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꽃 외 1편

 

  《문장웹진》이 주목한 2012년 젊은 시인들

 

 

  황혜경

 

 물구나무꽃

 

 

 

 

  엄마를 할머니라고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엄마는 내가 꽃인 줄 아나 봐

  엄마는 찌그러진 씨앗이 몇 개인지도 모르고

  엄마는 그리다 만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사뿐사뿐 몰래 놓고 가야지 다음은 네 차례야 수건은 돌고

 

  내 숨이 내 숨으로만 되지 않을 때가 있듯이 그러다 보면 좀 어때, 가 되어 가는 타협의 요일들 허용과 용납이 헤프다 오기도 포기처럼 오기도 하고 나서는

 

  꼭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것 중간에 마음이 걸터앉을 때 꼭 그것이어야만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간에서 더듬거리고 한참 찾을 때 못 찾을 것 같아서 심장이 더 뛰지만 꼭을 지우기로 마음먹고 보면 그 많은 꼭은 다 지워지고 아직 신발이 도착하지 않아서 나갈 수 없었던 변명의 그날들이 꼭 그랬다

  그러나 꼭 지우고 나니까 스르르 발의 뿌리가 하늘에서 자라고 있는 것처럼 한결 가볍고

 

  사뿐사뿐 몰래 놓고 가야지 다음은 네 차례야 수건은 돌고 수건은 또 돌고

 

  들어온 사람을 밀어내고 밀어낸 사람이 자리 잡고 밀어내고 다시 자리 잡고

  쉿, 밀착과 거리의 적정선은 의심을 품고 몇 바퀴 더 돌아 보면 알게 되지

  홀로 심오하다와 버금가다, 를 위해 절교(絶交)의 페이지를 뒤적거리던 시간 뒤에

  발이 저려서 이제 서야만 할 때 물구나무꽃, 이라고 단어 두 개를 과감히 섞고 나면

  피가 돌아 나는 기어이 나를 세우는 힘을 더 믿을 수 있게 되고

  잉태해 본 적 없는 생명, 이라고 쓰다가 수정하는 여자들처럼

  종족이 푸르러지기까지 알맹이를 몰라보고 버리게 했던 무지(無知)의 날들 뒤에

  주름은 변질이 아니라 변화라고 믿을 수 있게 될 때 그대는 아름답다, 라고 쓴다

 

  사뿐사뿐 몰래 놓고 가야지 다음은 네 차례야 수건은 돌고 수건은 또 돌고 이제 앉을 곳을 찾아야지

 

  어디쯤에서는 역산해야 하는 날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꼭 그렇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거꾸로 볼 때에 보이는 진실도 있을 테니까 물구나무를 서면 최하가 최상으로 뒤바뀌기도 하니까 발의 뿌리가 하늘에서 자라고 수그린 봉오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오래도록 때를 기다렸다면 이제 곧 뒤를 돌아다볼 차례!

 

  사뿐사뿐 몰래 놓고 가야지 다음은 네 차례야 수건은 돌고 수건은 또 돌고 그만 앉을 곳을 찾아야지 술래가 오기 전에 서둘러 당신이 돌고 한 번씩 순서는 돌고 기회도

 

 

 

 

 착잡(錯雜)하다

 

 

 

  충격의 날들이 이어지고 말기(末期)를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비극적 상상만으로 종일 울 수도 있고 모르는 사이에 슬픔이 가장 아늑한 곳에 자리를 깔고 나면 알게 모르게 섞이고 자고 나면 섞이고 오가는 발들에 대해 생각하면 또 얽히고 점점 집을 나서기 힘들어지고 그럴 때면 안의 동선을 신경 쓰며 액션을 더 크게 해야 하지 혼자 말하면 말하지 않는 것보다 활기차 묻고 벽을 돌아 걸으며 고개를 내밀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조금 전의 내가 아닌 듯 질문을 기다리는 답변자가 되어 고개를 또 내밀어 본다

 

  알게 모르게, 라는 말이 얼마나 복잡한지 갈수록 나는 모른다

  감았던 줄자를 풀어 이 끝도 없는 무지몽매(無知蒙昧)를 재줄 수는 없는가

 

  관계할 대륙이 없는 형(形)

  더 이상 밀고 나갈 힘이 없는 미지(未知)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뒤섞여 정체되어 있는 소음

  점점 나를 하대(下待)하는 나

 

  사람들은 가장 바깥의 것부터 버리기 시작하고

  수레를 끄는 노인이 꼼꼼하게 챙기며 지나가고

 

  지금 나는 이 복잡한 것을 그저 착잡하다, 라고

  말해 버려도 괜찮을까

 

 

  시작 노트

 

  내가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 가까이 닿을 수 있는 타인이란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타인과 나의 거리는? 나와 너는 결국 우리는?

  우리는 둥글게 모여앉아 있는 것일까

 

  반복되는 꿈- 수건돌리기

 

  술래는 등 뒤로 돌다가 항상 재빨리 내게로 달려온다.

  그리고는 내 등을 섬뜩하게 툭, 치고 마는 아찔한 꿈.

  꿈은 자의식의 허기가 무의식의 가면을 쓴 채

  욕망을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리라.

  시간과 현실로부터

  유아성(幼兒性)과 조로(早老), 동심(童心)과 생물학적 노화(老化)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감수성으로부터

  나는 그렇게 매일 당하는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매달리고 있는 철봉에서 1초만 더 1초만 더 버티듯

  덜덜 떨리는 팔과 턱을 지탱하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래, 원을 그리며 둥글게 모여서 다 함께 하는 게임은 즐겁지. 즐거운 거지. 게임은 즐겁기 위해 하는 거지. 그래 승자도 패자도 없지. 수건은 돌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건은 공평하게 돌고 기회도 돌고 우리는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다가 수건이 내 뒤에 온 것을 예감하다 직감이 분명해지면 바로 그 순간 뒤를 돌아 수건을 움켜쥐고 술래보다 빨리 냅다 달리면 되는 것. 그렇게 생각을 조금만 고쳐먹으면 더 늦게라도 내게 돌아올 그 수건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어디 보자, 그 수건이 언제 나의 차례로 돌아올지, 그래 오라, 와봐라, 배짱이 생기기도 하는 것. 그 수건이 어떤 수건이든 나는 지금도 수건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며 때를 또 기다리고 있다. 꼭 좋은 것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불운이나 불행, 고난이나 시련이 깊이 숨겨진 수건일지라도 그 어떤 수건이 오든 나는 내 몫의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며. 수건이 돌고 있는 동안, 뒤를 돌아다보기 전까지 나는 충실히 노래를 부르며 잠잠히 고요할 것이다. 멀리 보면 우리는 모두 한 번씩 잠시 점멸하는 중이고 항상 다음이 있으리라.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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