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소’의 고독과 ‘관절의 힘’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1년 명장면

 

 

 

‘토르소’의 고독과 ‘관절의 힘’

─ 이장욱, 『생년월일』(창비, 2011)

 

조연정

 

 

 

 

 

  ‘신’이라는 말없이 서정을 말할 수 있을까. 만질 수 있는 당신의 표면 너머로 닿을 수 없는 당신을 쓸쓸히 느끼게 되면서 서정적 정념이 생겨났고, 그 쓸쓸함을 성급히 해갈하려는 욕망으로부터 당신을 내 안으로 흡수하려는 태도로서의 서정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신을 경유하여 ‘나’로 되돌아오는 과정에는 명백한 시작과 끝이 없다. 이 과정은 ‘낯선 당신’과 ‘낯선 나’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무한 반복된다. 무슨 말일까. 닿을 수 없는 당신을 감지하는 순간, 즉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생겨나는 순간, 낯설어지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오히려 ‘나’다. ‘나’는, 당신을 낯설게 느끼는 나 자신이 낯설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러므로 “나는 왜 조금씩 내가 아닌가?”(「반대말들」)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장욱의 세 번째 시집 『생년월일』(창비, 2011)에서 가장 빈번한 단어 하나를 고르자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될 텐데, 이때 ‘당신’은 명백한 이인칭으로 기능하기보다는 ‘나’로부터 멀어진 ‘나’를 지칭하는, 즉 일인칭을 초과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당신’은 사이에, 혹은 허공에 존재하는 서늘한 느낌을 명명하는 단어처럼 읽힌다.

  리는 낯설어진 ‘나’를 전제로 해서만 당신을 생각하게 된다. 낯설어진 ‘당신’을 전제로 해서만 ‘나’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신’이 낯설어지는 동시에 내가 낯설어지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당신’과 내가 최초로 한마음이 된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도 때로는 온 세계가 서늘해진 듯한 느낌에 빠져들곤 하겠지. 그때 당신은 지금의 나처럼 외롭고 무섭겠지.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익숙한 내가 불현듯 낯설어지고 낯선 당신이 가만히 다정해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외로움을 공유함으로써만 ‘나’는 ‘당신’과 하나가 된다. 『생년월일』은 이렇게 낯선 나와 낯선 당신이 갑자기 하나가 되는 순간에 주목한다. 그 기묘한 순간에 대해 시인은 “불현듯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였다”(「피사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을 동행이라 부르고 싶었다”(「동행」)라고도 말한다.

  금 비관적으로 말해 보면 우리는 낯선 당신 앞에서만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장욱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사랑 고백은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당신을 좋아합니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가장 애틋한 사랑 고백이 이런 것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어디서/혼자 겨울인가?”(「겨울에 대한 질문」) 쓸쓸한 내가 당신의 쓸쓸함마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마음, 네 쓸쓸함이 내 쓸쓸함처럼 느껴지는 마음, 이러한 마음의 작동을 가리켜 ‘서정’이라 부를 수 있다면, 네 마음을 내 마음처럼 느낄 수 있는 이 같은 능력에 대해 서정적 자아의 횡포를 지적하는 일은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일까.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 2006)의 해설을 쓴 이광호가 “이장욱은 일인칭 자아의 신비와 권위를 지워버리는 자리에서, 다시 어떤 다른 ‘사랑’을 발음한다”(「코끼리 군의 실종 사건과 탈인칭의 사랑」)라고 말했을 때, 그는 당신과 내가 동시에 쓸쓸해지는 이 서늘하고도 애틋한 마음을 이장욱의 담백한 서정시로부터 발견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생년월일』(창비, 2011)에서도 이장욱은 저 “다른 ‘사랑’”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누구나 차가운 허공을 동그랗게 쥐고 있다”(「핀란드」)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는 ‘다른 사랑’ 말이다.

  선 나와 낯선 당신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주목하는 이장욱식 ‘다른 사랑’은 당연히 “생일 다음에 오는 불안”에 관한 “긴 이야기”(「당신이 말하는 순서」)가 된다. 이장욱의 단어 사전에서 ‘생일’이란 “이전과 이후가 달”(「생년월일」)라지는 일종의 사건적 순간이다. “만원버스 안에서 빽!/소리를 지르고 싶어”(「당신이 말하는 순서」)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지붕 위를 성실하게 달려”가던 “장화 신은 고양이”가 “물끄러미 장화를 벗어 보는”(「장화 신은 고양이」) 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와 불현듯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을 두고 이장욱은 ‘생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점성술도 없이”(「점성술이 없는 밤」) 갑자기 맞은 ‘생일’ 이후, 시인은 별자리의 운행과도 무관하게 매순간 ‘생일’을 맞은 기분을 느끼는 듯하다. ‘잘라진 케이크’(「생년월일」)처럼 내 안에 거대한 균열이 한 번 생겨버리고 나면 그 균열은 결코 봉합되지 못한 채로 더 미세한 균열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생일’은 단 한 번의 균열을 경험하는 순간이 아니라 이후 지속될 균열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생일’ 다음에는 ‘불안’이다. ‘나’는 매일 ‘나’를 벗어나고(“당신은 또/당신에게서 벗어난다”, 「흘러넘치다」), 매일 ‘위치’를 바꾸면서(“누군가의 위치에서 나는 매일 경험을 했다”, 「동행」) ‘생일’ 이후를 살아낸다. 이장욱의 시는 이처럼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우연을 위한 장소」)라는 수수께끼에 골몰한다.

  론 ‘나’라는 동일성이 반복적으로 해체되는 순간에 주목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이장욱의 시가 품고 있는 독특함이 완벽히 설명될 수는 없다. 이장욱은 그 일을 ‘물고기’와 ‘의자’, ‘인형’, ‘장난감’의 위치에서 행한다. “코인로커”(「코인로커」)와 “늪”(「늪」)을 상상하며, “등 뒤의 세계”(「뒤」)와 “세계의 끝”(「세계의 끝」)에 당도한 기분으로. 이처럼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서 말없는 사물이 되어, 이장욱은 ‘내’가 허물어지고 확장되는 순간의 불안을 담백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아니, 이장욱 시의 화법에 대해서라면 묘사라는 말보다는 지정(指定)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장욱의 간결한 시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시가 결국 어떤 구체적인 정념을 품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수많은 정념들을 어떤 구체적인 정황(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단어’)을 통해 한꺼번에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낮’의 시간보다는 ‘밤’의 시간에 관심이 많은 이장욱은 모호한 어둠을 많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일종의 밤”(「일종의 밤」)을 압축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가령, “외로울 때는/동사무소에 가자”라고 그가 말할 때 우리가 감지하는 것이 “시작과 끝이 명료한”(「동사무소에 가자」) 인간 삶의 허무나 고독이라고 단순히 말할 수만은 없다. “동사무소에 가자”라는 문장 안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수많은 감정들이 시작도 끝도 없이 쌓여 있다.

  스로가 생경해지는 느낌에 주목하는 이장욱의 시가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압축적인 어떤 ‘단어’들에 골몰하며 자연스럽게 공감을 유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시가 ‘나’의 고독이나 불안을 표현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을 두기보다 ‘당신’의 고독이나 불안을 이해하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생년월일』의 많은 시들은, ‘나’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말을 동원하는 것보다 ‘당신’에게 다가서기 위해 많은 말을 아끼는 일이 실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의 시처럼 읽힌다. 물론 앞서 말했듯 ‘당신’의 외로움을 알게 되는 일은 ‘나’의 외로움을 위로하는 일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거야. 언제나 조금 늦거나 빠르게 오는 것들이 있네. 가령 당신……고백……죽어가는 이들은 조금씩 늦거나 빠르게 죽어갔다.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났으나,

 

  나의 미래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먼저 도달해 있을 거야. 가까운 친구, 왕자와 거지, 파푸아뉴기니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나의 사랑스러운 인파들, 인파들……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겠다. 나아가고 또 나아가겠다. 당신을 찾아내겠다. 이제 막 공항의 탑승구로 사라지려는 당신을……

 

  정오와 자정 같은 단어로 이루어진 그런 시간이 흘러가. 강수량은 늘어나고 또 늘어나고 드디어……둑이 무너지는 순간, 두터운 구름장을 뚫고 비행기 한 대가,

  음속으로 날아갔다.

 

─ 「평균치」 부분

 

  장욱의 시에서 ‘당신’은 일인칭을 초과하지만 명백한 이인칭에는 못 미치는 어떤 ‘사이’를 뜻하는 단어라고 했거니와,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조금 늦거나 빠르게 오는” ‘당신’과 ‘나’의 조우는 “미래”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평균치」라는 아름다운 시는 미래에만 가능한 ‘당신’과 ‘나’의 만남을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성사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 쓰고 있다. ‘당신’과 ‘나’의 현재 위치와 각각의 속도를 고려하였을 때 이들의 만남은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평균수명”과 “강수량”을 계산하는 방식으로는, “정오나 자정 같은 단어로 이루어진 그런 시간”을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만남인 것이다. 이때 이장욱은 “음속으로” 멀어지는 당신을 향해 “나아가고 또 나아가겠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낯선 나’와 ‘낯선 당신’을 동시에 상상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들’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고 믿는 시인이다. 아마도 그 믿음은 내가 명백한 ‘나’일 수 없고, 당신 또한 명백한 당신일 수 없다는 깨달음 뒤에 오는 의지일 것이다. 이장욱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이 같은 깨달음과 의지를 천천히 배우게 된다. “관절의 힘”(「관절의 힘」)을 불현듯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은 “토르소”(「토르소」)의 고독으로부터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상적 고독과 반복되는 불안에 점점 무감해지는 우리에게 이장욱의 『생년월일』은 이처럼 “믿을 수 없는/신선한 자세로”(「관절의 힘」) ‘다른 서정’과 ‘다른 사랑’의 위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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