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무한한 혁명에게

 

[기획특집 인터뷰]

 

 

일상의 무한한 혁명에게

─ 김선우 시인 인터뷰

 

 

● 일시 : 2012. 4.

장소 : 창비북카페

진행 : 이은선, 전석순(소설가)

정리 : 이은선(소설가)

 

 

  나(이은선)와 전석순 작가는 83년생 동갑내기다. 학교는 다르지만 학과는 같고, 02 즉 산소학번(아, 우리가 정말 산소처럼 풋풋했을까?)이 되어 새내기라는 꼬리표를 같은 시기에 달았다. 질풍과 노도 그리고 방랑과 역경의 시기를 통과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이십대라 주장하며 서른의 초입에 함께 들어선 사이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것 같지만, 등단을 해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지 이제 겨우 일 년이 조금 지났다. 첫 만남부터 어색하지 않은 그 무엇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거시기’하고, 안 친하다고 발뺌하기엔 조금 많은 일들을 함께했다. 우야든동, 나이와 등단 시기가 비슷하고 또 미모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보니, 그냥 친한 친구 하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그 마음의 기저에 소설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피차 못다 이룬 시인에 대한 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아닌가!

 

  처음 인터뷰 제안이 왔을 때 나는 선뜻 ‘그러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김선우라는 이름이 내 심장 위에 얹어져 콩닥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생김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를 어쩌지?’ 안 하겠다고 하기에는 김선우 시인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가 아쉬웠고, 하겠다고 하기에는 나의 생김이 조금 서운하다는 자각이 있었다.(역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게다가 사진이라도 같이 찍는 날엔……!) 나는 밥 대신 치킨을 먹으며, 물 대신 맥주를 마시며 삼 일간 고민했다. 그 고민 속으로 내가 캠퍼스에서 읽고 가슴 설레어 했던 김선우 시인의 시 구절들이 다가왔고, 여러 가지 마음의 결들 속에서, 느닷없이 전석순 작가가 솟구쳐 올랐다. 굳이 엮어 보자면, 지금 전석순 작가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춘천이 아니던가!(나중에 알고 보니 김선우 시인과 전석순 작가는 지척에 살고 있었다.)

 

  더블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하지는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전석순 작가는 그가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는 ITX(춘천행 열차의 이름이다. 이름하야, ‘청춘열차’)를 타고 왔다. 동백꽃이 줄기에서 툭, 떨어지듯이 서울의 한복판 게다가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 카페 정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툭, 나타난 것이다. 인터뷰를 앞두고 바짝 긴장해 있던 나는 해맑게 웃으며 다가온 전석순 작가가 무척 예뻐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도 생략한 우리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하며, 누가 질문을 먼저 하고 누가 받아 적을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느라 점점 혈당이 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출판사 북 카페에 왜 그리도 맛있어 보이는 것들이 많던지. 서둘러 파니니를 흡입한 우리는 다시 김선우 시인의 인터뷰 준비 모드로 들어가 서로 아무 말 없이 김선우 시인의 시를 읽고, 질문거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은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은 네 시였으나, 서울의 복잡한 도로사정 탓에 김선우 시인에게서 30분 정도 늦겠다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자몽주스 한 잔을 시켜먹고, 약간 모자란 듯해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더 마셨다. 대체 우리를 이토록 가슴 뛰게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분명 커피를 마신 탓은 아니었을 터!) 우리는 선물처럼 주어진 30분의 시간을 쪼개어 김선우 시인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30분간의 대화를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 내 소개를 어떻게 하지? 인사를 할 때 손은 니가 먼저 내밀래? 내 손이 더 예쁘거든? 시는 내가 더 많이 읽었거든? 그걸 어떻게 증명해? 나는 대학 때 시로 상도 받았어. 나도 시집 많이 사봤거든? 좋겠다? 게다가 나는 김선우 시인이랑 같은 춘천에 살거든? 춘천은 춘천이지, 같은 춘천이 뭐냐. 그럼 우리나라에 다른 춘천도 있니? 흥! 근데 너 김선우 시인 약력에 대해서는 조사해봤어? 나? 아, 맞다, 약력!)

 

  김선우 시인은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했으며, 2000년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펴냈다. 2002년에는 첫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2003년 어른이 읽는 동화 『바리공주』, 같은 해 가을 두 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를,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2007년 제9회 천상병시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물밑에 달이 열릴 때』, 『바리공주』,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피어라, 석류!』, 『캔들 플라워』를, 2012년 봄 다섯 번째 시집인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를 펴내었다. 에세이집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가 있다.

 

  삼십 분은 더디 흘렀다. 그 사이에 우리는 커피를 한 잔씩 더 마셨다. 그때 마침 인터뷰 사진을 찍어 주기 위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대훈 선생님이 도착했다. 뒤이어 온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머금은 김선우 시인이 나타났다. 초면이 아닌데도 마치 처음처럼 설레었다. 그날 인터뷰어의 미모를 담당했던 전석순 작가는 김선우 시인보다 더 활짝 웃었고, 김선우 시인은 전보다 더 크게 웃어 주었다. 웃으니 치열과 잇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까닭에 긴장됐던 마음이 갑자기 노곤해졌다. 이틀 밤을 자며 촌철살인적인 질문을 준비했던 나는 김선우 시인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묻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며 마주보고 웃던 그들의 웃음이 차탁 위에 가라앉기도 전의 일이었다.

  ▶ 이은선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 김선우 : 아, 요즘 좀 바쁘게 지냈어요. 시집이 출간되어 바빠지는 것 외에 강정마을 콘서트 준비로 좀 분주하게 지냈어요.

  ▶ 전석순 : 최근 들어 사회 문제에 관해서 전보다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김선우 : 그런가요?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관심이 있는, 쏠려 있는 문제들이 최근에 많아진 탓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렇게 보여지는 것뿐일 거예요. 나의 일상은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요.

  ▶ 전석순 : 작가로서 사회적인 어떤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했을 때, 타인과는 다른 특징이 있을까요?

  ▶ 김선우 : 당연히 있지요. 작가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글이 소용되는 매체가 굉장히 많은 시대가 되었잖아요. 작가들의 글과 말은 사실 일종의 무브먼트이기도 해요. 어떤 사회적인 것들과 작가의 음성이 만나서 큰 파장을 가질 수도 있어요. 개인적, 정치사회학적 맥락이 존재하는 개인이라는 자각을 글이라는 자기 검증의 틀로 내보내는 사람들이 작가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작가들의 발언은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작가의 발언들은 연예인들이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작지만, 오래 전부터 암묵적으로 우리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 문화적인 양식이라고 생각해요.

  ▶ 이은선 : 언제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셨나요?

  ▶ 김선우 :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일기를 거르지 않고 썼다는 점이에요. 저에게는 아무런 의식 없이, 의심 없이 쓰기 시작한 글이 일기였어요.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놀잇감이나 대화창구가 특별히 없던 시기에 일기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어요.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어떤 대상에게 내 얘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일기였고 더 나아가 동시 쓰기로 영역을 넓혀 갔어요.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는 한 번도 문학회 활동을 한 적이 없었어요. 여전히 내성적이었고, 수줍음을 많이 탔어요. 습관처럼 일기를 썼고, 과도한 독서를 했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카프카 등등을 고등학교 때 다 읽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한 생활이었어요.

(참고로 김선우 시인은 막 삼십대에 접어들었다는 우리들에게 이십대와 삼십대는 사랑과 연애가 혁명이다! 라는 명언을 남겨 주었다.)

  ▶ 이은선 : 김선우 시인에게 ‘강원도’란 어떤 의미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 김선우 : 최고의 축복! 문학하는 자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손꼽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지요. 태어나고 자란 유년을 보낸 곳이고, 지방 도시 중에서도 중심가가 아니라 외곽 변두리 야산 밑에 산과 바다가 있는 곳이었어요. 아, 강도 있었다! 적당히 가난한 집안의 대가족 속에서 보통 한국 사회 여성들이 닥치는 모든 문제들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났어요.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들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시대상 속의 여성성들을 보았지요. 그래서 여성성 혹은 여성주의 같은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속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신산한 삶을 같이 아파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 자리로 돌려 놓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요.

  제가 처해 있던 조건 자체를 그냥 본다고 하면 뛰어난 환경은 아니지만 작가로서는 무척이나 행복한 축복이었던 것 같아요.

  ▶ 전석순 :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게 언제쯤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김선우 : 이십대 후반 정도였을 거예요. 등단을 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습작을 하던 시기였어요. 내가 시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어떤 면들 속에 그러한 기저들이 숨어 있어요. 엄청나게 많은 시들을 습작하면서 내게 있었던 응어리 같은 것,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승화시킬 수 있었어요.

  ▶ 이은선 :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를 쓰셨나요?

  ▶ 김선우 :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본 광주 사진을 처음 보았어요. 88학번인데, 그 시기가……. 저는 과격한 운동권이었어요. 주로 문학작품을 쓰거나 읽는 게 아니라 사회과학 커리큘럼들을 읽었어요. 한국적 관점과 세계, 전 지구적 관점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사들을 읽으면서 데모를 했어요. 책을 읽고 데모를 하는 일이 대학 시절 내내 이어졌어요. 90년대에 들어서서는 온갖 철학가들의 이론들이나 근원적인 세계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어요. 그 시기를 지날 때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대학 4년 내내 시를 썼어요. 문학이 어떻게 세계를 변형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하여 물음을 가졌어요. 학내에서 만들고 운영했던 조직, 문화운동 조직, 문학과 예술운동 전반에 대한 커리큘럼을 짜고 후배들도 공부시키는 생활을 했어요. 전 세계적으로는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동구권이 무너지는 격랑이 일었지요. 그때 저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어요. 내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혁명, 혁명 이후의 세계는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혁명 이후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하여 집중을 하던 시기였어요. 지독한 절망, 인간의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지요.

  그 시기가 이십대 초 중반이었어요. 냉소적으로 절망하고, 좌절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다 맞아떨어지면서 바닥까지 갔던 것 같아요. 그때 정말 많은 방황을 했어요. 허청허청 어딘가를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종점까지 갔다 돌아오곤 했어요. 밤기차를 타고 헤매기도 했어요. 외딴 섬까지 갈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갔고, 끝까지 가보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아찔한 기억이지만!

  ▶ 이은선 : 질풍노도의 그 시기를 지켜주었던 스승이 누구였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 김선우 : 내가 사랑하는 무수한 사람들, 마르크스, 레닌, 체게바라, 호치민 등등 전 세계적인 무수한 혁명가들이 있었어요. 너무나 큰 매력을 던졌던 선생들이었어요. 조세희의 난쏘공은 늘 손에 가지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 책이었고요. 한편으로 그와는 정반대되는 책들도 많이 읽었어요. 박재삼, 김종삼 그리고 기형도, 박상륭, 오정희 선생의 글들이요.

  ▶ 전석순 : 글쓰기의 긴장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김선우 : 모든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하다못해 아주 사소한 사고 한 꼭지를 쓸 때도 사실 글을 쓴다라고 하는 것, 노트북을 앞에 놓으면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긴장감을 요구하는 노동입니다. 그래서 작가들의 존재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긴장감보다 긴장감을 통과한 이후에 내게 오는 성취감이 비례적으로 더 클 때까지만 작가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에요. 내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그 긴장감을 넘어서지 못하는 내적인 성취감, 스스로 밸런스를 맞추지 못한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 될 것 같아요. 모든 글에는 항상 긴장감이 있어요. 아주 짧은 글을 쓸 때도 늘 긴장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쓰고 난 다음에 오는 ‘뭔가 열심히 했다’라는 것! 그것 역시도 긴장의 연속이겠지요.

  ▶ 이은선 : 주로 어디에서, 언제 글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김선우 : 시만 쓰던 시절에는 주로 새벽에 썼어요. 집에서 쓰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쓰기도 했어요. ‘바로 오늘 새벽이야’ 하는 느낌이 딱 오는 새벽에 시를 썼어요. 그런데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낮에 하는 글쓰기로 바뀌었어요.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이, 해 있을 때 작업을 했어요. 시를 쓸 때는 공간에 대해 무척 까다롭게 구는 편이었는데,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카페 같은 데 앉아서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사람들 많은 공간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묘한 쾌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 전석순 : 김선우 시인을 이야기할 때 ‘서정성’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김선우 시인께서 생각하는 ‘서정’은 무엇인가요?

  ▶ 김선우 : 서정과 서사는 분리해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모든 시는 서정의 어떤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모든 예술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정서, 감정에 유니크한 노크를 할 수 있을 때 예술로 성립되는 것입니다. 나무, 산, 별, 구름 같은 것을 노래한다고 해서 서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감정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 얼마나 많은 시기가 있고, 그 감정을 모두 세어 보면 팔만 사천 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많겠어요. 그것을 건드려 주는 것이 서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라면, 저는 서정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전석순 : 지금 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고 계시잖아요? 시를 쓰는 김선우와 소설을 쓰는 김선우는 어떻게 다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 김선우 : 둘 다 너무 매력적이에요. 시는 공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선우라는 존재는 체질적으로 시인이에요. 시가 제 몸에 가장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타고난 것이 정말로 있다면, 그것은 시인의 일일 거예요. 시 작업을 할 때가 가장 확실히 내 존재가 들려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설은 특별한 엑스터시와 상관없이 일상적인 노동으로 다가오는 것 같고요. 또 그 일상적인 노동이 주는 쾌감이 있더라고요.

  ▶ 이은선 :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오 년 만에 나온 새 책입니다. 네 번째 시집과 다섯 번째 시집 사이의 그 오 년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 좀 부탁드릴게요.

  ▶ 김선우 : 2008년에 『나는 춤이다』가 나왔고, 그 해에 또 산문집이 나왔어요. 한 해에 두 권의 책이 나온 셈이지요. 2009년에 연재했던 소설 『캔들 플라워』가 나왔어요. 세 번째 시집을 내고부터는 소설을 겸업했어요. 시는 본래 한 달에 며칠씩 몰아서 쓰는 스타일이고. 세 번째 시집까지는 시인으로서의 삶에 훨씬 더 집중했지만 산문쓰기도 병행해 왔어요. 지금 막 돌이켜보니, 산문과 시 쓰기가 비슷한 비율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세 번째 시집을 냈을 때 기본적으로 시인으로서 운명적으로 내뱉어야 하는 세계의 극점으로 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시기에 소설에 관한 갈망이 생겼지요. 그러다 보니 세 번째 시집과 네 번째 시집 사이에 오 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그렇지만 글쓰기를 떠나 본 적은 없어요. 인도 오로빌에 가서 ‘일주일이나 열흘 동안 글자 자체를 안 보고 한번 살아 봐야지’ 하고 살아 보니 무엇이 막 쓰고 싶어지는 거예요. 열흘쯤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다 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북을 안고 햇볕 좋은 데 나가서 쓰기 시작했어요.

  ▶ 전석순 :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하신 뒤에 시를 좀 천천히 쓰겠다, 고 하셨어요. 의도적으로 그러한 것인지, 환경적인 측면이 안 만들어졌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 김선우 : 자기 마음속에 방향성이 먼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니, 인생이 그런 것이더라고요. 이것(네 번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을 묶을 때는 시 청탁에 너무 쫓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원고 마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에게 시를 쓰게 하고 있더라고요. 어느 순간 청탁을 받고 원고를 쓰는 것이 일상화가 되어 있었어요. 청탁서가 먼저 와 있고, 그것에 맞춰서 시를 쓰는 순간이 많아지다 보니까 빨간불이 들어왔어요.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내 시가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 이은선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정말 ‘혁명’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요! 김선우 시인에게 ‘혁명’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김선우 : 특별하게 개인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작가도 사회의 구성원인데,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인 거잖아요? 2008년에 촛불 집회는 개인적으로 제가 스물두 살에 학교를 졸업하면서 혁명의 가망 없음에 대해 포기하고 비관하던 인간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어떤 것을 가지게 했던 그 시기로부터 퍽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타진하게 된 계기였어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방식의 혁명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었지요. 일상 속에서 성취될 수 있는 미학성이었어요. 예술가들을 자극하는 것에는 어떤 미학적 질서라는 것이 틀림없이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2008년 촛불 집회에서 그것을 발견한 거예요. 새로운 방식의 낙관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앞으로 도래할 세상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어떻게 짤 것인가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촛불 집회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에 대해 발랄한 연대감과 상상력 넘치는 끼와 조금 더 예뻐지고 명랑해진 방식으로의 연대가 어떻게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는가.

  그 후에 본 것 중에 가장 혁명스러운 일은 희망버스였지요. 거창한 정치혁명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거대한 담론을 가지고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와는 정말 상관없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을 염려하고 싸우는 그곳의 동지들을 위해 나의 이익과 전혀 관계없이 내 돈과 시간을 들여 살려야겠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혁명의 가능성을 보았어요.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가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승리를 만들어냈어요. 각성한 시민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주 아기자기한 일상이 희망버스를 타고 있었지요. 투쟁적인 현장이었다기보다는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곳이었어요. 종이비행기 붙여 주고, 사랑한다고 외쳐 주면서 행복해하면서 돌아오는 시간이었어요. 그렇지만 희망버스는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에요. 광장에서 놀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소소한 무언가를, 자기 일상을 즐기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지요. 자기 삶을 즐기면서 어떤 중요한 사항 같은 것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연대하는 일상이 바로 변화된 방식으로서의 혁명이라고 생각했어요.

  ▶ 전석순 : 보통 혁명이라는 의미를 크게 생각하게 되는데 ‘무한한’이라고 붙이니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다 그 앞에 ‘나’가 놓이니 의미가 다시 축소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혁명에 대한 의미가 다채로운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느 인터뷰에선가 ‘몸이 먼저 반응한 후에 시를 쓴다’고 하셨더라고요. 이는 어떤 의미였는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몸의 반응’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김선우 : 어떤 상황을 보았을 때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면 눈물이 나지요. 울고 나면 그것에 내 마음이 가까이 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희망버스, 강정 때도 그랬어요.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4대강 때도 마찬가지고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력감에서 나오는 것이 있어요. 무력감에서 출발해서 펑펑 우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찾아보게 하는 과정에서 많이 울었어요. ‘내 안에 있는, 내가 실감하지 못하고 살던’ 다채로운 감정을 많이 보았지요. ‘내가 춤출 수 없으면 나의 혁명이 아니다. 올바른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의 내적 충만이 함께 가는 일이 아니라면 개인들은 유약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를 다 견디지 못한다. 어떤 운동도 어떤 사회적으로 좋은 일도 자신이 존재하는 곳에서 내가 행복해하며 살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좋은 혁명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어떤 것들을 하는 데 있는 그 무엇. 일상의 감각을 재미나게 만들어 주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 이은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집배원으로도 활동을 하셨지요? 그 일에 관해서도 좀 들려주세요.

  ▶ 김선우 : 우선, 문학을 배달한다는 개념이 무척 새로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문학집배원 같은 방법으로 문학을 대중에게 가져가려고 하는 방식이 굉장히 좋은 방법인 거예요! 대중과 문학 그리고 송신과 수신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더라고요. 일상 속에서 일상의 혁명을 대중이 창조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집 앞,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시 한 편 갖다 주는 시스템이 무척 새로웠어요. 시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시를 읽어 주는 행위 자체가 일상의 자극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실제로 저에게 되돌아오는 어떤 리액션 같은 것이 무척 많았어요. 평범한 회사원인데 월요일에 출근을 해서 시를 읽는 그 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어요. 문학집배원으로 배달해 주는 시가 일상 속의 굉장한 악센트가 되고 있다는 틀림없는 사실을 제가 몸소 느끼고 있었던 거지요. 개인적으로 알아보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대신해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가, 하는 것들을 말이에요. 그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어서 많이 기쁘기도 했고요.

  ▶ 전석순 : 얼마 전에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라는 행사의 첫 번째 초청 작가로도 독자들을 만나셨더라고요!

  ▶ 김선우 : 아, 그때 굉장히 많은 분이 대학로 예술가의 집을 찾아 주셨더라고요. 합산을 하니 160분 정도? 자리가 없어서 두 시간 내내 뒤에 서서 들으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철학하시는 김용규 선생님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어떤 일이 개별적인 사건으로 벌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8년에 우리가 경험한 광장의 반짝임들이 있잖아요? 정말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내던 혁명적인 기운들, 일상속의 혁명적인 연계점을 가지고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철학과 문학을 얘기하는 어떤 행사에 어떻게 160명이 넘게 신청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 속으로 무언가를 가져오기 시작한 어떤 반증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잘 모르던 것,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를 자기 삶 속으로 끌어들여 무언가를 즐겨 보려고 하는 욕망들을 보았어요. 전체적으로, 한꺼번에 어떤 리액션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홑씨 퍼지듯이 퍼져 가고 있는 기운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지금은 어느 곳을 가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옛날 같은 방식이 아니라 혁명적인 일상을 만들어 가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어떤 행사에 참여하고, 문학집배원의 독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에게서 발현이 되고 또 커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정말로 긍정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이은선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 김선우 : 마지막 퇴고를 남겨 놓고 있는 세 번째 장편소설의 순항을 바라고 있어요. 올 여름에 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딱히 언제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퇴고를 잘 마쳐야 한다, 끊임없이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고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공기처럼 천천히,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니 굳이 더 이야기를 안 해도 될 듯하고요. 앞으로 당분간은 시 청탁을 과도하게 받지 않으면서 쓰고 싶어서 써진 시들을 발표하고 싶어요.

  ▶ 이은선 & 전석순 :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우리 단체 사진 한 장 찍을까요? 다가올 어느 날엔가 오늘의 이 일이 ‘신인작가 누구에게는 혁명이 되었던 큰 사건이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말입니다.

  ▶ 김선우 : 좋지요!

  글을 쓰는 일과 일상의 혁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김선우 시인은 무척 열띤 얼굴이었다. 오히려 받아 적고 질문을 하는 쪽이 따라가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긴 시간 동안 계속된 우리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녀를 기다리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곧이어 출판사에서 여는 김선우 시인의 북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란다. 다소 장황한 질문들로 너무 많이 시간을 뺏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마음을 무마시켰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한 그 시간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혁명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우리가 당이 떨어진다, 지친다, 질문이 너무 힘들어서 먹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는 말, 말, 말들을 하며 골라먹었던 음식들을 ‘김선우 시인’을 알아본 출판사 측에서 계산까지 해주는 정말이지 ‘북 카페적인 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이 지면을 빌려 창비 출판사에 깊은 감사를!) 그러지 않아도 김선우 시인도 좋고, 게다가 인터뷰를 하는 이 일도 너무나 가슴 벅찬 일인데 김선우 시인의 시집과 먹을거리를 함께 제공해 주시다니! 역시 사람은 뭘 좀 잘 얻어먹어야 좋게, 더 좋게 기억하는 원초적인 동물이란 말인가? (아니, 인간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우리’가!)

  전석순 작가도 동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맛있는 거 같이 또 먹게 된다면 그도 내 말에 백 번 동의를 해주지 않을까.

  참고로, 김선우 시인은 ‘청년들’과 ‘할머니’들을 너무 좋아하는 ‘편애증’이 있다고 했다. 오늘 인터뷰어들 너무 좋다, 라고 그녀가 말했다는 말은 전하지 않을 예정이다. 너무 사심이 들어간 인터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내가 말한 ‘책과 먹을거리들을 얻어먹고 좋게 썼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읽으면 좀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 그것도 ‘하지 않은 말’로 남겨 두어야겠다. 그래도 누군가의 성의가 있으니 이런 문장은 어떨까?

  그날 우리들의 ‘혁명’ 이야기는 우선 무엇을 조금 먹고 난 다음에 시작되었다. 

  《문장웹진 6월호》

  ※ 본 인터뷰 원고는 제208호 〈웹진 아르코〉(2012. 5. 7)에 실린 인터뷰 기사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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