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수업

 

[기획·특집] 동화를 읽자!

                   ─ 단편동화

 

말하기 수업

 

김혜진

 

 

 


 

“어머, 두 분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원래 두 사람이 수업을 진행합니다.”

나이든 쪽 선생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두 선생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숫자 10 같아서, 젊은 선생님이 홀쭉하게 마른 1이고 배가 넉넉하게 나온 나이든 선생님이 동그란 0이라고 하면 딱 맞았다. 동그란 선생님이 말하는 동안 홀쭉한 선생님은 연신 안경을 고쳐 썼다. 홍이가 보기에도 긴장한 티가 났다.

“꼭 교생 선생님 같아. 이쪽 할아버지 선생님은 저 선생님이 수업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러 왔나 봐.”

홍이는 짝인 유나에게 속삭였다. 유나는 소리죽여 킥킥 웃었다.

“자, 여러분, 여기 보세요!”

담임선생님이 손뼉을 짝짝 쳤다.

“오늘부터 두 달간, 목요일 5교시마다 말하기 수업을 해주실 선생님들이세요. 이쪽이 송 선생님이시고 그 옆에 박 선생님. 나도 가끔 와서 볼 테니까 말씀 잘 듣고!”

담임선생님은 말썽꾸러기 남자애들을 향해 두 눈을 치켜떠 보이고선 교실을 나갔다. 남자아이들은 혀를 쏙 내밀고 자기들끼리 낄낄대었다.

진한 초록색 양복을 입은 교생 같은 박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섰다. 갈색과 노란 체크무늬 양복을 입은 송 선생님은 결석한 재민이 자리에 앉았는데, 의자도 책상도 송 선생님에게는 너무 작았다.

“안 보여요.”

바로 뒷자리에 앉은 은채가 조그맣게 말하자 송 선생님은 미안한 얼굴로 어깨를 수그렸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박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가, 반가워요.”

말하기 선생님이 말을 더듬다니! 앞으로 목요일 5교시가 지루해지겠단 생각에 홍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박 선생님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떨리는 손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까만 가죽 가방을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저 가방은 조금 재밌어 보이는걸.’

홍이는 비로소 흥미를 가지고 그 가방을 바라보았다. 박 선생님은 가방을 똑딱 젖혀 열었다가 곧 후다닥 닫았다. 하지만 홍이는 뭔가를 봤다. 컴컴한 가방 안쪽에, 불꽃처럼 번쩍이며 빛나는 것이…… 아니, 홍이가 잘못 본 것일 테다. 누가 가방에 불꽃을 넣어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자유는, 누, 눈에 보이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야. 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온단다.”

박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갑자기 어려운 말이 나와서 홍이는 어리둥절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박 선생님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어, 그러니까, 어…….”

흠흠, 송 선생님이 헛기침을 했다. 박 선생님은 붉어진 얼굴을 만지작거렸고 송 선생님은 자리에 앉은 채로 아이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선 말했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말할 수 있지. 어디, 말해 보렴. 바다는?”

“네?”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은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떠오르는 것을 말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잘 들어 보기다. 자, 바다는?”

“바다는…… 파랗다?”

은채가 자신 없이 대답하자 송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문제 내는 거야?’

홍이는 귀를 쫑긋 세웠다. 맞는 답을 말하려면 미리 생각을 해두어야 했다. 송 선생님은 영차,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바람은?”

“바람은…… 시원해요.”

“음, 그럼 나무는?”

“나무는, 무성하다!”

송 선생님은 교실 뒤까지 걸어가며 대여섯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홍이는 조금 얼굴을 찌푸리고서 답을 생각했다.

‘바다는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오고, 나무는 초록색이지.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거야?’

송 선생님은 해미 앞에 섰다.

“엄마는?”

“엄마는, 우리 엄만데요.”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미 얼굴이 박 선생님처럼 빨개졌다.

“계속 말해 보렴.”

송 선생님이 재촉했다.

“엄마는…… 여자다. 엄마는, 이건 사실은 아니지만요, 예쁘다. 엄마는, 착하다. 엄마는, 나쁘다!”

엉겁결에 말해놓고서 해미는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구석자리에 앉은 동우가 불쑥 말했다.

“엄마는, 파랗다!”

“뭐? 엄마가 파래?”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홍이는 분명 선생님이 야단을 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송 선생님은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선생님이 화를 내거나 막지 않고 도리어 반기는 기색을 보이자 아이들은 제 멋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동우와 몇몇 남자애들이 제일 심했다. 학교는 찌그러졌다, 자동차는 미쳤다, 운동장이 굴러간다…….

송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묻고 박 선생님은 아이들이 한 말을 칠판에 적었다. 말도 안 되는 말, 이상한 말, 어이없는 말들이 칠판에 쓰이는 걸 보니 홍이는 기가 다 찼다.

‘저렇게 말해도 되나? 저건 틀린 말이잖아. 말도 안 돼!’

바로 그때였다.

“다시 생각해 보자. 바다는?”

홍이는 고개를 들었다. 송 선생님이 바로 홍이 앞에 서 있었다. 말해 보렴, 하고 선생님이 홍이에게 말했다.

‘바다는, 바다는 뭐지?’

홍이는 입을 뻥긋도 못하고 송 선생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기만 했다. 홍이도 아주 이상한 말을 해야 했을까?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인걸. 목이 꽉 막히고, 얼굴이 아주 뜨거워졌다. 반 아이들의 눈동자가 화살처럼 얼굴에 꽂히는 것 같았다.

“바다는 개구리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아이들은 깔깔대고 송 선생님은 그 쪽으로 돌아섰다.

“그래, 좋아. 그렇게 말하는 거다.”

선생님의 등 뒤에서 홍이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단번에, 홍이는 이 말하기 수업이 정말 정말 싫어졌다.

 

“그 선생들, 이상하지 않냐?”

쉬는 시간에 동우 책상 주변에 몰려 앉아서 만화책을 보던 남자애들 사이에서 누군가 말했다.

“누구? 아, 말하기 선생님들?”

“어. 좀 이상해.”

남자애들은 송 선생님과 박 선생님이 얼마나 이상한지, 생긴 것도 이상하고 옷도 이상하고 말투도 이상한지에 대해 떠들어 대었다.

‘그래, 이상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라고 하잖아.’

홍이는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난 좋던데. 재밌잖아.”

동우가 만화책을 넘기며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싹 바꿨다.

“하긴, 재밌긴 했어.”

“어, 안 지겹더라.”

홍이는 기분이 나빠져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동우는 말썽만 피우고 싸움이나 하는 애다. 저런 애 한 마디에 이랬다 저랬다 하다니! 다른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홍이는 말하기 수업이 싫었다. 동우 같은 애들이 제 맘대로 헛소리를 늘어놓는데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 마음대로 말하는 것까지는 좋다고 치자. 하지만 그 마음대로 한 말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홍이는 싫었다. 말하기 수업 시간이 되면 홍이가 생각할 때 맞는 말들 – 바다는 넓고 나무는 초록이다 같은 말들이 도리어 다 틀린 것처럼 되어버렸다. 선생님들은 애들이 하는 이상한 말을 자꾸 잘 들어 보라고도 했는데,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어 봤자다. 이런 말하기 수업은 완전히 시간낭비였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네 번째 시간에 홍이는 손을 들었다.

“이런 말하기는 왜 배워요? 하나도 안 맞아요.”

분필을 들고 서 있던 박 선생님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 그건, 그건 말이다.”

박 선생님이 허둥지둥 말을 더듬는데 송 선생님이 홍이 쪽으로 걸어왔다. 홍이는 어깨를 움츠렸다. 애들이 나댄다고 할까 봐 걱정도 되고 선생님이 야단치면 어쩌나 싶었는데, 송 선생님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홍이에게 되물었다.

“정말 그럴까? 안 맞는지 맞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때 뭐였지, 바다는 개구리였던가?”

“네, 개굴개굴!”

준형이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송 선생님이 준형이에게 물었다.

“바다가 어떻게 개구리일 수 있을까?”

“어, 그건요…….”

준형이가 머뭇거리자 송 선생님은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라고 준형이를 격려했다. 준형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팔짝팔짝 뛰니까!”

“바다가 어떻게 팔짝팔짝 뛰니?”

준형이 짝 새하가 홍이 마음처럼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송 선생님은 준형이의 말을 이어갔다.

“상상해 볼까? 바다가 팔짝팔짝 뛰면 어떻겠니?”

“어지러워요!”

“파도가 세게 칠 것 같아요, 배들이 마구 흔들리고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말을 했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말들이 통통 튀어 올랐다.

“이제 바다가 개구리인 것이 조금 맞는 것도 같지 않니?”

송 선생님은 몸을 돌려 홍이에게 물었다. 다른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홍이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억지스러워요. 말에는 뜻이 있는 건데, 억지로 뜻을 갖다 붙인다고 말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네 말도 맞다. 억지로 뜻을 통하게 할 필요는 없어. 그건 기껏 부풀어 오른 말을 터뜨리는 일이니까.”

‘부풀어 오른 말이라고? 어쩜 이렇게 이상한 말이 있을까.’

홍이는 선생님의 말을 듣느라, 잘못된 걸 지적할 생각도 잠깐 잊었다.

“너희는 서로를 얼마나 믿니?”

송 선생님이 갑자기 물었다. 그것 역시 참 이상한 질문이었다. 차라리 너희는 친구니? 라고 물었다면 대답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긴 힘들었겠지만.

“믿는다는 건 그 사람이 내 말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안다는 뜻이란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 줄 것을 믿어야 말할 수 있지. 지금 너희가 서로를 믿고 말한다면, 귀 기울인다면 이 말들이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어려워요.”

윤수가 불평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홍이도 마찬가지였다. 송 선생님의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홍이 마음에 잔잔하게 와 닿았다.

홍이는 칠판에 가득 적힌 이상한 말들을 바라보았다. 저 말들을 귀 기울여 듣는다면 뭐가 달라질까. 바다가 개구리일 수도 있다면 바다는 나무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바다는 바로 여기 학교일 수도 있어…….

그 순간이었다.

쏴아─ 하는 깊은 소리와 함께 칠판 쪽에서부터 파랗고 검은 물이, 하얀 거품을 손가락처럼 뻗은 파도가 밀려왔다. 홍이는 눈을 꽉 감았다. 차갑고도 부드러운 바닷물이 홍이를 감싸 의자 위로 붕 띄워 올렸다.

‘바다야! 어떻게 바다가?’

홍이는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을까? 물보라도, 파도 소리도 없었고 홍이는 아까처럼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책상 위의 책이며 공책들, 책상 옆에 걸어 놓은 신발주머니와 가방은 진짜 파도가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다만 조금도 젖지 않고 멀쩡했다.

교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아이들은 모두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서 잠깐 바다가 왔다 간 교실을 바라보았다. 박 선생님이 정적을 깼다. 박 선생님은 숫제 펄쩍펄쩍 뛰었다.

“아니, 이, 이게 어떻게……. 누가, 누가 말했니? 응? 누가 말한 거냐?”

대답 대신, 송 선생님이 천천히 말했다.

“누가 말한 게 아니야. 누군가 들은 걸세.”

 

“이 수업 얘기, 다른 반 애들한텐 못하겠어.”

“난 우리 언니에게도 얘기 못하겠더라.”

홍이 뒤에 앉은 정아와 다현이가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다현이는 꿈꾸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신기했어, 정말.”

그 바다는 정말로 충격이었다. 송 선생님은 놀라지 말라며 아이들을 다독였지만 박 선생님은 아이들만큼 놀랐는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얼빠진 사람처럼 의자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 이후로 이 이상한 말하기 수업은 3반 아이들 모두의 비밀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홍이에게는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수업이 끝나기 직전, 송 선생님이 홍이에게 작게 물었던 것이다. 네가 귀 기울여 들은 거지? 하고 말이다.

그건 꿈이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귀를 울렸던 파도 소리와 짭짜름한 냄새와 온몸에 닿은 차가운 물의 감촉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했다.

그게 진짜였다면, 도대체 홍이가 뭘 들었기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홍이는 마음이 어지러워서 괜히 뒤돌아 다현이에게 짜증을 냈다.

“그건 다 엉터리야!”

“왜 나한테 그래?”

다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사과하면 좋았을 것을 홍이는 한 마디 더 쏘아붙이고 말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뭐가 좋니?”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현이는 단단히 화가 나 버렸다.

─ 다현이 진짜 화났어.

말하기 수업 시간에 뒤에서 정아가 쪽지를 보냈다.

‘이게 다 이 말도 안 되는 말하기 수업 때문이야!’

홍이는 쪽지를 확 구겼다. 가장 친한 친구와 싸우게 된 것도, 이상한 말을 듣고 이상한 걸 봐서 정신이 없는 것도 다 엉터리 말하기 수업 때문이었다.

‘난 안 말할 거야. 듣지도 않을 거구!’

홍이는 입을 꾹 닫고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느라 송 선생님의 눈길이 가끔 홍이에게 머무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말하기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의 짧은 종례 후에 다현이는 쌩하니 교실을 나가버렸다. 유나와 정아도 머뭇거리다가 다현이를 따라갔다. 홍이는 혼자 운동장 스탠드 계단에 앉았다. 언제나 같이 집에 가던 친구들이 없으니 집까지 갈 일이 까마득하기만 했다. 홍이는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어디 아프니?”

갑자기 들려온 질문에 홍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런, 송 선생님과 박 선생님이었다. 송 선생님은 홍이처럼 계단에 걸터앉았다.

“아까 보니까 기운이 없던데, 감기라도 걸렸나 보구나.”

“아니에요.”

홍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들켜 버린 것 같아서 창피했다.

“그럼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러니? 넌 잘할 수 있을 거다. 지난번에 바다를 듣기도 했잖아.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칭찬 같은 말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 없었다.

“전 그런 틀린 말 같은 거 배우기 싫어요!”

홍이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아이고, 우, 울지 말렴.”

박 선생님이 안절부절 못하며 가방에서 깨끗한 휴지를 몇 장 꺼내어 건네주었다. 홍이는 휴지로 눈을 가렸다. 왜 서럽기까지 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 바람 한 줄기가 불어 지나가고 송 선생님이 말했다.

“틀린 말, 우리는 그렇게 부르지 않아. 부풀어 오르는 말이라고 부르지.”

송 선생님의 목소리는 노래하듯 경쾌했다. 홍이는 훌쩍이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말이 부풀어 오르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홍이는 고개를 저었다. 송 선생님은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손을 입가에 대었다.

“세계가 넓어진단다.”

“소, 송 선생님, 그런 말까지 하면 안 됩니다, 안 돼요. 규, 규정에 어긋나요.”

박 선생님은 발을 동동 굴렀다. 송 선생님은 아랑곳없이 손을 내밀어 운동장과 그 너머의 건물들을 가리켰다.

“보이는 것만이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니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 위에 겹쳐져서 커지거나 좁아지곤 해. 세상이 한없이 넓다고 느낄 때나 한없이 좁다고 느낄 때가 있는 건, 그래서란다.”

홍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선생님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건물들과 나무들이 보통때보다 멀고 아득해 보였다.

“예전엔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새로운 말, 세상에 없던 말, 부풀어 오르는 말을 하곤 했어. 그런 말들 덕분에 세계는 언제나 충분히 넓었단다. 하지만 그 말들이 엉뚱하고 어리석고 이치에 닿지 않은 말로 여겨지면서, 사람들은 말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게 되었지. 그래서 세계는 점차 좁아지고 있어.”

“좁아지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이미 홍이의 눈물은 다 말랐다. 선생님의 말은 이상했지만, 그 말을 듣고 있으려니 꽁꽁 뭉친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홍이는 정말로 궁금한 마음으로 물었다.

송 선생님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도 점점 답답해진단다. 보이는 것보다 더 좁아져서 우리를 옭아매고, 서로 부딪치게 되고 싸우게도 되지. 그래서 우리는, 말하기를 가르치러 온 거야.”

홍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괴었다. 세상이 점점 좁아지면 어떻게 될까. 하늘이 낮아지고 길이 없어지고, 마음껏 달릴 운동장 없이 한 발 떼는 것조차 어려워진다면. 그렇게 상상을 하자 차가운 바람이 분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홍이는 두 팔로 몸을 감쌌다.

송 선생님이 박 선생님을 불렀다.

“그 가방 좀 이리 주게나.”

“예?”

박 선생님은 못미더워하며 미적미적 가방을 내밀었다. 송 선생님은 가방을 열었다.

“아이구, 송 선생님!”

박 선생님이 기겁을 하며 계단을 올라왔지만, 홍이는 가방 속을 보고야 말았다. 빛을 발하는 털실 뭉치 같은 덩어리가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그게 뭐예요?”

송 선생님은 조심스레 그 덩어리를 가방에서 꺼내어 홍이의 두 손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속이 빈 벌집 같은 모양에다 거품처럼 투명하고 반짝였다. 황홀할 정도로 예뻤다.

“이건, 지도란다.”

송 선생님은 속삭이듯 말했다. 그 거품이 하나라도 꺼져버릴까 봐 조심하는 것 같았다.

“이게 지도라고요?”

홍이도 송 선생님처럼 속삭였다. 지도란 건 네모난 종이 위에 그려진 게 아니던가? 홍이 손 위에 놓인 것은 조금도 지도 같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담은 진짜 세계의 지도야. 세계가 그렇듯 이 지도 역시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한단다.”

송 선생님의 말처럼 그 ‘지도’는 홍이의 손 위에서, 마치 숨 쉬는 듯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지도가 이렇게 예쁘다면 세계는 얼마나 더 예쁘다는 말일까, 얼마나 신비롭다는 것일까.

송 선생님은 도로 지도를 집어 가방에 넣고는 박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봐, 이 아이는 잘 듣지 않나.”

“다른 애들은 안 들을 거예요.”

박 선생님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송 선생님은 그런 박 선생님을 뒤로 하고 홍이에게 말했다.

“다음 시간부터는 박 선생님 혼자서 수업을 하러 오실 거야. 난 다른 곳에 가야 한단다. 박 선생님이 잘하시겠지만…… 네가 선생님을 좀 도와드리렴.”

“제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잘 들을 수 있잖니.”

송 선생님은 다정하게 말했다.

“새로운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듣는 거야. 아무도 듣지 않으면 말은 힘없이 터져버리고 말아. 하지만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듣는다면, 그 말은 점점 더 부풀어 올라서 세계를 넓히게 되지. 지난번 바다처럼, 네 눈앞에 나타날지도 몰라.”

“전…… 틀린 말은 싫어요.”

홍이는 다시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작았다. 그런 말들이 정말로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들었기 때문에 바다를 본 것이라면 아까 다현이와 싸운 것은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너무 좁아져서 그랬던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뭐가 좁아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으면서도 그랬다.

송 선생님은 웃었다. 그러자 입가에 길게 주름이 파이고 둥근 얼굴이 더 둥글어졌다.

“잘 들어 보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송 선생님 말대로, 다음 시간에는 박 선생님 혼자 왔다.

“소, 송 선생님은 지금, 지금 주, 중요한 할 일이, 있으시단다.”

박 선생님은 첫날처럼 잔뜩 긴장해서 말을 더욱 더듬었다. 자꾸 가방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홍이만은 그 안에 반짝이는,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도 하는 그 지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박 선생님이 하도 말을 더듬어서였는지 송 선생님이 없어서였는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딴짓을 했다. 홍이는 송 선생님이 당부한 대로 박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했지만 교실 분위기가 너무 산만해서 잘 되지 않았다.

“재미없어요!”

동우가 크게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말을, 말을 해보자…….”

박 선생님은 왜 제대로 말을 못하는 걸까, 애들은 또 왜 이렇게 떠들까. 홍이가 대신 조용히 하고 좀 들어 봐! 소리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갑갑했다.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책이 많이 든 책가방을 멘 것처럼 몸도 무거웠다.

‘혹시 지금 좁아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박 선생님은 수업 내내 쩔쩔매다가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가방을 움켜쥐고 도망치듯 교실을 떠났다. 홍이는 알 수 없는 실망감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저기 말하기 선생님 아냐?”

유나와 정아, 그리고 가까스로 화해한 다현이와 함께 학교 건물을 나오는데 정아가 말했다. 박 선생님이 운동장 느티나무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 연둣빛 느티나무 잎을 날리고 박 선생님의 진초록빛 양복 자락도 날렸다. 안경까지 벗고 눈을 감은 박 선생님은 나무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아 보였다.

“선생님!”

유나가 부르자 박 선생님은 눈을 떴다.

“여기는 좀…… 좀 낫구나.”

박 선생님이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교실은 너무, 좁았단다. 송, 송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그렇게까지 좁아지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고 눈을 굴렸다. 하지만 홍이만은 박 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었다. 역시 그래서 답답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

“송 선생님은 어디 가셨어요?”

다현이가 물었다. 박 선생님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가장 좁고, 가장 위험한 곳에 가셨단다. 가라앉는 말, 딱딱한 말, 자로 잰 듯 나눠진 말들밖에 없는 곳에 말이야. 서로의 말을 듣지도 않는 곳이야.”

“홍이가 그런 건 다 엉터리래요!”

갑자기 다현이가 일러바치듯 말했다. 홍이는 당황해서 변명도 하지 못했다. 박 선생님은 진지한 눈빛으로 홍이를 보았다.

“한번, 네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여 봐. 그럼 네 안에서, 말이 저절로 나올 거야. 네, 네가 네 자신을 믿고 귀를 기울이는 한, 그런 말들은 절대, 절대 엉터리가 아니야.”

박 선생님은 안경을 쓰고, 가방을 집어들고, 삐뚤어진 옷자락을 바로 매만졌다.

“그러니 말을 해보렴.”

박 선생님이 가고 나서 홍이는 다현이에게 신경질을 냈다.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네가 다 엉터리라며?”

다현이가 톡 쏘듯 말했다.

“역시 좀 이상해, 저 선생님은.”

유나가 말하자 정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 나는 지도도 봤는걸.’

홍이는 박 선생님을 편들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무슨 말로도 지금 홍이가 느끼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잘 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헤어진 후에야 홍이는 멈추어 살짝 주변을 돌아보았다. 뭔가 말하고 싶었다. 홍이는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겨우 입 밖에 말을 꺼내 보았다.

“봄은…… 봄은…….”

봄은 뭘까? 봄은 따뜻하고, 밝고, 온통 연둣빛이고…… 말을 고르고 골라도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자 홍이는 심통이 났다.

“봄은, 봄은 바보다!”

말을 하고서, 홍이는 자기도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말도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웃음이 나고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아까 교실에서 답답했던 것이 씻겨 나가듯 풀렸다.

‘이런 게 부풀어 오르는 말일지도 몰라.’

홍이는 쑥스러워져서 얼굴을 한번 문지르고 날아갈 듯 가볍게 뛰어갔다. 그러느라 홍이는 자기가 말한 자리에서 뭔가 작고 반짝이는 것이 둥실둥실 떠오른 것을 보지 못했다.

 

다음 말하기 수업 때까지 일주일을, 홍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보냈다. 말을 하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눈이 환히 열린 것처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고 마음이 퐁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엄마, 달이 흩어지려고 해.”

“그게 무슨 소리니?”

“우리 홍이가 시인이 되려나 보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진지하게 들어 주지 않았다. 홍이가 처음에 그랬듯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기껏 펼쳐졌던 말들은 도로 움츠러드는 것 같았고 홍이는 전에는 몰랐던 답답함을 느꼈다.

말하기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말하기 수업이 두 번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박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았다. 예전처럼 마음대로 말을 하지도 않았다.

답답한 것은 홍이뿐일까? 아니, 아이들이 느끼는 지루함도 짜증스러움과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지는 마음도 다 그 답답함의 일부였다. 다만 아이들은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몰랐다.

‘오늘도 이렇게 끝나려나 봐.’

홍이는 연필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때, 홍이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 거지?’

교실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밖에서 거인이 교실을 내리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장이 슬금슬금 내려앉고 창문이 안쪽으로 기울었다. 박 선생님도 눈치를 챘는지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얘, 얘들아!”

박 선생님이 불렀지만 아이들은 듣지 않았다. 이제 서로 어깨가 부딪치도록 가깝게 앉게 되었는데도 아이들은 이렇게 좁아진 교실을 보지 못했다. 홍이는 유나의 팔을 잡았다.

“유나야! 이거 안 보여?”

“뭐가?”

유나는 책상과 의자 사이에 끼어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되물었다.

박 선생님은 급하게 가방에서 뭔가 꺼내려다가 가방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가방에서 지도가 굴러 나왔다. 홍이가 재빨리 지도를 주웠다. 지도는 홍이의 주먹만큼 쪼그라들어 딱딱했다.

“선생님!”

홍이는 박 선생님에게 지도를 내밀려고 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몸이 꼭 끼어버렸다. 천장마저 푹 내려앉아 홍이의 머리와 등을 눌렀다.

‘너무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어!’

작은 상자 안에 억지로 집어넣어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둠조차도 더 까맣고 무거웠다. 온몸의 힘이 빠지고, 홍이는 이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갑자기 손에 쥔 지도가 불꽃처럼 뜨거워졌다. 홍이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생각이 났던 것이다.

‘말을 해야 해, 넓혀 나가는 말을 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지금까지 말하기 수업에서 배운 것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쩌지!’

홍이는 울고 싶기만 했다. 그때였다. 어둠 속으로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빛줄기가 보였다. 아니, 들렸다. 가늘지만 뚜렷한 목소리가 홍이에게 속삭였다.

‘네 자신에게 귀 기울여 봐. 너를 믿어 봐.’

홍이는 가까스로 그 말들을 기억해 냈다. 믿으면, 귀를 기울이면 말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 말에 기대어 홍이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귀를 기울였다. 처음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멀리서 북소리가 둥둥 들리듯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곳이 아니라 홍이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시작한 그 울림은 점차 커져서 홍이 안을 꽉 채우고 저절로 입 밖으로 톡톡 터져 나왔다.

─ 하늘은 조각조각 깨지고, 땅은 흘러가. 꽃들은 울타리를 넘고 바람은 끓어오르지.

말을 하면서 홍이도 놀랐다. 홍이 안에 그렇게 많은 말이 숨어 있었다.

“하나도 틀리지 않아, 하나도!”

그 순간 넓어졌다 홍이를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어둠을 가르고 번개 치듯 눈앞이 환해졌다.

“아…….”

홍이는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었다. 홍이가 한 말들이 홍이 앞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홍이의 말은 교실을 넘고, 학교를 넘고, 마을을 넘었다. 그만큼 빠르게 홍이 앞의 공간이 자꾸자꾸 넓어져서, 홍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홍이 앞으로 탁 트인 하늘이 펼쳐져 있게 되었다.

그곳은 무척 조용했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고함 소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무겁지 않고 가벼웠다. 홍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말도 안 돼, 아니, 이게 바로 말인가 봐!’

홍이는 눈을 깜박였다. 그 넓은 하늘에 반짝이는 둥근 비눗방울 같은 것들, 바로 부풀어 오르는 말들이 자유로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럴 수가, 다 같이 이걸 보게 되다니.”

박 선생님이 홍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박 선생님과 유나와 다현이, 정아, 동우와 준형이까지 반 아이들 모두가 다들 홍이처럼 숨죽인 채 그 넓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한 말들이로구나. 이 말들 덕분에 넓어졌어.”

박 선생님의 말에 홍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동그란 거품들이 홍이의 손에 닿았다. 날카로운 유리처럼 투명했지만 차갑지 않고 따스했으며 보드라운 꽃잎처럼 말랑말랑했다.

말의 반짝이는 표면에 홍이의 얼굴이 비치었다. 그 안에서는 엄마는 파랄 수도 있고, 바다는 개구리고, 봄은 바보며 바람은 끓어올랐다. 없던 것이 생기고 감춰진 것이 드러나며 보이지 않는 것이 보였다. 그 말들로 세계는 넓어졌다.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요.”

한참 뒤에야 홍이는 입을 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졌다.

“말을 하면, 언제나 이런 걸 볼 수 있나요?”

“늘 보는 것은 아니야. 모두가 언제나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란다. 가끔 생각이 나서 한두 마디 말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박 선생님은 가슴을 쭉 폈다. 박 선생님이 이렇게 키가 크고 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던가? 홍이는 새삼 놀랐다. 박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계속 말하고 싶어 한단다. 이런 것을 보기를 늘 꿈꾸지.”

“그런 사람이 말하기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홍이의 질문에 박 선생님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쿡쿡 웃었다. 박 선생님 곁을 맴돌던 작은 말들이 파르르 떨며 웃음 결에 미끄러졌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단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세상을 넓혀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못할 테니까.”

순간처럼 짧으면서도 또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 꿈결같이 조용하게 모두는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은 예전의 교실 그대로였지만 홍이와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도 여전히 가장 넓은 하늘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박 선생님은 조용하게, 그러나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기 수업 마지막 날 박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일이 생겨서 오늘 수업은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담임선생님은 못마땅해하는 어조로 말했다.

“마지막 수업인데 좀 그렇지만, 자습하려무나.”

아이들은 책이나 문제집을 꺼내고 선생님 몰래 소곤거렸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창문 밖 하늘은 언제나처럼 파랬다. 홍이는 턱을 괴고 창 밖을 보았다.

‘선생님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을 거야.’

말하기를 배운 아이들은 이 세상을 거듭 넓혀 나갈 것이다. 홍이는 자기가 한 말과 본 것들을 떠올렸다. 그런 것을 또 볼 수 있을까, 홍이는 궁금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알고 있는걸.’

마찬가지로, 듣는 이 없어도 홍이는 말할 수 있었다. 홍이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새로운 말, 마음이 들려 주는 말, 저 하늘을 한 뼘 더 넓힐 말을.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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