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난쟁이 외 1편

 

 《문장웹진》이 주목한 2012년 젊은 시인들

 

 

  김재훈

 

 거대한 난쟁이

 

 

 

 

  나는 우는 법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7초마다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진다는 문장을 읽은 밤

 

  사라지는 생물보다 빨리 위로받고 싶어서 고해소로 달려갔다

  나는 나를 모욕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해소에는 거대한 난쟁이가 숨어 꾸역꾸역 세상을 삼키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난쟁이에게 삼켜져 창자 속으로

  떨어지면서 생각했다 거대한 난쟁이는 거인일까 난쟁이일까

 

  나는 창자 속의 기생충들과 싸우다 지쳐버렸고,

  거인이든 난쟁이든 간에 장이 더럽게 튼튼하구나 소리 질렀다

 

  변기 속에 머리 박고 울부짖는 사람을 보며

  그런다고 입을 헹궈 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라고 중얼거리는 비데의 마음이랄까

 

  내 표정이 그랬다

 

  난생처음

  형의 유골함을 허벅지에 올려놓고 앉아 있으니

  따끈해서 그거 참 따끈해서

  아마추어같이

 

  발기(勃起), 이 와중에 형이 끝까지 장난치는구나

  게걸스런 농간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변기를 넘쳐흐르던 형의 똥물을 떠올렸지 대체

  뭘 먹은 거야 엄청났지 살아서 승리한 기분이었는데

 

  형 어쩌다 더 이상 스스로를 모욕할 수 없는 거대한 난쟁이일 뿐인 거대한 난쟁이가 되어서는

  잔뜩 허기져 있는 거지? 마치 정말 처음 죽은 것처럼

 

  거대한 난쟁이가 거대한 난쟁이를 삼키고 더욱 거대한 난쟁이가 되어버렸는데

 

  주워 담은 케이크랄까 구겨졌다 말할 수도 없는

  나를 보는 내 표정이 그래

 

 

 

 

 그때 그 소녀

 

 

 

 

  잘 가라고 했을까

  잘 있으라 했을까

 

  그때 그 소녀

 

  고장난 잠수함처럼

  모든 꿈속에 있네

 

  이미 갔을까

  서성거리나

 

  그때 그 소녀

 

  멈춰선 고양이처럼

  뒤돌아보네

 

  안아 줬을까

  뺨 때렸을까

 

  그때 그 소녀

 

  망가진 우산처럼

  쉽게 펴지네

 

  늙지 않는 소녀

  그때 그 소녀

  내가 만든 소녀

  그때 그 소녀

 

  타의적인 소녀

  그때 그 소녀

  천 년 동안 웃는 소녀

  그때 그 소녀

 

  포르말린 병에 들어 있는

  그때 그 소녀

  사라지고 싶은 소녀

  그때 그 소녀

 

  그때 그 소녀

  더는 죽일 수도 없네

 

  시작 노트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걸까

  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걸까

 

  숲 속에 홀로 남은 어린 철새가

  밤새도록

  몸속으로 날아갔다

 

  날개는 떨어졌고

  바다는 끝없이 정지했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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