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떡볶이

[기획·특집] 동화를 읽자!

                     ─ 단편동화

 

브라질 떡볶이

 

김민령

 

 

 

 


 

우리 학교 앞에는 아주 오래된 떡볶이집이 있다. 가게 이름은 브라질 떡볶이.

열 살 많은 누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다는 두준이네 아빠는 브라질 떡볶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실은, 우리 아빠 매운 거 못 먹어. 짬뽕 먹을 때도 막 운다.”

두준이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 귓속말로 아빠 흉을 보았다.

짬뽕이라면, 난 이미 세 살 때부터 즐겨 먹었다고 한다. 보통의 세 살짜리라면 물에 싹싹 헹군 김치를 먹다가도 맵다고 뱉어버리곤 한다. 누나는 신라면만 먹어도 맵다고 호들갑을 떠는 입맛이라 언제나 짬뽕보다는 짜장면을 고른다. 누나가 어른들 몰래 설탕을 찍어 먹을 때 난 고추장을 찍어 먹던 거다. 매운 음식이라면 뭐든 좋다. 낚지볶음이나 해물탕, 닭볶음탕…….

한번은 아빠를 따라 맥줏집에 간 적이 있는데 아빠가 맥주를 한잔 마시는 동안 나는 아주 맵게 무친 골뱅이를 먹었다. 골뱅이 무침은 정말 맛있었고, 아빠하고 나란히 앉아 있으니 어쩐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돌아오는 누나를 기다렸다. 누나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는데 아마 공부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아빠와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누나를 만나 셋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공기 중에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한 봄날 밤이었다. 나는 누나를 지키는 호위무사가 된 것처럼 으쓱해졌다. 이후에도 골뱅이 무침을 맛볼 기회를 엿보았지만 엄마가 질색을 하는 바람에 다시는 가지 못했다.

브라질 떡볶이를 처음 먹게 해준 사람은 누나였다.

“꼬맹이 네가 매운 걸 잘 먹으니까 누나가 특별히 사주는 거야.”

누나가 나한테 포크를 쥐어주며 생긋 웃었다.

내가 일곱 살 때였고, 엄마 아빠는 친척집에 가고 없었다. 그날 엄마가 저녁을 사먹으라고 주고 간 돈은 고스란히 누나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나중에 화를 내자 누나가 말했다. “그래도 그 떡볶이 진짜 맛있지 않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브라질 떡볶이는 정말 맛있으니까. 브라질 떡볶이에서는 보통 2천 원짜리 브라질 세트를 먹는다. 브라질 세트는 동그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주는데, 먼저 철판 가득 빨갛게 버무려 놓은 떡볶이를 한 주걱 뜨고 여기에 되직한 떡볶이 국물을 듬뿍 끼얹는다. 그리고 삶은 계란 한 개와 군만두 두 개를 얹고 다시 국물을 한 번 더 뿌려준다. 국물은 떡볶이를 다 먹은 다음 삶은 계란을 부숴 먹거나 군만두를 먹을 때 함께 먹으면 된다.

먹는 동안 딴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정말 맛있다.

“아무리 그래도 일 주일에 다섯 번은 너무하지 않냐?”

내가 매일 떡볶이로 저녁을 때우는 걸 걱정해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브라질 떡볶이 주인 아저씨다. 우리는 그냥 브라질 아저씨라고 부른다. 아저씨는 금귀고리를 달고 뒤로 꽁지 머리를 묶은 다음 알록달록한 두건을 쓰고 있다.

나는 그냥 웃었다.

“너희 이번 주에 여기 하루도 빠짐없이 온 거 아냐?”

“집에 가봐야 엄마도 없어요. 엄마가 저녁은 사먹으라고 하는데요.”

두준이가 냉큼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사 먹어야 한단 말이지. 너처럼.”

아저씨가 고추장 묻은 주걱으로 두준이를 가리켰다. 두준이는 분식집에서 사온 김밥을 펼쳐 놓고 먹다가 배시시 웃었다.

“엄마 출근이 많이 늦으시나 보다.”

“우리 엄마는 한 여덟 시쯤 오는데요, 얘네 엄마는…….”

두준이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말끝을 흐렸다. 두준이 눈에 걱정하는 빛이 어렸다.

“얘는요, 김밥보다 이게 더 맛있대요. 매운 음식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두준이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넌 참 말이 없어.”

아저씨가 나한테 말했다.

“재우는 원래 말을 잘 안 해요. 그렇다고 아주 말이 없는 건 아니고요, 필요한 말은 해요.”

“그래, 넌 참 말이 많고.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고, 아주 잘 만났네.”

브라질 아저씨가 뒤돌아서서 철판의 떡볶이를 한 번 뒤집어 주었다.

두준이가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그런데 왜 브라질 떡볶이예요?”

“왜냐니?”

“신당동 떡볶이나 안동 찜닭은 이해가 되는데 브라질 떡볶이는 이상하잖아요.”

“뭐가 이상하냐, 인마.”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두준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재우야, 이상하지? 그렇지?”

“잘 모르겠는데.”

세상에 이상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떡볶이집 이름 정도야 이상해도 괜찮다. 나는 병원에 있는 누나를 생각했다.

“난 이상한데.”

두준이는 마지막 남은 김밥을 입에 넣고 호일을 구겼다.

“아저씨, 혹시 브라질 고추로 만든 고추장 쓰세요?”

“…….”

아저씨는 묵묵히 떡볶이만 뒤집고 있었다.

“그런데 브라질 사람들도 고추를 먹어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베트남 고추가 그렇게 맵대요. 그리고 베트남 고추보다 더 매운 게 인도 고추래요. 브라질 고추는 몇 등일까요?”

“넌 참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구나.”

“우리 아빠도 만날 그 소리 하는데!”

두준이가 반갑다는 듯이 소리를 높였다. 나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며 접시에 담긴 떡볶이를 느릿느릿 먹었다.

“재우 너도 매운 거 잘 먹으니까 이다음에 베트남 고추에 도전해 봐. 그리고 그다음에는 인도 고추. 고추를 엄청 많이 먹으면 텔레비전에 나갈 수도 있어. 이상한 사람들을 방송국에서 좋아하는 것 같아.”

두준이는 너무 말이 많고, 사실 대부분의 말은 하나마나한 것들이다. 그래도 두준이랑 있으면 내가 아무런 말을 안 해도 이상해 보일 리 없으니 좋다. 예전에 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종종 두준이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곤 했다. 엄마는 두준이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가엾다고도 했다. 지금, 엄마는 누나 옆에 있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말하려는데 두준이가 다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럼 브라질에서 태어나셨어요?”

“뭐?”

아저씨가 푸하, 웃음을 터뜨렸다.

학원 수업을 마친 뒤, 두준이네 아파트 단지까지 걸어갔다.

“오늘도 병원 가?”

두준이가 물었다.

“아니. 어제 갔다 왔어. 오늘은 집으로 곧장 갈 거야.”

“누나는 좀 어때?”

“그냥 그래. ……어, 사실은 잘 모르겠어.”

두준이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전거를 끌고 돌아섰다.

누나는 벌써 두 달도 넘게 입원 중이었다. 처음엔 별일이 아닌 줄 알았는데 아마 뭔가 큰 병에 걸린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엄마도 울고 아빠도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만 울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나한테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이야기하기 껄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휑한 집에 불을 켜고 들어갔다.

엄마는 누나 옆을 지키느라 집에는 일 주일에 한 번쯤 올까 말까여서 아빠가 야근을 하는 날은 나 혼자 집을 지켜야 한다. 그럴 때면 밤늦게까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 게임을 했다.

“꼬맹아, 그렇게 텔레비전만 보다가 바보 된다.”

“꼬맹이 너, 수상한 동영상 보고 있는 거 아니야?”

늘 시시한 시비를 걸어 오던 누나가 없으니 텔레비전을 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았다.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하고 대들 일이 없으니 집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며칠에 한 번 병원에서 만나는 누나는 예전 같지 않았다. 핏기 없고 지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다.

“어, 우리 꼬맹이 왔네.”

겨우 그 말을 하고는 까부라지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9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방을 멨다. 이럴 때 지각도 안 하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서 어른이 되면 아마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겠지. 나는 매일 십 분, 이십 분씩 지각을 하고, 사나흘에 한 번쯤은 왕창 늦곤 한다. 처음엔 담임선생님한테 혼이 났지만 지금은 선생님도 그냥 눈감아 준다. 그저 잠깐 동안 물끄러미 바라볼 뿐.

엄마가 선생님과 통화를 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뭐라고 말했을까?

재우 누나가 아파서요, 재우가 많이 슬플 거예요.

제가 재우를 잘 챙겨 줄 수가 없으니까 좀 봐주세요.

어떤 것이든 조금 창피한 느낌이 들어서 지각은 하고 싶지 않은데.

첫째 시간이 끝날 때쯤 맞춰서 학교에 갔다.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들어갔다.

“와! 재우 왔다!”

두준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학교에 있을 때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다. 두준이가 싱거운 소리를 늘어놓으면 다른 아이들이랑 하하하, 소리를 내서 웃기도 한다.

“으, 김재우, 머리 안 감았니? 뒷머리가 다 뻗쳤다 야.”

뒷자리에 앉은 서연이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머리를 언제 감았더라? 엄마가 없으니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것만도 겨우겨우 하고 있다. 좀 무안했지만 별수 없다.

“냅둬. 내 머리지, 네 머리냐?”

“네 머리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런다.”

“그러게 신경을 끄시라고요.”

“흥.”

“나도 흥이다!”

눈이 똥그란 서연이랑 투닥투닥 말싸움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럴 땐 누나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방과후 수업이 끝나고 두준이랑 브라질 떡볶이에 갔다.

“아저씨, 브라질 세트 두 개요!”

두준이가 의자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수학 문제집을 꺼내며 외쳤다.

“학원 숙제 다 못했어?”

“응. 어제 엄마 올 때까지 자전거 탔거든. 아, 큰일났네. 숙제 안 해온 사람 노래 시킨다고 했는데.”

떡볶이는 금세 나왔다. 떡볶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브라질 아저씨가 허리를 굽혀 두준이의 문제집을 들여다봤다.

“인마, 숙제는 집에서 하는 거지.”

아저씨가 한마디 하고 돌아서려는데 두준이가 말했다.

“아저씨, 축구죠? 축구 아니에요?”

“뭐가 축구냐?”

“브라질 떡볶이 말이에요. 아저씨가 축구를 좋아해서 브라질 떡볶이라고 이름 지은 거 아니냐구요. 브라질이 축구를 잘하잖아요.”

두준이가 다 안다는 듯이 흐흐흐 웃었다.

“그럼 축구 떡볶이라고 하지 뭐 하러 브라질 떡볶이라고 하냐? 안 그러냐?”

아저씨가 나한테 동의를 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 떡볶이라니 이상하긴 하지만.

“그리고 난 축구 안 좋아한다.”

아저씨가 척 팔짱을 끼고 말했다.

“에이, 축구 안 좋아하는 남자가 어딨어요?”

“여기 있다, 왜?”

아저씨는 재미있다는 듯 한번 웃더니 가버렸다.

“아, 그럼 뭐지? 뭐지? 삼바춤인가……?”

두준이는 수학 숙제도, 떡볶이도 잊어버린 채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너 숙제 안 해?”

“아차, 숙제!”

두준이는 떡볶이를 한입 가득 쑤셔 넣더니 연필을 잡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들었다.

“어제 자전거 타면서 보니까 해가 엄청 빨갛더라. 높이 있을 땐 하얗게 빛나잖아? 그런데 막 저녁이 되려고 할 때 해를 보면 진짜 빨개. 빨간 공 같아. 너 알았어?”

“아니.”

두준이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손뼉을 짝 쳤다.

“아, 아저씨, 브라질 국기에 빨간색 들어가요?”

“음, 아닐걸.”

아저씨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학원에서 두준이는 연습장에 빨간색을 잔뜩 칠해 놓고 아이들에게 알아맞혀 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현미경으로 본 사과, 피바다, 화재 현장 등등 답을 말하느라 순식간에 학원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자신 있게 태양이라고 말했다.

“아니야. 이건 브라질 떡볶이 국물이야.”

두준이는 대답 끝에 으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따라 웃는 대신 모두 우, 하고 야유를 보냈다. 나 혼자만 두준이를 따라서 으하하하 웃었다.

“아, 궁금해, 궁금해! 내 머릿속은 온통 빨강이라니까.”

집으로 오는 길에 두준이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 때 두준이는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난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창에 ‘브라질’을 쳤다.

브라질. 정식 명칭은 브라질연방공화국. 남아메리카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땅을 갖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2,000mm, 연중 기온은 30℃ 전후로 열대성 기후다. 아마존 강이 흐르고 원주민인 인디오가 있는 나라. 커피와 설탕, 오렌지주스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해 내는 나라. 브라질 국기는 푸른 바탕에 노란 마름모, 다시 그 안에 파란 지구가 있는 모양이었다. 빨강은 고춧가루 하나만큼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떡볶이와 무슨 상관이냐.

나는 다시 검색창에 ‘떡볶이’를 쳤다.

떡볶이. 가래떡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 쇠고기와 여러 가지 야채를 섞고 갖은양념하여 볶은 음식. 그러나 보통은 떡볶이용 길쭉한 떡에 어묵과 파를 섞어 고추장으로 맛을 낸 음식. 인터넷에는 간장 떡볶이, 치즈 떡볶이, 혀가 달아날 만큼 엄청 매운 떡볶이 등등 다양한 떡볶이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혀가 달아날 만큼이라면 얼마나 맵다는 걸까? 맵다는 글만 읽었는데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누나라면 물을 열 컵쯤 마시고도 호들갑을 떨며 얼음을 깨물어 먹어야 할 거다. 그럼 난 보란 듯이 남은 떡볶이를 해치우는 거지.

“고추장 귀신 같으니라구! 무슨 꼬맹이가 그렇게 매운 걸 잘 먹니?”

조금 약올라하는 누나의 표정이 떠올랐다.

“있지, 네가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지 알아? 내가 너무 심심해서 엄마한테 강아지를 한 마리 사달라고 했거든. 동물병원에서 복슬복슬하고 하얀 강아지도 다 봐놨어. 그런데 엄마가 강아지를 사주는 대신 너를 낳은 거지.”

누나가 나를 놀릴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픽 웃음이 났다.

 

엄마가 샤워도 하고 짐도 챙길 겸 집으로 가고 내가 누나 옆에 남았다. 누나는 조금 기운이 나는 듯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우리 꼬맹이.”

예전 같으면 발끈했겠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누나는 아무래도 낯설어서 뭐라고 대들기도 어려웠다. 누나가 팔을 뻗더니 내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렸다. 내가 아무리 성가셔해도 누나가 기분 좋을 때면 막무가내였다. 나는 누나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희고 북슬북슬한, 얌전한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너 좀 마른 것 같다. 밥 잘 안 먹는구나.”

“어? 급식도 엄청 많이 먹는데.”

“저녁에 또 떡볶이만 먹는 거 아냐?”

나는 뜨끔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 때문에 밥도 잘 못 먹는구나. 우리 꼬맹이. 저녁에 허기질 텐데.”

“아니야, 아니야. 내가 떡볶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누나도 알잖아. 나 요즘 진짜 신나.”

“정말?”

누나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떡볶이를 배터지게 먹는다니까. 나 키도 많이 컸어.”

“어디, 얼마나 컸나 보자.”

누나가 몸을 일으키더니 침대에서 내려왔다. 슬리퍼 속 누나의 맨발은 앙상했다.

마주 보고 섰더니 누나 키가 예전보다 작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누나가 나보다 조금 컸지만.

“와, 조금 있으면 나 따라잡겠다.”

“멀지 않았어, 누나.”

우리는 한참 동안 웃는 얼굴로 마주보았다.

누나가 걷고 싶어 해서 우리는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는 희고 구겨진 환자옷을 입은 사람들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누나는 천천히 걸어 복도 끝으로 갔다. 창 밖으로 서쪽 하늘이 내다보였다.

뾰족한 교회탑 옆으로 빨갛고 커다란 해가 지고 있었다. 두준이 말대로 정말 빨갛고 뜨거운 공 같았다. 해만 빨갛고 세상은 온통 뿌옇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나와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해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지더니 회색빛 산 너머로 가라앉았다.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누나 손을 꼭 잡았다. 비쩍 마르고 거칠었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누나가 나를 보고 웃었다.

“누나, 브라질 떡볶이 알지?”

“초등학교 앞에 있는 거?”

“왜 이름이 브라질 떡볶이인지 알아?”

“글쎄. 주인이 브라질 사람인가?”

누나가 되물었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인데. 엄청 멋쟁이 아저씨 있어. 귀고리도 하고 두건도 쓰고…….”

“바보야, 그건 멋진 게 아니라 촌스러운 거야. 스타일이 한 십오 년쯤 뒤처졌잖아.”

누나가 웃으며 말했다. 누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두고 흠잡는 데 선수다. 누구는 옷차림이 웃기고 누구는 머리 모양이 안 어울리고 누구는 발냄새가 나게 생겼고 등등. 예전 누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아는구나!”

“오다가다 봤지. 그런데 나 학교 다닐 때는 다른 할아버지가 주인이었어.”

누나는 침대에 누워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그래. 그 할아버지도 외국인 같진 않았지만. 흠…… 그때도 브라질 떡볶이였어. 그러고 보니 희한하네. 왜 떡볶이집 이름이 브라질일까?”

누나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중얼거리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브라질 아저씨가 원래 주인이 아니라고? 아저씨가 선뜻 대답을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거구나. 아저씨가 지은 이름이 아니라서 대답을 못했던 거다.

“두준이가 아저씨한테 엄청 캐묻고 있어.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럼 누나한테도 꼭 알려줄게.”

내가 조바심을 내며 말했지만 누나는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조용히 일어나려는데 누나가 눈을 반짝 떴다.

“그 집 떡볶이 먹고 싶다!”

“떡볶이 먹어도 돼?”

“되지 않을까?”

“그럼 내가 사다 줄게.”

“정말?”

“응, 한보따리 사다 줄게.”

“그럼 고맙지.”

누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나는 누나에게 떡볶이를 사다 주지 못했다.

누나는 다시는 떡볶이를 먹지 못했다. 누나가 떠나던 날, 나는 두준이 자전거 뒷좌석에 타고 놀았다. 두준이가 신나게 페달을 밟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뒷좌석에서 일어섰다. 두준이 어깨를 짚고 서자 귓가에 바람이 휙휙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휘- 소리를 내며 거리가 지나갔다.

브라질 떡볶이 앞을 지나갈 때 가게 앞에 나와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가 뭐라고 소리치며 두 팔을 흔들었다.

“네? 뭐라고요?”

두준이가 아저씨에게 한 손을 들어 흔들었다.

나는 높이 솟은 채로 바람처럼 달렸고,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이대로 하늘 끝까지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멀고먼 우주까지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나쁜 소식이었다.

우주로 날아간 사람은 누나였다. 누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두준이가 브라질 떡볶이 유리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브라질 떡볶이 집은 굳게 문을 닫은 채였다. 유리문에는 ‘임대 문의 희망 부동산으로’라고 씌어 있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두준이는 가까이 다가가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봤다. 어두운 실내가 무척 낯설었다.

“하긴 우리가 좀 뜸하긴 했어.”

두준이가 나를 힐끗 보았다.

누나가 떠나고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두준이는 이제 매일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앞으로는 꼭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 먹자.” 엄마는 부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준이에게 말했다. 두준이가 밥을 먹으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으면 확실히 딴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브라질 떡볶이에서 저녁 먹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니었어도 브라질 떡볶이에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나가 먹고 싶어 했던 걸 나 혼자 먹을 수는 없으니까.

누나가 없는 걸 빼고는 예전이랑 똑같았다. 하지만 누나가 없으니 예전이랑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엄마 아빠는 이따금 따로따로 흐느껴 울었다. 나는 말이 더 줄었다. 넌 참 말이 없어, 하던 브라질 아저씨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의자랑 테이블이랑 다 그대로 있는데 불이 꺼져 있으니까 이상하다.”

두준이가 유리창에 코를 박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브라질 떡볶이가 문 닫은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말이나 밤늦게 학교 앞을 지나갔다면 분명히 봤을 텐데 까맣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브라질 떡볶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환하게 불을 켜놓고,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면서 떡볶이를 뒤집고 서 있는 아저씨가 떠올랐다.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괜히 마음이 허전해서 들고 있던 농구공을 탕탕 튀겼다.

“여기 떡볶이 정말 맛있었는데 아쉽다.”

두준이가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바로 그때, 바람이 휘잉 불었다. 유리문에 나붙어 있던 종이가 팔랑팔랑 움직이자 그 아래 붙어 있던 다른 종이가 보였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거기 적힌 글을 읽었다.

 

1989년 “브라질 아이스크림과 떡볶이”로 문을 열었고,

이후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져 내려온 “브라질 떡볶이”는

오늘로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 떡볶이를 맛있게 먹어 주신 모든 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 이거였구나. 브라질 아이스크림과 떡볶이.”

두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답 대신 농구공을 몇 번 튀겼다.

“좀 시시하다. 그치? 그래서 아저씨가 말을 안해 줬나?”

두준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아마도 아저씨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을 해주려고 했을 것이다. 아저씨는 두준이가 이유를 물을 때마다 심드렁한 대꾸를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끝까지 말을 안해 줬을 수도 있다. 두준이 말대로 너무 시시한 이유라서 부끄럽게 느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우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농구공을 두준이에게 휙 던졌다.

“가자, 시합에 늦겠다.”

“아차, 그렇지!”

우리는 브라질 떡볶이를 뒤로 하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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