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썸머

[기획/특집]

겨울에 쓰는 여름 이야기

인디언 썸머

강영숙

희고 검은 옷을 입은 신랑과 신부가 들러리들과 함께 줄지어 지나갔다. 행렬이 지나간 보도블록 위로 꽃 냄새, 향수 냄새, 달디 단 비스킷 냄새, 신맛이 풍부한 커피 냄새가 와락 몰려왔다. 길고 긴 바디에 앞뒤로 조명이 툭 튀어나와 개구리처럼 우스꽝스럽게 생긴 구식 캐딜락 앨도라도가 천천히 행렬을 따라갔다. 빨간색 단화를 신은 내가 행렬이 지나가고 다시 비어 버린 공원 앞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위에서 내려다봤다면 캐딜락의 뒤꽁무니가 왼쪽 창끝에, 오른쪽 창끝에 내가 걸려 있었을 것이다.

늦은 오후가 되면 커피를 들고 강가를 산책했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할 뿐 강가는 아주 조용했다. 왜 늘 멋진 말들은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나 떠오르는 걸까. 강에게 혹은 강기슭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쌓인 것처럼 불쑥 혼잣말을 했다. 다시 강어귀의 호텔로 걸어 돌아오면 다리가 아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래도, 춤도, 다림질도, 편지 쓰는 것도. 그럴 때는 높은 베개에 상체를 묻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이 잠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맥주 마시러 가는 일행의 목소리, 저녁 식사하러 몰려나가는 일행의 목소리로 복도가 분주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동그란 은색 월드 와치가 창 난간에서 알람을 외치려던 순간 버튼을 눌러 껐다. 노을이 낀 파란 하늘 위로 한낮의 열기가 빨려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내 방 전화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외면했다. 곧 전화기가 붉은색 등을 깜빡거리며 메시지가 도착해 있음을 알렸다. 저녁식사 초대. 어슬렁거리며 호텔 로비로 내려가 주스를 사들고 앞방에 사는 한 아시안의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즉석 카레, 맥주 한 병, 그리고 수다.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저녁식사였지만 늘 그렇듯이 삐딱하게 굴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서야 그 저녁 초대에 대해 감사했다고 말했다. 마음의 황폐함을 이기게 해 준 따뜻한 음식이었다고.
 
밤 10시. 헬스 센터에 갔다. 손소독제로 손을 문지르고 러닝머신 위에 섰다. 아령들 소리, 커다란 음악 소리가 들렸지만 러닝머신 위는 그냥 혼자인 공간. 킬로미터와 마일 중에 어떤 단위를 택할까 고민하다가 마일을 택했다. 몇 마일이나 달릴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속도를 높였다. 머리는 깡그리 잊어버렸지만 어릴 적 트랙을 달리던 내 몸은 내가 했던 짓거리들을 다 기억했다. 과도하게 달리다 보면 머리가 명령했고 몸은 다시 움츠러들었다. 스트레칭을 위한 시간이 되면 저 너머 거울 속에 수많은 내가 보였다. 다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반성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손세정제를 한 번 더 사용하고 헬스 센터에서 나왔다. 아직 더운 밤이었다. 
 
몇몇이 공용 룸에 모여 카드를 돌렸다. 맥주를 마시고 캐슈너트를 씹어 먹으면서 카드를 돌리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강이 거꾸로 흐르고 있어. 다들 낄낄 웃다가 둘은 강가로 담배를 피우러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남아 있는 여자들은 소파에 안기듯이 기댄 채 속없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너무 더웠다.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었다. 누군가 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어쩌다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각자의 엄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하게 죽도록 맞고도 같이 사는 엄마, 치매로 요양시설에 가 있는 엄마, 우리의 엄마들. 우리 엄마가 나를 낳은 건 열아홉 살이야, 라고 말했더니 다들 말했다. 음, 너네 엄마 역시 싱글맘이었구나. 부정할 타이밍을 놓쳤다. 사실은 왜곡됐지만 그 결과로 난 친구를 얻었다. 담배를 피우러 내려간 일행이 올라오고 다시 카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긴 복도를 걸어 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모기가 엥엥거리는 듯한 외국어들이 방 이곳저곳에서 계속 들려왔다.
 
시간은 깊은 가을인데 기온은 점점 높아졌다. 영화 촬영 세트장처럼 비좁고 빤한 대학 도시 하늘 위로 난데없이 까마귀가 날았다. 모든 게 바짝바짝 타들어갈 것 같은 한낮 더위 아래서 여자애들이 괴성을 지르며 축구를 했다. 몸을 부딪고 소리를 지르고 폴짝폴짝 뛰었다. 여자애들의 건장한 육체가 더위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고전적인 질문이 오가는 시간이 계속됐다. 나는 왜 쓰는가, 여성들의 글쓰기, 환경재앙, 아메리카에 대한 이미지들을 토론했다. 조금은 다들 격앙되어, 배우처럼, 트렁크에 넣어온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쿨한 척, 지성인인 척 발표했다. 그 즈음에 열렸던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작가들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자이자 인터뷰어였던 한 중년 남자와의 소그룹 대화였다. 그는 영화 <슈퍼 사이즈 미>에 나온 배우처럼 끊임없이 코카콜라를 마셨고 말하는 내내 거구를 부들부들 떨어댔다. 자기 방송에 출연한 작가들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는 건 테러라고 말하면서, 어린 시절 얘기, 가족 얘기를 물어보는 건 너무 고통스럽지 않나요? 라고 되물었다. 자꾸 그 남자 생각이 났다.
 
이바 케시디의 노래가 흐르는 발레 갈라 공연을 봤다. 세상은 여전히 선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날 밤 더위는 잊혀지지 않는다. 사방에 불이 켜진 양계장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인터뷰어의 말이 맞았다. 자기 자신을 24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일은 없었다. 그 후로 한 주 동안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밥은 하루 한 끼, 마요네즈를 두른 스시 롤 종류를 먹고 리필이 얼마든지 가능한 커피를 줄곧 마셨다. 전화도 하지 않고 이메일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날의 날짜를 앞으로 내가 쓰는 새로운 얘기가 시작되는 날로 삼기로 다짐했다. 밤낮없이, 나중에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몹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어느새 계절은 초겨울로 돌아가 있었다. 인디언 썸머는 끝났고 내가 쓴 것들을 읽었다. 그건 그냥 그렇고 그런 퇴적물일 뿐이었지만 그게 또 나였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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