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목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1년 명장면

 

 

빛도 목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 한강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노대원

 

 

 

 

 

  떤 책들은 독자에게 함께 앓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책들은 독자에게 더 깊이 침잠하여, 더 오래 앓도록 간곡히 요청한다. 한강의 소설이 그렇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에서 작가는 누군가의 말을 빌려 상처가 나면 피가 멈추지 않는 고래들에 대해 말한 적 있다. 그렇게 그녀의 손에서 생명을 얻은 작중인물들은 모두 불치의 혈우병을 앓는 듯하다. 그들은 상처와 함께 태어나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다 끝내 상처와 함께 어둠의 페이지 속으로 사그라진다. 우리는 안다. 아물지 않는 상처는 죽음으로 닿는 험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또 기어이 알게 된다. 한강의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그 혈흔의 기록은 지독하게 어지럽고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 서서히 번져 나간다는 것을.

 

  번에는 눈 멀어 가는 한 남자와 목소리를 잃은 한 여자가 빚어내는 이중주다. 이처럼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이 그려내는 서사의 흔적 또한 상실과 결핍으로부터 비롯된다. “무엇인가를 잃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는 명제”(43면)는 한강 소설에서만큼은 참이다. 인물들의 삶에서 귀중하고 때로는 유일한 무엇인가를 앗아감으로써 소설은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이 가혹한 함수 앞에서 독자의 마음자리는 속수무책이다. 소설을 채우고 있는 위태롭도록 예민한 몸과 마음의 기록은, 그리고 가냘프고 숨 가쁜 호흡은 자주 시적 언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명(失明)과 실어(失語)는 특정한 신체 기관 또는 감각 기관의 단순한 고장이나 불능 상태가 아니다. 보는 눈과 말하는 입은 세계와 타인과의 접속 지점이다. 그러므로 빛과 목소리를 상실한다는 것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거나 타인과의 소통이 불통의 고통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뜻한다. 소설에서 남자와 여자는 쓸쓸하게 살아간다. 애초에 실명이나 실어의 불행한 조건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고독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듯이. 그들이 잃은 것은 눈과 말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숱하게 많은 사람과 사랑 들을 잃었으며 지금도 하나둘 잃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반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수년 전에 이혼했고, 세 차례의 소송 끝에 마침내 아홉 살 난 아들의 양육권을 잃었으며, 그 아이가 전남편의 집으로 돌아간 지 오 개월이 되어 가고 있었다.”(12면) 남자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독일에서 홀로 떨어져 지낸다. 그는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 첫사랑과 친구를 향해 마음속 주소지로 절절한 서신을 띄워 보낸다.

  독과 상실 앞에서 낯선 고대의 외국어를 떠듬떠듬 배우고 마음의 편지를 써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상처 입은 예술가의 초상과 다르지 않다. 말하지 못하는 시인과 눈 멀어 가는 철학자의 아이러니. 그러나 시인은 견고한 언어의 장벽 앞에서 역설적으로 침묵과 시선의 언어를 발견해 낸다. 그녀가 고대 희랍어로 서툴게 써내려간 시의 조각들은, 시인은 언제나 외국인이며 시는 언제나 외국어의 운명임을 상기시킨다. “목구멍에 눈(雪). / 눈두덩에 흙.”(64면) 시인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음이며 시인이 듣는 것은 들리지 않음이다. 철학자는 스스로를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112-113면)으로 여긴다. 어느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눈먼 예언자처럼 그는 눈뜬 자들이 보지 못하는 진실을 직시하고자 한다. 그것이 비록 소멸의 이데아, 어둠의 이데아에 관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실과 결여의 존재인 두 사람은 예기치 않은 작은 사건을 거쳐 어둠 속 기나긴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다. 물론 그들은 온전히 말하지 못하며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보다 긴 침묵이, 빛보다 강한 어둠이 가득했다. 하나, 전언의 송수신 그 자체보다는 두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하며 서로에게 가까스로 다가가고 있음을, 서로의 존재를 시나브로 뒤섞어 가고 있음을, 그들은 느꼈을 테다. 그래서 두 사람이 입 맞춘 뒤로 심해의 숲에서 흘러나오는 연가(戀歌)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우리는 구분할 수 없다. 사랑의 노래는 두 사람이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이며, 연인이란 말하지 않고 읽지 않아도 전달되는 유일무이한 외국어를 발명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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