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편집자를!

 

[한국문학에 바란다!]

 

더 많은 편집자를!

 

원미선

(《문예중앙》 편집자)

 

 

 

 

 

   나는 어떤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가 아는 어느 8년차 후배 편집자의 인생에 기적과 같은 균형이 잡히는 날도 언젠가는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녀가 편집자의 길에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편집자 중에서도 문학서 편집자가 된 것은 그보다는 덜 우연적이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소설책이나 시집 이외의 책은 책으로 생각하지 않는 삶을 대책 없이 오래 고수했기 때문이다. 뜻밖에 그런 시간의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직업, 그게 편집자였다. 편집자가 무엇에 쓰이는 존재인지 알아 가는 동안 맛보았던 즐거움, 고달픔, 희열과 좌절의 교차 뒤에 첫 책이 탄생하던 순간, 열 애인과도 맞바꾸지 않을 그 수업시대의 기억을 불러올 때 지금도 그녀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난다.

   “읽고, 읽고, 또 읽고, 그래도 읽을 것들은 얼마든지 쌓여 있는, 그런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어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무턱대고 말해 주고 싶은 기분.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직업이 되는 사람도 있어요, 아, 정말 그런 게 있다는 걸 다들 아셔야 되는데!! 그러면서 혼자 좋아 죽었던 거죠.”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며 그녀에게도 ‘정신의 분열들’은 쌓여 갔을 것이다. 모국어를 공유하는 소설가와 시인의 원고로 책을 만들어 가는 일에는 좋아 죽을 것 같은 순간들만큼 한계와 타협해야 하는 순간들도 끊임없이 찾아온다. 작가나 작품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편집자로서 맞닥뜨려야 하는 한계 말이다. 원고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열어 줄 수 있는 건 오직 자기뿐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들떠 있다가도, 뭔가 매우 중대한 것을 혼자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빠진다.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놓고, 그게 들통 날까 조마조마해하는 사람처럼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날들도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이지만, 책을 만든 사람은 아는, 그런 조처와 선택의 결과가 있다. 그것이 작가에게, 독자에게 실망을 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매번 반복된다. 집착이 깊을수록 고민도 깊다. 어떤 소설을, 어떤 시를 편집자로 만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들과 사랑에 빠져도 큰일이고,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민망한 사이로 끝나도 낭패다. 그래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중심잡기에 대해 말하지만, 그건 마음먹는다고 잡히는 게 아니다.

   “대학을 두 번은 다닐 시간을 편집자로 살고 나면 적어도 내가 나를 믿을 수는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갈수록 어려워. 이건가 싶으면 저거 같고, 저건가 하다가도 이게 맞는 거 같고.”

   “이거와 저거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거다. 최악은 내 눈앞에 있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때거든. 이거든 저거든, 그게 그거 같고, 다 시시해져 버릴 때가 있거든. 그게 제일 무서워.”

   편집자가 작가와, 그리고 원고와 시간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불안과 무기력에 빠질 위험은 높아진다. 개인적 재능과 의욕으로 버틸 수 있는 작업에도 정도가 있다. 편집자로 살기로 결심했던 사람이라면 안다. 그 첫 순정의 떨림, 그날을 시작으로 무수히 바람을 피워 가야 하는 일의 짜릿함을. 자나 깨나 붙들고 있는 원고가 있더라도, 다른 만남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피로로 느껴지기는커녕 새벽잠을 깨우는 알람이 되어 준다. 그건 머지않아 만나게 될 어느 작가에게서, 그가 쓰고 있는 글에서 또 다른 ‘유일무이한 시간’을 체험하게 될 거라는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황홀해지는 단어들의 조합, 사람과 사건을 두고 복수(複數)의 차원을 펼쳐 보이는 문장의 흐름, 세계에 대한 어딘가 색다른 설명…… 언어로 조립되는 고유한 세계들,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들과 거기서 찾게 될 의미에 대한 기대로 문학 편집자는 연명한다. 그런데 그게 무너지고 나면, 공허한 문자만 눈앞에 남는다. 그 다음의 고단하고 지루한 노동은 오래 견디기 힘들다.

   “다행인 건, 새 원고 파일에 커서를 대고 더블클릭할 때 아직 우리가 두근거리잖아. 첫 문장이 머릿속에 날아와 박힐 때, 그 느낌을 알잖아. 읽다가 머리카락을 쥐어뜯게 되는 글들을 아무리 많이 겪더라도, 새 원고와 나누게 될 대화에 또다시 갈증이 나는 거. 그 욕망이 살아 있잖아.”

   한국어로 쓰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텍스트들, 그건 지금도 이곳의 시인들이, 소설가들이 쓰고 있다! 언어예술이 도달해 있는 경지 같은 것을 알아주자는 말이 아니다. 생각을 언어의 논리에 담아내는 공력, 그 하나만 보아도 그들의 글이 읽혀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점점 나은 문장을 익혀 가지 않고는, 점점 나은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니까. 시와 소설의 영향력이, 판매부수가 날로 줄고 있다면, 그건 책을 만드는 사람들 모두의 탓이다. 시는 어렵고, 한국소설은 그게 그거인 거 같아서, 계속 찾아 읽게 되지 않는다는 말이 들린다. 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시는 어려운 것일 수 있다’는 걸 미처 학습하지 못한 그의 고지식함이라도 돌아보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가 편집자다. 소설들이 하나같아 보이는 건 그들이 정말로 닮아서가 아니다. ‘소설책’들이 단조로운 것이며, 소설을 책으로 만드는 시스템이 어떤 한계 안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 한계에 대해 고민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도 편집자다.

   편집자는 문학서를 펴내는 출판사의 편집부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어느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소설가도 편집자일 수 있고, 가까운 소설가의 책제목을 함께 고민해 주는 시인도 편집자일 수 있다. 한 시인, 한 소설가의 전작을 섭렵한 문학평론가라면 일단 그의 편집자가 될 준비는 되어 있는 것이다. 간혹 그가 작가의 작품 활동에 조력자가 되기보다는 차기작 출간 등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버리는 일도 일어나기는 하지만……. 괜찮은 편집자는 불필요한 것을 거르고, 꼭 필요한 것을 남겨 주는 사람이다. 글을 쓰고, 작품을 발표하기까지 작가들의 과도한 고민을 여과해 주는 필터. 많은 책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유(浮游)하는 시간들이 믿음직한 필터를 키운다. 한국문학이 쓰이고, 책으로 만들어지고, 읽히는 곳에는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삶 자체가 한 권의 방대한 문학사인 시인들, 머리를 숙이고 싶을 만큼 치열하게 글을 쓰는 소설가들, 잠은 언제 자나 싶게 독서량이 방대한 평론가들. 그토록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서 즐거움보다는 한숨을 공유하는 일이 더 빈번하다면, 거기 어디엔가는 틀림없이 어떤 기대와 현실의 불균형이 삐걱대고 있을 것이다. 그건 다른 누군가보다 더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책임과 능력의 불균형일 수도 있고, 작품을 쓰는 작가와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수적 불균형일 수도 있으며, 시와 소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헤쳐모여’가 조금 더 다양해지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가 서로에게 괜찮은 편집자가 되어 줄 기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소모적인 시간을 줄이고, 생산적인 시간에 집중하는 길이라고 믿고 싶다. 편집자들에게는, 우리 모두에게는 책을 ‘읽어야 하는’ 시간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더 많이 필요하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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