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우리, 시 이야기 할까요?

 

우리, 시 이야기 할까요?

 ─ 첫 시집 발간 시인들과 함께

 

 

일시 : 2012. 5. 14(월)

장소 : 대학로 예술가의 집

진행 : 장은정

좌담 : 임현정, 이혜미, 최승철, 최정진

 

 

 


   장은정 : 첫 시집을 내신 네 분의 시인을 모셨습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시 스타일도 많이 달라 재미있는 좌담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되네요. 본격적인 좌담에 들어가기 전에 시집 준비 기간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하고 시집 얘기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최승철 시인께서는 등단한 지 10년 만에 첫 시집이 나왔고 임현정 시인께서도 11년 만에 나왔으니 감회가 특별하실 것 같습니다. 등단 이후 시집 준비 기간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임현정 : 계약서를 쓴지는 3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문학동네 시인선이 재출범되면서 제가 시인선에 편입되게 되었지요.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나름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견딘 것 같습니다. 늦은 만큼 그 기쁨이 배가 된 것 같기도 하구요. 계약하기 전까지 7년 정도는 당당해지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꾸준히 쓰면 언젠가는 알아주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물론 그 기간 동안 술과 함께 동거동락 했습니다.……(웃음)

 

   최승철 : 저는 2005년과 2008년, 시집을 내자고 하고서 엎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모두 경제위기 때문에 계약하자는 말이 오가다 연락이 없는 상황까지 갔어요. 저는 첫 시집 묶을 때 발표작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예 백여 편 되는 발표작을 다 엎고, 새로 써서 시집이 나왔습니다.

 

   장은정 : 그러면 시집에 묶인 시들도 최근에 쓰신 게 많겠네요?

 

   최승철 : 그렇죠. 거의 작년에 한꺼번에 쓴 작품들로 묶여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작의 느낌도 있고, 같은 맥락을 유지한 편입니다. 형식도 그렇고요. 장은정 : 두 분 모두 시집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처음 시를 쓸 때와 지금 시를 쓰는 것은 가치관이나 태도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 같습니다. 시집만 읽어선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일 텐데, 그런 변화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최승철 시인이나 임현정 시인보다는 비교적 빠른 편이긴 할 테지만 6년이나 4년도 그렇게 짧지는 않은 시간입니다. 이혜미 시인과 최정진 시인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혜미 : 저는 앞서 두 분에 비하면 순탄하게 낸 편입니다. 기다린 시간도 일이 년 정도였고, 오히려 일정이 약간 앞당겨졌어요. 원래는 2012년에 임현정 시인과 비슷하게 나올 예정이었는데 2011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2012년이어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준비시간이 많을수록 당연히 생각할 시간도 길어지고, 그만큼 더 단단해질 테니까요. 시일이 당겨진 바람에 급하게 낸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많이 들여서 (시집을) 내신 분들을 보면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도 들어요.

 

   최정진 : 저는 등단하고 시집을 내기까지 몇몇 사람과의 인간적 유대 빼곤 거의 모든 환경이 바뀌었어요. 사는 지역이 지방에서 서울로 바뀌었고 졸업한 학부가 아닌 다른 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구요. 그 외에도 여러 내밀한 환경들이 달라졌어요. 그 과정 속에서 쓰인 시들을 시집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시가 제 내밀한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가 삶의 전면이 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낸 것 같습니다.

 

   장은정 :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특정한 의미 단위로 분절하게 되는 건 역시 체험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에 의한 것일 텐데요. 다들 첫 시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시간들을 경험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최정진 : 제 시들로만 채워진 시집이 한 권 생기고 보니 정체성 자체가 조금 더 구체화되었습니다. 아, 내가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 더 실감이 났습니다. 하지만 안정감이 생기는 한편 이 책이 나를 증명해 주고 내 프로필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무엇인가 이제 결정되어 버렸다는 의미에서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되게 무서웠어요. 저희가 다 첫 시집을 냈잖아요. 내본 경험이 없으니. 내본 경험이 있다 해도 경험과 상관없이 이전과 다르게 받아들여질 테고요. 혼자 있을 때 무서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낯설기도 하고. 처음에 출판사에 가서 시집을 딱 받았는데 한참 동안 그냥 만지기만 했습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뭐랄까 만족감도 있고 아쉬움도 있는. 이런 감정들이 몇 달 동안 맥락 없이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엄청 행복했다가 엄청 우울했다가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말하다 보니 이런 감정 기복은 시집과 상관없이 자주 겪는 것 같습니다. (웃음) 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나니, 그 뒤로는 감흥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삶은 계속되잖아요. 계속되는 삶을 살고 또 이렇게 시집을 낸 뒤에도 시를 써서 계속 발표를 하구요. 지금은 두 번째 시집 쪽으로 관심이 옮겨지게 됐어요.

 

   이혜미 : 저도 비슷한데, 정말 격한 연애를 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최정진 시인이 얘기하셨듯이 기분이 확 좋았다가 갑자기 열등감 같은 것으로 치달았다가. 왜 연애할 때는 그 사람의 시선으로 저를 보잖아요. 그렇게 내 안에 있는 타인의 시선으로 시집을 매일 들여다보면서 저를 다시 보고 재정립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마감철이 닥치니 속된 말로 멘털붕괴, 멘붕이 온 거예요. 이 시집에도 속해 있을 수 없지만 다른 디딜 곳도 아직 없는, 굉장히 어중간한 상태가 된 것 같았습니다. 만화 같은 데 보면 뛰어가다 절벽 같은 데서 떨어지기 전에 “어? 어?” 하고 주위를 둘러보잖아요. 그런 어? 어? 하는 느낌이 두세 달 정도 계속됐습니다. 시집을 낸 바로 다음인 겨울 호 마감할 때 즈음에 심신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정말 땅이 없어진 것 같은, 지하철 정거장 건너갈 때 갑자기 떨어질 것 같은 느낌과 흡사하달까요. 여러 가지로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장은정 : 대답을 듣고 있으니 두 분 모두 첫 시집에 대한 소감보다는 두 번째 시집에 대한 모색에 더 가까운 상태이신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이혜미 시인께선 시집이 나온 지 8개월쯤 되었고, 최정진 시인께선 6개월쯤 되었으니 어느 정도 시간적 거리감이 확보된 상태인 것 같고요. 그에 비하면 최승철, 임현정 시인께선 시집이 나온 지 2,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또 조금은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최승철 : 저는 그와는 반대인 것 같습니다. 절망감 같은 감정은 똑같지만요. 제 경우엔 십 년 만에 시집을 냈는데 쓸 때도 내고 나서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정신세계 같은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정신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집을 냈는데, 정작 시장의 반응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기대감 같은 것은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출판사 분이 기대하지 마라, 천 권 내봐야 거의 안 나갈 것이다 말씀도 하셨지만, 저는 꼭 (시집이) 잘 나가고 안 나가고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이, 봐주는 사람이 전혀 없단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같은 걸 하면 그런 느낌을 받아요. 지면으로 나오는 것은 사람들이 잘 안 읽잖아요. 그런 면에서 더 절망감이 많았습니다. 가수도 관객이 있어야 하는데, 관객 없는 가수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절망감이 더욱 심했습니다. 한두 달 정도 그랬는데 최정진 시인과 비슷했어요. 어떻게 보면 약간 미친 짓 같지만, 지금은 두 번째 시집은 어떻게 해야 대중과 소통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두 번째 시집을 얘기하는데 (웃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대중이 읽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너희들이 읽을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식의 오기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장은정 : 시집을 냈음에도 독자가 없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면서, 지금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문제의식을 절감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면 첫 시집을 낸 것이 두 번째 시집에 있어선 문제의식도 바뀌는 계기가 되겠군요?

 

   최승철 : 첫 시집이 나오기 전과 나온 뒤의 느낌이 다릅니다. 첫 시집이 나오기 전에는 어떤 시인들의 시집을 보면서 뭐 이런 시집을 냈나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내고 나서는 겸손해지게 되었습니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이런 쓴소리 같은 것을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임현정 : 시집이 나온 지 약 한 달밖에 안 된 상황이라 저는 아직도 들떠 있습니다. 꽤 오래 기다렸다가 나온지라 제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거예요. 마냥 웃고 다니다가 전봇대에도 많이 부딪쳤습니다.

 

   장은정 : 임현정 시인께서 네 분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대답을 하셨네요. (웃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와 관련된 질문을 던져 볼까 해요. 다들 언제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시나요? 이 질문은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에 관한 질문인 동시에 삶 속에서 시가 어떻게 비롯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이 각 첫 시집이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힌트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임현정 : 예전의 시들은 제 안의 감정에 주목해서, 그 감정들을 녹여내고 담금질해서 썼습니다. 당장의 감정이 슬픔이라면 그런 감정들을 사물에 투영해서 쓰는 방식이었지요. 요즘은 지나가다 문득 사물과 눈이 마주치는 거예요. 최근에는 55년 동안 구두를 닦았다는 입간판을 작은 승합차 옆에 세워 놓은 것을 봤어요. 그 작은 간판 하나가 저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습니다. 당장 저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쓸쓸하고 애틋한 것들이 자꾸 저를 붙잡는 것 같습니다.

 

   장은정 : 삶 속에서 마주치는 장면들이나 대상을 마주쳤을 때 그 계기가 된다는 의미죠?

 

   임현정 : 네. 이제는 제 안의 감정들보다는 오히려 사물들이나 풍경들이 저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듯합니다.

 

   장은정 : 그러면 예전에 등단 전에 처음으로 시를 쓰고 싶다고 느낄 때와 지금 시를 쓰고 싶다고 느낄 때, 그 원동력이나 열망을 느끼는 종류가 좀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처음 시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와 지금 현재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할 때, 그 열망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동일한지 궁금해지네요. 최승철 시인께서도 앞서 초기에 쓴 시들을 거의 제외하고 최근의 시들로만 채워서 시집을 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변화가 유독 크실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최승철 : 저도 임현정 시인과 비슷하게 처음엔 서정 같은 것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삶이 순탄하지 않았어요. 최정진 시인도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하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졸업할 때는 IMF를 경험했고, 2008년에 취직을 생각할 때는 금융위기를 경험했습니다. 경제라는 것 자체가 저를 건드렸던 겁니다. 이 시대에 시인도 어쩔 수 없이 경제와 같이 돌아가고 있잖아요. 3포세대의 느낌을 그대로 제가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럴 때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경우엔 실생활에서 느끼는 관념에 대해 생각하는 편입니다. 경제도 사실 관념이잖아요. 제가 맞닥뜨리는 관념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다른 편이고, 그런 지점에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처음하곤 달라졌죠.

 

   장은정 : 처음 시를 쓸 때가 서정적 상태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경제적인 것들과 연관되는 현실적 제약들과 한계들을 경험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셨다는 거군요.

 

   최승철 : 네, 하지만 이동을 해도 서정은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임현정 시인 시집에도 서정이 있던데, 요새는 서정 속에서 다른 것들을 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버전이 업데이트 안 된 서정이라고 한다면 요새는 업데이트된 서정들을 가지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봐야겠죠.

 

   이혜미 : 저는 최승철 시인과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제야말로 다시 사람을 보고 그 안의 관계들과 감정의 흔들림 같은 것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집을 낸 뒤에는 촉 같은 것들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또 조금 더 그것들을 파고들어갈 용기를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걸 써도 되는지 걱정도 하고, 이렇게 쓰면 유치하거나 감상적이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그런 부분을 조금 더 잘 다듬고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실제로 문학사라든가 시대상을 너무 의식하며 그 시대의 자장 안에서 내가 무엇인가 해야겠다거나 한 자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사라는 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 우리가 문학사나 시대상들을 반영하면서 그 안에서 무엇인가 하려는 것은 인위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원동력이라고 할까, 처음 썼던 느낌대로 감정이나 마음의 균열 같은 것들을 더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장은정 : 이혜미 시인의 답변을 듣고 있으니 오랫동안 “사람의 바깥”에서 머무르다가 시를 쓰며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보라의 바깥』의 시인의 말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네요. 최승철 시인께서 시가 출발하는 지점 자체에서 변화가 있었다면, 이혜미 시인께선 그 출발 지점은 같지만 깊이의 층위에서 달라졌다는 점이 변화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면 최정진 시인께선 어떠신가요?

 

   최정진 : 저는 관계에서 어떤 괴리가 느껴질 때가 출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딱히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 없이 처음엔 관념적으로 정리를 하지 않고 쓰기 시작합니다. 그걸 모으면 A4 용지를 기준으로 10매에서 20매 정도 되는데, 제가 써둔 것과 저 사이에서 어떤 괴리가 생기고 제가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쓰는 것을 제가 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장은정 : 이중적 과정을 거친다는 말씀 같군요. 생활에서 직접 비롯된 언어가 진짜 출발점이 되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는 것이고요.

 

   최정진 : 그렇죠. 중요한 건 첫 번째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시작을 하려고 하면 또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이 과정을 계획하고 시를 쓰는 것도 아니고요. 한 번에 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도 제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 과정을 거친 다음이더라고요. 고민한 것을 모두 시로 쓴다기보다 시적인 고민을 하다가 제게 절실한 부분만을 쓰게 됩니다.

 

   장은정 : 같은 질문인데도 전혀 다른 지점들에서 답변이 나오니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시 쓰기에 있어서 경계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나아가려는 방향이 있다면, 그 방향과 대립되는 제지하는 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질문은 지향점에 관한 앞의 질문을 정반대의 방향에서 뒤집어 묻는다는 점에서 사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질문일 수도 있겠네요.

 

   이혜미 : 아무래도 개인 상징이랄까, 저만 아는 상징을 쓸 때가 많습니다. 저한테는 당위가 있고 논리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맥락이 없는 상징인 거죠. 그런데 그렇게 써놓고 개인적으로는 되게 만족을 하거든요. 하지만 어차피 시라는 것이 암호문으로 쓴 일기가 아니니까, 그런 부분들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나만 아는 얘기를 하지 말고 모두가 알 수 있게, 개인적으로는 좀 뭉툭하게 형상화되더라도 읽는 사람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시집을 보신 분들이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저는 어려운 편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긴 하지만, 어렵다는 얘기도 그런 상징의 개인성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것을 경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현정 : 저도 비슷합니다. 독선적인 시나 나 혼자만의 얘기 같은 것을 경계합니다. 편하면서도 충분히 공감이 되는 시를 추구하는 편이지만 반면, 시시한 이야기가 될까 봐 걱정을 합니다. 개성을 마저 놓치고 그렇고 그런 시시한 것들로 치부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시를 십 년 정도 썼는데 사람이 변하는 것처럼 시도 변하잖아요. 그러면 적절하게 변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이 생깁니다. 어쩔 수 없이 변하긴 하는데 너무 시시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장은정 : 경계하려는 것이 서로 이질적이고 대립되는 양쪽을 견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는 읽는 이의 해석적 층위를 염두에 두면서도 그 관습적 해석들로부터 이탈하고자 하는 의지일 테고요. 이전에 없던 시를 추구하면서도 읽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시를 고민하는 것은 많은 시인들에게 공통적인 지점일 것 같습니다. 최정진 시인께선 어떠신가요?

 

   최정진 : 나는 문학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속해 있다는, 내가 시인이라는, 그런 의식이 세상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은 긍정하지만 그런 의식이 주는 이상한 안정감은 거부하는 편입니다. 그런 안정감을 거부하는 것이 시인들의 공통된 태도 같기도 하고요. 언제 시적 열망을 느끼는지에 대한 앞 질문에서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제가 써놓은 시와 제가 생각하는 문학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이후 같습니다. 제가 상상하는 저와 실재의 저가 다르듯이. 여기에 문학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제가 또 따로 있고요. 이런 괴리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어떤 한 가지 시선을 경계하게 된 것 같아요. 쓴 시가 곧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거나, 쓰는 입장에서도 자기가 쓴 시가 자기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경계하는 편입니다.

 

   최승철 : 앞에서 얘기하신 분들과 공통점이라면 난해성을 경계하고, 긴장이 빠지지 않을까 경계하는 것입니다. 거기 추가하자면 시대적인 것을 같이 가지고 가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시대를 외면하는 어떤 시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경계를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그 시대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시에서 아우를 것인지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지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최정진 : 안 좋게 말하자면 저는 겁이 많은 것일 수도 있는데, 시대와 연결되는 지점이 과연 제가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인지 망설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겐 그 관심을 가지는 과정 자체가 시가 되더라고요. 최승철 시인처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때 저는 부럽기도 합니다.

 

   최승철 : 거기에 맞는 형식 같은 것은 다 고민하지 않나요?

 

   이혜미 : 노골성 같은 것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대 부응에 관련해서는요. 저도 첫 시집에 노무현에 대한 시가 있지만 그걸 아무도 모르거든요. 꼭 알아야 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것들은 본인이 표출하려면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너무 노골화하고 강제하진 말아야겠죠.

 

   장은정 : 사실상 시라는 것이 시대적 의식을 드러내겠다는 자의식을 가진다고 해서 시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시대적 의식을 완전히 제외시키겠다는 자의식을 가진다고 해서 시에서도 완전히 삭제되는 것은 아닐 텐데요. 시가 쓰이는 과정은 언제나 의도 속에서 조율되지만, 시가 완성되어 지면에 실리면 시는 시인의 의도가 움켜쥐는 손을 벗어나 독자들의 해석적 층위로 새롭게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때문에 시대에 대한 시적 자의식을 가지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옳지 않은지에 대한 태도가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어떤 특정한 태도가 시라는 언어의 프레임을 통과하며 어떻게 굴절되고 왜곡되어 반영되느냐의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과 경계하려는 것들에 관해 들어 봤는데요, 그러한 인력과 척력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건 시를 쓰지 않는 삶과 비교했을 때 많은 점에서 변화를 가지는 것 같아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그러나 자발적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긴장 속에서 힘들게 살아간다고나 할까요. (웃음) 저도 비평을 쓰기 전과 쓰기 시작한 이후 많은 부분이 달라졌는데, 시인들께선 그런 변화가 더 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를 쓰기 전과 비교했을 때,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생긴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최정진 : 일단은 정상적인 시간개념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웃음) 우리가 한 편 쓰고 마는 것이 아니고, 쓰고 또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강박이 심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를 한 편 쓰고 나면 그 시 한 편의 시선으로 세계가 보입니다. 또 한 편을 쓰고 나면 (시선이) 조금 바뀌어서 또 그렇게 보여요. 제 가족이 그렇게 보이고, 제 주변사람이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여겨집니다. 어쩔 땐 저는 제가 만든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를 쓰는 것도 같아요. 저를 부정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죠. 그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설레는 면도 있지만 고통을 주는 것이기도 하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고통스러운 것을 집어넣고 내면화시키는 그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 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 과정 자체를 자꾸 의식하게 되고 이 과정 자체를 고민하게 되요. 그러면 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딱 닳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아무 표정 안 짓고 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말로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그렇다고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고요. (웃음) 어쨌든 이렇게 의식하는 것이 괴롭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시를 못 쓰니까요. 그러다 보면 의식을 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의식하지 않는 쪽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런데 의식하지 않는 것도 고통스러워서 또 의식하는 쪽으로 옮겨가게 돼요. 그럴 때 동반되는 고통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운데, 그게 시 쓰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시 쓰기에는 여러 가지 고통이 수반되지만, 아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란 제 삶과 관련되고 제 가치관과 관련된 정도겠죠. 시는 그중에 스스로 제가 겪을 고통 하나를 골라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라고 믿고는 싶은데 사실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저를 넘어서는, 제 시에 제가 제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자꾸 그쪽을 보게 됩니다.

 

   최승철 : 대학교 때부터 근 이삼십 년 지나니까,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걸 활용하기 시작하는데 소통이 안 될 때가 가끔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독자들은 이 시집이 어렵다는데 제가 보기엔 너무 쉬워서 한 시간 내로 다 읽어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어려움이라고 하니까 또 드는 생각이 있는데, (제가) 산문을 못 씁니다. 저희 집사람이 소설 쪽 문청이어서, 산문을 많이 쓰고 있는데, 집사람 방에는 소설이 천여 권 있고, 제 방에는 시집이 천여 권 있습니다. 이게 소통이 안 돼요. (웃음) 제가 문장을 쓰면, 저는 분명 쉽게 차근차근 나갔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희 아내는 왜 중간이 다 빠졌느냐, 비약을 했느냐 말하는 겁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비약과 점핑이 있어야 재밌잖아요. 그런 것들이 다 소통이 안 돼요. 저는 키득키득 웃는데 집사람은 왜 웃느냐고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또 집사람은 이 소설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저는 첫 장을 보자마자 끝을 다 알아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요. 소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이렇게 가리라는 것을 아니까요. 백 회짜리 드라마를 중간에 봤는데도 이게 이렇게 돼서 이렇게 될 거라는 느낌이 오잖아요. 그럴 때 어려움이 생깁니다.

 

   최정진 : 글을 쓰실 때, 시를 쓰거나 산문을 쓰려면 전환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게 잘 되세요? 제가 잘 안 되어서요. (웃음)

 

   최승철 : 저도 잘 안 돼요. 시인들이 쓰는 소설이나 수필 같은 것이 잘 안 팔리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인들이 쓰는 산문에는) 점핑이 있는데, 그런 점핑을 누군가 잡아 줘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것 다음에는 그것 아닌가? 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니까요. 예를 들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쓰면 이건 당연히 (이렇게)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왜 바람이 분다와 살아야겠다 사이가 빠졌느냐고 지적하는 거죠. 우리는 이렇게 가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인데,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많은 게 빠졌다고 하니까요.

 

   장은정 : 시를 쓸 때엔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서의 직관력이 일반적인 생활에서는 어려움이 되는 것이군요. (웃음) 임현정 시인께서 시를 쓰면서 생긴 어려운 점은 어떤 점이 있으세요?

 

   임현정 : 저는 그렇게 심화된 답은 아닌데, 의무적으로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직업이 됐으니까요. 누군가 아무개의 시가 좋다고, 한번 읽어 보라고 하면 읽게 되잖아요. 남이 좋다고 하든지 말든지 제 취향은 정해져 있고, 저는 이게 좋은데도 다른 사람의 취향에도 솔깃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 흐름에 따라서 안간힘을 쓰며 읽어야 할 때가 괴롭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제가 멋대로 읽었으면 됐으니까요. 그런 것이 안 되니까 자유를 좀 잃은 느낌이 듭니다.

 

   이혜미 : 저도 비슷한데, 마감에 맞춘 생활이 패턴이 되다 보니까 ‘선주문 후제작’처럼 되는 것 같습니다. 마감을 청탁받고 거기에 맞춰서 쓰는 생활을 계속해 왔어요. 등단 이후로 계속 “가을호, 겨울호……”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 보니 한 계절에 (청탁이) 있으면 쓰게 되지만 없으면 안 쓰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마감이 주는 압박이란 것이 어느 순간에는 필요하기도 합니다. 두 계절 정도 (청탁을) 못 받으면 시를 한 편도 못 쓰는 거예요. 그런데 어쩌다 (청탁이) 몰리게 되면 그때는 또 미친 듯이 씁니다. 그런 식의 압박이 일상화되다 보면 구속이 체화가 돼요. 그래서 저는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마감”이라고 농담을 합니다. 그 정도로 계속 시달리고 쫓기는 것이 아무래도 스트레스나 마음의 부채(負債)가 되죠. 공부와 병행하려다 보니 과부하가 걸릴 때도 굉장히 많아요. 예전에 학부 시험 기간이었는데 마감이 (같이) 걸려서 마감이 이십 일 늦었어요. 그래서 시험 기간에 울면서 시를 썼는데 결국 둘 다 제대로 못 했어요. 그 사이에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장은정 : 시를 쓰면서 생긴 어려움들을 물었으니, 이제 좋은 점들을 물을 차례네요. 사실 좋은 점부터 물어볼까 하다가 순서를 바꿨어요. 힘들어진 점을 나중에 묻게 되면 결국 한탄으로 귀결될 것 같더라고요. (웃음) 그러니 이번 질문은 시를 씀으로써 생겨난 저 수많은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시를 쓰는 이유에 관한 것이겠네요. 질문이 너무 비장한가요? (웃음)

 

   임현정 : 저는 다 좋습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웃음)

 

   장은정 : 시집을 내신 소감에서도 유일하게 긍정적인 답변을 하시고, 어려움에 대한 답변 역시 가장 짧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요. (웃음)

 

   임현정 : 물론 (어려움도) 있었겠죠. 하지만 시를 쓰면서 좋은 것이라면, 저는 예쁘지도 않고 성격 좋지 않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시를 쓰는 것 자체가 저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제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고, 다른 시를 읽었을 때 간혹 정말 부럽다고, 잘 쓴다고 느끼는 열등감까지 좋습니다. 내가 언젠가 따라잡아야지, 하는 마음마저 생깁니다. 최근에는 책이 나왔기 때문에 더 좋아요. 아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정말로 시 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장은정 : 더 구체적으로 궁금합니다. 어떤 점에서 특별한 것인지…… 그러니까 시 자체가 좋으신 건가요?

 

   임현정 : 네, 시 자체도 좋지만 시를 쓰는 제 모습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절 봤을 때의 시선도 좋고요. 저란 여자 술도 잘 마시고 이런저런 나쁜 점이 있지만, 그래도 시 쓰는 사람이니까 다 괜찮다는 프라이드도 있어요. 별것도 아닌 자신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점이 좋습니다.

 

   장은정 : 저는 임현정 시인의 자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시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태도 자체가 극히 드물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전히 그 태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거죠. 사실상 그 태도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는데, 그걸 잊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경험한 것 같아요.

 

   임현정 : 아직도 시는 저의 일번이에요.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뮤즈가 얼마나 질투심이 많은지 아실 거예요. 조금만 딴 곳을 보면 바로 토라져 버리거든요. 저는 결코 마음을 주지 않는 그녀를 위해 꾸준히 연정을 품을 뿐이랍니다. (웃음)

 

   장은정 : 이건 사랑 고백이군요. (웃음) 최승철 시인께선 어떠세요?

 

   최승철 : 누구는 청탁이 와서 쓰지만 저희 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시를 쓰고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뭐가 됐든 제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시를 알게 되고 쓰게 되면서 좋아진 게 있다면 이런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책을 별로 안 봤어요. 제 주먹이 싸움꾼 주먹이거든요. 펴면 작은데 쥐면 커져요. 매일 싸움만 하고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딱히 많이 안 했고, 싸움 아니면 할 게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시를 알게 되면서 사람이 착해지고, 변화된 것 같습니다.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술을 먹고 깽판을 부려도 시 때문에 깽판을 부리지, 다른 것 때문에 깽판을 부리지는 않거든요. 그 전에는 악한 마음도 약간 있었던 반면에 시를 쓰게 되면서 착해지는 겁니다. 세상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시에서는 나타나도 실제 생활에선 그렇지 않게 되는 거죠. 인성이 좋아졌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싸움만 하던 놈이 시 쓴다고 하니까 그것도 웃기죠. 그리고 그렇게 이십 년 넘어오니까 얼굴도 동안이…… (웃음) 예전에는 정말 고등학교 사진이 훨씬 무섭고 현상 수배범 같았는데 지금은 애기 같은 피부? (웃음) 시인들 보면 다들 동안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에 한해서는 깨끗해지고 착해지잖아요.

 

   최정진 : 저는 좀 건강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려운 점은 끝도 없이 계속 나오거든요. 그런데 좋은 점이 하나도 생각 안 나요. 투덜거리는 스타일이죠.

 

   임현정 : 그래도 좋으니까 계속하시는 거 아녜요? 끊을 수가 없는 거예요?

 

   최정진 : 그렇죠. 말을 잘 해야 하는데…… (웃음) 시를 쓰기 전을 생각해 보면 취향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싫어해요. 크고 작은 변화가 있긴 하지만 가치관 같은 것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궁금하면 행동하는 성격이었거든요. 궁금한 것은 다 해봐야 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달라진 점은 그 속에서 그 과정 자체를 느끼는 성격으로, 느끼고 감각하려는 성격으로 바뀌었고 또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장은정 : 오히려 행동을 지체하고 또 지연하게 된 것이군요.

 

   최정진 : 네. 속도감 있게 나가버리면 오히려 느꼈던 것들이 어그러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된 활발함이나 가장된 선명함만큼 진부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상식의 눈에서 느리면 늦게 되고 언뜻 수동적으로 비치지만 문학적인 눈은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이혜미 : 대체적으로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 쓰기는) 내면을 재구성화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요철들이나 생각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저는 (시를) 일찍 쓴 편이었거든요. 네. 중학교 때부터 백일장에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시를 썼던 것인데, 어릴 때 저는 외동딸이었고, 성격이 너무 이상했어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러면 너무 외롭잖아요. 외로운데 (저를) 자꾸 괴롭히니까 사람을 점점 싫어하게 됐어요. 길을 걷다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너무 싫어서, 집에서 제일 두꺼운 책을 가지고 나와서 (얼굴을) 가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보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책이 돌파구이자 창문 같은 기능을 한 거죠. 그리고 시를 쓰면서 굉장히 많이 (내적) 재구조화를 했고, 결정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제게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전에 저에게 사람이란 몸도 예쁘지 않고, 행동도 말도 예쁘지 않은 존재였거든요. 고통만 줬죠.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이렇게 말을 걸고, 그것에 대해서 쓰기 시작하려고 하니까 사람이 말하는 것, 화내는 것, 무언가를 손으로 집어 드는 작은 몸짓 같은 것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를 시가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시는 제 인생에 걸쳐서 고마운 존재죠. 물론 애증의 관계이긴 하지만.

 

   장은정 : 사람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로 상처를 받았고, 그 고립된 상태에서 쓰기 시작한 시가 오히려 사람에게 다가가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들과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질문들이 개인적인 태도 문제나 가치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삶과 갖는 연관성에 대해 얘기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집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첫 시집에 묶인 시들을 쓰는 동안 중심이 되었던 사유나 고민, 혹은 지향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여쭤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시인들에게 직접 묻기보다는 비평적 작업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 더 적합한 것이 사실이지요. 사실 시집이라는 것은 이러저러한 것들에 관해 쓰겠다는 시인의 기획적인 의도 하에 쓰이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이 질문은 시집을 쓴 사람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라기보단, 어느 누구보다 가장 세밀하게 시가 써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온, 시집을 처음으로 받아 본 첫 번째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임현정 : 저는 이 질문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사유를 하고 시집을 묶는다기보다 보통은 그 시기에 따라서 시집을 묶잖아요. 물론 그 시기에 공통되는 사유나 혹은 관통되는 어떤 것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저는 이 시집을 사유나 고민, 지향점으로 묶은 것은 아닙니다. 여기 묶은 시들은 저에게는 한 2기나 3기쯤 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등단한 무렵의 초기작들은 (시집에서) 뺐거든요. 한두 편 빼곤 없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교의 그늘에서 벗어나, 제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본 최초의 시편들이에요. 저에게는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혜미 : 제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뭘 보여주고 싶은지, 이 한 권을 묶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요.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을 해본 적이 없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집을 묶으면서 무슨 제목을 붙일 것인지, 첫 시와 마지막 시는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구조적인 것을 결정할 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보라의 바깥’이라고 이름을 정한 것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해 많이 생각했거든요. 우리는 가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빨강에서 보라까지밖에 볼 수 없지만, 그 바깥의 부분이 분명히 있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바깥의 더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비만 해도 꽃의 많은 무늬를 볼 수 있다고 해요. 무늬를 내어 꿀이 있는 곳으로 유도하는 꽃의 활주로라든가. 그런 것들을 식별하고 인식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냥 민무늬 꽃이죠. 그런 식으로 비가시적인 것들이 줄 수 있는 무한한 영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 얘기를 많이 했던 것도 그들에게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의 어떤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특히 빛이나 색에 대해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녹색의 경우, 이 색은 녹색 아닌 것은 다 흡수하고 녹색만 반사합니다. 그래서 녹색으로 보이는 것이죠.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녹색은 녹색이 아닌 거잖아요. 오히려 녹색이 아닌 모든 것이죠.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장은정 : 이혜미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색깔에 대한 특정한 자의식이 있다는 추측을 했었는데, 그에 대한 답변으로 들을 수 있겠네요. 최승철 시인께선 어떠세요?

 

   최승철 : 저는 왜 시집이 안 묶이나, 생각을 하는 동안 이런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사유, 고민, 지향점에 대해서요. 한편으로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본질을, 정신을 다루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라는 의문점이 생기잖아요. 시인들은 모두 방법론을 고민하니까요. 그래서 빗금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빗금이 이미지를 충돌시킵니다. 충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화도 생겨야 할 것입니다. 이미지의 충돌과 조화요. 요즘 유행어 중에 ‘멘털붕괴’가 있잖아요. 그런데 멘털이라는 말에는 예닐곱 개의 뜻이 있고, 붕괴는 건축에서 쓰이는 이과적인 용어예요. 이런 단어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단어를 방법론적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정신이나 본질에 관한 것을 지향하는 거죠. 그런데 ‘화엄경’에 본질은 없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사실은 그 말을 듣고 멘털붕괴가 일어났어요. (웃음) 그렇다면 정말 없는지 한번 보자고,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질이 없다면 무를 향해 가는 거죠. 장자가 말하는 무의 개념처럼 설령 아무것도 없더라도 분명 우리 삶에 다가가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지의 충돌과 조화는 다른 시인들도 많이 하고 있지만 그걸 극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다른 시인들이 (시집에서) 한두 편 정도 해보고 그쳤다면 저는 다 넣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최정진 시인은 이것을 다 빼버린 느낌이 들었는데, 저는 그런 것으로만 다 채워버리고 싶었습니다. 누가 저에게 왜 시집이 이렇게 두껍고 기냐고 물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내 안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모든 시인들이 다 본질을 추구하잖아요. (저는) 그 끝을 한번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약간 크죠. 지금 대담을 하면서도 느끼는 것인데, 이혜미 시인은 목소리가 작잖아요. 저는 목소리 톤이 높아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시집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이혜미 시인이 낮게 깔린다면 저는 고음이에요. 말 그대로 불협화음입니다. 록 음악처럼 시끄러워 죽겠다는 느낌으로요. 하지만 사실 지향하는 맥락은 똑같습니다. (이혜미 시인이) 보라의 바깥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본질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저도 그것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은정 : 『갑을 시티』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고 있고, 시집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빗금 형식일 텐데요. 이 빗금들은 사건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면서 하나의 통합된 유기적 대상으로 의미화시키지 않도록 사건 내부의 이질적 요소들을 그 요소들 자체로 머물 수 있게 보호해 주고 동시에 사건의 종합적 시선을 불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불가능성이 오히려 무(無)로서의 중심점에 대한 강력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게 흥미롭고요. 최정진 시인의 경우는 어떠신지요?

 

   최정진 : 특별히 지향점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는데 제가 쓴 시와 제가 추구하는 것이 연결이 안 되니까요. 그렇다고 저를 방기하는 것 아니고요.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저를 극단적인 집중력 상태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문학적 요소라든지 삶에서 겪은 것들, 언어에 대한 자의식, 시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따로 떼어서 의식할 수 없는 상태로 뒤섞이게 제 자신을 몰아가는 면이 있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할 땐 저도 무엇을 쓰게 될지 모르고 그렇게 시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지향점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말보다 제 감각을 의심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해야겠네요.

 

   장은정 : 지향점을 만드는 것이 시들을 특정한 의식적 사유에 고착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향점을 없애는 방식을 통해 그 구분을 무화시키는 방식으로 나아가려 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다양한 답변 속에서 각자의 개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다들 자신의 시집에서 개인적으로 유독 특별한 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런 특별한 시들은 시집에서 더 중요한 해석적 위치를 차지하거나 시집의 전체 구성 내부에서도 중심에 놓이게 될 것 같고요. 이에 대한 답변들은 시집을 종합해서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힌트가 되어 줄 것이라 추측하게 되는데요. 현재 가장 특별한 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최정진 : 예전에는 어떤 시를 쓰기 전에는 지금 쓰고 있는 시가 가장 특별하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고, 그렇게 말도 해왔습니다. 시 한 편을 쓰는 동안엔 그 시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다가 새 시를 쓸 때는 한 시에 집중하는 만큼 그 전의 시를 잊게 되잖아요. 중요한 건 제가 쓰는 시의 내용에 완전히 매료된다기보다는, 저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쓸 때는 시적인지 아닌지 잘 모르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어떻게 보이는지도 모르다가 여러 편을 쓴 다음에 예전에 쓴 시가 한 번 더 낯설어진 다음에서야 그 시가 시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쓰고 있는 시가 가장 특별했었는데, 「로션의 테두리」를 쓰고 난 뒤로는 아직까지 현재 쓰고 있는 시가 가장 특별하다는 그 말이 안 나옵니다. 시 자체에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떠나서, 그 시(「로션의 테두리」)를 쓸 때 이전과 다른 경험을 했어요. 직접적으로 말하기엔 곤란한 경험이라 이 질문을 받고 미리 추상화를 시켜서 정리해 보려고 해봤습니다만 잘 안 되더군요.

 

   장은정 : 그렇다면 시를 쓰는 과정에서 오는 특별함 같은 것인가요?

 

   최정진 : 예, 그때 느껴졌던 어떤 강도 같은 것이…….

 

   장은정 : 그 강도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웃음) 다른 분들은 어떤 시를 특별하게 여기시나요?

 

   이혜미 : 물고기에 대한 시가 몇 편 있습니다. 물고기에 대한 천착이랄까, 집착 같은 것이 약간 있는 편입니다. 수족관도 굉장히 좋아하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물고기들을 보고 그들이 느끼는 몸의 감각을 얻어 보기 위해서였거든요. (물고기들은) 몸 색깔도 너무 아름답고, 사람의 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균형미 같은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저를 홀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고기에 대해) 굉장히 여러 편을 썼고 물에 대한 것도 여러 편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처음, 중간, 끝에 들어가 있는 「어비목(魚比目)」이나 「측백그늘」, 「투어(鬪魚) 」 같은 시편들이 전체적으로 시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결을 이루어 주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그 시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순도 있게 녹여낸 것들이라서 좀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임현정 : 저는 「나무 위의 고양이」라는 시가 가장 저다운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를 쓸 때, 유모차를 끌고 나갔는데 벚나무에 벚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그 나무 위에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저와 눈을 한참 마주치고 있었어요. 쟤 뭐 좀 아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그 후로 며칠 동안 그 주변을 서성이다가 나온 시입니다. 그 무렵에 쓴 가장 감각적인 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그 시가 감히 그 무렵의 대표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승철 : 저 같은 경우엔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그리고 붓다」라는 시를 표제작으로 하려 했는데, 종교적인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말을 들어서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2008년 무렵에 그 시를 발표했는데 그 후로 3년 동안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시집도 아예 읽지 않고, 손발 자르듯이 직장만 왔다 갔다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문장 하나하나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너는 왜 시를 써야 하느냐. 시는 무엇이냐. 본질적인 질문에 접근했을 때, 제가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답이 생길 때까지 쓰지 말자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답 같은 것이 내부적으로 생긴 것이 아마 ‘붓다’였을 겁니다. 그러니까 너는 이런 시를 써야 한다는 느낌, 그것이 너의 본질 같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면서, 다시 시를 쓰게 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 시를 맨 앞에 두려고 했는데, 두세 번째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물론 「내 사랑 아햏햏」 같은 경우는 그 전에 썼던 것인데, 발표한 건 아니었거든요. 아까 최정진 시인이 얘기한 것처럼 이 시집에 들어갈 것과 안 들어갈 것을 구별하다 보니까 그 전에 썼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래서 몇 편 간추리게 되면서 그 다음 사오십 편을 쭉 써버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작품에 특별히 애착이 갑니다.

 

   장은정 : 서로의 시집에서 인상 깊었던 시가 있다면 자유롭게 얘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들 서로의 시집을 미리 읽어 오셨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시가 혹시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최승철 : 최정진 시인의 경우엔 「열차의 윤곽」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 작품과 「동경1」이 좋았어요. 「동경1」은 이 시집을 읽게 하는 키워드라고 보았습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시인들에겐 이 시를 통해 시에 들어가서 다시 빠져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저는「동경1」을 읽고 이 시집 전체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차의 윤곽」을 보며 이 시가 이 시인의 최정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동경1」을 읽으면서는 도대체 (시집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동경1」에서 내가 데려다주는 사람과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이 다르다는 문장을 보고 이게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골목 끝에서 불 꺼지는 느낌들이 이렇게 들어온다는 것을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면서 잘 모르는 채로 읽어 나갔던 것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열차의 윤곽」에서는 나이 많은 시인이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뱃속에서 발길질을 배운다라는 문장도 그렇고, 바닥을 온 힘을 다해 차면서 아이가 엄마에게 다가가고 있다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임현정 시인의 시집에서는 「나무 관을 짜는 남자」와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좋았습니다. 「나무 관을 짜는 남자」는 별을 못 박는다는, 역설적으로 역치된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오독일 수도 있지만요. 「오렌지 마멀레이드」 같은 작품도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오렌지와 같이 구체화되어 있는 상황으로부터 관념적인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사실 나이든 사람들의 시집을 읽을 때는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없는 편입니다. 같은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젊은 시인들의 시집을 보면서 정말 사전을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마멀레이드가 뭐지? 하면서…… (웃음) 이혜미 시인을 읽으면서도 많이 찾아봤고요.

 

   임현정 : 저는 이혜미 시인의 시집 중 「빗속의 블루마블」과 「인어의 시간」을 꼽아 보았습니다. 「인어의 시간」은 이혜미 시인에게서 주되게 나타나는 방과 물고기의 이미지가 가장 집약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어의 이미지도 좋았고, 제 취향에 부합하는 것이 많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빗속의 블루마블」은 읽다가 신랑에게도 보여줬습니다. 감각이 회화적으로 그려진다고 말하면서요. 그러니까 정말 시를 모르는 사람인데도 읽으면서 공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이혜미 : 임현정 시인의 시집에는 자서 말고 (목차) 뒤쪽에 ‘나의 글러브에게’라고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여기에 대한 얘기가 있는지요?

 

   임현정 : 저는 처음에 썼던 시들을 대부분 부정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글러브에게’, 이 부분은 제가 부정했던 시절의 시의 한 구절입니다. 그 시절을 가장 대표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아무리 뜨겁게 연애를 해도 결국은 모든 게 멀리 날려 보내려는 뜨거운 포옹일 뿐인 거예요. 사랑도 시도 마찬가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멀리 내동댕이쳐진 제가 다시 일어선 것도 한참만의 일이었고요.

 

   이혜미 : “뜨거웠던 포옹도 더 멀리 날려버리기 위한 성급한 배웅이었다”는 것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한편 그렇다고 아주 밀치진 않은 것 같은 복잡한 지점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최정진 : 앞에 계셔서 말씀드리기가 부끄러운데, (웃음) 임현정 시인의 시집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썼을 때 가장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아 손이 많이 갔습니다. 어떤 징그러움과 같은 것을 통과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불편하고 괴롭고 어쩔 수 없는 지점, 가장 보기 싫은 지점과 대면하려 안간힘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승철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는 슬래시와 시의 문장들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이상한 시적 효과를 느꼈고 그런 효과에 매혹되어 시집을 읽었습니다.

 

   이혜미 : (최승철 시인의 시는) 성찰인데, 정적인 성찰이라기보다 뜨거운 성찰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신(符信)」이라는 시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는데, 그 시에는 무엇인가 담아 놓으신 것이 굉장히 많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시 한 편이 그 상황을 다 담지 못하고, 많이 넘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쁜 뜻이 아니라 끓어올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시에 대한 것이 많이 궁금했습니다.

 

   최정진 : 그 성찰이나 잠언 같은 문장들이 시 안에서 성찰이나 잠언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슬래시의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분리되어 있습니다.

 

   장은정 : 이제 시집의 외부로 조금 넘어서 볼까 해요. 첫 시집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 영향은 선배 시들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독특한 개인적 체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외 다양한 답변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정진 : 선배 시인들의 시에 대한 영향은 당연한 지점일 텐데, 그 외의 다른 지점이 있다면 제가 지지했던 한 정치인의 자살이 제게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우선 저 사람의 죽음이 사적 죽음인지 공적 죽음인지 헛갈리면서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만약 제 친구거나 후배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될 텐데,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자살을 했으니 낭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저의 내부를 향했던 시간 같습니다. 저와 제가 있는 곳과 제가 있는 곳에서의 저를 향한. 물론 외부도 향해서요. 예를 들면 내가 있는 곳에서의 나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무엇보다 나는 문학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나는 관계 속의 민감한 문제들을 너무 손쉽게 편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저를 가장 위태롭게 만들 본질적인 질문을 제게 많이 들이밀었던 것 같아요. 그 일로 시적으로도 사후적인 재구성보다는 어떤 잠재적인 문제들, 현재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승철 : 저는 오규원 시인이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부터 추구했던 날이미지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봅니다. 전혀 무의미한 것들을 던져 놓은 것 같지만 (그 이미지들을) 좌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면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던져 놨지만 그 안에는 좌표처럼 들어가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런 이미지들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또 요즘 시집들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물론 처음 오규원 시인이 등단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요. 다들 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최근에 알았습니다. 젊은 시인들 시집을 잘 읽지 않다가 최근에 이런 좌담 때문인지는 몰라도 많이 찾아봤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것이, 저는 탈의실이라고 하지 피팅룸이라고 하진 않거든요. 그런 지점들이 있습니다. 제가 쓰지 않는 단어인데, 젊은 시인들이 쓰면 제가 그걸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에요. 노력을 하기 싫은 거죠. 시는 그냥 쭉 읽으면 되지 내가 왜 사전까지 찾아봐야 되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거꾸로 젊은 시인들은 부신이라는 단어와 그 어원은 또 모를 겁니다. 이런 점에서 차이나 괴리가 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상대의 화법에 대해서 거부를 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인들은 개성이 강해서 거부를 많이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엔 흡수를 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되는 편입니다. 영향을 준 것이라면 오규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이 또 있어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십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공중에 붕 떠서 머리가 딱 깨질 때, 그때가 딱 삼 초예요. 그때 말 그대로 그 많은 영상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거든요. 이 시집에 느낀 그런 식인 겁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 보이지만 나의 삶이나 사랑 같은 것들이 관련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죠. 그런 식으로 영향을 받고 육화해 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에는 영향을 받았던 것을 말하기보다 영향을 받아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젊은 시인들을 찾아봐야 하고, 젊은 시인들의 화법을 하나씩 알아 가야 하는 거죠. 사실 모든 시집들이 새로운 화법을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까. 최근에 드는 생각이 있는데, 저는 시집을 굉장히 많이 읽었잖아요. 나이도 많고. 그래서 내가 다 아는데 왜 안 읽히지? 너희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점을 바꾸게 되는 거죠. 이 사람들은 대체 뭘 얘기하려고 하기에 내가 못 알아들을까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태도를 모두 버리고, 난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시집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화법을 가지고 나오니까요. 아, 내가 모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시집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 제게 물어본다면, 나는 모른다, 그래서 젊은 시인들의 시집도 읽고, 그것을 통해 영향을 받고 또 전에 했던 작업들도 변화를 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현정 : 저는 이 질문도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을 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저를 키운 것은 엄마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하고 밥이기도 한데 딱히 무엇을 정하라 한다면, 그 시절에는 아무도 저에게 개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그 문학적 시간이요. 억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 시절에는 꿈도 많이 꿨습니다. 시집에 있는 「빨간 어묵」도 사실은 제 꿈 얘기예요. 꿈을 영화처럼 꾸거든요. 또 「물에 잠긴 지하계단」이라든가 「비스듬 야채가게」, 「조개잡이」 같은 시들이 다 꿈 얘기입니다. 시를 쭉 쉬는 동안에도 마음속으로는 시를 써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쉬고 있잖아요. 그것들이 자꾸 꿈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걸 놓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걸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썼던 시들이에요. 영향이라고 한다면 제 꿈과 무의식일까요.

 

   이혜미 : 거의 무녀와 같은 예언의 꿈을…… 굉장히 부러운데요? (웃음)

 

   임현정 : 항상 머리맡에 메모지가 있습니다. 꿈을 꾸면 계속 메모를 하려고요.

 

   장은정 : 일어나자마자 ‘집필’을 하셔야겠네요. (웃음) 이혜미 시인은 어떠세요?

 

   이혜미 : 저는 연애와, 애인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사람들과의 관계인데, 연애라는 것이 감정의 용광로 같은 것이라 그냥 단선적인 사랑의 마음 하나뿐 아니라 굉장히 많은 역학관계와 온갖 감정의 흔들림과 균열, 심지어는 동일성과 비동일성, 하나 될 수 없다는 마음까지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시집은 감정의 기록 같기도 합니다. 시집을 묶으면서 거친 애인이 세 명 있는데, (웃음) 나름대로의 상징이 있고, 맡은 역할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기록해 낸 것도 저에게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장은정 : 사실상 무엇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 자체가 시가 만들어지는 동안 무수히 영향을 주었던 여러 요소들 중 하나만을 택하게 하는 사후적인 작업이 되겠지요. 대화를 하다 보니 이 좌담 자체가 시인들께는 첫 시집으로부터 시간적 거리감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과정 자체가 삶을 이루는 시간들일 텐데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언제나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만큼, 이 질문에 대한 많은 대답들이 가진 시간적 역사성의 변화 자체도 매우 흥미로운 테마인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시집에 묶인 시들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걸쳐 써진 것들이기에 그 내부에 시간적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그 변화를 들여다보는 것 역시 시집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고요.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최승철 시인도 시집을 묶으면서 초기 시를 많이 버리셨죠. 임현정 시인과 최정진 시인도 그렇고요. 이혜미 시인은 등단작 이후로 거의 그대로 온 건가요?

 

   이혜미 : 거른 것이 많았지만, 앞의 시를 버리는 식으로 걸렀다기보다는 제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기준으로 걸렀습니다.

 

   장은정 : 최승철 시인께서 가장 많이 덜어내서 큰 변화를 겪으신 것 같아요. 이건 앞에서 이야기했던 지향점의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겠네요.

 

   최승철 : 저 같은 경우는 시를 처음 쓸 때부터 그랬는데 옛날에는 시가 아름다워야 한다, 감동이 있어야 한다, 서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비유를 들어 얘기하자면, 손바닥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해요. 손바닥은 항상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우리가 손을 내밀 때 손을 잡는 것이 손바닥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똑같은 손이지만 그걸 펴면 화해고, 쥐면 폭력성에 가까운 것이 되는 거죠. 그게 약간의 변화입니다. 꼭 화해를 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불협화음을 그대로 제시하면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과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술자리 같은 데서 언성을 높이며 대화하는 이들을 두고 거기 싸우느냐고 얘기를 하죠. 저는 그런 말을 싫어했습니다. 그게 싸움이 아니라 대화거든요. 나는 이런 불만이 있고, 너는 그런 불만이 있다고 얘기를 함으로써 인정이 되는 것이지, 그걸 안에 쌓아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의 변화라면 그런 쪽입니다. 제가 인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온 거예요. 아름다운 시, 감동적인 시, 서정적인 시만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다 어느 날 그게 아니지 않나, 우리 손바닥과 똑같은데 왜 내가 꼭 그렇게 가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시를 처음으로 가져갔는데, 누가 저에게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네 시에서는 쇳소리가 난다고요. 그걸 지우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게 제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권혁웅 평론가가 진법(陳法)에 대해 말한 것도 이런 데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쇳소리라는 것이 저 공사장에서 들리는 것처럼 불협화음이거든요. 그런데 그 불협화음도 박자가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은정예전에는 조화의 아름다움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했다면 불협화음과 한계, 충돌 속에서의 시적인 것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최승철 : 그렇죠. 예전에 손바닥을 폈다고 하면 지금은 주먹을 쥔 상황 같은 느낌이죠.

 

   이혜미 : 저는 최정진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정말 양분화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울어진 아이」 연작처럼 약간의 서정이 있는, 자기 유년으로 들어가서 회고록식의 느낌을 주는 것과 「동경」이나 「것의 문제」, 「로션의 테두리」처럼 말에 관한 정말 뾰족한 촉을 통해 문장을 일구어내는 느낌이 드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명 시기적인 것이든 심적인 것이든 뭔가 한 번의 갈아엎음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기울어진 아이」 연작의 경우에는 곽재구 시인의 표4와 같은 맥락으로 정말 서정적이었고 한편으로는 본인을 굉장히 까뒤집어 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혼재해서 실었다는 점에 대해서 얘기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그 두 가지를 같이 밀고 나갈 생각인지, 아니면 토해 낼 수밖에 없었으니까 실은 것인지.

 

   최정진 : 우선 제겐 「기울어진 아이」 연작과 「동경」 연작이 두 가지로 나눠지지 않습니다. 한 가지 세계가 점차 발전해 왔다고 해야겠네요.「동경5」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믿는 시와 꿈꾸는 시와 쓸 수 있는 시가 모두 달랐다”고요. 습작기를 보내면서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잖아요. 제가 이런 시를 쓰고 싶다고 할 때, 거기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모두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시를 쓰면서 구조화를 시키려 하면 제가 하고 싶은 구조화를 시키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구조화를 시켰습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그 시들은 제게 4, 5년 전에 쓸 수 있는 시고요, 지금 시들은 그때로부터 4, 5년이 지나서야 쓸 수 있는 시입니다. 지금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 5년 후에 지금 쓰는 시를 돌아봤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삶의 환경이 크게 바뀌긴 했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 지방과 서울은 제게 둘로 나뉘지 않습니다. 제겐 지방과 서울의 구분에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이나 관계의 충돌에 따라 변해 가는 면이 있고 변하지 않는 면은 또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온 이후에 지방에서는 안 그랬던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는 어떤 지점은 있더라고요. 시는 그런 환상부터 생기는 지점을 언어로 고민하며 환상을 깨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두 번째 시집에서도 제 시가 「기울어진 아이」 연작과 「동경」 연작의 구분처럼 상이한 세계로 나뉘는 것이 보인다면(보는 입장에서) 오히려 그건 문학적으로 저한테 즐거운 일일 것도 같습니다.

 

   장은정 : 앞서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확장된 대답 같네요. 현실적 층위의 변화가 곧바로 시에 적용되기보다는 현실의 변화와 그 변화로부터 파생된 언어들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관계가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임현정 시인과 이혜미 시인께선 어떤 점에서 변화를 겪으셨나요?

 

   임현정 : 저는 대학원 1학기 때 등단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 배운 지 몇 개월 만에 등단을 한 거예요. 그때는 선생님의 지속적인 시선 아래 있었습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그런데 선생님께 시를 가져가면, 자꾸 제가 시를 전지가위로 가지 치듯 쳐내는 겁니다. 자신의 색깔을 치고요. 선생님께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서요. 나중에 그 무렵의 시를 다시 보니 사람이 아니라 뼈만 있는 미라같이, 감정들이 너무 쳐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정말 잘 쓴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나이 드신 분들과 수업을 듣게 되잖아요. 여담처럼 말하자면 나이 먹어서 대학원 가지 말라고들 하는데,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안 좋은 영향을 미치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수필 같은 것을 쓰시니까, 그분들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되잖아요. 이만 하면 되었구나 하고 오만해진 시기였어요. 시집을 묶으려고 예전의 시들을 봤는데 사람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다 버리고, 새로 감정도 넣고, 살도 발리는 시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공부를 부정하진 않아요. 그만큼 압축하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도움은 되지만 너무 비인간적인 시를 쓰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혜미 : 무엇을 배제했는가에 대해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요. 저는 시집 내적인 변화가 있고, 또 시집을 낸 뒤의 변화도 있습니다. 시집 안에서의 시간적인 변화라면 제가 빼려고 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처음에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많았습니다. 여성이고, 애를 품는 몸이고, 성기가 어떻고 하는 시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시집들을 읽고 생각도 더 많이 해보면서, 그것을 노골화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노골화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고, 너무 직설적으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시집을 묶을 때는 여성적인 시각을 너무 정제 없이 내보낸 시편들을 먼저 뺐습니다. 그리고 시집을 낸 뒤에는 지금 이 시집에서 나온 것들을 좀 덜 쓰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계속 자기 표절을 할 순 없고, 분명 다른 지점을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멘붕이 오는 상황이…… (웃음) 건너갈 지점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장은정 : 이런 이야기들은 시집만을 읽어선 알 수 없고 직접 시인의 목소리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재미있네요. 혹시 다른 시인들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서로 묻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임현정 : 저는 최승철 시인이 용감하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슬래시 같은 것을 봐도 그렇고요. 물론 본인 의지가 있으시지만 시집 전반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가끔씩은 창살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것이 고립되게 만들잖아요. 분명 장단점을 다 아셨을 텐데 용감하게 하셨다는 것 자체가…….

 

   장은정 : 시적 형식에 관해서요?

 

   임현정 : 네. 이것 때문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결단력을요. 분명 이런 질문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최승철 : 시집이 나온 뒤 아는 사람에게 주니까, 이게 뭐냐고 묻는 말을 들었습니다. 독자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나에 대한 보호막일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겁니다. 시가 길다 보니 잘라내면 슬래시와 슬래시 사이가 하나의 이미지가 되고,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서 나아가는 형식이니 그렇게 생각을 해도 될 테고요. 또 쉼표 같은 기능으로 잠시 쉬어도 됩니다. 퇴고만 일 년 가까이 거쳤습니다. 아까 좌표 얘기를 잠깐 했는데, 이 좌표라는 것이 표층과 심층에 깔리는 게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수필처럼 쭉 읽어도 되고, 어떤 사람은 의미를 가지고 밑으로 내려가서 쭉 읽어도 됩니다. 그것 때문에 용기가 생긴 거였죠. 전혀 의미가 안 맞았다면 무모한 짓이었겠지만. 퇴고를 하면서도 충돌이 생기고, 다시 그것이 이어지고, 또 조화가 되다가 충돌이 되고, 그러면서 하나의 주제를 이뤄야 하는 것을 염두에 뒀습니다. 그래서 시 제목 하나에 4편 연작시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아까 누가 얘기한 것처럼 처음과 끝을 거의 완결되게 했고요. 여기까지 가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나오셨는데, (시집을) 딱 세 시간 만에 읽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재밌으셨냐고 여쭈니 어, 재미있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말은 아무 의미도 두지 않고 쭉 읽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의미를 두고 읽어도 되고요. 의미를 전부 읽으려면 힘들겠지만요. 그냥 수필처럼 쭉 갔을 땐 아마 읽기에 편할 겁니다. 불협화음 얘기를 하자면 충돌이 불협화음인데, 불협화음도 하나의 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써나간 측면도 있습니다.

 

   임현정 : 저는 복잡한 큐브를 맞추는 것처럼 읽혔어요.

 

   장은정 : 『갑을 시티』의 시인의 말에 오토바이 사고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이게 실제 경험일까, 아니면 비유적인 것일까 궁금했었어요. 사실 이 시인의 말은 시집 전체의 형식과도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요.

 

   임현정 : 시인의 말 너무 좋아요. (웃음)

 

   최승철 : 따분한 것 같으니까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게요. 앞의 질문들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제가 취직도 안 되고 해서 우유배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하필이면 겨울이었습니다. 배달을 하다 보면 우유가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7, 80킬로그램은 되거든요. 그런데 눈이 오는 날 새벽 4시에 미끄러져서, 그걸 계속 세우려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미치겠는 거예요. 우유가 터지기도 하고요. 오토바이를 세워야 하는데 빙판길에서 계속 넘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니 세울 수도 없고 해서 울었는데 나중엔 웃게 되더라고요. 슬픈 일이 있는데, 하다 보면 웃기게 되어버리는 상황, 이게 불협화음이거든요. 굉장히 재미있는 코드이면서도 사실은 접근하기가 힘든 분야입니다. 비극을 얘기하면서도 희극을 얘기해야 하고, 희극을 얘기하면서도 비극을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앞으로 쓰고 싶은 시에 대한 질문에 연관 지어 말하자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이 시집도 방향성에 한해서는 그런 측면을 갖고 있고요.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 방향입니다.

 


   장은정 :
지나간 시간들과 연관해서 변화에 대해 오래 이야기해 봤는데요, 그럼 이제 현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볼까 해요. 2010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 네 권의 시집이 201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로 2010년대의 문제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감당하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앞서 최승철 시인께서 시대적 자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하신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는데요. 사실상 그런 자의식 없이 시집을 묶었더라도 시를 읽는 입장에서는 2010년대의 문제의식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그런 맥락 속에서 시집이 위치될 수 있겠지요.

 

   이혜미 : (질문이) 너무 어려웠어요. 문학사적인 것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대적 의미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 봐야 맥락화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지금 당장의 심정만 놓고 본다면 저는 일차적으로는 관계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관계가 점점 협소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기계들과 소통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인문학을 침범하는 그 많은 것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시집을 냈다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에 대한 자의식을 시집에 넣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많이 생각해 봐야 할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게끔 감정을 들뜨게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제 시를 평해 주신 분들 가운데 굉장히 재밌는 서평이 있었는데, 시를 하나 인용해 놓으시고 “이 시를 읽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당장 비뇨기과로 가보시라”고. (웃음) 비뇨기과가 나온 것도 웃기지만 ‘마음이 동(動)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음에 파문을 일게 하고, 영혼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시가 할 수 있는 좋은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장은정 : 사실 ‘2010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비평가들에게도 매우 큰 관심사이기도 할 텐데, 시인들과 질문을 공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2010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은 하나는 사회학적인 맥락이 있을 수 있겠고, 다른 하나는 문학사적인 맥락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최승철 시인께서 언급하셨듯이 여러 매체들의 발달과 자본과 시의 관계일 테고, 후자의 경우는 결국 ‘미래파 이후의 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겠지요. 그런데 이 질문의 구조는 그 자체로 미래파 중심적인 생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문학사라는 것은 이전의 선배를 극복하고 그 이후에 인정투쟁을 통해 어떻게 자기의 정체성을 확보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질문을 피해 갈 수는 없겠지만, 질문하는 데 있어 일종의 전략이 필요한 것 같아요. 2010년대 문학에 대해 말할 때, ‘이것이 미래파 이후의 시다’가 아니라, ‘2010년대 시는 이런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시와 이런 점에서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야 답변의 중심이 2010년에 찍히는 것이지요.

 

   최정진 : 제가 받아들이기에 2010년대의 시는 우리의 한계를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00년대가 시적 느낌에 집중하면서 읽은 이의 마음을 자유로워지는 느낌으로 가득 차게 하고 시적 느낌을 가능한 온전히 전하기 위해 분화하고 분출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2010년대는 시적 느낌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그 느낌과 맞닿은 실재적인 면, 실재의 내용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출간된 어떤 첫 시집들 중에서 특정 시집들이 무기력해 보인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그것은 무기력한 실재를 보려는 시적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형식화해서 시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은 오히려 무기력하지 않아요. 한계를 사유하려는 것이 무기력할 순 없는 것이죠. 2000년대 논의의 기준에서 현실에 무기력해 보이고 과잉의 면에서 대상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져 보이고 세계에 억눌려 보인다면 그것은 2000년대 시에서 벗어난 2010년대 시의 시적 윤리의 특징 중의 하나 같아요. 물론 뭔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 곧 윤리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2000년대 시에서 도출된 논의가 2010년대의 시에 적용된다면 ‘다른 지점’을 ‘부족한 지점’으로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2010년대의 시가 무기력한 것은 한계를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장은정 : ‘한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특징에 있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비평적으로 더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하는 부분들이겠지만, 오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네 분의 시집들은 물론이고 최근 출간되고 있는 첫 시집들에서도 공통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지난번과 이번 계절에 2010년대 시에 대한 이런저런 글들을 쓰면서 현실에 내재된 불가능의 지점을 인식함으로써 발생하는 문학적 상상력의 방식이 2000년대와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물론 아직은 발상 단계이고요. 최정진 시인께서 문학사의 맥락에서 답변을 하셨는데, 아마 최승철 시인께선 사회적 맥락과 연관된 대답을 하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최승철 :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감히 어떻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있어요. 다른 문화 장르 자체가 할 수 없는 분야, 그러니까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생각입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기초적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비롯한 것들이 하지 못하는 부분, 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하고 그래도 남는 부분, 그런 것들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뭣할지 모르겠지만 야한 시가 안 되는 것은 야동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서사가 있는 시가 안 되는 것은 영화나 소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나가야 할 지점이라는 것은, 이미 몇 번 얘기했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을 하고 자동차가 생겨도 사람들이 걷는 이유가 있잖아요. 과학적으로 얘기하면 전두엽이 활성화된다, 건강에 좋다, 다이어트가 된다 등등이 있을 겁니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걷는 것처럼 시도 기본적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시집을 잘 읽지 않지만, 그래도 (시집이) 나와야 되는 이유는 사람들의 사고와 관련된 분야, 연애가 됐든 삶이 됐든 죽음이 됐든 그 분야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리는 데 있다고 봅니다. 조금 힘들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돌파구가 생겨야 하지 않을까요? 예전에 엽기나 야한 것들이 유행이었는데, 임현정 시인의 시를 보면서도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엽기적으로 써야 하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이 이보다 엽기적이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대의 방향이 이런 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시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임현정 : 물론 2010년대와도 관계가 있겠지만, 저는 시란 결국 개인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0년에 그 사람에게 무슨 역사가 일어난다면 시 자체도 개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누구에게나 개혁이 있겠지만요. 저는 2010년대라는 연대보다는 길가의 돌멩이가 더 의미 있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현실이 소설이나 시보다도 재미있잖아요. 너무 쉽게 지나가는 이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닻을 내려야 할지는 우리 스스로의 고민일 테고, 그런 부분들이 우리의 맥을 빠지게도 하겠지만, 2010년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 흐름 속에서 내가 내 자신에 닻을 내릴 수 있는 것, 내 색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다고 생각한 것이 김혜순 시인입니다. 솔직히 그전에는 공감을 못 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꾸준한 감각으로 이 사람이 닻을 내리고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팬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 부분을 우리가 닮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장은정 : 굉장히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요, 이제 좌담을 마무리하는 질문을 드리려 해요. 앞으로 쓰고 싶은 시가 있으시다면 어떤 점을 지향하시나요? 물론 첫 시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이제 또다시 새로운 모색 단계일 거라고 추측하게 되는데요, 벌써 두 번째 시집들에 대한 지향점을 묻는 것은 너무 이른 것 같아요. 그러니 이 질문 역시 완성된 답변을 원한다기보다는 첫 시집과의 차별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의미나 태도의 측면에서 소소한 답변도 좋겠고요.

 

   임현정 : 저는 최근에 쉬운 시들이 좋아졌습니다. 너무 쉽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읽어도 짐작할 수 있는 시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 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복잡하면 제가 현기증이 나요. 여러 번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고 너무 유치해져서도 안 되겠죠. 그리고 제 시가 더 유쾌해지고 재밌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지금 지향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에요. 재밌고, 유쾌한, 하지만 뭔가 뒤에 비수를 숨긴…….

 

   이혜미 : 다음 시집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아니, 이제 첫애를 낳았는데 “다음에는 아들 낳아야지” 그러면 되겠느냐고…… (웃음) 애 하나 보기도 바쁜데……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미 (앞서) 말했던 것 같은 공황이 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일관적인 지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난 또 다른 것을 보여주겠다는 식이라기보다는 이끌고 나가고 싶은 지향점이 있습니다. 일전에 어디서 자신의 시는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가 반 농담으로 ‘섹시한 서정’을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욕망이 있는 편입니다. 서정이면서, 마음과 육체를 들여다보고, 감정을 잡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그렇지만 진지하지 않게, 유쾌하게 하고 싶은 그런 욕망도 있어요. 마음적으로 몸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그런 시들을 쓰고 싶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지금 한 권으로는 부족하고, 두세 권은 모여야 가능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까 (임현정 시인이) 말씀하신 닻을 내리는 얘기도 굉장히 좋았어요. 한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고, 다양한 변주를 하고,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 제가 지향해야 할 점인 것 같았습니다.

 

   최정진 : 첫 시집을 내면서 경계하는 것도 있었고 지향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걸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경계할 것은 경계하고 지향하는 것은 또 지향하고 싶습니다. 시적 고민의 수준 자체를 더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시집을 낼 때마다 반복되었으면 좋겠어요.

 

   최승철 : 저는 웃다가 울게 되는, 혹은 울다가 웃게 되는 시를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해보고는 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삶이라는 것을 보면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인 것이 많습니다. 비극적이면서 희극적인 것도 많고요. 예를 들면 제가 치질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는 것은 비극적이지만 (의사가) 항문에 손을 집어넣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의사가 손을 집어넣었을 때 뜨악했죠. 그런데 의사가 땀을 흘리는 거예요. 이게 뭐하는 건지…… 웃기잖아요. 이런 삶의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저희 집사람이 계속 야근을 하고 있어서 집에 없거든요. 한편으로는 이걸 바랐는데, 실제 겪어 보니 어둠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웃기잖아요. 아침에 눈을 뜨고서 아침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새벽 두 시 세 시에 아무도 없고…… 이걸 원했던 것인데. (웃음) 이런 시를 생각합니다.

 

   장은정 : 굉장히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서 점차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낍니다. 그렇지만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매우 집중이 돼서 사실은 신났어요. (웃음)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문장웹진 6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