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형 외 1편

 

  《문장웹진》이 주목한 2012년 젊은 시인들

 

 

  유계영

 

  모형

 

 

 

 

  나의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완전히 쫓겨난 어둠에 관한 이야기

  상자는 무언가 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지고도

  비우는 일에만 계속 쓰였듯

  이 방의 전개도는 거대한 착각의 모양을 본떴다

 

  네가 나누어 놓은 이목구비가 마음에 들 리 없다

  남들이 다 모를 때

  내가 갖게 될 노인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간단히는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기분에 비해 너무 작은 입으로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었을까

  잘 죽지 않는 이 기분을

  천천히 바뀌는 표정이 보여준다

  물구나무 선 망령의 손바닥처럼

  보드랍게, 보드랍게 표현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자의 측면들이

  검게 물들어 갈 시간을

  내가 경험으로 알아보듯이

  봉제선 안으로 꼭꼭 접어 둔 그림자만이

  나의 유일한 의지라면

  이런 예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지그재그

 

 

 

  레이디는 상자에서 빠져나오며 마술에 대해 생각했다

 

  미치기 직전의 상태로 끝까지 살아가는 식물처럼

  나는 아프고 너는 지켜만 보았는데

  너를 좋아해서 웃어만 지는 얼굴

 

  잘려 나간 팔다리가 공손히 식어 가는 동안에도

  몸에서는 부드러운 털이 자라났지

 

  모자 속의 토끼

  사과 속의 코끼리 같은

  순진한 준비물과

  대괄호가 많은 아이들의 말 속에서

  레이디는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무릎이

  명상의 밧줄처럼 잘 땋여

  거기 남았다

  우린 모두 그가 다녀온 공간을 위로하고 있다

 

  레이디는 상자에서 빠져나오며 마술에 대해 생각했다

  통증으로만 구성된 꿈을 꾸었다는 듯이

  이 놀라운 상자를 마술사에게도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했다

 

 

  시작 노트

 

  오늘은 전쟁기념관에서 신비를 모르는 몸짓으로 걸어 다녔어요. 뇌구조를 그려 보았더니 그만, 궁금한 게 많아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된 역사뿐이었지요.

 

  마음이 어디에 있는 거냐고 물으셨었죠.

  이건 제 대답입니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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