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냉장고가 폭발하던 날

 

[2012년, 동화를 읽자!]

 

냉장고가 폭발하던 날

 

이숙현

 

 

 


 

  냉장고가 폭발했다.

  출근 준비를 마친 엄마가 구두에 발을 끼워 넣고, 뒤따른 아빠가 겉옷을 막 걸친 때였다. 화장실 문을 닫고 돌아선 나도 가방을 주워들고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펑! 펑! 퍽!

  커다란 소리가 우리를 덮쳤다.

  “엄마야!”

  “신혜야!”

  “여보!”

  우리는 모두 귀를 막고 엎드렸다. 폭발음은 짧고 강렬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잠시 후 살며시 고개를 든 엄마랑 아빠는 또다시 머리를 수그려야 했다.

  띵똥, 띵똥, 띵똥, 띵똥, 띵똥, 띵똥, 띵똥…….

  냉장고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소리였다. 띵똥, 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고요해졌다. 놀란 눈을 껌뻑이던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냉장고를 바라봤다.

  “어, 엄마!”

  “어머, 세상에!”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우리는 모두 너무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눈앞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냉장고 문 두 개가 활짝 열린 채 흔들거리고 있었고, 그 속에 있던 것들이 모조리 냉장고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바닥은 엉망진창이었다. 엉망진창인 건 바닥만이 아니었다.

  “어머, 난 몰라, 이 옷 비싼 건데!”

  “순식간에 콩나물 치마가 돼버렸군.”

  “아, 아빠. 머리에 김치가…….”

  “신혜야, 네 머리엔 콩자반이 박혔구나.”

  냉장고가 폭발하면서 터져 나온 음식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라붙어 있었다. 얼마나 멀리 튀었는지 베란다 창문에도 콩나물이 붙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깨진 물건은 없었다. 유리로 된 반찬통이 죄다 뚜껑이 열려 흩어져 있었는데 깨진 건 하나도 없었다.

  시계를 본 엄마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난 몰라!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어쩌면 좋아…….”

  엄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엄마의 비싼 옷에 붙은 콩나물이 데굴데굴 굴러 아래로 떨어졌다.

  “아휴, 나도 큰일이네. 오늘부터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아빠는 머리에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김치 국물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피같이 흘러내리는 김치 국물에서 쉰내가 났다. 나는 코를 움켜쥐었다.

  아뿔싸, 나야말로 큰일이다. 이제야 생각났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머리카락에 박힌 콩자반이 하나, 둘, 떨어졌다.

  “이대로 갈 순 없지. 회사에 전화해야겠다. 당신도 전화해. 냉장고가 폭발했다고. 이건 긴급 상황이니까.”

  엄마와 아빠는 회사에 전화를 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냉장고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집안 곳곳을 찍어 문자도 보냈다. 그런 다음, 엄마 아빠는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고춧가루 양념과 깻잎이 작품처럼 붙어 있는 안방 문을 힐끔거리며, 나는 냉장고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음식물을 뒤적였다.

  “신혜야, 너 지금 뭐하니?”

  어느 사이, 엄마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화들짝 놀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뒤로 자빠졌다. 으악, 엉덩이가 축축하다.

  “얘가 왜 이래? 더 늦기 전에 얼른 옷 갈아입고 학교 가. 선생님한텐 엄마가 전화할 테니까.”

  “어, 저기, 엄마, 나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요? 뭐 좀 찾을 게 있어서…….”

  엄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아니, 그게, 어, 그러니까 나, 이러고 어떻게 가요? 이 머리, 냄새도 장난 아니에요.”

  나는 콩자반 양념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을 들어올렸다. 엉켜 붙은 머리카락에서 들쩍지근하면서도 짭짤한 콩 비린내가 났다.

  “그래, 여보.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학교 가고 싶겠어?”

  고맙게도 아빠가 거들었다.

  “아유, 몰라. 그럼, 당신이 학교에 전화해요. 소신혜, 넌 얼른 머리부터 감아.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뭐람…….”

  엄마는 까치발로 부엌 바닥을 가로질러 가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사람이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지.”

  “그건 그렇지만, 아니, 왜, 멀쩡하던 냉장고가 갑자기……. 참, 여보! 냉장고 회사에 당장 전화해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얼른 와서 냉장고부터 손보라고 하세요.”

  엄마는 고무장갑을 끼면서 소리쳤다.

  “알았어.”

  아빠는 바로 냉장고 회사에 전화를 했다. 수리 기사는 금방 도착했다.

  “아이고, 고객님, 죄송합니다. 냉장고가 폭발했다니,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젊은 수리 기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바닥을 훔치고 있던 엄마는 급한 대로 기사가 냉장고에 다가갈 수 있게 바닥에 길을 만들어 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수리 기사는 냉장고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냉장고가 폭발한 게 맞습니까? 냉장고에는 이상이 없는데요. 문짝도 말짱하고, 내부도 그렇고, 압축기도 특별한 이상이 없습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냉장고 때문에 집이 이 꼴이 됐는데 냉장고가 정상이라니요? 회사에서 그러라고 하던가요?”

  엄마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고무장갑 끝에서 냄새나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아닙니다. 전 그저,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거 참, 냉장고는 멀쩡한데 갑자기 폭발했다니…….”

  “그럼, 전 이만.”

  “이봐요!”

  수리 기사는 뒤돌아서 코를 막고 얼른 집을 빠져나갔다. 아빠는 목소리를 높여 냉장고 회사에 다시 전화했다. 이번에는 나이 많은 수리 기사가 찾아왔다.

  “냉장고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보건대, 확실합니다.”

  나이 많은 수리 기사는 코와 입을 막고 집을 뛰쳐나갔다.

  “이봐요!”

  화가 난 아빠는 냉장고 회사에 다시 전화를 걸어 고함을 쳤다.

  삼십 분 후에 냉장고 전문가라며, 세 사람이 집을 찾아왔다. 그들은 큼직한 가방과 값비싼 카메라, 그리고 노트북을 들고 나타났다. 냉장고를 돌려 부속품을 일일이 확인하고 수십 장의 사진을 찍으며 컴퓨터 작업을 했다. 그러더니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자세하게, 냉장고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설명하고 돌아갔다.

  “아니, 이게 말이 돼요? 분명히 아침에 냉장고에서 펑! 소리가 나면서 집이 이 모양이 됐는데 냉장고는 이상이 없다니!”

  “그럼, 우리가 이상하다는 거야? 세상에, 기가 막혀서!”

  아빠와 엄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나는 여전히 바닥을 뒤지고 있었다. 분명 어딘가 있을 텐데 도통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냉장고 뒤쪽을 보았다. 기사들이 벽에 붙은 냉장고를 떨어뜨려 놓은 까닭에 냉장고 뒤통수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말끔한 앞모습과는 전혀 다른 뒷모습이었다.

  “어, 이게 뭐지?”

  쭈그리고 앉은 나는 냉장고 뒤편에 붙어 있는 작은 종이를 발견했다.

  “엄마, 아빠, 이것 좀 보세요!”

  나는 엄마 아빠를 불렀다. 종이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화 한번 해볼까?”

  아빠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못 미더운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신선해 박사는 정말 있었다. 아빠는 신선해 박사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조금 뒤, 신선해 박사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냉장고 박사 신선해입니다.”

  흰색 네모난 테두리의 뿔테 안경을 쓰고 나타난 신선해 박사는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폭발은 언제 일어났는지요?”

  흰색 겉옷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면서 신선해 박사가 물었다.

  “오늘 아침 8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죠.”

  아빠가 대답했다. 신선해 박사는 수첩에 바삐 적으면서 또 물었다.

  “오늘 아침에 냉장고에 넣은 물건은요?”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긴 했지만 뭘 넣지는 않았어요. 간단히 뭐라도 먹을까 했는데, 시간에 쫓겨서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엄마가 신선해 박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대답했다. 신선해 박사는 아빠를 쳐다봤다.

  “아, 저는 뭘 넣지는 않고 물병만 꺼냈다 다시 넣었습니다. 아침에 물 한 잔이 건강에 좋잖아요?”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선해 박사는 나한테 한걸음 다가왔다.

  “전 아, 아무것도 안 넣었어요.”

  나는 뒷걸음치며 대답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신선해 박사는 수첩에 연필로 적다 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그러니까, 오늘 아침 냉장고 문, 안 열었다고요.”

  나는 신선해 박사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신선해 박사는 날 계속 쳐다봤다.

  “아, 딱 한 번 열었다 닫았어요. 우유 한 모금 마시면서……. 하지만 금세 도로 넣었어요.”

  “그럼 저기 바닥에 쏟아진 우유, 네가 먹다 만 거니?”

  엄마가 나를 쏘아봤다.

  신선해 박사는 수첩과 연필을 흰색 웃옷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냉장고 좀 살펴보겠습니다.”

  신선해 박사는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길이가 긴 상자 모양의 흰색 가방은 냉장고처럼 오른쪽 왼쪽으로 열렸다. 신선해 박사가 꺼낸 청진기는 끝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신선해 박사는 청진기를 냉장고에 갖다 대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런다고 무슨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나요?”

  엄마가 못마땅한 듯 물었다. 신선해 박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냉장고 구석구석에 청진기를 갖다 댈 뿐이었다. 무릎까지 꿇고 냉장고를 살펴보던 신선해 박사가 일어났다.

  “이제껏 폭발한 냉장고를 여럿 봤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냉장고는 처음 봅니다. 자, 모두 여기 앉아 보시지요.”

  신선해 박사가 식탁을 가리켰다. 엄마는 식탁 위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음식물들을 한데 모아 훔쳐낸 다음 의자에 앉았다. 머뭇거리던 아빠와 나도 주춤거리며 앉았다. 정사각형 모양의 텅 빈 식탁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식탁에 나란히 앉은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신선해 박사는 금세 가방에서 뭘 꺼내왔다. 어른 손바닥만 하게 생긴 냉장고 모양의 그것은 가늘고 긴 꼬리처럼 검은 전기선을 뒤꽁무니에 달고 있었다. 신선해 박사는 냉장고 뒤편에 전기선 끝을 연결하더니,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지직, 지지직…….”

  그것에서 소리가 났다.

  “이게 뭐예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쉿!”

  신선해 박사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또 뭘 사왔네. 아직 많이 남은 계란도 또 사왔어. 맨 밑 서랍, 거긴 노랗게 시들어버린 청정 미나리 한 단과 쪼글쪼글 말라버린 사과 세 알, 작년 여름에 들어온 시원한 냉면 2인분 봉지가 있어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그 위 서랍, 거긴 작년 겨울에 얻어온 유자차와 김장 김치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어 절반밖에 열리지 않는다고. 그 많은 걸 어떻게 집어넣겠다는 거야? 대체 이걸 다 언제 먹겠다는 건지……. 잠깐만, 그렇게 밀어 넣으면 어떡해? 아니, 틈은 남겨 둬야지. 갑갑해. 답답해 죽겠다고. 늘 이런 식이야. 비우지도 않고 늘 채우려고만 하면서 꼭 내 탓을 한다니까……. 지직, 지지직…….”

  “아, 아니, 이, 이게 무슨 소리죠?”

  엄마가 말을 더듬으며 신선해 박사를 쳐다봤다.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이건 냉장고의 속내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 주는 특수 장치입니다. 오랫동안 냉장고를 연구하면서 냉장고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냈지요. 그 사실을 증명하고자 애쓴 끝에 이걸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좋지 않네요.”

  신선해 박사의 말에 나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힐끔 쳐다보니, 아빠는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지직, 지지직……아니, 그건 음식도 아닌데 왜 여기 넣었다 저기 넣었다 하는… 지직, 지지직. 먹다 만 음식은 왜 날… 한 번 빨고 도로 넣어 둔 사탕… 이빨 자국이 그대로 찍혀 있는 초콜릿, 침 섞인 아이스… 한 입 떼어 먹고 넣어 둔 떡, 빵, 케이… 다시 먹을 것도 아니면서 왜 도로 넣는 건지 난… 지직, 지지직…….”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학교 갔다 집에 오는 길이면 꼭 뭔가가 먹고 싶어진다. 막상 먹으면, 맛이 없다. 내가 바라는 맛이 아니라 먹기가 싫어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집에 와 보면 내 손에 뭔가 들려 있곤 했다. 처음에는 냉장고에 집어넣어 놓고 퇴근한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엄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엄마가 집에 있었던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다. 그때 같으면 냉장고에 뭘 숨긴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을 거다.

  “내 앞에서 노래하… 좋지만 이렇게 오래 문 열고 있으면 곤란하… 지직, 지지직…….”

  잠시 멈췄던 소리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나는 벌어지는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냉장고는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보다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맥주는 왜 자꾸 구석진 자리에… 금방 찾지 못해 뒤적… 지직, 지지직… 제발 문 좀… 빨리 닫아… 힘들어 죽겠… 지직, 지지직…….”

  이건 무슨 소릴까. 혹시 아빠?

  아빠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큼큼, 기침을 했다.

  자꾸만 끊어지던 소리는 끝내 멈추었다.

  “안타깝게도 더는 듣기 어렵겠군요.” 신선해 박사는 특수 장치를 도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우리 얼굴을 차례차례 쳐다보았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차라리 먼저 말해 버리자. 심장이 쿵쿵쿵쿵 빠르게 뛰었다. 자, 바로 지금이야.

  내가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제가 먼저 말씀드리지요.”

  아빠가 끼어들었다. 나는 한숨이 났다.

  “어제 저녁,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서둘러 들어와 보니, 집에 아무도 없더군요. 전화하니까 신혜랑 신혜 엄마는 밖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거예요. 참 이상한 게 집에 들어오면 꼭 냉장고 문부터 열게 됩니다.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올 때가 많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고 있더라고요. 늦은 밤, 냉장고 문을 열면, 마주하는 환한 불빛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것 같고, 쓸쓸한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집에 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어 보는데……. 아빠도 나랑 똑같은 줄 몰랐다.

  “어제도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죠. 냉장고는 꽉 차 있는데 그게, 살펴보면 또, 먹을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통닭을 한 마리 시켰죠. 맥주 찾는다고 냉장고를 한참 뒤졌고요. 분명 어디 있는데, 음식들이 겹겹이 들어차 있어 쉽게 못 찾겠더라고요. 포기하고 혼자 앉아서 닭다리를 뜯는데 신혜하고 이 사람이 들어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같이 먹자고 했더니, 둘 다 됐다면서 각자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겁니다.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남은 통닭을 냉동실에 우겨 넣었죠. 문이 안 닫혀서 씨름 좀 했습니다. 새벽에도 잠을 설쳐서 냉장실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했어요. 솔직히, 아침에 냉장고 폭발했을 때 가슴이 철렁, 했습니다. 뭐랄까, 냉장고가 저한테 시위라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빠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방으로 들어갔던 나는 슬며시 나왔었다. 아빠한테라도 말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나왔었다. 하지만 아빠는 식탁에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지 아빠는 낄낄 웃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으로 도로 들어갔다.

  “당신 기다리다 나간 거예요. 신혜가 배고프다고 해서.”

  엄마가 말을 받았다. 아,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일이 많아 어제도 출근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큰 맘 먹고 한 가득 장을 봐왔는데 집에 오니 아무도 없어요. 어디 갔는지 신혜도 안 보이고, 신혜 아빠는 전화도 안 받고……. 맥이 탁 풀리더라고요. 조금 뒤에 신혜가 들어왔는데, 내 속도 모르고 자꾸 밖에서 저녁 먹자고 조르는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거 해준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가자고 하는데…….”

  “정말 배가 너무 고팠어요. 나, 오, 오디…….”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줄줄이 나오려는 말을 주워 삼켰다. 중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시하게 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할 수 없이 냉장고에 장 본 것들을 모조리 넣었어요.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꾸역꾸역 밀어 넣었죠. 잘 안 들어가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어떻게든 넣어버렸어요. 냉장고 문을 얼른 닫고 싶더라고요. 뒤죽박죽인 냉장고 속이 꼭 제 속과 닮은 것 같아서……. 아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엄마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 저도 할 말 있어요.”

  신선해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손바닥을 내리고 구부렸던 허리를 폈다. 아빠도 의자를 앞으로 잡아당겨 식탁에 바싹 붙어 앉았다.

  “그게, 그러니까…….”

  나는 눈을 껌뻑껌뻑하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지 수십 번도 더 생각했는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 어, 어제, 오디션 봤어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가슴에 매달아 둔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홀가분했다.

  “얘가 무슨 소리야, 오디션이라니?”

  나와 반대로 엄마 얼굴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처럼 흐려졌다.

  “언제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늘 바쁘시니까…… 말 못했어요.”

  “어제 엄마랑 단둘이 밥 먹을 때도 아무 말 안 했잖아.”

  “엄마 계속 전화 통화하고, 밥 먹으면서도 바빴잖아요. 난 계속 말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밥 먹으면서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 노래하는 게 좋아요.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

  “선생님 되는 게 꿈이라며?”

  엄마는 언제 한 말인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했다.

  “혹시, 냉장고 앞에서 노래 부른 적도 있나요?”

  뜬금없이 신선해 박사가 물었다.

  “네. 넓은 거울이 여기밖에 없어서 냉장고 앞에서 노래 부르곤 했어요. 어제 아침에도 여기서 연습하다 나갔고요.”

  나는 식탁 옆이자 냉장고 맞은편에 놓인 화장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 서서, 냉장고 문 두 개를 활짝 열면 멋진 조명이 나오는 근사한 무대 같거든요.”

  노래를 부를 때면 냉장고 속 온갖 음식들도 달라 보였다. 때로는 화려한 무대 장치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대 위에 오른 가수처럼 보이고 싶어서 이런 걸 냉장고에 숨겨 놨니?”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엄마가 식탁 위로 내 화장품들을 올려놓았다.

  “엄마, 이거 어디서……”

  “찾았느냐고? 저기, 구석에 계란을 뒤집어쓰고 있더라.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지. 계란을 닦아내면서도 내가 언제 사놓고 정신없어 냉장고에 넣어 둔 줄 알았어. 내 딸, 소신혜가 이런 걸 샀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지.”

  엄마 말이 불덩이처럼 내 가슴에 떨어졌다. 데인 것처럼 가슴이 홧홧하고 아팠다.

  “여기저기 숨겨 놓으면서도 어쩔 때는 들키고 싶었어요. 들켜서, 비밀처럼 혼자만 알고 있는 이야기, 다 털어놓고 싶었다고요. 내가 요즘 무슨 생각 하는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 본 적 있으세요? 나도 알아요, 엄마 아빠가 얼마나 바쁜지. 다 알면서도, 어제는 찬찬히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오디션 보면서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가슴이 터질 듯 떨렸는데도 노래 부르는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요!”

  목구멍이 뜨거웠다. 가슴 밑바닥에 있던 뜨거운 뭔가가 터져 나온 기분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냉장고에 청진기를 갖다 댔을 때 들렸던 노래 소리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소신혜 양의 목소리였던 겁니다. 소신혜 양, 한 가지 더 확인하고 싶은 사실이 있는데,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가운데 뭔가 빠뜨린 게 없나요?”

  신선해 박사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네?”

  신선해 박사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아침에도 엄마 아빠한테 얘기하고 싶었어요. 어젯밤에 잠도 잘 못 잤거든요. 어떻게든 이야길 하고 싶은데 눈도 마주칠 수가 없는 거예요. 눈치 보다 괜히 생각도 없는 우유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는 도로 넣었죠. 찬 우유를 마셔서 그런지 사르르 배가 아프더라고요. 화장실 갔다 나오는데, 엄마 아빠는 벌써 나가고 있잖아요. 그때, 왜 냉장고를 쳐다봤는지 모르겠어요. 가슴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더니,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확, 터져버려라! 그랬더니 일초도 안 돼서, 진짜로…….”

  그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정말이다.

  “냉장고와 인간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지는 경우란 극히 드문 경우입니다. 정말 드문 경우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냉장고와 소신혜 양이 서로 통한 겁니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난 거고요. 냉장고와 소신혜 양은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속을 들여다봐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게 아닐까요?”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자, 잠깐 일어나 보실까요? 모두 이리로 와서 냉장고 손잡이를 잡아 주세요.”

  신선해 박사는 활짝 열린 냉장고 문을 가운데로 모았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소신혜 양이 제일 먼저, 그리고 엄마 아빠가 차례차례 손잡이를 포개어 잡습니다. 그러면, 저는 뒤에서 전원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겠습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냉장고 속등을 켜려는 겁니다. 지금 전원이 꽂힌 상태에서도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거든요. 사람으로 치면, 기절한 상태라고 할까요? 마음이 담긴 전기가 필요한 순간이지요.”

  “아니, 이렇게 한다고 불이 켜질까요?”

  “여보, 일단 박사님 말씀 따라 한번 해보지.”

  옥신각신하는 엄마 아빠를 뒤로 하고 나는 냉장고를 마주보고 섰다. 살짝 열린 냉장고 손잡이를 꽉 잡았다. 손잡이는 차가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등 뒤에 선 엄마가 나를 감싸 안으며 내 손등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아빠의 두툼한 손이 나타나 엄마 손등을 덮었다. 순간, 손을 타고 찌릿한 뭔가가 전해져 온몸을 감도는 걸 느꼈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소리 나지 않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미, 안, 해, 우, 리, 딸. 갑자기 겨드랑이가 간지러웠다. 나는 웃음이 났다.

  “어, 켜졌어요, 커졌어!”

  냉장고에 귤빛 불빛이 들어오더니 우웅, 하면서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팔을 모으며 서로를 더 감쌌다. 냉장고 문이 저절로 탁, 닫혔다.

  분명 냉장고 문이 닫혔는데 어디서 띵똥, 띵똥, 띵똥, 소리가 났다. 신선해 박사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네, 냉장고 박사 신선해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신선해 박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식탁 위에 올려놓은 연필과 수첩을 챙겨 넣었다.

  “다른 곳에서도 냉장고가 폭발했다는군요. 어서 가봐야겠습니다. 아, 명심하세요. 한번 폭발한 냉장고는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을 알았으니 나머지는 잘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무엇이든 새로운 마음으로 채워 가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전 이만…….”

  신선해 박사는 냉장고 뒤편으로 쏙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냉장고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뒤돌아섰다.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엄마가 날 꽉 끌어안았다. 내 등 뒤로 아빠가 엄마를 껴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얼싸안았다. 한참 동안 껴안고 서 있었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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