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풍선껌

 

[제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 우수상]

 

 

할머니의 풍선껌

 

김소연

 

 

 


 

  꾸역꾸역 차에 오른다. 할머니 댁에 가는 건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나는 최대한 가지 않겠다고 버텨 보지만 끝까지 차에 태우는 아빠를 이길 수가 없다. 연산동에 있는 할머니 집에는 정말 가고 싶지 않다. 혼자 있는 할머니도 싫고 무엇보다도 그 냄새가 싫다. 할머니 집에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시큼하고 매캐한 노린내를 풍긴다. 나는 그것을 할매 냄새라고 한다.

 

  현관문을 열자 방 안의 뜨뜻한 공기가 훅 얼굴을 스친다. 할머니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은주 왔냐. 초점 없는 할머니의 눈엔 언제나 눈물에 범벅된 눈곱이 가득하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한 발짝 뒷걸음친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적이 있다. 그 후로 할머니는 시력을 잃었고 더 이상 전등이 쓸모가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집 전등불은 친척들이 와야만 제 기능을 다했다. 나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앞을 못 보면 답답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런 내 물음에 할머니는 웃으며 냄새에는 보이지 않는 색깔이 있다고 말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할머니 집 창문을 한바탕 흔들고 지나갔다. 나는 찝찝했지만 할머니 방 옥장판 밑으로 손을 넣었다. 꽁꽁 얼어붙은 손이 녹으면서 온몸이 나른해졌다. 엉덩이를 쭉 빼고 두 손을 이불 밑에 넣고 있는데 까끌한 느낌이 들어 얼른 손을 뺐다. 손바닥을 뒤집어 보니 할머니 몸에서 떨어진 허연 각질 부스러기였다. 순간 토가 나올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따뜻한 이불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바깥 바람이 거세지자 엄마는 열었던 창문을 닫았다. 한번 모인 할매 냄새는 쉬이 옅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져 있다. 매번 할머니 집을 나설 때는 나 또한 냄새의 일부가 되어 있다. 어쩌면 앞 못 보는 할머니의 유일한 존재감이 그 냄새인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밥상을 내온다. 방금 무친 나물들과 된장 냄새로 방 안이 가득해졌다. 할머니는 익숙하게 밥상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할머니는 할머니 집에서 제일 ‘앞’을 잘 보는 것 같다. 할머니는 몇 번을 오물거리더니 입안에 씹고 있던 껌 덩어리를 작은 종지에 올려놓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왠지 밥을 먹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계속 할머니를 살폈다. 톡톡거리며 할머니의 젓가락이 접시 위를 지나간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할머니가 밥 먹는 모습은 정말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리저리 수저를 바꾸어 가며 밥과 국을 입안으로 가져간다. 할머니는 엄마가 한 된장찌개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오늘 초록색 산하고 누런 된장하고 다 있네 여기. 할머니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엄마는 할머니네 냉장고를 보더니 반찬거리가 너무 없다고 찬거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러 아빠와 동생을 데리고 마트에 갔다. 나도 재빨리 코트를 집어 들었지만 엄마는 할머니가 혼자 계시잖니, 하며 나를 막아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와 함께 집을 지키게 되었다.

 

  할머니가 껌을 씹으며 이리로 오라고 나를 불렀다. 딱딱거리는 풍선껌 소리가 계속 귓가에 거슬렸다. 언제나 할머니 주위엔 달달한 껌 냄새도 함께 풍겨 왔는데, 나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신기하게도 입안에서도 딱딱 하는 소리를 냈다. 할머니의 달콤한 껌 맛은 어떤 색일까. 달콤하게 퍼지는 그 향과 터지는 껌 소리는 유일한 할머니의 놀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가 성치 못해 풍선껌을 씹는 할머니는 오물거린다기보단 우물거림에 가까웠다. 할머니의 혀가 요리조리 껌 사이를 파고드는지 입 근육이 씰룩거렸다. 그때 할머니가 바지춤에서 뭔가 꺼내 내게 건넸다. 그것은 할머니 체온으로 따뜻해진 네모난 풍선껌이었다. 나는 왠지 할머니 바지 속에서 나온 그것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껌을 받자마자 먹지 않고 저만치 멀리 밀쳐 둔다. 어색함 속에 적막이 계속됐다. 차라리 껌이라도 씹고 있으면 덜 심심할 것 같았다. 나는 밀쳐냈던 그 껌을 도로 가져와 투명한 껌 포장지를 벗겨낸다. 조용한 방 안에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가 퍼졌다. 나는 힐끔 할머니를 바라보고는 입안에 껌을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곤 할머니처럼 소리를 내보려 혀를 굴려 봤다. 그런데 막상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혀를 이리저리 굴려 봐도 내가 원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여전히 따다닥거리는 할머니 입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할머니를 잘 보려고 몸을 할머니 쪽으로 더 당겨 앉는다. 돌같이 미동 없는 할머니의 얼굴 중 유일하게 두 입술만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부터 껌을 씹을 때 할머니처럼 소리를 내보려 해봤지만 나는 도통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오직 따닥 소리만 맴도는 방 안에서 할머니를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할머니는 나름 순서대로 입을 움직여 가고 있었다. 한번 부풀리고 오므리고 터뜨리고. 나는 할머니를 따라 천천히 껌과 껌 사이에 바람을 넣었다. 그러곤 어금니로 그 부분을 질근 하고 씹어 봤다. 따닥. 그 순간 내 입에서도 따닥, 하는 소리가 났다. 내가 소리를 내자 가만히 껌만 씹던 할머니가 힐끔 내 쪽을 돌아봤다. 나는 내심 할머니의 반응에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써 껌을 씹었다. 따다닥. 이번엔 할머니의 경쾌한 풍선소리다. 그 소리에 나도 따닥, 하고 소리내 본다. 그러자 할머니가 또 따다다닥. 우리는 그렇게 몇 번 풍선껌으로 소리를 주고받았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대화를 주고받은 느낌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엄마는 벽에 걸린 윗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걸어왔다. 할머니가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따닥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자 나도 다닥 하고 조금 어설픈 풍선소리를 냈다.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가 계속 밖까지 따라 나왔다. 할매 냄새도 따라 나온다. 시큼한 할매 냄새는 푸근한 회색빛이다.

 

《문장웹진 2월호》

 

 

 

 

   수상소감 / 김소연

 

저는 펜을 들고 흰 종이 앞에만 서면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갑갑해하던 저에게 글은 새로운 탈출구였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제 모습이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수록 저를 더 알아가는 느낌입니다. 가족은 언제나 많은 생각의 열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망설이는 저에게 원하는 것을 해라 격려 해주신 부모님과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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