪽으로 머리뿐만 아니라 손발을 쓰고 있을 때는 다른 쪽에는 머리와 손발을 내주지 못하는 느낌인 거죠. 그래서 저는 멀티플레이어형 인간들을 상당히 존경하는데, 제 스스로를 아날로그적 인간으로 미화를 시키면서, 결국 단순하게 한 가지밖에 못 한다는 거죠. 한 가지 일을 끝내기 전에 다른 걸로 이동을 잘 못 하거든요. 그래서 진도가 좀 많이 더딘 편이죠. 그래서 연구와 창작을, 생산성도 좀 떨어지다 보니까, 생산성이 높지 못해서 오래 걸렸고, 말씀하셨다시피 시집 두 권을 내는 데도 꽤 오래 걸린 편이고요. 그런데 연구를 하는 작업이 창작하는 제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시켜 주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참 극단화되기 어려운, 극단으로 밀고 가는 시를 못 쓸 수도 있겠는데, 어떤 면에서 제가 애초에 천재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저 자신의 시, 나의 시의 스타일과 위치가 어딘지를 아는 작업도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이 되고, 또 두 영역이 어쨌든 다르니까 이쪽에서 미처 다 구성하지 못한 나를, 저쪽에서 구성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는, 물론 어느 쪽도 완전히 구성되진 않지만, 재밌는 느낌이 들고 해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고봉준 : 창작에서의 스타일이 있을 텐데, 그렇다면 연구의 테마나 대상을 선택할 때도 본인의 문학적 취향이나 스타일과 가까운 것을 선택하는지, 아니면 그런 기준과는 관계없이 연구를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하재연 :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겠죠. 그래도 제가 연구대상으로서 흥미와 매력을 느끼는 영역은 창작의 어떤 모델과는 다른 지점인 것 같아요. 제가 박사논문에서 다루었던 시인들이, 이상 같은 시인들의 시적인 스타일도 참조를 하기도 하고 많이 읽지만, 임화 같은 시인들은 참조가 전혀 안 되거든요. (웃음) 다른 많은 시인들도 그럴 수 있지만. 그리고 정지용 같은 시인도 저랑 굉장히 다른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의미로 상당히 매력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저와는 다른 참조점이 되죠. 그러니까 그들을 봄으로써 저의 위치가 더 분명해지는 측면도 있어요. 어쩌면 저와 달라서 더,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또 다른 일종의 문학사적 연속선상에서 어디에 있는가를 판별할 수 있는, 그런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을 해요.

 

   고봉준 : 연구자나 평론가들은 자신의 취향이나 기준과 다른 것을 잘 못 견디는 사람들인데, 오히려 다름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게 신기하면서도 납득이 안 되네요. (웃음) 그게 어떤 걸까요? 질문은 아니에요. (웃음) 한 가지만 더 질문을 하고 넘어가죠. 두 권의 시집을 내셨는데, 등단 10년 만에 두 권을 내신 거잖아요. 요즘의 추세로 보면 꽤 느린 편이에요, 그렇죠? 어쨌든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한 셈인데, 본인이 생각할 때 첫째와 둘째의 차이가 느껴지나요?

 

   하재연 : 첫 번째 시집을 냈을 때보다 두 번째 시집을 냈을 때가 한층 막막한 느낌이랄까? (웃음) 어쩌면 쓰고 나면 이것이 내가 써왔던 세계이고, 이것이 나란 사람이구나 하는 게 좀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한 허공 같은 곳이었구나, 뭐 그런 느낌이 드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고 할까요?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느낌이 있으려면 뭔가 지반을 좀 느껴야 되는데, 그렇기보다는 가까운 허공에서 먼 허공으로 가는 느낌이 있어서 막막하고, 두 번째 시집 낸 이후에 지금은 시를 많이 못 쓰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고요.

 

   고봉준 : 시집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사실 큰 질문이 한두 개 있는데, 큰 질문보다는 작은 질문들이 좀 더 구체적일 것 같아 작게 쪼개 봤어요. 우선, 첫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시 세계가 모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걸 말씀드려야겠네요. 확정적이지 않다는 거죠. 그 확정적이지 않은 느낌이 어떤 경우에는 좀 아찔했고, 어떤 경우에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도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고요. 하재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세상 모든 것이 다 움직이고 있는 것 같고, 물렁물렁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 이런 느낌들이 계속 반복되는 걸까…… 이건 제가 찾아야 할 답변이겠지만, 만일 이 문제를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왜 이럴까요? (웃음)

 

   하재연 : 어렸을 때 글쓰기에 대해 생각을 했는데, 그때 했던 각오 중의 하나가 어른들이 흔히 하는 ‘그래도 그때가 좋은 때야’라는 말을 안 하는 어른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에게 ‘그때가 좋은 때야’라고 말하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이 제 목표였는데…….

 

   고봉준 :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거군요. (웃음)

 

   하재연 : 네. (웃음) 굉장히 규정적이잖아요? 그 말이. 다른 많은 분들도 그렇겠지만, 제가 세상과 나에 대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가 역시 청소년기였는데, 그때 많이 우울했고, 어른이 된다는 거, 성장한다는 것을 혐오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어쨌건 저는 자랐고, 자라 있고, 어느 정도 때론 제가 혐오했던 것들과 많이 닮아 있는데요. 그런데 이제 닮아는 갔지만 역시 제가 그때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살 때 품었던 의문들은 해소가 된 상황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답을 찾았다고 하기도 어렵고, 그때 한창 했던 질문들, 내 속에서 막 뚫고 나오면서 나를 괴롭혔던 질문들이 지금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는 거고, 제가 그 찾아온 순간들이 좀 시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순간들과 마주칠 때 내가 거기에 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당시 질문을 품었던 존재로서 글쓰기를 하고 싶다, 시 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아마 그것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어린 ‘나’들에게 ‘나’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성실하게 들어 주고, 또 그것이 이 시점에서 왜 찾아왔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방식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그것’이거나, ‘그때는 좋은 때다’라는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의문의 방식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봉준 :
시를 읽으면 화자들의 태도가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회의적인 것 같기도 해요. 때론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것들이 아마 말투로 드러날 때 ‘~것일까’라는 의문형이나 ‘아마도’라거나, 혹은 ‘무관하게’처럼 진술 자체가 매듭지어지는 게 아니라 진술 자체가 미끄러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우리가 기존에 ‘시’라고 말해 왔던 것, ‘시’에 대해 갖고 있었던 관념과는 달라요. 그래서 이것들이 마치 시인/화자가 세계를 물컹물컹한 곳으로 감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시인/화자의 감각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하재연 : 거기에 대해 사소한 이야기부터 시작할게요. 얼마 전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꼭 취하면 후배들 앞에서 벌이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가령 한 선배가 다른 선배에게 ‘넌 변했어!’ 이렇게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벌컥 화를 내고 싸우는 그런 장면, 일종의 홍상수 영화 같은, 그런 장면이 하나의 레퍼토리인데, 사실 이와는 반대로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라고 말해도 아마 화를 낼 거거든요? 그게 뭘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는데, 그런 시들을 쓸 때 ‘넌 무엇이야’라고 존재를, 사물을 규정하는 것은 역시 폭력적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아니면 누가 누구, 누가, 주체가, 누구를, 다른 주체를 규정하는 순간에는 하나의 주체는 규정당하는 순간 내가 그걸 긍정하든, ‘맞아, 난 변했어’, ‘아니야, 난 안 변했어’, ‘똑같지 않아’, 긍정하든 부정하든 진실이나 현실과는 관계가 없는, 먼,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사태가 좀 기이하다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러고 또 한편으로는 규정하는 자가 있고, 만약 규정당하는 자가 있다면 그 둘 사이의 관계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서로가 서로에게 바로 보일 수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 질문을 들으면서 생각났던 시가 김수영의 「공자의 생활난」인데요. 거기서 김수영이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잖아요. 거기서 그 시를 생각하며 사물에는 우매도 있고 명석성도 언제나 동시적으로 존재하죠. 때로는 섞여서 존재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갈라서 보거나 바로 본다는 게 거의 죽을 만큼 혹은 거의 죽기 전에 어려운 일이라는 느낌이 오거든요? 거기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극한 아이러니? 그 시에선 그런 게 느껴져요. 그래서 그렇다면 ‘시’라는 것은 그런 지극한 아이러니를 뚫고서 김수영이 썼듯이 ‘바로 보마’라고 했지만, 그러나 ‘나는 죽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것에 가까운 어려움 속에 쓰이는 게 ‘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요.

 

   고봉준 : 질문을 하나 추가할게요. 사람들은 흔히 ‘시’라는 장르가 주관적인 장르고, 그래서 흔히 우리가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는, 주관적인 방식과 동일하다고, 이렇게 ‘나’와는 상관없이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들에 내가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하재연 :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 서정시 공식. (웃음)

 

   고봉준 : 예. 그렇게 끌어 모아서 뭔가 배열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주관적으로 진솔하다면 ‘시’가 된다고 믿고 있는데, 오히려 하재연 시인의 시에서는 그런 세계의, (사물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군요) 풍경이나 사물이나 이미지들이 연속적이거나 계기적으로 엮여서 등장하진 않아요. 마치 파편들이 흩어져서 뭔가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는 느낌이 들어서, 예를 들면 1연과 2연, 2연과 3연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얼핏 읽어서는 굉장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시인이나 화자의 의지, 세계를 내 방식대로 조합할 거야, 라는 그런 의지가 안 느껴지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건 의도적인 건가요?


   하재연 :
그 계기적인 연결이란 것은, 제가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언어의 짜임 속에 그것을 연결시키는 시인의 의도 같은 것이 작동은 하겠죠? 그런데 제가 시를 쓸 때는, 예를 들면 아까 말씀하신 1연과 2연, 장면과 장면, 사물과 사물 사이에 관계들이 존재할 텐데, 가능하면 ‘나는 이렇다’라고 표현하는 진술의 이면에 있는 어떤 것들이 거느려서 드러나는 방식이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나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렇다’ 혹은 ‘너와 나의 관계는 그러하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들로는 재현이 불가능한 뒷면들일 수도 있고, 옆면들일 수도 있겠고, 건너편일 수도 있는 것들이 가능하면 그림자처럼 거느려진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 그게 의도라면 의도일 수 있겠죠!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혹은, 그런 방식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저한테는 생의 국면들이 아닐까? 그래서 아마 그렇게 읽으셔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봉준 :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여운’과는 다른 거죠?

 

   하재연 : ‘여운’은 아마 일부러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저는 말할 것을 말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말을 하고 나서도 그 말을 초과하거나 혹은 그 말이 소거한 장면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고봉준 :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꽤 긴 시간의 간격이 있어요. 그런데도 전 두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단절감보다는 연속성이 더 많다고 느꼈거든요. 제가 잘못 읽은 건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시집에는 ‘나’, ‘너’, ‘당신’ 같은 호칭이 굉장히 많이 등장을 해요. 그런데 두 번째 시집에서는 많이 줄었고, 두드러지지도 않더군요. 혹시 그건 못 느끼셨나요? 이 변화가 하재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읽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을까요?

 

   하재연 : 두 번째 시집에 인칭대명사가 잘 안 등장하나요? 제가 그래서 혹시 해서 찾아봤더니 꽤 등장을 하는 거 같던데. (웃음)

 

   고봉준 : 첫 번째 시집보다는 빈도수가 많이 줄었어요.

 

   하재연 : 그건 사실 잘 인식을 못 했어요. 시집이 사후적인 물리성을 가지니까 전략적으로 기획돼서 나온 시집도 있겠지만, 저의 경우엔 쓰고 나서, 그리고 추리고 모으는 과정에서, 아, 내가 이렇게 쓰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구나, 생각이 되는데요.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이런 질문을 전에도 받은 적이 있어서 그때 했던 말을 좀 가져와 보자면, 첫 번째 시집은 명사들이 동사화되는 순간들에 대한 느낌이 굉장히 시적으로 느껴져서 시에 많이 나온다고…….

 

   고봉준 : (웃음) 명사의 동사화란 어떤 건가요?

 

   하재연 : 명사가, 명사라고 생각했던,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이동하고 있었거나 움직이고 있었거나 물렁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제 맘대로 명사들이 동사화되는 장면이라고, 그 순간에 대한 느낌이라고 제가 붙여 봤는데요. 두 번째 시집은 저한테는, 동사들의 파노라마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첫 번째 시집이 예를 들면, 너와 나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를 하고 있다면, 두 번째 시집은 내가 살아가는 장면들이 너, 당신들이 살아가는 장면들과 겹치는 그런 지점이 있다고 비교해 봤는데 어떨지 싶어요. 그리고 인칭대명사 관련해서, 한때 제가,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긴 하지만, 우리 삶의 어찌할 수 없는 국면에 대해서 굉장히 오래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첫 번째 시집에 그런 부분들이 많이 드러나는데, 일종의 비관주의이기도 하고, 우울 같은 것이기도 한데요. 삶에는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들과 필연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만나고 겹치면서 어찌할 수 없는 생의 장면들을 연출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정서 같은 것들을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그런 순간들에 만약에 ‘내가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나의 삶이 바뀌었다’ 혹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너의 삶이 바뀔 거다’ 이런 말이 되게 덧없이 느껴지거든요. 그런 순간들 속에서는. 이런 상상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 자신이 어떻게 해도 내 자신의 삶에 개입할 수 없다, 라는 좀 극단적인 느낌에 다다르기도 했는데요. 근데 여기에 사실 역설적인 전제가 있기도 한 거 같아요. 가령 ‘너 때문에 생겨난 슬픔’, 혹은 ‘내가 한 행동 때문에 생겨난 후회’, 이런 것들이 빚어낸 파토스가 있잖아요. 가령 비애, 자기 연민일 수도 있고, 상실감, 이런 정서들이 그런 ‘너 때문에’ 혹은 ‘나의 행동 때문’에 생겨나는데, 그 비애와 상실감을 표현하기보다는 시를 쓰면서 그 감정들이 생겨난 순간들을 그냥 좀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만약에 그 순간을 너와 나 사이의 심연 같은 것이라고 해도 좋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봉준 :
저는 두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방금 말씀하신 그 순간들, 장면들, 거기에 퐁당 빠져 있는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다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그랬을 때 사람들이, 시가, 타인의 삶이나 시인의 바깥에 있는 세계와의 관계라고 하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거나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시와 정치’라는 것도 아마 그런 것에서 나왔겠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재연 : 저는 이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만, 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세계의 정체라는 것이 굉장히 파편적인 방식으로 깃들거나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그 찰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그 순간은 사실 지속이 되거나 고정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표현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시로 쓸 수 있는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고요. 제가 시를 써서 좋다고 생각할 때는, 시를 쓰지 않았으면 발견할 수 없거나 아니면 봤다고 해도 잊어버렸을 순간, 사물들, 삶의 장면들을, 그리고 그 장면들을 접했던 나의 느낌이나 감정이나 기분을 표현하게 됐다는 사실이 시를 쓰면서 좋은 점이거든요? 그 찰나들이 결국 시로 쓰일 때는 온전한 문장이 아니라 찢겨진 문장으로밖에, 그런 형식으로밖에 안 될 텐데, 그것을 어쨌든 기록하기 위해 실패하면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만 저는 시 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나라는 사람은 나이기도 하지만, 결국 세계 안에 놓여 있을 때는 내가 타인화되는, 그러니까 내가 타인처럼 된 장면들에 맞부딪힌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내가 나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들을 생각하거든요?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사이에 대해 말할 때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세계란 것은 나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저 혼자는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내가 아닌 순간들에 대해서 말할 때 오히려 나 아닌 다른 너에게 전달할 수 있는 그런 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마 지금 물어보신 질문과 같은 느낌을 주는 시를 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고봉준 :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세계라고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나 공간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시에서는?

 

   하재연 : 그러니까, 존재는 하는데, 제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거죠.

 

   고봉준 : 그렇죠. 그때 내가 지각하는 방식은 나와 너, 라고 하는 두 개의 존재가 공통으로 발 딛고 서 있는 세계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주관적인 필터를 통해서만 경험되는 그게 세계라는 거죠?

 

   하재연 : 주관적인 필터의 느낌은 아니고요. 오히려 나라는 사람이 내가 아는 거 같다는 느낌들을 받음으로써 사실 변하고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세계 속에서 움직이고 변화하는데. 오히려 ‘나는 이렇다’라고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누구를 만나서 변화하고 있고, 내가 세계라는 국면들에 부딪침으로 인해서 내가 아닌 것들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아닌 것들에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순간에 대해서 쓰는 것이 오히려 나에 대해서 혹은 세계에 대해서 잘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고봉준 : 이해했어요. 제가 질문지에 썼죠? 시집을 읽으면서 불현듯 과거형 시제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어요.

 

   하재연 : 과거형이요? 뭐, 뭐 했었다?

 

   고봉준 : 예. 그런 식이죠. 예를 들면 ‘어디에 갔는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거죠. 하재연: 아, 그러니까 시제가 개입을 잘 안 한다는 말이죠? 고봉준: 예를 들면 ‘마음에 들었다.’라고 하지 않고 ‘마음에 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항상 현재형으로 쓰거나 예외적으로만 과거형이 쓰이고 있는데, 이게 세상을 대면하는 시인의 태도와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봤어요.

 

   하재연 : 앞에 했던 이야기와 연관이 되는데, 사실 시제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나? 지금 생각해 보니까 좀 재밌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제 시집 편집할 때는 여담으로 편집자 분한테 한국어에는 대과거가 없었다며, 고치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사실 안 고치긴 했어요. (웃음) 지금 말씀을 들어 보니까 그런가 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제가 어쨌건 제 안에 ‘뭐, 뭐 했다’라고 할 때 사건이건 장면이건 지나간 시간에 대해 쓰는 것이라면 그 시간을 경험한 내가 할 말들이 있어서고 그 할 말들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는 이야기인데 그 돌아온 자들, 혹은 돌아온 말에 대해서 회상해 버리거나 기억의 방식으로 쓰고 싶지 않았어요. 기억해 버리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요. 가령, 내가 운동장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놀다가 갔는데 신발이 남겨진 상황이, 그때의 느낌이 나에게 시적인 것이라면 그걸 회상하는 추억의 장면으로서가 아니라 거기에 남겨진 모래알이거나, 남겨진 운동화거나, 그 느낌을 쓴 것이 내가 쓰고 싶었던 느낌에 좀 더 충실하게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고봉준 : 그게 기억이나 회상이면 그렇죠. 과거형으로 나왔을 확률이 큰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현재형이 나올 확률이 크겠죠.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아서, 아! 이 사람이 흔히 오래된 시간, 지나간 시간을 기억이라는 방식으로 자기 동일성의 어떤 근거로 삼지는 않는구나, 그래서 오히려 과거의 시간들을 계속 현재화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는데, 그게 어쩌면 과거형 문장보다는 현재형 문장이거나 혹은 어미가 잘라져 버린 문장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고봉준 : 마지막 질문입니다. 자신의 시인으로서의 문학사적인 포지션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하재연 : 아까 최승자 시인 이야기하다 다 하지 못한 말이 있던 거 같은데, 저는 그렇게는 쓸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는 쓸 수 없는데, 그것이 시라고 생각하는, 혹은 좋은 시는 그런 파토스를 충만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처음 시를 쓸 때 시를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갖게 하는 지점이었는데, 그렇게 쓰지 않으니까 쓸 수 있다는 방식의 자기 긍정이 가능해야만 시 쓰는 게 가능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같이 공부하던 선배가, 대학 때부터 같이 공부하던 선배였는데, 그 선배는 창작을 하지 않고 연구비평 쪽으로 갔고, 저는 창작을 병행하는 쪽으로 온 건데, 제 시를 처음 보고 ‘나는 대학 때부터 시들을 볼 때 나는 시를 못 쓰겠다 하고, 창작을 못 하겠구나, 그만뒀었는데, 이 시를 보니까 썼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하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는 아마 우리에게도 그런 식의 일종의 문학적인 전통 위에 형성된 ‘이런 것이 시다’라는 관념과 파토스를 중요시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그것과는 좀 다른 위치의 화법을,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썼기 때문에 생겨난 언어의 짜임들이, 그 전통 속에, 줄기에는 있겠으나, 하나의 다른 목소리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처음 시를 쓸 때는.

 

   고봉준 : 그게 시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일까요? 아니면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일까요? 파토스와 다른 방식의 시 쓰기 말이에요.

 

   하재연 : 한국문학사에서, 제 시기를 지나와서 시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통 경험으로 직면한 문제이기도 할 것 같고요, 사실은 세계의 문학으로도 갖게 되는 현상일 수도 있을 거 같거든요? 동시대 시인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수많은 시인들이 있으니 내 목소리가 차별성이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잖아요? 특히 2000년대를 지나온 시인들이라면 더 그러기도 할 텐데, 과연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형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지금 가능한가, 라는? 그런데 결국 그 가능한가라는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만 다시 새로움이 잉태가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언제라도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는 힘든 것이고, 제 시도 어떻게 보면 공유하는 지점이 당연히 있겠죠. 저의 동료들과, 또 고맙게도 자극이 되는 동료 시인들이 많고요. 그들에게서 제가 얻어 온 것들이 있고, 합쳐지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어떤 지점, 아까 말한, 그러나 그 언어가 쓰이기 전에나 그 후에 형상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이 그 시 안에서 생성이 되는 지점을 쓰고 싶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쓸 텐데 만약 쓸 수 없게 되면 그만둬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고봉준 : 왜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하세요? (웃음)

 

   하재연 : (웃음). 그런데 시는 결국 숙련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런 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해요.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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